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학창 시절의 교복이여! 1983년 2월. 그해 고등학교 졸업식을 끝으로 일본 식민지의 잔재인 검정색 교복은 추억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이제는 영화 속에서나, 아니면 TV의 의도된 연출 속에 등장하는 추억의 장면에서나 볼 수 있다. 당시 그 교복을 입고 다닌 사람들은 그런 장면이 얼핏 보일 때면 알 듯 모를 추억에 잠기곤 한다. 여기저기서 입학식 소식이 한창이다. 학창 시절……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난다. 생각만 해도 그리워지고 정겨워진다.
이젠 정말 나이가 들었나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며칠 전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려도 오래 전 유년 시절이나 학창 시절에 일어났던 일은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것은 아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아닐까.
요즘 거리를 지나다, 여학생들의 교복 입은 모습을 보면 25년 전 여학생 시절이 떠올라 살포시 미소를 짓게 된다. 우리가 교복 입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세련되고 다양해진 교복이 예뻐서도 눈길이 더 가지만 사실은 교복 입은 여학생들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학창 시절 교복은 추억의 다른 이름이다. 그 한 벌의 교복 속에는 유년 시절의 청춘과 설렘, 풋풋함, 그리고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밋밋한 중?고교 생활을 빛내준 즐거운 기억이자, 미래의 꿈을 디자인했던 소중한 추억이다. 입고 다닐 때의 교복은 지긋지긋하고 한시라도 빨리 벗어버리고 싶은 옷이었는데, 이제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그리움의 대상, 추억을 되살려 주는 그리운 옷이 됐다.
청소년들은 벗어 던지고 싶고, 우리 같은 중장년층은 다시 입고 싶은 옷이다. 세월이 지나면 규율의 상징도 그렇게 추억 꾸러미로 변모하나 보다.
교복 세대에게는 누구나 교복에 얽힌 추억이 있다. 똑같아 보이는 교복을 어떻게든 개성 있게 입으려고 치마 허리춤을 접어 올리고, 바지 밑단을 디스코 바지처럼 통 좁게 미싱질한 경험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희고 빳빳한 칼라 만큼이나 자존심도 밝고 빳빳했었다!
당시 남학생 교복의 가장 큰 특징은 옷깃 부분이 둥그렇게 모아져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성직자들의 ‘로만 칼라’ 같기도 하고, 중국 무술영화에서 흔히 보는 ‘차이나 칼라’와도 비슷했다.
그 칼라는 빳빳이 서 있는 모양이었다. 당시 교복의 희고 빳빳한 칼라 만큼이나 우리들의 자존심도 밝고 빳빳했었다 그러나 그 칼라는 행동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가만히 있어도 턱을 찌르는데 움직이려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또한 양쪽이 모아지는 가운데 부분에는 철사처럼 삐져나온 두 개의 고리가 있어 그것을 반드시 연결하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 밑으로 금빛 찬란한 단추가 자그마치 5개나 붙어 있었다. 소매에도 2개씩 달려 있었다. 맨 위 단추는 하나쯤 풀고 다녀야 ‘잘 나가는’ 학생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 ‘잘 나가는’ 학생들은 대부분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교복 주름은 날이 서도록 빳빳하게 다려 입고 다니며 겉멋을 몹시 부렸다. 물론 공부 잘하는 범생이 과는 절대 아니었다.
당시 교복 단추에는 학교마다 고유의 무늬가 양각되어 있어 색깔은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학교마다 다른 점을 알 수 있었다.
왼쪽 가슴 부분에 있는 주머니 위에는 이름과 학년 학급이 새겨진 명찰이 있었다. 학교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대표적인 모양은 하얀 부직포에 일명 오바로크로 이름을 한자로 박아 넣은 것이 가장 대표적인 명찰의 모습이었다.
남학생들은 그저 추운 거 아니면 더운 것 딱 두 가지, 동복?하복만 존재했으므로 계절별로 다양함을 챙긴다는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다만 교련복이라는게 하나 생겨 비상용 여벌 교복으로 활용을 하긴 했다.
여학생들은 유난히 길어 보이는 치마가 불만이었다
남학생 교복이 획일적이었다면, 여학생들의 경우 학교마다 복장이 달랐다. 따라서 학업보다는 여학생에 관심이 더 많은 일부 남학생들은 교복으로 학생들의 학교를 귀신같이 구별해 내곤 했으며, 심지어 어느 학교 교복이 제일 예쁘다는 소재로 치열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유난히 길어 보이는 치마가 불만이었던 당시 여학생들-대부분 1학년 학생에게 교복은 크기 마련-은 치마 허리부분을 보통 두 세 번씩 말아 올려 최대한 길이를 짧게 해서 입는게 유행이었다.
획일적인 스타일의 교복을 어떻게 해서라도 남과 다르게 입고 싶었던 멋쟁이 친구들은 치마 옆을 길게 터서 등교할 땐 치마 안쪽에 옷핀으로 고정시키고, 하교할 땐 옷핀을 떼고 다리를 슬쩍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옷핀으로 고정시켜 놔도 선생님들은 귀신같이 알아보아서 야단도 숱하게 맞았다.
또 하나 멋쟁이 여학생들에게 고민이 있었다. 오래 입으면 엉덩이 부분이 빤질빤질해지는 것이 창피하고 신경이 많이 쓰였다.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방석에 조심스럽게 앉으며 갖은 애를 쓰기도 했던 기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교복은 추억의 다른 이름이다. 그 한 벌의 교복 속에는 유년 시절의 청춘과 설렘, 풋풋함, 그리고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밋밋한 중?고교 생활을 빛내준 즐거운 기억이자, 미래의 꿈을 디자인했던 소중한 추억이다.
옛날의 금잔디 1886년 이화 학당이 교복의 시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에 1886년 여학생의 교복 제정이 최초로 실시되면서 러시아제 붉은 무명천으로 만든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다. 이것이 이른바 ‘홍둥이’라 불리면서 최초의 교복이 된 것이다. 그후 하얀 저고리와 검정 치마로 바뀌었다.
또한 밀짚모자에 구두를 신은 유럽식 양장 교복이 1907년 숙명여학교에 등장해 최초의 양장교복이 됐다. 그러나 당시 ‘너무 혁신적’ 이라는 지적과 함께 사회로부터 환영받지 못해 결국 3년 뒤에 자주색 치마저고리로 교체됐다.
이어 1920년대를 전후해 여학생들의 교복이 흰저고리에 흑색 치마로 통일됐다. 이 시기에는 남학생들도 통일된 모자와 지정된 구두를 착용하게 됐다.
1930년대에 들어 다시 여학생들의 교복에 양장이 등장했다. 블라우스, 스웨터, 주름치마 등 세일러복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곧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교복도 검정 통치마와 흰저고리로 또 다시 바뀌었고 일본 여자의 노동복인 ‘몸빼’라는 바지가 여학생의 교복으로도 착용되기도 했다.
대학생들도 60년대까지 교복을 입었다. 명문대생의 자존심을 나타내는 것이 교복으로 통할 정도였다.
획일화된 교복 스타일은 80년대 초까지 교정을 휩쓸었다. 당시 학생들에게 ‘교복은 제2의 군복’이라고 불렸을 정도. 83년 정부가 발표한 교복자율화 조치 이후 중?고교들은 교복착용을 폐지했다.
사복을 입어 자유스러운 학생들의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한 것. 그러나 빈부격차가 생기고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되면서 다시 교복을 입는 학교가 늘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검은색의 일률적인 색상에서 탈피해 개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이 교복사업에 뛰어들고 외양을 중시하는 신세대들의 욕구가 결합하면서 교복의 색깔과 디자인이 다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