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나무, 대추, 녹두, 마늘을 넣어 푹 고아낸 지리산 토통닭죽
서울에서 온 <부부사랑>친구들이 지리산 토종닭을 먹고 싶다고 했다. 누구 한 텐가 들었는데 지리산 토종닭 맛이 작란이 아니라는 것. 나와 아내는 육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맛이 좋다는 토종닭을 어디서 알 수가 없다.
섬진강 건너 오산에 있는 사성암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보살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중산리 반냇골 토종닭이 유명하다고 하면서 반냇골로 가는 길을 자세히 가르쳐 준다. 산에서 날아다니는 닭을 옛날 방식으로 잡아 준다는 것.
▲반냇골로 가는 길
"산에서 날아다니는 닭이라니요?
"하여간 가보면 알아요.:
해서 우리는 보살님이 알려 준대로 친구들과 함께 반냇골로 차를 몰았다. 반냇골은 사성암이 있는 오산을 돌아 섬진강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토금이라는 마을을 지나 한참을 가도 동네가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었나?"
"저기 밭에 할머니한테 물어보자."
차를 세우고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할머니한테 반냇골 토종닭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우리 집인데 어째그러요?"
"토종닭을 좀 사려고요."
"오메 근디 어째서 전화도 안하고 왔단가?"
"전화번호를 몰라요. 사성암 밑 보살님에 이리고 가라고 해서 왔어요."
"그럼 조금 지다려. 하던 일 좀 끝내고 한꼬네 가게."
할머니는 퉁명하게 말 하더니 하던 일을 계속했다. 두 친구가 차에서 내려 담배를 한 대 다 피울 때까지도 할머니는 밭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호오, 할메가 뱃장이군." "저런 집 토종닭이 진짜겠지." 할머니는 한 십여분 동안 일을 하더니 밭에서 나왔다.
▲반냇골 토종닭집에는 진돗개가 11마리나 새끼를 낳아 있었다.
"할머니 집이 어디죠?"
"날 태우고 가야 혀."
걸어서 가까운 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차를 타고 가야 한단다. 두 친구 부부와 다섯 명이 타고 가던 승용차는 할머니가 타면 좌석이 부족하다. 그래서 남자들은 걸어서 가고 할머니와 친구 부인 두 명을 태우고 이렇게 할머니 집으로 차를 몰았다. 곧 나올 줄 알았던 집은 한참을 가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멀어요?"
"이자 다 왔어."
냇물을 지나고 숲 터널을 지나니 마을회관이 나오고, 반냇골 통닭집은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었다. 자동차 길이 끝나는 막다른 지점이다. 친구들이 걸어오려면 상당한 거리이다. 이거야 정말. 그런데 차에서 내린 할머니는 마당 뒤꼍에 있는 가마솥에 불을 지폈다.
▲닭은 잡지않고 불을 지펴 물부터 끓이는 할머니
"할머니 웬 불을 때지요?"
"닭 잡을라고."
"닭을 잡으려고요?"
"그래,먼저 물을 끓여야 닭털을 뜯지."
"네?"
불을 지펴 놓고 할머니는 집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할머니 집에는 마침 진돗개가 새끼를 열한 마리나 낳아놓고 있었다. 강아지들이 꼬리를 치며 방문객을 반겼다. 어미 개는 새끼들을 돌보고 있는 동안 아빠 개는 할머니를 따라 산으로 갔다.
▲솥단지에 불을 지펴 놓고 산으로 닭을 잡으러 가는 할머니. 백구가 뒤를 따라 가고 있다.
닭을 잡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솥 단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들이 그때서야 헉헉 거리며 올라왔다.
"아익 더워. 근데 닭은 어디 있지?"
"응, 가마솥에 물을 끓여 놓고 할머니가 산으로 잡으러 갔어."
"가마솥에 물을 끓여 놓고 산으로?"
잠시 후에 할머니가 닭 두 마리를 목을 비틀어 양손에 들고 내려왔다. 에궁, 기어코 살인 장면을 보네. 엄청 큰 닭이었다. 할머니는 잡아 온 닭을 펄펄 끓는 물에다 잠시 넣었다가 끄집어내서 닭털을 뽑아냈다.
"야, 진짜 오랜만에 닭털 뽑는 모습을 보는 군."
▲벌은 없고 벌통만 남아 있는 반냇골
친구들과 친구 부인들은 신기한 듯 할머니가 닭털을 뽑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닭털을 뽑아내고, 닭 발목을 자르고, 내장을 꺼내고 나서 할머니는 말끔해진 닭을 비닐봉지에 싸준다. 근처에는 벌은 없고 벌통만 숲속에 남아있다.
"엄나무, 대추, 마늘, 녹두를 넣어 솥에 푹 과서 먹어봐. 맛이 괜찮을 게야."
한 마리에 2만원씩 4만 원을 주고 닭을 건네 받았는데 닭 두 마리가 묵직하다. 놓아 먹인 산닭이라 제대로 근 모양이다. 어쩐지 닭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차를 타러 가는 데 할머니가 또 한 마디 했다.
"담에 올 땐 꼭 전화 하고 와야 혀. 내가 집이들 닭 잡아줄라고 항상 지두리고 있는 사람이 아닌께로."
"네, 할머니 잘 알겠습니다."
"하하하, 그 할머니 재미있네."
할머니에게 야단을 맞아도 웬지 싫지가 않고 더울 정감이 가는 것은 왜일가? 그것은 정직하고 시골스런 소박한 모습 때문일 것이다. 닭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아니 닭 사러 간 사람들이 병아리 길러서 잡아오나요?"
"글쎄, 그게, 말도 말아요. 할머니한테 혼나고 오는 길이요."
"할머니한테 혼나다니요."
"연락도 없이 왔다고 얼마나 혼을 내준 줄 알아. 산닭을 잡아 긇는 물에 넣어 털을 뽑아 잡아준 귀한 닭 모셔왔으니 닭죽이나 맛있게 끓여요."
"세상에나! 하여간 솥단지가 없으니 혜경이네 집에 가서 솥단지나 빌려와요."
▲이웃집에서 곹단지를 빌려와 장작불을 지펴 닭, 엄나무, 대추, 마늘, 녹두, 찹쌀을 넣고 폭 오아냈다.
개울 건너 혜경이네 집에 가서 솥단지를 빌려오고, 블록과 벽돌로 솥 걸이를 뒤꼍에 만들었다. 장작은 시안이 아빠네 집에 가서 며칠 전에 얻어다 놓았다. 우리는 반냇골 할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엄나무와 닭을 넣고 물을 펄펄 끓였다.
▲장작불이 펄펄 끓는 솥단지 주위에 모여 들어 옛날 옛 추억에 젖은 친구들
친구들과 친구 아내들은 솥단지 걸고 장작불을 지피는 모습이 신기한지 모두들 나와서 화덕 주위에 앉아 불이 토닥토닥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시골스런 풍경이었다.
"정말 옛날 생각이 나내요."
"이거야 말로 진짜로 보양식을 하는 우리 조상들 지혜야."
"불이 따뜻해서 좋네요."
친구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두 시간 정도 물이 펄펄 끓고 닭이 익어갈 즈음, 녹두, 마늘, 찹쌀, 대추를 집어넣었다.
"여보, 잘 휘저어요. 쌀이 눋지 않게."
"그건 내가 전공이지."
▲3시간 가량 푹 고아진 지리산 토종닭죽이 먹음직 스럽게 보인다.
친구들이 서로 주걱을 들고 펄펄 끓는 닭죽을 번갈아 가며 저어댔다. 그렇게 반시간 가량을 저어대니 쌀과 녹두가 다 익어 먹음직스런 닭죽이 만들어졌다.
"히야, 고것 참말로 맛있겠다!"
"침이 저절로 젤젤 흐르네!"
▲엄나무를 골라내고, 닭을 건진 다음 닭죽을 떠냈다.
먼저 엄나무를 골라서 건져내고, 다음에 닭을 건져내서 쟁반에 담았다. 푹 과진 닭죽은 냄새만 맡아도 회가 동할 정도로 고소했다. 그것은 엄나무와 대추, 녹두가 기름기를 빨아 드리고 담백한 맛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과 닭죽을 밥상에 올려놓으니 먹음직스럽고 푸짐하게 보였다. 반찬이 필요 없었다. 소금과 김치, 풋고추가 더욱 맛을 돋웠다.
"이거야 정말로 셋이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르 갔네!"
"최고야 최고!"
"야, 이거 얼마만에 먹어보는 시골 토종닭인가!"
"맛이 죽여주는 군!"
"그 할메 말이 진짜네!"
"찰라 부부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이 닭죽은 돈으로도 환산 할 수 없는 맛이야."
"우리가 닭죽을 먹나, 찰라 부부의 정성을 먹지. 하하하."
▲밥상에 오른 닭죽
▲셋이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르겠다고하며 토종닭죽을 맛나게 먹는 <부부사랑> 친구들
저마다 한 마디씩 농담을 하며 친구들은 닭죽을 맛있게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여름 보양식 이라고 하며 가마솥에 든 닭죽을 깨끗이 비워냈다. 산에서 날아다니는 토종닭을 불로 태우지 않고 끓는 물로 닭털을 뽑아서 전통방식으로 보양식을 만들어 먹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천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맛을 내주고 있다.
"다음에 가면 꼭 전화를 해야겠군. 할머니한테 혼나지 않으려면……."
"암, 그래야 하고 말고."
첫댓글 부럽습니당^^* 전 토종닭에 백숙 먹어본지가 까마득한 옛날 같네요... 오늘은 마침 외환업무부에서 모셨던 안창수선배님과 연락이 닳아 일산 풍산역 근처에 있는 강정례 할머니 흙염소집에서 탕으로 점심을했읍니다.... 흙염소하면 동광양 동막골이 최고죠!!!1 물론 선배님이 드신 날아다니는 토종닭과 걸어다니는 흙염소는 비교가 안되겠죠^^
참 ~~~~선배님 옛정을 봐서 등업좀 시켜줍쇼^^ 꾸우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