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일지
-서포 김만중 선생께
김욱진
노도 문학기행 다녀와 유배 시 한 편씩 써달라는 대구시협회장님 청에
탁, 노도 하기 뭣하고 그냥 일기 쓰듯 유배 일지라도 써봐야겠네
대구시인 40여 명 갑자기 노도로 유배 간다 생각하니 사뭇 만감이 교차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피붙이들이랑 애틋한 작별 인사도 나누고
얼굴 한번 보자, 보자 그러던 고향친구들 만나 술 잔 기울이며 회포라도 풀고 올 걸
그나저나 내가 뭘 그리 잘못 했는지
창가 얼비친 그림, 자가 하는 말 가만 눈감고 들어보네
수도 없이 나를 속이고 도둑질하고
틈만 나면 나라고 우겨대고 이간질하고
그도 모자라 나라고 뭣이고 욕하고 비방하고 돌아다닌 죄
너는 정작 유배를 떠나면서도 모르겠느냐
꿈인지 생시인지, 고놈의 나는 눈 번쩍 뜨고 언저리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네
맞은편 외따로이 뚝 떨어져 앉은 노시인은
흰죽도 한 그릇 못 먹은 거처럼 얼굴이 창백해 보이고
또 어떤 시인은 유배 복장을 하고 온 거 같고
그토록 감미롭게 와 닿던 여류시인의 노랫가락마저
유배 가사 읊는 듯 구슬프게 들리고
오늘 먹은 점심이 왠지 마지막일 것만 같은 불길한 감이 왈칵 들고
그래서일까, 멀쩡하던 하늘도 닭똥 같은 눈물 철철 흘렸네
1분 1초가 아쉽게 지나가는 백련항
노도 오시다 적힌 뱃머리서
사람들은 잠시라도 육지에 더 머무르고 싶은 듯
멈칫멈칫 뒷걸음질 치다 귀양길 올랐네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생각 문득 들어
나는 맨 마지막 배를 탔네, 아이고
배 아파라, 노도 유배 온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네
어쩌겠나, 너도 나도
오도 가도 못한 노도에서
노도 없는 노 무심히 저었네
여기, 지금, 누가 유배를 왔냐고
누군가 죽비 내려치듯
무언의 말 한 마디 툭, 던지고 사라졌네
그 시절 인연에
나는 '노도 오! 시다'라는 답시 한 편
서포초옥 바람벽에다 시답잖게 걸어두고 왔네
첫댓글 선생님 멋진 시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