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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사 海歌 발간
최광집 시집『자네,쉬었다 가게』전재
해가시선ㆍ20
자네, 쉬었다 가게
인쇄 | 2016. 11. 15.
발행 | 2016. 11. 19.
지은이 | 최광집
펴낸이 |정연휘정연휘|
펴낸곳 | 도서출판 해가
25918 강원도 삼척시 오십천로 301-30. 101-1503
전화 033-573-4613 ․ 010-3341-3327
e-mail:haika@hanmail.net
출판등록 | 제99-10-3호 1999. 7. 7.
인쇄처 | 문왕사 033-648-3670
ISBN 978-89-93138-26-9
값 10,000원
ⓒ2016 최광집
저자와의 협의에 의해 인지를 생략합니다.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날마다 좋은날 되십시오.
해가시선ㆍ20
최광집 시집
preface
자서自序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오리에서 태어나 바다와 강 그리고
강이 인접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고등학교까지
는 삼척에서 살았다.
삼척공업전문학교 시절 탄허 스님을 뵙고 수도의 길을 걸
어 상좌가 되어 스님으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
대로 꿈을 접어야 했다.
그 후 인하공대에 진학하여 제2의 희망 교수가 되려고 열
심히 노력 했으나 가정환경 때문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
다.
퇴직 후 늦은 나이지만 10여 년간 화두에 매달려 제 3의
희망을 설계하고 머리는 깍지 않은 제가 불자로서 부처님
의 제자가 되었다. 진리의 구도자인 달마거사처럼 구도의
길을 걸으며 문인으로의 길도 같이 가기로 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묵언하며 온갖 욕심 다 내려놓고
남은 여생 선배 문인들의 뒤를 이어 스스로 갈고 닦아 한
알의 밀알로 독자들 곁으로 가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2014년 한국생활문학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
단한 후 두타문학에서 김진광 시인을 만나 2016년 아동문
학세상 동시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평소 저를 아끼신 선생님들께서 그동안 쓴 시를 정리해
첫 시집을 출간하라는 당부의 말씀에 부족하나마 용기를
내어 졸작 시집 자네, 쉬었다 가게를 출간하게 되었다.
사랑으로 지켜 봐 주시고 많은 질정叱正 있으시기 바랍니
다.
2016년 11월
최 광 집
Contents
자네, 쉬었다 가게
시인의 말 | 10
제1부
대자대비의 심성이 빚은 시
목련 아씨 | 18
꽃의 연가 | 19
파도는 | 20
파도의 허물 | 21
저항 | 22
대통령의 눈물 | 23
평화의 비 | 24
낙엽의 눈물 | 25
낙엽 | 26
쓴소리 | 27
멀고도 가까운 허공 | 28
낙산사 의상대 | 29
잠시 쓰면 내 것이지 | 30
청련암 게송 | 31
지장전에 | 32
달은 날마다 밝은데 | 33
마음 | 34
바라춤 | 35
영가의 변 | 36
제2부
시인의 인생관을 반영한 시
남은 내 삶을 | 38
39해당화 | 39
한 서린 능소화 | 40
상사화 | 41
해국 | 42
쏠비치 카페 | 43
기립 박수 | 44
별들의 외출이 길어지면 | 46
밤바다 | 47
초희, 전통 찻집에서 | 48
노을을 그리는 태양 | 49
눈빛 | 50
여의도 | 51
바람의 몸짓 | 52
첫 사랑 | 53
장밋빛 사랑 | 54
죽부인 | 55
손금 | 56
제3부
삶의 현장에서 노래한 시
번개시장 | 58
가뭄의 골 | 59
동해 산재병동에서 | 60
오동나무 찻상 | 61
옛 가람 | 62
흰 억새꽃 피었는데 | 63
큰 외숙모 | 64
고향 마음 | 65
차창에 그려 본 발가락 | 67
외나무 다리 | 68
느티나무 | 69
광부들의 애환 | 70
삼척 해변으로 와요 | 71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 | 73
다관에 우린 차 맛 | 74
제4부
자연친화적인 발상으로 빚은 시
달개비 꽃 | 76
봄비내린 들녘의 흔들림 | 77
별들이 노래하는 강 | 78
활래정 | 79
조개는 예술가 | 81
아우라지 뗏목 | 82
83 | 가을 색
84 | 장밋빛 향기
85 | 백목련
제5부
신선하고 독창적인 발상으로 쓴 시
춤추는 개나리 | 88
일출 | 89
밤 하늘 | 90
바다 햇살 | 91
님의 곁에 앉아 | 92
안개산 약수터 | 93
허공 | 94
바람 손 | 85
제6부
자연을 생동감있게 재현시킨 시
자네, 쉬었다 가게 | 98
해질녘 바람과 함께 | 99
조각공원 | 100
죽서루에 안긴 가을 | 101
갯바위 | 102
수석 | 103
외로운 섬 | 104
구절초 | 105
제7부
의도적인 비유가 탁월한 시
홍련암 | 108
복수초 | 109
하얀 속살 | 110
바위 채송화 | 111
갈대의 속울음 | 112
꽃방망이 | 113
제8부
자연의 순리를 노래한 시
꽃 몸살 | 116
가을 빗소리 | 117
분재 | 118
검버섯 꽃 | 119
사랑의 눈빛 | 120
코스모스 | 121
축시|이용대⋅123
축시|장병훈⋅124
축시|지용하⋅126
해설|장병훈⋅128
화엄華嚴에 드는 노래
제1부
대자대비의 심성이 빚은 시
목련 아씨
그대, 꽃 진다고
슬퍼말아요.
눈이 부시도록
뽀얀 가슴 속
향기로운 분내
잊을 수 없습니다.
그대, 가시는 길에
향기 가득했던
꽃잎 발자국 놓아드리니
웃으며 밟고 가소서.
그대, 얼룩져
떨어진 꽃잎도
나는 사랑합니다.
꽃의 연가
꽃들은
산과 들 강변에서
땅심으로
햇살 받으며
꽃샘바람에 영혼 담아
꽃대에 망울 올려
보슬비 내리면 새 옷 갈아입고
함초롬이 피어 님을 기다립니다.
사랑해주세요.
거절치 않을래요.
앵 돌아 서지 마세요.
만약 발길 돌리시면
밤새도록 잠 못 이룹니다.
가실 땐 예쁜 모습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가슴에 담아가셔도 무겁지 않아요.
필름에 담아가시면
큰 영광이지요.
정녕 그것도
성 차지 않는다면
당신 뜰에 심어
날마다 보시구려.
파도는
파도는
짝사랑이다.
반짝이는
그녀 가슴에
안기고 싶어
먼 길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그대만 바라보며
갯바위에 걸려도
곧장 일어나 달려간다.
그대
몇 미터 앞에서
죽을힘 다해 순한 양되어
하얀 그리움으로
사랑을 고백하며
쏴아 쏴아 가슴을 애무하며
그대 살 내음에 빠져
짝사랑한 죄로
한줌 거품으로 돌아간다.
파도의 허물
파도는
사랑이 그리워
모래밭에
온 몸 던져
하얀 그리움의 허물을
벗어 던진다.
여름날
젊은 청춘들의 사랑
켜켜이 묻어놓고 떠난
쓸쓸한 백사장 뒤척이며
파도는 철썩이고 있다.
파도야
애달파 마라.
너의 애절한 마음
허물 벗고
새살 나오면 개운하단다.
저항
파도야
누가
너 갈 길을 막느냐.
목숨 걸고
어금니 깨물며
허공에 솟아올라
거품으로 생을
마감하라더냐.
이제 그만
부질없는 일일랑
내려놓고
모래 틈에
편히 쉬어라.
대통령의 눈물
갑오년 4월 16일
세월호, 아픔 속에도
봄은 왔다.
자식 잃은 부모들
팽목항 앞바다 바라보며
목이 터지도록 애타게 불러보건만
노란 리본만 바람에 펄럭인다.
싸늘한 시신만 돌아오고
아직 가족 품에
안기지 못한 자식이 있건만
바다는 말이 없다.
온 국민은
대통령의 눈물을 지켜보며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참사가 없도록 간절한 기도를 한다.
부처님이시어
못다 한 어린 영혼을 구원하시어
다음 생애 더 좋은 인연을 만나
새 삶을 살게 하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평화의 비
대한의 어린 딸
단발머리 무명치마 저고리 입고
왜놈의 속임수에
전쟁의 포화 속으로 끌려간 소녀들
부모형제와 떨어져
왜놈의 성 노리개로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나.
가슴 저리고 원망의 눈물이 마르도록
목 놓아 조국을 원망했을 소녀야.
백발이 성성토록
한 많은 세상을 살아온 삶
두 눈 감기 전
사과의 말 한 마디 없는 비열한 왜놈들
내 눈에 흙이 들어오는 날까지
사죄함을 보리라.
교활한 왜놈들
너의 극악무도한 죄상을
전 세계에 낱낱이 고발하리라.
단발머리 조국의 딸들
한 많은 억울한 생의 원한을 푸는 날까지
온 국민과 함께
두 눈 부릅뜨고 마지막 그날을
지켜보리라.
낙엽의 눈물
허공은 무심한데
누가 등 돌렸나
돌아가는 세월
멈출 수 없네.
찬바람
문풍지 흔들며
서릿발 세우는 소리에
뭇 생명 땅 껍질 위로 뒹구네.
낙엽은 밤마다
시린 눈물
손바닥 헤어지도록
서럽게 움켜지고
매정한 바람에
바스락 떨고 있다.
차라리 지수화풍으로
공덕 쌓아 업장소멸하고
인연 닿아 돌아와야겠네.
낙엽
초록 잎 물들여
불사르고
시리도록
잎새에 부는 바람에
어미 손 밀쳐
눈目여겨 둔 곳 향해
자리 합니다.
금시 떨어진 내 손 잡아 보고
온기 있거든
당신 책갈피에 끼웠다
생각나면 보시구려.
나그네여
세상사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올 때 오고 갈 때 가는
이 도리 알기에
서러움 잊은 지 오래 되었다오.
그대
오솔길 걸으며
바스락거림에 놀라지 마오.
형상 있는 것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쓴소리
죽서루 뒤 절벽에
아스라이 삶의 터 잡고
가을 햇살에 고운 나뭇잎
강물을 물들이고 있다.
가벼운 바람에 파르르
낙엽이 눈 내리듯 빙글 돌아
맑은 물에 떨어져
빈 배로 떠다니다
지쳐 가라앉는다.
낙엽 떨어진 삼지창 가지엔
새들이 떠난 빈 둥지만
덩그라니 놓여 있고
강 여울목엔
낚시꾼들이 세월을 낚고 있다.
좋고 나쁜 인연 중
사람 몸 받기 어려운데
한 세상 가벼이 버리지 말고
사람답게 살라며
물 비린 쓴소리를
조잘거린다.
멀고도 가까운 허공
하늘과 땅 사이
흔적을 남길 수 없고
머물다 사라질 뿐이다.
새들의 발자국
구름의 형상
바람소리
허공 속에는
우주를 굴리는 심성이 있다.
볼래야 볼 수 없고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냄새 향 맛
색色도 없다.
내 몸속에 홀연히 들어와
나를 움직이는
참 나我는 누구인가.
이 도리 깨닫는 길
길 없는 길
허공에 있다.
낙산사 의상대
29세 황복사에서
먹물 옷 입은 스님
당나라 마음공부 가던 길에
저문 해 머리에 이고
무덤가에 지샌 밤
갈증 나 마신 물
잠 깨어 살펴보니
해골 썩은 물이었다.
세상만사
마음 먹기 나름이구나
유심의 도리 깨닫고
가던 길 돌아와
해동화음의 초조가 되어
중생 교화하다
원적에 들었는데
의상은 중생을 속이지 않았구나.
오늘 낙산사 의상대에 올라
동해바다 속 산골짜기 바라보니
사슴이 새끼를 낳고
고래는 젖을 물리며
낮잠을 즐기고 있다.
잠시 쓰면 내 것이지
사람들
기를 쓰고
소유하려 한다.
죽을 때 갖고 가지도 못할 것
뻔히 알면서 욕심을 낸다.
다 쓰지도 못할 물건
올 때도 빈 손
갈 때도 홀연히 갈 텐데
참으로 어리석다.
누굴 위한 삶인가
생이 끝난 영혼은
선과 악이 끊어진 자리다.
등기 없어도
잠시 쓰면 내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등기해 놓으면
관리하기도 힘들다.
자식들 재산 싸움질에
의리마저 끊어질 텐데
내려놓고 비우고 비워
편히 살다 가야지.
청련암 게송
비 눈 구름 파도
물은 물
형상은 달라도
성품은 하나
바람 불어 대나무로
뜰 앞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스치는 바람
푸른 빛만 가득가득
솔바람 일어
송화 가루
봄비로 내려도
성성하여
있는 그대로
수도자
가부좌 위에 육근 올려놓고
묵언증진
일체유심조라 하였든가.
생사 초탈하면
걸림이 없겠구나.
지장전에서
솔바람 부는 산사에
만상이 무언의 법문을 설하는 극락도량
산나물이 지천으로 자라고
맑은 개울이 흐르는
고즈녁한 천년 고찰
동막 신흥사1) 지장전2)에
생전에 나, 낳아주시고 돌아가신
부모님 영가를 모셨다.
달마다, 음력 18일 날
법당에서 안부를 묻고
예불을 올리며
천수경3) 불설아미타경4) 금강경5) 을 독송합니다
영가시여
부처님의 제자이며 당신의 장자가
부처님을 대신해서 설한
법문을 듣고
깨달아서
다음 생生에 인간으로 좋은 환경에 태어나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중생제도 하시길
일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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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말사
2)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지장보살님을 모신 법당이며
영가의 위패를 안치하고 제사를 지내는 법당
3) 천수다라니라하며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지은 죄를
소멸하는 방법을 설명한 부처님의 말씀
4) 극락을 설명하고, 중생 제도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경
5) 부처님께서 공空의 세계를 설하신 경
달은 날마다 밝은데
달은 날마다 뜨건만
보이지 않는 까닭은
마음 속 구름이 낀 탓이오.
저 달
구름 속
무심히 들락날락하는 것은
평상심이요
날마다 두둥실 밝건만
보는 이 마음
번뇌장1) 속에 번뇌가 가득한 탓이오.
욕심 어리석음 질투 가득한 항아리
비우고 또 비우고 내려놓으면
번뇌가 지혜의 감로수 되어
저 달 있는 그대로
날마다 뚜렷이 볼 수 있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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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탐심 진심 치심이 가득한 곳
마음
맛, 빛, 냄새
볼래야 볼 수 없고
만질래야 만질 수 없는
형상 없는 마음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구름처럼
바람같이
번개보다 더 빨리
태평양 건너 미국에 갔다
유럽에 갔다, 하는 놈
이놈이
가짜 나라니.
참 나는
어디 있는 가
도무지 찾을 길 없다.
분명
내 몸속에
허락 없이 전세 들어 주인처럼
나를
종처럼 부리고 있지 않은가.
네 이놈
손에 잡히면
용서치 않겠다.
바라춤
파란 하늘
경포 습지 연蓮들이
수면 위로 꽃대 올려
당간지주 삼아
홍련 백련 피워 놓고
바람은
연잎 뒤집어 쓰고
무주 구주의 영혼을 위해
팔랑팔랑 바라춤을 춘다.
연봉우리 미소지으며
연밥 둥지 속
부처 씨앗을
키우고 있다.
영가駕의 변辨
숨 떨어졌다고
영혼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심장이 식을 때까지
서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배웅해야지.
비정하게 냉동실로 보내서야
되겠는가.
화장터에서
불까지 때가며
두 번의 고통을 거처야 하는지.
눈감고 보지 않는다고
해도해도 너무 한다.
이승에 소풍 왔다
할 일 다 하고 가건만
푸대접을 받고 가다니
이토록 서운할 수가 없다.
제2부
시인의 인생관을 반영한 시
남은 내 삶을
진흙을 털어내는
연꽃으로 살리라.
어둠이 가기 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바른 삶을 살기 위해
형상 없는 내 육신의
주인공을 들여다 보며
끌려 다니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물처럼
자신을 정화하며
선과 악을 시비하지 말고
묵언하며 살리라.
우주 공간의
자연과 더불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후회 없는
삶을 살리라.
해당화
명사십리
맹방 해변 해당화
모래바람에
몸을 낮추었다.
해풍에 절인
오월 햇살 가득 품고
가시 손에 움켜진
붉은 립스틱 말아올려
해바라기 한다.
검붉은 명주꽃
백사장을 향해
철썩이며 쏟아내는
하얀 포말처럼
고운 웃음 웃는다.
호랑나비 놀다 간 뒤
파도 물빛 닮아 퍼렇게 맺혀
솔가루 하늘 퍼질 때
노랗게 물들다가
떠오르는 태양 바라보며
사랑으로 익는다.
한 서린 능소화
담장에 기대어
꽃사슴처럼 목 늘려
님 오시는 길
황색 등불 밝힙니다.
초승달 차오르고
보름달 기울도록
날마다 기다린 가련한 궁녀
애달픈 눈물자욱
가슴에 멍이 들어
하늘을 원망한
여인의 한, 한이
꽃 속에 스미어
독을 품는다.
지금은 정 많은
남정네 가득한 한골집
테라스에 기대어
한갓지게 피었습니다.
상사화
한 지붕 밑에 살면서
봄날을 비켜
여름 뙤약볕에
서러운 인연
사무친 그리움만
잎 진 자리
한 서린 빛깔로
가슴 조이며 피웠건만
그대 손길 없고
기약 없는 야속한 기다림
세월만 가고
꽃잎은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져 나부낀다.
해국海菊
삼척 이사부공원
해안 데크 길 옆
바위틈 흙 한줌 붙잡고
아스라이 하얀 꽃 피운 해국
까칠한 해풍 맞으며
동해바다 푸른 물빛
수평선 바라보며
바다의 뱃전에 걸려 넘어진
어부들의 영혼을 달랜다.
여름날 절인 뙤약볕에
까맣게 가슴 태운 해국
시린 겨울바람 사이로
펄펄 내리는 이불을 덮고
갈매기 벗 삼아
오늘도
가신 님 그리워하며
봄날을 기다립니다.
쏠비치 카페
흰색으로 채색된
카페 기둥과 천장은
그리스 산토리니 섬을 닮아
유럽 냄새가 물신 난다.
해님이 옅은 구름 속으로
얼굴을 묻은 감청색 바다가
신비스럽다.
북쪽 담장에 기댄
설치 조형물 등대는 낮잠을 즐기고
정원 바닥 화분
꽃잎에 날아 든
호랑나비가 한가롭다.
해풍의 기류를 타는 갈매기
바다 열차의 낭만
다양한 커피마니아들
이국적 바다의 풍경들 속에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기립 박수
자정으로 가는 일요일 밤
장미공원에 놓여진 피아노
건반을 치는 청년
손길과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천만송이 장미와
강변 갈대숲 새들이 지켜보는데
「백조의 호수」 멜로디는
잔잔한 물결 위에서
사랑에 빠진 백조의 왈츠를 보는 듯하고
「G선상의 아리아」는
해 질 녘 노을빛에 물들어
서산을 넘는 듯 감미롭고
「푸른 도나우 강」 선율은
철석이는 강변을 생각나게 한다.
인적이 끊어진 적막한 어둠 속
오십천 맑은 물에 내려앉은 피아노 선율은
별빛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다.
학창시절 교내 연못 버드나무 밑
벤치에 앉아 듣던 귀에 익은 클래식
인기척 없이 다가온
한 쌍의 중년 부부와
기립 박수를 치니
장미들도 미소를 지으며
꽃잎을 흔들었다.
별들의 외출이 길어지면
짧아진 해 그림자 사이로
어둠이 파고들어
차가운 밤하늘
별들의 외출이 길어졌다.
귀뚜리 울음 애도래라.
낙엽 구르는 소리
달빛에 어려
슬픈 가락으로 목이 잠긴다.
젊은 연인들
공원 밴치에 앉아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사랑을 속삭이고
시니어들
쓸쓸한 가을 밤
술 익는 주막 홀에 앉아
자욱한 연기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젊은 날의 추억을 더듬는다.
밤바다
중복을 넘긴 보름 달
칠흙 같은 보름 바다
달 노을 번지더니
곤지 찍은 얼굴로
두둥실 달이 뜬다.
달그림자 늘이며
정라항 등대불빛 바라보며
밤바다 밝히고
피곤한 듯
구름 방에 한숨 쉬고
하얀 얼굴로
고개를 내어민다.
파도는
갯바위에 걸려도
이내 제 모습으로 돌아가
그리운 님 품에 안겨
하얀 웃음으로
달맞이 한다.
초희, 전통 찻집에서
허난설헌 생가
한옥 전통 찻집
노란 소국 두 송이
연꽃 화병이
찻상 위에 앉아 운치가 돈다.
갓 끓여낸 설록차
방안 가득 번져 향기롭다.
마당 앞
월동준비 마친 꽃나무
봄날 화려한 꽃 피워
초희 가슴 설레게 했을 꽃
목향 장미
동지를 코 앞에 두고
이마에 몇 송이 피워 붉게 웃고 있다.
잎 떨군
살구나무 능소화 동백나무
백일홍 목련은 입 다물고
늦가을 서리 맞은 노란 들국화
담장너머 솔향과 어울려
가는 가을 애달파 한다.
향나무는 똬리 틀고
대문 안에서
정답게 방문객을 맞는다.
노을을 그리는 태양
이글거리는 빛, 다
내려놓고
홍시 같은 얼굴
앵두 같은 눈망울로
서녘 산마루 품에 안겨
노을을 그리고 있다.
눈빛
해돋이 눈빛은
꽃가마 타고 새 희망에 부풀어
시집가는 누님의 눈빛
정수리에 올라앉은 눈빛은
휴전선 초소에서
북녘 땅 쏘아보는 병사의 눈빛
휘영청 둥근 달님 눈빛은
외로운 이웃을 위로하는
자비의 눈빛
밤하늘 반짝이는 눈빛은
그리움을 달래며
새 희망을 주는 눈빛
산마루에 걸터앉은 눈빛은
고단한 삶을 걸어온 나그네가
피안의 언덕을 바라보는 눈빛
여의도
너와 나
멀고도 가까운 의사당
한강의 심장
뿌리는 하나
점점 낯설어 보이는 섬
너울 파도 일면
잠시 자맥질한다고
그 모습 어디 가나.
티격태격 싸움질 말고
한걸음 물러서서
초심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라.
해, 달, 별
모래알이 보고 있다.
영역 다툼
밥그릇 싸움
깨끗한 입 더럽히지 말고
더불어
더불어 살라.
바람의 몸짓
안개꽃 피는
이른 경포 습지
걸림 없는 바람
거동 좀 보소.
아기 부들 흔들어 깨우고
선잠 깨어 칭얼대는, 물달개비
분홍 꽃은 왜 달래나.
개개비는 억새풀에 앉아
깔깔대고 비아냥거린다.
노랑어리연꽃은
연잎에 기대어
노랑 물 뚝뚝
흰 수련 꽃은
방글거리며 수선을 떠는데
노란 꽃 창포에 머리 감은
배꼽며누리꽃은 돌아앉아
등짝만 살짝 보이고 살짝 웃는다.
바람은
길 없는 길 무심히 갈 뿐
형상 없는 몸짓 보려
괜 시리 애쓰지 말라.
내가 흔들고 깨운 것 아니고
꽃들이 나를 반긴 거야.
첫 사랑
중매로 만난 사람
첫 눈에 마음 빼앗겨
봄날 경포대에서 은밀히 만나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며
사랑을 언약했다.
호수에 내린 가로등 불빛
수초에 어리어 따라 다닌다.
달님은 호수 품에 안겨 놀고
님은 내 품에 안겨
달콤한 미래의 꿈을 그리고
나는 님의 호수에 빠져 헤어날 수 없네.
상큼한 살 내음
앵두 같은 입술
내 마음 그대 가슴에 포개던 밤
온 몸이 고압전기에 감전된 듯
후들거렸다.
예쁜 그대 가슴
보고 또 보아도
마냥 얼굴 묻어 놓아도
후회하지 않겠다.
장밋빛 사랑
오십천 둔치
해풍 맞은 천만 송이 장미
고운 꽃잎 말아올려
장밋빛 사랑 속삭여요.
사랑이 무언지 모르는 새내기
정에 사는 시니어
밤꽃 향기에 잠 못 드는 여인
내 곁에 다가와
살며시 윙크하면
속삭이는 달콤한 몸짓도
볼 수 있어요.
구름도 쉬어가고
벌 나비 춤추며 노래하는
천만 송이 장미의 향연
그대 담아둔 색 있다면
기꺼이 내어 드릴 테니
님에게 다가가
붉은 장미 한 아름 바치며
사랑을 고백해 보세요.
죽부인
단오 날
죽부인과 인연 맺은 지 십년 세월
조강지처 눈살 피해가며
여름 한철 끌어안고 밤을 새우니
정이 들대로 들었다.
삼복 날
창가에 달빛 찾아들면
다리 한쪽 척 올려놓고
슬그머니 안아주면
은근슬쩍 시원스레 파고든다.
죽부인 왈
이래뵈도 일편단심 사랑했는데
작은 꽃반지 하나 끼워주시면
누가 뭐라고 하냐고 묻는다.
손금
숙명의 행로
손바닥에 그려진 생애
업보의 넋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한
삶의 여정
시작도
끝도 없는 이정표
마디마다
또 다른 경계
남은 생의 종착지인가.
예측할 수 없는 삶
제3부
삶의 현장에서 노래한 시
번개시장
오십천 하구
새벽안개 가려진
설익은 햇살 서성이는
아침나절만 열리는 시장
가로등 불빛 졸음 못 참고
하품을 하고 있다.
바다에서 항구로
번개시장 수족관 활어들은
바다로 가고 싶어
창밖을 응시하며
부레에 공기를 채운다.
세월에 탈색된
귀밑머리 하얗게 서릿발 세우고
온갖 먹거리
철철이 이고 나와
고단한 삶을 팔고 있다.
소비자는 덤 달라고
여린 할머니 속내를 들여다 보며
간지러운 흥정을 한다.
가뭄의 골
을미년 봄부터
비 올 듯 말 듯 애태우더니
초록 잎 그을려 까무레하다.
태양은 목이 타는 가.
소하천 다 마시고
바다로 가려 하는데
정치인들 티격태격 싸움만
농민의 원성
아랑곳 없이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성난 농민
장대 이어달아
하늘에 우물을 파려한다.
하늘은
허공에 무문관을 세웠나.
한 소식 들었나 했더니
헛기침 소리에
아지랑이만 피고
먼지만 펄펄
논바닥 갈라지듯
애타는 농심
이마의 골이 깊어져
사태가 난다.
동해 산재병동에서
탄광촌 검은 물빛
석탄의 눈물이다.
슬레이트 맞배지붕 밑 세 가족
거적 달아낸 부엌
눈, 비, 바람 불면
부엌에 날아들어 을씨년스럽다.
흑수저 물려받은 이들
잘 살아 보자고
하늘 한 조각 없는
갱 속 막장에서
지질시대의 영혼이 묻힌 무덤
태고의 잠 깨운 광부들
한국산업의 역군이었다.
자식들 출가시키고
홀로 산재병원 병실에서
검은 가슴 쓸어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오동나무 찻상
생을 마감한 늙은 오동나무
눈 밝은 이 기다리다
나와 인연 되어
바뀌 달린 찻상으로
거실에 놓였다.
무늬는
물결치듯 일렁이고
달빛에 거문고 소리 들리는 듯
은은한 선율이 흐른다.
화병에 꽃힌 민들레 곁에
차茶 다려 올렸더니
입 안 가득 향기롭고
가슴 따듯한 온기로
삶에 지친 눈빛은
여유를 찾은 듯 반짝인다.
옛 가람1)
오십 구비 휘돈 강물이
숨차 오를 쯤
죽서루 절벽에 부딪쳐
푸른 물속에 잠긴 루에 잠시 쉬었다
느릿느릿 바다로 흐른다.
죽서루 강 건너 나직한 남산자락
아랫마을 초가집들이 사라졌지만
내 가슴에 생생히 남아있다.
봄이면 꽃 피고 새 울며
진달래꽃 감꽃 밤꽃 흐드러지게 피고
모래 언덕 아카시아 향기 가득한
정겨운 마을이었지.
집집마다
이엉 엮어올린 초가지붕
샘터 아낙들의 웃음꽃
밤마다 달빛에 하얗게 웃는 박꽃
동내 초입에 낮선 사람 들어서면
개 짖는 소리 요란했었다.
닭, 오리, 돼지 키우며
소 몰아 밭가는 농촌마을
밤새 어둠이 삭힌 흙 향기
새벽 닭 울음소리에 아침이 밝아오고
아침저녁 통나무 굴뚝
연기 피어올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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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척 죽서루 건너 옛 마을(현 문화예술회관자리)
흰 억새꽃 피었는데
새들이
분단된 철책 위를
무심히 날아가던 날
북측 병사가
휴전선 남측 경비 구역에
두더지처럼 몰래 침투해
목함 지뢰 묻어놓고 간 뒤
우리 병사가 순찰임무 수행 중
젊은 병사가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어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다.
아! 비통하다
바다에서
육지에서
살육을 일삼으니
이 일을 어찌 할꼬.
칠순을 바라보는 머리에
흰 억세 꽃이 만발 했는데
분단된 혈맥은
언제 이어지려나.
큰 외숙모
시끌벅적 있을 것 다 있는
북평장 날
예나 지금이나 볼거리도 많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
큰 외숙모는
이른 아침 서둘러 장에 나갈 때
동동 구르무1) 찍어바르고
동박기름2) 머리카락에 살짝 발라 빗질한 뒤
흰 광목 수건 머리에 두르면
누가 봐도 영락없는 장꾼이다.
자식 공부시키고 살림에 보태려고
장이 서기 전 어둑어둑할 때
시골 아낙들이 이고 나온 곡물
도매로 받아서 소매로 팔았다.
한낮이 되어
햇살이 이마에 내려앉아
종일 미적거리며 놀다가
서산마루에 노을로 번질 쯤
큰 외숙모 얼굴은
일광욕 한 것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른 모습으로
장을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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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한국 여성들이 얼굴에 바르던 크림의 일종
2) 날 한국 여성들이 머리에 바르던 동백꽃 열매로 짠 기름
고향 마을
봄날 처마 및 보금자리 털고
핑크빛 진달래 동산 휘돌아
빨래줄에 앉아 지지배배 노래하는
내 고향 근덕 오리마을
마당가 감나무에서
왕관처럼 피어있는 감꽃이
어린 감, 파랗게 매어놓고는
바람에 구르다 실에 꿰어
목걸이 되었지.
사철나무 울타리 옆
접시꽃 피면
얼굴에 꽃잎 붙이고, 각시놀이
냇가에 버들가지 꺾어 피리불면
누렁이 밭을 갈았다.
숲속 반딧불 날아다니는 밤이면
항아리 같은 달덩이가
강 숲에 덤벙거리고
등잔불 밝혀 고담 읽는 소리에
귀뚜리 슬피 울었다.
수탉 우는 소리에
근산 능성이에 태양이 불쑥
반가운 까치 한 마리
반가운 소식 전해주고
가지에 남겨 둔
홍시에 앉았지.
차창에 그려 본 발가락
세찬 빗줄기
서울로 달리는 차창 두둘긴다.
산과 들은
안개 속에 흐릿하게 스친다.
빗방울
창문에 달라붙어
실뱀장어처럼 빗살무늬로
별똥처럼 지나간다.
흐릿한 창에
입김 호호 불어
주먹으로 발바닥 찍어놓고
귀여운 손녀 발가락 그려본다.
방문 열면
달려와 품에 안기는
귀여운 녀석들
차는 왜 이리 더딘가.
외나무 다리
여름 장마 지정거리기 전
동구 밖 여울목에
외나무다리 놓는다.
마을 장정 다섯이
삼발이 세워 추 달고
끈을 당겨 떡매 치듯
어이렁차 쿵덕쿵
다리발 박는다.
뽀족한 참나무 다리발
강바닥 비집고 쑥쑥 들어간다.
다리발에 널빤지 걸쳐놓고
염소 매여 놓듯
쇠 말목에 묶어놓고, 재물을 차려
꽹가리 북 징을 치며
지신을 밟고 상구를 돌린다.
느티나무
근덕 교가 장터
내가 태어나기 이 년 전
폭풍우로 허리 잘린 상처안고도
천년을 버텨 온 느티나무
키 12m, 가슴둘레 8.4m
밑둥치 9.5m
거목이 된 느티나무
새들의 놀이터로
기념물 14호 이름표 달고
지난 세월
수 많은 인걸의
희노애락을 안고 있다.
그 때 그 시절
나와 놀던 아이들
백발의 시니어 되어
장기판 바둑판 펼쳐 놓고
어깨 너머 훈수 두며
막걸리 한 사발로
옛 이야기 꽃을 피운다.
광부들의 애환
지질시대 지하에 매몰되어
강한 압력으로 탄화한 에너지 자원
오랜 세월 흘러
광부들의 손에 끌려나온 석탄
산업의 원동력으로
민초의 등과 허기진 배를
달래준 흑진주
못 배운 것도 서러운데
천민 대우 받으며
생명을 담보로 가족의 생계를
어깨에 짊어진 검은 얼굴들
칠흑 같은 갱 속에서 나와
검은 연탄불 석쇠 위에
돼지비개 구워 시름 달래는 찌든 몸
깔깔한 막걸리로 폐를 달래며
살아가는 슬픈 삶이 애처롭다.
골목길 옆에 연탄재 켜켜이 쌓여가는 탄광촌
그들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다시 광부들을 울리며
폐광의 소문이
도시를 흔들며 지나가고 있다.
삼척 해변으로 와요
대관령 푸른 솔바람
물결 사랑으로 밀려와
해변을 애무하고
파도는 춤추며
낭만이 꿈틀거리는
삼척 해변으로 와요.
지친 당신의 피곤한 육신을 위로하며
용기있는 젊음의 사랑을
새 삶의 활력소로 충전해 주는
삼척 해변으로 와요.
당신의 에너지가 고갈된 가슴
바닷물에 헹궈
트위스트 춤을 추며
반짝이는 조개를 건져 봐요.
부서지는 파도 위에는
갈매기 날고
흰구름 두둥실 손짓하는 삼척 해변
햇빛에 구운 고운 모래찜질 하면
피곤한 땀 방울방울 솟아올라
날아갈 듯 개운한 기분
당신은 아시나요.
동해바다 청정 삼척 해변
새롭게 단장하고
당신의 가족과 젊은 연인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
삼성 미술관
유난히 시선을 끄는
18세기 영조 때 작품
국보 제107호
백자철화문항아리가
마음에 담긴다.
목선 밑
딱 벌어진 어깨
넓은 가슴에
넝쿨에 매달린 청포도 그림
비약의 농담으로
터치한 붓질이 신비스럽다.
도공의 넋이
살아있는 항아리
조명 빛
눈높이 따라
백자의 모습이 무상하다.
조상의 예술적 작품
새삼, 문화민족임을 되뇌이며
칠순이 다 되도록
무엇을 했는지
걸어온 길 뒤 돌아본다.
다관에 우린 차 맛
겨울바람 이겨낸, 차밭
새들이 날아들어
재잘거리다 간 뒤
새 혀 바닥 닮은
연초록 잎
아홉 번 덖어
다관에 우려낸 차
코끝에 스친 향
혀에 닿는 미각
입 안 가득 번지는
감미로운 맛
머릿속은
맑은 가을하늘
마음은
잔잔한 호수여라.
제4부
자연친화적인 발상으로 빚은 시
달개비꽃
가랑비 내리는
오십천 강둑을 걷다보면
건들바람에
이슬 구르는 소리 들린다.
넌출치 않은 들꽃
잎 깍지 속 청색 꽃잎
닭 벼슬처럼 피웠네.
아랫도리
좁쌀만 한 노란 암술 넷
잿빛 수술 셋
신방을 차렸다.
보는 이 없어
나 불러 세워
거짓스럽단다.
어여삐 눈 맞추고 손 잡아주니
사진도 찍어 달라
생떼를 쓴다.
봄비 내린 들녘의 흔들림
봄비 내린 들녘의 흔들림
땅 껍질 가르는
노란 새싹 밀어 올리는 소리
앗싸 좋구나.
지구가 흔들린다.
개나리꽃
봄비 잡고 살랑거리더니
가지마다 팝콘 터지는 소리
하늘에 잔별이 흔들린다.
들녘 두렁마다
쑥대머리 쏙쏙
봄빛에 바람 불어 세우니
잡지마라
갈 길 바쁘다.
살랑살랑 머리 흔든다.
제38차 2014년 生活文學 신인상 수상작
별들이 노래하는 강
삼복 날
노을 진 하늘
가마솥 아궁이
불씨 한 점 얻어다
보리 겨에 모깃불 피운다.
마당 중앙에
멍석 두 잎 펴고
두리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새콤한 오이냉국에
늦은 저녁을 먹는다.
돗자리 한 잎 둘러매고
달빛 가로등 불빛삼아
별들이 노래하는 강
언덕에 누워, 돌 벼개에
삼배 흩이불 덮고
별 헤이다
꿈나라로 간다.
활래정活來亭1)
솔향 가득한 강릉 선교장
뒷산에 올라보니
좌청룡 우백호다.
집 앞 월하문月下門 열면
천수답은 끝간 데 없고
울안 연못 속
화강석 기둥 위에
팔작지붕 받쳐 든 곡선미
학鶴 날개 같다.
가을 하늘 아래
날 듯한 활래정
연못에 어려
바람에 일렁일렁
학춤을 춘다.
살문 접어 벽채에 기대어
사방을 바라보다가
살포시 눈감고
사계절 무상한 풍경을 연상하며
찻잔에 담아낸 연차가 혀끝에 닿으니
은은한 향기를 무엇으로 표현할고
송화, 반달절편 다식 입에 넣고
그 옛날
풍류객들의
시 한 수 읊는 소리
귀에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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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릉 선교장에 있는 정자
조개는 예술가
중복 날 조개구름들이
바람따라
청포도 풀어놓은 동해바다
조개마을 하늘가에 멈췄다.
조개껍질 잔해가 묻힌
모래밭은
맨발을 거부하고
피서객들
트위스트 추며
발바닥 감촉으로
조개를 건진다.
껍질마다
현대 미술의 조각품
무엇으로 그렸는지
아름다움의 극치다.
예술가들은
따가운 태양열로
모래와 해초 삶은 물감을 만들어
조개 지붕에
그림을 그린다.
아우라지 뗏목
발왕산 뗏목 엮어
송천 길 따라
아우라지 띄워 보내고
증봉산 뗏목
골지천으로 보낸다.
아우라지 주모酒母 손짓에
뗏군들 쉬어 가는 주막
주안상酒案床 받아놓고
기녀妓女 치마폭 깔고 앉아
세상만사 시름 털어 놓는다.
강물 불어나면
심심풀이 챙겨
남한강 천리 한양 길 떠나는데
아우라지 뗏꾼들
남겨둔 님 생각에
눈시울이 젖는다.
뗏꾼 선장
한 눈 팔지말고 어서 가자.
해 떨어진다 호통소리에
아우라지 뱃사공
노랫가락 절로 나온다.
가을 색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 색
신神인들
어디서 신비롭게
산야를 물들이나.
화가는
흉내만 내다 붓을 놓고
농부는 흙을 믿고
뿌린 대로 가꾸어
가을을 채색한다.
장밋빛 향기
밤이슬에
헹궈낸
짙은 장밋빛 향기랍니다.
코가 저리고
귀가 간지러워도
마음의 창은 닫지 마세요.
님을 위해 새벽까지
소곤소곤 살뜰히 피었습니다.
한 발 더 다가와 주세요.
님의 가슴에
붉은 꽃잎 자취를 남길까요.
분홍빛 향수를 뿌릴까요.
그래도 못 잊어
돌아서기 싫으시면
달빛 흐르는 야밤에
살짜기 오시구려.
백목련
달뜨는 밤
은색 꽃 투구 벗고
초가지붕 박꽃처럼
가지 끝에 앉은
백목련
밤하늘 별들이 손짓 하면
하얀 미소로 윙크
비바람 불면 낙엽처럼 떨어져
가련한 여인으로
서럽게 운다.
떨어진 꽃잎
애련한 마음 거두어
손 잡아주는 시인 만나
나그네
남기고간 인생 여정
설치미술로
꽃잎 발자국 남기고
걸어온 길
돌아보게 한다.
제5부
신선하고 독창적인 발상으로 쓴 시
춤추는 개나리
봄날 한치재 오르면
도로가 개나리 울타리 되어
속 비운 겨드랑이 마다
노란 팝콘처럼 피었다.
명사십리 맹방 해변 바라보며
겹겹이 밀려드는
하얗게 웃음 퍼지는 개나리는
밤하늘 은하수처럼 흐른다.
절벽에 부딪혀 온
해풍에 흔들리며
눈부시도록 줄줄이 매달려
꽃 춤추며
바람 그네를 탄다.
일출
파도는
어둠을 키질해
밀어내고
수평선 위로
붉은 해 성큼성큼 올린다.
누가 찍은 인장인가
잘 익은
사랑의 앵두
인정 많은 누님
시집 갈 때 찍은
볼연지 닮았다.
앵두 빛 연지
햇길 밟으며
허공을 붉게 물들인다.
밤 하늘
두타산 산마루
해질녘 풍경은
허공 가마솥에
순두부 끓듯
몽울몽울
노을이 번진다.
밤하늘 큰 별들이 하나 둘
자리 잡은 뒤
작은 별들도 뛰어 나와
은하수 다리를 놓으니
매밀 꽃 핀 듯하다.
달님은 두리둥실
죽서루 용마루에 걸터앉아
대숲 바람 소리에
갈 길을 잊은 듯
잠이 들었다.
바다 햇살
찬란한 해오름
수평선 사이
붉은 양수 터지니
허공 속
햇길 따라
볼연지 찍은 새색시처럼
사뿐사뿐 떠오른다.
너울 속 반짝이는
황금물결
낮별이 내려앉아
파도를 탄다.
고요한 아침바다
갈매기 통발선 따라
등대불빛 바라보며
항구로 귀향하고
갯바위 선잠 설친 듯
하품을 한다.
님의 곁에 앉아
봉평 뜰 한 눈에 보이는 언덕
가산1) 동상이 자리한 문화광장
님의 곁에 앉아 시첩을 펼쳐놓고
기념 사진을 찍으며 말을 건낸다.
메밀꽃이 소금처럼 피어
그리도 곱게 반짝였냐고…….
묵언하시며 들녘을 손짓 한다.
창공은 푸르고
산은 마을을 애돌고
냇물은 맑게 흘러
정겹고 풍요롭다.
들바람은 갈대머리 빗질하듯
메밀밭에 올라 소금을 뒤척이고
물레방아는 쉼 없이 돌고 있다.
구름도 메밀꽃에 넋을 잃고
내방객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민족문학, 향토를 빛낸 님
당신은 젊은 나이에 가셨지만
문학적 가치는
가을 하늘보다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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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밀꽃 필 무렵 작가 이효석님의 호
안개산 약수터
고봉암 지나 몇 구비 돌면
안개산 약수터 다다른다.
암벽 사이로
그 누가 밀어 올리나.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흉내도 못 내는 것을 바라본다.
생강나무 꽃 필 적엔
노랗게 몽골몽골 샘 솟고
철쭉 흐드러지면
연분홍빛으로 시원스레 비치고
머루 다래 익으면 새콤한 맛으로 향기롭고
백설 휘날릴 땐 따뜻한 온기로 마음 다스린다.
날마다 마셔도
모자람이 없다.
눈 씻으면 창밖이 맑아지고
말씨는 부드러워져 향기롭구나.
몸속 적시면 가슴 열린다.
제38차 2014 生活文學 신인상 수상작
허공
허공은 말이 없다.
하늘과 땅 사이
아득히 멀고도 가깝다.
허공 속에는
없는 것이 없다.
모자람도 없고
넘치지도 않는다.
허공은 삶의 공간이다.
희노애락이 녹아있는
우리들의 보금자리다.
내가 온 곳도 갈 곳도 허공이다.
제38차 2014년 生活文學 신인상 수상작
바람 손
신호등 불빛이
선잠에 깨어나
황색 눈을 비비고 있다.
자전거 후미등 깜박이면서
봄빛 가득한 강둑 따라
꽃비 내리는
벚나무 터널 길 달린다.
강 건너 벼랑 위 죽서루
물속에 잠겨있고
재잘대는 새들의 노랫가락에
물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머리에 하얀 안개꽃이 피었다.
바람 화백이
강물에 하얀 물감을 넣고
손으로 휘휘저어
물안개 피워 올리는 듯
허공에 핀 안개꽃은
지평선으로
물길 따라 흘러간다.
제6부
자연을 생동감있게 재현시킨 시
자네, 쉬었다 가게
백두대간 푸른 계곡
섬섬옥수 끌어 모아
뜬눈으로 오십 구비 흘러온
그대 가슴에
물결 일으킨 철새는
강물을 활주로삼아
허공을 날아오르고
숭어는 강기슭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 갈대꽃 보고파
담방구질 하네.
그대여!
물에 잠긴 죽서루에 누워
휘영청 밝은 달 가슴에 품어 보게나.
현판에 걸린
묵객들의 시詩를 읊어보고
가슴에 뜬 달빛 아래
가람의 멋스러운 풍경
한 수 남기고 가게나.
태양도 서산을 넘을 땐
붉은 땀 흠치고 간단다.
해질녁 바람과 함께
하루의 끝자락
서녁하늘 곱게 물들일 때
오십천 강변을
바람과 함께 걷고 있다.
강둑 벚나무들
꽃잎, 벚지와 이별하고
초여름 따가운 햇살에
피곤한 듯 늘어져 있다.
물새 한 쌍
흰 꼬리 나풀거리며
바람을 거슬러
여울목 건너 둥지로 날고
초승달은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고
시골 처녀처럼
외롭게 보인다.
해질녁 바람과 함께
조각공원
산 그림자 바다 속으로
자맥질 할 때
새천년도로 가로등
낮잠 넉넉히 잔 탓인지
눈빛 초롱초롱하다.
파도에 실려 온 바람
해초 밭을 돌아 왔는가.
조각공원 작품들이 꿈틀거린다.
북쪽 동해항구 바닷가
산자락 경사지에 가난한 어민의
둥지에 밝혀진 불빛이
정자에서 바라본 야경은
고층 빌딩처럼 보인다.
항구의 등대 불빛은
아낙네 애끓는 가슴 어루만지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뱃길을 밝힌다.
죽서루에 안긴 가을
가을 햇살이
벚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잎새에 흔적을 남기고
바람은
시간과 공간을
조절해놓고 대숲에 숨었다.
한 폭의 가을 풍경
죽서루 벼랑 밑 강에 어리어
강물을 채색시켰다.
죽서루에 안긴 가을
가을를 잉태한 오십천
새들도 풍류를 아는지
저마다 시 한 수 읊고
황어도
물속에 잠긴 루에 올라
붉은 노을 바라보며
시 한 수 허공에 토하고
곤두박질친다.
갯바위
파도도 가을을 타는가.
일어설 기력이 없는지
한 알의 포말도 일구지 못한다.
오수에 잠든
동해바다
잔잔한 호수같다.
갯바위, 오랜만에
가을 햇살
목이 타도록 받아먹고
갈증이 나는가.
축 처진 어깨 위에
메밀꽃처럼
하얀 소금 꽃 피었다.
수석
모암에서 떨어져
천재지변으로
풍화분해 되어
오랜 세월 동안
부대끼며 담금질 했소.
여린 살은 다 헤어지고
강인한 근육질
몸매 만들었소.
물안개 피면
신비한 조화로
생동감 있게
살아 숨쉬고 있소.
이 몸
태고의 성질로
좌대에 앉은 모습
인간의 손으로 빚지 못할
예술성 높은 수석
하늘과 땅 사이
오직 홀로
귀한 몸으로 태어 났소.
외로운 섬
가고픈 마음
꿈엔들 없었겠소.
해초들이 발목 잡아
한 걸음도 걷지 못 하네.
파도는
날마다 철석이는데
바위는 등 떠밀리지만
하얀 하품만 하네.
구름은 허허롭고
갈매기는 외로운 섬, 정수리에
흰 페인트 칠하고
오늘도 속절없이
파도를 뒤집어쓰고 있네.
구절초九折草
정선 구절리에 가면
연분홍 흰 꽃
국화를 닮다 만
구절초가 소복이 핀다.
가을 햇살 손잡고
그윽한 향기로
벌들의 애무를 받으며
구구절을 넘겨
숨을 고르고 있다.
시린 손 찬바람 막아
밤이면 달빛 아래
은하의 강
반짝이는 네온 속
풀벌래 합창소리
귀 열어 놓고 들어보니
내사 애달파 더 못 듣겠다.
아우라지 뱃노래는
애간장을 녹이고
꽃방구리는 남의 속도 모르고
바람에 잘도 놀아난다.
제7부
의도적인 비유가 탁월한 시
홍련암1)
활짝 핀 연꽃 속에 앉아
문수보살이 무한 도량을 바라본다.
출렁이는 동해바다
검푸른 파도 위에
햇빛 내려앉아
광명이 넘실거린다.
바다는 제 가슴
골짜기 숲에 둥지를 틀고
뭇 생명들을 키우고 있다.
파도는 거세게 일어나
뭍을 향해
쉼 없이 두들기며
불법 만나기 어려우니
허송세월 보내지 말고
깨어 있으라 하네.
부서진 하얀 포말들
금시 알아차리고
무한도량의 바다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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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원 양양 낙산사 암자
복수초
흙 내음
가슴에 안고
겨울 햇살에 기대어
잔설 등 떠민 복수초
꽃대 올려
산 햇살 속
따신 기운 발라내어
황색 꽃잎 피우는 복수초
흰 바바리코트 입은 겨울 신사
자작나무 찬사를 받으며
노란 꽃불 밝히어 봄을 알린다.
하얀 속살
백목련 가지마다
봄바람 달라붙어
은빛 투구 벗겨내고
하얀 속살 일군다.
꽃망울 잎에 시나브로
따신 햇살 불어
부스스 잠 깨워
꽃눈 열고 반긴다.
봉긋봉긋 하얀 속살
청보리밭
하늘가의 나비는
새하얀 목련
꽃술눈빛 웃음에
새들이 날아들어
재잘재잘 노래한다.
바위 채송화
쉰음산1) 오르다 보면
햇살에 그을린 큰 바위
앞무릎 틈새에
흙 한줌 움켜잡고
파릇파릇 모여 앉은
바위 채송화 만난다.
밤하늘 별을 따다
손끝에 메여
황금빛으로 달아 놓았네.
장군들
어깨 별 달 듯 달고
쉰음산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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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척시 미로면 두타산 자락에 있는 산
갈대의 속울음
갈대 타고 떠난
달마 그리워
바람 부는 강
새들 지저귀는
언덕에 올라, 갈대들
속울음 듣고 있습니다.
마디마디
비우고 비우라는
스님의 법문
시리도록 간직하고
부끄럼 없이
청빈하게 살렵니다.
꽃방망이
벚나무 가지마다
봄빛 한 바가지 받아서
튼 살 아물게 발라놓고
진분홍 꽃망울 일구어
소근대는 별빛 모아
꽃잎 펑펑 터트려
꿀 잔치 열면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엉덩이춤 붕붕
꽃방망이 흔들어
꽃비 내려 봅니다.
제8부
자연의 순리를 노래한 시
꽃 몸살
봄 찾아
돌아다니지 말라.
땅껍질 뚫고 나오는
새싹 다칠라.
튼 가지 아물어
꽃망울 잉태하는 일
쉬운 일 아니야.
잇몸 뚫고 나오는
어금니처럼
몸살을 앓아야
봄이 봄같아진단다.
가을 빗소리
도道를 알려거든
가을비
추녀 끝자락 타고
대지의 건반 두드리는 소리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살피라 하네.
백척간두에서
머뭇거림 없이
내딛는 소리
앉아서 듣고
누워서 서서 듣는
저 소리
챙기라하네.
듣는 이 누구이고
살핀 자 누구인가.
무상한 한 물건
너와 내가
둘 아님을 알라 하네.
분재
산에서 내려와
몰골만 남은 채
손발 묶인 가련한 모습
전신이
철사 끈으로 뒤틀려
작은 그릇에 터 잡고
비실비실 토악질하며
살아온 세월
지난 날
피골이 상접하도록
저린 인고를 감내하며
얼룩지고 탈색된
뼈마디 마다
시린 통증으로
가슴이 저린다.
지금은
욕심 없이 인연 따라
낮은 자세로
환경에 적응하며 삽니다.
검버섯 꽃
아이들
아내 성화에
세월의 흔적
얼굴에 핀 검버섯 꽃
피부과에서 지웠다.
손등에 핀 꽃도
몇 해 지나니
지워진 옹이 옆에
새로운 꽃
고개 내민다.
자연의 순리
함께 살아가자
인생 꽃이니까
누가 저승꽃이라 했던가.
저 언덕 갈 길
다가오는가 보다.
사랑의 눈빛
님을 만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소.
전생의 인연 따라
한평생 사랑하며 살렵니다.
내 목숨 다할 때까지
오직 당신만을 생각하며
해 바라지하고
달님처럼 온화하게
어두운 곳 밝히며 살렵니다.
내게 어려운 일 닥쳐도
능히 헤쳐나가리라
사랑의 눈빛만 있으면
척박한 땅도 옥토로 만들어 가꿀 것이요.
영원한 동반자 되어주오.
님을 위해 한평생 후회 없이
내 생명 질 때까지
당신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이 몸 기꺼이 바치리다.
코스모스
두타산 들녘
시린 손발 풀어 헤치고
여린 허리 흔들리며
뙤약볕 속에
마을 아줌마 손길로
축제의 날 기다리며 자랐소.
가을바람 간지러워
갸날픈 꽃대 올려
도리도리 고운 얼굴
앳된 얼굴로 피었소.
기다림에 목이 길어져
그리움의 눈물도 흘렸소.
그대 오시는
길섶에 줄줄이 서서
님의 발자욱 소리
고천리 들녘에서
귀 기울였소.
축시 -----------------------
이용대 시인, 문단윤리위 부위원장
돌탑
두타산 가는 길에
덕봉의 돌탑이 좌선한다
미움의 싹 돋을 때면
돌 하나 올리며 잘라내고
욕심이 고개 들면 석편으로 깎는 불심
바라보고 들어가 본
일만 물상의 맨 나중엔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몰아일체의 인연으로만 남는데
탄허의 수행 길을 풍경소리로 들춰보며
쌓인 매듭 풀어내어
탑 쌓듯 시집을 펴냈다
到佑 장병훈
허허로운, 그 자리
하늘은 삼라만상을
덮어주지 아니함이 없고
땅은 그 모두를
품어주지 아니함이 없거늘
본디 무無에서 난
먼지거늘
나만 공연히 헛발질 하는구나.
나고 듬 없고
애초 부처도 없고
업보業報도 없고
어디 화두가 있더냐.
아서라,
마음 내지 말고
마음 짓지 말고
마음 멸滅한 자리
그 없던 생각마저 냄도 본디 없으리.
어느 날
한 찰나刹那
바람 스스럽게 노닐고
먼지 그 속에 떠다니니.
원願 본디 없던
저기, 그 자리
피리가락 한 줄 떠 흐르는 듯 아닌 듯 허이.
幹山 지용하
德峰, 시집 출간에 부처
아직은 작은 산 이름이지만
넓은 바다에 깊은 뿌리 내리고
온 세상에 명성을 날리리라.
열정에 찬 그 진솔한 가슴으로
詩 쓰고, 그림 그리며
고향 둘레길 달리는 자전거 사나이
환한 佛빛으로 세상을 밝힌다.
이제
귀밑머리 하얗게 물들이고
한 여인과 지극한 사랑 나누며
아버지, 할아버지 넉넉한 이름표 달고
이웃들이 더 좋아하는 친구가 된다.
나날이 익어가는 詩語들은
가을 들판에 추수를 기다리는데
산야에 돋아난 쑥부쟁이 내음
향이 진하다.
해설 | 장병훈
화엄華嚴에 드는 노래
화엄華嚴에 드는 노래
― 최광집의 시
장병훈 시인, 문학평론가
1. 개관槪觀
최광집의 시 해설을 사실 주저하기도 했지만 애초 2년 전부터 예고된 일이고 또 나와는 모 문학지를 통해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한 인연도 있어 쓰게 된 연유가 있다. 내가 주저한 이유는 또 있다. 과연 그가 서문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젊은 학창 시절에 일찍이 오대산 탄허 스님의 문하에 들어 상좌 생활을 희구하였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까닭에 종교적인 그의 신념이 어떻게 시로 구체화 되었는지를 탐색해야 되겠기에 조심스러웠다는 점을 염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필자가 종교는 다르지만 한 때 천주교 수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시인과 화가로 살고 싶었던 전력을 가진 점이 어쩌면 최광집의 시 세계를 해설함에 있어 통찰의 진지함을 더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의욕이 꿈틀거렸다는 점도 솔직히 시인해야 하겠다.
최광집은 그간 300여 편의 시를 썼었고 화선지에 달마를 수년간 담아 보기도 하고 대학원에서 법사로서의 생활을 하던 분이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천진난만한 동시의 세계를 노래하는 아동문학가로 다소곳이 입문하여 묵언으로 깊은 사색과 통찰력과 대자대비의 심성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 중 이번에 90여 편의 시를 첫 시집으로 출간하고 선 보이고자 한다. 따라서 그의 시를 통찰하고 음미해 보려면 불교의 세계에 몸담은 시인의 정신적 궤적에 대한 담론이 필요할 것이고 더불어 그가 현실 속에서 구현하고자 한 불심이 어떻게 시로 나타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2. 시에 반영된 내용적 기술적 특성
필자는 최광집의 시를 읽고 그의 시와 시집명이기도 한 시 《그대, 쉬었다 가게》를 《자네, 쉬었다 가게》로 논의 끝에 흔쾌이 동의해서 정하였다. ‘그대’라는 언어가 주는 뉘앙스가 법사인 최광집의 세계에서는 좀 서구적이라는 점과 친근감이 떨어진다는 점이 고려되었고 반면, 자네는 그런 점에서 자유롭고 중생과의 친근감을 더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 결과라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최광집 나름의 임시 목차의 각 부를 필자 나름으로 재배치하여 작품을 실은 이유는 최광집의 시 세계를 해설함에 있어, 목차를 통해 다양한 주제 의식과 표현 양태의 특성을 미리 독자로 하여금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목차를 일별해 보면 해설자의 의도와 해석이 바로 드러나게끔 하는 배려의 성격을 갖는다. 이 목차만 보면 내용상의 분석과 경향이 자명해 진다.
따라서, 각 부의 나눔과 그에 따른 시 제목 및 편수는 아래와 같음을 미리 밝힌다. 각부로 나눔은 그 시에서 제일 강조되는 특성으로 나누었다는 것이고 다른 특성은 내포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님은 자명함을 밝힌다. 다른 특성 또한 이런 다양한 의미망을 거느린 시인의 스펙트럼을 폭넓게 수용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감상했으면 한다.
제1부 대자대비의 심성이 빚은 시<19편>
제2부 시인의 인생관을 반영한 시<18편>
제3부 삶의 현장에서 노래한 시<15편>
제4부 자연친화적인 발상으로 빚은 시<제9편>
제5부 신선하고 독창적인 발상으로 쓴 시<8편>
제6부 자연을 생동감있게 재현시킨 시<8편>
제7부 의도적인 비유가 탁월한 시<6편>
제8부 자연의 순리를 노래한 시<6편>, 총<89편>
제1부 대자대비의 심성이 빚은 시로는,
목련 아씨, 꽃의 연가, 파도는, 파도의 허물, 저항, 대통령의 눈물, 평화의 비, 낙엽의 눈물, 낙엽, 쓴소리, 멀고도 가까운 허공, 낙산사 의상대, 잠시 쓰면 내 것이지, 청련암 게송, 지장전에서, 달은 날마다 밝은데, 마음, 바라춤, 영가靈駕의 변辨 등이 있다.
제2부 시인의 인생관을 반영한 시로는,
남은 내 삶을, 해당화, 한 서린 능소화, 상사화, 해국海菊, 쏠비치 카페, 기립 박수, 별들의 외출이 길어지면, 밤바다, 초희, 전통 찻집에서, 노을을 그리는 태양, 눈빛, 여의도, 바람의 몸짓, 첫 사랑, 장밋빛 사랑, 죽부인, 손금 등이 있다.
제3부 삶의 현장에서 노래한 시로는,
번개시장, 가뭄의 골, 동해 산재병동에서, 오동나무 찻상, 옛 가람, 흰 억새꽃 피었는데, 큰 외숙모, 고향 마음, 차창에 그려 본 발가락, 외나무 다리, 느티나무, 광부들의 애환, 삼척 해변으로 와요.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 다관에 우린 차 맛 등이 있다.
제4부 자연친화적인 발상으로 빚은 시로는,
달개비 꽃, 봄비내린 들녘의 흔들림, 별들이 노래하는 강, 활래정, 조개는 예술가, 아우라지 뗏목, 가을 색, 장밋빛 향기, 백목련 등이 있다.
제5부 신선하고 독창적인 발상으로 쓴 시로는,
춤추는 개나리, 일출, 밤 하늘, 바다 햇살, 님의 곁에 앉아, 안개산 약수터, 허공, 바람 손 등이 있다.
제6부 자연을 생동감 있게 재현시킨 시로는,
자네, 쉬었다 가게, 해질녘, 바람과 함께, 조각공원, 죽서루에 안긴 가을, 갯바위, 수석, 외로운 섬, 구절초九折草 등이 있다.
제7부 의도적인 비유가 탁월한 시로는,
홍련암, 복수초, 하얀 속살, 바위 채송화, 갈대의 속울음, 꽃방망이 등이 있다.
제8부 자연의 순리를 노래한 시로는,
꽃 몸살, 가을 빗소리, 분재, 검버섯 꽃, 사랑의 눈빛, 코스모스 등이 있다.
이렇게 미리 최광집의 시 세계를 대별해 나누었지만 실린 시가 그렇게 그 범주 안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양태로 순환하거나 변화하거나 여러 가지 의미를 포괄하여 의미망이 섞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독자는 필자가 나눈 각 부의 의미망에 갇혀서는 절대 작품의 감상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각 부로 나눈 이유는 그런 내용적 분류가 그 안의 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그런 관점으로 시를 읽다 보면 최광집의 다양한 시적 변주가 독자에게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 주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의 시적 능력의 확장성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 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독자는 시간이 나실 때마다 소시집으로 생각하여 각 1부씩 따로 나누어 읽어 보아도 색 다른 독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시집에서는 볼 수 없는 해설자의 사전 배려로 보아 주기 바란다.
3. 사상적 배경
나는 최광집의 시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두고 ‘화엄華嚴에 드는 노래’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종교란 무엇인지? 불교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먼저 간략히 짚고 화엄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그의 시에 접근하는 필요불가결한 통로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는 종교란 신을 전제로 신의 뜻을 따르고 인간이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불교는 좀 다르다고 본다. 기원 전 5세기 초에 태어난 석가모니가 베푼 종교로서 전미개오轉迷開悟ㆍ성불득탈成佛得脫을 종지宗旨로 한 종교가 아니던가. 기존 힌두교의 압력을 견디기 위해 여래의 사후에 제자가 불교의 교리를 만든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아무튼 간에, 어쩌면 가장 인간적이고 무언가 부족한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가 아니던가. 그렇다. 가장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종교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최광집 시인은 법사답게 너그럽고 덕을 갖춘 인품의 소유자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특히, 관음보살이 중생을 사랑하듯이 대자대비의 넓고 커서 가이없는 자비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한다.
화엄華嚴은 또 어떠한가. 화엄은 불법佛法의 광대무변함을 비유적 표현이며, 온갖 분별과 대립이 극복된 이상적인 불국토佛國土인 연화장세계를 나타낸다. <화엄경>에 표현된 화엄의 사상은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서로 끊임없이 연관되어 있으며, 그대로가 바로 불성佛性의 드러남으로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과 성기설性起說의 기초를 이룬다. 법계연기설은 현상세계의 개개의 사물들이 겉으로는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개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홀로 있거나 홀로 일어나는 일이 없다. 같이 서로 원인이 되는 무한한 연관관계를 갖는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화엄사상은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돋 하나’여서 우주 만물이 서로 원융圓融하여 무한하고 끝없는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핵심을 이룬다. 성기설은 모든 존재를 부처의 성품이 발현된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화엄경에서는 부처의 지혜가 천지만물에 그 빛을 두루 비추고 있으며, 모든 존재가 불성의 현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현상계 밖에서는 따로 진리의 세계나 실체가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현상계만을 절대적으로 긍정한다. 이런 시각을 여래성연기如來性緣起라고 한다. 이는 의상대사가 화엄경의 발전과 보급에 힘쓴 결과이기도 하고 어쩌면 저자도 관심이 많아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에 대한 시를 쓴 연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최광집의 시를 ‘화엄에 드는 노래’라고 명명한 것은 한 시인이 사상과 경험이 언어로 표현될 때는 이를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는 것과 사상이 경험에 앞선다는 내 철학에 의존한다. 그래서 최광집의 사상을 모르고 시를 접할 수 없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사상적 배경을 잠시 논한 이유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최광집의 시 세계는 만행萬行 만덕萬德을 닦아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하는 화엄華嚴의 세계에 드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감히 명명해 본다는 것이다. 앞으로 그의 시는 이런 관점에 증거 할 시세계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임을 미리 밝혀 놓는다. 그 도정에 미진하고 부족한 것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어디 하루 아침에 도를 득하는 사람이 흔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어느 순간에 득도하여 깨닫느냐, 또 한 번 깨달으면 끝인가, 끊임없이 득도의 업을 행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물론 논외로 하겠지만, 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튼, 최광집의 시를 독해함에 있어 시를 통해 어느 경지에 있을지 상상하며 읽는 재미를 느끼는 것도 그와 그의 시를 알아보는 독해법의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미리 언급한 바 있듯이 각 부로 나누었지만, 먼저 제1부 각 부에서 내용적으로 제시한 특성을 증거하고 난 후, 대자대비의 심성이 빚은 시로써 화엄에 드는 시 <19편>로 볼 수 있고, 제2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철학적 태도와 신념으로서의 시인의 인생관을 반영한 시 <18편>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시집의 반에 해당하는 시편들이 불심에서 나온 화엄에 드는 시와 인생관으로 볼 수 있고 다른 제3부에서 제8부까지도 크게 보면 그 범주 안에서 대상과 마주한 체험으로 생성되고 구현된 화엄의 세계로 드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임을 필자는 미리 언급하고 싶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필자는 이에 집중하여 그의 시편들이 어떻게 시에 스며있는지에 대해 지면상 상세하게 모두 다룰 수는 없어 각 부마다 한편씩 배정하여 개괄적으로 해설해 보고자 한다.
4. 사상과 경험을 구현한 구체적 성과와 전망
이제 최광집 시인의 제1부 대자대비의 심성이 빚은 시 <19편>를 살펴 보고자 한다. 원래 대자대비란, 산스크리트어의 어원에 비추어 볼 때, 자慈는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고 비悲는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임을 비춰 볼 때, 중생을 불쌍히 여겨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덜어주려는 부처나 보살의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고결한 ‘하얀 목련이 진다고 슬퍼하지 말고 화자인 시인은 그 목련의 가슴 속 향기 가득했던 분내와 꽃잎 발자국을 되돌려 줌으로써 웃으며 밟고 가소서’라고 기원한다. 그리고 ‘그대, 얼룩져 떨어진 꽃잎도 사랑합니다.’라고 노래한다. 바로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목련에게 즐거움도 주고 괴로움도 덜어주며 사랑한다는 부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더구나 생명을 다한 ‘떨어진 꽃잎마저도 나는 사랑합니다.’라고 결연히 읊고 있는 것이다.
제1부에 실린 19편의 시에서 최광집의 그런 만물을 사랑하는 대자대비의 큰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목련을 의인화하여 화자와 동일 선상에 놓고 진솔하고 진지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시적 품격을 눈 여겨 봐야 할 것이다. 즉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회복함으로써 지행합일 하는 실천적 자아의 본 모습이 확인되고 시의 완성도가 높음을 인지하게 된다. 따라서 시인의 그런 대자대비의 심성이 충만함을 단적으로 보여 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각 부를 상징하는 인용시는 대체로 전문을 인용한다. 그래야 시를 한 작품으로 크게 바로 볼 수 있고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며 부분적 집착으로 인한 작품 해석의 편견이나 졸렬함에 구속 되거나 갇히지 않게 하기 위함임을 양지하시기 바란다.
그대, 꽃 진다고
슬퍼말아요.
눈이 부시도록
뽀얀 가슴 속
향기로운 분내
잊을 수 없습니다.
그대, 가시는 길에
향기 가득했던
꽃잎 발자국 놓아드리니
웃으며 밟고 가소서.
그대, 얼룩져
떨어진 꽃잎도
나는 사랑합니다.
― 「하얀 목련」 전문
제2부는 시인의 인생관을 반영한 시<18편>으로 구성 되어 있다. 그 중 <남은 내 삶을>을 통해 시를 살펴보자. 인생의 삶은 어둠을 전제로 제시하며 그 속에서라도 시인은 ‘진흙을 털어내는/ 연꽃으로 살겠다’고 하면서 바른 삶을 위해 형상 없는 내 육신을 확인하고 무無 속에 주인공으로 주체자로서의 삶을 표방하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물처럼/ 자신을 정화하며/ 선과 악을 시비하지 말고/ 묵언하며 살리라.’고 천명한다. ‘우주 공간의/ 자연과 더불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후회 없는/ 삶을 살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최광집의 인생관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의 불교적 신념이 얼마나 투철하고 일관되어 있는가에도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진흙을 털어내는
연꽃으로 살리라.
어둠이 가기 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바른 삶을 살기위해
형상 없는 내 육신의
주인공을 들여다보며
끌려 다니는 삶을 살지 않으리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물처럼
자신을 정화하며
선과 악을 시비하지 말고
묵언하며 살리라.
우주 공간의
자연과 더불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후회 없는
삶을 살리라.
― 「남은 내 삶을」 전문
제3부의 삶의 현장에서 노래한 시 <15편>편도 퍽 많은 편 수를 차지한다. 이는 최광집 시인이 비록 젊은 시절의 산사의 스님의 꿈은 접었을지라도 중생이 사는 현장 도처에서 살아있는 중생 제도濟度의 꿈은 끊임없이 이루어 가고자 하는 모습인 것이다. <광부들의 애환>을 보자. “못 배운 것도 서러운데/ 천민 대우 받으며/ 생명을 담보로 가족의 생계를/ 어깨에 짊어진 검은 얼굴들”을 지켜보며 살아 온 시인은 괴롭다. 이는 부처가 바라는 세상은 정녕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 광부는 규폐라는 불치의 병에 걸려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가 많은, 중생으로서의 삶을 광산 임원으로 재직시 곁에서 동거동락 하며 보아 온 시인의 심회는 비록 시에는 자세히 언급을 불허했지만 “폐를 달래며 살아가는 슬픈 삶이 애처롭다.”고 확언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지질시대 지하에 매몰되어
강한 압력으로 탄화한 에너지 자원
오랜 세월 흘러
광부들의 손에 끌려나온 석탄
산업의 원동력으로
민초의 등과 허기진 배를
달래준 흑진주
못 배운 것도 서러운데
천민 대우 받으며
생명을 담보로 가족의 생계를
어깨에 짊어진 검은 얼굴들
칠흑 같은 갱 속에서 나와
검은 연탄불 석쇠 위에
돼지비개 구워 시름 달래는 찌든 몸
깔깔한 막걸리로 폐를 달래며
살아가는 슬픈 삶이 애처롭다.
골목길 옆에 연탄재 켜켜이 쌓여가는 탄광촌
그들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다시 광부들을 울리며
폐광의 소문이
도시를 흔들며 지나가고 있다.
― 「광부들의 애환」 전문
제4부 자연 친화적인 발상으로 빚은 시 <제9편>을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에 분류한 시편들뿐만 아니라 다른 각 부에서도 미리 언급한 바 있지만, 특히 자연친화적인 시편들은 많다. 다만, 독자를 위해 강조점에 따라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여기에는 적게 실린 점을 양해 바란다. 이제 <장밋빛 향기>를 살펴 보기로 하자. 여름 끝자락을 장식하는 붉은 정열의 장미를 연상하자. 그리고 그 ‘장미’보다 시인은 ‘장밋빛 향기’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섬세한 시인의 촉수가 오감각에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데 매력을 느낀 까닭이겠다. 아무튼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존재하는 한 그 존재에 값하는 의미는 있는 법이다. 그 이유가 없다면 생명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장밋빛 향기는 ‘님을 위해 살뜰히 피었’고 ‘님의 가슴에 붉은 꽃잎 자국을 남길까요. 분홍빛 향수를 뿌릴까요.’라고 애절히 묻는가 하면 ‘그래도 못 잊어 돌아서기 싫으시면 달빛 흐르는 야밤에 살짜기 오시’라고 애원하고 있다. 장미는 장밋빛 향기가 있기에 구애를 할 수 있었고 삶의 의미인 님을 달빛 흐르는 야밤에 오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그 님은 시인일 수도 있고 부처일 수도 있다. 이 장면에서는 독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딱히 이 시에서는 단서를 유보함으로써 다양한 의미망의 지평을 열어놓고 있다. 그리고 그의 언어의 어미를 통한 호소력 있는 간절함이 더욱 자연 속에서 친화력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밤이슬에
헹궈낸
짙은 장밋빛 향기랍니다.
코가 저리고
귀가 간지러워도
마음의 창은 닫지 마세요.
님을 위해 새벽까지
소곤소곤 살뜰히 피었습니다.
한 발 더 다가와 주세요.
님의 가슴에
붉은 꽃잎 자국을 남길까요.
분홍빛 향수를 뿌릴까요.
그래도 못 잊어
돌아서기 싫으시면
달빛 흐르는 야밤에
살짜기 오시구려.
― 「장밋빛 향기」 전문
제5부 신선하고 독창적인 발상으로 쓴 시 <8편> 중에서 <밤 하늘>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두타산 산마루/ 해질녘 풍경은/ 허공 가마솥에/ 순두부 끓듯/ 몽울몽울/ 노을이 번진다.” 거나 “밤하늘/ 작은 별들도 뛰어 나와/ 은하수 다리를 놓으니/ 매밀 꽃 핀듯하다.” 거나 “달님은 두리둥실/ 죽서루 용마루에 걸터앉아/ 대숲 바람 소리에/ 갈 길을 잊은 듯/ 잠이 들었다.”는 진술은 참으로 비유가 신선하고 독창적인 발상이다. 이는 시인이 자연을 오래도록 관찰하는 시선이 그렇게 남 다르고 새롭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입증되고 남음이 있다. 남이 이미 어떤 대상을 보고 사용한 비유 중에서 의태어나 의성어를 무감각하게 쓴다면 이미 그 시인은 시인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무릇 시인이나 다른 모든 예술가는 자기 나름의 개성과 목소리로 인생과 자연과 신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각 분야에 한 사람 이상의 시인이 왜 필요한가에 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인의 결연한 모국어 사랑과 세련된 시선이 남달라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두타산 산마루
해질녘 풍경은
허공 가마솥에
순두부 끓듯
몽울몽울
노을이 번진다.
밤하늘 큰 별들이 하나 둘
자리 잡은 뒤
작은 별들도 뛰어 나와
은하수 다리를 놓으니
매밀 꽃 핀듯하다.
달님은 두리둥실
죽서루 용마루에 걸터앉아
대숲 바람 소리에
갈 길을 잊은 듯
잠이 들었다.
― 「밤 하늘」 전문
제6부 자연을 생동감 있게 재현시킨 시 <8편>은 앞에서 논의한 제5부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갖는다. 제5부는 발상의 문제이고 제6부는 자연의 재현을 다루기 때문이다. <자네, 쉬었다 가게>를 보자. 최광집의 일관된 불교적 삶의 축적과 시적 성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이고 또한 대표적인 시 제목으로서의 상징성을 띈 시다. 제1연에서 시인은 백두대간이라는 공간은 ‘철새가 허공을 날아오르고 숭어는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과 갈대꽃을 보고파 담방구질 하는 공간이다.’ 제1연은 백두대간의 푸른 계곡을 얼마나 자연을 생동감 있게 재현해 놓았는지 알아 볼 수 있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2연에서 이런 활기찬 공간에 모든 중생들은 ‘밝은 달 가슴에 품고 멋진 시詩도 읊어보고 가람의 풍경을 한 수 남기고 가’라고 한다. 즉 세상의 풍광에 취하면 즐길 땐 즐기고 괴로울 때는 괴로움을 덜어내라는 대자대비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곧 화엄의 길에 드는 단초이자 담론으로 다룰 수 있는 계기를 담보한다.
백두대간 푸른 계곡
섬섬옥수 끌어 모아
뜬눈으로 오십 구비 흘러온
그대 가슴에
물결 일으킨 철새는
강물을 활주로삼아
허공을 날아오르고
숭어는 강기슭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 갈대꽃 보고파
담방구질 하네.
그대여!
물에 잠긴 죽서루에 누워
휘영청 밝은 달 가슴에 품어 보게나.
현판에 걸린
묵객들의 시詩를 읊어보고
가슴에 뜬 달빛 아래
가람의 멋스러운 풍경
한 수 남기고 가게나.
태양도 서산을 넘을 땐
붉은 땀 흠치고 간단다.
― 「자네, 쉬었다 가게」의 전문
제7부 의도적인 비유가 탁월한 시 <6편> 중에서 <홍련암>을 보도록 하자. 시 속에 나오는 문수보살은 누구인가. 여래如來의 왼편에 앉아 지혜를 관장하지 않았던가. 보통 사자를 타고 오른 손에 지검智劍, 왼손에 연꽃을 들고 있지 않은가. 그런 지혜의 문수가 《홍련암》에 등장 한다. “동해바다엔 햇빛 내려앉아 광명이 넘실”거리고 “바다는 뭇 생명을 키우고 또한 파도는 불법 만나기 어려우니 깨어 있으라 하고 하얀 포말들은 금새 알아차리고 무한 도량의 바다로 돌아간다.”고 노래하는 것이다. 이는 의도적인 문수로 인한 비유가 있음과 함께 지혜의 은덕으로 말미암아 광명을 노래하고 뭇 생명이 키워지고 파도는 불법을 만나기 위해 깨어 있으라 하고 포말은 결국 무한 도량의 바다로 돌아간다는 탁월한 비유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활짝 핀 연꽃 속에 앉아
문수보살이 무한 도량을 바라본다.
출렁이는 동해바다
검푸른 파도위에
햇빛 내려앉아
광명이 넘실거린다.
바다는 제 가슴
골짜기 숲에 둥지를 틀고
뭇 생명들을 키우고 있다.
파도는 거세게 일어나
뭍을 향해
쉼 없이 두들기며
불법 만나기 어려우니
허송세월 보내지 말고
깨어 있으라 하네.
부서진 하얀 포말들
금새 알아차리고
무한 도량의 바다로 돌아간다.
*홍련암 : 강원 양양 낙산사 암자
― 「홍련암」 전문
제8부 자연의 순리를 노래한 시<6편> 중 <꽃 몸살>을 살펴보기로 하자. 모든 자연이나 인생에서나 공통적으로 볼 때 순리를 역행하거나 어긋나면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인생이 순리적으로 흘러가지 않아 낭패를 본 경험이 따르는 것을 흔히 많이 본다. 최광집은 이런 인생의 헛된 점을 간파하고 누구나 인생 삶에서 무리수를 경계하는 마음 즉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슬며시 설법하듯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봄을 매개로 하여 꽃망울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결국 몸살을 알아야 봄이 온다는 순리를 노래한다. 인위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어떠한 행위도 자연의 순리에 벗어난다면 안 되듯이, <꽃 몸살>처럼 인간도 정도正道를 따라 순리를 지키며 살라는 마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봄 찾아
돌아다니지 말라.
땅껍질 뚫고 나오는
새싹 다칠라.
튼 가지 아물어
꽃망울 잉태하는 일
쉬운 일 아니야.
잇몸 뚫고 나오는
어금니처럼
몸살을 앓아야
봄이 봄같아 진단다.
― 「꽃 몸살」 전문
지금까지 필자는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그의 시를 “화엄華嚴에 드는 노래”로 상정하고 최광집이 지향하는 시 세계에 대한 개괄적인 89편의 작품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그의 89편의 작품은 크게 각각 8부로 나누어 내용상으로 분류될 수 있겠다는 점과 그 분류는 절대적인 분류가 아닌 상대적인 분류에 속하며, 각자의 시에서 크게 강조하고 싶은 의도에 따라 나누었고 각 시는 내용상 내포되는 다른 의미망을 동시에 거느릴 수 있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 하였다.
그리고 전편을 통해 종교적 경험과 시인의 편력이 말해 주듯이, 시로 구현된 시 세계는 당연히 인간과 작품 세계가 어긋남 없이 같은 성향을 띄고 나타난다는 전제하에 최광집 시인은 결국 본인의 의도한 길에서 화엄華嚴의 세계로 나아가는 도정에 있다는 점과 그 결과의 성과물이 바로 이 시집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비록, 아직 그의 해탈의 삶은 도정에 있고 중생을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감싸는 세계가 아직은 미완未完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경외심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200여편의 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새로운 시작품을 새로 만날 수 있으려니와 더불어 순진무구한 동시의 세계를 감상할 미래가 벌써 기대되기도 한다. 일상 최광집의 첫 시집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을 보는 관점에서 중요한 단초이고 담론으로 제시되는 바 크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최광집의 시 세계가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것이고 그 길은 역시 화엄의 길을 어떻게 뚫고 용맹정진 하느냐에 따라 시의 뜨거움의 깊이가 또한 차가움의 엄정함이 새로움으로 꽃 피어날 것으로 믿는다. 그리하여 종교와 문학의 새로운 지평과 일치를 이룰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