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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many a poor immortal soul have I met well-nigh crushed and smothered under its load, creeping down the road of life, pushing before it a barn seventy-five feet by forty, its Augean stables never cleansed, and one hundred acres of land, tillage, mowing, pasture, and woodlot! The portionless, who struggle with no such unnecessary inherited encumbrances, find it labor enough to subdue and cultivate a few cubic feet of flesh.
But men labor under a mistake. The better part of the man is soon plowed into the soil for compost. By a seeming fate, commonly called necessity, they are employed, as it says in an old book, laying up treasures which moth and rust will corrupt and thieves break through and steal. It is a fool's life, as they will find when they get to the end of it, if not before. It is said that Deucalion and Pyrrha created men by throwing stones over their heads behind them:—
Inde genus durum sumus, experiensque laborum, Et documenta damus qua simus origine nati.
Or, as Raleigh rhymes it in his sonorous way,—
"From thence our kind hard-hearted is, enduring pain and care,
Approving that our bodies of a stony nature are."
불멸의 영혼을 지닌 가련한 사람들이 등에 진 짐의 무게에 눌려 깔리다시피 한 채, 길이 75피트, 폭 40피트의 곡식창과와,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 더럽기 짝이 없는 외양간과, 100에이커나 되는 토지와 밭, 목장과 숲을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 힘든 인생의 길을 걷는 것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유산을 물려받지 않아 그런 불필요한 짐과 싸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자그마한 육신 하나의 욕구를 가꾸는 데도 힘겨워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릇된 생각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육신은 조만간에 땅에 묻혀 퇴비로 변한다. 사람들은 흔히 필요성이라 불리는 거짓 운명의 말을 듣고는 한 옛날 책의 말처럼 좀이 파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 갈 재물을 모으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인생이 끝날 무렵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자의 인생이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는 머리 뒤로 돌을 던져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에 관한 옛 시를 월터 롤리 경은 유창은 운율로 다음과 같이 옮겼다.
"그리하여 인류는 돌 같은 심장을 갖게 되어 근심 걱정을 견디며,인간의 육체 또한 돌의 성질을 띠게 되었으니."
So much for a blind obedience to a blundering oracle, throwing the stones over their heads behind them, and not seeing where they fell.
Most men, even in this comparatively free country, through mere ignorance and mistake, are so occupied with the factitious cares and superfluously coarse labors of life that its finer fruits cannot be plucked by them. Their fingers, from excessive toil, are too clumsy and tremble too much for that.
어처구니없는 신탁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여 머리 뒤로 돌을 던지고 그 돌이 어디에 떨어지는지도 보지 못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만 얘기하기로 하자.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은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았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보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노동으로 투박해진 그들의 열 손가락은 그 열매를 딸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것이다. 사실, 노동하는 사람은 참다운 결백성을 매일매일 유지할 여유가 없다. 그는 정정당당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여유가 없는데, 만약 그렇게 하려 들다가는 그의 노동력은 시장가치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Actually, the laboring man has not leisure for a true integrity day by day; he cannot afford to sustain the manliest relations to men; his labor would be depreciated in the market. He has no time to be anything but a machine. How can he remember well his ignorance—which his growth requires—who has so often to use his knowledge? We should feed and clothe him gratuitously sometimes, and recruit him with our cordials, before we judge of him. The finest qualities of our nature, like the bloom on fruits, can be preserved only by the most delicate handling. Yet we do not treat ourselves nor one another thus tenderly.
노동자는 단순한 기계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될 시간이 없다. 인간이 향상하려면 자신의 무식을 항상 기억해야 하는데, 자기가 아는 바를 수시로 사용해야만 하는 그가 어떻게 항상 자신의 무식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를 평가하기 전에 그에게 가끔 무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우리의 강장제로 그의 기운을 북돋아주어야 하겠다. 인간성의 가장 훌륭한 면들은 마치 과일 껍질에 붙어 있는 과분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보존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부드럽게 다루지는 않는다.
Some of you, we all know, are poor, find it hard to live, are sometimes, as it were, gasping for breath. I have no doubt that some of you who read this book are unable to pay for all the dinners which you have actually eaten, or for the coats and shoes which are fast wearing or are already worn out, and have come to this page to spend borrowed or stolen time, robbing your creditors of an hour. It is very evident what mean and sneaking lives many of you live, for my sight has been whetted by experience; always on the limits, trying to get into business and trying to get out of debt, a very ancient slough, called by the Latins aes alienum, another's brass, for some of their coins were made of brass; still living, and dying, and buried by this other's brass; always promising to pay, promising to pay, tomorrow, and dying today, insolvent; seeking to curry favor, to get custom, by how many modes, only not state-prison offenses;
여러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가난 때문에 인생살이가 쉽지 않아서 때로는 숨이 차 헐떡거린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이미 끝내버린 식사대를 다 지불하지 못하고 있고, 입고 있는 옷이나 구두가 다 해졌는데도 그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 이 책도 빚쟁이로부터 빌리거나 훔친 시간으로 읽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얼마나 누추하고 비루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는 경험에 의해 날카로워진 나의 눈에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인다. 여러분은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고 빚을 청산하려고 노력하지만 은행에서 빌린 돈은 항상 대부 상한선까지 와 있다. 빚이란 태곳적부터 있는 진흙수렁인데, 놋쇠로 돈을 만들어 썼던 로마 사람들은 이것을 "남의 놋쇠"라고 불렀다. 여러분은 살아 있기는 하지만 이 "남의 놋쇠"에 묻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며 항상 빚을 갚겠다고, 내일은 꼭 갚겠다고 약속하지만 끝내 갚지 못하고 오늘 죽는 신세이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갖은 애를 쓰며, 형무소에 갈 죄만 빼놓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고객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lying, flattering, voting, contracting yourselves into a nutshell of civility or dilating into an atmosphere of thin and vaporous generosity, that you may persuade your neighbor to let you make his shoes, or his hat, or his coat, or his carriage, or import his groceries for him; making yourselves sick, that you may lay up something against a sick day, something to be tucked away in an old chest, or in a stocking behind the plastering, or, more safely, in the brick bank; no matter where, no matter how much or how little.
여러분은 거짓말하고, 아첨하고, 선거 때는 한 표를 던져주고, 스스로를 공손의 표본으로 만들며, 공기처럼 엷은 너그러움의 분위기 속에 자신을 확산시키는 등 어떻게 해서든지 이웃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의 구두와 모자, 외투와 마차를 만드는 일감을 맡거나 그들의 식품과 잡화를 수입하는 일을 맡으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여러분들은 병들 때를 대비하여 돈을 벌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다. 그 돈을 보관활 장소가 낡은 장롱이든, 벽 뒤에 숨겨 둔 양말짝이든, 또는 보다 안전한 벽돌로 지은 은행이든 관계없으며, 금액도 크든 작든 관계없다. 그러나 돈을 벌려고 너무나 무리를 한 결과 끝내 여러분은 병이 들고 마는 것이다.
I sometimes wonder that we can be so frivolous, I may almost say, as to attend to the gross but somewhat foreign form of servitude called Negro Slavery, there are so many keen and subtle masters that enslave both North and South. It is hard to have a Southern overseer; it is worse to have a Northern one; but worst of all when you are the slave-driver of yourself.
때때로 나는 우리 미국인이 흑인노예제도라고 하는 야비하고 외래적인 제도에 빠져 있을 만큼 천박한 국민인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지금 남부와 북부에는 인간을 노예로 만들려고 눈을 번뜩이는 악랄한 노예주들이 수없이 만다. 남부의 노예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북부의 노예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노예감독일 때이다.
Talk of a divinity in man! Look at the teamster on the highway, wending to market by day or night; does any divinity stir within him? His highest duty to fodder and water his horses! What is his destiny to him compared with the shipping interests? Does not he drive for Squire Make-a-stir? How godlike, how immortal, is he? See how he cowers and sneaks, how vaguely all the day he fears, not being immortal nor divine, but the slave and prisoner of his own opinion of himself, a fame won by his own deeds.
인간에게는 신성이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밤낮으로 장터를 돌아다니는 저 짐마차꾼을 보라! 그의 몸 안에서 조금이라도 신성이 작동하고 있는가? 그의 가장 큰 의무는 자기 말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다. 그가 챙겨야 할 짐마차의 운송대금에 비교할 때 그의 운명은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의 신성과 불멸성은 어느 정도인가? 그가 하루 종일 움추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막연한 불안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보라. 불멸이나 신성은커녕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즉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서 얻어지 평판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다.
Public opinion is a weak tyrant compared with our own private opinion. What a man thinks of himself, that it is which determines, or rather indicates, his fate. Self-emancipation even in the West Indian provinces of the fancy and imagination—what Wilberforce is there to bring that about? Think, also, of the ladies of the land weaving toilet cushions against the last day, not to betray too green an interest in their fates! As if you could kill time without injuring eternity.
여론, 즉 대중의 평가는 우리 자신에 의한 자체 평가에 비교하면 대단한 폭군이 되지 못한다. 자기가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가 곧 그의 생애를 결정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그것에 대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윌버포스는 서인도제도의 노예들을 해방시켰지만 정신의 세계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을 해방시킬 그와 같은 인물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신의 운명에 너무 생생한 관심을 나타내지 않기 위하여 마지막 날까지 자수 방석이나 짜고 있는 이 나라의 부인네들을 생각해보라! 마치 영원을 해치지 않고도 시간을 죽일 수 있다는 태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