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등가경 상권
2. 명왕연품(明往緣品)
그때 성안에 있던 많은 바라문과 장자와 거사들이 부처님께서 전타라종의 여인을 인도하여 출가시켜 도를 수행하게 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들 혐오하는 마음을 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렇게 하열하고 천박한 종성이 어떻게 사부대중들과 함께 범행을 닦을 수 있으며, 어떻게 부귀한 집안에 들어가 공양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이 점점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이 일을 논의하게 되자, 마침내 이 소문은 바사닉왕에게도 들렸다.
바사닉왕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경악하여 즉각 수레를 준비하게 하였다. 권속들에 의해 둘러싸인 채 앞뒤에서 호위를 받으며 기원림으로 찾아갔다. 수레에서 내려 일산[蓋]을 물리친 다음, 왕은 천천히 걸어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 숙여 예를 올리고 물러나 한쪽에 자리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 의심을 풀어주시기 위하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본성(本性) 비구니의 지난 과거세의 인연에 관해 듣고 싶지 않은가?”
비구들이 답하였다.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지금 잘 들으라. 그대들을 위해 말해 주겠다.
비구들이여, 지난 과거 아승기겁 이전에 항하 강변에는 아디목다(阿提目多)라는 동산이 있었는데, 꽃과 과일이 무성하였으며 연못의 물은 풍족하였다.
그 동산에는 제승가(帝勝伽)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는 전타라마등가(旃陁羅摩登伽) 종성으로서 백천만 전타라 대중과 함께 그 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비구들이여, 저 제승가는 큰 지혜를 갖추었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용맹하였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숙명에 관해 알았고, 세상의 일에 대해 통달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내가 그의 다섯 가지 공덕을 간략히 말하면,
첫째는 네 가지 베다[圍陁] 경전을 두루 공부하여 그 비밀스런 요체에 대해 깨달아 이해하지 못한 바가 없었고,
둘째는 시(詩)ㆍ서(書)ㆍ문(文)ㆍ송(頌)의 자구(字句)와 장단(長短)을 잘 이해하였으며,
셋째는 온갖 논서와 경전ㆍ역사ㆍ법도ㆍ풍류ㆍ형이상학에 관해 잘 알았고,
넷째는 세속의 제사와 주술ㆍ의약에 관해 잘 알았으며,
다섯째는 대장부상(大丈夫相)을 잘 분별하였으니, 이와 같은 지혜는 다함이 없었다.
그 왕에게는 사자이(師子耳)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는 용모가 단정하고 계행이 청결하였으며, 그 마음은 부드럽고 인자하고 화순(和順)하였다. 또한 갖가지 덕을 갖추어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마음에 환희심을 내었다.
마등가왕은 그 자식을 폭넓게 가르쳤으니, 경서나 주술에 관해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그에게 모두 가르쳤다. 따라서 사자이는 지견(知見)이 심원(深遠)하기가 그의 아버지와 거의 같아서 차이가 없었다.
제승가왕은 밤에 누워 있는 동안 홀연히 이런 생각을 내었다.
‘내 아들은 모습이 아주 뛰어나고 갖가지 덕을 갖추어 사람들이 존경하고 있다. 나이가 점차 들어 장성하였으니, 아내를 구해 결혼시켜야겠다.
그 배필로는 단정하고 어진 이를 선택해야 하고, 재주와 덕이 뛰어나 나의 아들과 같은 부류인 그런 사람을 구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일 것이다.’
그 당시에 연화실(蓮花實)이라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종족이 고귀하고 훌륭하였으며, 부모는 진실되고 바른 사람들이었으니, 7대[世]의 조상들 모두가 청정하여 다른 종족과 섞이지 않았었다. 네 가지 베다에 통달하고 재주와 기예가 보통 사람보다 매우 뛰어났다.
그 무렵 대여(大與)라는 국왕이 천하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 위신력이 자재(自在)하였다. 그는 한 마을을 연화실에게 봉토(封土)로 주고 그로 하여금 통치하게 하였는데, 그 땅은 기름지고 넉넉하여 백성들이 풍요로웠다.
그 연화실에게는 본성(本性)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덕행과 모습이 뛰어나 마치 사자이(師子耳)와 같았다.
제승가왕은 이렇게 생각했다.
‘연화실의 딸이 가장 뛰어나니, 내 아들을 위해 그녀를 맞아 들여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아침이 밝자, 네 필의 백마가 끄는 보석으로 장식된 수레에 올라 전타라 대중들에 의해 앞뒤로 둘러싸인 채 북쪽을 항해 집을 나서 그 나라로 향하였다.
그때 연화실이 머무르고 있던 곳에서 남쪽으로 열락(悅樂)이라는 정원[園苑]이 있었는데, 그곳은 꽃과 과일이 무성하게 자라고 수목이 울창하였으며, 샘물이 흐르는 연못은 깨끗한 물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종류의 온갖 새들은 그 위에서 노닐며 구성진 음성으로 서로 화답하였으니, 듣는 이들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그 정원은 매우 넓어 아주 좋아할 만했으니, 마치 천상에 있는 난타(難陁)의 정원과 같았다.
마등가왕은 그 정원으로 가서 연화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바라문도 역시 아침 일찍 네 필의 백마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500명의 바라문들에 의해 둘러싸인 채 정원에 이르러 풍경을 바라보며 즐겼다. 그 바라문은 도중에 제자들에게 기예 등의 일을 가르쳐 주고 송하고 익히게 하면서 정원을 향해 나아갔었다.
제승가왕은 연화실이 평화롭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그 위덕의 훌륭함에 환희심이 생겨 게송으로써 찬탄하였다.
태양이 처음 솟아오르면
그 광명이 밝게 비추듯
대사(大士)의 위덕도
이와 같습니다.
설산(雪山)의 약이
온갖 약 가운데 효험이 뛰어나듯이
인자(仁者)의 고원(高遠)함은
비할 데가 없습니다.
위덕력의 심묘함은
지극히 엄정(嚴淨)하게 드러나니
마치 가을 달이
뭇 별들 가운데 으뜸인 것과 같습니다.
마치 범천왕(梵天王)처럼
그 지혜가 너무도 뛰어나니
진실로 모든 천신들이
당신을 우러러볼 것입니다.
마치 천계의 제석천왕(帝釋天王)처럼
모든 이들이 공경하니
그 빼어난 단엄(端嚴)함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의 공덕을
단지 간략히 찬탄했을 뿐
만약 자세히 말한다면
그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이 게송을 읊은 다음, 제승가왕은 일어나 받들어 맞이하고 다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서 자리하였다.
연화실이 말했다.
‘그대 전타라와 같이 지극히 비천한 이들이 무엇 하러 이곳에 왔는가?’
제승가왕이 대답하였다.
‘어진이시여, 세상에는 닦아야 할 네 가지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근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잘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음이요,
둘째는 자신의 이로움과 안락함을 도모하는 일이며,
셋째는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함이고,
넷째는 혼인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에 온 것입니다.
저에게는 사자이(師子耳)라는 아들이 있는데, 용모가 준수하고 지혜가 매우 뛰어납니다.
이제 신부감을 구해 결혼시키려 하고 있는데, 어진 이의 따님이 현명하고 훌륭하여 지극히 맘에 들어 혼인을 시켰으면 하오니, 마음을 내시어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연화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화가 잔뜩 치밀고 분한 마음이 일어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지고 몸은 휘청거렸다.
그리고 나서 말하였다.
‘마등가종은 사람들이 천대하고 꺼리고 미워하기를 마치 독(毒)이나 불[火]처럼 여기오. 지금 나의 신분은 바라문의 종성(種姓)으로서, 권세가 뛰어나고 존귀하여 어느 종(種)도 넘어서지 못하오.
또한 베다에 통달하여 지혜가 비할 데가 없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와서 이렇게 나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는 것이오?
공중에 뜬 달과 반딧불의 빛은 눈이 있는 이라면 그 밝기가 다르다는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전타라종은 바라문과 비교할 때 그 존귀함과 비천함의 차이가 그와 마찬가지오.
지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귀하고 천한 것을 분간하지 못하고, 넘보지 못할 것을 넘보려고 하고 있소.
당신은 전타라종이고 당연히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어찌 굳이 청정하고 훌륭한 사람을 더럽히려는 것이오?
바라문인 경우라도 계행을 갖추지 못하고 베다라는 심묘한 경전에 통달하지 못하면, 다른 바라문들이 그와 더불어 교유하지도 않소.
하물며 당신같이 천한 사람이 그런 마음을 내다니, 썩 물러가시오.
다른 사람들이 이런 괴상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여기 더 이상 머무르지 마시오.’
제승가는 이런 말을 듣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진이시여, 금이나 옥과 같은 보배는 특별한 것이고, 나무와 흙은 평범하여 보잘것없는 것이어서 귀하고 천함이 다르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압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바라문들과 전타라가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네 바라문이 허공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듯이 전타라종도 땅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라문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왔듯이 전타라종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문만이 본래 훌륭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바라문이 죽어도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싫어하며, 전타라가 죽어도 또한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 귀하고 천함이 있어 서로 다르다면 어찌 생사에는 차이가 없습니까?
당신은 당연히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전타라는 악한 일을 하고 흉폭하고 잔인하며, 중생들을 속이고 자비한 마음이 없으니, 이런 연유로 비천하다고 한다.≻
제가 이제 당신네 바라문의 온갖 악업과 허망한 행위들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쟁송(諍訟)을 일으켜 어질고 착한 이들을 괴롭혀 심난하게 하며, 요사스럽고 괴이한 일을 지으니 별점을 치고 달을 관찰하여서 군대를 동원하도록 하여 중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이를 간추려 말하자면 온갖 악한 일은 모두 바라문이 행하는 것입니다.
당신네 바라문은 그 성품이 맛있는 것을 즐겨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양에게 주문을 송하여 주고 그것을 죽이면 양은 반드시 천상에서 태어날 것이다.≻
만약 그것에게 주문을 송하여 주어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당신들은 지금 왜 스스로에게 주문을 송하고 자신의 몸을 바쳐 제사 지냄으로써 천상에 태어나는 일을 구하지 않습니까?
또한 왜 부모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 아내나 권속에게 주문을 송하여 주고 그들을 다 도살하여 그들로 하여금 천상에 태어나도록 하지 않는 것입니까?
자신의 몸은 없애지 않고 단지 양을 죽이는 것은 모두 바라문들이 고기를 먹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거짓으로 그렇게 말하여 속이는 이들을 존귀하고 훌륭하다고 말한다면,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바라문의 법에는 네 가지의 죄를 범하면, 극악하다고 하여 바라문답지 못하다고 하는데,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바라문들을 죽이는 것이고,
둘째는 스승의 아내를 간음하는 것이며,
셋째는 금을 훔치는 것이고,
넷째는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오직 이 네 가지 악에 대해서만 죄라고 하고, 그 밖의 다른 것을 살해하면 과보가 없다고 합니다.
당신네 법 가운데 살인죄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인해 성립되는 것일 텐데, 만약 다른 종성의 사람을 죽여도 또한 생명을 끊는 것인데, 왜 그런 사람을 죽이면 유독 죄가 없다고 합니까?
나아가 술을 마시는 것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은 당신네들이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제멋대로 망상을 지어낸 것이니, 이를 권위 있고 존귀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라문은 앞의 네 가지 죄를 짓고도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면 다시 그 죄과를 소멸할 수 있다 하여 손으로 침상의 다리를 잡고 서있거나 다 떨어져 헤진 옷을 입고 사람의 해골을 머리에 달고 다니는 등 이와 같이 참회하면서 12년을 채우면 계가 다시 갖추어져 바라문의 자격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어리석음으로 잘못된 견해를 따르면서 교만한 마음을 내 스스로 존귀하고 권위가 있다고 말하니, 이를 미루어보면 종성은 모두가 다 평등하므로 어진 이의 여식과 저의 아들을 만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화실은 이 말을 듣고서 분노가 더욱 치밀어 제승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생각 없이 망령되게 이런 말을 하지 마시오.
그대는 한 종족의 왕이므로 세 가지 법을 알아야만 하나니,
첫째는 국토에 관한 법이고,
둘째는 귀하고 천함에 관한 법이며,
셋째는 공물이나 세금에 관한 법이오.
세상에는 네 가지 종성이 있는데, 모두 브라만[梵]으로부터 생기는 것이오.
바라문은 브라만의 입으로부터 생기고, 찰리(刹利)는 어깨로부터 생기며, 비사(毘舍)는 배꼽으로부터 생기고, 수다(首陁)는 발로부터 생기니,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바라문은 가장 존귀하여 네 가지 종성의 아내를 얻을 수 있고,
찰리는 세 가지 종성의 아내를 얻을 수 있으며,
비사는 두 가지 종성의 아내를 얻을 수 있고,
수다는 한 가지 종성의 아내를 얻을 수 있소.
이와 같이 종성을 분별하면 각기 다른데 당신과 같이 비천한 이는 이 네 가지 종성에도 들지 못하는 주제에 모든 종성에 차이가 없다고 말하다니, 이는 성스러운 가르침을 위반하여 나를 어지럽히려 한 것이 확실하오.
어서 빨리 돌아가고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제승가가 말하였다.
‘어진 이께서는 세간의 네 가지 종성이 모두 브라만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말씀하시면서 바라문만이 브라만의 입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가장 존귀하여 이를 넘어설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왜 바라문들에게도 손이나 발 등의 지절(支節)이 존재하고, 또한 네 가지 위의(威儀)와 음성과 언어가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근거 때문에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서로 다르다면 응당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유하면 연꽃에는 여러 가지 다른 종류가 존재하니, 즉 수륙생화(水陸生花)ㆍ우발라화(優鉢羅花)ㆍ첨복향화(瞻蔔香花)ㆍ목다가화(目多伽花)ㆍ소만나화(蘇蔓那花)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꽃들은 그 색이 차이가 나고 향기 또한 다르지만, 당신이 말씀하신 네 가지 종성은 서로 차이가 없으니, 당신의 견해는 모두 다 망상으로 인한 분별일 뿐입니다.
비유하면 어린아이들이 길에서 흙모래를 모아 쌓은 다음 성(城)이나 집이라고 여기거나, 혹은 이것은 금이라거나 이것은 은이라거나 우유죽이라거나, 쌀이라거나 보리라고 하여도 이것들은 흙모래일 뿐이니, 어린아이들이 이름을 붙인다고 하여서 그것들이 보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여서 어리석고 가려진 마음으로 자신을 높이는 생각을 내지만, 존귀하거나 하천함이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나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바라문이 브라만의 입으로부터 생겨났다면 응당 중생들에게 자비롭고 인자해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주문을 송한 다음 죽이고 분노를 내는 것입니까?
만약 네 가지 종성이 모두 브라만으로부터 생긴 것이라면 서로가 형제인데, 어찌하여 함께 혼인을 도모하는 일이 예를 흐리고 도리에 어긋난 금수나 다름이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일체의 중생은 선악의 업을 따라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니, 단정하거나 추하거나, 빈천하거나 부귀하거나, 장수하거나 요절하거나.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이와 같은 모든 일들은 업을 따라 존재합니다.
만약 범천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면 모두가 동등해야 할 터인데, 무슨 인연 때문에 이와 같은 차이가 있겠습니까?
또한 당신네 법 가운데 자재천(自在天)은 세계를 창조하되, 머리는 하늘이 되고, 발은 땅을 이루고, 눈은 해와 달이 되고, 배는 허공이 되고, 몸의 털은 초목이 되고, 흘리는 눈물은 강이 되고, 온갖 뼈는 산이 되고, 대소변은 모여 바다를 이룬다고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다 당신네 바라문들이 망령되게 만들어낸 말입니다.
무릇 세계는 중생의 업에 의해 성립되는 것인데, 어찌 범천이 이러한 일을 하겠습니까?
당신들이 어리석고 편협한 마음으로 멋대로 망상을 내어 스스로 존귀하고 훌륭하다 말하는 것이니, 사람들이 이를 믿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한 바라문만이 임종한 이후에 천상에 태어날 수 있고, 그 나머지 종성은 천상에 태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바라문이 훌륭하다고 말하지만, 당신네 경에서는 선업을 닦아 행하면 모두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만약 선업을 닦아 천상에 태어날 수 있어서 일체 모든 중생들이 선업을 행한다면, 누구나 다 천상세계에 태어날 수 있을 텐데, 어찌하여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비천하다 하십니까?
대바라문이시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네 명의 자식을 낳아 기르며 각기 이름 붙이기를, 첫째는 안락(安樂)이라 하고, 둘째는 장수(長壽)라 하고, 셋째는 무우(無憂)라 하고, 넷째는 환희(歡喜)라 한다 합시다.
이들이 비록 한 아비로부터 생겨나 모두 다 똑같은 성(姓)을 지녔으나, 네 명의 이름은 차이가 있어 다르듯이, 세간의 네 가지 종성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동일한 업보와 번뇌의 성품을 지녔지만 네 가지 명칭으로 나누어 바라문ㆍ찰리ㆍ비사ㆍ수다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명칭은 비록 똑같지 않지만 몸에는 본래 귀하고 천함이 없습니다.
바라문들은 베다경전을 학습하고 공경ㆍ존중하는 것을 자랑하며 교만한 마음을 내고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정해진 성품이라 여기지만, 저는 지금 이 베다경전들에 진실한 뜻이 없다면 쉽게 흩어져 멀어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이 범천(梵天)이었습니다. 그는 선도(禪道)를 닦아 익혀 커다란 지견(知見)이 있어서 하나의 베다를 지어 널리 유포하여 교화했습니다.
그 후에 백정(白淨)이라는 선인(仙人)이 세상에 출현하여 네 가지 베다를 지었으니, 첫째는 찬송(讚誦)이고, 둘째는 제사(祭祀)이며, 셋째는 가영(歌詠)이고, 넷째는 양재(禳災)입니다.
다음에는 다시 불사(弗沙)라는 바라문이 있었으니, 그 제자 대중들이 스물다섯 명이었으며 한 가지 베다에 대해 그것을 구체적으로 분별하여 다시 스물다섯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다시 앵무(鸚鵡)라는 바라문이 있었으니, 한 가지 베다를 열여덟 부분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다음으로는 다시 선도(善道)라는 바라문이 있었으니, 그 제자 대중들이 스물한 명이어서 베다를 변화시켜 스물한 부분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다음으로는 다시 구구(鳩求)라는 바라문이 있었으니, 한 가지 베다를 두 부분으로 변화시켰고, 두 부분이 변하여 네 부분이 되고, 네 부분이 변하여 여덟 부분이 되고, 여덟 부분이 변하여 열 부분이 되고, 이와 같이 계속적으로 변하여 무릇 1,216종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은 베다경전은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바라문이시여, 이 베다경전들이 분산되면 바라문의 성품도 그에 따라 무너져 흩어지는 것이니, 그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만약 지금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는 바라문들이 베다를 바탕으로 삼기 때문에 그 성품이 결정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무너져 흩어지는 것을 따른다면 당신은 어떻게 바라문의 성품은 진실하여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이 우리만이 존귀하고 다른 종성의 사람들은 비천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한 바라문은 스스로 지혜가 있어 주술을 잘 행한다고 떠벌리며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자신들이 존귀하다는 생각을 내지만, 지금 당신들이 잘 알다시피 다른 종성의 사람들도 배워 익히면 통달할 수 있는 것이니, 일체가 다 존귀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오직 바라문만을 지칭하는 것입니까?
과거에 바사타(婆私吒)라는 선인이 있었는데, 그 아내는 전타라녀(旃陁羅女)였습니다.
두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장남은 순(純)이라 이름하였고, 둘째는 음(飮)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선도(仙道)를 얻었고, 5신통을 갖추었으며, 베다경전을 변화시켜 택도법(宅圖法)을 지었습니다.
당신은 이 두 성인을 선인이 아니라고 비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앞서 전타라종은 비천하고 하열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그 자식들에 대해서는 선인이라 하는 것입니까?
옛날에 고기를 잡는 어부가 고기 한 마리를 잡아 배를 갈라보니, 한 여인이 들어 있었는데, 그 여인의 몸 색은 온통 흑색이었습니다.
그녀는 파라세(波羅勢) 선인과 함께 살면서 제바연(提婆延)이라는 아들을 낳아 길렀습니다.
그 아들은 다섯 가지 신통력이 자재하고 위덕을 갖추었으니, 이와 같은 사실을 헤아려본다면, 어찌 선인이 아니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 아주 오래고 먼 옛날 비마(毘摩)라는 찰리종(刹利種)이 있었는데, 그도 또한 선도를 얻어 신통력이 뛰어나고 지혜가 심원(深遠)했으며, 언변이 훌륭하여 많은 바라문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사람이라면 어찌 하천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미진(微塵)이라는 찰리종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바라문 첨바지니(讇婆持尼)로부터 나마(拏摩)라는 아들을 낳아 길렀습니다.
그 아들은 커다란 위신력을 갖추었고 모든 경론을 통달했습니다. 아주 무더운 여름에 어머니와 함께 유행(遊行)하고 있었는데, 태양빛이 치성하여 대지가 달아올라 그의 어머니는 제대로 발을 앞으로 옮겨놓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나마가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제 어깨에 올라타시고 가시지요.≻
그때 어머니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데 땅바닥의 열기 때문에 거의 발에 화상이 생길 지경이었습니다.
그러자 나마가 서원하여 말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인화(仁和)하고 효성과 공경이 지극하다면, 이 태양으로 하여금 저절로 숨도록 해주십시오.≻
이 말을 마치자마자 태양은 곧 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후에 꽃을 땄는데 꽃들이 모두 닫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태양이 숨도록 했기 때문에 꽃들이 활짝 피지 않은 것이니라.≻
아들은 다시 서원하여 말했습니다.
≺제가 만약 어질고 효성스럽다면 태양이 다시 나올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자마자 태양은 곧 밝게 드러났습니다.
이와 같은 선인들은 바라문이 아니어도 신통력의 변화가 한량없었는데, 어찌 하열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인연으로 미루어볼 때 모든 종성은 평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여식을 제 자식의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니, 마치 재물이나 화폐 및 보배는 서로 달라도 마음대로 서로 교환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