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의족경 상권
2. 우전왕경(優塡王經)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한 비구가 구삼국(句參國)의 바위 사이의 토굴에 살았는데 머리카락과 수염과 손톱은 자랄 대로 자라고 몸에는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다.
한 번은 우전왕이 아적산(我迹山)으로 유람을 가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시자(侍者)가 즉시 왕의 명령을 받들어 길과 다리를 고쳐 놓고서는 돌아와 왕에게 말하였다.
“길을 고쳐 놓았으니 왕께서 외출하셔도 괜찮을 것입니다.”
이에 왕은 미인과 기생들만 데리고 말을 타고서 아적산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말에서 내려 걸어서 산을 올라갔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미인이 험한 산 속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바위 사이의 토굴 속에서 머리카락과 수염과 손톱은 자랄 대로 자라고 다 떨어진 옷을 걸쳐 마치 귀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비구를 보았다.
미인은 놀라 소리치며 왕을 불렀다.
“이곳에 귀신이 있습니다. 이곳에 귀신이 있습니다.”
왕이 멀리서 물었다.
“어디냐?”
“가까운 바위 사이의 토굴 속에 있습니다.”
왕은 즉시 칼을 뽑아 그곳으로 달려가 미인이 말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구를 만났다.
왕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석가(釋迦)의 사문(沙門)입니다.”
“그대는 아라한[應眞]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선(四禪)의 경지에 이르렀는가?”
“아닙니다.”
“삼선(三禪)이나 이선(二禪)의 경지에 이르렀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일선(一禪)의 경지에는 이르렀는가?”
“그렇습니다. 실로 일선(一禪)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왕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마음이 풀리지 않아 사자인 내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음탕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 이 사문은 범속한 사람이어서 참된 수행이 없는데, 어떻게 나의 미인을 보았단 말인가?”
그리고는 시자에게 분부했다.
“속히 현악기의 줄을 끊어와 이 자를 묶어라.”
사자는 즉시 줄을 끊으러 갔다.
이때 산신(山神)이
‘이 비구는 아무 잘못도 없이 이제 원통하게 죽게 되었으니, 내가 보살펴서 이 액운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곧 큰 멧돼지로 변하여 천천히 왕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에 시자가 왕에게 말했다.
“멧돼지가 곁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즉시 비구를 버려두고 칼을 뽑아 멧돼지를 뒤쫓아 갔다.
비구는 왕이 멀리 떠나버린 것을 보고 곧 달아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이르러, 비구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의 전말을 말하였다. 비구들은 즉시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이때 이 근본 인연에 따라 뜻을 변화시켜서 비구들로 하여금 경전의 말을 자세히 알게 하시는 한편 후세 사람들을 위해 뜻을 밝힘으로써 우리 경법(經法)이 길이 머물도록 하셨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의족경』을 설하셨다.
묶인 것에서 풀려나길 간절히 바라나
삿된 곳에 가려진 채 살기 때문에
이로써 정도를 멀리 가려버리니
욕념은 정녕 지혜롭기 어려워라.
모태(母胎)에 묶였던 연유로
여색에의 굳은 집착은 풀렸더라도
오고 가게 마련인 법을 보지 않나니
지혜야말로 근본을 끊는다네.
탐욕으로 인하여 어리석게 눈 머나니
삿된 이욕만 증가함을 알지 못하네.
욕심 때문에 슬픔과 고통을 받으니
이제는 마땅히 그 어디에 의지할까.
인생이 이러한 줄 마땅히 깨달을지니
세상의 삿됨은 의지하기 어려워라.
정도를 버리고 생각조차 않나니
수명은 짧은 법 죽음이 눈 앞에 있음을 생각하라.
이리저리 구르는 이 세상의 괴로움이여.
삶과 죽음과 욕망은 흐르는 시냇물처럼 그침이 없네.
죽을 때에 가서야 비로소 원망하나니
욕심에 따라 모태에 태어남을 욕하네.
그러나 스스로 고통스런 몸을 받나니
물이 마른 시내에는 물고기가 없는 법
이에 육신에 집착을 끊어야 함을 아나니
삼세에 다시 무엇을 더 연연할 것인가.
이리하여 애써 양 극단(極端)에 대한
집착을 끊어야 함을 깨닫게 되나니
스스로 원망할 일을 하지도 않고
보고 들음에 자신을 더럽히지 않네.
생각을 깨닫고 살펴서 고해를 건너면
나의 존귀함이 헤아릴 수 없으리.
힘써 수행하여 근본을 뽑아야 할지니
그리하면 의심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리.
부처님께서 『의족경』을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환희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