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전통 신발은 형태에 따라 '화(靴)'와 '이(履)'로 나뉜다. 북방에서 유래된 '화'는 장화처럼 긴 신을 말한다. '이'는 목이 짧은 신의 총칭. 고무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짚신이 대세였다. 초혜(草鞋) 또는 망리(芒履)라고도 하는 짚신은 재료에 따라 이름도 다르다. 삼(麻)으로 삼은 '미투리', 왕골로 만든 왕골신, 칡덩굴로 만든 '청올치신', 부들로 만든 '부들신'이 있다. 운혜(雲鞋)와 당혜(唐鞋)는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신던 가죽신. 울은 비단으로 만들고 바닥엔 가죽을 붙였다고.
일제강점기 때 등장한 고무신은 획기적 생활용품. 땀 흡수에 약하지만 가볍고 질긴데다 방수가 뛰어나 당시로선 가장 편한 신발이었다. 남자 고무신은 갖신을, 여성용은 당혜를 본떠 만들었다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민의 발로 사랑 받았지만 요즘은 구경하기 힘들다.
베이비부머와 그 이전 세대에 '고무신'은 각별한 추억일 터. 힘겹게 살아가던 시절이었지만 따뜻함과 인정미도 함께 있었기 때문. 1968년 시조시인 장순하가 발표한 '고무신'은 이런 것들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다. '눈보라 비껴나는 / 全(전)-群(군)-街(가)-道(도) / 퍼뜩 차창으로 / 스쳐가는 인정(人情)아 / 외딴 집 섬돌에 놓인 / 하나 둘 세 켤레'. 차창을 통해 보이는 외딴 시골집, 댓돌에 놓인 고무신만 봐도 훈훈한 가족애가 느껴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법정에 출석하는 미결수에게 운동화 착용을 금지하고 고무신을 신게 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해석을 내렸다. 미결수에게도 '신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인권위의 주문. 교도소 측은 '운동화 착용이 허용되면 미결수에게 도주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도주했을 때 체포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교도 행정도 편의주의에서 벗어나 수감자의 기본권을 보호해야할 시대임을 실감케 한다.
언제부턴가 수감자들이 고무신을 신으면서 부정적 이미지도 덧씌워진 것 같다. 하지만 혹시라도 신발에 대한 불필요한 편견이 있다면 버려야 할 터. 재소자도 신고 스님도 신는 고무신처럼 신발에는 귀천이 없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