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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및 자료실 스크랩 역사란 무엇인가? - 김성준
청운 추천 0 조회 44 09.06.24 17: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역사란 무엇인가? 

김성준, ‘알프레드 마한의 해양력과 해양사에 관한 인식’, II절, <한국해운학회지> 제26호.


시간

우리는 ‘역사’를 보통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첫째는 ‘과거에 일어났었던 일들’, 즉 사건(Geschechen, Begebenheit)을 가리키는 용어로, 둘째는 ‘일어난 일에 대한 연구’, 즉 역사학(Geschichte)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이를 역사란 말에 내포된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이라고 지적하였다. 여기에서는 학문(Wissenschaft)의 한 분과로서 역사학을 다룰 것이므로 역사학을 두 번째 의미로 사용하기로 한다.

인문과학의 한 분과로서 역사학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다. 역사학에서 시간에 대한 관념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연구나 저서에서 시간에 대한 관념이 빠져있을 때는 우리는 이를 ‘비역사적’(nicht-geschichtlich, ungeschichtlich)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얘기하는 시간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시간을 의미하는가?

역사학이 주로 다루는 대상은 과거이기 때문에 역사학을 ‘好古的 학문’이라고 비판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역사학이, ‘객관적 역사서술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는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5)가 언명한 바와 같이, 과거에 ‘그것이 과연 어떠했는가’(wie es eigentlich gewesen ist)만을 다루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부단한 대화’라고 얘기한 카아(E. H. Carr, 1892~1982)에게 역사는 오히려 현재였다. 왜냐하면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가 정식화한 “모든 진정한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였던 카아는 “살아있는 현재적 관심만이 우리에게 하나의 가버린 사실을 연구하도록 충동하기 때문”에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의 사건과 점차적으로 출현하게 되는 미래의 목적과의 대화”라고 얘기했을 때, 카아가 염두해 두었던 것은 역사에는 미래의식이 담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사연구에서는 미래가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역사가들은 자기가 연구하는 사건이 후속 시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서술하게 되는 것이며, 이는 역사가가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바이기도 하다. 따라서 역사는 단순히 과거나 현재만이 아니라 또한 미래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학에서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불가분하게 통시적(通時的, diachronisch)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취급하는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가 단순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이 다루는 시간은 장기적 시간, 중기적 시간, 단기적 시간으로 보다 세분화 할 수 있다. 역사학에서 시간을 이와 같이 세분한 사람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이다. 브로델은 역사 속에서의 시간을 각각 지리적 시간(geographical time), 사회적 시간(social time), 개인적 시간(individual time)으로 구별하고, 지리적 시간을 장기지속(la longue duree) 또는 구조(structure), 사회적인 시간을 국면(conjuncture), 단기적 시간을 사건이라고 불렀다. 브로델이 이렇게 시간을 세분한 것은 역사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시간인데, 지금까지의 역사학이 개인에 초점을 맞춘 사건사에 치중한 나머지 사건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국면이나 구조를 등한시 해 왔던 것에 대해 비판하고 역사 속에서의 시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복구해 냄으로써 궁극적으로 구조사(l'histoire  structurelle)를 통해 전체사(l'histoire totale)를 지향하기 위함이었다. 브로델에게 역사는 “있을 수 있는 모든 역사의 총체 즉,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모든 관점과 모든 작업들의 총체였다.” 브로델은 위의 세 가지 시간 가운데 장기지속의 역사를 가장 중요시하였다. 그렇다고하여 장기지속의 구조가 역사 속에서 단독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고 위의 세 개의 시간이  중층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학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시간이며, 이 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통시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와 국면 그리고 사건이 상호 중층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역사학은 또한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한다. 역사학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한다는 면에서는 사회학과 유사하다. 그러나 사회학이 현재 사회 속의 인간을 다룬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마르크 블로끄(Marc Bloch, 1886~1944)는 역사학의 연구대상에 대해 “본래 인간(l'homme), 정확하게는 인간들(les hommes)”이라고 간결하게 언명하면서 루시앙 페브르(Lucien Febvre)의 말을 인용하여 “결코 인간이 아니라 인간사회이며, 조직되어진 집단”이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학의 대상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 즉 조직된 집단 또는 사회 내의 인간”인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은 사회 속에서 조직된 인간의 다양한 활동들, 예를 들면 정치적?경제적?문화적?사회적?사상적 활동 등에 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을 상기한다면, 비코(Giambatista Vico, 1668~1744)가 역사를 “인간이 언어, 습관, 법률, 정부 등의 체계를 만듦으로써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며, “인간의 사회와 인간의 제도의 발생 및 그 발전의 역사”로 생각한 의도도 이해될 만하다.

그렇다면 역사학에서 다루는 인간은 어떠한 인간인가? 전통적인 역사학에서는 주로 영웅적인 인간들을 다루었다. 흔히 ‘역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헤로도토스(Herodotos)가 저술한 『역사』(Historiai)나 투키디데스(Thucydides, B.C. 460?~398?)가 저술한 『펠로폰네스전쟁사』 등은 왕들과 전쟁의 영웅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그 시대에 역사를 이끌고 갔던 원동력이 정치적 사건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왕과 전쟁 영웅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랑케조차도 정치사에 치중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세기까지 정치사가 역사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데 대해서는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사학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프랑스의 아날학파나 독일의 사회사는 역사를 국가 중심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사회 중심으로 파악하였고, 그 결과 개인이 주도하는 정치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인간들이 활동하고 있는 전체 구조 내지는 사회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게 되었다. 이로써 역사학에서 다루는 인간은 영웅이나 한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인 민중이 되었으며, 이들은 단순한 정치적인 인간이 아니라 문화적 인간, 사회적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구조사가 역사학이 사건 중심의 역사에서 탈피하는 데 기여한 것 이외에도 인간을 심성(mentalite)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고자 했다는 면에서도 크게 기여하였다. 사실 심성이라는 것은 아날학파가 추구한 전체사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날학파가 심성사를 연구하게 됨으로써 전통적인 역사학에서 인간을 외면적인 측면에서만 파악했던 것을 극복하고 인간을 내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학에서 다루는 인간은 영웅에서 일반 민중으로, 개인에서 집단으로, 정치적 인간에서 사회적 인간, 나아가 심성적 인간으로 그 폭이 점차 넓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공간

역사학에서 간과되어서는 안될 또 하나의 요소는 공간적 배경이다. 인간이 활동하는 공간적 배경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활동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슐레(Jules Michelet, 1798~1874)는 1869년판 『프랑스사』(Histoire de France) 서문에서 “지리적인 기초가 없다면 역사의 창조자인 인민(the people)들은 공기 위를 걷고(walk on air)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토양(soil)을 행위의 무대로서만 간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수많은 면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으며, 블로크는 “우리가 사료들을 해석하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의 경관(landscape)을 관찰하고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작업만이 종합적인 전망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마윅(Arthur Marwick)은 역사학과 지리학과의 관계에 대해 “역사학과 지리학 간에는 유서깊은 유대가 있으며, 국가사는 적절한 지리적인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역사에서 공간적인 배경, 특히 지리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더 이상 상론이 필요없을만큼 상식적인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듀란트 부처(W.J. Durant & Ariel Durant)는 “지리는 역사의 자궁이요, 역사를 젖먹이는 어머니이자 역사를 훈육하는 가정이다”라고까지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역사에서 공간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주로 지리적 환경에만 초점을 맞추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삶의 대부분을 육지에서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을 육지의 지리적 환경을 기준으로 하여 온대지대, 냉대지대, 열대지대 혹은 평야지대, 삼림지대, 사막지대, 초원지대 등으로 구분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육지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에는 인류 전체의 삶의 터전인 지구의 71%를 차지하고 있는 해양의 존재의의는 간과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필자는 인간의 역사활동의 무대를 크게 육지와 바다로 구분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바다는 육지만큼이나 인간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바다는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바다는 유사 이래로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이는 여객과 물자를 운송하는 해운으로 직결되는데, 과거에는 물론 현대세계에서 여객이나 물자의 운송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 교역량의 90% 이상이 해운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해운은 인간이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물자를 운송함으로써 국제사회가 성립하는 데 기본적인 필수조건이었다. 따라서 바다가 국가간의 통상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바다가 갖고 있는 일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바다는 점점 증가하는 세계 인구를 부양하는 데 필요한 식량의 원천을 제공해 주고 있다. 패리 교수(J.H. Parry)는 근대 초 유럽 팽창에서 대서양 어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북대서양 어업의 발전은 유럽 그 자체와 유럽 팽창의 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막대한 양의 대구 수입은 많은 사람들이 매년 얼마 동안은 거의 굶어 죽을 정도의 처지에서 살아가야 했던 유럽대륙에게는 그 자체가 심대한 경제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근대 유럽사에서 대서양 어업이 차지하는 경제적인 중요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근대 유럽사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사실 어업은 인간이 식량을 채취하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였으며, 오늘날에서조차도 인간은 바다에서 연간 1억톤 이상의 수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이는 바다가 역사상 인간의 식량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셋째, 바다에는 무진장한 화학 및 광물자원이 함유되어 있다. 바다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각종 천연자원들을 함유하고 있으며, 그 양은 육지 매장량을 능가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육지의 광물 매장량이 고갈되고 나면 바다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이처럼 해양은 인간의 역사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향후 그럴 가능성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역사가들은 해양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정치사 중심의 역사서술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아날학파의 대가인 페르낭 브로델의 대표작인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는 해양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도 해양 그 자체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단지 레판토 해전(1571)이나 신성동맹(Holy League, 1566~1570) 등의 정치적 사건들과는 무관하게 지속되면서 일종의 장기적 구조를 형성하는 지리적 배경의 한 요소로서 지중해라는 해양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전통사학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아날학파에게도 해양은 그 자체로서 중요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해양이 역사학의 관심밖에 놓이게 된 원인은, 알프레드 마한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은 해양의 사정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으며, 특히 해양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도 특별한 지식도 갖고 있지 않고”, 해양전문가들은 “단순히 사건들을 열거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임무를 축소시키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해양사를 연구하는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그것은 이제까지의 역사학이 간과해 버린 해양이라는 공간을 복권시킴으로써 인간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일조하여 전체사를 지향하는 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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