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김혜경
5월, 지금쯤 태백을 벗어난 다른 지역은 어느덧 여름을 느낄 시점이지만, 태백은 딱 봄날이 가고 있는 중이다. 연초록 새잎이 돋고 꽃들이 피고 지는데 마음은 가을날처럼 스산하다. 떨어지는 모든 것들은 우울한 것인지 벚꽃이 하르르 흩날리는 모습도 사람을 눈물나게 만든다.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그냥 쉬는 날이 되어버린 어린이날, 비도 오고 날도 쌀쌀하여 외출도 않고 지나간 영화 ‘봄날은 간다’1) 를 보았다. 2001년, 어느새 25년 가까이 지나간 세월은 나를 많이도 변하게 했지만, 영화 속 ‘상우’와 ‘은수’는 여전히 풋풋하고 예쁘다. 남자주인공 상우는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라도 났으면 싶은지 ‘떠나는 여자’ 은수의 자동차에 스크레치를 남긴다. 애뜻하고도 안타까운 상우의 사랑이 거리의 벚꽃잎으로 흩어져내리는 화면이 그림보다 아름답다.
치매에 걸린 상우할머니 역시 먼저 떠나버린 남편을 만나러 가겠다고 기회만 있으면 집을 나선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서럽고도 안타깝다. 처음 이 영화를 보던 그때는 주인공들의 사랑의 감정에만 관심이 갔는데 오늘따라 상우할머니 장면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나이가 든 탓일 것이다.
며칠 전, 시누이로부터 엄마가 봄을 타는지 많이 힘들어해서 엄마와 함께 외출을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흔도 되기 전, 남편을 먼저 보낸 시어머니는 이렇게 따뜻한 봄햇살 속에서도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만 가슴이 시린가 보다. 어머님도 상우할머니처럼 ‘연분홍 치마를 봄바람에 휘날리며’ 사뿐히 안기던 젊은남편이 사무치게 보고 싶으신 건 아닌지..
누군가가 라일락꽃잎에는 첫사랑의 맛이 난다고 해서 꽃잎 하나를 뚝 따서 씹어 보았다. 첫 맛은 달고 끝맛은 쓴 그런 첫사랑의 맛이 바로 ‘가는 봄날의 맛’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