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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0 16:39 김해 대성동고분에서 국내 최초 가야시대 청동화살촉 무더기 발굴 여성 추정 순장자 머리맡에서 발견 … 일본과의 교역 산물로 추정 김해 대성동고분군 〈108호분〉에서 출토된 청동화살촉 무더기 청동 화살촉 (확대) 〈108호분〉 인골 출토양상 모식도 〈108호분〉 유구 전경 금관가야(金官伽倻) 최고지배층 묘역인 경남 김해 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호)에서 국내 최초로 청동 화살촉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박물관 북동쪽 평지 3,700㎡에 분포한 고분군 중 〈108호분〉에서 〈청동화살촉〉 30여점이 다발로 출토됐다」고 6월 10일 밝혔다. 〈청동화살촉〉은 4세기 일본의 지배자급 무덤에서만 출토되는 유물로, 수십점이 한꺼번에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지난 2011년 대성동고분군 〈88호분〉에서 5점이 나온것이 가장 많은 사례였다. 4세기 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화살촉〉은 귀족층 무덤인 〈108호분〉 무덤 주인과 나란히 배치된 부인 또는 女性 순장자로 추정되는 인골의 머리맡에서 발굴됐다. 송원영 대성동고분박물관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이번에 함께 출토된 방추차(紡錘車) 모양 석제품(石製品), 굽은옥 등을 볼때 매장자는 귀족여성으로 추정되며, 무덤 주인과 나란히 묻힌것으로 보아 부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108호분〉 무덤 주인의 경우 다량의 덩이쇠와 〈철제화살촉〉을 부장했는데 반해,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은 〈청동화살촉〉을 다량으로 함께 묻었다. 그는 『일본계 화살촉이 가야무덤에서 발견되는 것은 일본이 가야에서 나온 철(鐵)을 수입한 후 화살촉을 제작해 수출한 교역의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물관측은 2019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해 무덤 70여 기에서 토기, 철, 옥, 유리구슬 등 400여점의 유물을 발굴했다. 6월 3일에는 발굴 현장공개회를 통해 보존상태가 완벽에 가까운 가야귀족층 무덤 〈108호분〉과 가야무덤 최초로 문양이 새겨진 다량의 칠기(漆器)흔적 등 유물 200여점을 공개하기도 했다. https://cdnvod.yonhapnews.co.kr/yonhapnewsvod/202006/MCM20200611000003005_500M2.mp4 김해시는 『지금까지 출토된 적이 없는 사례가 많아 가야사(伽倻史) 연구는 물론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많은 도움이 될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dklim@yna.co.kr https://www.yna.co.kr/view/AKR20200610146100005?section=culture/scholarship 2020/06/03 09:00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도굴·훼손 흔적 없는 귀족무덤 발굴 108호 유구(遺構) 전경 108호 모식도 108호 청동 유물 통형동기와 청동촉 경남 김해시는 사적 제341호 〈대성동고분군〉에서 도굴 및 훼손 흔적이 거의 없는 귀족무덤이 발굴됐다고 6월 3일 밝혔다. 김해 대성동고분군박물관은 문화재청 허가와 발굴비를 지원받아 2019.12.9일부터 박물관 북동쪽 평지 3,700㎡를 대상으로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해왔다. 이번 조사에서는 나무관을 넣어 흙을 덮은 108호 목관묘(木棺墓)를 비롯해 나무판으로 공간을 만든 목곽묘(木槨墓)와 항아리 형태 토기와 시신을 함께 매장한 옹관묘(甕棺墓) 등 70여개 무덤이 확인됐다. 또 무덤 내부에서 철기(鐵器), 청동기(靑銅器), 토기(土器), 칠기(漆器)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이번에 발굴된 〈108호 묘〉 상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온전한것으로 확인됐다. 박물관 측은 『가야 무덤 90%가 일제강점기부터 도굴됐는데, 〈108호 묘〉는 유구 어깨선 일부만 훼손되고 내부는 온전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108호 묘〉는 길이 494㎝, 너비 346㎝, 깊이 60㎝ 정도로 비슷한 시기 목관묘인 〈대성동 91호〉에 비해 작은 편이다. 박물관 측은 무덤 축조시기를 출토된 토기와 철기 등을 참고해 가야중심시기인 4세기 초로 추정했다. 무덤에는 당시 실물화폐로 사용된 대형덩이쇠(10×40㎝) 40매와 동근고리큰칼, 화살촉 등 130여점 철기(鐵器), 토기 17점, 청동그릇, 玉장식 목걸이 등 200여점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108호 묘〉 경우 대성동고분군內 비슷한 시기 목곽묘 중 중소형 무덤임에도 북방대륙계 유물인 청동그릇과 倭系유물인 통형동기, 청동화살촉 등이 출토된 것은 금관가야의 국제적 위상과 교역활동이 기존 연구보다 활발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박물관 측은 큰칼 등 武器와 玉으로 된 목걸이가 출토된 것으로 미뤄 무덤 주인을 「여성 장군」또는 「귀목 무사」로 추정했다. 「부부를 나란히 한 무덤에 배치했거나 순장자를 배치한 사례가 될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108호 묘〉는 가야 무덤에서는 최초로 목곽에 옻칠을 한 칠기 흔적과 내부 문양도 출토됐다. 市 관계자는 『가야무덤 중 문양(紋樣)이 새겨진 칠기(漆器) 흔적 발굴로 가야사 연구는 물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많은 도움이 될것 같다』고 기대했다. 市와 박물관은 이날 오전 11시 발굴현장에서 발굴성과에 대한 학술자문회의를 시작으로 오후 3시께 발굴현장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 (김해=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image@yna.co.kr https://www.yna.co.kr/view/AKR20200603024300052?section=culture/scholarship 2020/05/11 15:40 가야시대 제사 유적지 첫 발굴 … 김해 유하리 유적 공개 김해 유하리 유적 경남 김해시는 5월 13일 경남도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된 〈유하리 유적〉 정밀발굴조사 현장을 일반에 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市는 〈유하리 유적〉의 국가사적 지정자료 확보를 위해 올 3월부터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화문물연구원과 함께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유하리 유적〉은 금관가야의 대표 유적인 〈양동리 고분군〉(국가사적 제454호)에 묻힌 가야인의 생활유적지로 주목받고 있다. 금관가야의 都城인 〈봉황동 유적〉(국가사적 제2호)에 버금가는 유적으로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간 발굴조사 등 관련 학술조사가 부족한 편이었다. 이번 조사결과 패각층을 비롯해 건물지 7기, 구덩이 시설 15기, 인공도랑시설 3기 등이 확인됐으며, 건물지 중 1기는 제사(祭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제사 건물지에서는 인접한 〈양동리고분군〉에서 출토한 것과 동일한 〈굽다리접시〉 등 총 55점의 유물들이 원상을 유지한 상태로 발견됐다. 특히 〈굽다리접시〉는 제사를 지내거나 포개서 보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으로 출토됐는데, 이러한 사례는 생활유적 중 처음이다. 유적에서 주로 출토되는 유물들은 넓은 나무판재 위에 놓여있었으며, 제사를 지내거나 유물 보관을 위해 의도적으로 나무 판재를 깐 것으로 보인다. 市는 무덤 출토 유물들이 원형 상태로 다량 출토됐으며, 특히 제사 추정 건물지 발굴은 가야권역 최초사례라고 설명했다. 市 관계자는 『〈유하리 유적〉의 성격 규명과 국가사적 지정을 위해 올 하반기에 관련 학술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김해=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home1223@yna.co.kr https://www.yna.co.kr/view/AKR20200511101600052?section=culture/all 2017/03/13 14:08 가야왕궁 터 실체 확인 … 김해시, 3년차 발굴 재개 가야시대 기와와 차륜형 토기 금관가야 왕궁지로 추정되는 터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기와와 바퀴모양 토기 금관가야 왕궁지 추정지에서 출토된 토기 금관가야 왕궁지로 추정되는 터에서 출토된 다양한 토기 연꽃모양 벽돌 금관가야 왕궁지로 추정되는 터에서 출토된 연꽃모양 벽돌 「가야 왕도」 경남 김해시는 옛 가야왕궁지(伽耶王宮址)를 찾기 위한 발굴조사를 3월 14일 재개한다고 13일 밝혔다. 市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3월 14일 오전 11시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 발굴조사 개토제(開土祭)를 시작으로 금관가야 왕궁지 발굴조사에 들어간다. 발굴현장은 김해시 봉황동 316 일원, 회현동 주민센터 앞이다. 2015년부터 발굴조사를 벌여온 이곳은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지리지〉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금관가야는 경남 김해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친 6가야 중 하나다. 이곳에서는 일제강점기 회현리 패총조사를 시작으로 주변 발굴조사가 60여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발굴결과, 토성(土城), 수혈주거지(竪穴住居址), 패총(貝塚) 등이 확인됐다. 2년에 걸친 발굴조사에서는 옛 관공서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도 드러났다. 당시 현장에서는 가야시대 기와, 차륜형 토기, 송풍관(送風管), 연화문전(蓮花文塼)돌 등 대형 건물지를 입증하는 유물이 출토됐다. 이밖에도 고래 척추뼈, 곡옥(曲玉) 등 유물 400여 점이 나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에서는 가야왕궁지 실체를 확인할 예정』이라며 『문헌사·고고학·지질학 등 다양한 연구와 함께 2018년 말까지 발굴작업을 벌인다』고 말했다. 市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금관가야 왕궁」 실체를 확인하려고 2015년 9월 〈가야왕궁지 학술발굴조사 업무협약〉을 했다. / (김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choi21@yna.co.kr 2017/05/01 11:47 김해여고 부근 주택 터에서 점토띠 토기 출토 김해서 확인된 초기 철기시대 집터 김해시 다가구주택 신축 터에서 확인된 초기 철기시대 집터 석실묘에서 발굴된 토기들 김해 다가구주택 신축 터에서 확인된 석실묘 김해 글씨 적힌 분청사기 출토 조선시대 우물 안에서 발견된 「金海」 글씨 등이 적힌 분청사기 김해서 발견된 조선시대 우물 터 가락로 다가구주택 신축 터에서 출토한 조선시대 우물터를 공개하고 있다 경남 김해시 가락로 김해여고 인근 다가구주택 신축터에서 점토띠 토기 등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김해시는 4월 3일부터 25일까지 가락로 다가구주택 신축터를 발굴한 결과, 『초기 철기시대 집터 1동과 구덩이시설 2기를 발견했다』고 1일 밝혔다. 이곳에서는 7세기 전반 삼국시대 석실묘 1기, 조선시대 우물 1기와 도랑 1기도 발견됐다. 발굴조사는 재단법인 강산문화연구원이 맡았다. 초기 철기시대 집터에서는 단면 삼각형 점토띠 토기가 출토됐다. 市는 「이번 집터 발견으로 이 시기 대성동 일원에 취락지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고 평가했다. 삼국시대 석실묘에서는 양호한 상태의 토기들이 나왔다. 특히 조선시대 우물 안에서는 『金海』『양산장흥고(梁山長興庫)』 글씨가 적힌 분청사기가 출토됐다. 이 분청사기(粉靑沙器)는 앞서 김해 읍성 북문지에서도 출토됐다. 市는 『좁은 면적에 양질의 유물이 쏟아진 것으로 볼때 시내 곳곳이 사실상 유물박물관』이라며 『출토된 유물보존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김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choi21@yna.co.kr 2018/05/15 11:13 김해에서 청동기시대 환호·주혈군 확인 가야국 통합·발전 단계 입증하는 중요한 유적 청동기 시대 환호(環濠)와 주혈(柱穴) 모습 경남 김해 건설공고 기숙사 부지에서 청동기시대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주위를 판 도랑 형태의 시설물 환호(環濠)와 청동기∼삼국시대 목책(木柵) 주혈군(柱穴群)이 확인됐다. 재단법인 강산문화원은 최근 학술자문위원회를 열어 김해시가 가야역사문화환경 정비사업(2단계)의 하나로 실시한 발굴성과를 공개했다. 이번에 밝혀진 환호(環濠)는 비록 좁은 면적에서 확인됐지만, 사적 제429호이자 수로왕(首露王) 탄강(誕降) 설화가 있는 구지봉(龜旨峯) 주변을 돌며, 보호하고 신성시하는 기능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강산문화원 측은 설명했다. 또 구지봉 구릉과 연결된 수로왕비릉 주차장 부지에서도 환호(環濠)가 발굴된 바 있는데, 이번에 확인·조사된 환호도 동일 성격으로 판단됐다. 동시에 주혈군(柱穴群)의 경우 일부만 발굴돼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환호 외곽의 목책과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였다. 특히 구지봉과 대성동고분군 구릉 사이 공간인 〈가야역사문화 환경정비사업(2단계)〉 부지 내에는 이번에 확인된 환호, 주혈군과 더불어 청동기시대 무덤, 주혈, 구(溝), 가야시대 논, 통일신라시대 김해 고읍성 등이 한꺼번에 확인됐다. 이에 따라 청동기시대 구간집단이 수로왕으로 대표되는 가야국(伽倻國)으로 통합·발전하는 단계를 입증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한편, 김해 건설공고 운동장 부지에서 확인됐던 가야시대 논의 자연과학분석(식물규소체 분석. plant-opal) 결과, 벼의 기둥세포 규소체가 논의 판정기준보다 최소 6배에서 최대 14배까지 많았다. 보리류 규소체도 일부 산출된 결과로 보아, 장기간에 걸쳐 보다 안정적인 논 경작을 중심으로 보리 혼작도 이뤄졌다는 점에서 금관가야(金官伽倻) 고도(古都)의 생업 및 환경을 규명할수 있을것으로 기대된다. / (김해=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b940512@yna.co.kr 2017/06/24 08:00 김해 대성동고분군, 가야사 연구 최고성과 … 「임나일본부설」 침묵 김해시 24년 발굴·국제학술회의 노력 …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추진 하늘에서 본 옛 금관가야 김해 대성동고분군 김해시가 설립한 대성동고분박물관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9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무덤은 총 304기다 경남 김해 시가지 중심부에는 구릉처럼 낮으면서도 다소 평평한 거대한 고분군이 자리잡고 있다. 56,762㎡에 걸친 이곳은 바로 옛 금관가야 지배층과 피지배층 무덤이 몰려 있던 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호)이다. 대성동고분군은 전기(前期)가야 성립과 전개는 물론 당시 사회성격, 정치구조 등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가치를 지낸다. 고인돌, 독무덤(옹관묘),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목곽묘) 등 여러 종류가 확인됐다. 금관가야 문화와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물 3,000여 점이 이곳에서 쏟아졌다. 금동관, 청동항아리, 금동제허리띠, 금동제 말갖춤새(마구馬具)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가야 지배층이 중국, 일본 등과 활발한 교역을 했음을 입증하는 운모(雲母) 장식 조각, 유리그릇 조각, 파형동기(巴形銅器) 등도 출토됐다. 이런 유물은 4세기 전후 시기 아라가야(함안군), 대가야(고령군), 신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김해시는 2003.8.29일 이 고분군 곁에 공립 〈대성동고분군박물관〉을 개관했다. 송원영 대성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대성동고분군이 발굴되면서 가야 문화사가 알려졌다. 실제 김해가 학계로부터 금관가야 옛도시로 인정받은 것도 이 고분군 덕』이라고 평가했다.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해온 일본도 〈대성동고분군〉 발굴로 입을 닫았다. 그는 『이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이 같은 시기 일본에서 나온 유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설가 최인호(1945∼2013)는 2008년 낸 《제4의 제국 가야》에서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고대사를 추적하면서도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가야는 500년 동안이나 분명히 존재했던 제4의 제국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가야 역사를 복원해 4국시대로 재구성해야만 우리 역사가 바로 설수있다. 이러한 간절한 바람이 마침내 대성동고분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추적의 첫발을 내딛게 했다』고 강조했다. 24년간 대성동고분군을 발굴한 김해시의 가야사(伽倻史) 연구활동도 빛났다. 市는 발굴작업 시작과 함께 1991년부터 중국, 일본학자 등과 함께 가야사 국제학술회의를 시작해 올해까지 23회째 이어오고 있다. 이 국제학술회의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가야사(伽倻史)를 공부한 사람은 안거친 사람이 없을 정도다. 역사학계에서는 가야를 포함한 「4국시대」 표현도 이 학술회의에서 나온 성과물이라고 밝혔다. 市는 이러한 노력과 성과를 토대로 대성동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올리는데 힘을 모으고 있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금관가야 위상을 증명한 대성동고분군 등 지역내 수많은 가야사 유적의 제대로된 연구와 복원을 위해서는 가야역사문화도시 지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야사(伽倻史)는 그동안 정부 무관심과 홀대로 잊혀진 역사로 방치됐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가야사 복원 의지를 밝힌 만큼 역사속에 당당한 가야를 부활시키는데 김해시도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 (김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choi21@yna.co.kr ● 김해 대성동고분군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10976 ● 대성동고분 박물관 http://ds.gimhae.go.kr ● 제4의 제국 書評 http://www.yes24.com/24/Goods/1984422?Acode=101
2017/08/16 17:44 가야시대 조개장식 말갖춤새, 日本 오키나와 조개류로 확인 학계 『남방문화와 금관가야 직접교류 가능성 주목』 김해 대성동 91호분에서 출토된 일본 오키나와 조개류 〈고호우라〉 김해 대성동 91호분에서 출토된 일본 오키나와 조개류 〈이모가이〉 경남 김해시는 「대성동 91호분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조개 장식 말갖춤새(馬具)가 일본 오키나와(沖繩) 인근에서 잡힌 조개류 껍데기로 확인됐다」고 16일 밝혔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4세기 〈가야시대 조개 장식 말갖춤새〉는 조개류 29점이다. 이중 20점은 오키나와 등 열대 해역에 서식하는 조개류인 일본학명 고호우라(ゴホウラ), 9점은 일본 학명 이모가이(イモガイ)[=청자고동]로 밝혀졌다. 이는 2016년말 김해를 찾은 일본 구마모토(熊本)대 기노시타 나오코(木下尙子) 교수팀과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공동연구로 확인됐다. 기노시타 교수는 오키나와産 조개류 제품으로 일본, 한국, 대만 간 교류를 연구해 온 이 분야 전문가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고호우라가 출토된 사례는 6세기 해남 송월리 〈조산고분〉에서 출토된 조개팔찌 1점뿐이다. 市 관계자는 『조개껍데기만 가져와서 실제 가공과 제작은 국내에서 한 것으로 본다. 열대 해역에 서식하는 조개류를 들여와 가공하는 등 금관가야가 남방문화와 활발하게 직접 교류한 점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 (김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choi21@yna.co.kr 미완의 제국 가야, 서동인 지음, 주류성 刊 ● 書評 http://www.yes24.com/24/goods/56690344?scode=032&OzSrank=4
2016/11/22 10:51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가야·신라 토기 440점 출토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조사 … 『금관가야 생활터전 증거』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나온 토기들 김해 봉황동 유적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삼국시대 가야와 신라의 토기가 다량 출토됐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봉황동 유적 북동쪽 평탄면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굽다리접시, 그릇 받침대, 손잡이가 달린 굽다리바리, 수레바퀴형 토기와 생활용품인 독(甕), 사발, 시루 등 토기 440여 점을 찾아냈다고 22일 밝혔다. 또 굽은옥, 유리구슬 등 장신구, 토우(土偶)와 가락바퀴, 뼈로 만든 손칼손잡이, 사슴·돼지·고래·상어 등 포유류와 어류의 뼈도 발견됐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문화층(특정시대의 문화양상을 보여주는 지층)이 확인됐고, 수혈(竪穴 구덩이)과 주거(住居)의 흔적도 드러났다. 다만 왕궁터로 판단할 수 있는 대형건물 유구(遺構 건물의 자취)나 적심(積心, 초석밑 다짐돌)은 이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전체 조사면적 5,000㎡ 중 약 30% 정도만 발굴이 이뤄진 상황이어서 대형건물터의 유무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4세기에 조성된것으로 추정되는 다소 큰 유구를 조사하고 있는데, 2017년이면 이 유구의 전체 규모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야 토기와 신라 토기가 혼재돼 나타나고, 수레바퀴형 토기와 장신구(裝身具) 같은 권위있는 계층이 사용하던 유물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봉황동 유적이 금관가야의 주요 생활터전이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해 봉황동유적은 1907년부터 60여 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돼 패총(貝塚·조개무지), 토성(土城) 등이 발견됐으나, 금관가야 왕성(王城)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만한 유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이곳이 「금관가야 도성(都城)이었다」는 내용이 없지만, 1899년 발행된 〈김해군읍지〉 고적(古蹟)조에는 『수로왕궁지는 지금의 (김해)府 內에 있다고 전해지며, 古宮址는 西門밖 호현리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금관가야(金官伽倻)는 기원 전후부터 532년까지 경남 김해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친 나라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7년 3월께 발굴조사를 재개할 예정이다. /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psh59@yna.co.kr https://www.yna.co.kr/view/AKR20161122068300005?input=1179m ● 봉황동 유적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2XXXX12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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