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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문보살십주제구단결경 제1권
2. 유화품(留化品)
그때 최승보살이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보살은 2주지(住地)에서 행을 완전히 갖추어서 반드시 원한 바를 이루고 중간에 잘못됨이 없습니까?”
[2주지 보살의 행]
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2지(地) 가운데서 항상 생각하여야 한다.
그 계율에 청정하기를 생각하고 그 중한 은혜를 알며,
부지런히 인욕을 행하고 겸손하고 공경하여 몸을 낮추며,
언제나 기쁘고 즐거움을 품으며 먼저 웃고 뒤에 말하며,
큰 자비를 행하고 스승과 어른[師長]에게 효순하며,
3보(寶)를 돈독하게 믿고 미묘한 지혜를 숭앙하여 익히며,
염착을 내거나 항상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헤아림이 없어야 하느니라.
무릇 항상 있다고 헤아리는 것은 이를테면 나고 죽는 업[生死業]에는 도(道)가 항상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항상하는 도는 높은 것이 아니요 높은 것은 벗어나서 항상하는 것이 아니어야 바로 높다고 말하나 높은 것도 이미 높은 것이 없거늘, 어떻게 도의 높은[道尊] 것을 말하겠느냐?
그러므로 최승아, 보살이 도(道)를 분명히 알면, 높거나 낮은 것이 없고 또한 모양도 없느니라.
허공은 오히려 항상하여 형질(形質)이 있다고 말하거니와,
진실한 도[眞道]는 그 이름도 볼 수 없는 것이니,
그 마음은 안정되고 평온하여 속박이나 집착한 바가 없느니라.
닦는 바 덕업(德業)은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고, 중도(中道)이면서 끊어짐이 없으며,
모든 악(惡)은 남은 것이 없고,
그 마음은 영원히 안정되어 움직이거나 옮아갈 수 없으며,
뜻은 마치 금강(金剛)과 같으니라.
또한 반려(伴侶)도 없으며,
모든 법의 근본을 알고,
이미 온갖 때[衆垢]를 제거하여 어둠이 소멸하였으며,
그 법은 환히 빛나면서 광명을 비추지 않음이 없고,
마음은 질박하며 정직하느니라.
또한 아첨이 없으며,
성품과 행동은 평등하여 저것과 이것[彼此]이라는 뜻이 없고,
마음을 일으킨 뒤부터는 언제나 새롭고 깨끗한 생각을 품나니,
본래부터 청정하기 때문에 모든 때[垢]를 버리게 되고, 맑은 못에서 목욕하여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을 씻어 없앴느니라.
그 믿음은 견고하여 빠뜨리거나 버리는 바가 없고,
보시하려는 뜻이 광대하여 끝이 없으며,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또한 다함이 없고 하열한 이를 받아들여 돕고 기르면서 제도하게 되느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 지혜가 순수하고 맑아서[純淑] 방해되는 바가 없고,
마음으로 꾀한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바가 없으며,
큰 사랑[大慈]은 그지없어서 다하지 않는 창고[藏]이며,
변재(辯才)를 얻어 알고 언제나 부끄러운 마음을 품느니라.
견고한 행과 마음은 무너뜨릴 수 없고,
도(道)를 깨달은 힘은 들어가지 못한 바가 없으며,
변재는 모든 이들보다 뛰어나서 간절히 우러르지 않음이 없고,
모든 총지(摠持)를 얻어서 또한 잊어버리지 않으며,
처음부터 급하지 않은 일은 연설하지도 않고,
백천의 정(定)에도 끝내 의심이 없으며,
선악의 법을 듣고도 근심이나 기쁨을 품지 않기 때문이니라.
스스로 뽐내지도 않고 다시 자신을 낮추지도 않으며,
나아가는 데에 자상하고 위의를 잃지 않으며,
12행(行)의 근본으로 5음과 6쇠의 일어나는 바를 깨달아 아느니라.
다시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로써 12연기(緣起)를 분별하고,
어리석은 행과 생사를 꿰뚫어 통달하지 않음이 없으며,
5근(根)을 관찰하여 사념(思念)을 갖추고 원만하게 하며,
다시는 생사에 왕래하면서 더러움에 집착하지 않고, 이에 84지(智)로써 모든 번뇌를 소멸시키며,
서원으로 화신(化身)을 한 겁(劫) 동안 남겨두면서 가르쳐 주느니라.
나의 지금과 같은 몸으로 반드시 무여열반[無餘泥洹]에 들어가되 영원히 멸도(滅度)하지도 않고,
또한 다시 화신으로 남아 현명(賢明)한 국토에 있으면서 수없는 대중을 거느리고 앞뒤에 에워싸여서 미묘한 법을 연설하기 때문이니라.
[부동전 부처님 세계]
최승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현명은 여기서 북방(北方)으로 13억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를 지나가서 거기에 세계가 있나니, 이름은 부동전(不動轉)이니라.
부처님께서 계시니 명호는 조의(照意)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며, 현재에도 계시면서 설법하신다.
그 부동전세계에도 성문이나 연각이라는 이름이 없고 순전히 모두가 지위에 오른[登位] 대승행(大乘行)의 사람들뿐이어서,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과 신통 지혜로써 스스로 즐길 뿐이며,
끝없는 지혜로써 그 몸을 감았고 때에 따라 장구(章句)의 깊고 오묘한 것을 분별하며,
자(慈)ㆍ비(悲)ㆍ희(喜)ㆍ호(護)로 평등함이 마치 허공과 같고 앞의 중생을 살펴보고 그의 뜻과 성품을 알며,
감로(甘露)가 끝없이 법의 맛을 비처럼 내리느니라.
그것을 먹는 이는 성냄의 번뇌가 없게 되고, 삼매(三昧)의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행하며,
생사를 구제하여 무위의 언덕[岸]에 서고 악마와 진로(塵勞)와 해를 품는 독을 항복받으며,
그 부처님의 신족으로 감동하고 변화하여 한량없는 불국토를 왔다갔다하며 돌아다니고,
그 가르침을 받는 이는 그가 화신인 줄 모르고 진짜 부처님으로 여기느니라.
[화신불]
과거 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 세존은 모두가 변화로 된 부처님[化佛]을 머물게 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접하면서 무위를 얻게 하셨으니,
이 때문에 여래께서는 몸을 숨기고 알맞게 교화하는 것이 불가사의하며,
장래의 부처님인 자씨(慈氏) 등의 부처들도 역시 저마다 여래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중생들을 깨우치고 인도할 것이니라.
내가 비록 멸도한다 하더라도 그 변화한 부처님 몸은 역시 멸도하지 않을 것이니라.
이 때문에 최승아, 변화[化]에도 변화는 없고 부처님에도 역시 부처님이 없으며,
공하고 고요하여 또한 둘ㆍ셋이나 약간의 모양도 아닌 줄 아는 것이니,
2지(地) 보살은 언제나 허깨비[幻化]의 법을 닦아 익혀 지혜 자리[慧地]와 지성스럽게 믿는 자리[誠信地]와, 견지(見地)와, 박지(薄地)와, 마지막에 이루는 자리[終成之地]와, 연각이나 성문이 있게 되는 자리를 관하여 환히 알며,
비록 그 질병을 치료한다 하더라도 그 증득[證]을 취하지 않느니라.
[성문과 연각, 보살]
가령 최승아, 2주(住) 보살이 성문이나 연각의 증득을 취하고자 하면 심히 어려움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손에 화만(華鬘)과 명월주(明月珠)를 가지고 허공에 던지고는 아직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 중간에 번뇌[結]를 끊고 때[垢]를 끊으며,
모든 번뇌가 영원히 소멸하면 나고 늙고 죽는 근심과 걱정의 고통이 없게 되는 것과 같나니,
다만 보살은 비록 결을 끊을 줄 안다 하더라도 끝내 증득을 취하지 않을 뿐이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중생들의 상ㆍ중ㆍ하의 뜻을 아직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니,
그 마음을 견고하게 하고 영원히 궁극[究竟]에 처하여 번뇌가 없는 구름[無蓋雲]을 일으켜 지혜의 천둥소리를 치고 감로의 약을 비처럼 내려서 진리[眞諦]의 보배를 널리 펴며,
세 가지 업[三業]을 끊지 않아도 뜻과 생각은 새롭고 깨끗한 것이 마치 물이 맑아 짙푸른 것과 같아 항상 금계로써 스스로 장엄하느니라.
다시 온갖 덕[衆德]으로써 형상을 장식하고 최상으로 묘한 성현의 각도(覺道)를 받들고 좇으며,
마지막 태분(胎分)의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이르고 모든 부처님이 지었던 본래의 업[本業]을 깨달으며,
각의(覺意)와 총지(摠持)가 모두 다 처소가 없고 먼저 뜻을 일으켜 도량을 엄숙하게 장엄할 것을 생각하느니라.
때에 따라 나아가고 그치되 안반념(安般念)을 수행하느니라.
또한 대중에 있되 뜻이 강직하여 두려움이 없는 마음으로 제어하며,
마음은 용맹하고 씩씩하면서 자재(自在)함을 얻고,
마음을 낸 소원이 이루어져 심히 사랑하고 공경할 만하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기쁘고 즐거운 법을 말하고 그 마음은 특히 높아서 여러 사람보다 뛰어나느니라.
만일 공하여 없다[空無]는 마음을 능히 지닌다면 외도의 기묘한 술법이 그를 어떻게 하지 못하며, 성문이나 연각이 언제나 존숭하고 공경하게 되느니라.”
[2지보살의 행]
이때 세존께서는 다시 최승에게 말씀하셨다.
“2지 보살은 본래 없음[本無]을 통달하여 알고 신업[身]의 행을 멀리 여의며,
구업[口]의 앙화를 버리고 의업[意]의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어, 3예(穢)를 소멸시키고 3재(災)를 억제하며,
5폐(弊)를 닫아 막고 12치행(癡行)의 근본을 미루어 찾느니라.
상ㆍ하의 5결(結)이 삼계(三界)에 흩어져 있되 점차로 제거하여 물리침으로써 늘거나 많아짐이 없으며,
11고뇌(苦惱)의 종기를 사유하여 모든 4대(大)로 탐착하는 병을 버리고 모든 사물의 오로(惡露)의 법을 분별하느니라.
집의 일[家業]을 피하여 모든 습속(習俗)을 쉬게 되고, 애욕과 성냄과 탐욕의 때[垢]를 끊느니라.
청정하게 근본을 베어 버려 내닫지 않게 하고 언제나 무아(無我)라는 생각을 사유하고 헤아리며,
4신(信)을 굳게 세우고 4의지(意止)에 머무르며,
4의단(意斷)을 이루고 5근(根)을 칭찬하며,
5력(力)을 펴고 나타내어 이지러진 뜻이 없고,
7각(覺)의 모든 보배 광을 깨달아 알며,
여덟 가지 바른 현성의 도[八正賢聖道]를 수행하고 8대인(大人)을 생각함에 처음부터 그만두거나 버리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최승아, 2지 보살은 마음을 다잡아 뜻을 고르니 약간의 생각도 하지 않고, 모두가 공하여 진실이 없음을 알아, 이에 으뜸가는 자리[上位]를 얻어 보살의 수기(授記)를 받게 되느니라.
움직이거나 수고로이 행하지 않고 또한 그 행을 여의지도 않고 으뜸가는 지혜를 배우며,
비록 높고 귀함이 있으나 뜻에 높은 체하지 않느니라.
모든 법은 한 법[一法]이라고 관하여 알면 둘도 아니고 셋이라는 생각도 헤아리지 않으며,
또한 이익 없는 생각을 일으키지도 않고 한계[限際]가 있다 없다는 생각이 있지도 않느니라.
생각[想]은 처소가 없음을 분명히 알지만 처소가 없다는 데에도 머무르지 않고,
오직 정각(正覺)만이 청정하니 모든 부처님도 청정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잘 다루어 바르게 머물며 삿되지 않고 평등하게 선과 악이 한결같고 다 함께 공한 줄 자세히 알면서 그 공도 의심하거나 거리끼지 않느니라.
또한 다시 다툼[爭]이 있고 다툼이 없는 것과,
관(觀)이 있고 관이 없는 것도 보지 않으며,
본래부터 하나도 없지만 또한 그 하나라고도 보지 않으며,
하나를 알고 그 하나를 제거하나 그 하나에도 머무르지 않느니라.
다시 하나로부터 여러 가지 생각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평등하게 수승한 뜻[勝意]을 익히면서 한정 있는 것[有際]을 익힘이 없고, 한정이 있거나 이김[勝]이 있거나 짐[負]이 있는 것도 보지 않느니라.
마음의 산란을 허락하지도 않고 안팎의 법을 초월하며,
식(識)을 잘 방어하여 안정하게 옮아가지 않으며,
비록 3유(有)가 있더라도 3유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성품을 깊이 살펴 근본이 없음을 분명히 아나니,
근본이 없음을 아는 것은 이른바 청정한 자리[淨地]이니라.
2주 보살은 스스로 그의 마음을 바로잡아 모든 법의 근본은 다 같이 무상(無常)함을 관하며,
언제나 들어가는 바가 없고 생겨나는 것을 보지도 않으며,
선(善)ㆍ불선(不善)ㆍ호(好)ㆍ오(惡)라는 이름과, 이(利)ㆍ쇠(衰)ㆍ훼(毁)ㆍ예(譽)ㆍ칭(稱)ㆍ기(譏)ㆍ고(苦)ㆍ낙(樂)도 없고,
바르게 마음과 뜻을 조복하여 근심 걱정이 없느니라.
들어간 처소에 있어 큰 창고[大藏]를 열어 보이고,
큰 법의 바다[大法海]에 들어가서 일곱 지혜[七慧] 구함을 생각하며,
3애(愛)를 끓여 삶고 4류(流)를 잘 제어하며,
여섯 가지 중한 법을 닦고 과증의 행[果證行]을 이루느니라.
이와 같이 최승아, 보살 대사(大士)는 모두 법을 완전히 갖춘 뒤에는 형체도 모양도 없어 볼 수 없음을 아나니,
이것이 바로 익히고 배워 2지(地)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