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밀해탈경 제1권
2. 성자선문보살문품(聖者善問菩薩問品), 유위법ㆍ무위법
그때 바가바께서 백천만 아승기 대중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매우 깊은 법을 말씀하셨다.
그때 대중 가운데에 성자(聖者)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이름은 선문(善問)이었다.
대중 가운데 앉아서 말이 없고 두 모양이 없는 제일의제(第一義諦)에 의지하여 성자 심밀해탈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일체 법이 둘이 아니라 하니, 어떤 것이 일체 법이며, 어떤 것이 둘이 아닌 것입니까?”
그때 심밀해탈보살이 선문보살에게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일체 법이란 두 가지가 있으니, 그 두 가지란
첫째는 유위법(有爲法)이요, 둘째는 무위법(無爲法)입니다.
선남자여, 유위법이란 유위도 아니며 무위도 아닙니다.
무위법이란 유위도 아니며 무위도 아닙니다.”
선문보살이 물었다.
“불자여, 어떤 것이 유위는 유위가 아니며 무위가 아닙니까, 또 어떤 것이 무위는 유위가 아니며 무위도 아닙니까?”
선밀해탈보살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유위법이란 여래께서 명자(名字)로써 설법하신 것뿐이니, 여래께서 명자로 설법하신 것은 오직 분별과 언어를 가리킬 뿐입니다.
선남자여, 만일 명자와 분별과 언어만으로 설법이라 한다면 항상 바르게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가지가지 명자를 모아서 언어가 이루어졌으므로 유위가 아닙니다.”
“선남자여, 무위란 오직 언어의 체입니다. 가령 유위와 무위를 여의었을지라도 그 법은 또한 그러합니다.
선남자여, 비록 언어가 없으나 공연히 일을 위하여 말하지는 않습니다.”
“불자여, 어떤 것이 일을 위하여 공연히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른바 성인이 성인의 소견을 알고 성인의 지혜로 성인의 지견(智見)을 아니, 증득한 바를 말할 수 없건만 그 언어가 없는 법을 말씀하려 하여 형상에 의지하여 저러한 유위ㆍ무위를 말씀합니다.
선남자여, 무위라 함은 여래의 명자(名字)의 설법입니다.
명자의 설법이란 분별하는 상(相)이요, 분별하는 상이란 곧 언어의 모습입니다.
선남자여, 언어의 모습이란 곧 명자를 모은 법이요, 명자의 모인 바는 허망한 법이요,
허망한 법이란 항상 이러한 본체가 없습니다.
가지가지로 분별하는 명자로는 이루어지지 않음이 곧 언어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무위가 아니라 말하였습니다.
선남자여, 유위라 함은 다만 명자이니 만일 유위ㆍ무위의 법을 여의면 그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나 일없이 저러한 언어를 말하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어떤 것이 일을 위하여 말하는 것이냐 하면, 성인의 지혜로 성인의 지견(智見)을 아는 것이니, 증득한 법을 말할 수 없습니다.
증득한 법을 말할 수 없는 까닭에 유위가 아니라 말합니다.”
선문보살이 물었다.
“불자여, 어떤 것이 일을 증득한 바를 말할 수 없는 것이며,
성인의 지혜로 성인의 지견을 아는 것이며,
저 말이 없이 증득한 법을 위하여 저러한 유위ㆍ무위의 언어를 말하는 것입니까?”
심밀해탈보살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비유하자면 요술쟁이나 그의 제자가 네거리에 서서 초목의 가지와 잎사귀와 기왓장과 돌을 한곳에 모아 쌓고 가지가지 요술을 나타내니,
이른바 코끼리ㆍ말ㆍ거병(車兵)ㆍ보병(步兵)ㆍ마니ㆍ진주ㆍ유리ㆍ가패(珂貝)ㆍ산호ㆍ호박ㆍ자거ㆍ마노ㆍ돈ㆍ재물ㆍ곡식ㆍ비단 따위와 창고에 갈무리하는 모든 물건이니,
이렇게 가지가지 이상한 일을 나타내거든,
선남자여, 모든 어리석고 지혜 없는 범부들은 그 일을 보거나 들으면 그들이 초목이나 와석(瓦石)인 줄 모르고,
실제로 이 모든 코끼리ㆍ말ㆍ거병ㆍ보병ㆍ마니ㆍ진주ㆍ유리ㆍ가패ㆍ산호ㆍ호박ㆍ자거ㆍ마노ㆍ돈ㆍ재물ㆍ곡식ㆍ비단ㆍ창고 따위의 물건이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에 보는 까닭입니다.
저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렇게 보고 듣고는 곧 수행을 취하되 필경에 실답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할 것이니
선남자여, 그 사람은 다시 상상(上上)의 법을 구하여야 합니다.
선남자여, 또 어떤 지혜롭고 어리석지 않은 이는 코끼리ㆍ말 따위를 보면 그가 초목이나 와석(瓦石) 등의 체(體)인 줄을 아니,
그 사람이 보거나 듣고는 생각하되
‘저 코끼리ㆍ말ㆍ수레 등은 내가 보기에 모두 실답지 않다.
이는 요술의 힘으로 생긴 바로서 그러한 코끼리ㆍ말ㆍ수레ㆍ보병 따위의 허망한 형상과 가지가지 이상한 일이 생겨 사람의 눈을 홀리는구나’ 하고,
저 지혜로운 사람은 보고 들은 바와 같이 실다운 것이라고 여기거나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이것만이 필경에 실답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집착하지도 않고,
아는 것으로 뜻을 삼아 저의 말을 취합니다.
이 사람은 다시 수승한 법 관찰하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범부 중생이 성인의 출세간 지혜를 얻지 못한 것도 이러합니다.
범부는 어리석어서 언어가 없는 법을 여실히 알지 못하고,
유위ㆍ무위의 법을 보거나 들으면
‘이 유위ㆍ무위의 법은 내가 보고 듣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보고 들은 바와 같이 필경에 취하려 하며,
실답다고 집착하여 보고 들은 바와 같이 받아 행하되,
이것이 필경에 실답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하니,
그 사람은 다시 수승한 법 관찰하기를 구합니다.
선남자여, 다시 어떤 중생은 어리석지 않아서 실체를 보고 모든 성인의 출세간 지혜를 얻어서 여실히 일체의 법을 알고 말이 없는 진실한 법체를 증득하였거든,
그 중생이 유위ㆍ무위의 법을 보고 듣고는
‘보고 들은 바와 같은 유위ㆍ무위ㆍ명자들의 법은 없는 것이리라’고 생각하며,
또 ‘이러한 유위ㆍ무위의 언설(言說)은 허망한 분별인 행상으로부터 생긴 것이니,
마치 저 요술의 법과 같이 지혜를 미혹케 하여 유위ㆍ무위는 다른 명상을 내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보고 들은 것과 같이 이렇게 취착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한 줄 알아서 저 뜻을 드러내기 위하여 언어만을 취합니다.
그 사람은 다시 수승한 법 관찰하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이러한 일은 성인의 지혜라야 알며, 성인의 소견으로 보며, 무언(無言)으로 깨칠 바인데, 저 무언의 법을 증명하려 하여 유위ㆍ무위의 명상을 말합니다.”
그때 심밀해탈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깊은 뜻에는 언어가 없어
모든 부처가 불이(不二)를 말씀하시니
어리석은 이 무명에 의지하여
희론으로 두 갈래에 집착하네.
오래도록 세간길[世間道]을 다녀서
쉼이 없이 오고 가니
축생의 무리에 태어나는 것
제일의를 멀리한 까닭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