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관
로마서는 바울 신학의 집약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서신이어서 많은 이들이 로마서 해석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로마서의 저자는 바울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 시기는 대체적으로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A.D57년경, 고린도 교회에 있을 때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수신자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로마서 15:17-29절을 보면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습니다.(19) 이제 바울은 서바나 지역 곧 스페인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23,28) 그는 서바나로 가기 위해 그동안 여러 번 로마를 방문하고자 하였습니다. 로마교회를 보기를 원하는 것은 그들에게 충만한 축복을 나누어주어 교회를 견고케 하기 위함입니다.(1:11,15:29) 그리고 로마 동부의 복음화를 위해 안디옥 교회가 전초기지의 역할을 감당해 주었던 것처럼 로마교회가 서바나 복음화의 전초기지가 되어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단순히 교리를 전개한 문서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통해 교리를 형성하고 또 그 형성된 교리의 체계로 로마서를 접근합니다. 물론 바울이 교리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교리 형성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의 주제적인 내용은 역사에서의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를 경영하시는 의의 역사를 어떻게 진행해 오셨고 어떻게 진행시켜 가실 것인가? 그리고 그 의의 역사를 어떻게 완결시키실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는 역사서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익히 들어 왔던 교리에 얽매이지 말고 역사를 말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로마서를 다시 보았으면 합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의는 영세 전부터 감취어져 왔던 것인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아들 안에서) 나타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천하만민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케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합해 보면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 아들 안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의”라고 주제를 정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서 이 의를 나타내신 것은 이제 천하만민,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들 안에서 모든 의의 역사를 완성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들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통일시키시기 위함입니다. 모든 족속을 제자삼는 새로운 경영을 여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아야만 교회가 지금 하나님의 구원경영에 동참한다는 교회의 위치와 사명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로마서의 구조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질 수 있겠는데 1장으로 8장까지 해서 이제까지의 하나님의 의의 경영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장으로 11장까지 해서 앞으로 이 의의 역사가 어떻게 완결될 것인지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장으로 15장13절까지는 이제 나타난 의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고, 끝으로 15장 14절 이후로 앞으로의 자신의 선교계획을 밝히고 문안과 축복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1장부터 8장까지를 한 번 더 나누어 본다면 3장 20절까지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까지 해서 그리스도 이전의 하나님의 의의 경영과 인간의 불의를 이야기하고 3장 21절 이후로는 새롭게 나타난 의의 경영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비교한다.
두 서신은 동일하게 교리적인 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지만, 교리를 다루는 관점은 다르다. 즉 갈라디아서는 한 하나님에 대한 성도들의 두 신분을 말하고 있다. 옛 신분과 새 신분, 또는 종의 신분과 아들의 신분이다. 옛 신분은 율법 아래 있는 종의 신분을 말하고 있고, 새 신분은 율법에서 벗어난 새 아들의 신분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의의 경영이 새롭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옛 신분(율법 아래 종)으로 하나님의 의의 경영에 동참하지 말고, 새 신분(율법에서 벗어난 아들)으로 하나님의 의의 경영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새 신분을 가진 자들에게 여전히 엣 신분으로 하나님과 관계하지 말라는 것이다.
로마서는 한 성도가 세상의 두 권세 중에 어디에 속해있느냐를 말하고 있다. 즉 세상의 권세와 하늘의 권세, 또는 하나님의 땅의 경영(옛 의의 경영)과 하늘의 경영(새 의의 경영) 중에 어디에 속해 있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표현을 하자면 땅에 속한 나라에서 하나님을 관계하던 의와 하늘에 속한 나라에서 하나님을 관계하는 의 중에 어디에 속해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의의 경영(하늘에 속한 의)에 연합하여 하늘에 속한 자가되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갈라시아서 처음에 바울 자신을 소개하는 것과 로마서 처음에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다르다. 갈라디아서는 어디에서 낳느냐? 는 것이며, 로마서는 누구의 종, 누구에게 속하였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보 바울은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는 종이라 소개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아들의 신분이기 때문에 종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는 것이다.
* 의와 불의에 대하여(갈라디아서와 로마서 비교)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하나님의 의의 경영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말하는 성경이다. 즉 옛 의의 경연과 새 의의 경영을 말하면서, 새 의의 경영에 속할 것을 말하고 있다. 새 의의 경영에 속하는 것이 의이고, 새 의에 속하지 않는 것은 불의인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경우는 다분히 유대인들을 향하는 복음이다. 즉 하나님의 옛 의의 경영은 가나안 땅과 율법에 속한 의의 경영이다. 율법의 속한 의는 자유롭지 못한 종의 의이다. 하나님과 한 집에 거하지 못하는 종의 의이다.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상속 할 수 없는 종의 의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새로운 의의 경영이 왔는데, 이 새 의는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는 의이다. 하나님과 한 집에 거하는 의이다.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상속하게 하는 의이다. 즉 옛 의를 고집한다면 여전히 하나님과 종으로 만나는 것이다. 때문에 새로운 의에 대해서는 불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옛 의(율법)를 버리고, 새 의(아들)에 속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거절하면 여전히 옛 의에 속하는 자는 불의한 것이어서 새 의와 새 나라와 새 관게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로마서의 경우에는 다분히 이방인을 향한 복음이다. 즉 하나님의 옛 의의 경영은 한 사람(아브라함)과 한 민족(이스라엘), 한 장소(가나안 땅)에 국한되었다. 즉 한 나라와 한 나라 안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 그들의 구원, 그들의 왕으로 통치 하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하늘과 땅의 주인과 왕의 보좌를 아들에게 맡기시고, 아들의 나라를 세우심으로 새로운 의의 경영을 이루어 가신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을 왕 삼고 그의 권세 아래 복종되는 모든 나라와 사람을 백성 삼는 나라이며, 그들에게 부활과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다. 이 나라는 세상 그 어떤 나라보다도 권세 있는 나라이며, 그 왕은 세상 어떤 왕과도 비교할 수 없는 권세이 왕이다. 그러니 새 나라의 왕을 영접하여 그에게 복종됨으로 그 권세 아래 속하는 것이 의이고, 그 왕을 거절하고 그 나라와 권세에 복종되지 않는 것은 불의한 것이다. 의에는 구원과 생명이 있지만, 불의에는 심판이 있다.
즉 의라는 것은 하나님께 연합하는 것이다.(로마서에서는 믿음) 이 동일한 전재 아래에 각 시대마다 요구하는 의의 요구가 다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의의 요구가 나타난다. 이에 연합함이 그 시대에 맞는 의이다. 그러나 새 시대가 왔음에도 여전히 옛 시대의 의를 나타내고 고집한다면 새 시대에는 불의하다고 여김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