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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권
1. 삼보부(三寶部)
1.1. 경불편(敬佛篇)
[여기에 여섯 가지 연(緣)이 있음〕
1.1.1. 보경술의연(普敬述意緣)
대체로 큰 성인은 평등한 모습이 있고, 제자들은 칭양(稱揚)의 덕이 있다. 그런 까닭에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선 똑같이 혼탁한 진흙탕 속에서 벗어나셨고, 삼신(三身:法身ㆍ報身ㆍ化身)의 정각(正覺)께서는 다 함께 연화대(蓮華臺) 위에 앉으셨으니, 어떤 모습을 따라 생각하든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이른바 처음 출가에서부터 마지막으로 정각을 성취한 때까지 그 중간에 도수(道:樹菩提樹) 아래에서 마군을 항복밭고 녹야원(鹿野苑)에서 설법하신 일에 이르기까지 그 상호가 원만하였고 광명 또한 밝게 드러났다.
몸의 빛깔이 청정하여 물질에 비교하면 제련한 금과 같고 얼굴 모습은 단정하고 엄숙하여 마치 보름달과 같다. 치아는 눈처럼 흰 구슬과 같고 머리카락은 마치 빛나는 소라와 같으며, 눈은 푸른 연꽃 같고 눈썹은 파란 버들과 같다.
팔음(八音)의 음향은 진실하고 온갖 모습은 온화하며, 오안(五眼)이 정명(精明)하고 육통(六通)은 멀리 나부낀다. 현하(懸河:瀑布)에서 쏟아져내라는 듯한 언변으로 상대에 맞게 끊임없이 자세히 밝혀주신다.
삼점(三點)을 원만히 하여 몸을 이룩하고 오분(五分)을 갖추어 본체를 삼으며, 방편과 실제[權實]를 겸하여 만물을 제도하고 중생이 바라는 바에 따라 사람들을 교화하신다.
혹은 광대(廣大)한 자비의 바람을 부채질하고 질펀한 법의 비를 뿌리기도 하며, 몸 밭[身田]을 잘 적셔서 무상(無上)의 싹을 내게 하고 마음의 나무가 이미 번성하여 잎이 말라 떨어지지 않게 한다. 오는 모습 없이 오고 나타나는 모습 없이 나타나시며,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에 인연을 따라 호응하여 나타나신다.
시방의 십억 중생들이 모두 내리 모시기를 원하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다 함께 친히 받듦을 얻어 깊이 복전을 삼고 널리 공양을 일으키며, 삿되고 거꾸로 된 뿌리를 뽑고 탐하고 성내는 근본을 뽑아버리며, 부처님을 생각하는 씨앗을 닦고 부처님을 뵙는 열매를 감응한다.
『보성론(寶性論:究竟一乘寶性論, 卷三)』에서 말한 것과 같다.
“삼보(三寶)에는 여섯 가지 뜻이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공경해야 한다.
첫째는 희유의(希有義)이다. 세간의 보물은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삼보도 이와 같아서 복이 희박한 중생으로서는 백천만 년이 지나가도 만날 수가 없으니, 그런 까닭에 보배라고 이름한다.
둘째는 이구의(離垢義) 이다. 세간의 참다운 보배에는 그 바탕에 티끌과 더러움이 없는 것처럼 삼보도 이와 같아서 모든 번뇌를 따라 여의었으니, 그런 까닭에 보배라고 이름한다.
셋째는 세력의(勢力義)이다. 세간의 진보(珍寶)에는 가난을 없애주고 독을 없애주는 큰 세력이 있듯이 삽보도 이와 같아서 생각하기도 어렵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不思議]여섯 가지 신통력을 갖추었으니, 그런 까닭에 보배라고 말한다.
넷째는 장엄의(莊嚴義)이다. 세간의 진보는 몸을 잘 장엄하여 몸을 예쁘고 좋게 만드는 것처럼 삼보도 이와 같아서 능히 수행하는 사람을 장엄하여 그 몸을 깨 끗하게 하니, 그런 까닭에 보배라고 말한다.
다섯째는 최승의(最勝義)이다. 세간에 귀중한 보배는 모든 물질에 비하여 제일 뛰어나듯이 삼보도 이와 같아서 일체 세간 가운데 가장 빼어나고 우세하니, 그런 까닭에 보배라고 이름한다.
여섯째는 불개의(不改義)이다. 세간에 순금[眞金]은 불로 녹이거나 망치로 두드려 어떤 물건을 만들더라도 그 색깔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삼보도 이와 같아서 세간의 여덟 가지 법으로는 변하게 하지 못하나니, 그런 까닭에 보배라고 이름한다.
또 여섯 가지 의미가 갖추어져 있는 까닭에 반드시 공경해야 한다.
첫째는 부처님께서는 능히 가르쳐 보이시고, 법은 바로 좋은 약이며, 승가는 전하여 통해 주는 것이어서 이 세 가지가 모두 우리들에게 이익을 주니, 그런 은혜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공경해야 하고,
둘째는 말법시대의 악한 세계에는 법을 전하기가 쉽지 않으나 삼보의 위엄을 청하면 가호(加護)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공경해야 하며,
셋째는 온갖 중생들이 믿음을 내어 법을 받아 받들기 때문에 공경해야 하고,
넷째는 승니(僧尼)들은 공경하고 숭상하는 의식을 보여주기 때문에 공경해야 하며,
다섯째는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운 마음으로 공양하게 하여 그 법이 오래도록 머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공경해야 하고,
여섯째는 뛰어난 모습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공경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성실론(性實論)』에서 말하였다.
“삼보는 가장 길상(吉祥)하다. 그러므로 내가 경의 첫머리에 둔 것이다.”
1.1.2. 염시방불연(念十方佛緣)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 과거 아주 오랜 겁(劫) 한량없이 많은 세상 이전 어느 때에 한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생하셨으니, 그 명호는 보위덕상왕(寶威德上王)이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아홉 명의 제자와 함께 부처님 사리탑에 가서 불상(佛像)에 예배하였다. 그 중 하나의 보배 불상이 장염하게 드러나서 볼 만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예배를 마치고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그 뒤에 목숨을 마치고 그들은 모두 동방에 있는 보위덕상왕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났는데, 큰 연꽃 위에 가부(跏趺)하고 앉은 채 홀연히 화생(化生)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로 그들은 항상 부처님을 만나게 되어 여러 부처님의 처소에서 범행(梵行)을 깨끗하게 수행하여 염불삼매(念佛三昧)의 바다를 얻었는데 그 삼매를 얻고 나서 부처님께 기별(記莂)을 받았다.
그리하여 시방 세계 여러 방면에서 각각 부처가 되었으니, 동방의 선덕(善德)부처님은 바로 그의 스승이다. 또 그의 제자 아홉 명은 저마다 각각 아홉 방위의 부처님이 되었다.
이른바 동남방의 무우덕(無優德)부처님ㆍ남방의 전단덕(旃檀德)부처님ㆍ서남방의 보시(寶施)부처님ㆍ서방의 무량명(無量明)부처님ㆍ서북방의 화덕(花德)부처님ㆍ북방의 상덕(相德)부처님ㆍ동북방의 삼승행(三乘行)부처님ㆍ상방(上方)의 광중덕(廣衆德)부처님ㆍ하방의 명덕(明德)부처님이시다. 이와 같은 열 분의 부처님은 다 과거에 탑(塔)에 예배하고 불상을 관찰하고는 똑같은 게송으로 찬탄하였기 때문에 지금 시방에서 각각 성불한 것이다.”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오랜 과거 구원겁(久遠劫) 전에 한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생하셨으니, 그 명호는 공왕(空王)이셨다.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네 비구가 함께 동학(同學)이 되어 부처님의 바른 법을 익혔으나 번뇌가 마음을 덮어 부처님 법의 보배 창고를 굳게 지키지 못하고 착하지 못한 업[不善業]을 많이 짓게 되자
허공에서 소리를 내어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공왕여래께서 비록 열반(涅槃)하시어 그대들이 범한 죄를 구원해 줄 사람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지금 그대들은 저 탑이 있는 곳에 들어가서 불상을 보아라.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실 때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허공에서 나는 이 소리를 듣고 탑이 있는 곳에 들어가 불상의 눈썹 사이에 있는 백호상(白亳相)을 보았다.
그리고는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세간에 계실 때에 광명의 색선(色身)이 지금의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부처님 대인(大人)의 상호로 저희들의 죄를 제거해 주소서.’
그들은 이와 같이 말하고 나서 마치 태산이 무너지듯 온몸[五體]을 땅에 던져 모든 죄를 참회했다.
그러하여 불탑(佛塔)이 있는 곳에 들어가 불상의 백호상을 보고 참회한 인연으로 그들은 그 뒤에 팔십억 아승기겁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았고,
태어나는 생(生)마다 항상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 그 여러 부처님들의 처소에서 매우 깊은 염불삼매(念佛三昧)를 받아 지녔으며,
이 삼매를 얻고 난 뒤에 시방부처님께서 그들의 앞에 나타나 기별을 주셨으므로 지금 다 부처가 된 것이다.
동방의 묘희(妙喜)라고 하는 국토에 계시는 부처님의 명호는 아촉(阿閦)이니 그가 곧 이 첫째 비구요,
남방의 환희(歡喜)라고 하는 국토에 계시는 부처님의 명호는 보상(寶相)이니 그가 곧 이 둘째 비구이며,
서방의 극락(極樂)이라고 하는 국토에 계시는 부처님의 명호는 무량수(無量壽)이니 그가 곧 이 셋째 비구요,
북방의 연화장엄(蓮華莊嚴)이라고 하는 국토에 계시는 부처님의 명호는 미묘성(微妙聲)이니 그가 곧 이 넷째 비구이다.
이러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수행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원을 세우고 불상을 관해야 한다.”
옛날 『가섭경(迦葉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과거 아주 오랜 아승기겁 이전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는데, 그 부처님의 명호는 광명(光明)이셨다.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대정진(大精進)이라고 하는 한 보살이 있었다.
나이 겨우 열여섯 살이었는데 바라문(婆羅門)의 종족으로서 단정하기 비할 데가 없었다.
어떤 비구가 흰 모포 위에 부처님의 형상(形像)을 그려 가지고 가서 대정진보살에게 주었는데, 대정진보살이 그 불상을 보고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여래(如來)는 형상조차도 절묘하고 좋기가 이러하거늘, 하물며 부처님의 참모습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바라건대 나도 미래 세계엔 또한 이와 같이 절묘한 몸을 성취했으면 좋겠다.’
말을 마치고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집에 있으면 이런 몸을 증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그는 곧바로 부모에게 아뢰어 출가(出家)하기를 간절하게 요구하자 부모가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연로(年老)한 데다가 아들이라고는 오직 너 하나뿐인데, 만약 너마저 출가해버리면 우리들은 장차 죽게 될 것이다.’
그는 부모님께 아뢰었다.
‘만약 제가 말씀드린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오늘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리에 앉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맹세하고 나서 하루종일 먹지 않았다. 마침내 그렇게 엿새째가 되자 부모와 스승, 그리고 팔만 사천 여러 채녀(婇女) 등이 동시에 슬피 울면서 대정진에게 예를 올리고 출가할 것을 허락했다.
그는 출가하게 되자 불상을 모시고 산 속으로 들어가 풀을 베어 자리를 만들고 불상 앞에 앉아서 가부좌(跏趺坐)하고 일심(一心)으로 이 그림으로 그런 불상을 자세히 관하되 여래와 다름없이 하였다.
여래의 형상이란 깨달음이 있는 것도 아니요 아는 것도 아니다. 모든 법도 다 이와 같아서 모습도 없고 모습을 여원 것도 아니며, 다만 그 체성(體性)이 공(空)하여 고요할 뿐이다.
그는 이렇게 관(觀)하고 나서 하루 밤낮을 지나는 사이에 다섯 가지 신통을 성취하고 한량없이 많은 걸림 없는 말솜씨를 증득하였으며, 보광삼매(普光三昧) 를 얻어 큰 광명을 갖추었다.
깨끗한 천안(天眼)으로 동방의 아승기 부처님을 보고 깨끗한 천이(天耳)로써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고 모두 받아들였으며, 만 칠 일 동안 지혜로써 음식을 삼았다. 모든 하늘들도 꽃을 뿌려 그에게 공양하였다.
그는 산에서 나와 마을[村落]로 내려가서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니, 이 만이나 되는 중생들이 보리의 마음[菩提心]을 내었고 한량없이 많은 아승기의 사람들도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공덕에 머물렀으며, 부모ㆍ친척과 그 권속들도 모두 물러나지 않는 무상보리(無上菩提)에 머물렀다.
부처님께서 가섭(迦葉)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의 대정진보살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니라. 이렇게 불상을 관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부처가 된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 이와 같은 관법을 배우면 미래(未來)에 틀림없이 무상(無上)의 도를 얻을 것이니라.’
또 『관불삼매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과거 아주 오래 전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으니, 그 명호는 석가모니(釋迦牟尼)였다. 그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 한 왕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금당(金幢)이라고 하였다. 그는 교만한 데다 삿된 견해까지 가지고 있었으므로 부처님의 법을 믿지 않았다.
또한 비구가 있었으니, 그 이름을 정자재(定自在)라고 하였다.
그 비구가 왕자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 불상(佛像)이 있는데 많은 보배로 장엄하게 장삭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만하니 잠시 저 탑묘[塔:寺塔]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형상을 보십시오’
왕자는 곧 비구를 따라 함께 탑에 들어가서 불상의 모습이 좋은 것을 보고 비구에게 말하였다.
‘저 부처님께서는 형상조차도 단정하고 엄숙하기가 오히려 이러한데, 하물며 부처님의 진신(眞身)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당신이 지금 불상을 보고서도 예배할 수 없다면 마땅히 합장하고 나무불(南無佛)이라고 부르십시오.’
그때 왕자는 곧 합장하고 ‘나무불’하고 불렀다. 궁중으로 돌아와서도 그 탑 안에 었던 불상에 마음이 매어 있었기 때문에 그 뒤로 밤마다 꿈 속에서 불상을 보았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자 기뻐하면서 삿된 소견을 버리고 삼보에 귀의하였다.
한 번 탑묘에 들어가 부처님을 칭송한 선근(善根)으로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구백만억 나유타만큼 많은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매우 심오한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얻었으며, 그 삼매를 얻었기 때문에 모든 부처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 그에게 기별(ri니떼)을 주셨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백만 아승기겁을 지내는 동안 악한 갈래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았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러서는 매우 심오한 수능엄정(首楞嚴定)을 증득하였느니라.
옛날의 그 왕자는 바로 지금의 재수(財首)보살이니라. 이러한 인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이와 같이 염불을 배워야 하느니라.”
또 『법화경(法華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만약 누구든 산란(散亂)한 마음 생기거든
저 탑묘(塔廟) 안에 들어가서
한 번 ‘나무불(南無佛)’하고 칭송하기만 하면
모두 다 부처님의 도를 이루리.
또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국왕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는데, 어떤 아라한(阿羅漢)이 그 국왕은 오래지 않아 목숨이 마치게 될 것을 알았다. 그 남은 목숨이 칠 일에 불과하고 또한 목숨을 마친 뒤에는 틀림없이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져서 한 겁 동안 고통받을 것임을 알았다.
이 아라한은 곧 국왕을 찾아가 교화하되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불’ 하고 부르기를 칠 일 동안 끊지 말고 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리고 떠날 날이 임박하여 다시
‘부디 이 말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러자 왕이 문득 합장하고 일섬으로 칭설(稱說)하되 밤낮으로 그만두지 않았는데, 그렇게 칠 일째 되는 날 아침이 되자 그는 목숨을 마치고 그 혼신(魂神)이 아비지옥으로 향하여 나아갔다.
그러나 전에 염불한 힘으로 지옥 문 앞에 이르러 그것이 지옥인 줄 알고는 곧 큰 소리로 ‘나무불’이라고 칭송했다.
지옥 안의 죄인들도 부처를 칭송하는 소리를 듣고는 모두 한꺼번에 나무불 하고 칭송했 다.
그러자 지옥의 맹렬한 불길이 즉시 모두 꺼지고 모든 죄인들까지 모두 해탈(解脫)하여 인간 세계에 출생(出生)하였다.”
그 뒤에 그 아라한은 거듭 설법하여 그들을 모두 수다원(須陀洹)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를 칭송함으로써 얻는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비유할 데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