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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문수사리현보장경 상권
[보살의 방편, 비유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수보리여, 보살의 지혜의 훌륭한 방편을 힘입는 그것이 바로 보살의 성스러운 성품이다.
이 때문에 보살은 몸을 탐하면 도를 얻지 못한다고 아니,
마치 크고 날카로운 도끼를 가지고 큰 나무를 베어 조각조각으로 끊어버려서 도로 본래의 곳에 붙여서 본래대로 회복하려 하여도 마침내 땅에 서게 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지혜의 훌륭한 방편으로써 성스러운 성품으로 삼는지라,
이 때문에 보살이 몸을 탐하여서는 도를 얻지 못할 줄 아는 것입니다.”
혹시 하늘에서 큰비를 내리면 나무의 자라남이 무성하기 때문에 줄기ㆍ마디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가 있어 일체를 유익하게 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대자대비를 행하여 몸을 탐하는 자를 살펴서 삼계(三界)의 갖가지 형태와 종류로 태어남을 나타내어 그 빛과 모양에 따라 중생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혹 사나운 비와 빠른 바람을 일으켜 그 나무에 불고 떨어뜨리기도 하며,
보살은 큰 지혜로써 부드러운 큰비를 놓아 불수(佛樹) 아래에다 곧 다시 떨어뜨림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를 칭찬해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모든 보살의 지혜의 훌륭한 방편을 쾌히 설명하였으니 그 성스러운 성품됨이 바로 이러한 것일진대, 이는 대자대비의 법행을 말한 것이다.
이제 문수사리는 다시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라.
마치 어떤 나라가 이미 강하고도 큰 나라인데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크고 뜨거운 돌을 놓아서 그 나라의 초목을 불사르고자 한다면, 모두 다 타버리게 될 때에 다시 물방울이 수레바퀴 같은 홍수를 퍼부어 초목을 두루 생장하게 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보살이 지혜의 훌륭한 방편을 퍼 부음으로써 방편을 나타내 보이되
일체 어리석은 범부들 속에 들어가 모든 어두움을 가르쳐 현성(賢聖)의 행을 나타내고,
생사의 계율을 받드는 사람을 위해 이치를 나타내어서 모두들 즐겁게 하는 것도 그러하다.
또 마치 향나무가 있는데 그 뿌리의 향과 가지의 향과 잎의 향과 꽃의 향과 열매의 향이 각각 다른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이 지혜인 자연의 성품으로써 일체 사람들이 하고자 함에 수순하여 그 본행(本行)을 따라 설법하되,
각각 즐겁게 하고 그 마음을 깨닫게 하여 대비의 근본을 버리지 않음도 그러하다.
또 마치 석가유라가(釋迦惟羅迦)라는 큰 마니(摩尼) 보배가 있어서 제석천[天帝釋]이 이 보배를 찰 때에 그 피복(被服)ㆍ채녀(婇女)ㆍ사택(舍宅)ㆍ강당ㆍ궁전을 비추어서 일체가 다 청정한 광명을 다투지만 큰 명월(明月) 보배는 또한 생각이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의 밝은 지혜의 과(果)가 청정하게 해탈함이 명월 보배와 같아서 널리 모든 이치를 나타내되 아주 생각 없음이 그러하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마치 큰 명월 보배인 시일체원(施一切願)이란 보배가 뭇 사람들이 하고자 함을 따라 다 구족하게 넉넉함을 얻게 하되, 시일체원인 보배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의 청정함이 보배와 같아서
중생들의 모든 하고자 하는 원을 구족하게 하되, 그 보살 역시 아무런 생각이 없다.
또 마치 허공 가운데 큰불이 일어나고 다시 큰비를 놓아도 그 허공에는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은 삼계(三界)의 불 속에 처해 있거나 적막한 무위(無爲)의 경계에 있더라도 차가움이 없고 뜨거움이 없다.
또 마치 허공 가운데 독나무[毒樹]를 나게 하고 다시 약나무[藥樹]를 나게 하여도 그 독나무가 허공을 해치지 못하고, 그 약나무의 향내가 청정함을 제거하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은 훌륭한 방편으로써 모든 독나무에 들어가 약나무의 줄기와 마디로 모든 뿌리를 보호하여 뭇 더러운 번뇌가 붙지 않게끔 보살이 모든 뿌리를 청정하게 함으로써 더 청정하게 할 것이 없어 한꺼번에 두 가지 일에 들어가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또 마치 뚫어져 새는 그릇[器]을 한 군데만 때워서 새지 않게 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버려 때우지 않으면 마침내 모두가 다 새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은 머무는 데가 항상 선정이어서 큰 신통을 갖춰 별다른 샘[漏]이 없으나 어떤 머무는 곳에 있어선 별다른 샘을 나타내되, 그 샘이 나오는 일체 근본에 따라 설법한다.
또 마치 천리마[騏驥]가 걸음이 날래고 굳세고도 힘이 있어서 말 떼[馬畜]를 수호하되 시위(侍衛)를 탐내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은 대자대비를 세워 굳세고도 힘이 있어서 뛰어난 힘으로 뭇 사람을 구호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생각하지 않는다.
또 마치 사나운 사자가 모든 짐승의 왕으로서 두려워할 것이 없지만 오직 큰 불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 역시 두려워하는 데가 없지만 제자와 연각의 지위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
또 마치 이라만(伊羅漫)용왕이 비록 축생의 짐승이 되었지만 청정한 변화를 나타내 보일 수 있음은 모두 제석(帝釋)의 본래 덕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이 설령 축생의 짐승 가운데 떨어지더라도 모든 청정한 법을 나타내 말할 수 있음은 그 본래의 행에 따라 트이는 것이다.
마치 나무 구멍을 마찰시켜 불을 내거나 밝은 구슬로 광명을 놓거나 그 두 가지가 다 이익됨이 있는 것처럼,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그 당초부터 뜻을 내었거나 보리수 아래 앉은 뒤에 뜻을 내었거나 이 두 보살은 함께 뭇 더러운 번뇌를 제거하고 모든 애쓰는 괴로움을 불사를 수 있다.
또 마치 갖가지 나무가 각각 이름이 있되 그 색(色)이 같지 않고, 가지와 잎이 각각 다르고, 꽃과 열매가 서로 같지 않지만, 이 모든 나무가 다 4대(大)로 인하여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은 갖가지 행을 받들고 뭇 덕의 근본을 쌓되, 모두 그것으로 도의 뜻을 이룩해 일체 지혜를 권조(勸助)하여 성취하게 된다.
또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이르는 곳마다 일곱 가지 보배와 네 가지 군사가 다 따르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은 훌륭한 방편과 지혜바라밀을 얻어 들어가는 곳마다 일체 도품(道品)의 법이 다 따른다.
또 마치 갈수(羯隨)라는 큰 새가 가령 그물 속에 떨어지면 계속 슬픈 소리를 내는 것처럼,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설사 보살이 소굴(樔窟)에 떨어져 불법을 요달하지 못하고 몸에 대한 탐심을 버리지 못하고 삼계(三界)를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계속 사자(師子)의 깨닫는 부르짖음을 내어서 공함[空]과 형상 없음[無想]과 원 없는 법[不願]을 설하고, 생멸이 없는 일을 강설한다.
또 마치 갈수라는 큰 새가 산꼭대기에 있어서는 그대로 머물고 울기를 좋아하지 않다가 같은 무리들을 만나서 비로소 난새[鸞]의 음성을 퍼뜨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보살이 여러 제자 속에 들어가서는 부사의한 부처님 음성을 강설하지 않다가도 보살들 가운데 있어서 비로소 보살의 일을 말하고 부처님의 부사의한 음성을 강설한다.
또 마치 수람(隨藍)의 바람이 땅을 유지하여 남섬부주[閻浮利]의 수목과 강당과 사택을 견고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일체 제자와 연각들은 부사의한 불법의 명자(名子)와 부처님의 신통과 청정 변화함을 감당해 견디지 못하니,
신심이 있어 의심이 없는 것은 스스로의 공덕으로 이루어짐이 아니라 다 부처님의 위신(威神)이 그 신심을 얻게 하는 것이다.
또 마치 햇빛의 광명이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않는 데를 다 비추되 기뻐함도 없고 미워함도 없으면서 일월(日月)의 궁전이 캄캄할 때가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보살은 지혜의 훌륭한 방편 광명을 내어서 제자 연각과 여러 범부들과 함께 일을 주선하되,
제자들 속에 있어도 기뻐하지 않고 범부들 속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으면서 보살의 방편 지혜의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또 마치 도리천(忉利天)의 주도수(晝度樹)가 처음 잎이 돋아날 적에 여러 하늘들이 이것을 보고 기뻐하여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기를,
‘주도수가 오래지 않아 마땅히 꽃과 열매가 있어 성취(成就)하게 되리라’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가령 보살이 모든 것을 다 보시하여 아끼지 않는다면,
여러 불세존께서 칭찬하시기를,
‘이 보살은 오래지 않아 마땅히 불법의 꽃과 열매를 얻어서 모든 중생에게 보시하리라.’고 하신다.
또 마치 그 나무가 부드럽고 연한데다가 뿌리의 포기가 깊고도 굳어서 비록 굽고 숙어지는 모양을 나타내지만 끝내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보살이 만약 일체 사람들에게 공경히 예(禮)로써섬긴다면 끝내 제자 연각의 지위에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 마치 물이 땅에 떨어져 흐르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교만함이 없고 일체지(一切知)를 따라 머리 조아려 스스로 귀의한다.
또 마치 큰 바다가 땅 속에서 서서 가장 처음 이루어져 일체 강과 시내의 물을 다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도 교만함이 없기 때문에 일체 불법의 꼭대기에 서게 된다.
또 마치 조명(照明)이라는 이름의 큰 명월주(明月珠)는 사람이 얻고자 하는 것이 다 그 속으로부터 나오므로 뭇 다른 명월주가 그것과 같을 것이 없어 모든 명월주 보배를 다 비추어도 그 광명이 줄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도 모든 제자와 연각들을 가르쳐서 다 계율에 들어가 다른 행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
또 마치 만타륵꽃[蔓陀勒華]이 부드럽고 연하고 묘하고 좋아서 그 향내가 두루 40리(里)에 풍기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성현의 지혜로써 큰 자비심을 내어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두루 안온하게 한다.
또 어떤 병자가 마치 만타륵꽃의 향내를 맡으면 그 병이 곧 낫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대자대비의 향으로 두루 다니는 곳마다 일체 번뇌의 병을 제거한다.
또 마치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을 적에 우담발(優曇鉢)나무는 열매만 있고 꽃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 없으면 불법의 꽃이 나오지 않는다.
또 마치 아뇩달(阿耨達)용왕이 가령 비를 내릴 때엔 온 남섬부주에 두루하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이 만약 법 비[法雨]를 내린다면 일체 인민과 꿈틀거리는 벌레에까지 두루한다.
또 마치 아뇩달 큰 못[淵]이 사방 강물을 흘러내어서 다 바다에 들어가 항상 가득 차게 하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이 네 가지 은혜의 행을 흘러내어 큰 지혜의 바다를 가득차게 한다.
또 마치 큰 바다가 있을 때에 남섬부주 사람들은 저절로 된 조그마한 마니주(摩尼珠)를 얻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보살의 뜻을 내지 않을 때엔 다 제자와 연각의 법보만을 이어받아서 쓴다.
또 마치 그 빛과 형상이 있는 것은 다 4대(大)가 있기 마련인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설법하는 것은 다 일체를 도탈시켜 법문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또 마치 수목이 산이나 못 가운데만 있으면 뭇 사람들에게 이익이 없는 것처럼
제자도 이와 같이 생사의 환란을 두려워해서는 일체 사람들에게 이익이 없다.
또 마치 큰 성(城) 중앙에 약 나무[藥樹]가 자라나면 일체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 많은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이 대자대비에 들어가서 일체의 지혜를 내면 그 보배의 뜻으로써 일체 중생을 요익하게 하는 것이 많다.
또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雨水]이 오래 괴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제자도 이와 같이 가르치는 설법은 오래도록 존재할 수 없다.
또 마치 봄철에 크게 흐르는 물은 줄어서 다될 때가 없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가르치는 설법이 오래도록 존재할 수 있다.
또 마치 겨울철 산중에 있는 나무를 만약 베었더라도 때가 되면 빨리 돋아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부처님께서 하신 일은 여래께서 비록 반열반에 드시더라도 삼보의 가르침은 오히려 끊어지지 않는다.”
이에 현자 수보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보살들 명칭과 공덕의 행이 높고 높아서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까 여래께서 말씀하신 성실하고도 자세한 공덕은 이 또한 미치기 어려운 일이니,
가령 보살이 이러한 공덕의 이치를 듣고서 기뻐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는다면 이야말로 매우 좋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보살은 본래 청정함으로 이루어졌는지라, 이 때문에 일체 공덕의 이치 설함을 듣고서도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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