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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뭐였길래!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읊조릴 때가 있다. 전생(前生)은 말 그대로 현재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일생을 의미한다. 전생의 개념은 흔히들 알고 있듯이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비롯됐다. 윤회(輪廻)는 구원될 때까지 죽음과 탄생의 삶이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믿는 사상이다. 불교의 대표적인 핵심 사상이지만 인도 고대 문헌인 『우파니샤드』에서 유래했다. 고대 인도인들은 왜 이 세상에서 죽은 사람이 다른 세상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했을까.
사람이 아닌 사람, 불가촉천민 (不可觸賤民, Untouchable)
윤회사상의 뿌리를 찾아보기 위해선 카스트 제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카스트 제도는 인도의 신분 제도로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무사), 바이샤(상인), 수드라(노예) 등 4개의 계급과 그 외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947년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인도에선 여전히 카스트 제도의 악습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 불가촉천민은 노예 계급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못한 최하층 신분이다.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불가촉천민이라 불린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을 '신의 자식들' 이라는 뜻의 하리잔(Harijan)으로 부르자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고대 인도 브라만교의 경전 중 하나인 『리그베다』(Rigveda)는 푸루샤(purusa)의 죽음으로 인간의 창조신화를 설명했다. 푸루샤(purusa)는 우주의 본질을 상징하는 신 혹은 최초의 인류인 원인 (原人)을 일컫는다. 푸루샤의 입에서 사제계급인 브라만(Brahman)이, 팔에서는 군인계급인 크샤트리아(Ksatriya)가, 허벅지에서는 상인계급인 바이샤(Vaisya)가, 두 발에서는 노예계급인 수드라(Sudra)가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인간을 구원해야 할 종교가 카스트 제도를 만들어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불가촉천민에게 종교란 구원의 존재가 아닌 억압의 도구가 아닐까.
카르마(Karma, 業)의 법칙
하지만 인도 인구의 90%에 달하는 노예계급은 자신의 신분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급이 카르마(karma), 즉 업(業) 때문에 기인했다고 믿는다. 카르마란 산스크리트어로 삶의 '행위', 혹은 '행위의 결과'를 가리키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카르마는 '행위의 잠재력'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는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업(業) 사상은 힌두교에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도 다음과 같이 업 사상이 존재하고 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자기 육체의 욕망을 따라 심는 사람들은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의 뜻을 따라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 6: 7-8』 中
우파니샤드는 카르마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법칙이며 '악업'은 반드시 인과법칙에 의해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얘기한다. 물론 업이 인과법칙의 결과를 정확히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업의 결과가 곧바로 나타남을 의미하는 동시인과(同時因果)가 있는가 하면, 행위의 결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이시인과(異時因果)도 존재한다. 우파니샤드 이전의 인도인들은 신에게 희생제의를 받침으로서 악업이 소멸된다고 믿었고 우파니샤드는 희생제의에 대한 반성으로 '카르마의 법칙'을 강조하게 되었다. 인도의 정치인이자 철학자인 라다크리슈난은 '카르마의 법칙'을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이 법칙은 우리가 삶을 통해 경험하듯이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법칙이다. 우리가 바다의 썰물을 막고 별의 운행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인 행위의 결과가 발현하는 현상을 저지할 수는 없다. 카르마의 법칙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자기의 그림자를 뛰어넘으려는 것만큼이나 무모하다."
자유의지와 윤회의 초월
카르마(Karma), 즉 업(業)은 윤회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우파니샤드는 자기가 만든 악업의 결과로 다시 태어나서 겪는 생의 고통을 윤회라고 말한다. 또한 업보에 따라 윤회하지 못하는 생도 있다고 한다. 불가촉천민이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고통스런 삶을 사는 것 역시 전생의 업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파니샤드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고도 얘기하는데 그 중심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우파니샤드는 자유의지로 악업을 피하고 선업을 쌓는다면 카르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만드는 대로 행하는 대로 그대로 되리니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자가 될 것이오, 악한 일을 하면 악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원하는 대로 그대로 의지가 생기고, 의지가 생김으로써 업을 쌓고, 업을 쌓음으로써 그 결과를 드디어 얻게 되는 것입니다.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中
아트만 (atman)
우파니샤드는 또한 나의 본질을 외계(外界)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아트만과 동일시 할 때, 더 이상 업을 짓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트만(atman) 이란 자아(自我), 개아(個我), 영혼 혹은 영묘한 힘을 의미한다. 본래 호흡, 기식의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인도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아트만은 업(業)의 씨 없는 존재다. 우파니샤드는 나의 본질을 외계(外界)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아트만과 동일시 할 때, 더 이상 업을 짓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참 모습이 불멸의 신성인 아트만임을 자각한다면, 더 이상 소멸할 것들에 관하여 집착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환영(幻影)의 세계에 대한 집착에서 영혼이 자유로워진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기계적인 업의 법칙에 지배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아트만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유의지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고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도의 정치가이자 인권운동가인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는 식수권 운동, 분리선거 운동, 집단 불교 개종 운동 등 민중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또한 그는 카스트 제도를 없애는데 크게 공헌했다. 인도인들은 그를 '아버지와 같은 스승'이라 부르며 존경하고 있고 인도 내에는 간디의 동상보다 암베드카르의 동상이 더 많다고 전해진다. 인도인들의 아버지이며 멘토 같은 존재인 그는 사실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자유의지로 개척하고 선업을 쌓으며 불가촉천민이란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지금의 삶이 힘들다고, 전생에 지은 업을 탓하기 보단 암베드카르처럼 자유의지로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나가 보는 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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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uwindow (uwindow@artnstud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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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공부 잘 하고 감사드립니다. 좋은 카페 또 오고픈 카페 감사합니다.
땡스~~
열심히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