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년도 첫 산행지는 청계산. 공지한대로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올라 과천 매봉, 망경대, 매봉, 옥녀봉까지 종주하는 코스다. 금번 산행의 안내를 맡은 필자가 일주일전 미리 코스를 답사한 바로는 산행시간만 다섯시간 정도 소요되는 긴 코스이며 인내가 요구된다.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산 좋고 물 좋다”는 다소간 상투적인 말이 어울리는 곳이며, 이런 이유로 청계산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것이 지배적인 추측.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의미다.
또 한편으로는, 청계산은 청룡이 승천했다는 곳이라 해서 청룡산으로 불려지기도 했고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관악산을 백호, 청계산을 청룡이라 하여 좌청룡, 우백호의 개념으로 해석도 한다. 원터골에서 보면 청계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온화해서 토산 또는 육산처럼 보이지만 서울대공원에서 보면 망경대는 바위로 둘러쌓여 있어 거칠고 당당하게 보여 두 얼굴을 가진 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09:05 에 서울대공원역을 출발하여 산행에 나서는데 근래들어 많은 산우들이 동참. 2007 년에 들어서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산우들의 결심히 엿보인다. 작심 1개월이 안되기를 기대해본다.
대공원 정문을 우로 비켜 아스팔트 길을 따라가다 등산로로 들어선다. 일기예보로는 아침은 좀 쌀쌀하나 오후 들어 따뜻한 날씨가 예상된다니 산행으로는 최적인 셈이다. 울창한 숲은 휴양림을 걷는듯 하고 부드러운 황토길과 완만한 산세, 그리고 피톤치드가 팍팍 나오는 숲길이 산우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평탄하게 등산로가 이어지다 가끔 가파른 등산로를 만나니 선두조와 후미조의 간격이 조금씩 멀어진다. 09:40 경 잠시 휴식하며 후미조가 도착하길 기다린다.
(후미조와 휴식중)
10:00 경 과천 매봉을 우회하여 등산을 계속하다 10:10 에 잠시 휴식.
(휴식)
얼마 전 TV에서 나온 “잔망스럽다” 는 뜻에 대해 필자가 TV를 볼 때는 분명 그 뜻을 기억했었는데 며칠 만에 깜깜하니 이것도 치매 초기 증상이나 아닌지. 변학장님이 상산회와 관악산 등반 시 호경이 내놓은 의자를 사양하며 잔망스럽다고 했는데 정확한 뜻을 이곳에 밝힌다.
1.보기에 몹시 약하고 가냘픈 데가 있다. 2.보기에 태도나 행동이 자질구레하고 가벼운 데가 있다. 3.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다.
아무튼 각자가 생각하는 대로 “잔망스럽다” 를 남발하는데 초기 산행의 화두가 된다.
10:35 에 헬기장에 도착하여 휴식. 누군가 내놓은 사과로 갈증을 달랜다.누구더라?
(헬기장에서, 그리고 바라본 망경대)
지금부터는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저 멀리 청계사로부터 들리는 염불 소리가 힘을 돋우어 주는 듯 하다. 11:10 경 휴식을 갖고 재윤의 초콜렛, 영우의 홍삼캔디, 명인의 귤로 지친 몸을 재충전한다.
(휴식중)
청계산은 540m의 국사봉과 618m의 망경대, 582.5m의 매봉, 및 375m의 옥녀봉이 이어져 T자형 능선을 이루고 있는데 11:30 에 망경대와 이수봉, 국사봉으로 갈라지는 능선에 도착하여 잠시 숨 고르고 망경대 쪽으로 방향을 튼다.
청계산의 주봉 망경대(望京臺)의 옛 이름은, 하늘 아래 만(萬) 가지의 경승을 감상할 만한 터라고 해서 만경대(萬景臺)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고려 유신들이 옛 임금을 그리워 하며 고려의 도읍지 개성을 바라보던 곳이라 하여 망경대(望京臺)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망경대 밑 헬기장)
망경대를 오르는 가파른 길을 산우들은 처음처럼 힘차게 오른다. 망경대 밑 헬기장에서 잠시 휴식 후 다시 올라 전망 좋은 곳에서 과천과 서울대공원을 내려다보다 서둘러 간식 장소를 찾아 발길을 서두른다.
행여 남이 먼저 차지할까 조바심하며 도착하니 다른 일행이 선점. 다행히 근처에 넓은 공간이 있어 15 명이 자리를 잡은 시간이 12:10 경. 오늘은 주류(酒類)가 힘을 쓴다.
재윤의 마호타이, 영준의 17 년산 발렌타인, 세훈과 종구의 보드카다. 필자가 준비한 매실주와 소주가 확 밀려난다.술이 넘쳐나니 안주가 간만에 조촐하다. 호경의 김치찌개가 큰 몫을 하고 소세지, 군만두, 오징어, 황태구이, 김밥 등이 옆에서 거드니 그럭저럭 상이 어우러진다. 어느새 화두가 전립선이 되고 전립선의 건강을 위해 각자 나름대로의 주장이 이어진다. 그 사이 10 년차 황산 산행 계획을 호경이 간략하게 설명하고 이어 오래전부터 논의되었던 일요일에서 토요일로 산행일을 바꾼다는 것도 2 월부터 시행키로 결정한다. 필자는 오늘도 사진 찍으랴, 메모하랴, 바쁘다 바뻐 ! 누구 도와줄 분 없소 ? 12:50 경 매실주와 마호타이, 발렌타인만 처리하고 산중의 성찬이 완료된다.
(즐거운 시간)
망경대를 우회하는 약간은 험하고 미끄러운 코스도 무난히 통과하여 혈읍재에 도착하니 선두조는 이미 매봉으로 향하고 있다. 혈읍(血泣)재는 정여창이 이상국가 건설이 좌절되자 이곳에 올라와 통분하여 피를 토하며 울었다고 후학인 정구(鄭逑)가 붙인 이름이다. 피를 토하며 울어서 그러할까, 혈읍재 근처의 청계산 단풍이 제일 아름답고 겨울산행 길도 그러하다.
정여창은 청계산과는 인연이 많은 사람이다. 즉 이수봉(554 m) 은 조선 성종때 정여창(鄭汝昌)이 이 곳에 올랐다고 하며, 그의 삶이 두번이나 살고, 죽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3:30 에 매봉에 도착하여 원터골에서 올라온 이대용과 한택수를 만나니 산우는 17 명이 된다.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며 기념사진도 남긴다.
(매봉 근처에서)
청계산에서 정상이라고 하는곳은 보통 매봉을 말하는데 이는 실제 정상인 망경대에 정부시설이 있어 등산이 불가능해서다. 매봉(582.5m), 정상석이 깊이 있는 음각으로 새겨 있는데, 그 뒷면에 청마 유치환의 "행복" 이란 시(詩)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상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하노라 -"
다시한번 읊조리며 13:40 경 매봉을 출발하여 옥녀봉으로 향한다. 얼마를 내려오다 보니 돌문바위가 있다. 바위에 다른 바위가 기대어 서서 삼각형의 문을 만들고 있는 바위다. 그 옆에 이런 소개의 글이 있다.
"-돌문바위 속에서 청계산의 정기를 받아 가세요."
필자가 호경,그리고 몇몇과 함께 정기 받다 넘어질 뻔 했다. 세 바퀴를 돌아야 한다나 ! 내려가는 길은 나무계단이 많은 코스인데 가끔은 미끄러운 곳이 나타난다. 결국은 산우 중 한명이 청계산을 샀다.
14:30 경 옥녀봉에 도착. 몇몇은 옥녀봉을 생략하고 원터골로 직행. 통영의 사량도 지리망산에도 '옥녀봉'이 있는데 옥녀의 아버지가 딸을 범하려 하자 옥녀가 옥녀봉에서 몸을 던진다는 구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곳의 지명 유래담은 찿을 수 없는것이 아쉽다. 다만,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인 판서 김노경(金魯敬)의 묘터가 있던 곳이 옥녀봉으로 이 일대를 공동묘지로 하려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한다.
(옥녀봉에서)
옥녀봉에 잠시 머문 후 뒤풀이 장소인 원터골 남원 추어탕 집으로 향했다. 15:30 경 남원 추어탕 집에 모여 앉아 맥주로 갈증을 풀고 산에서 남겨온 보드카 두병을 돌려가며 뒤풀이. 16:00 경 김상희가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합류한다. 외손녀의 돌잔치 때문에 산행에 참가 못하고 뒤풀이에 나온 정성이 대단하다. 이래서 산우는 총 18 명이 된다.
(뒤풀이)
즐거운 대화와 너털웃음이 계속 이어진 뒤풀이는 16:30 에 완료되며 대부분 자리를 뜨고 늦게 온 상희와 호경, 강호, 필자가 남아 소주 한병 더 거덜낸다. 네명이 남아 17:30 경부터 양재역 부근에서 당구로 몸 풀고 생맥주를 더한 후 헤어졌다. 금일도 무사산행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음악에 실어 산행기를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