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오페라는 지루하다. 음악장르에서 오페라가 차지하는 비중과는 다른 느낌이다. 좀 늦은 이야기지만 평창대관령 음악축제에서 이런 선입견을 뒤엎는 러시아 오페라가 공연되었단다. 어떤 오페라이기에?
#러시아 http://bit.ly/2hsFEl9
솔직히 오페라는 지루하다. 음악장르에서 오페라가 차지하는 비중, 혹은 중요성 때문에 러시아 모스크바서 '유명한 오페라'를 한번 보러 간 적이 있다. 지루한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지루한 줄은 몰랐던 때였다. 뚱뚱한 성악가들이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나와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면서 알아듣지도 못한 노래를 부르는 걸 지켜보면서, 과거 로마제국 시절 귀족들의 삶이 저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뉴스를 검색하니, 이런 나의 경험을 뒤집는 러시아 오페라가 평창대관령 음악축제에서 공연되었다고 한다. 알아듣기 힘든 러시아어 오페라를 두시간 동안 중간 휴식도 없이 한국 청중이 듣다가 한꺼번에 폭소를 터뜨리는 일이 벌어졌다니 믿을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언론이 그렇게 전하니 믿지 않을 수 없다.
한 언론의 기사를 보자.
"청중의 폭소는 두 번 있었다. 웃어야 병이 낫는 왕자가 어이없는 이유로 ‘하하하’ 웃는 장면, 여장을 한 덩치 거대한 요리사가 아름다운 리본을 갖고 싶어서 무릎으로 기며 애교를 떠는 장면이었다. 두 장면 모두 작가의 재치, 작곡가의 드라마에 대한 이해, 성악가의 연기력이라는 삼박자가 맞았다".
이 공연은 지난 7월 29일 오후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열린 '세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이었다. 제14회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가장 비중 있는 무대였는데,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의 한국 첫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코피예프가 이 오페라를 완성한 것은 1919년이니까, 한국 공연은 작곡 98년 만이다. 러시아 성악가 14명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선 이유이기도 하다.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은 줄거리만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 같다. 한 왕자가 병에 걸려 웃음만이 치료법이라는 진단을 받고, 그 어떤 시도에도 웃지 않다가 마녀의 우스꽝스러운 자세에 그만 웃음이 터진다. 마녀는 화가 나서 왕자에게 “오렌지 세 개와 사랑에 빠지리라”는 저주를 남긴다. 왕자는 오렌지를 찾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여장 남자 요리사를 지혜롭게 물리친다. 왕자는 어렵게 구한 오렌지 안에서 아리따운 공주를 발견하고 결혼한다. 물론 많은 인물이 그 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힌다. 저주·변신 같은 코드가 줄거리 안에 어지럽게 도열해 있다.
그럼에도 청중의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복잡함을 잊을 만큼 드라마가 선명했고, 음악은 드라마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오페라에서는 성악가들의 노래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느릿느릿 스토리를 진행시키지만, 이 오페라를 작곡한 프로코피예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아리아를 넣지 않았고, 다만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음악을 복종시켰다. 청중이 폭소하며 난해한 줄거리를 헤쳐 나가도록 끌고가는 오페라였다. 오랜만에 한국 청중을 끄는 무대였다는 평가다. 이 오페라는 해외 오페라 무대에서는 꽤 자주 연주되는 작품인데 한국에선 처음이었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평창 및 강원도 일원에서 8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