김치와 기무치 이야기
김치이야기
2008/08/
橘化爲枳 (귤화위지)란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에 심은 귤을 회수를 건너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한 곳의 문화가 다른 곳으로 이동되면 그 곳의 전통에 동화 되면서 다른 모습으로 탄생하게 된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일본처럼 이 표현이 잘 들어 맞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다른 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그 나라 문화에 맞게 잘 변형시키되,특유의 정교함과 깔끔함을 살려 일본의 것처럼 느껴지도록 탈바꿈 시킨다.그러면서도 보편성을 지녀 누구나 쉽게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세계화 시켜내는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
이 민족 특유의 강점을 이용해 우리의 ‘김치’가 어떻게 ‘기무치’로 탄생하게 되었는 지 그 사연을 알아보도록 하자.
‘기무치’는 김치의 일본식 발음인가요? 아니면 김치와는 전혀 다른 ‘기무치’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하는 건가요?
김치에 관해 자주 물어오는 질문 중 하나이다.
먼저 답부터 말하자면 기무치는 김치의 일본식 발음에서 출발했다. 즉 ‘김치= 기무치’인 것이다.
하지만 그 들의 강점을 살려 싫어하는 매운맛과 비린 취는 없애고, 좋아하는 단맛은 강화함으로써 그 맛과 담그는 법이 우리의 김치와 사뭇 달라지게 되면서 김치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다. 외래문화의 모방과 각색에 능란한 일본인들이 카레라이스,오무라이스,돈까스,덴뿌라 등과 같이 다른 나라의 식문화를 자신들의 것으로 변화, 정착시키고 나아가 일본 스타일 그대로 다른 나라에 전파 시킨 것 과 마찬가지로 ‘기무치’ 역시 우리의 김치를 일본인들의 기호에 맞게 바꾸는데 성공하고, 일식집에서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인식되도록 세계화 시킨 사례 중 하나이다.
CODEX 국제 규격에 의하면 ‘김치는 주원료인 절임 배추에 여러 가지 양념류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및 무 등)를 혼합하여 제품의 보존성과 숙성도를 확보하기 위하여 저온에서 젖산생성을 통해 발효된 제품’이라고 정의한다. 국제식품규격을 규정한 CODEX 에서 일본식 기무치가 아닌 한국의 김치를 김치의 국제 표준으로 정의 했다는 것은 전통 한국 김치의 제조법을 그대로 따라 발효숙성과정을 거친 김치만을 국제적으로 김치 (KIMCHI)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일본의 기무치 기류에 밀려 고전하던 우리에겐 원조 경쟁에서의 승리를 뜻하는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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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무치는 일본인이 싫어하는 마늘과 젓갈을 사용하지 않고, 고춧가루의 함량은 줄이고, 좋아하는 단맛과 각종 조미료를 가미하여 숙성을 시키지 않은 채 샐러드처럼 먹을 수 있게 만든 음식이다.전통적으로 불교 문화권인 일본에서는 국가적으로 육식을 금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젓갈은 물론, 불가에서 금하던 마늘도 거의 먹지 않았다. 따라서 마늘향과 젓갈내가 강한 김치를 아주 천한 것으로 여겨 왔는데 전후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야키니꾸 가게 (고기구이집)에서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변형시킨 김치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발효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겉절이식의 김치를 만들었던 것이 기무치의 원형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양념의 배합비 문제는 뒤로 한다 손 치더라도 김치 제조 기술과 맛,영양적 우수성의 핵심인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발효된 김치에서 맛 볼 수 있는 특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가 없을 뿐 더러, 각종 김치의 유산균에서 나오는 기능성 생리 활성 물질들에 의한 효능도 갖고 있지 않으니 김치를 기무치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 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인 것이다.
하지만 원조경쟁으로 인한 자존심 문제로 조금 껄끄럽긴 했어도, 김치를 천시하던 일본사회에서 이 기무치가 김치를 하나의 식문화로 뿌리 내릴 수 있게 큰 기여를 했고, 우리에 한발 앞서 세계화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는 점에 대한 공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바로 우리가 겸허히 배워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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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것은 CODEX 규격이 일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김치에 손을 들어준 후, 기무치의 맛에 익숙해 진 일본인들이 본고장 김치의 맛을 훨씬 쉽게 받아 들일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의 입맛도 국제표준에 맞춰 발효가 잘 된 정통의 김치 맛의 깊이를 알게 되고,이것이 일본에서의 한국 김치 붐의 기틀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물론 아직까지 일본식 기무치의 판매량이 훨씬 많지만 한국풍 김치의 판매량이 기무치 판매량에 버금갈 만큼 시장이 크게 성장했으며, 마늘 내와 젓갈 내가 나는 본토의 매운 김치를 제대로 배우고 맛보기 위해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찾고, 또 각종 언론 매체들에서 앞 다투어 특집 기사로 다루고 있다. 이 기사의 자료 제공을 위해 김치박물관에서도 한 달에 몇 건씩 촬영과 자료 협조를 하고 있는데 일본에서의 특집이란 잡지 사이에 몇 페이지 삽입된 것이 아니라 아예 한 권 전체가 김치이야기로 메워지고, 1~2시간 이상 짜리 프로그램으로0 편성된 방송을 의미한다.뭔가 하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집착에 가까운 열의를 가지고 몰두하는 이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한 편 무섭기도 하다.
남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변화시키고 그것을 최고로 만드는 이들의 강점이 진정한 김치 맛을 알게 된 지금,또 다시 발휘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기에…
일단 우리는 국제적으로 기무치와 김치가 서로 다른 것임을 명확히 정리하면서 김치의 우수성을 인정 받았다.이번에는 자신의 것을 세계화 시켜갈 줄 아는 ‘일본인들의 근성’을 우리가 귤화위지(橘化爲枳) 해야 할 차례가 된 것 같다.
글:풀무원김치박물관 학예연구실
첫댓글 잘 정리된 내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