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선의 안전돋보기
정전(停電)과 복전(復電)의 위험
강태선 (농생물91, 산업안전감독관)
간밤 나는 피재자(被災者)가 되었다. 나는 대규모 정전사태가 있었던 의정부 용현동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다. 전기가 갑자기 나간 것은 9시 뉴스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창으로 다른 동을 보니 역시 암흑이다. ‘깜깜, 깜깜’하면서 세살 먹은 아들이 울먹인다. 처음이다. 어려서 시골에서 살 때에는 수시로 있었던 일인데 대도시로 나와 살면서 거의 겪지 못하던 일이다.
정전과 함께 윙하는 굉음과 함께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마 가동된 일이 별로 없었을 UPS는 유난히 매연을 뿜어댄다. 11층인데도 매연이 창문을 통해 스물스물 들어온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창문을 닫을 수도 매연냄새에 창문을 열 수도 없다. 놀이시설과 주차장으로 아이들 모여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마치 불나비처럼 단지내 가로등 근처로 모여드는 것이다. 나도 나가보고 싶지만 발전기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는 아무래도 찜찜하다.
매연 때문에 베란다 문을 대부분 닫고는 무심결에 선풍기를 튼다. 아내가 그걸 왜 켜냐며 웃는다. 아! 그렇지 지금은 정전이다. 촛불을 켜고 아이를 달랜다. 아이는 ‘불, 불’, ‘깜깜, 깜깜’을 연발하며 울먹이다가 이내 10시가 못되어 잠들었다. 평소보다 무척 빠른 시각이다. 이건 재해가 아니라 횡재다. 그런데 정전은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밤 11시가 좀 넘어서 관리사무소에서 단지 밖의 전기고장은 복구를 했는데 전기를 들어오면서 단지 변압기가 망가졌다는 방송을 낸다. 최소 2시간 이상은 더 있어야 고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회사에서 집으로 가져온 일은 아이가 일찍 자는 횡재에도 불구하고 결국 손을 못 댈 것 같다. 그냥 자기로 한다.
새벽 2시 반쯤 ‘틱틱’거리는 반복적인 소리에 잠을 깼다. 일어나보니 거실이며 부엌에 스위치를 내리지 않아 전등이 모두 켜지는 바람에 잘 자던 둘째애가 갑자기 칭얼거린다. ‘틱틱’거리는 반복적인 소리는 가스누설경보차단장치를 수동으로 돌려놓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전기가 들어오면서 오작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크게 틀어놓고 시청을 했냐 싶게 거실 TV도 켜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낸다. 하여간 새벽녘 복전(復電)은 정전만큼의 소란을 겪게 했다. 복전은 사실 정전보다 위험하다. 우리 아파트 단지 변압기가 갑자기 손상된 것은 현재 조사 중이나 아마도 복전되면서 돌발전류로 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복전시 갑작스런 과전류는 전기장치에 치명적일 수 있다.
<산업안전기준에관한규칙> 제37조. 정비작업 등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이 당해 기계를 운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당해 기계의 기동장치에 잠금장치를 하고 그 열쇠를 별도관리하거나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필요한 방호조치를 해야 한다 <그림. 만화로보는산업안전기준에관한 규칙 중>
산업재해에서도 정전과 복전이 큰 위험요인이 된다. 특히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장치산업일 때 더욱 그렇다. 일단 각종 가스류의 자동차단장치 등 안전장치가 정전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전이라는 것은 잦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작업자들이 돌발 행위를 하기 쉽다. 내가 아는 장치산업에서 정전과 관련된 큰 재해가 있다. 연중 쉬지 않고 돌아가는 큰 분쇄기 여러 대를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분쇄기에 노동자가 형체도 없이 유명을 달리한 사건이다. 갑작스런 정전으로 장치가 서자 운전자가 바로 그 때를 이용해 분쇄기를 청소하려고 분쇄기 안에 들어간 것이다. 문제는 갑자기 전기가 돌아왔을 때 벌어졌다. 물론 운전자는 분쇄기에 들어갈 때 전원을 모두 내리고 들어갔으나 후속대책을 세우지 않고 내려갔던 것이다. 운전장치 전원을 내리고 ‘정비중’ 경고표지를 스위치에 부착하고 전원박스 열쇠는 운전자가 직접 가지고 청소작업장으로 갔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안전의 철칙 ‘Lock Out, Tag Out(일명 LOTO)’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도 명기되어 있는 것이다. 정전 후 애타게 기다리던 복전은 그야말로 광복(光復)이었을 것이다. 공정 관리감독자는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운전실을 돌면서 내려진 스위치를 모두 올렸다. LOTO system이 전혀 자리잡지 못한 사업장에서 당연한 행동이다. 결국 분쇄실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는 흔적만으로 그가 분쇄기 안에 있었음을 알렸다.
일반 가정에서 복전은 잠시의 소란일 수 있으나, 안전보건시스템이 없는 사업장에서의 복전은 광복이 아니라 또 다른 재앙일 수 있다.
**필자 소개**
강태선 회원은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석사과정 졸업. 현재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직업병으로 고통받던 원진레이온 노동자들과 사회단체들의 투쟁으로 설립된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일했으며 선구자가 인연이 되어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 농작업건강실에서도 일하였다. 한국산업안전공단 광주지역본부 안전보건지원팀을 거쳐 현재 노동부 성남지청 산업안전과 산업안전근로감독관으로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