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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동성경 상권
이때 비비사나 능가왕이 공양을 마치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의심나는 것이 있어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 여쭈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도리(道理)를 명확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하고 나자, 부처님께서 능가왕에게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내가 항상 너에게 의심나는 것을 부처에게 묻도록 열어 놓았으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너를 위하여 설명하여 마음에 환희를 얻도록 해 주리라.”
[중생의 듯]
이때 능가왕이 허락을 받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을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뜻으로 ‘중생’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중생을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연(緣)이 화합하였으므로 이름하여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흙과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空]과 식(識)과 명색(名色)과 6입(入)의 인연으로 생긴 것이다.
또 중생이란 마치 대묶음[束竹]과 같아서 업에 의지하는 까닭에 보(報)가 있으며, 업에 의지하므로 과(果)를 얻는다.
나[我]와 인(人)과 중생(衆生)과 수명(壽命)과 축생[畜養] 등의 여러 가지와 앎의 주체와 보는 것의 주체와 행위의 주체와 닿음의 주체와 받음의 주체[受者]를 중생이라 이름한다.”
[중생의 근본과 머루름과 인]
비비사나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은 무엇으로 근본을 삼으며, 무엇에 의지하여 머물며, 무엇이 인(因)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능가왕이여, 중생은 무명(無明)을 근본으로 하고, 애착에 의지하여 머물며, 업(業)이 인이 되는 것이다.”
비비사나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업에는 몇 종류가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업에는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업이다.
다시 세 가지 모습[相]이 있으니,
깨끗함[淨]과 깨끗하지 않음[不淨]과 깨끗하지도 않고 깨끗하지 않음도 아닌 것[非淨非不淨]이다.”
[업과 윤회]
비비사나 능가왕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이 이 수명을 버리고 저 수명을 받으며, 이 옛 몸을 버리고 저 새로운 몸을 받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중생은 이 몸을 버리고 나면 업의 바람이 부는 힘으로 식(識)이 옮겨져 떠나게 되며 스스로 지은 업으로 그 과(果)를 받는다.
선(善)과 불선(不善)과 선도 아니고 불선도 아닌 것[非善非不善]이니, 중생이 만약 이와 같은 업행(業行)을 지으면 곧 그곳에서 새로운 몸을 받는다.
혹은 알[卵]로 태어남을 받고 혹은 습(濕)으로 태어남을 받고 혹은 태(胎)로 태어남을 받고 흑은 홀연히[化] 태어남을 받으니, 이 모두가 업의 바람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업 역시 스스로 만드는 줄을 알지 못하고 각기 스스로 보(報)를 받는다.
능가왕이여, 중생이 이와 같이 이 몸과 목숨을 버리고 저 새로운 몸을 받는다.”
[식과 윤회]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이 이 몸과 목숨을 버리고 미처 저 몸을 받지 못하면, 그 중간에 식(識)은 어느 곳에 머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네 생각은 어떠한가?
밭에서 씨앗이 싹트게 될 때에,
씨앗이 먼저 없어진 후에 싹이 생기게 되느냐?
그 싹이 먼저 생긴 후에 씨앗이 없어지게 되느냐?
아니면 오직 씨앗이 없어질 때 즉시 그 싹이 생기게 되느냐?”
비비사나왕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그럼 무엇이냐?”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씨앗이 없어지면 곧 그 싹이 생기는 것입니다.
먼저 씨앗이 없어진 후에 싹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먼저 싹이 생긴 후에 씨앗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능가왕이여, 식(識)이 먼저 없어진 후에야 식이 비로소 생기게 되는 것은 아니다.
능가왕이여, 또 먼저 전식(前識)이 생기고 나서 후식(後識)이 비로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능가왕이여, 오직 후식이 없어지면서 전식이 곧 생기는 것이다.
능가왕이여, 마치 자벌레가 먼저 앞부분을 놓은 다음 그 후에 뒷부분이 따라가며 그 모습이 굽혔다 폈다 하면서 중간에 단절됨이 없는 것과 같이 그런 것이다.
능가왕이여, 이 신식(神識)이 먼저 유(有) 중에서 태어날 곳을 보고 확실히 알고 나면 식이 곧 저곳으로 옮겨가서 기탁하는 것으로, 중간에는 단절됨이 없게 된다.”
[중음]
비비사나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그렇다면 중음(中陰)은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한 종류의 중생이 있다. 알로 태어나는 것[卵生]이 이러한 것이다. 이 몸을 버리고 나서 알 속에 들어가면 이 신식이 업풍(業風)에 잡혀서 알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어둡고 어리석어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바뀌어서 식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깨달아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저 알은 이미 성숙된 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알로 태어나는 중생의 법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미처 성숙되지 못했을 때는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그 까닭은 업력(業力) 때문이다.
능가왕이여, 또 어떤 중생은 복력이 순수하고 두터워 전륜왕가(轉輪王家)의 아들로 태어나게 되니,
그는 태에 있으면서도 태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또한 태와 함께하지 않으며, 부정(不淨)과 함께 머물지 않으며 또한 더럽혀지지도 않는다.
능가왕이여, 그 전륜왕의 소생인 아들은 대부분 화생(化生)을 받는다.
비록 태를 받으나, 처음 태중에 들어갈 때 이미 몸이 다 만들어져 있으며 태어난 후에 막을 깨고 몸이 나온다.
능가왕이여, 이러한 인연으로 중음이 있다고 말한다.”
[식의 모습]
이때 비비사나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신식(神識)은 얼마나 크며, 어떤 색을 하고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중생의 신식은 끝이 없이 크며, 색도 없고 상(相)도 없어 볼 수도 없으며, 걸림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정해진 곳도 없어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비비사나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식(識)의 모습이 이와 같이 끝이 없이 크고, 색도 없고 상도 없어 볼 수 없으며, 걸림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정해진 곳도 없어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단절(斷絶)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내가 이제 너에게 묻겠으니 네 마음대로 대답하여라.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능가왕이여, 비유하면 대왕이 궁전 안에 있거나 혹은 높은 누각 위에 있으면서 화려하게 차린 여자[婇女]에 둘러싸여 가지가지 옷을 입고 모든 영락을 두르고 안락하게 앉아 있을 때,
대원림(大園林)의 아수가(阿輸歌)나무에 온갖 여러 가지 꽃으로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고, 그 정원이 있는 곳에 산들바람이나 크고 빠른 바람이 저 원림의 아수가나무에 불어 여러 꽃의 향기가 왕이 있는 곳에 이른다면,
왕이 맡을 수 있겠느냐?”
비비사나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네가 그 향기를 맡고 분별하여 알 수 있겠느냐?”
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이 꽃의 향기를 왕이 안다고 말하는 것은 크기를 본 것이냐, 어떤 색을 하고 있는지 판단한 것이냐?”
능가왕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향기의 모습은 색이 없고 나타남이 없으며, 걸림도 없고 상(相)도 없으며, 정해진 곳도 없어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크기와 형색(形色)을 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약 저 향기의 크기를 알 수 없다면 단절된 모습[相]이 아니겠느냐?”
비비사나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약 여러 향기가 단절된 모습[相]이라면 어떤 사람도 맡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능가왕이여, 식의 상[識相]도 역시 그러하므로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능가왕이여, 만약 식(識)이 단절된 상(相)이라면 생사를 알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아서 능가왕이여, 식의 모습은 청정하나 오직 이 무명(無明)과 탐애(貪愛)와 습기(濕氣)와 업(業) 등의 모든 객진번뇌[客煩惱]에 덮이고 가로막힌 것이다.
능가왕이여, 비유하면 마치 청정한 허공계(虛空界)가 오직 네 가지 객진(客塵)으로 오염된 것과 같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아지랑이와 구름과 먼지와 안개이다.
능가왕이여, 식의 모습도 이와 같아서, 본래 청정한 까닭에 끝이 없어 잡을 수 없으며 색에 물듦이 없으나, 오직 이 모든 객진번뇌에 덮이고 오염된 것이다.
왜냐하면 능가왕이여, 만약 바르게 관(觀)할 때에는 중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나[我]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수명도 없고 축생도 없으며, 남[人]도 없고 중생수(衆生數)도 없으며,
앎의 주체[知者]도 없고 봄의 주체[見者]도 없으며 깨달음의 주체[覺者]도 없고 받아들임의 주체[受者]도 없고 들음의 주체[聽者]도 없으며,
또한 물질과 받아들임과 생각과 행동과 식 등도 없다.
능가왕이여, 만약 바르게 관할 때는 분별할 만한 것이 없다.
능가왕이여, 모든 법은 화합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실상(實相)이 없다.
너는 비록 이 중생의 실상을 얻는다고 하여도 이 생(生)의 유위(有爲)의 광야를 버리지 말라.
무엇을 이름하여 ‘중생의 실상을 얻는다’고 하는가?
저 대지동성(大智同性)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중생의 업력이 스스로 돌고 돌아
팔성최상도(八聖最上道)를 얻지 못한다.
만약 모든 업을 떠나 무루(無漏)를 증득한다면
무상행(無上行)을 하여 중생에게 이익 주리라.
[중생의 모습]
그러나 비비사나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중생이 있고,
이 삼계(三界)의 빽빽한 숲에 유위(有爲)의 바다가 있으니,
저 언덕에 이르는 이나 또 이르려 하는 이는,
성문법(聲聞法)을 증득한 사람도 있고 연각법(緣覺法)을 증득한 사람도 있으며, 또한 이미 위없는 대지동성(大智同性)을 증득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미래세에도 역시 한량없고 끝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 수를 넘는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중생이 있어, 이 세 가지 수레[三乘]를 탈 것이며, 각각 다른 수레로 열반에 들게 될 것이지만 중생계는 늘지도 줄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와 같은 것을 아는 까닭에 마음에 물리어 싫증내는 생각이 생깁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너는 여기에서 물리어 싫증내는 생각을 내지 말아라. 왜냐하면 모든 중생계는 전이나 후나,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공계(虛空界)도 법계(法界)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능가왕이여, 모든 중생계는 말로써 할 수 없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음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삼계의 빽빽한 숲의 유위(有爲)의 바다 가운데에서 이미 건넌 이나 앞으로 건너고자 하는 이가 있으나 중생계 또한 늘고 줄어듦이 없다.
능가왕이여, 비유하면 마치 허공계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앞도 없고 뒤도 없으며 또한 중간도 없다.
그러므로 허공은 알 수 없고 모든 곳에 두루 가득하며 장애도 없고 근심도 없고 지음도 없고 생각도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아서 능가왕이여, 중생계도 처음과 중간과 나중을 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능가왕이여, 오직 스스로 성스러운 법의 동성(同性)을 얻는 것이 있을 뿐이니, 이를 ‘중생계를 다한다’고 하는 것이다.
유위의 도는 다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능가왕이여, 또한 그것을 떠나 해탈도(解脫道)가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중생계의 법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도 없고 중간도 없고 나중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