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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산행기
- 가는날 오는날 : 2005. 7. 13 ~ 7. 17(4박5일)
- 동행자 : 전체54명 - 전국각지에서 모임
- 여행경비:1인당 112만원(추가경비 -산행후 연길에서발안마15,000원,
기타 백두산 전경CD 10,000원 외 1~2만원정도)
- 산행기
백두산에 다녀 온지 몇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눈앞에 들꽃과 천지가 아른아른 거린다. 열서너시간의 산행의 감동도 그리 쉽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하여 백두산 산행기를 두서없이 몇자 적어본다.
백두산은 2004년도에 백두산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가 가지 못해서 금년에 가기로 하고 인터넷으로 여러군데를 검색하여 일정과 가격을 비교하면서 알아본 결과 백두산 탓컴이 가격은 제일 비싸지만 제일 신뢰성이 있고 백두산 외륜봉 종주 경험이 많은것 같아서 백두산 들꽃의 최고 절정기인 7월 중순으로 두 달전인 5월달에 예약금을 지불하고 예약을 마쳤다
예약을하고 백두산 산행에 대한 정보 산행기 사진을 보니 기대가 되면서 하루 빨리 가서 실제로 눈으로 보고 싶어진다, 백두산의 일기는 일년에 3분의2. 240일 이상이 안개,비,눈으로 천지를 볼수 없는 날이란다 몇일 전부터 기상예보를 보면서 제발 우리가 백두산을 가는 날은 날씨가 좋았으면 기대하면서, 일기예보를 보니 백두산 오르는 날은 구름 많음으로 비는 오지 않을 것으로 나타난다
7월 13일(첫째날)
인천공항에서 장춘으로 가는 비행기가 12시30분에 출발이니 10시까지 가야겠기에 아침을 먹고 전날 준비해둔 간식거리와 옷가지를 챙겨서 공항버스를 타고 갈려고 하는데 마침 13동 박종현 님이 인천공항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여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서 공항으로 출발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여행사 인솔자가 산행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우리도 도착했음을 알리고 다른 일행이 오기까지 로비에서 기다렸다. 대합실에는 백두산을 가는 사람들인지 등산복차림의 여행객이 쾌 많았다. 나는 인솔자의 간단한 안내 및 주의사항을 듣고 탑승수속을 밟고 기대감속에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중국 북방항공이다. 중국에는 항공사가 지역을 구분해서 북방항공, 남방항공 서방항공 등의 항공사가 있는 것 같다. 인천에서 장춘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50분 정도 거리다. 중국과 한국의 시차는 1시간 정도, 장춘공항은 우리나라 지방공항정도의 규모다. 시설은 아시다시피 설명을 하지 않아도 짐작을 할 것이다. 이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중국 현지 여행사에서 대기 시켜논 버스에 타고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건만(오후3시) 식사하러 간다고 한다 식사는 현지식인데 기내식을 해서 그런지 별로 생각이 없다, 점심을 두 번이나 먹는 샘이다. 음식은 중국식이라 다소 입에 맞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그런데로 먹을만 했다.반주로 고량주가 테이블마다 한두병이 제공되는데 중국음식과는 잘 어울렸다. 길림성의 성도라는 장춘은 생각보다 훨씬 근대화된 큰 도시였고 도로망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일행이 56명이어서 45인승 버스 2대가 동원되었는데 중국산 버스이어서인지 외관만큼 승차감이 안락하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은 백두산의 서쪽 관문인 서파에서 가까운 도시까지 가서 1박을 하는 일정이라 늦은 점심 식사 후 장춘에서 5 - 6시간 거리에 있는 무송이라는 곳을 향하여 출발을 한다. 중국은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일반도로도 구간별로 전부 통행료를 받는다. 승차인원에 따라 통행료도 틀려지는데 우리의 45인승 관광버스는 한화로 3,4천원 정도 받는 것 같다. 1시간 정도 운행하면 어김없이 통행요금 징수하는 매표소가 길을 가로 막는다. 우리나라의 시,군과 같은 지역을 들어올때마다 통행료를 받는다 일종의 도로관리비인 듯 쉽다 그런데 통행료 징수하는곳마다 한두사람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직원이 5.6명이 서있다 중국은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궁금하다.. 통행료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그대신 기름값은 저렴하단다
중간의 휴게소에서 잠시 하차하여 화장실을 갔는데 화장실이 신기하다,화장실의 형태는 공중화장실로 남.여야 구별이 되어 있지만 칸막이가 없이 서로 마주보고 옆사람을 보고 볼일을 보아야 한다. 이것이 중국의 문화수준을 보여주는것 같다
휴게소 가게는 옛날 우리나라 시골 구멍가게 수준이고 물건도 깨재재하고 별로 사고싶은 마음이 없다
바깥 풍경은 만주벌판 답게 산은 없고 구릉지가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지는데 왠 옥수수는 그렇게 많이 심었는지 전부 90%이상이 옥수수 밭이다
버스에서 우리의 인솔자가 마이크를 잡고 구수한 입담으로 지루함을 달래줄려고 그런지 노래가사들이 적힌 종이 1장씩을 나누어 주며 우클렐레와 하모니카를 꺼낸다. 홍하의 골짜기, 록키에 봄이 오면 등의 외국 곡과 우리에게 친숙한 우리 가요 몇 개와 “또 만납시다”라는 북한가요(?)도 있다. 우클렐레와 하모니카는 화려하지 않고 아주 소박한 소리지만 최상의 조화를 이루는 악기들이다. 몇 곡의 연주를 듣고 인솔자의 리드에 따라 노래를 하며 모두들 즐거워한다. ������ 또 만납시다������노래는 몇 번을 반복해서 선창하면서 따라하라고 한다 북한 식당에가면 불러야 된다고
우리가 첫날 숙박지 무송의 호텔에는 어두워져서야 도착했는데 이 도시에서 가장 좋은 4성급 호텔이다. 제공되는 식사는 중국식이었는데 가이드가 김치와 고추장을 식탁마다 나누어 주어서인지 훨씬 먹기 수월했다. 역시 중국음식에는 고량주가 최고다. 중국 현지식당은 식탁 테이블이 보통7~8명 앉아서 먹을수 있는 원탁 테이블이 보통이다 우리도 한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는데 육십대 부부 한팀 혼자 오신분 그리고 우리 둘, 광주에서 온 젊은 교수와 한팀이 되어 식사를 하고 고량주 한 병을 금새 비우니 또 한 병이 온다. 나이가 드신분은 약주를 많이 하시는 것같다.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호텔방으로 돌아와서 내일를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7월 14일(둘째날)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서파로 향한다. 중간에 송강하라는 도시에 들려서 잠시 차에서 내려 과일도 사고 시내 거리,상점 구경도 하고 했는데 우리의 시골 읍내에 온 느낌이다. 우리의 버스기사는 한족인데 한화로 1억원정도하는 관광버스가 2대가 있는 재력가라고 들었는데 길가에서 한화로 4,000원에 파는 구두를 한 켤레 사서 신고는 연신 쳐다보며 좋아하는 모습이 순진스럽다.
서파(백두산 천지를 중심으로 서쪽 지점을 서파, 북쪽지역을 북파라 함-파는 언덕을 뜻함)는 산문(山의문)을 통과하면 일체의 위락시설이 없다. 백두산의 서파를 관장하는 젊은 관리의 자연보호 의식이 투철하여 아직까지는 일체의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북파 쪽의 난개발 시행착오에 대한 젊은 관리의 발 빠른 대응이리라. 이런 젊은 세대가 향후 중국의 발전을 주도하는 주체가 된다면 그 발전의 추진력은 대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은근히 경계의 마음이 든다.
( 서파 산문앞에서)
서파 산문을 통과하여 첫 번째로 간 곳은 쌍제자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현무암이 지진으로 갈라지며 형성된 것이며 땅위에서의 갈라진 작은 틈은 2미터 정도 되는데 아래로 내려가며 넓어지는 형태로서 높이가 대략15미터되는데 땅 밑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하천 두개가 하나로 모아진다 하여 쌍제자하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그리 대단한 볼 것은 아니나 생성과정을 생각하면 한번 볼만은 하며 떨어지면 골로 갈것같다 이곳을 구경하는데 가드레일이나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
두 번째로 간 곳이 금강 대협곡인데 이 곳 역시 화산활동 후 강물과 빗물에 의하여 침식되어 생긴 협곡으로 근래에 산불진화 작업 과정 중에 발견된 것이라고 하는데 계곡 아래로의 접근이 불가하여 좋은 관망점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금강 대협곡은 자연훼손 방지 할려고 폭1m정도의 나무판으로 만든 코스 유도로를 따라 숲속을 걷게 되어 있는데 약 50분 정도 소요된다. 중간 중간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기는 했으나 협곡 위에서만 내려다보아야 하기 때문에 보이는 나무가 가리고 풍경이 제한되어 있지만 역시 협곡 주변은 원시림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대단한 볼거리이다.
( 금강 대협곡의 모습 )
점심은 금강대협곡 입구에 있는 포장마차 형태의 식당에서 중국식으로 준비 되었는데 이 지역에서 나는 버섯들을 재료로 한 요리가 두세 가지 나와서 한결 입에 맞았다. 시장기가 있어서 밥을 한 그릇 다 비웠다.
점심 후에는 고산화원으로 간다. 들꽃이 많이 피어져 있는 곳인데 중국인 경비가 한명 서 있어서 우리가 사진이라도 한 장 찍으려고 들꽃 쪽으로 다가가면 큰소리로 막는다. 제지하는 방법이 지극히 세련되지 못하고 위세를 떠는 모양새라 안타깝다. 사진들을 찍다가 바로 왕지로 간다.
왕지는 청나라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누르하치가 태어난 연못이라 하여 중국인에게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 곳이란다. 그러나 우리가 왕지를 가는 이유는 버스에서 내려 왕지로 약 30분 정도 걸어가는 길이 들꽃 만발한 천상의 화원이기 때문이다. 길 입구에서부터 자주 빛의 아이리스가 만발하더니 조금 더 들어가면 그야말로 들꽃 세상이다. 조금 전의 고산화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름모를 들꽃들이 제마다의 색으로 단장을 하고 잔치를 벌이며 우리를 맞는다.
( 왕지가는길 들꽃 천지)
이 순간 우리가 들꽃의 이름을 꼭 알아야할 이유가 있겠는가. 들꽃 속에 파묻혀 그저 만끽하고 감탄하며 걸어가면 되리라. 천상의 화원이라는 단어는 오직 이 곳을 위해 만들어진 표현이어야 한다. 누구도 가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들꽃 화원이기에 더욱 그렇다. 들꽃 길 중간의 우측 산등성이로 보이는 산불(?) 감시탑이 왕복 1시간의 이 길에서 유일하게 옥의 티로 남지만, 왕지로 가는 들꽃 길은 내일 천지를 못 보더라도 전혀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그런 꽃길이다.
오늘의 숙박지는 서파관문에서 약 500미터 거리에 있는 백운산장. 호텔이 아닌 산장이라 더운물은 나오지 않는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는 천지 외륜봉 종주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리라. 화장실과 샤워실(냉수)도 공동으로 사용해야한다. 하루종일 후덥지근한 날씨에 몸이 끈적거려 씻을려고하니 물이 백두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7월 중순인데 손이 시럽고 차가워서 사워를 할 수가 없다. 화장실 시스템은 그야말로 기발하다. 화장실 이야기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어제의 그 휴게소 보다는 조금 나은듯 하지만 주변 풍경은 가관이다. 여기는 칸막이는 있는데 높이가 1m 정도 높이,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겠지만 꼭 한번 체험해 볼 만한 시스템이다. 우리나라 야외 예비군 동원훈련장 임시 화장실 같다
산장의 식사는 4성급 호텔의 식사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먹을 만 했다. 향상 식사중에는 테이블당 고량주 두병이 나왔다. 백두산 닷컴 여행사 인솔자가 중국 고량주를 2박스를 사서 식사때마다 테이블당 2병씩 돌린다. 저녁을 먹고 산장마당으로 나오니, 모두들 나와서 몇 명씩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그룹, 또는 모여서 시를 낭송하면서 즐기고 있었다 산장은 고도가 1,000m정도 되는데 칠월 중순이지만 얇은 파카를 입어야 했다 . . .
운동장 같은 산장의 마당 저쪽에서 바베큐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른다. 산장 주인과 관계되는 사람이 일종의 포장마차 장사를 하는 것이란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우리는 일행 몇 명과. 고량주 한 병과 석쇠구이 불고기 한 접시를 시켰는데 중국식 요리법인지 고기 가 다 익어 가는데 난데없이 식용유 같은 것을 고기의 양면에 흠뻑 바르더니 우리가 말릴 사이도 없이 다시 불에 올려놓는다. 전기불이 있으나 희미해서 연기와 그을음에 고기가 익었는지,구워졌는지 알수가 없다. 백두산 쇠고기 석쇠구이를 안주로 일행 세분과 같이 이름 모른 고량주 두어잔 마시니 취기가 오른다.시간이 밤10시가 넘어니 산 기온도 뚝 떨어져 쌀쌀하다. 이렇게 둘째 날 밤이 깊어만 간다.
그러나 내일 새벽 3시 기상을 위해 잠자리로가 잠을 청했다.
7월 15일(셋째날)
새벽 3시 30분 쯤 깨어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니 비가 오고 있어서 마음이 조금 심란해 진다. 출발전 컵라면을 하나씩 주는데 별 생각이 없어서 그냥 지나친다. 아침 점심용으로 1인당 도시락 두개를 준다 배낭속에 집어 넣고 비가오니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 배정된 미니버스를 타고 5호 경계비로 오르는 입구 주차장으로 향한다. 가는중에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여 한치 앞을 볼수가 없다 찐짜 마음이 심란하다. 어렵게 왔는데 백두산 천지를 볼것인지 못볼 것인지, 못 보며는 가을에 다시와야 할 것인지,차라리 어제는 날씨가 좋았는데 어제 올랐으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차는 30분을 달려 멈추어서 내렸는데 조그만 주차장이고 입구에 초소 같은 것이 있다. 여기가 백두산 산행 들머리인 것같다 현지의 백두산 전문 가이드가 합류하고 새벽 5시 경 줄을 지어 출발하는데 일기가 불순하고 비바람은 불고 안개는 자욱하여 사방을 둘러바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단지 앞 사람의 비옷만 보일뿐.
올라가는 길은 전부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주차장에서 북한과 중국의 경계선 5호 경계비까지 1300여 돌계단을 40분 정도 올라간다. 중국의 풍부한 인력으로 돌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드디어 한치 앞을 보이지 않은 가운데 안개비와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가운데에서도 5호 경계비에 오르니 능선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안개비와 바람이 얼굴에 감긴다. 천지는 물론 10m의 전방도 보이지 않고 안경에 맺힌 빗방울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보니 비바람은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5호경계비로 한쪽은 북한. 다른쪽은 중국. 경계표시는 2~3m정도 되는 녹슬은 철조망을 세워 놓고 경계를 표시한다. 그러나 올라 왔으니 기념으로 5호경계석을 배경으로 한컷 누렀다. 바람이 세차계 불어서 모양세가 엉망이다
( 백두산5호경계비앞 안개와 바람때문에 한치앞이 안보임)
우리 일행이 54명중 일부 대원이 내려 갈까 말까하는 대원도 있는 것 같다 천지를 볼 가망이 없고 체력에 자신이 없는 어른과 어린이 몇이 종주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니 인솔자가 앞으로 나서며 거의 일방적으로 통고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이드인 윤대장이 오늘 여기에 여러분과 함께 있으므로 종주 포기자는 1명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그 한마디에 상황은 정리되고 가이드를 포함한 일행 60여명 모두가 다시 출발한다. 대단한 카리즈마형인 사람이다.
사방은 보이지 않고 무조건 앞사람만 따라서 가고 있다. 우리가 능선으로 가고 있으니 우측편은 천지 같은대, 약간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이어 지는데 비탈기로 가는 같다 가다가 잠시 서있는대 천지에서 불어오는 안개 바람이 얼마나 센지 날아갈 것 같다 초속 30~40m는 되는 것 같다.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질 아니하고 앞사람 배낭만 쳐다보면서 안개비와 긴장감으로 마천봉 봉우리와 청석봉은 언제 지나쳤는지도 모르게 길은 다시 너덜길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길은 돌밭으로서 좋지 않고 비와와서 대단히 미끄럽다.나중에 알고보니 여기가 청석봉에서 내려오는길 같다. 돌길을 한참 내려오니 아침 9시 가까이 되어서 천지물이 넘쳐흘러 가는 한허 계곡에 내려서서 아침 도시락을 풀 수 있었다. 물은 손을 담그지 못할정도로 물이차다 차디찬 천지물이 흐르는 계곡 바위에 걸터앉아서 천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도시락 밥은 좁쌀을 곁들인 조밥이고 반찬을 내용이 부실하다 . 계곡에서 바위에 걸터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지금은 비는 오지 않고 안개만이 자욱하고, 안개가 잠시3~4초간 걷히니 산허리가 조금 보이다가 다시 안개로 묻히니 일행전부가 탄성을 지른다, 그렇게도 보고픈 산이 아릴런가
이제 아침을 먹고 쉬었으니 가야한다 내리막으로 한시간 이상을 내려왔으니 중국 쪽 봉우리 중 가장 높다는 백운봉(2,662미터) 까지는 최소 2시간 이상을 다시 올라야 한다. 안개로 청석봉을 보지 못해서 아쉽다
(녹명봉에서 백두산 임해를 배경으로)
백운봉 능선만 올라서면 오늘 종주의 난코스는 끝이고 이 후에는 완만한 능선길이 계속된단다. 천지물을 병에 담아 백운봉을 향해 천천히 오르는데 날씨가 점차 밝아지는 것 같으며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한다. 바람은 5호경계비에서는 몸을 못가눌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지금은 약간의 미풍만이 있을 뿐이다. 안개가 산능선을 넘고 지나가면 다시 뒤의 안개가 넘어 오고, 백운봉 오른는 길은 시야가 점점 넓어지면서 주변의 새파란 초원에 조그마한 이름모른 꽃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정말로 환상적이다. 2시간 남짓 올라서 백운봉 아래의 안부에 도착하니 시야가 점점 더 넓어 지면서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주변 경관이 조금씩 보인다 백운봉 정상밑 안부의 꽃밭에서 사진도 몇컷 찌고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휴식을 취한 다음 백운봉밑 능선으로 비탈길을 가고 있는데 먼저 도착한 팀원들이 빨리 와서 천지가 보인다면서 능선에서 소리를 친다. 우리는 급한 마음에 뛰었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천지가 우리를 거부하지 않고 어서 오라는 것이다. 천지 전체가 보이지 않고 일부만 보인다 일부도 금방 보였다가 안개가와서 덮고 반복한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천지를 볼수 있다는 것이 .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 백운봉 앞 초원지대에서 )
여기서 한참동안 천지는 보고 천지를 사진으로 보았던, TV로 보았던 그 천지 보다 실제로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물 색깔도 동해바다의 그것처럼 맑고 푸른 하늘색이다. 맑게 개이기 시작하는 하늘과 천지의 색깔이 거의 똑같아 보인다. 천지에 취해 능선에 한참 앉아 있다가 서서히 이동하기로 했다. 조금 가서 금병봉(2,603미터) 아래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했다. 천지를 바라 보면서 도시락을 먹고 고량주 한잔하는 그 뿌듯한 마음 도전 성취감에 이 기분은 어디에 비할바가 못된다. 새벽에 빗속을 출발할 때는 천지를 볼수 있게 해달고 기대는 했지만은. 백두산 신령님이 보우하사. . 우리에게 행운을 주신 것이다. . . .
(백운봉 올라가다가 올라온길을 내려다봄)
가는길 오른쪽은 천지요, 왼쪽은 구릉지로서 저멀리 백두산 자연의 임해가 끝없이 펼쳐지고 한없이 넓고 넓은 푸른 초원, 낮은 구릉지엔 7월 중순인데도 겨울에 쌓인 눈들이 아직까지 녹지 않고 군데 군데 하얗케 쌓여 있다
한참을 내려가니 어디선가 우클렐레와 하모니카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고 천지 보기가 다소 시들해진 우리 일행은 초원 능선에 자리를 잡았다 초원이 오스트리아 사운드오브뮤직에 나오는 초원 같고 우리가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누군가가 에델바이스를 신청 했고 윤대장의 연주가 시작된다.
넓은 초원 야생화 꽃밭에 누워서 쉬고 있는 사람 , 끼리끼리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사람, 새벽 다섯시부터 비를 맞으며 7~8시간을 산행을 했으니 그 순간 마냥 앉아 있고 싶었다. 그 노래가 나왔던 영화 속의 알프스보다도 지금 이 곳이 훨씬 아름답고 좋았기 때문이다. 긴장해야 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날씨를 뚫고 나와서 이 기분 좋은 햇살 속에 앉아 있었기에 더욱 그랬었던 것 같다.
여기서부터의 하산 길은 아주 순한 초원길이다. 색색의 복장으로 줄을지어 내려가는 대원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40분 쯤 내려가니 우측으로 장백 폭포의 전경이 들어온다. 몇 년 전 청량음료 광고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로이다. 힘차게 떨어지는 장백 폭포의 물줄기가 시원해 보이고, 여름장마철이라 수량이 많은 것 같다. 여기서 폭포를 배경을 사진 몇 장을 찍고. 조금 더 내려가니 옥벽폭포가 좌로 보인다. 북사면 쪽의 잔설들이 녹아 내려서 작은 개울이 되더니 군데군데의 그 것들이 모여 생긴 폭포인 것 같았다.
눈에 빤히 보이는 호텔까지 1시간이면 내려갈 것 같더니 두 시간은 족히 걸려서야 호텔 인근의 소천지에 도착했다. 이 곳도 관광 명소인 것 같은데 12시간의 산행에 피곤해진 우리 팀의 눈에는 그저 물 맑은 작은 호수일 뿐이다.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4성급이며 장백폭포 까지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호텔 마당에는 등소평이 1983년에 이 호텔에 한차례 머물며 “장백산에 오르지 않으면 평생 유감이로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설명하는 석비가 있다.
샤워를 하고 내려오니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중식과 한식이 섞인 뷔페식이다. 평양에서 왔다는 공연밴드의 아가씨들이 식당에서 안내를 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식사가 시작되자 우리 가요와 북한 가요를 번갈아 부르며
약 30분 정도 공연을 한다. 기타, 드럼, 오르갠의 간단한 구성이고 연주의 기교는 단순하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에 박수가 많이 나온다.
식사가 거의 끝나고 고량주 한잔이 얼큰해 질 무렵 다른 일행은 전부 각자 숙소로 돌아가고 윤대장이 우리의 테이블로 온다 우리 일행 두세사람과 술이 오가니 길어진다 북한아가씨들이 홀을 정리한다 우리들 때문에 마무리를 못짖는 것 같다 윤대장이 자리를 옮기자고 한다 홀을 나와 옆방 룸으로 옮겼다 윤대장이 북한아가씨를 불어드니 맥주와 안주를 시킨다.여기서 맥주 한잔을 먹어며 윤대장의 자랑이 늘어진다. 시간이 쾌 흘러 내일 장백폭포를 통하여 달문으로 천지물가에 갈려면 새벽4시까지 호텔앞으로 나와야 하니 일찍쉬어야 하겠기에 마무리를 하고 일어선다.
7월 16일(넷째날)
아침 4시에 일어나니 구름한점 없이 청명하다. 백두산의 천지 주변은 보통 오전에는 흐리고 비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데 이렇게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쨍쨍한 경우는 일년에 며칠 없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란다.
호텔에서 장백폭포까지 차로 5분 걸어서 30분 거리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천지물가까지 걸어서 가야한다 시간은 1시간30분 돌계단 900여개를 거쳐야 한다. 주차장에서 100미터정도가니 노천온천에서 나오는 물로 계란을 삼고 있다. 계란집 주인도 관광객을 위해 아침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있다. 온천물의 온도는 섭씨 83도 계란을 넣으면 금방 삼긴다. 일단은 계란은 내려올때 사먹기로하고 장백폭포쪽으로 올라갔다. 어제의 산행 여독이 안풀려서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차다. 장백폭포를 바로옆에서 보니 더욱더 장관이다 900여개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니 천지물이 흐르는 개울이 나오고 양쪽으로 깍아지른 듯한 졀벽이다. 주변은 푸른 초원이다 수목한계선 위에 있는지라 나무는 한그루도 없다. 한10분더 가니 천지물가다 아침이른 시간(오전 5시30분)이라 여명이 아직 남아 있다. 물가 입구에는 관광객을 위한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있다 컵라면과 커피등을 판다 물가에 가서 손을 넣어보니 물이 차거워 손이 져린다 기념으로 준비해간 팻트병에 천지물을 받았다. 천지에서 나타난다는 괴물을 만들어서 물가에 세워 두었다.
(장백폭포를 지나 천지물가를 가는도중에-- 여기가 달문임)
(천지 물가 천지 돌표시석 앞에서)
그리고 천치유념(天地留念) 이라고쓴 돌을 세워 놓았는데 관광객이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중국 군인 복장을 한사람이 이돌을 배경으로 사진 한번찍는데 우리돈 천원을 받는다 날 도둑이다. 이 돈은 공식으로 받는 돈이 아닌 자기들 잡수입이 될 것 같다 관광객 대부분이 한번씩 찍을 터인데 엄청난 돈이다.
(장백폭포 앞에서)
내려오면서 폭포 바로 앞에서 사진 한컷 찍고 노천온천 면적은 20~30평정도 온천물이 보글 보글 여기 저기서 올라오고 김이 모락 모락나면서 흘러내린다 여기에 관을 연결시켜 호텔에 온천수를 공급하는 것 같다 조금 내려오면 온천물로 계란 을 삶아 파는 곳이 있었는데 우리 돈 천원에 4개를 주는 계란은 크기는 작았지만 맛은 대단했다. 온천물의 작용인지 노른자부터 익는단다. 껍질을 벗길 수 없을 정도로 흰자는 반숙상태이라 조금만 벗기고 후루룩 들이마시다 보면 익어있는 노른자까지 입으로 들어온다. 그 맛이 상당히 고소하다. 그리고 거기서 백두산 화산석으로 만든 발뒷꿈치를 반질반질하게 문지러는 돌을 한국가면 기념으로 나누어줄려고 몇게 샀다. 주차장에 오니 일행중 내려오지 않은 사람이 있어 기다렸다 같이 차를 타고 가야한다 먼저내려온 송파구에서 혼자 오신 60대중반의 노신사 한분과 여자일행 한분이 술을 드시기에 합류했다 술은 양주, 안주는 백두산 천지에서 잡은 산천어 회, 야채는 천지에 올라가다가 채취한 곰취나물, 곰취나물은 올라는 도중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큰 것은 호박잎 만큼 크다. 천지의 산천어 회와 곰취나물에 술을 한잔하니 기분이 묘하다. 음식점 주인장은 백두산 곰취나물은 많이 먹으면 독이 있기 때문에 좋지 안타며 곰취를 채취해서 먹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나는 호텔로 돌아와서 땀을 흘렸으니 씻고 떠날 준비를 하고 식당으로 가니 천지물가에까지 가지 않은 사람은 식사가 거의다 끝나고 우리들만 남았다, 식사를 간단히 하고 짐을 챙겨서 버스에 올라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호텔을 떠나는데 칠순이 넘어 보이는 노부부(호텔운영자)와 종업원들이 우리가 버스에 탈 때부터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호텔의 운영자가 재일교포라고 어제 가이드가 설명했는데 아마 그들 부부인 듯 하다.
버스는 연길로 향한다. 중간에 묘향산 약방이라는 북한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관광 상점을 잠깐 들렸는데 판매물품의 종류와 주변의 그림 등이 베트남 여행시 북한에서 운영하는 상점에 들렸을때와 비슷하다. 가게의 위치는 시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길옆 외딴집을 지어서 운영하고 있다. 시내에는 집값이 비싸서 그러한 것 같다. 판매 약품은 주로 청심환, 사향 등 몇가지 만 팔고 있다 ,
연길에 도착해서는 일단 점심식사를 한식집에서 솔 냉면과 기타 몇 가지의 한식요리로 해결하고 우리에게 해란강, 일송정, 윤동주로 잘 알려진 용정으로 향한다.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해란강은 다리위로 건너며 보니 우리나라 중랑천 정도의 크기다., 일송정은 걸어서 한시간거리로 올라가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보는데 높지 않은 산 꼭대기에 소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보인다, 윤동주가 다녔다는 대성중학교는 학교 안에 마련된 기념관에 들러서 사진으로 보게 되는데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우리 사회교과서에서 많이 보았으니). 모든 사람들이 날씨도 덥고, 백두산 산행과 장시간 버스를 타서 피곤하고 해서 그런지 별로 흥미를 느끼지를 못한다. 그저 우리의 역사 속에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의미가 있는 장소를 눈으로 확인하는 정도다.
( 연길 대성중학교 옛터에서)
또 곰 농장이라는 곳을 들러 사육되는 반달곰을 구경하고 여기에서 사육되는 곰의 숫자 3,000마리가 된다한다. 웅담관련 약재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는데 듣는둥 마는둥 으레이 장사속으로 약을 팔겠지 하며, 곰 쓸개즙을 쪼그만 잔으로 한잔씩 돌린다. 마시니 쓰다. 농장 입구 그림간판에 “곰들의 천국”이라고 써있다 여기는 곰들의 천국이 아니라 곰을 좁은 공간에 가두어 더운 날씨에 숨을 헐떡이게 해 놓고 못난 인간들을 위해서 쓸개 액까지 강제로 채취하면서 곰들의 천국이라니. “곰들의 지옥”이 훨씬 실제와 가까운 표현일 것 같다. . . .
시간이 남아 다시 연길로 돌아와 받았던 발 맛사지는 해남도 및 태국의 전통 맛사지 보다는 조금 시원함이 덜했지만 백두산 종주 산행으로 피곤한 다리를 풀어주는 데에는 다소 도움이 되었고 가격은 그런대로 적당했다(1인당 한화15,000원)
저녁은 다시 연길의 북한 공연단이 있는 한식집(해당화 주점)에서 하게 된다. 마지막 밤이라 분위기가 시끌벅적하다. 그동안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로 옮겨 다니며 한잔씩 권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고량주와 양주를 두세잔 마셨다. 이 식당도 북한 아가씨들이 음식을 서빙하고 오르간,기타,드럼반주에 맞추어 북한가요 몇 곡을 부른다 나도 노래부르는 모습을 카메라에 몇 컷 담았다. 사람들은 식당에서 파는 꽃을 사서 아가씨들한테 선물한다 꽃을 주면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다. 꽃가격은 2~3천원 하는 것 같다.꽃은 조화로서 선물받은 것을 다시 활용하는 것 같다.
(연길 해당화 주점 식당에서 북한여성의 노래하는 모습)
이렇게 4박 5일의 민족의 성산 백두산의 초원과 들꽃, 천지를 굽어보며 서백두에서 북백두까지 천지의 절반을 돌아가는 13㎞의 백두산 외륜봉 종주 산행 및 여행은 막을 내린다. 그 몇일 동안에 듣고, 보고, 느꼈던 모든 것들은 잊혀지지 않을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아름다운 산행 및 여행이었다.
2 0 0 5 년 10 월
백두산 산행의 감회를 되새기며~~~~~~권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