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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베르1401권4장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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벩송의 강의록 제4권 제4장 그리스철학사이다.
제1장 탈렉스에서 제10장 멜리소스까지이다.
앞에 입문의 글은 앙리 위드가 쓴 서지적인 이야기이다.
- 마지막 인명 파일은 아직완성된 것이 아니지만 10장까지 등장인물은 거의 찾아놓은 것이다.
(47OLA)
**************************************************{강베르1401권4장4}
베르그송 강의록 4: 그리스철학에 관한 강의
베르그송, PUF, 2000, P. 278.
역자 입문 5-16
1- 플로티누스 강의 (아마도 1898-1899년 경) 5-7
2-그리스 철학사 강의 (앙리 4세 고등하고 칸반) 7-9
3- 알렉상드르 학파의 강의 (1884년경) 9-11
4 - 검은 노트 (끌레르몽 페랑 대학, 1884-1885) 11-16
[해제, 서지, 그리고 감사의 말]
검은 노트란 익명의 학생의 노트이다. 어찌어찌하여 이 노트가 옴브르단(André Ombredane)의 소유였다가 귀똥(Jean Guitton)에게 선물로 이전되었고, 그리고 위드(Henri Hude)가 받아서 정리한 것이다. 부트루(Emile Boutroux)를 모델로 강의 때에는 한 학생이 받아쓰고, 다른 학생들은 그것을 다시 노트로 썼다. 베르그송의 것은 부트루의 강의록과 다르다. 에블랑(François Evellin)의 작품 인용뿐만 아니라, 부트루와 스타일과 내용도 다르다. 벩송의 영향은 젤러(Zeller)의 영향인데, 부트루가 1권은 1877년에 번역했고 2권은 1884년에 번역했다. [베르그송은 1883년에 클레르몽 페랑 고등학교로 왔고, 다음 해 클레르몽페랑 대학에서 이 강의를, 그리스철학을 강의를 했다.]
그의 강의는 이오니아학파를 물리학자로 소개했고, 그리고 소크라테스 이전철학자들을 과학철학의 관점에서 연구했다. 엘레아학파에 대한 검토는 세심하고 세밀하다. 앙리구이(Henri Gouhier 1898-1994)에는 에블랑 인용(1881)과 엘레아학파의 제4논증 인용(MM 1896) 사이에 이 노트가 작성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 강의록은 철학준비반이나 재수반보다 수준이 높고 세밀하다. ENS강의인 “플로티누스 강의록”처럼 명석하고 자유로운 방식이 있다. 게다가 꼴레쥬드 프랑스 강의도 아니다. 그러면 이 강의록은 1884년에서1888년 사이에 근무했던 끌레르몽 페랑 대학 강의일 수 있다.
베르그송이 이 대학에서 맡은 강의들을 목록을 읽어보면, 그리스 철학사를 여러 해 강의했다. 이 노트는 강의 초반이고(플라톤까지이다) 후반은 상실되었다. 상식으로 추측컨대, 그리스철학을 강의하고 그리고 연대별 철학사를 강의 했을 것이다. 그래서 위드의 견해로는 아 검은 노트는 1884년 강의일 것이고 늦어도 1885년일 것이라 한다.
<형언할 수 없는 일자는 또한 일자로서는 가능할 수 있는 인격이다. 자유로운 인격성의 문화적 관점은 전체 속에서 흡수라는 관점을 능가할 것이다. (Hude, 14)>
베르그송에게는 연구된 학설이 있다. 그리고 그는 작가의 한친구로서 행실을 채택한다. 그 작가가 예를 들어 플로티누스와 스토아학자들이다.
실재론적 해석학이 필요하다. (16) 이말이 무슨 말인지?
이 4권의 책을 출판하는데 5년이나 걸렸다. 감사를 전한다. 상속자 종손녀 아니 뇌르뷔르제르(Anni Neurburger), 두 선생(Jean Guitton과 Henri Gouhier), 협력자들(Françoise Vinel, Rémi Brague} 성실히 도와준 자(Jean-Louis Dumas, Catherine Brisson, Thibaud Collin), 친구(Pierre Magnard), 총서편집자(Jean-Luc Marion_, 그리고 끌레스(Claire)(부인인가?) 등게 감사 / 앙리 위드 / 2000년 8월 15일 (16)
[키르쉬너(Kirchner, s.d.) Die philosophie des Plotin (deu.wiki 학자와 출판연도 찾을 수 없음)] / [옴브르단(André Ombredane (1898—1958) 프랑스 의사 심리학자. ENS출신으로 1922년 철학으로 교수자격통과, 1929년 의학으로 박사학위. 정신과 인턴, 소르본 뒤마(Georges Dumas)교수의조교였다. 작업의 분석(L’analyse du travail, 1955) (avec Jean-Marie Faverge)으로 유명하다. / 기똥(Jean Guitton, 1901-1999) 『뿌제 선생의 초상(Portrait de Mousieur Pouget)』/ 위드(Henri Hude 1954-) ENS출신 철학으로 교수자격, 그리고 박사를 했다. 베르그송 강의록 편집자이다. ] / 에벨랑(François Evellin, 1835-1910) 프랑스 철학자. ENS 철학으로 박사. 무한과 양(Infini et quantité, étude sur le concept de l'infini en philosophie et dans les sciences (1880)(학위논문, 1881) / 젤러(Eduard Zeller, 1814-1908) 독일철학자, philosophe allemand. Die Philosophie der Griechen in ihrer geschichtlichen Entwicklung (1844-1852)(3권) [프랑스 번역은 1869-1881일까? 그리고 부트루가 1권은 1877, 2권 1884로 되어 있다. 주5에서; 2권으로 번역했다는 말인지? / 벩송은 1880년 가을에 졸업했다. (47LMH)]
[보스코비치(Ruđer Josip Bošković, Ruggiero Giuseppe Boscovich, 1711-1787), 크로아트 출신 제스위트 신부, 수학자 물리학자, 시인, 철학자. ]
제4장 그리스 철학사 Histoire de la philosophie grecque 153-261
[1884-1885년 끌레르몽-페랑 대학의 강의록으로 추정된다.]
* 입문 Introduction 153
근대철학사는 텍스트에 접근하여, 거기서 체계들의 전시를 해내기 위해 이것을 배열하는 것인데 반해, 고대철학사는 재구축의 방법을 따라야만 한다. (153)
여기서 텍스트의 비파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전승된 단편들은 변질되었고,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동안에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모순과 불합리라는 딱지를 붙이는데 너무 많이 서두른다. 여기서 철학적 비판이 절대적 필연성이 된다. 이 텍스트들을 재확립할 필요가 있고 그리고 알아맞출 필요가 있다. (153)
154우리에게 남아있는 텍스트들의 문자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해가 가능하려면, 쓰여진 것의 번역의 학설을 다시 생각해야한다.(154)
따라서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는 것이 그렇게 자주 필요할 것이다. 철학자들에게서 있지도 않은 난점들에 대해서는 눈을 닫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154)
154재구축의 방법은 진화적 관념을 안내자로서 일관성있게 취급할 것이다. 결국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들이 독창성을 덜 주장했다는 점에서, 근대철학과 구별된다. 이 철학자들은 문제의 확장을 전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154)
[고대철학에서] 철학적 질문들이 제기되자마자, 가능한 대부분의 해결책이 계속해서 솟아났다. 어떤 시기에 매우 강한 저항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이 해결책들 사이에 일종의 선택이 작용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사정이 그러하다면, 사람들은 그리스 철학에서 근대철학에서 발견할 수 없는 질서와 연쇄연결을 발견할 것이다. 근대철학에서는 각 사상가는 고대인들과 스스로를 구별하고 혁신할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말로 하면, 인격성은 지워지고, 학설들만이 일종의 자연적 진화를 따라간다. 이것이 우리가 세부적으로 곧 제시할 것이다. 소피스트, 엘레아학파, 이오니아학파 소크라테스학파 등은 중단없는 연쇄 고리들이고, 이 고리의 각각은 앞선 것으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 (154) [학파를 순서적으로 쓰지 않았다.]
따라서 역사적 정치적 고려는 고대철학에서 매우 큰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고대철학을 이해하려면, 사람들은 풍습들, 제도들, 정치적 변형들이 있는 환경 속에서 그 입장이 되고자 시도해야 할 것이다.
고대철학사의 근원들이 어떤 것들인지 자문해보자. 사람들은 이것들을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155)
1. 첫째범주. 철학적 작품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오는 것 그리스 철학자들(Philosophies Grecs(디도-뮐락(Didot-Mulhac).. [출판연도가 없으나 벩송 당시 찾아 볼 수 있는 책]
2. 둘째 범주. 증언들(les témoignages)에 속하는 것 .. 아리스토텔레스의 목표가 교리적이기 때문에 .. 철학사가로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용할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3. 셋째 범주 전통에 근거한 작가들의 자료들(les sources) ... 키케로(Cicéron, 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43) ... 류크레티우스(Lucrece, Lucretius, 98-55), 세네카(Sénèque, 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4-후65), 플루타르코스(Plutarque, Πλούταρχος/Ploútarkhos, 46-125) .. (156)
- Placita는 아에티우스(Aétius) 작품이다, 벩송은 기원전 231년에 갈리시안(Galicien s.d.)이라 하는데, [표기의 오류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주를 달아 놓지 않았다.
[미주6. 굴레(Ricard Goulet, s.d.)가 편집한 고대철학 사전(Dictionnaire des philosophes antiques)의 아에티우스(Aetius) 항목 참조. / 아에티우스(Aétius, Aetius le Doxographe, 후 1세기에서 2세기) 로마시대의 그리스 학설사가, 작가. Placita philosophorum(= Opinions des philosophes), in Hermann Diels, Doxographi Græci (Berlin, 1879, rééd. 1965), p. 267-444 (en grec). ]
섹스투스 엠피리쿠스(gr. gr. Sextos o Empeirikos, lat. Sextus Empiricus ?-?) 3세기 초 그리스의 철학자, 의사. 피론의 유파에 속하는 회의론자이다. 저서에 피론 사상 개설 Esquisses pyrrhoniennes (Πυῤῥώνειοι ὑποτύπωσεις ou Pyrrhōneioi hypotypōseis)(3 Livres)이 있다.
필로스트라토스(Philostrate, Φιλόστρατος / Philóstratos, Lucius Flavius Philostratus v. 170-249) « Philostrate d'Athènes », 연설가, 그리스어로 쓴 전기 작가. 소피스트들의 생애(Vies des sophistes)(두 권)
아테나이오스(Athénée, Ἀθήναιος Nαυκρατίτης / Athếnaios, 170경-3세기경) 박학다식자, 그리스 문법학자. Δειπνοσοφισταί / Deipnosophistaí « le banquet des sophistes » ou encore « le banquet des hommes sages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ène Laërce, Διογένης Λαέρτιος / Diogenês Laertios, Diogenes Laertius, 3세기경) 역사가, 철학자 시인, 학설사가. Λαερτίου διογένους βίων καὶ γνωμῶν τῶν ἐν φιλοσοφία εὐδοκιμησάντων καὶ τῶν ἑκάστη αἱρέσει ἀρεσάντων τῶν εἰς δέκα τὸ πρῶτον (manuscrit de Florence : De Diogène Laërce, vies et pensées de ceux qui en philosophie se sont illustrés, et recueil des doctrines de chaque école en dix livres - livre premier)
클레멘스(Clément d'Alexandrie, Alexandrinus Clemens, Titus Flavius Clemens, 150 ?-215 ?) 알렉산드리아파 그리스도교 신학자. 최초로 고대철학과 그리스도교를 종합적으로 전개한 신학자.
오리게네스(Origène, Ὠριγένης / Ôrigénês 185경-253경) 초기 교부, 신학자. 알렉산드리아츨신. Hexaples 많은 성경 주석서를 썼다.
에우세비오스(Eusèbe de Césarée ou Eusèbe (de) Pamphile, Εὐσέϐιος, en lat. Eusebius Pamphili, 265-339) 세자레 주교. 오리게네스 제자. 교부신학자. 복음 역사(Histoire ecclésiastique) / eu (εὖ) « bien » et sebein (σέβειν) « respecter ».
쟝블리코스(Jamblique, Iamblicos 242년경-325)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생애(Vie de Pythagore, βίος πυθαγορικός)(en trad. latine : De vita Pythagorica)
스토베우스(Jean Stobée, en lat. Joannes Stobæus, 원명 Stobi (Macédoine) 이교도이며, 학설사가 편집자. Anthologie 여기에는 많은 단편들이 있는데 다른 곳에서 없는 것이 있다.
헤쉬키오스(Hésychios ou Hésychius ou Hesychius, Ἡσύχιος / Hêsýkhios, 5세기경 « celui qui est calme ») 알렉산드리아 문법학자. 용어사전 편찬자.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de Cilicie (en gr, Simplicios 480경-549) 6세기경, 네오플라톤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 현 터기 실리시(Cilicie (actuelle Turquie)
필로포노스(Jean Philopon, gr. Ἰωάννης ὁ Φιλόπονος, en arabe Yaḥyā al-Naḥwī, 490/495-568) 그리스어로 쓴 문법학자. 철학자, 크리스트교 신학자. 알렉산드리아 출신.
수다(La Souda, Σοῦδα / Soũda) 또는 수이다스(Suidas (Σουίδας / Souídas) 9세기 말경에 나온 그리스 백과사전. 이 책은 특히 고대에 근거하는 작품들에서 매우 자주 이용되는 인용을 위한 참조의 사전이다. 우선, 몇몇 사람들은 이편차가 수이다스(Suidas ou Souidas, Σουίδας / Souídas)일 것이라 한다. 그는 9세기말에 편찬자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라루스판, 로베르판이라고 부르듯이.
미주8: 젤러(Eduard Zeller), Boutroux, Brandis, Roeth, Grote ...(156). 젤러(Eduard Zeller 1814-1908) 독일 역사가 철학자.
브란디스(Christian August Brandis, 1790-1867) 독일 문헌학자. 철학사가 Handbuch der Geschichte der Griechisch-Römischen Philosophie (1835-1866);
뢰트(Röth s.d.) - fr.en.deu.Wiki 없음 Zeller가 인용하는데... 없다.
그로트(George Grote 1794–1871) 영국 급진 정치가, 고전역사가 A history of Greece; from the earliest period to the close of the generation contemporary with Alexander the Great, 1846-1856
157-1이미 고대세서도 철학적 체계의 많은 분류들이 제안되었다.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는 이오니아학파와 이탈리아학파로 두 개 큰 분할로 구별했다. (157)
διαδοχαί - 디아도코스(전통계승자)« le Diadoque » (διάδοχος, successeur),
157-4우리에 따르면, 그리스 철학사에는 세 시기가 있다. 첫째 탈레스에서 소피스트, .. 둘째 시기는 .. 소피스트에서 아리스토텔레스 .. [셋째]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새로운 시기.. 그리스 정신은 전적으로 도덕적 문제들에 전념한다. (157-158)
158-1이 세시기는 분명하게 규정된다. 처음에는 정신이 외부, 우주를 연구하고 ... 다음으로 그 정신은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고, .. 신플라톤주의의 이름하에 형이상학의 회복 ... 이 잡종체계와 더불어 그리스철학은 끝난다. (47MLD)
158-2이 분할은 역사와 지리에 연관이 많다. .. 지리연관 .. 둘째시기에 철학은 유대로, 동방전체로, 로마세계로 (158) [왜 둘째 시기냐하면, 알렉산더의 전파이며, 아리스토텔레스 학자들의 알렉산더 종군에 있다.]
158-3첫째시기 그리스의 증가하는 번영에 해당한다.... 페리클레스(Péricles, Perikles, v. 495-429) 시대까지,...[페르시아 전쟁 후 478년 델로스동맹(Delian League fr. Ligue de Délos) 동맹해체 431년], ... 둘째시기.. 펠로포네소스 전쟁(Guerre du Péloponèse 413-404)시기에 해당한다 .. 셋째시기 다양한 이론들이 다양한 지역으로 뿌져짐이다. 옛 이론들은 새로운 종족들과 접합한다. [334년 봄에 알렉산드로스(Ἀλέξανδρος ὁ Μέγας / Aléxandros ho Mégas) 대왕은 유럽을 떠나 아시아 원정을 시작하다] (158-159) [이 단락의 역사적 시기는 아테네 철학을 중심으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47MLJ)
제1절 선-소크라테스 철학 La philosophie ante-socratique 159
원주12): H. Diels et W. Kranz, 소크라테스 이전시대의 단편들(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Berlin, 1903), 이것을 뒤몽(Jean-Paul Dumont, 1933-1993)이 들라뜨르(Daniel Delattre, s.d.)와 쁘와리에(Jean-Louis Poirier, s.d.)가 프랑스로 번역, Les Présocratiques, 1988. 베르그송의 강의록 인용은 이 판본을 이용했다. 크리크(Geoffrey Stephen Kirk, 1921-2003), 레이븐(John Earle Raven, 1914–1980), 쇼필드(M. Schofield, s.d.)의 Les Philosophes présocratiques, 1995.
첫째 질문은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그리스철학은 외국학설들로부터, 부분적으로 동방학설로부터 파생되었는가? 독일 역사가 글라디쉬는 이 주제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중국의 철학을 새롭게 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이집트인들의 철학을, 헤라클레이토스는 페르샤인들의 철학을, 엘레아팍파는 힌두교도의 철학을 .. (159)
원주13): Gladisch: Heraklitos und Zoroaster, Eine historische Untersuchung, 1859. [글라디쉬(Agust Gladisch, 1804–1879) 독일 (고전학)고등학교교장, 역사가.- 이 이상의 자료가 없다. 항목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원주14) 뢰트(Roeth, s.d.)
[이소크라테스(Isocrate, Ἰσοκράτης / Isokrátês, 전436–338) 아테네 연설가, 수사학파]
[헤로도토스(Herodotos, Ἡρόδοτος / Hêródotos 484?-430,420?) 그리스의 역사가.]
아낙사고라스의 누스와 유대인들의 신 사이에 닮음을 발견한다고 믿는다면, 사람들은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누스에 앞서서 물질이 있고 따라서 신에 앞서서 물질이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창조의 유대 학설에 근본적으로 반대된다. (159-160)
제2절 이오니아인들 - 탈레스 Les Ioniens - Thalès
[탈레스(Thalès Θαλῆς ὁ Μιλήσιος/Thalễs ho Milếsios 기원전 640-548)(fr.Wiki vers-625-vers-547 ): 원질(αρχή, archē)을 물(l'eau). ἐκ τοῦ ὕδατός φησι συνεστάναι πάντα (« L'eau est la cause matérielle de toutes choses) 7현인 중의 한사람.
그는 기원전 585년에 일식을 예언했다. (160)
제1명제: 물은 만물의 원리이다. 원리란 단어는 아르케(αρχή, archē, 원질)이다. [동사 ἄρχειν, "to rule")
제2명제: 모든 것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πάντα πλήρη θεών)
[제1명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Physique)(1권4)에서, 제2명제는 영혼론(De Anima)(1권 5)에서이다. 후자에서 살아있는 우주(κόσμος ἔμ-ψὺχον : ἔν, ψὺχη)의 생각은 이오니아 철학보다 한참 후일 것이라 한다. 물이 변형하는 것은 우화에서 신들의 방식에 따른 것일 것이다.](161-162)
결론, 이 학설의 가치와 의미는 어떤 것인가? 물이 원리라는 것은 탈레스에 앞서서 신학자들에 의해 생각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I권 3장) 둘째 명제는 탈레스가 신학에서 빌려온 것이다.
참조:
Theodor Gomperz énumère les influences possibles de la philosophie de Thalès. L'eau comme élément primitif dans sa cosmogonie est d'origine incertaine, peut-être phénicienne et égyptienne. La conception d'une terre flottante, comme un disque de bois reposant sur l'eau évoluant dans un univers rempli de matière primordiale, c'est-à-dire envisagé comme une masse liquide, s'accorde en effet, dans une certaine mesure, avec l'idée égyptienne de l'eau primordiale (« Noun»), surface divisée en deux masses séparées, selon Paul Tannery[28]. Selon Patrick Obenga, la conception de l'eau chez Thalès est en effet très proche de celle du Noun des Egyptiens, « matière-esprit destinée à l'évolution »[24]. (fr.Wiki)
제3절 아낙시만드로스 161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e, Ἀναξίμανδρος/Anaxímandros 기원전 610-546): 무규정자(l'indéterminé, apeiron) ]
만물의 원리는 아페이론(ἄπειρον, 무한정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Physique)(3권 4, 3권 8, 1권 4)이 우리에게 말해준 것이다. (162)
이 무한자는 물질의 우발일 뿐이다. - 심베베코스(συμβεβηκώς)는 우시아(οὐσία)에 반대이다. (162) [συμβεβηκώς (과거완료형) <- συμβεβάναι -βεβηκέναι pf. inf. of συμβαίνω / συμ-βαίνω, f(미래) -βήσομαι - 1. 함께 발로 서는 것, 참여로서 함께 서는 것, 2. 함께 오는 것, 동의하는 것, 3. 지나가는 것, 일어나는 것 lat. contingere,]
아낙시만드로스의 섞임(τό μὶγμα Ἀναξίμανδρου) (162)
163-1심플리키우스(Simplicius, 480경-549)[네오플라톤주의의 마지막 시대]의 텍스트는 아낙시만드로스가 분명히 메카니스트였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반대로 긍정적으로 말한다(형이상학, XII, 2, 1069b) (163)
따라서 아낙시만드로의 미그마(μὶγμα) 무한정한 물질이며, 정해진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163)
163-2어떻게 사물들이 이 섞임으로부터 나오는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를 분리로부터라 한다. 그는 엔크리시스(ἔκ-κρισις)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또한 동사로는 아포크리네스타이(ἀποκρίνεσθαι)를 사용한다. (163) [ἔκ- 밖으로(out of), ἔκ-κρισις separating distinguishing / ἀπο 로부터(from) ἀποκρίνεσθαι <- κρίν-: κρίσις -εως, ἡ 판단 결심 시행(trail) ]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의 미그마(μὶγμα)의 본성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 엔크리시스(ἔκκρισις)는 기계적 분리의 의미일 수 없다. (163)
세계의 형성 작용에서 여러 다른 국면들은 어떠한가? 이 섞임에서 먼저 나오는 것, 그것은 더위와 추위이다. 그리고 습기가 생산되었고, 이로부터 모든 다른 사물들이 나왔다. 그리고 나서 불과 물로부터 다른 별(les astres 천구들, 반구들)들이 형성되었다. (163-164)
164-1아낙시만드로스의 역사적 중요성은 어떤 것인가?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가 철학 속에 비결정적인(무규정적인) 물질의 관념을, 영원한 운동의 관념을, 개별화 작업으로서 영구적인 분리의 관념을 도입했다. 그런데 이 관념들은 중요하다. 이것은 진화론의 관념들이다. 스펜서가 동질성에 이질성으로 이행이라 부른 것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엔크리시스(ἔκ-κρισις, 구별되어 나옴)와 다른 것이 아니다. (164)
[벩송은 기계적인 설명으로 아낙시만드로스를 보았던 스펜서도 같은 부류로 꼽았다. 벩송은 이질성에 이질성으로 진화를 생각한다.(47MMG)]
제4절 아낙시메네스 164
[아낙시메네스(Anaximène, Ἀναξιμένης/Anaximếnês, 기원전 59?/585-524/525) 공기(l'air) (vers 585-vers 525) ]
근원자료로서 .. 스토베우스(Jean Stobée s.d, [3세기초?]) .. 아리스토텔레스, 위플루타르코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 (164)
그가 피타고라스(Πυθαγόρας/Pythagóras 기원전 580-497)에게 보낸 편지 (164)
“공기가 만물의 원리이다.” 이 공기는 무한하다. 이것은 전 세계를 둘러싸고 있다.
165-1만물은 공기에 의해 어떻게 생산되었는가?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De Caelo, III, 5) ... πυκνότητι καί μανότητι 굳어짐과 느슨해짐, 압축과 희박 (165)
키케로, 스토베우스, 락탄티우스, 테르툴리아누스
[락탄티우스(Lucius Caecilius Firmianus, dit Lactance, du latin Lactantius, 250-325) 크리스천 키케로(Cicéron chrétien)라 불린다. /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dit Tertullien, 150/160-vers 220) 카르타고 태생. 북아프리타 베르베르가정출신. 이교도(païenne), 2세기 말 크리스트교로 개종, 신학자, 교부철학자]
공기는 물에 비해 성질을 부여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보다 더 지성적인 아페이론이다. (165)
[벩송은 아낙시메네스에서 역동적 설명음 보았다. 굳어짐과 느슨해짐에서 생명의 도약을 보았으나 당연히 아낙시메네스를 더 선호할 것 같다] (47NKF)
제5절 헤라클레이토스 Héraclite 165
[헤라클레이토스(Héraclite, Ἠράκλειτος, 기원전 544-480) 이오니아 에페소스 출신, 불(le feu), 투쟁의 변증법.]
[젤러, 디오게네스(Diogène d'Apollonie, Διογένης, 기원전 5세기) 등의 언급으로 시작한다]
출전(les sources)으로는 플라톤의 크라튈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풀뤼타르코스((Plutarque, Πλούταρχος, 46-125), 클레멘스(Clément d'Alexandrie, 150 ?-215?),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 ?-?) 3세기 초),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Diogenes Laertius, 3세기경), 스토베우스(Jean Stobée, s.d. 3세기 초? 플로티누스와 같은 시대) 등이다. ..근대인으로는 독일의 라살레(Ferdinand Lassalle, 1825-1864), 오스트리아의 슈스터(Mauriz Schuster, 1879-1952), 프랑스의 도리악(Lionel Dauriac, 1847-1923)이다. (166)
그는 자연에 관하여(Περί φύσεως)를 썼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두운자[모호한자](l'oscure, ὁ σκοτεινός)라는 별명을 붙였다. (166)
사물의 보편적 변형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들은 어떤 것인가? (167)
첫째로 물질적 원리가 있다. 이 원리는 변형되었고 아직도 무한히 변형되고 있다. 이 원리는 보편적(우주적) 변형의 기본이다. 그것은 불이다. .. 라살레에 따르면 그 불은 아직 물리적 관점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추상이었을 것이라 한다. (167)
둘째로 전쟁과 조화가 있다. (la guerre πόλεμος, la lutte ἔρις, l'harmonie ἁρμονία) .. 전쟁(투쟁)은 만물의 왕, 아버지이다. (167)
라살레에 따르면 만물의 법칙은 모순이라는 점으로 보았고, 헤겔에 따르면, 잉 njsfl는 우리 정신의 단순한 법칙이다. .. (167)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물들(만물)의 보편적(우주적)흐름에 놀랐다. ... 오늘날 진화론자의 참여자들이 놀라듯이 ..... (168)
결국 만물의 보편적(우주적) 흐름하에서 영속적인 실체를 인정했다. 그 실체는 불이며 인간 인격의 방식에 따라 일련의 상태들에 의해 이행되는(지나가는) 것이다. 그 실체는 연속적으로 변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여전히 남아있다.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유는 단순히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근저(토대, 심층)에서 마땅히 동일하며, 그 대립은 현상이며 겉보기이다. (168) [벩송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원리는 진화론과 흐름과 상응하는 것으로 보고, 또한 흐름이라는 그 자체를 실체로 보았다. 어쩌면 벩송은 헤라클레이토스를 자신의 모델의 근원으로 보았을 것이다. 심층은 지속이며 표면은 대치되는 현상들로 보았을 것이니... (47NLC)]
조화에 관하여, 그것의 본성(자연)을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 불은 규칙에 따라 불붙고 규칙에 따라 꺼진다.” ..전쟁과 조화는 원초적 물질(즉 불)을 밀어붙이는 하나의 힘의 다른 측면들일 뿐이다. (168)
헤라클레이토스는 이성의 이론을 가졌던 것 같다. 그는 감각의 인식과 이성의 인식을 정확하게 구별하였다. .. 사유 즉 누스(νοὺς)에 의하여 우리는 실재성의 심층(깊이)에까지 내려갈 수 있다. (169)
결국 헤라클레이토스는 도덕과 종교에 관한 관념을 가졌던 것 같다. 현자는 세속적 인간과 구별된다. 현자는 일반적 법칙에 따르고, 오만을 피하며 사물의 총체에 스스로 종속시킨다. (169)
헤레클레이토스의 의의는 .. 아낙시만드로스의 변화를 .. 아낙시메네스의 실체를 통한 불이라는 실질적 전체의 설명을 잘 이어받은 셈이다. (169) (47NLC)
제6절 크라튈로스, 히폰, 이데, 아폴로니의 디오게네스
Cratyle, Hippon, Idée, Dignene d'Apollonie, 169
[제6절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제자들인 셈이다. 크라튈로스(Cratyle, Κρατύλος, 기원전 5세기경) / 히포스(Hippon)는 피타고라스 학파 히포스(Ἵππος ?-?)와 다르다? / 이데(Idée, Idaios) / 디오게네스(Diogène d'Apollonie, Διογένης) [다른 곳에서는 그가 아낙시메네스 제자, 아낙사고라스와 동시대라 한다]
크라튈로스(Cratyle, Κρατύλος, 기원전 5세기경.) 그는 소크라테스보다 젊었다. 크라튈로스의 독창성은 보편적 변화의 이론을 논리학에 적용한 것이다. .. 고정된 실재성은 없다. (170) [fr.Wiki. 헤라클레이토스의 제자 플라톤이 전하는 바] (170)
히포스(Hippon, )는 페리클레스 시대의 자연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바만 남아있다. .. 그에 따르면, 물질적 원리로부터 모든 사물이 나오게하기를 바라는 조잡한 사상가들 중의 하나로 배열했다. [Ἵππος] (170)
이데(Idée, Idaios)는 히메르(Himere)에서 태어났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가 전하는 바.. (170)
디오게네스(Diogène d'Apollonie, Διογένης) 헤리클레이토의 제자중의 하나이다. ... 심플리키오스에 따르면 그는 아낙사고라스보다 그리고 류키포스보다 젊다. (170)
디오게네스에 따르면, 전체의 바탕[토대]인 요소는 다름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1). 사람들이 물질적 대상들의 깊이[심층]에서 실질적으로 재발견하는 자연과 같은 것으로 2). 이 요소는 지성적이어야 한다. (170)
영혼은 덥고 건조한 공기다. 이 이론은 순수히 이오니아적인 것이 아니다. 디오게네스는 여기에 아낙사고라스에서 끌어낸 요소들을 도입했다. 아낙사고라스는 사물들의 구성에서 지성적 요소, 즉 누스(le νοὺς)를 생각한 첫째 사람이다. 아폴로니 디오게네스의 철학은 절충주의, 즉 일종의 아낙시메네스와 아낙사고라스의 사이에서 일종의 조화이다. (171)
결론
이오니아의 철학은 범신론으로 기울어진 역동주의로서 생각될 수 있다. 이 철학자들은 철학의 창조자이다. 그들은 사유의 세계 속에 새로운 생각[관념]들을 도입했다. 1). 변형의 관념과 역동적 변화; 2). 영원한 운동의 관념.
사람들은 재빨리 깨닫는다. 변화는 정신에서 비지성적인 사물이며, 변화의 관념은 거의 모순적인 관념이라고 깨닫는다. - 위드 원주: 벩송의 독창적 해석이라 한다.
따라서 변화와 생성의 철학의 출현에서 이것과 다른 철학이 구성되었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다른 철학이란 실재성의 관점이 아니라 지성의 관점에 자리하면서 운동은 착각이라고 하는 철학이며, 변화는 없다고 하고 존재는 영원히 [현재] 있는 것으로 남아있다고 하는 철학이다. 한마디로 존재의 철학, 즉 생성의 철학이 아닌 이철학은 엘레아학파의 학설이다. (47NLC)
제7절 엘레아 학파 [개요] Les Eléate 172
[출전들 중에서 알려진 것] 심플리쿠스((Simplicius de Cilicie 480경-549),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 ?-? 3세기 초). 아리스토텔레스의 멜리소스, 크세노파네스 고르기아스에 관하여(Sur Mélissos, Xénophane et Gorgias)는 진짜인지 의심스럽다. (172) [위작일 것이다] (47NLC)
제8절 크세노파네스 Xénophane 172
크세노파네스(Xénophane, Ξενοφάνης 기원전 580-485)는 엘레아학파의 선두였다. 그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I, 5와 수사학, I, 15에서, ... 꾸쟁(Cousin)의 크세노파네스에 관한 작품에서, 라틴어로 된 라인홀드(Reinhold)의 De genuina Xenophanes desciplina 작품도 있다. (172) [라인홀드(Reinhold s.d.) 독일인 것 같은데..]
크세노파네스는 소아시아의 콜로폰(Colophon, Κολοφών)에서 태어났다. .. 작품으로 자연에 관하여(Περί φύσεως)가 있다. (172)
크세노파네스의 철학의 출발점은 다신론의 비판이라는 것은 아주 그럴듯하다. .. 신은 불변이다. (172).
173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크세노파네스가 첫째 철학자이다. 모든 사물이 하나로 통일에 이끌려지고, 게다가 우주를 그 일체 속에서 고려하며, 전체를 덮은 천체의 천장(la voûte)을 생각했다. 이 통일체[단위체]가 신이라고 선언했다. ... 이리하여 탈레스와 더불어 철학이 소심하게 종교와 구분되고, 파르메니데스와 더불어 어떻게 이 가설로부터 매우 깊은 학설을 분간해 내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173) (47NLJ)
제9절 파르메니데스 Parménide 173
[파르메니데스(Parménide, Παρμενίδης/Parmenídês, 기원전 540-450) 존재가 있다(L'Etre est) / fr.Wiki, 520/510-vers 450-448.]
플라톤의 소피스트 편에서 그가 호 메가스(ho megas)라 불린다. 그의 작품 자연에 관하여(Περί φύσεως)는 주석가들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진리la vérité)[aletheia], 다른 하나는 견해(l'opinion)[doxa]라 한다.
173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의 원리는 그의 시의 다양한 단편들 속에 분명하게 정식화되어 있다. 존재는 있고 비존재는 없다. ..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중간은 없다. 있거나 있지 않거나이다. 다른 말로 하면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와 비존재의 섞임을 착각(une illusion)[불교의 마야(maya)]이라 간주한다. (173-174)
174-1이 원리는 많은 귀결들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상식은 중간을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중간이란, 즉 생성이며, 있었던 것이 이미 더 이상 있지 않는 것이고 있을 것이 아직 있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의 생각이며 운동의 생각이다. 우리는 사물이 어떤 연관에서 있고 어떤 다른 연관에서는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 경험이 그것을 인정하도록 우리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사유는 자기 자신의 수단들에 맡겨져 있어서,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중간을 생각하지 못한다. 있거나 있지 않거나. 따라서 파르메니데스는 가장 절대적인 형식 하에서 모순의 원리로부터 출발한다. (174)
174-2파르메니데스가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중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그 이유는 어떠한가? 이점에 관해서 [생각] 가능한 의심은 없다. 여러번 반복해서, 파르메니데스는 우리에게 비존재는 사유될 수도 서술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유될 수 없는 것은 현존할 수 없다. 따라서 그 학설의 동기는 정확하게 지적된다. 즉 파르메니데스는 사유와 사물들 사이에 동일성을 가정한다. 그리고 비존재를 생각할 수 없고,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중간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그 결과로서, 실재성 속에서도 있거나 있지 않거나 이어야만 한다. (174) [중간, 즉 회색은 없다는 것이다. 회색이 없다는 것은 생성과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회색은 자기의 본성이 있다고 하면 생성론이 된다. 자르는 선이 없다는 것은 존재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47NLJ)]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이 존재의 성질들은 어떠한가? 이 존재는 있기를 시작할 수도 없고, 있기를 그칠 수도 없다. 존재는 [어제] 있지도 않았고, [아제] 있을 것이지도 않다. 그 존재는 영원한 현재 속에 있다. .. 게다가 존재는 불가분이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자기 밖에 현존하는 것이 없기에, 그것의 부분들로 떼어 놓을 수 잇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존재는 모든 측면에서 균형된, 완전한 공(구球)에 비교할 수 있는 동질이다. 왜냐하면 존재 속에 차이들이 있었다면 그것은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는 절대적으로 하나(un)이다. (174) [일자(l'Un)이라 쓰지 않고 벩송은 그냥 하나(un)라 한다.(47NMG)]
175-1우리가 이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결론들은 어떤 것인가? 다수와 변화는 착각들이라고 한다. ... 모순의 원리로 무장된 파르메니데스는 이미 우리가 깨닫고 있다고 믿는 질적 차이들은 착각들이라고 하고, 실재로 존재는 항상 자기 자신 그대로 이다. 그는 운동과 변화는 현상들이라고 선언한다. 존재는 변질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절대 속에 있다. 왜냐하면 존재는 하나(un)이며, 존재일반의 성질과 다른 성질일 수 없는, 현존하는 모든 것의 통합(la reunion)이다. .. 파르메니데스의 유명한 구절, 사유와 존재는 동일한 것(사물)이다. (175)
175따라서 파르메니데스가 사물들이 사유에 귀착한다고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다. 엘레아 학파에서, 단어의 근대적 의미에서, 관념론자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연대착오]를 범하는 것이다. ... 다른 한편 이 존재가 절대적으로 하나이며 동일적이다는 것은 그럴듯하다. 파르메니데스는 스스로 그것을 물체적인 어떤 것으로서 표상한다. 게다가 이러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1) 파르메니데스의 단편들이 나온다. 이 단편들은 우리에게 존재가 연속적, 동질적, 공(구)에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서 표현한다. 2) 제논과 멜리소스 등의 제자들의 유물론적 경향성들이 나온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몇몇 원문들이 나온다. (형이상학, IV, 5; De Caelo, III, 1) (175)
이 유사유물론의 형이상학에 파르메니데스는 자연학을, 다시 말하면 존재의이론이가 아니라 겉모습의 이론을 결합시킨다. .. 따라서 자연적 현상들의 겉모습의 이론, 의견의 이론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통속인들은 낮과 밤, 남성과 여성 등과 같은 대립자들의 현존을 믿는다. 진실은 두 대립자들 중의 하나만을 현존한다. 낮만이 현존하고, 남성만이 현존한다 등등. (175)
176파르메니데스는 세계를 동심원적 원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땅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에 있어서 자연학은 가설의 가치일 뿐이다. (47NMG)
* 엘레아 학파의 제논 Zenon d'Elee 176
[제논(Zénon Ζήνων, 기원전 480[490]-420경) 변증법(상대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발명자, 소크라테스보다 10살[20살]많다. 소씨가 한 수 배웠을 확률이 있다]
이 철학자에 관해서 에벨랑(François Evellin, 1835-1910)의 무한과 양(Infini et quantité, étude sur le concept de l'infini en philosophie et dans les sciences (1880)(학위논문, 1881)에 상의할 수 있다. (176)
이 작품은 산문으로 썼으나 상실되었다. 그 중에서 몇 몇 단편들만 남아있다. 그 작품이 포함하는 단편들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176)
그는 사람들이 모순으로 이르게 하는 것을 증명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때론 사람들이 인도했던 귀결들이 인정한 원리와 모순에 빠지는 것이고 때론 두 개의 모순된 귀결에 이르는 것이다. 전자의 절차는 부조리의 환원(la réduction à l'absurde)이고, 후자는 칸트가 다루어 매우 풍부해진 절차로서, 안티노미(l'antinomie)라 부른다. [ 표면에서 현상의 이중성은 그 연쇄를 따라가면 안티노미가 나온다. 이에 비해 상층이나 심층의 극점에서, 상층의 논증은 그 자체가 규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조리의 환원으로 빠진다. 이에 비해 심층의 논증은 내용자체의 자기 생성이기에 부조리의 환원에 빠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 벩송이 아니겠는가? 정지로부터 생각하면 부조리에 빠지는 데, 운동으로부터 시작하면 부조리에 빠지지 않고, 생성, 발명, 생산, 창조로 나아간다. (47NMG) ]
만일 다자(le multiple)가 현존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이 무한히 작고 무한히 클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a) 다자는 무한히 작다. 왜냐하면 모든 다수성은 어떤 단위들로, 즉 불가분적인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불가분인 것은 크기가 없다 왜냐하면 정의상 크기를 갖는 것은 가분적이기 때문이다.
b) 다자는 또한 무한히 그다. 왜냐하면, 크기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자는 있기(존재하기) 위하여 크기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자[다수]의 현존[존재]에 반대하는 논증에다가, 제논은 운동의 논증에 관계하는 [다자의 논증과] 다른 논증들을 결합시켰다.
1) 한점 A에서 한점 B로 가야 하는[운동하는] 한 물체가 주어지면서 이다.
2)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궤변(sophisme)이다.
3) 화살의 궤변
4) 스타디움의 상대성 ..
이 다양한 논증들의 토대는 어떤 것인가? 제논은, 만일 전체의 요소들이 그 전체와 동일한 본성이라면, 사람들은 추론에 의해 실재성에 반대로 말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귀결글에 이를 것이라고 증명했다. 따라서 실재성은 착각(une illusion)이다. (178-179) [왜 벩송은 파라독스(paradoxe)라고 하지 않고서 착각이라 했을까? (47OKC)]
A, B, C 요소들이, 이들의 각각과는 다르고, 이들의 총합과는 같은 복합체 M을 생겨나게 한다. 그것은 불조리(cette absudité)를 인정하는 것이다. (179)
따라서 엘레아학파와 제논의 오류이자 장점은 특히 인과성의 원리를 모순의 원리와 혼동한 것이다. 둘째의 것은 첫째의 것과 대립이다. (179)
그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운동의 현전에서 실재성은 부조리 또흔 착각이라는 것을 항상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79) [베르그송은 이 문제를 지속의 직관에 의해 벗어난다. (47OKC)]
제10절 멜리소스 Mélissos 180
[멜리소스(Mélissos de Samos, Μέλισσος ὁ Σάμιος/Mélissos ó Sámios) 그리스철학자. 정치가, 이오니아 제독. 엘레아 학파 최후의 인물 444년경에 활동]
멜리소스는 독창적 철학자는 아니다. 그는 엘레아학파 학설을 유물론적 의미에서 발전시켰다. 그의 학설은 다음과 같은 주제들로 나아간 것 같다.
1. 존재는 영원하다(éternel).
2. 존재는 무한하다(infini). ... 빈 것이 무이기 때문에 현존할 수 없다. 이점에서 멜리소스는 파르메니데스와 구별된다. [유물론적이다. .. 페라스(한계)가 없다는 의미에서 무한하다와는 다르다.]
3. 존재는 하나다(un).
4. 존재는 불변이다(immuable).
(47O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