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2주년 공동행동 선언문]
우리는 더 이상 비밀이고 싶지 않다!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임신중지는 임신이나 출산보다 위험이 적은 매우 안전한 절차이며 심각한 합병증은 매우 드뭅니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 여러분의 자녀 또는 파트너가 임신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경우 여러분은 그 과정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격을 갖춘 의료인(간호사, 의사 또는 조산사)으로부터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조치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괴롭힘이나 위협을 받지 않고 임신중지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뉴질랜드 보건부가 지원하는 임신중지 정보 사이트는 이와 같은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임신중지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정부의 무상지원으로 안전하게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를 받을 원리가 있음을 알려주고, 본인과 의료인 뿐아니라 가족, 파트너, 지인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안내한다. 이와 함께, 거주지에서 가까운 의료기관에 관한 정보, 의료기관에서의 관련 절차, 임신중지 방법에 따른 정보, 임신중지 전/후에 고려할 것 등 당사자에게 필요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을 위한 책임을 지닌 정부라면 마땅히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4년, 이에 따라 형법상 ‘낙태의 죄’가 효력을 잃고 임신중지 비범죄화가 이루어진지 2년이 지난 오늘, 한국에서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정보들은 어떤 것인가? 관련법과 의료적 사실을 왜곡⋅과장하는 정보들, 비밀 상담을 강요하는 병원들 속에서 우리의 정당한 권리와 안전한 임신중지 지원체계에 관한 공식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여전히 우리는 포털사이트와 SNS에서 단편적인 정보들을 검색하고,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병원마다 전화나 채팅으로 상담을 하며, 병원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알 수 없는 비용에 가슴을 졸여야 한다. 산부인과 의료시설이 많지 않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정보 차단·언어· 비장애인 중심의 여건으로 인해 필요한 정보와 의료시설을 찾기가 어려운 청소년, 장애인, 이주민/난민들은 더욱 힘든 상황들을 경험하고 있다. 매 순간 당연한듯 제시되는 ‘비밀상담’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흐르고,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지만 정부는 이 시간이 우리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여전히 아무런 관심이 없다.
유산유도제와 건강보험 도입 지연, 정부는 우리의 건강과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임신중지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이 개개인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며,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만큼 각국이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임신중지는 단지 한 순간의 선택이거나 동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에 대한 인식과 성·재생산 건강,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조건들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회가 안전한 임신중지의 필요성과 권리, 이를 보장하기 위해 보건의료·교육·노동·사회복지 등의 각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를 논의하고 구축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이러한 책임을 방기한 채 우리의 건강과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안전한 유산유도제를 도입하기 위한 절차는 중단되었고, 건강보험 적용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의 건강과 권리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으면서 황당한 저출산 대책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지금 이곳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을 이토록 무시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나라에서 정부는 감히 무슨 면목으로 저출산을 운운하고 있는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공식 보건의료 체계와 접근성 확대, 지금 당장 시작하라!
우리는 다시 한 번 요구한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를 공식화하고,
-임신중지와 관련된 모든 의료서비스를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보장하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공하고자 하는 보건의료인들이 비급여 수가의 결정과 비밀상담을 고민하는 대신 상담과 진료, 필요한 의료 조치를 안심하고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라. -임신 기간과 임신중지 방법, 개인의 상황과 여건을 고려하여 상급 의료기관 및 각 지역 의료기관에 연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라.
-누구나 안전한 약을 이용해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하루속히 유산유도제를 승인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정보 시스템을 마련하라. -임신의 유지 여부와 출산, 양육, 피임, 평등한 성관계에 대한 권리가 모두에게 당연한 권리가 되게 하라.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이 우리의 권리임을 명시하고 이를 반영하는 성·재생산 권리보장 기본법과 관련 법체계를 구축하라.
우리의 임신중지는 더 이상 불법도, 비밀도 아니다.
임신중지는 모두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며,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기 위한 보건의료 환경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조건들을 바꿔나가는 것은 사회 전체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함께 바꿔나가기 위한 길이다.
정부는 이를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
2023년 4월 9일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및
'낙태죄' 폐지 2주년 공동행동 참여자 일동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2023년 4월 9일 용산역 집회 소식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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