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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 남명천선사 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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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대사 증도가 남명천선사 계송 상
도道 증證한 노래는 이 노래를 불러가니,
열반회상涅槃會上에 일찍이 친親히 부촉付屬하시다.
금색두타金色頭陀가 웃음 그치지 아니하시니,
두어 뿔 푸른 산이 띳집(초가)을 대對하였도다.
그대는 아니 보는가? 이 어떤 낯인고?
여겨서 의론議論하여 사량思量하면 어지러운 산이 가리우리라.
이로부터(이를 좇아) 조계문曹溪門 밖의 구句가
예전같이 흘러 떨어져 인간人閒에 향向하리라.
배움이 그쳐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道人은,
구름의 자취요 학鶴의 모습이니 어디 붙으리오?
봄이 깊거늘 깊은 새 돌아오지 아니하니,
바위 가에 모든 꽃이 스스로 피었다 졌다 하는구나.
망상妄想을 덜지 아니하며 진眞을 구求하지 아니하나니,
진眞과 망妄이 다 거울 속의 티끌 같으니라.
허공虛空의 빛 그림자를 쳐서 헐어버려 끊어야,
이때 본래本來의 사람을 보리라.
밝음 없는 실實한 성性이 곧 불성佛性이니,
두 곳은 예로부터 옴에 억지로 이름 세우니라.
사해四海가 편안便安히 맑고 시절時節의 비가 족足하니,
들 늙은이로 승평昇平 경하慶賀함을 수고롭게 말지니라.
곡두(幻)같이 된 빈 몸이 곧 법신法身이니,
만약 법신法身을 알면 안팎이 없느니라.
도랑 먹은 개와 흙 묻은 돼지는 도리어 다 알거늘,
삼세三世의 여래如來는 곧 알지 못하시니라.
법신法身을 깨달아 알면 한 물건도 없으니,
맑음이 갠 허공虛空에 한 점點의 노을도 없음과 같도다.
인因하여 영산靈山의 그 날의 일을 생각하여,
대막대를 잡고 봄 길에 지는 꽃을 밟느니라.
본래本來의 근원根源이 제 성性인 천진불天眞佛은,
눈이 푸른 연꽃 같고 이(齒)는 구슬 같도다.
자애慈愛로우신 세존世尊을 알지 못한 이는 모름지기 빨리 가거라.
머리 돌이키면 도롱태(새매)가 신라新羅를 지나리라.
오음五陰은 뜬 구름이 속절없이 가며 오나니,
치성熾盛하게 있는듯하나 도리어 실實(실다움)이 아니니라.
서풍西風 한 무리가 쓸어 자취 없으니,
만리萬里의 산하山河가 다 갠 날이로다.
삼독三毒은 물 거품이 속절없이 나며 꺼지나니,
일어나며 사라짐이 자취 없어 가히 다하지 못하리로다.
물과 거품에 이름(名)과 얼굴(相)이 다르다 여기지 말라.
천 물결과 만 물결이 다 조종朝宗하나니라.
실상實相을 증證하면 리離와 미微가 끊어지니,
동東녘 끝에 있지 아니하며 서西녘에 있지 아니하니라.
강남江南 이삼월二三月에 꽃 피고 바람이 덥거늘,
자고鷓鴣새 울음소리를 가장 즐기노라.
사람과 법法이 없어 오직 이 사람이니,
‘올해가 바로 가난하다’ 이르거늘 보라.
눈 듦에 이미 의지한 곳이 없으나,
금강金剛이 문門 밖에 오히려 화(怒)를 머금었도다.
찰나刹那에 아비업阿鼻業을 없게 하나니,
선善과 악惡이 한 길이 아니라 이르지 말라.
죄罪의 성性이 서리와 눈과 같아서,
지혜智慧의 해가 갓 올라옴에 한 점點도 없는 것을 모름지기 알지니라.
만약 거짓말을 가져서 중생衆生을 속이면,
내 몸인들 어느 연緣으로 능能히 여의어 벗어나리오?
이 마음은 저물도록 외로운 배와 같아서,
오직 함령含靈(중생)이 꺼지어 떨어짐을 면免코자 하시니라.
‘내 진사겁塵沙劫에 혀 뽑힘을 부르리라’ 하시니,
이보다 더 큼이 없는 은혜를 어찌 쉬이 갚으리오?
이를 대對하여서 멀리 노니는 아들의
광음光陰이 다하여 없어져 가되 머리 돌이키지 아니함을 뒤집어 어여삐 여기노라.
몰록 깨닫고는 곧 전筌(통발)을 잊으리니,
예로부터 눈썹 털이 눈 가에 있도다.
향상向上의 기관機關을 어찌 족足히 이르리오?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조느니라.
여래선如來禪을 모름지기 밀밀密密히 알지니,
고요하여 함이 없어 사구四句에 건너뛰니라.
둥그런 부채를 비록 가져서 달 둘레와 견주나,
날랜 매는 울타리 가의 토끼를 치지 아니 하나니라.
육도만행六度萬行이 체體의 가운데 원만하니,
진체眞體엔 같으며 다름을 수고로이 가림(辨)이 없느니라.
만萬 물(水)에 섬광蟾光[달]이 가며 머무름을 맡겨둘지어다.
맑은 하늘 가운데엔 오직 한 달이니라.
꿈 속에 밝고 밝게 육취六趣가 있나니,
고苦와 낙樂이 서로 섞여 잠깐도 머물지 아니 하나니라.
윤회하는 생사生死의 바다에서 벗어나고자할진댄,
모름지기 북두北斗를 좇아서 남성南星을 바라볼지어다.
깬 후後에는 비어서 대천大千이 없으니,
이전부터 제 스스로 매었던 줄을 비로소 신信하노라(믿노라).
이제 본래本來 빈(空한) 줄을 모름지기 알려할진댄,
문門 밖에 푸른 산이 훤한 데에 기대었도다.
죄罪와 복福이 없으며 망妄과 진眞을 버리니,
맑은 달이 가을을 당當하여도 두렷함을 견주지 못하리로다.
칼 짚은 문수文殊도 오히려 보지 못하거늘,
어찌 생사生死가 저 가에 다다름이 있으리오?
손損(손해)과 익益(이익)이 없으니 다시 어찌 의심疑心하리오?
불조佛祖도 예부터 옴에 스스로 알지 못하시니라.
남南 북北 동東 서西에 끊어진 사이가 없거늘,
조과鳥窠가 속절없이 베 터럭을 잡아 부니라.
적멸성寂滅性 가운데엔 물어서 찾지 말지니,
천 산을 끊어 앉으니 지나가는 이가 어려워하도다.
빈 집에 손님 올 리 없음을 의심疑心치 말라.
예전부터 옴에 밖의 사람 봄을 허락하지 아니하니라.
요 사이에 티끌 묻은 거울을 닦지 아니하니,
마음의 때가 연緣이 되어 점점漸漸 어두워져 검도다.
신고神膏를 찍어내어 한 당堂이 서늘하니,
신령한 광명이 밖에서 얻지 아니한 줄을 비로소 신信하노라(믿노라).
오늘날에 분명分明히 모름지기 쪼개어 분석하리니,
어찌 부지런히 세정世情(세간의 뜻)을 쫓으리오?
뜬 구름 흩어져 외로운 달이 돋으니,
대천사계大千沙界가 한 때(一時)에 밝도다.
뉘라서 념念이 없으리오? 념念이 다 진眞이니,
만약 진眞을 진眞이라고 알면 티끌에 벗어나지 못하리라.
저 언덕에 다다라 배를 버림이 상식의 일이거니,
어찌 모름지기 강 건네주는 사람에게 다시 물으리오?
뉘라서 남이 없으리오? 남[生]이 이 망妄이니,
망妄 일어남이 뿌리가 없어 곧 실상實相이니라.
하룻밤에 조계曹溪의 물이 거슬러 흐르는데,
평범한 사람이 한 없이 물결을 좇느니라.
만약 실實로 무생無生인댄 불생不生도 없으니,
생生과 생生이 어찌 무생無生(남이 없음)과 다르리오?
불생不生이 없는 때에 하나의 어떤 것도 없으니,
무생無生을 알고자 할진댄 만법萬法이 이(是)라.
기관목인機關木人을 불러서 물어라.
이 이치는 예부터 옴에 앎에 속하지 아니하니라.
만약 앎이 없음을 이 진도眞道(진실한 도)라 여길진댄,
가을바람의 누대와 전각에 기장이 무성하리라.
부처를 구求하여 공功을 들이면 어느 때에 이루리오?
증證 없으며 닦음 없어야 공功이 스스로 오래이리라.
허공虛空이 눈앞에 가득함을 보라.
어찌 잡음에 사람의 손을 좇음이 있으리오?
사대四大를 놓아,
혼자 앉으며 혼자 다님에 막힘이 없도다.
헌 돗자리를 한가로이 끌어와 해를 향向하여 조나니,
어느 마음에 다시 삼계三界에 건너뜀을 얻으리오?
붙잡지 말지니,
전전翦翦하며(잘게 부서지며, 破碎) 규규規規하면(뿌리 없이 떠다니면, 自失) 큰 착錯(그르침)이 이뤄지리라.
심의心意를 가져 수행修行을 배우고자 할진댄,
큰 허공虛空에 어찌 능能히 머리와 뿔이 생겨나리오?
적멸성寂滅性 가운데에 마시며 찍어 먹음을 좇아서,
사량思量 없으며 분별없어 시류時流에 섞이도다.
일찍이 한 낱 집 밭의 쌀을 먹으니,
바로 지금에 이르도록 배부름이 마지 아니 하여라.
제행諸行이 항상함(常, 변치않음)이 없어 일체一切가 비니[空],
연緣이 일어나고 연緣이 마침에 성性은 본래本來 한가지니라.
연생緣生을 버리고서 실實한 뜻을 구求하고자 할진댄,
북北녘을 묻는 이가 도리어 동東으로 감과 같으리라.
곧 이 여래如來의 대원각大圓覺이니,
다시 한 물건이 가히 자황雌黃함(고칠 것)이 없도다.
집 기슭에 비스듬히 기댄 산 빛은 구름을 연이어서 퍼렇거늘,
난간에 내민 꽃가지는 이슬 가져 향기롭도다.
결정決定된 말을 의심疑心치 말지어다.
바로 알아도 벌써 늦었느니라.
향엄香嚴은 그날에 무슨 일을 이루었는가?
대[竹]를 치고서 속절없이 상상근기上上根機라 이르도다.
진승眞乘을 표表하니 허虛하며 거짓되지 아니하여,
진사塵沙(티끌모래) 같은 그지없는 뜻을 다 가졌나니라.
굳음이 백 번을 불린 금金과 같으니,
굳은 망치와 매운 불로 속절없이 서로 시험試驗하도다.
시혹(時或) 사람이 신信치(믿지) 아니할진댄 마음껏 물을지어다.
의구意句가 섞여 달려 천만千萬 모습이로다.
정원 속에 꽃가지의 짧으며 긺을 무던히 여길지니,
청제靑帝의 봄바람은 도리어 한 모양이니라.
바로 근원根源을 끊음은 부처의 허락하신 바이시니,
번개 옮으며 바람 행함이 경각간頃刻間(눈 깜짝할 사이)이니라.
빨리 돌아와 돌아봄을 말지어다.
수유須臾(잠깐사이)에 차가운 해가 서산西山에 내리리라.
잎 따며 가지 찾음을 내 능能히 못하노니,
헤아려 가며 도로 옴에 무엇을 얻으리오?
가련하다! 노니는 아들이 향기로움을 좇아
홍진紅塵(妄想)이 안색顔色(本來面目)을 좀 먹는 줄 알지 못하는구나.
마니주摩尼珠는,
본래本來 허물없어 정精(가늚)과 추麁가(거침이) 끊어지니라.
달 밝고 바람 맑은 지난해 밤에,
한 돛으로 동정호洞庭湖를 날아 지난다.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무량겁無量劫으로 오늘날에 이르도다.
가죽주머니를 놓아버리고 자세히 볼지언정,
밖을 향向하여 속절없이 찾음을 모름지기 말지어다.
여래장如來藏 속에서 친親히 얻을지니,
여래장如來藏을 알고자 하는가?
신(시어버린) 술과 찬(차가워진) 차(茶) 세 다섯 잔으로,
긴 강江에 바람이 빠르거늘 물결 꽃이 많도다.
여섯 가지의 신령한 용用이 공空하되 공空하지 아니하니,
성聖에 있거나 범凡에 있음에 다른 바탕(質) 없느니라.
불이문不二門이 열려 마음대로 가락 오락 하거니,
무엇을 구태여 유마힐維摩詰께 다시 물으리오?
한 낱 두렷한 빛이 색色이로되 색色이 아니니,
나율那律의 능能히 봄으로도 쉽게 보지 못하리로다.
정正한 체體는 옛부터 옴에 누가 능히 보는고?
하늘과 땅에 바람이 높으니 눈과 서리가 서늘하도다.
오안五眼이 깨끗하면 다름(異)이 도리어 한가지(同)니,
만별萬別와 천차千差가 마침내 비도다(空).
진겁塵劫의 다함없는 일이,
암마菴摩가 손바닥 가운데 있음을 봄과 같음을 누가 알리오?
오력五力을 얻어야사 이 진실眞實의 닦음이니,
가며 감에 성인聖人의 도류道流에 길이 의지하는구나.
바로 보리菩提에 나아가는 마음이 돗자리가 아니거니,
어떤 마구니와 외도가 구태여 머리 들어 올릴 리가 있으리오.
오직 증證한 이라야 아는지라 헤아림이 어려우니,
한 점點의 외로운 밝음이 태양 같도다.
눈이 먼 이는 광명光明 있는 곳을 알지 못하여,
머리 숙이고 차갑게 앉아 그윽이 사량思量하도다.
거울 속에 얼굴 봄이 보기가 어렵지 아니하니,
모양이 비록 같으나 도리어 실實이 아니니라.
당년當年의 옛 주인主人을 알고자 할진댄,
눈썹 털을 헤쳐라. 오늘날에 있느니라.
물의 가운데 달 잡음이어니 어찌 잡아 얻으리오?
진실眞實의 달은 어찌 물 가운데 있으리오?
오직 어리석은 원숭이가 미친 앎이 없으면,
강江 하河 회淮 제濟를 한때에 통通하리라.
항상 혼자 행行하야,
동관潼關을 지나서 길을 묻지 말지니라.
한 길이 삼삼森森한데 사람이 가지 아니하니,
황금전黃金殿 위에 파란 이끼가 나도다.
항상 혼자 걷나니,
이전부터 다시 문호門戶가 다르지 아니하니라.
무슨 일로 한산寒山은 멀리 노님을 즐겨,
이제 온 길을 잊으라 하였는고?
통달한 사람으로 열반涅槃의 길에 한 데 노님이,
봄엔 맑으며 맑아 막지(가리지) 아니하도다.
예와 이제에 밟을 이가 어찌 잠깐인들 없으리오?
유자遊子는 발 디디기 어렵다 이르지 말라.
격조格調가 옛스러우며 신神이 맑아 도풍道風이 스스로 높으니,
만약 실 터럭 만큼이나 간섭하면 서로 허락지 아니하리라.
묘봉妙峯 정상 위에 문득 만날 때에도,
백운白雲으로 벗 삼지 아니하니라.
모양 여위어 시들고 뼈 부르돋아 사람이 돌아보지 아니하나니,
상相을 취取하는 범부凡夫가 어찌 쉽게 헤아리리오?
자공子貢은 여곽藜籗(콩잎)의 맛을 알지 못하여,
속절없이 사마駟馬를 달려 문門에 들어오도다.
가난한 석자釋子는 진풍眞風을 이으니,
삼세여래三世如來의 격조格調로 한가지로다.
온 몸이 있는바 없다 의심疑心 말라.
이 집 활계活計는 본래本來 비었느니라.
입으로는 가난하다 이르나 마음은 밝으니,
성시城市(도시)와 산림山林(산중)에 붙은 곳이 없도다.
어미 낳은 헌 베적삼 입으니 겁화劫火를,
얼마나 지내었냐마는 마냥(길이) 이 같도다.
실實로 몸이 가난하나 도道는 가난치 아니하니,
가죽주머니에 한 어떤 것도 없어 푸른 봄을 지내는구나.
너희 세상 사람에게 아뢰나니 상相을 취取하지 말지어다.
한 번 잡아 일으키니 한 번 새롭도다.
가난하면 몸에 늘 누갈縷褐(누비옷)을 입나니,
서로 만나 남삼纜縿(옷이 헐었음)을 웃지 말지어다.
이따금 정신을 차려 한가로이 잡아 일으키니,
속절없이 수놓은 비단적삼을 입음보다 더하도다.
도道는 마음에 값없는 구슬을 갈무리하였나니,
세간世閒과 출세간出世閒에 견줌이 어렵도다.
오온산五蘊山 앞에 눈을 두어 보라.
점지點指하여 주거든, 오지 아니하면 천만리千萬里리라.
값 없는 구슬은 보배의 보배이니,
찾기를 용궁龍宮에서 다 하여도 얻을 곳이 없도다.
아무리 박주舶主(불조佛祖)가 기의機宜를(기미機微에 응應하여 주심을) 잘 하여도,
입을 열어 논하여 사량하면 필히 서로 괴로워 어려우리라.
씀이 다함이 없으니 어찌 능能히 지나리오?
예와 지금에 연이어서 물결이 흘러감과 같도다.
비원悲願의 훈薰하심(쏘이심)으로 비로소 이에 이르니,
비야리毘耶離의 향적반香積飯도 많지 아니하도다.
물物을 이롭게 하며 형形을 응應함에 마침내 아끼지 아니하나니,
용왕龍王의 비 내릴 처음과 또 같도다.
뜻 가짐에 바람과 구름이 천하天下에 가득하나니,
어느 꽃과 나무가 젖지 아니하리오.
삼신三身과 사지四智가 체體의 가운데 두렷하니(원만하니),
이 체體는 예로부터 옴에 둘이 없느니라.
만약 자성自性에 구求함이 그치면,
만萬 가지의 이름과 말씀이 실實한 뜻이 아니리라.
팔해탈八解脫과 육신통六神通은 심지心地의 인印이니,
흙과 물과 허공의 세 씀이 가지런하지 아니하도다.
오직 쇠 소에 일찍이 친(인印을 찍은) 곳이 있나니,
죽림竹林엔 동東녘 갓이요 석교石橋엔 서西의 녘이니라.
상사上士는 한 번 결단함에 일체一切를 다 깨쳐 아나니,
세勢가 산 무너짐 같아서 조금도 머물지 아니하도다.
배를 새겨서 칼 찾을 사람이,
배가 옮아가거늘 오히려 뱃머리를 지킴과 어찌 같으리오?
중근기 하근기는 많이 들을수록 어둑하여 신信치(믿지) 아니하나니,
오직 집 여읜 해와 달(세월)이 길도다.
너를 권勸하노니 이제부터 구하지 말지어다.
내게 있는 살림살이 재산이 고향故鄕에 가득하니라.
오직 내 품의 때 묻은 옷을 벗으리니,
이 옷은 예부터 옴에 또 값없느니라.
이제 실이 타져 체體가 온전히 나투니,
다시 부지런히 꿰맨 틈을 찾지 말지어다.
누가 능能히 밖을 향向하여 정진精進 잘하는 체 하리오?
가지며 버릴 마음 나면 사람을 더럽히리라.
도원桃源(무릉도원)의 골짜기 속에 꽃 피는 곳은,
동東녘 바람을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제게 봄이 있나니라.
남의 비방誹謗을 좇으면 뜻이 편안便安하니,
일체一切 말씀이 오직 바람 소리니라.
나무 사람과 꽃 새가 일찍이 서로 만나니,
저 뜻 없어 스스로 놀라지 아니하도다.
남의 그릇되다 함을 무던히 여기리니 그릇됨이 또 옳음이니,
그릇되며 옳음이 어찌 요의了義를 알리오?
요의了義를 무엇을 가져서 위爲하여 펴 가리키리오?
봄이 깊거늘 꽃이 이끼 낀 땅에 떨어지도다.
불을 잡아 하늘을 사룸이라 헛되이 스스로 고단하니,
창창蒼蒼(하늘)이 어찌 능能히 번뇌煩惱를 내리오?
만약 내 몸을 가져 허공虛空에 합하면,
곧 이 여래如來의 진실眞實한 도道이니라.
내 듣고 감로甘露를 마심과 같이 하리니,
한 방울이 능能히 만병萬病을 스러지게 하나니라.
산당山堂에 높이 누워 고요하여 일 없으니,
저 오늘날 또 내일 아침을 무던히 여기는구나.
녹여 부사의不思議에 몰록 들리라 하시니,
이제 구태여 다시 녹이지 말지어다.
바로 분명分明하니 용맹勇猛히 잡아 취取하라.
두어 줄기 긴 대와 일당一堂(한 집)의 바람이로다.
모진 말을 보되,
만약 말씀 없는 줄 알면 리理(이치)가 기울지 아니하리라.
몇 번을 강풍江風이 여러 날 일어났는가마는,
고기 낚는 배가 잠겼다 듣지 못하였노라.
이 공덕功德이니,
혜검慧劒을 번뇌煩惱의 도적에게 친親히 휘두르도다.
연기와 티끌을 다 쓸고 돌아오니,
한 색色 한 향香이 다 깨끗한 나라이로다.
이 곧 나를 만드는 선지식善知識이니,
참는 마음이 곡도(꼭두각시) 같아서 휘저어도 허물없도다.
제바달다를 친親히 영산기靈山記를 전하시니,
뼈에 새긴들 어찌 이 은혜을 갚으리오?
꾸짖어 헐뜯음을 인因하여 원친怨親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찌 조계曹溪의 길 위에 사람을 알리오?
류사流沙를 하늘이 밝지 아니하였거늘 일찍이 건너시니,
지금에 이르도록 낯에 가득한 것이 이 티끌이로다.
남이 없는 자인력慈忍力을 어찌 나투리오,
무생無生을 스스로 증證하고 인忍을 도로 잊으리니,
연래年來에 늙고 크시거니 어느 곳에 돌아가리오?
나라마다 티끌마다 이 옛 본향本鄕이로다.
종宗을 또한 통通하리니 진실眞實의 비밀秘密한 결訣이니,
마갈타摩竭陀에서 그 해에 일찍이 위爲하여 이르시다.
문수文殊가 늙은 유마維摩를 대질러 거꾸러뜨리시니,
지금에 이르도록 이치가 있거늘 분별分別하여 씻음이 어렵도다.
설說함을 또한 통通하리니 뜻이 그지없으니,
감感에 응應하며 기機를 좇음에 위爲하여 펴시니라.
만약 말씀을 인因하여 본래本來의 근원根源을 알면,
울음 그친 누런 잎이 거짓 것인 줄을 알리라.
정定과 혜慧가 두렷이 밝아 공空에 막혀있지 아니하니,
아래 위가 유유悠悠하여(멀어서) 찾을 곳이 없도다.
이따금 스스로 백운白雲과 더불어 오더니,
어젯밤엔 도로 밝은 달을 좇아가도다.
‘내 이제 혼자 알 따름 아니라’ 하시니,
이 ‘나[我]’는 어찌 잠깐인들 견지見知에 떨어지리오?
‘나 있다’ 할진댄 바로 또 통달通達치 못함이요,
만약 이르되 ‘나 없다’ 하여도 또 우치愚癡(어리석어 미혹)하리라.
항사恒沙 제불諸佛이 체體가 다 같으시니,
이 체體는 예로부터 옴에 끊어진 사이 없느니라.
이 체體를 알고자 할진댄 그대 위爲하여 펴리라.
고기 잡는 사람이 갈대꽃 가에서 웃고 섰도다.
사자師子 울음은 소리 두렷하니,
깊으며 적은 데에 움직이며 사무쳐 힘이 스스로 온전하도다.
유정有情의 어두움이 힘입어 열어 아나니[開曉],
봄 우레가 하늘 한가운데에 발發함과 길이 같도다.
두려움 없는 말은 에두르고 비끼지 아니하니,
범凡과 성聖이 다 병病든 눈에 꽃 같도다.
가시수풀 가운데 다닐 길을 열어서,
서로 더불어 법왕가法王家에 한가지로 이르는구나.
온 짐승이 듣고 머리가 다 깨어지나니,
마군의 무리들이 진설眞說을 들음과 또 같도다.
시름하여 두려워 돌아옴에 옛 모습을 잃으니,
본래本來 제 생멸生滅 없음을 알지 못하니라.
향상香象은 함부로 다녀 위의를 잃나니,
이승二乘의 성性을 증證함이 또 이 같으니라.
번뇌煩惱가 곧 보리菩提인 줄을 알지 못하고,
제 니원泥洹(열반)을 취取하여 생사生死를 싫어하도다.
천룡天龍은 고요히 듣고 기쁨을 내나니,
함생含生이 이로부터 다 의귀依歸하도다.
깊은 바위 고요한데 머리 돌이키지 아니하고,
도리어 인간人閒을 향向하여 헌 옷을 입도다.
강과 바다에 헤매어 다니니,
깊은 근원根源의 극에 다다를 흥興이 오히려 있도다.
제게 있는 금병金甁이 보주寶珠보다 더하니,
용왕龍王은 속절없이 시름하여 괴이怪異하게 여기지 말지어다.
산과 시내를 걷너,
즐률楖[木+栗, 만들지 않은 막대기]로 들길에 연기를 일찍이 나누어라.
오늘날에 누가 그 날의 일을 알리오?
이따금 초당草堂 앞에 한가로이 기대어있도다.
스승 찾아 도道 물음은 참선參禪을 위爲함이니,
무슨 일로 현사玄沙는 고갯마루에서 나오지 아니하였는고?
슬프다! 너희 지금의 사람은 괴로이 스스로 속아,
이마를 들이받아 헐어지되 오히려 깨닫지를 못하는구나.
현사玄沙가 “사비두타師備頭陀는 어찌하여 산을 벗어나 제방諸方을 유람하지 않는가?”하는 설봉雪峯의 말을 인하여, 선사가 막 고갯마루를 벗어나려는데 발가락 끝을 부딪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치되, “저곳도 허공이요 이곳도 허공이며 내 몸은 있음이 없거늘, 이 고통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쉬고 쉬어라! 달마達磨는 동토東土에 오지 않았고, 이조 혜가二祖慧可는 서천으로 가지 않았도다.” 하고서 설봉雪峯에게로 돌아와 다시는 고갯마루를 벗어나지 않았다.
[직지直指] 백운경한白雲景閑.
조계曹溪의 길 앎으로부터,
바리때 주머니와 바늘 통을 날마다 펴노라.
만약 그 해의 쫓던 사람을 보거든,
(그를) 위爲하여 전傳하되 ‘노로盧老(혜능)가 그대 오기를 기다리더라’ 하라.
생生과 사死가 서로 관계치 아니한 줄을 사무쳐 아니,
만약 생사生死를 알면 가며 있음이 없느니라.
발제하跋提河의 그날에 유풍遺風이 계시니,
금金 발 둘을 들어 학수鶴樹를 향向하시다.
다님이 또한 선禪이니,
중간中閒과 두 갓에 떨어지지 아니하도다.
웅이노사熊耳老師(웅이산熊耳山에 묻혔던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일찍이 누설漏洩하시어,
홀로 한 짝 신을 들고서 서천西天으로 가시니라.
앉음이 또한 선禪이니,
도거掉擧 아니며 혼침昏沈 아니거니 어찌 올연兀然하리오?
유자遊子(떠도는 아들)는 봄이 벌써 간 줄을 알지 못하여,
황리黃鸝(꾀꼬리)를 잘못 들어 두견杜鵑(두견새)으로 삼도다.
말하며 잠잠하며 움직이며 고요함에 체體가 안연安然하니,
온갖 경계 와서 침해侵害하여도 혼연渾然히 움직이지 아니하도다.
그 해의 헌 초혜草鞋(짚신)를 신으니,
호신부자護身符子도 온전히 쓸데없도다.
비록 날카로운 칼을 만나도 늘 훤하니,
온蘊(오온)이 공空함을 이미 증證하여 곧 몸이 없도다.
어려움을 만나 두려움 없음을 의심疑心 말라.
할아비와 아비로 집이 한 가지인 이 사람이니라.
비록 독毒한 약藥이라도 무던하니,
일찍이 금인金人의 중생 보호하는 비결(無生理)을 얻도다.
오직 언 물이 봄바람을 두려워한다 들어도,
더러운 흙이 명월明月을 더럽히는 것은 보지 못하리로다.
우리 스승님이 연등불然燈佛을 뵈시어,
진흙 길에 머리 깔으심을 뜻을 옮기지 아니하시다.
오늘날에 여래如來가 또 출현出現하시니,
또 그때와 같지 못하다 이르지 말라.
여러 겁劫에 일찍이 욕辱 참는 선인仙人이 되시니,
성性이 허공虛空과 같아서 성내는 마음을 여의시다.
보배의 칼이 날 없는 것을 속절없이 가져오도다.
얼마나 기리왕歌利王을 위爲하여 슬퍼하심을 마지아니하셨던고?
몇 번을 태어났는고?
긴 밤이 어두운데 발을 좇아 다니는구나.
머리 고치며 얼굴 바꿈이 날이 다함이 없으니,
그 해의 옛 성명姓名을 잊어버리도다.
몇 번을 죽었는고?
뼈 쌓음이 산 같아도 오히려 마지아니하도다.
산 앞의 들 늙은이를 만약 서로 만나면,
반半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여 옛 마을에 돌아가리라.
살며 죽음이 멀어서 일정一定히 머무른 곳 없으니,
탐심과 어리석음이 술 같아서 취醉하여 깨기가 어렵도다.
아득하여 집에 돌아갈 길을 알지 못하여,
(바람에)불려 가며 (물결에)잠기어 옴이 물의 부평초 같도다.
몰록 깨달아 무생無生을 앎으로부터,
성종性種(불성종자)을 훈습熏習하여 이루어 미우며 사랑함을 끊도다.
이 이름과 이 상相이 가는 터럭만큼도 없으니,
바다 넓으며 산 높음을 사람이 알지 못하도다.
여러 영예과 인욕에 어찌 시름하며 기쁘리오?
돌이 봄을 만나 봄의 변變치 아니함과 같도다.
시험삼아 뜰 앞의 복숭화 오얏나무에게 묻노라.
꽃 피며 꽃이 짐은 어느 사람을 위爲함인고?
깊은 산에 들어,
아침저녁[朝昏]에 병病든 모습 기름을 스스로 즐기는구나.
시절時節의 사람이 바위 가운데의 뜻을 알고자 할진댄,
깊은 새 때때로 끊어진 구름과 돌아오도다.
난야蘭若(적정寂靜한 곳)에 주住하니,
티끌과 시끄러움을 멀리 여읜 진실眞實의 고요한 사람이로다.
청請하노니 날이 맟도록 심원心猿(마음 원숭이)을 놓아두는 이를 보라.
어찌 깊이 살아[居] 의마意馬(의식意識)를 길들이는 것만 같으리오?
잠음岑崟하며(산이 높으며) 유수幽邃한(그윽하여 깊은) 긴 솔 아래,
일념一念이 어리니(엉기니) 만萬 가지의 사려思慮가 재가 되도다.
티끌 가운데 한 길이 산의 정상에 이어졌나니,
누가 능能히 한가함을 훔쳐서 이를 향向하여 오리오?
우유優游히(자약自若하여) 시골 중(僧)의 집에 적정寂靜히 앉아,
고단하면 곧 한가로이 졸고 목마르면 곧 차茶로다.
더위 가고 추위 옴에 있는바가 무엇인고?
한 가닥 구름누비(雲衲)가 이 생애生涯로다.
고요하게 편안히便安히 삶이 실實로 소쇄蕭洒하니,
밀밀密密한 행장行藏이라 자최 나투지 아니하도다.
천 눈을 몰록 떠도 찾을 곳이 없거니와,
넌즉한(마음 두지 아니한) 문門 아래에사 도리어 서로 만나리라.
알면 곧 마치나니,
낮이 삼경三更(迷)이요 밤이 새벽(悟)이로다.
복숭아꽃이 겨우 지거늘 살구꽃이 피니,
예로부터 옴에 모자람 없음을 비로소 신信하노라.
공功을 펴지 아니하니,
공功 없음을 알고자할진댄 마치 바람과 같으니라.
성냄 없으며 기쁨 없으며 마음 뜻 없으되,
모래 불며 안개 쳐서 갠 허공虛空에 가득케 하나니라.
일체一切 함이 있는 법法이 한가지 아니니(不同),
마음 근원根源을 좋이 씻어 여의어 벗어남을 구求할지어다.
이슬 떨어지며 물방울 잠김이 눈 깜짝할 사이이니,
부생만물浮生萬物(부평초 같이 사는 만물)이 다 이와 같으니라.
상相에 주住한(머문) 보시布施는 하늘에 날 복福이니,
옥전화대玉殿花臺에 뜻다이(마음대로) 가는구나.
‘불석拂石이 능能히 굳어서 오래간다’ 이르지 말라.
만약 무생無生과 견줄진댄 이 찰나刹那이니라.
* ‘불석拂石’은 한 큰 돌이 있으되 방方이 사천리四千里이니, 100년에 천인天人이 한번 내려와 비단옷을 입고 저 돌을 쓸어 그 돌이 다 없어지면 ‘한 불석겁(一拂石劫)’이라 하나니라.
화살을 우러러 허공虛空을 쏨과 같으니,
이 화살은 허공虛空에 멈출 까닭이 없느니라.
모름지기 실상實相을 구求하여 보리菩提에 나아가,
삼도三途를 향向하여 머리와 얼굴 바꿈을 면免할지어다.
힘이 다하면 점점漸漸 기울어지나니,
하늘 사람의 다섯 쇠함를 봄과 같으니라.
쇠하고 시들어서야 영벽고囹辟苦를 비로소 시름하나니,
환원歡園에서의 정正히 즐거운 시절時節과 같지 못하도다.
* ‘영囹’은 감옥이요 ‘벽辟’은 죄罪요, ‘환원歡園’은 제천帝釋의 환희로운 정원이라.
화살이 도로 떨어지되 극極하면 반드시 그치나니,
식랑識浪(식의 물결)이 표표飄飄[바람부는 모양]하여 물방울 흐름과 같도다. 도로 익힌 업業의 다시 이끌어 감을 좇나니,
이에 이르러 어찌 자유로움을 얻으리오?
오는 생生에 뜻 같지 못함을 불러 얻나니,
인因이 정正하지 아니하여 과果가 또 비뚤어지도다.
단檀(보시布施)을 행行하되 모름지기 삼륜三輪을 깨끗이 하리니,
죄罪와 복福이 비록 신령한들 네게 어떠하리오?
어찌 함이 없는 실상문實相門과 같으리오,
실상實相을 알고자할진댄 실實로 상相 없느니라.
봄이 이르거늘 깊은 새 날이 맟도록 울고,
달이 돋거늘 고기 잡는 배가 밤을 이어 (그물을)놓도다.
한 번 건너뜀에 바로 여래지如來地에 드니,
몰록 증證함이어니 어찌 만월용滿月容(보름달 용모)을 구求하리오?
용문龍門에서 고기가 화化하는 날에,
한 소리 우레 후後에 얻을 자최 없음과 같도다.
* 고기가 용龍 되어 그 비늘을 고치지 아니하며 사람이 부처 되어 그 낯을 고치지 아니하나니, 몰록 증證하면 곧 부처이거니 어찌 구태여 상호장엄相好莊嚴을 부처로 삼으리오?
오직 본本을 득得할지언정,
아침이 맟도록 다시는 입술을 고단히 말지어다.
한 번 배부름에 배불러서 만사萬事를 쉬니,
저 사람의 헤아림 없는 웃음을 무던히 여길지니라.
끝[말변사末邊事]을 시름하지 말지니,
세계[末]가 다함이 없으나 모아서 한 움큼[本]이니라.
발이 꺾인 솥[본분本分의 집 그릇]을 사람에게 빌리지 아니하여,
죽粥 끓이며 차 달임에 스스로 잡들도다.
조촐한(맑은) 유리琉璃가 보월寶月(보배달)을 머금음과 같으니,
체體와 용用이 서로 섞여 맑게 밝도다.
눈이 있으면 비슷하게 엿봄도 능能히 못하려니와,
무심無心하여야 본래本來로 두렷이(원만히) 이룸을 바야흐로 보리라.
내 이제 이 여의주如意珠를 아니,
솟아나는 찬 광명光明이 천만인千萬仞이로다.
사생육류四生六類는 내키는대로 모름지기 구求할지어다.
세계世界는 다함이 있거니와 이는 다함이 없느니라.
* 인仞은 ‘일곱 자’라.
내 몸 이롭게 함과 남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하지 아니하니,
자비慈悲의 물과 마음 꽃이 반야半夜(한밤중)에 피도다.
금전옥당金殿玉堂[正位]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털을 입고 뿔을 이고서 또 다시 오는구나.
강에 달이 비추이니,
납자衲子의 가풍家風이 가장 종요롭도다.
밤 고요한데누구와 함께 이 마음을 이르리오?
난산亂山(어지러운 산)에 때때로 외로운 납이(원숭이가) 울도다.
솔바람이 부니,
얼굴에 불어 소소簫簫(서늘)하여 다할 때가 없도다.
뿌리 아래의 복령茯苓이 신령하여 묘妙에 들어가니,
가며 오는 초자樵子는(나무꾼은) 몇 사람이나 아느냐?
* ‘복령茯笭’은 송진이 땅에 들어 천년千年이면 화化하여 복령茯笭 되나니라.
긴 밤 맑은 하늘에 하는 바가 무엇고?
다닐 땐 다니며 다니고 앉은 땐 앉았도다.
말에 두 뿔이 나고 항아리에 뿌리가 나도,
마침내 그대 위爲하여 가벼이 이르지는 아니하리라.
불성佛性과 계주戒珠는 마음 땅의 인印이니,
넓은 하늘과 두른 땅에 남겨 남지 아니하도다.
망망준준茫茫蠢蠢이(온 세상의 벌레들도) 다 한 가지로 두어 있나니,
누가 ‘오직 눈 파란 오랑캐(達磨)가 전傳하였다’ 이르리오?
안개와 이슬과 구름 노을이 체體 위의 옷이니,
옷과 체體는 예로부터 옴에 다른 이름 없느니라.
한 것[一物]도 가져오지 아니하였다 이르지 말라.
대지大地와 산하山河가 다 내 지음[造]이니라.
용龍을 항복降伏시킨 발우(智, 바리때)는 체體가 굳으니,
신령한 신통神通 펼침을 다하여도 가히 도망逃亡치 못하리로다.
대천사계大千沙界를 일찍이 담아 가니,
구름 움켜잡아 만장萬丈 높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도다.
* 세존世尊이 화룡굴火龍窟에 가 주무시거늘 룡龍이 독기毒氣를 내어 세계世界 다 붙거늘 세존世尊이 삼매화三昧火를 펴시는데 대지大地가 모두가 불이라. 그 용龍이 궁窮하여 갈 데를 몰라 세존世尊의 발우 가운데에 물만 맑거늘 들어가니라.
범 말린 막대기는, 소리 허공虛空에 아스라하니,
싸움 말리느라 일찍이 난봉亂峯에 날아드니라.
원怨(원수)과 친親(친함)이 한 체體인 것을 알지 못한 이는,
왕옥王屋에 끼친 자취가 있다 속절없이 자랑하도다.
* 왕옥王屋은 산의 이름이니 승조선사僧稠禪師가 왕옥산王屋山에 주암住菴하여 계시다가 두 범이 싸우거늘 석장錫杖을 던져 싸움을 말리시니라.
양고兩鈷와 쇠고리 울음이 역역歷歷하니,
오직 이 원통圓通을 지남指南으로 삼나니라.
만약 관음觀音의 진실眞實로 주住한 곳을 보면,
보타암寶陀巖에 있지 아니하심을 비로소 알리라.
이 형상을 표시하여 허사虛事로 지니는 것이 아니라,
들음을 인因하여서 제 도리켜 향向하게 하고자함이니라.
문득 듣는 곳에서 찾을 자최 없거든,
또 가섭迦葉의 옛 때 모양을 보라.
* 옛적에 가섭迦葉이 건달바왕의 음악音樂을 들으시고 문득 일어나 춤추시니 이는 대용大用이라.
여래如來의 보장寶杖이 친親한 자최이시니,
능能히 생령生靈의 그물을 끊나니라.
양고兩鈷 여섯 고리는 비록 좋은 표식이나,
전제全提[한 올의 막대]를 알지 못하면 족足히 많지(아름답지) 못하니라.
진眞을 구求하지 말리니,
진眞을 구求하면 곧 소疏(성김)와 친親(친함)이 있으리라.
시험삼아 금金싸라기를 가져 두 눈에 넣어보라.
비록 귀貴한들 어찌 사람을 가리지(장애하지) 아니하리오?
망妄을 끊지 말리니,
망妄과 진眞은 근원根源이 한 상相이니라.
일찍이 강 위의 밀물 희롱하는 사람을 보니,
물을 사랑하는 이가 물결 미워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도다.
두 법法이 공空하여 상相 없음을 사무쳐 알리니,
진망眞妄을 잊어 옴엔 망妄이 이 진眞이니라.
만약 진眞이라 여길진댄 도로 이 망妄이리니,
만약 진망眞妄을 잊어도 또한 사람을 시름케 함이리라.
상相 없으며 공空 없으며 불공不空도 없으니,
감 없으며 옴 없으며 붙은 곳 없도다.
솔 아래의 맑은 바람이 이끼를 쓸어 다하니,
볏짚으로 이은 암자菴子가 예를 의지하여 백운白雲의 속이로다.
곧 이 여래如來의 진실眞實한 상相이니,
밝은 달과 갈대꽃의 빛이 가지런하지(같지) 아니하도다.
보안普眼이 그때 얻지 못한 곳이여,
밤에 비와 섞여 찬 시내에서 자도다.
* 보안보살普眼菩薩이 보현普賢을 뵈옵고자 하시되 못하시어 세 번 정定에 들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다 보시되 보현普賢을 찾지 못하시어 부처께 와 사뢰되, 부처 이르시되 “네 오직 정삼매靜三昧 중中에 한 념念 일으키면 곧 보현普賢을 보리라” 하시거늘 보안普眼이 곧 한 념念 일으키시니 곧 보현普賢이 공중空中에 육아백상六牙白象을 타시고 계시거늘 뵈오시니라.
마음거울이 밝아 먼 데 가까운 데를 비추이니,
맑은 해 허공虛空에 올라도 가히 비교함이 어렵도다.
한 조각 찬 광光이 맑아 흐르지 아니하니,
대천사계大千沙界가 이로부터 일어나도다.
비추임이 가리움 없어 호리毫釐가 끊어지니,
만萬 가지의 모양과 천 형상을 다 알지 못하도다.
고요하며 고요한 광光 중中의 사람이 가버린 후後에,
코가 눈썹 털 같으니 이 누고?
* 호리毫釐는 열 홀忽이 한 호毫이고 열 호毫가 한 리釐이라.
훤하여 조촐하며 사무쳐 사계沙界에 가득하니,
서로 볼진댄 온전히 옛 모습 아니로다.
예로부터 옴에 찾을 곳 없다 이르지 말라.
이따금 꼬리 흔들고 남산南山에 오르도다.
만상萬象과 삼라森羅가 그림자 가운데 나타나니,
법法마다 허虛 아니며 또한 실實아니로다.
이 이름과 상相이 본래무생本來無生이니,
여러 터럭(털)의 사자師子가 한 터럭의 마침이니라.
* 만상萬象은 땅에 있는 것이요, 삼라森羅는 하늘에 있는 것이라.
한 낱 두렷한 광光이 안팎이 아니니,
가까워 형상形狀 없으며 멀어서 갓이 없도다.
아이는 알지 못하고 속절없이 이름지어 이르되,
‘두렷함이 월륜月輪(달) 같다’ 하도다.
훤히 사무친 공空은 마魔의 유혹하는 바이니,
오직 이르되 ‘만물萬物이 다 있음이 없다’ 하도다.
갈 길이 오히려 멀거늘 날이 이미 서西쪽으로 져가니
가련하다 집 잃은 개와 홀로 같도다.
인과因果를 쓸어버리는 것이 다시 슬퍼함직하니,
평탄한 길은 미혹하여 잃어버리고 어둡고 또 미치도다.
고초苦楚(괴로이 침)를 다른 때에 친親히 받을 곳에서야
선善과 악惡의 업業이 잊기가 어려운 줄을 비로소 알리라.
망망탕탕漭漭蕩蕩하여 앙화殃禍를 부르나니,
악惡을 더 고치지 아니하며 선善을 닦지 아니하도다.
‘깨달음 없으며 미혹함 없음’을 입을 열어 말함이 이것이니,
니리泥犂(지옥)에 다다르지 아니한 땐 끝내 그만둠이 어려우니라.
* ‘망망漭漭’은 먼 것이요 ‘탕탕蕩蕩’은 훤한 것이라. ‘니리泥犂’는 지옥地獄이라.
유有를 버리고 공空에 집착함이 병病이 또한 그러하니,
공空을 버리고 유有를 취取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바리때 주머니를 지녀서 오되 밤이 밝지 아니하신 때에,
한 노로老盧도 오직 송곳 끝이 날카로움을 보니라.
* <단경壇經>에 이르시되, 오조五祖가 밤이 삼경三更이거늘 혜능慧能을 당내堂內에 오라 하시어 곧 돈교頓敎와 옷과 바리때를 전傳하시고 “너를 제 육대조第六代祖로 삼노니 잘 호념護念하여 모르는 사람을 널리 제도濟度하라.” 하실새 ‘밤이 밝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옛부터 이르되, ‘오직 송곳 끝 날카로움을 보고 끝머리가 네모남을 보지 못한다’ 하니, 송곳 날카로움은 공空이요 끝 방方함은 유有이라.
(물에)잠김을 피避하려고 불에 들어감과 같으니,
물과 불이 비록 다르나 해害가 어찌 다르리오?
만약 풀이 무성한 밭에 들어가 손을 좇아 얻으면,
피곤하게 걸음 옮기지 아니하야 곧 집에 돌아가리라.
망심妄心을 버리나니,
마음을 가져 망妄을 덜어내면 망妄이 도리어 깊으리라.
망妄이 곧 진眞인 줄을 알아 진眞을 두지 아니하면,
한 올의 삼 실에 두 올의 바늘이리라.
진리眞理를 취取하나니,
편갑片甲과 섬린纖鱗은 아름답지 아니하니라.
나무계집이 구름을 뚫어 웃음을 멈추지 아니하거늘,
대양大洋의 바다 밑에 붉은 티끌이 일어난다.
* 편갑片甲(갑옷 조각, 패전병)과 섬린纖鱗(어린 비늘, 잔챙이)은 소승小乘이라. 대양大洋은 바다가 넓고 큰 모양이라.
가지며 버리는 마음이 공교工巧하며 거짓됨을 이루나니,
진眞과 망妄이 성性이 다르지 아니한 줄을 모름지기 알리라.
반멸半滅하며 반생半生으로 지극至極한 도道를 닦으면,
나무에 올라 연蓮꽃을 바라는 것과 도리어 같으리라.
배우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써 수행修行하나니,
알고서 수행修行하면 어찌 허망虛妄하리오?
만약 항아리 소리를 가져서 종소리로 삼으면,
실實 없을 따름이 아니라 또 저를 속이는 것이리라.
도적을 그릇 알아가져 아들 삼음이 깊이 이루어지니,
망妄 사랑함이 마음에 얽혀서 스스로 알지 못하도다.
기다려 해(年)가 다함에 이르러서 그대 스스로 보라,
가업家業을 황량하게 함은 또 누구를 말미암음이리오?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