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비담심론 제1권
2. 행품(行品)
[법생(法生)]
이미 모든 법의 자상(自相)에 대하여 설명하였으니, 이제 법생(法生)에 대해 설명하겠다.
【문】
만약 모든 법이 자성에 포섭되는 것이라면 또한 마땅히 자력(自力)으로 생기는 것인가?
【답】
궁극에 이르러서는 능히 생하는 것이 없으니,
등려(等侶)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일체법은 스스로 생겨날 수가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행(行)의 본성은 열등하여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병든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것과 같다.
【문】
만약 자력으로 일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일어나는가?
【답】
일체는 여러 연(緣)의 힘으로
모든 법이 마침내 생겨날 수 있다.
병든 사람이 다른 이의 도움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과 같이, 그것도 역시 이와 같다.
[마음과 동반해서 생기는 것]
마음[心]과 동반해서 생기는 것을 이제 설명하겠다.
만약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있다면, 이 마음에는 반드시 함께 하는 것이 있으니, 마음에 속한 법 등의 부류 및 서로 호응하지 않는 행이다.
마음[心]이란 의(意)이고 의란 식(識)이다. 실은 같은 것인데 이름을 달리하고 있다. 이 마음이 혹은 의(依) 혹은 연(緣) 혹은 시간으로 해서 일어나면, 그 마음은 마음에 속한 법 등의 취와 함께 생한다.
【문】
무엇이 마음에 속한 법 등의 취인가?
【답】
상(想)과 욕(欲)과 갱락(更樂)과 혜(慧)와
염(念)과 사(思)와 해탈과
경계에 있어서의 작의(作意)와
삼마제(三摩提)와 통(痛)이다.
‘상’이란 일이 일어날 때에 그 모습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요,
‘욕’이란 받아들일 연(緣)이 있을 때, 받아들이려고 욕구하는 것이다.
‘갱락(更樂)’이란 심(心)과 의(依)와 대상[緣]이 화합하여 서로 떠나지 않는 것이요,
‘혜’란 대상에 대하여 결정하고 살피는 것이다.
‘염’이란 대상에 대하여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요,
‘사’란 공덕과 악 및 함께 다른 것을 마음에서 조작하는 것이다.
‘해탈(解脫)’이란 대상에 대하여 느끼고 생각할 때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요,
‘작의’란 대상에 대하여 용맹 발동하는 것이다.
‘정(定)’이란 대상을 받아들일 때에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것이요,
‘통(痛)’이란 낙(樂)과 불락(不樂) 및 이 두 가지와는 서로 다른 것[不苦不樂]으로서의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체의 마음이 생길 때
이것이 생겨남은 성인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똑같이 함께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행하고
또한 항상 서로 응한다.
‘일체의 마음이 생길 때 이것이 생겨남은 성인께서 말씀하신 것이다’고 함은 이 열 가지 법이 일체의 마음이 생길 때 함께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대지(大地)’라고 하는 것이다.
‘똑같이 함께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행한다’고 함은 일체의 마음과 함께 동일한 연에 대해서 행하여 서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항상 서로 응한다’고 함은 각각 함께 갖추고 또 마음과 함께 항상 서로 응하여 함께 행한다는 것이다. 증감을 여의므로 ‘서로 응한다’고 한다.
[마음에서 통하지 않는 것]
이미 마음에 속한 법이 소위 일체의 마음속에서 통하는 것을 설명하였으니, 이제는 통하지 않는 것을 설명하겠다.
모든 근(根)과 각(覺)과 관(觀)과
신(信)과 의(猗)와 불방일(不放逸)과
진(進)과 호(護)와 뭇 번뇌는
혹은 때로 서로 응하지 않기도 한다.
‘모든 근’이란 선근(善根)이니, 말하자면 무탐(無貪)ㆍ무에(無恚)ㆍ무우치(無愚癡)이다.
각(覺)이란 마음에 있어서의 거친 상속(相續)이요,
관(觀)이란 마음에 있어서의 미세한 상속이다.
‘신’이란 진실한 청정을 이루는 것이요,
‘의(猗)’란 착한 마음일 때 몸과 마음에서 악을 여의므로 경쾌하고 즐거운 것이다.
‘불방일’이란 선을 지을 때에 방편으로서 버리지 않는 것이요,
‘진(進)’이란 일에 전념하는 것이다.
‘호(護)’란 일을 하는데 있어서 행하지 않는 것으로써 행하고 구하지 않는 것으로써 구하는 것이니, 스스로 조작하지 않는 것[無爲]이다.
‘뭇 번뇌’란 마치 「사품(使品)」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이들 법은 일체의 마음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혹은 때로 서로 응하기도 하고 혹은 때로 서로 응하지 않기도 한다.
[마음에 속한 것]
【문】
어째서 ‘마음에 속한 것’이라 하는가?
【답】
의(意)란 그것을 심(心)이라고 부르는데, 그 권속이므로 ‘마음에 속한 것’이라 한다.
[생하는 것]
이미 모든 마음에 속한 것의 법상(法相)에 대하여 설명했으니, 이제부터는 생하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불선(不善)의 심품(心品) 중에는
마음에 속한 것이 스물하나이다.
예오(穢汚) 가운데 둘을 뺀 것은
욕계의 비불선(非不善)이다.
‘불선의 심품 중에는 마음에 속한 것이 스물하나이다’고 함에서 불선이란 마음에 욕계의 모든 번뇌가 생기는 것으로, 욕계의 신견(身見)ㆍ변견(邊見)은 제외된다. 이는 불애(不愛)의 과(果)를 움직여 만들기 때문에 불선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품 가운데에는 스물한 가지의 마음에 속한 법이 있음을 알아야 하니, 이른바 10대지(大地)와 각(覺)ㆍ관(觀)ㆍ두 가지 번뇌ㆍ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수(睡)ㆍ조(調)ㆍ불신(不信)ㆍ방일(放逸)ㆍ해태(懈怠)이다.
‘예오(穢汚) 가운데 둘을 뺀 것은 욕계의 비불선이다’고 함은 말하자면 심품은 곧 욕계의 더러움이지만 이것은 불선은 아니라는 것이고, 신견ㆍ변견이 서로 응하는 마음과 같다는 것이다.
이들 품 중에서는 열아홉 가지 마음에 속한 법이 있음을 알아야 하니, 무참과 무괴를 빼면 오로지 불선이기 때문이다.
선(善)과 불공(不共)은 스물이고
무기(無記)에는 열둘이 있다.
회(悔)와 면(眠)에서 마음은
이것을 능히 더한다.
‘선과 불공은 스물이다’고 함에서,
‘불공’이란 마음에 오로지 하나의 무명번뇌가 생하는 것을 이른다. 이것은 스무 가지 심수이다. 하나의 번뇌를 빼고 나머지는 앞에서와 같이 설명한다.
‘선’이란 깨끗한 마음이 능히 애과(愛果)를 움직여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마음과 함께하는 것이 스무 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10대지ㆍ각ㆍ관ㆍ신ㆍ의ㆍ불방일ㆍ선근ㆍ호ㆍ참ㆍ괴이다.
‘무기에는 열둘이 있다’고 함은 더럽지 않은 심품 중에는 열두 가지 마음에 속한 법이 있다는 것이니, 즉 10대지와 각과 관이다.
‘회와 면에서 마음은 이것을 능히 더한다’고 했는데,
‘회(悔)’란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한(恨)하는 것이니, 이것은 선ㆍ불선으로서 그들이 서로 응하는 심품 중에서 회를 증가시킨다.
나머지 마음에 속한 법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면(眠)’이란 멸심(滅心)과 오로지 합하여 자재(自在)하지 못하므로 일컬어 면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체의 다섯 품 가운데서 그것이 생겨나서 모두 증익시킨다.
나머지 마음에 속한 법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회와 면이 작용하지 않는 세 품 가운데서는 이 둘을 증가시킨다.
나머지 마음에 속한 법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문】
이는 욕계의 심상속(心相續)을 설명한 것이다.
색계는 어떠한가?
【답】
초선(初禪)은 불선(不善)을 여의고
나머지는 욕유(欲有)와 같다.
선(禪)의 중간은 각(覺)이 제외되나니
위에서의 관(觀)도 역시 그러하다.
‘초선은 불선을 여의고 나머지는 욕유와 같다’고 했는데,
초선에서는 불선이 없고 그 중에는 네 가지 품이 있으니, 선(善)ㆍ더러움ㆍ불공ㆍ무기이다.
이는 욕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선은 스무 가지, 무기는 열두 가지, 더러움[穢汚]은 열아홉 가지이며, 이미 불선은 여의었다.
또한 무참과 무괴를 여의고 오로지 불선이기 때문에 불공에는 열여덟 가지가 있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선의 중간은 각이 제외된다’고 함은 중간선(中間禪)에서는 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각이 제외된 것이고 나머지는 초선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위에서의 관도 역시 그러하다’고 함은 제2ㆍ제3ㆍ제4선에서는 다시 관이 없고 나아가 무색계 역시 그 안에서는 일체의 관이 제외된다는 것이다.
각은 앞에서 이미 제거된다.
[색]
이미 마음에 속한 법이 동반해서 생하는 것을 설명했으므로, 이제 색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극미(極微)는 네 근(根)에 있어서
열 가지라고 알아야 하니,
신근(身根)에는 아홉이 있고
나머지에는 여덟이 있으니 소위 향이다.
‘극미는 4근에 있어서 열 가지라고 알아야 한다’고 함은 이른바 극미가 눈에 있어서는 곧 열 가지가 있다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종(地種)ㆍ수종(水種)ㆍ화종(火種)ㆍ풍종(風種)ㆍ색종(色種)ㆍ향종(香種)ㆍ미종(味種)ㆍ세활종(細滑種)ㆍ안근종(眼根種)ㆍ신근종(身根種)이다.
이ㆍ비ㆍ설의 극미도 역시 이와 같다.
‘신근에는 아홉이 있다’고 함은 이른바 나머지 신근의 극미는 아홉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에는 하나의 근종이 있으며, 나머지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나머지에는 여덟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나머지 근이 아닌 색 중에는 극미로서 여덟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문】
이러한 극미는 어느 계(界)를 말하는가?
【답】
향계를 말한다.
욕계에서는 냄새가 있지만 색계에서는 냄새를 여읜다.
그들 일체는 향ㆍ미의 요소가 제외되며, 나머지 종은 욕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문】
앞에서 이미 만약 마음이 생하면 그 중에 반드시 마음에 속한 법이 생하고 나아가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도 생한다고 말했으며, 거기에서 이미 마음에 속한 법은 설명했다.
[그렇다면] 심불상응행은 무엇인가?
[유위법]
【답】
일체의 유위법은
생(生)ㆍ주(住)ㆍ변이(變異)ㆍ괴(壞)이다.
일체의 유위법에는 각각 네 가지 상(相)이 있으니, 생ㆍ주ㆍ이ㆍ괴이다.
세상 속에서 일어나므로 ‘생’이요,
이미 일어나 스스로 일을 세우므로 ‘주’이다.
이미 머물러 세력이 쇠퇴하므로 ‘이’이고,
이미 달라져서 사라지므로 ‘괴’이다.
이러한 모습을 심불상응행이라고 한다.
【문】
만약 일체의 유위법에 각각 네 가지 모습이 있다면, 이것이 모습이 되거늘 다시 모습이 있어야 하는가?
【답】
이것에도 역시 네 가지 모습이 있다. 그 모습 중에 나머지 네 가지 모습이 함께 생하니, 생은 생이 되고 주는 주가 되며, 이는 이가 되고 괴는 괴가 된다.
【문】
만약 그렇다면 끝이 없어야 할 것이다.
【답】
전전(展轉)하여 서로 상(相)이 된다.
이 상은 각각의 상이 된다. 생생(生生)은 각각의 상이 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주(住住)는 각각의 상이 머무는 것이고,
이이(異異)는 각각의 상이 달라지는 것이고,
괴괴(壞壞)는 각각의 상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끝이 없는 것이 아니다.
뒤의 네 가지 상은 각각 하나의 법을 행하고, 앞의 네 가지 상은 각각 여덟 법을 행한다.
‘생’이란 여덟 법을 행함이니, 앞의 셋과 뒤의 넷과 그리고 그 자신의 법이다. 나머지도 역시 이와 같다.
[행의 동반을 말미암아 생하는 것]
이미 모든 행(行)의 동반을 설명했다.
동반을 말미암아 생하는 것을 이제 설명하겠다.
소작(所作)과 공(共)과 자연과
보편과 상응과 보(報)
이들 여섯 가지의 인(因)이
바뀌어 유위법을 낳는다.
일체의 인은 모두 여섯 가지 원인 중에 존재하며, 이들 인은 모든 유위법을 낳는다.
여기에서 ‘소작인(所作因)’이란 법이 생할 때에 장애(障礙)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다. 이것에 연유하므로 서로 비슷하지 않은 법을 낳으니, 마치 땅에 연유하여 만물이 생장하는 것과 같다.
‘공인(共因)’이란 모든 행에 각각의 상(相)이 동반하여, 이것에 연유하므로 생기는 것으로, 마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과 심불상응행 및 극미의 요소와 같다.
‘자연인(自然因)’이란 그 스스로 이미 서로 비슷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 선을 닦으면 선이 생하고, 불선을 닦으면 불선이 생하고, 무기를 닦으면 무기가 생하는 것과 같다.
마치 물(物)의 요소가 그 종류의 상인(相因)을 따르는 것과도 같다.
‘일체변인(一切遍因)’이란 이른바 모든 번뇌가 변하여 상속하면서 생하는 것으로, 마치 견아(見我)로써 살펴 들어가고 헤아려 집착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견에 연유하므로 아(我)에 대해 유상ㆍ무상이라고 살펴 들어가고 헤아려 집착하며, 음상(陰相)을 비방하여 살펴 들어가고 헤아려 집착하며, 음상에 대해 의심[猶豫]하여 상(常)ㆍ낙(樂)ㆍ정(淨) 등이 있다고 받아들인다.
모든 번뇌를 생하는 것도 이와 같다.
모든 일체변(一切遍)에 대한 설명은 「사품(使品)」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상응인(相應因)’이란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이 각각의 힘으로 하나의 대상(緣) 가운데서 일시에 행상(行相)하는 것이니, 떠나면 곧 생하지 않는다.
‘보인(報因)’이란 이른바 행(行)이 생(生) 가운데 생하여 과(果)를 변천하여 만든 것이다. 선에 애과(愛果)가 있고 불선에 불애과가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에 연유하여 생한다.
[모든 법이 인을 따라서 그 가운데서 생하는 것]
이미 모든 인을 설명했으니, 이제 모든 법이 인을 따라서 그 가운데서 생하는 것임을 설명하겠다.
마음이 보(報)로 인해서 생하는 것과
마음에 속한 것과 번뇌는
다섯 가지 인으로부터
흥기한다고 알아야 한다.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이 보로 인해서 생기는 것과 모든 번뇌는 이들 다섯 가지 인을 따라서 생긴다’고 했는데, 보인(報因)이 생기는 것은 소작인에 따라 생긴다. 그것이 생겨날 때에는 서로 비슷하고 서로 비슷하지 않은 사물이 장애하지 않으므로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공인(共因)에 따라 생하니, 힘을 수반하므로 생하는 것이다. 그들 각각의 상이 동반하고 또한 심불상응행이 함께 동반한다.
그리고 자연인(自然因)을 따라 생한다. 그것은 서로 비슷하며, 앞에 생한 것은 무기법(無記法)이다.
그리고 상응인에 따라 생하니, 함께 일시에 하나의 대상 가운데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인에 따라 생한다. 그것은 선ㆍ불선이니, 말하자면 이것의 결과는 더러움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으로서 보인을 제외한 것이고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체변인(一切遍因)에 따라 생한다. 이것에서 연유하므로 생하는 것이다. 나머지 네 가지 인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이것과 저것 불상응과
모든 나머지 상응법과
그 최초의 무루를 제외한 것은
네 가지 인을 따라서 생한다.
‘이것과 그것의 불상응’이란 색에 있어서 보(報)에 따라 생하는 것과 심불상응행을 말한다. 이것은 네 가지 인에 따라 생하니, 소작인과 공인과 보인과 자연인이다.
더러움의 색과 심불상응행도 역시 네 가지 인에 따라 생하니, 소작인과 공인과 자연인과 일체변인이다.
‘모든 나머지 상응법과 그 최초의 무루를 제외한 것은 네 가지 인에 따라서 생한다’고 함은 나머지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 및 최초의 무루를 제외한 것도 또한 네 가지 인, 곧 소작인ㆍ공인ㆍ자연인ㆍ상응인을 따라 생함을 말한다.
나머지 불상응은
같이 생하는 것이 셋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나머지 상응으로서
처음 생기는 무루법도 [마찬가지이다].
불상응의 앞에서 설한바 나머지에서 자연인이 있는 것은 초무루를 제외한다.
이것은 세 가지 인에 따라서 생하니, 소작인과 자연인과 공인이다.
초무루의 상응도 역시 세 가지 인을 따라 생하나니, 소작인과 공인과 상응인이다.
이것들에는 앞의 자연인이 없다.
그 중에서 상응하지 않는 것은
응당 두 가지 인을 따라서 생하니,
하나의 인 가운데에서
생하는 것은 결코 없다.
‘그 중에 불상응인 것은 응당 두 가지 인을 따라서 생한다’고 함은 「초무루품」 중에서 색과 심불상응행은 두 가지 인, 곧 소작인과 공인을 따라서 생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일체의 유위를 설명했다. 그 중에서 하나의 인만을 따라 생하는 것은 결코 없다.
이미 모든 인을 설명했다.
이와 같은 인에 대하여 여래께서는 모든 법상을 결정코 알고 깨달음의 힘으로 교화하여 설명하셨다.
[연(緣)]
이제부터는 연(緣)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차제(次第)와 또한 연연(緣緣)과
증상(增上)과 그리고 인(因)
법은 네 가지 연을 따라 생하나니
밝은 지혜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 것이다.
‘차제연(次第緣)’이란 하나하나의 마음마다 생기고 상속하여 끊임이 없는 것이다.
‘연연(緣緣)’이란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의 경계이다. 그것을 연하여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이 생긴다.
‘증상연(增上緣)’이란 곧 소작인으로서 일체의 만물이다. 만물이 생길 때 장애를 만들지 않는다. 단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니, 이것을 증상연이라고 말한다.
‘인연’이란 공인ㆍ상응인ㆍ자연인ㆍ보인ㆍ일체변인이다.
[모든 법이 연을 따라 생하는 것이다]
이미 모든 연을 설명했다.
이제 모든 법이 연을 따라 생하는 것을 설명하겠다
마음과 그리고 모든 마음에 속한 것은
네 가지 연을 따라서 (생겨난다).
두 가지 정수(正受)는 세 가지에 대하여 생기고
나머지는 두 가지에 대하여 생긴다.
‘마음과 그리고 모든 마음에 속한 것은 네 가지 연을 따라서 생긴다’고 함은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은 네 가지 연을 따라서 생긴다는 것이다. 앞에서 열고 인도하므로 생겨나니, 이것은 그 차제연(次第緣)이고 경계는 곧 연연(緣緣)이 된다. 그 자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체의 법은 증상연이다.
‘두 가지 정수는 세 가지 연을 따라 (생겨난다)’고 함은 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은 세 가지 연에 대하여 생긴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정에 드는 마음은 곧 차제연이다. 그 가운데 자기 경지[地]의 전생 공덕은 그 인연이다. 그리고 나머지 함께 생하는 생ㆍ주ㆍ이ㆍ괴도 역시 그 인연이다. 그 증상연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나머지는 두 가지 연에 대하여 생긴다’고 함은 그것들을 여읜 나머지 심불상응행과 색은 인연과 증상연의 두 가지 연을 따라서 생긴다는 것이다.
【문】
무엇 때문에 이 모든 법은 그것을 행한다고 말하는가?
【답】
많은 법이 하나의 법을 생하고
한 법도 또한 능히 많은 법을 생한다.
연행(緣行)ㆍ소작행이니,
이와 같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많은 법이 하나의 법을 생하고, 한 법도 역시 능히 많은 법을 생한다’고 함은 어느 한 법도 자력으로 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법은 많은 법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많은 법도 역시 하나의 법으로 말미암아 생겨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연행ㆍ소작행이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