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계보(傳燈系譜)
그 동안 십육 개월에 걸쳐서 법화경 강좌를 무사히 잘 마치고
이제 그 어록(語綠)의 왕이라고 하는 임제록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승가대학 신문이라든지 또 다른 매체를 통해서
많이 알려지고 불교 신문에도 크게 났습니다.
갈수록 공부하는 스님들의 열기가 높아지고 숫자도 더 많이 불어나는 것 같습니다.
경전에는 늘 초선(初善), 중선(中善), 후선(後善)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마음 그대로 중간까지 가고 또 그 마음이 끝까지 가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그런 우리 공부 분위기가 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램 입니다.
경전을 우리가 참 많이 보유하고 있죠.
소위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종교에도 그와 같이 방대한 교설을 보유하고 있는 종교가 없습니다.
불교를 가지고 다른 종교와 비교한다는 자체가 사실은 잘못된 거예요.
알고 보면 그렇게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또 세상은 차별 위주이기 때문에
차별의 관점에서 우리가 또 서로 비교함으로 해서
남의 것도 알고 또 우리 것이 좋은 줄도 더욱 깊이 알게 되는 그런 마음에서
자주 비교를 합니다마는
그와 같이 많고 많은 성전을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사실 법화경은 경(經) 중의 왕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경(經) 안에서도 그런 말씀을 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대단한 경전입니다.
우리가 그 경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물론 남아 있습니다마는
아뭏든 법화경은 참 위대한 경전입니다.
거기에 못지않게 선불교의 역사도 대단히 깁니다.
그래서 ‘선불교’ 하면 특히 한국의,
한국 불교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을 정도로
세계에 한국불교를 자랑할 때는 역시 선불교를 이야기를 합니다.
대승불교도 아니고 소승불교도 아니고
선불교를 그래도 제일 자랑거리로 생각하거든요.
선불교는 아시는 대로 달마스님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경전의 왕인 법화경이 초기교설에서부터
한 오백 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 극도로 발전을 해서
법화경 불교에 이르러서 차츰차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죠.
그래서 비밀불교도 생기고 뭐 별별 불교도 생깁니다.
선불교도 물론 생기고
호국불교니 기복불교니 무슨 천도불교니 기도불교니 하는
중생의 요구에 따라서 또 그 지역의 민족적 특성에 따라서
별별 불교가 많이 생깁니다.
불교는 워낙 다양하고 풍부한 소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게 옹졸하고 편협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면
그렇게 여러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없을 텐데,
워낙 불교의 지혜라고 하는 것은 풍부하기 때문에
세월에 따라서 민족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필요한 대로 여러 가지 불교가 생기게 됐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국에 와서 선불교라고 하는
아주 독특한 불교가 발생하게 된 것이죠.
물론 선(禪)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가섭 존자로 아난존자로 그 대(代)를 계승했습니다만
소위 우리가 선불교라고 하는 그런 독특한 내용의 선불교는
사실 달마스님으로부터라고 해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천하의 논사로 유명한 마명이라든지 용수라든지 이런 분들도
우리 선불교 법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모두 아우르면 법맥은 계승된 것에 틀림없지마는
그러나 그 독특한 선불교의 어떤 맛이라고 할까 향기라고 할까 이런 것은
그 특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달마스님에서부터 치는 것이
선불교의 독특한 맛과 어떤 기백과 그 정신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선불교의 역사를 달마스님부터 치는 거예요.
그걸 우리가 이해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 선불교도 달마스님으로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잘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소위 임제선, 임제스님의 정신,
여기까지 이르러 오기가 삼백 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래 사실은 달마스님으로부터 혜가, 승찬, 도신, 홍인, 육조 혜능에 이르기 까지도
임제선에서 볼 때 그렇게 썩 완벽하고 하기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제 비로소 황벽과 임제에 이르러서
선불교의 고준한 정신이 극에 달하게 됐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 다음에 황벽과 임제 그 다음부터는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경전이 대승불교, 소위 법화경 불교에서 차츰 차츰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이상한 불교가 생겼듯이 선불교도 역시 그래요.
선불교도 임제를 정점으로 해서 차츰차츰 선불교가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정점에 이르렀을 때는 간화선이니 묵조니 하는 그런 방편이 없습니다.
선불교 정신의 정점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다 보니까
그런 방편이 생기게 돼서
오늘날 간화선 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런 시점에 이르렀죠.
그런데 간화선도 초기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라든지
사람들의 그 특성과 근기라든지 이런 것으로 볼 때
상당히 효과를 많이 발휘 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요의 고봉 스님 대에까지도
상당히 그 간화선의 방법에 근거한 어떤 목표 달성이
그런대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 후로는 사실 열심히 애는 쓰지만,
천 명이 애를 쓰면 한 두 사람이 거기에 도달할까 말까 할 정도로
그 한계가 너무나도 지극히 높고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말로만 전하고 입으로만 전하고 우리의 그 의지만 강했지
사실은 거기에 이른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의 근기로는
간화선에서 설정해 놓은 그 방법대로는 지극히 힘든 일이고,
요즘은 한 두 철 연한을 채우면 승랍 또는 뭐 주지 또는 방장, 조실 이런 거 하는데
하나의 자격 요건을 갖추게 되는 것에 관심이 더 가 있어요.
몇 철 났다, 몇 철 났다. 몇 안거를 우리가 쌓아야만
비로소 선득도 되고 뭐 선원장도 되고 또는 조실도 되고 할 수 있는
그런 요건을 갖추는 하나의 법규까지도 제정되게 될 정도로 이렇게 됐습니다.
이건 사실은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거죠.
실제적인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것인데
아무튼 선방에서 철 나는 것이 철 수(數)가 하나의 요건으로 될 정도로
선불교가 변색이 된 것은 우리가 서로 이해해야 되고 다 인정을 해야 됩니다.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화두를 드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까
심지어 염불하듯이 화두를 외운다든지 염송하듯이 외운다든지 하는
염화두(念話頭), 송화두(誦話頭) 이런 말까지 등장할 정도로
그렇게 화두일념(話頭一念) 의단독로(疑團獨露) 되기가 정말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는데
그러한 것을 우리가 인정을 하고,
오늘 우리가 임제록을 이렇게 다시 한 번
공부를 한다고 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을 한다면
사람은 뭐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이니까 비록 근기의 차이는 있다손 치더라도
사람의 본성은 똑같기 때문에
선불교의 절정에 달했던 임제스님의 선을 우리가 공부함으로 해서
선불교의 본질을 다시 회복하자고 하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선불교가 달마로부터 임제에 이르기까지
삼백 년 동안 절정에 달했다가 그 이후로 쇠퇴의 길을 걸었는데,
임제선을 공부함으로 해서
선불교가 절정에 달했을 때의 어떤 정신세계,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파악하는
그런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그 임제선이 전래돼서
간화선이니 선불교니 선종이니 선방이니,
무슨 선원에서 몇 철 나야 되느니 하는 이러한 선의 그 힘이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이러한 실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선종사(禪宗史)를 통해서
선불교 선대 선사들의 후손으로 돼 있어요.
과거의 그러한 선사들의 어떤 법을 계승하고 승맥을 계승해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임제스님이 얼마만치 우리 한국 선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는가,
이것을 살펴볼 생각입니다.
傳燈系譜(전등계보) 라고 하는 것부터 봅시다.
전등계보에 보면 세존이 있고 가섭, 아난으로 해서 28조 달마에 이르죠.
그래 동토(東土)에서 초조(初祖)를 달마(達摩)라고 하고
2조 혜가(慧可), 僧璨승찬(僧璨), 도신(道信), 홍인(弘忍),
혜능(慧能), 남악(南嶽), 마조(馬祖), 백장(百丈), 황벽(黃蘗),
그 다음에 臨濟(임제), 이렇게 됩니다.
임제스님은 달마로부터 치면 11대가 되지만
가섭부터 계산하면 38조가 됩니다.
그리고 임제스님 밑으로 다시 1대로 치면,
임제 제자의 1대가 흥화(興化)가 되고,
2대 남원(南院), 3대 풍혈(風穴), 4대가 수산(首山)이 되고
5대, 6대, 7대, 8대 죽 내려와 가지고 10대에 오면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
그 다음 11대에 가서는 호구(虎丘)가 되는데
한쪽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대혜종고(大慧宗杲) 스님이 또 원오 선사의 제자지요.
한 스님의 제자가 하나만 있으라는 뜻은 아니니까
호구스님도 있고 대혜 종고 스님도 있습니다.
소위 대혜 종고 스님은 서장의 주인공이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우리나라 태고보우(太古普愚) 스님으로 이어진 법맥은
호구 스님에게로 전해진 법맥입니다.
그래서 12대, 13대, 14대, 15대, 16대, 17대 해서 급암(及菴)이고
18대가 석옥청공(石屋淸珙)인데 거기까지 중국 스님이예요.
그 다음에 19대에 내려오면 우리나라 고려 때 태고 보우 스님이 됩니다.
그 다음에 환암(幻菴), 구곡(龜谷), 벽계정심(碧溪淨心)으로,
벽송(碧松), 부용(芙蓉), 청허(淸虛),
한편으로는 또 부휴(浮休) 쪽으로 흐르고 청허 쪽으로도 흐르고,
이런 식으로 해서 한국 불교가 오늘날 형성이 됐고 또 우리가 이렇게 존재합니다.
이렇게 존재하는 우리들의 뿌리죠.
지금 이 시대에 법이 얼마가 있든지 간에
소위 법맥을 우리는 그 나름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견성을 했느냐 못했느냐 이걸 따지기 이전에
이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신라의 원효, 의상이고
조선시대의 서산, 사명인 거예요.
이것은 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의 불교 역사를 나중에 이제 이야기한다면
우리의 선적부에 올라있는 우리의 이름들이
그대로 고스란히 이 시대에 한국 불교를 자리 매김 했던 사람들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것은 좋든 싫든, 내가 뜻이 있든 없든 간에 관계없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
또 그런 역사에 의해서 우리가 오늘 이 순간 존재하게 되니까요.
대강 이렇게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데
흔히 우리가 선불교를 이야기 하면
오가칠종(五家七宗)이나 오종가풍(五宗家風)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살펴보면 대감혜능(大鑒慧能 혜능스님) 밑에 큰 두개의 산맥이 있는데
남악회향(南嶽懷讓)과 저 밑에 내려가서 청원행사(靑原行思),
물론 많은 제자가 있습니다마는
그 중에서도 가장 후손이 많았고 두드러진 제자로서는
남악 회양과 청원 행사를 들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남악 회양 밑에는 소위 마조도일(馬祖道一)이 있고
백장회해(百丈懷海)가 있고 그 다음에 황벽희운(黃檗希運)이 있고
임제의현(臨濟義玄)이 있어서 임제종(臨濟宗)을 이루고,
또 백장 스님 밑에 위산영우(潙山靈祐)가 있고 앙산해적(仰山慧寂)이 있어서
위산 스님과 앙산 스님을 합해서 위앙종(潙仰宗), 이렇게 됩니다.
임제스님은 혼자 이름으로 임제종이라 했고
위앙종은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해서 위앙종이라 했습니다.
오종(五宗) 하면 임제종(臨濟宗), 위앙종(潙仰宗),
저 밑에 내려가서 운문스님, 운문문언(雲門文偃)해서 운문종(雲門宗),
그리고 법안문익(法眼文益)해서 법안종(法眼宗),
그 다음에 또 밑으로 내려오면 조산스님 동산스님 해가지고 조동종(曹洞宗),
이렇게 됩니다.
거기에도 임제스님 밑으로 아주 독특한 가풍을 가지고 있는 두 분이 있었는데
바로 양기방회(楊岐方會) 스님이고 황룡혜남(黃龍慧南) 스님입니다.
이분들은 그야말로 임제종 위앙종 그 아래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독특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해서 양기파, 황룡파를 끼워 넣어가지고
오가칠종(五家七宗) 또는 오종칠가(五宗七家)로 말하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이 두 분을 뺄 수가 없는 처지에 있어요.
오종만 말할 게 아니라 이 두 사람도 꼭 끼워서 거론할 수밖에 없는
그 정도로 두드러졌던 분입니다.
그러나 오종에 비교해서는 약간 뒤떨어지는,
뒤떨어진다는 것은 참 죄송한 표현이지만
어쨌든 그 아래로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오조법연(五祖法演)에서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로,
원오 극근 밑에 대혜 종고에 와서 간화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됐고
그 다음에 제일 밑에 보면 단하자순(丹霞子涥), 굉지정각(宏智正覺)으로 해서
비로소 묵조선이라고 하는 것이 등장을 하게 됐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간화선이니 묵조선이니 하는 것은
임제스님으로 보면 상당히 후대에 이른,
후대에 발생한 선의 특색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이게 선종사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은 아닙니다.
아주 대강 간추려서 살펴본 건데
그래도 우리가 이정도 그림은 머리 속에 그리고,
임제 스님이 불교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고
또 우리는 저~ 말대 후손이지마는 어디쯤에 있다는 것을 가늠하는 것도
삼천 년의 찬란한 불교 역사에 이 못난 중이
나도 저 끝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는 동참의식이 중요한 거예요.
그래야 사랑이 생깁니다.
불교에 대한 사랑, 애착이 생겨요.
그거 중요합니다.
애불심(愛佛心), 애종심(愛宗心)이 있어야 돼요.
내가 한 가정의 또는 한 성문의, 어느 권속의 누구네 상장,
이것이 확실하게 어떤 소속감을 가지고 있을 때
그 문중에 대해서 애착을 갖게 되고 서로 보살피고 하는 그런 마음이 있거든요.
우리가 작게는 그런 게 있는데 크게 보면 불교 전반에 대해서
아, 내가 그래도 한 모퉁이에 이렇게
세계사에서 불교 역사같이 찬란한 역사가 없는데
그 역사 속에 나도 한 인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생각을 늘 내야 돼요.
그래서 불교 전체를 우리가 좀 애착을 가지고 아끼고 사랑하고
그러면서 책임과 의무를 갖는 그런 의식이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런 공동체 의식 소속감에 대한 의식이 너무 부족해요.
나만 생각하는 거야.
선(禪) 이라고 하는 고준한 불교를 우리가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씀씀이는 저 순전히 소승 중에도 상 소승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불교에 소속돼 있는 어떤 소속감, 동참의식
이런 것이 필요하다 하는 말씀도 아울러 드립니다.
그 다음 임제선을 계승한 한국의 선불교라고 돼 있습니다.
한국의 불교 역사는 우리 피 속에도 전부 다 녹아 있는데
여기에 소개된 열 일곱류,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있었습니다마는
종이가 모자라서 이것만 기록을 했는데
한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내용인가 하면,
그 어려웠던 조선 시대에 정말 온갖 고난을 다 겪어가면서
불교를 계승해 온 그 뼈대가 바로 임제선의 정신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스님은 전부 임제 스님의 그 정신을 계승해서
이렇게 나에게 물려 왔고 또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되노라 라고 하는
그런 기록들, 비문들, 문집들, 또 불교 역사서 속에서 들어 있는 글들입니다.
이것이 역사책의 한 부분이지만
우리가 이런 기회에 살펴봄으로 해서
그 역사성을 인식하게 되고
역사 속의 일원으로서의 어떤 그 자부심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1. 不失臨濟者(불실임제자)는 有本有原(유본유원)이라.
吾東方太古和尙(오동방태고화상)이 入中國(입중국)하야
嗣石屋而傳之幻菴(사석옥이전지환암)하고 幻菴傳之小隱(龜谷)(환암전지소은(구곡))하고
小隱傳之正心(碧溪)(소은전지정심(벽계))하고 云云(운운)...--鞭羊集 권2
不失臨濟者는, 임제를 잃어버리지 아니한 것은,
여기서 임제라고 하면 임제스님 얼굴을 말한 것도 아니rh
임제스님의 몸뚱이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죠.
임제스님의 선사상, 임제스님의 정신, 임제스님의 불교적 안목, 이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임제스님의 불교적 안목을 잃어버리지 아니한 사람은,
有本有原이라., 근본이 있고 근원이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임제 스님의 불교 사상이 조금이라도 떼어가지 아니한 사람은
근본도 없는 사람이다 이 말이죠.
吾東方太古和尙이 入中國하야 嗣石屋而, 우리나라 동방 태고 화상께서
중국에 들어가서 석옥스님의 법을 계승했고 그리고는
傳之幻菴이여, 환암스님에게 그 법을 전하고
환암 스님은 소은 구곡, 구곡입니다.
구곡 스님에게 그 법을 전하고
幻菴傳之小隱(龜谷)하고 小隱傳之正心(碧溪)하고...云云
또 소은 스님은 정심, 백계정심 선사에게 전했다,
이게 편양언기집(鞭羊彦機集) 2권에 기록된 내용 그대로입니다.
이와 같이 임제 스님의 정신을 계승해야
비로소 불교인으로서 중[僧]으로서 근본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렇게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2. 太古愚公(태고우공)이 入中國得佛旨(입중국득불지)하야
以還于東(이환우동)하야 到師八葉(도사팔엽)이니
實臨濟之正宗(실임제지정종)이니라. --碧巖 碑 -- 법주사
太古愚公이 入中國, 태고 보우 스님이 중국에 들어가서
得佛旨하야, 부처님의 뜻을 얻어서
以還于東하야, 동쪽 해동으로 이제 돌아와서
到師八葉이니, 우리 스님에게 여덟 번째 이파리 팔대 손에까지 이르렀으니
實로 臨濟之正宗이니라., 기가 막히죠.
임제스님의 정종이라네.
아주 정통적인 종파다 이 말이여.
아주 바른 임제의 바른 종파다.
그게 벽암 스님 비석, 법주사에 가시게 되면 꼭 확인하세요.
비석에 이렇게 돼 있어요.
3. 芙蓉靈觀(부용영관)이 接臨濟之遺緖(접임제지유서)하니
浮休與淸虛休靜(부휴여청허휴정)은 俱事靈觀(구사영관)하니라.
--또 다른 碧巖 碑
芙蓉靈觀이 接臨濟之遺緖하니,
부용영관스님은 임제의 유서(遺緖)를 접해서,
임제의 유서가 뭡니까, 유서는 알짜배기 아니요?
浮休與淸虛休靜은 부휴 스님과 청허휴정은,
俱事靈觀하니라. 모두 영관스님을 섬겼다.
섬길 사(事) 자예요. 함께 영관스님을 섬겼다.
이게 벽암스님 비석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유수한 스님들의 비문에는 임제라고 하는 낱말
또는 임제의 종풍(宗風)을 계승했다고 하는 낱말이 들어가지 아니하면
그 비석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보는 거야.
뼈대도 없고 근본도 없다.
임제의 정통을 잇지 않은 사람이 무슨 불교를 안다고 하느냐.
무슨 불교 공부를 했다고 하느냐 하는 정도로
우리는 그동안 몰랐지만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대단한 일 아닙니까 이게.
4. 太古(태고)는 嗣石屋而傳之幻菴(사석옥이전지환암)하고
幻菴傳之龜谷(환암전지구곡)하고 龜谷傳之正心(구곡전지정심)하고
正心傳之智嚴(정심전지지엄)하고 智嚴傳之靈觀(지엄전지영관)하고
靈觀傳之西山(영관전지서산)하니
此實臨濟之正脈而惟西山(차실임제지정맥이유서산)이 獨得其宗(독득기종)이라.--休靜 碑
太古는 嗣石屋而傳之幻菴하고 幻菴傳之龜谷하고 龜谷傳之正心하고
正心傳之智嚴하고 智嚴傳之靈觀하고 靈觀傳之西山하니,
태고는 석옥에게, 석옥 청공에게 법을 이어서 환암에게 전하고
환암은 구곡에게 전하고 구곡은 정심에게 전하고
정심은 지엄에게 전하고 지엄은 영관에게 전하고 영관은 서산에게 전했으니
此實, 이것은 실로
臨濟之正脈而惟西山이 獨得其宗이라., 오직 서산이 홀로 그 종지를 얻었다.
참 이렇게까지 돼 있습니다.
이게 휴정스님의 비문에 나와 있는 글이에요.
5. 臨濟十八傳而爲石屋(임제십팔전이위석옥)하니
太古得石屋之傳(태고득석옥지전)이라.
自是(자시)로 又六傳而至吾師(우육전이지오사)하니
其源流之遠(기원류지원)이 如此(여차)니라. --대흥사 淸虛 碑
臨濟十八傳而爲石屋하니 太古得石屋之傳이라.,
임제스님으로부터 열여덟 번 전해 가지고서 석옥에게 이르러서
그 다음에 석옥스님은 전했으니
태고 스님, 우리나라 태고 보우 스님은 석옥의 전함을 얻었다.
석옥스님에게 전해 받았으니까
自是로 又六傳而至吾師하니, 또 이로부터 또 육전(六傳),
여섯 번 전해가지고서 오사(吾師)에 이르렀으니, 우리 스님에게 이르렀으니,
其源流之遠이 如此니라., 그 원류의 멀고 먼 것이 이와 같다.
대흥사에 있는 청허 휴정 선사의 비에 이렇게 있습니다.
6. 臨濟後二十四世(임제후이십사세)에 有嫡孫曰浮休(유적손왈부휴)니라.
--浮休碑 - 白谷集 권2
그 다음에 이십사세에 유적손(有嫡孫), 적손이 있었는데, 왈(曰) 부휴(浮休)라.
보십시오.
임제 이후 이십 사세에 적손이 있었다.
임제 적손, 그것은 곧 부처님의 적손, 이런 뜻도 돼요.
그가 바로 부휴선사다.
부휴스님의 비문에도 있고 백곡집에도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7. 龜谷衣冠膚(구곡의관부)는 去爲臨濟孫(거위임제손)이로다.
-- 哭龜谷詩 -- 牧隱
龜谷衣冠膚, 핏줄, 혈통이란 뜻입니다.
옷과 관과 핏줄 이런 말이에요.
구곡의 옷과 관과 핏줄은
去爲臨濟孫이로다.,
저기 가 가지고 임제손이 되었다.
거기 흘러가서 임제손이 되었다.
그건 이제 구곡 스님을 곡하는 시에,
목은(牧隱)이라고 하는 유명한 고려 말 三隱(삼은) 있죠. 목은 하고..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라는 분은 아주 대단한, 불교에 조예가 깊었고
나옹스님의 비(碑)도 쓰고 한 그런 분이죠.
8. 臨濟之宗統(임제지정통)이 至淸虛(지청허)하야
又五世而得海源(涵月)(우오세이득해원(함월))하니
是惟喚惺衣鉢嫡傳也(시유환성의발적전야)니라. ---涵月碑---通史上 557
臨濟之宗統이 至淸虛하야, 임제의 종통이 청허에 이르러서
又五世而得海源(涵月)하니, 또 오세에 해원(海源), 함월스님입니다. 함월을 얻었으니
是惟喚惺衣鉢嫡傳也니라., 이는 오직 환성의발의 적전야라 그랬어요.
환성(換醒), 지안(志安) 스님입니다.
환성지안의 적전(嫡傳)이다.
함월 스님의 비문에 임제스님을 들먹여서 역사를 써 놓은 것입니다.
임제 스님 이야기를 하지 아니하면요 비석으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중[僧]으로서도 가치가 없구요.
이제 여러분들도 한국 불교에 있어서 최소한 한국의 선불교에 있어서는
임제스님의 정신을 공부하게 됐으니까
비로소 우리는 임제의 후손이고 중으로서 말하자면 그 가치를 하게 됐고,
어디 가서 ‘아, 나도 임제 후손이야, 임제록도 공부했어.
그래서 임제사상을 계승했다.’ 라고 큰 소리 칠 수 있는 꺼리를
이제 비로소 장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분위기에서 보면 사실 그렇게 표현할 수 있어요.
9. 受衣鉢於雪岩(수의발어설암)하니
蓋臨濟嫡孫也(개임제적손야)니라.--- 霜月碑---通史上 552
의발(衣鉢)을 설암(雪岩)에게서 받았으니
대개 임제(臨濟)의 적손야(嫡孫也)라.
또 임제의 적손이라고 그렇게 나와 있네요.
그 상월 스님 비에도 있고 불교 통사에도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10. 蓋師之學(개사지학)은 沂雪岩以上(기설암이상)하야
直紹西山而丕揚臨濟宗焉(직소서산이비양임제종언)하니라. ---虛靜碑
(英祖十年辛酉·서기1741立)---通史上 531
대개 스님의 학덕은 沂雪岩以上, 설암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물 沂(기) 자 인데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설암 이상으로 거슬러 위로 올라가서,
直紹西山而丕揚臨濟宗焉하니라., 바로 서산을 이어서 임제종을 크게 드날렸다.
비양(丕揚), 클 비(丕) 자입니다.
크게 임제종을 드날렸다.
이게 허정 스님의 비에 나와 있고
역사도 서기 몇 년도에 세워졌다는 내용까지 나와 있죠.
11. 投西山(투서산)하야 染禪旨(염선지)하니
師承有自(사승유자)하며 淵不無(연불무)라.
近繼碧松(근계벽송)이요 遠承臨濟(원승임제)로다.
---松雲大師小祥疏---浮休集---全書八 20
投西山하야 染禪旨하니 師承有自하며, 서산에 던져서 선지(禪旨)에 물을 들였으니
스승이 계승한 것은 유자(有自)라, 부터 함이 있다.
시작이 있다 이 말입니다. 시작이 있으며,
淵不無라., 그 흘러감이 없지 아니하다.
시작이 있으니까 흘러감이 있죠. 근원이 있다 이 말입니다.
유자(有自) 라는 것은 시작이 있다,
근원이 있으며, 그로부터 이제 연원이 없지 않다.
近繼碧松이요., 근래에는 벽송이 그것을 계승했고
遠承臨濟로다., 멀리는 임제스님을 이었다, 이렇게 됐어요.
놀라울 일 아닙니까.
우리가 역사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데
과거 우리 선배 스님들의 스님, 스님의 스님, 스님의 스님들이
이렇게 오매불망 임제 사상을 계승하고 이어 받는 것을 정말 가문의 큰 영광으로,
한 생애의 큰 영광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자꾸 중언부언하는가 하면
이게 우리 의식 속에 있어야 임제록의 한 글자 한 구절이 그 무게를 더합니다.
가치 있게 보여요.
더 귀담아 듣게 되고 여러분들이 돌아가서도
좀 더 마음을 다지고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소개를 하는 거예요.
12. 淸虛(청허)는 是能仁六十三代(시능인육십삼대)에
臨濟二十五世直孫也(임제이십오세직손야)라.
---四溟集(仁祖18年庚辰·서기1640書)---全書八 75中
淸虛는 是能仁六十三代에,
청허는 능인(能仁), 석가모니 부처님의 육십삼 대에,
臨濟二十五世直孫也라., 임제의 이십오세 직손이다,
여기 비로소 이제 부처님 이야기가 나왔네요.
‘능인(能仁)’은 능히 어짊을 베푼다는 뜻으로, 석가모니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전엔 부처님 이야기 없어요.
육조스님 이야기도 없고 달마스님 이야기도 없고 아무 이야기도 없어요.
무슨 마명, 용수 이야기도 없고 오로지 임제죠.
임제 몇 대 손이라는 게 중요하지 석가모니 몇 대 손도 중요치 않고
육조 스님 몇 대손도 그렇게 빛날 일이 아니다,
임제의 몇 대 손이라고 해야 그게 빛날 일이다, 이런 뜻입니다.
놀라운 일 아닙니까 이게.
그런데 비로소 이제 석가모니가 나왔어요.
능인의 육십 삼 대고 임제 스님의 이십 오세 손이다. 그랬어요.
사명집에 사명스님 문집에 있는 말입니다.
13. 臨濟之東漸也(임제지동점야)에
八傳而得玩虛師(팔전이득완허사)하니 師諱(사휘)는 圓俊(원준)이라…
今我玩虛師(금아원허사)는 實嗣臨濟宗(실사임제종)이로다.
---玩虛碑(仁祖十年·서기1632立)---金石總覽下856
臨濟之東漸也에, 임제스님의 불교 정신이 점점 동쪽으로 젖어 오매,
八傳, 여덟 번 전해가지고서,
得玩虛師하니, 완허사를 얻었으니
師諱는 圓俊이라. 今我玩虛師는, 지금 우리 완허사, 완허 스님께서는
實嗣臨濟宗이로다., 실로 임제종을 계승했더라.
임제종을 이어 받았더라.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다.
서기 1632년에 세운 완허스님의 비석에 있어요.
금석총람에도 나오고요.
14. 至淸虛(지청허)하야 受法於靈觀(수법어영관)하니
續中國臨濟之統也(속중국임제지통야)니라.
---敬軒(霽月堂)碑(仁祖十四年·서기1636立)---通史上 489
至淸虛하야 受法於靈觀하니, 열 네번째, 청허스님에 이르러서
법을 영관스님에게 받았으니
續中國臨濟之統也니라., 중국 임제의 계통을 이었다.
제월당 비석에 있는 말입니다.
15. 西山靑蓮(서산청련)은 爲象爲龍(위상위용)이라
師繼厥緖(사계궐서)하니 其派實臨濟之正宗(기파실임제지정종)이니라.
---翠雲碑(孝宗3年·서기1662立)---通史上 502
西山靑蓮은 爲象爲龍이라, 서산에 청련스님입니다.
서산, 용상대덕이라고 그러죠.
우리가 엊그저께 큰 절에서 소위 용상방(龍象榜)이라고 해서 벽에다 부쳐 놓습니다.
거기에 어중이떠중이 이름 다 올리고 부목, 공양주까지 이름 다 올리지만
일주문 안에 들어와 있는 이 부처님 슬하에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용상대덕이야.
어중이떠중이 전부 이름 그 용상방에 다 올리지 않습니까.
내 어릴 때 보니까 이름을 몰라가지고
뭐 그 사람이 김씨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 하면 ‘김 아무개’ 이렇게 써 놓는다고요.
그래도 용상방에 올라가요.
이런 그 뭐라고 할까 우리 승가의 전통 미풍양속인데 참 좋은 거예요.
비록 독(獨)살이고 작은 절이라도
용상방 하나는 결제날 자기 혼자 사는 토굴이라도 써 붙이세요.
얼마나 근사합니까.
용상방(龍象榜), 용와 같고 코끼리와 같은 그런 대덕들이 있다 이 말이여.
혼자 살면 공양주 누구, 또 부적 누구, 주지 누구,
한 사람 이름으로 다 써도 좋아. (대중 웃음)
그렇게 하는 거예요.
큰 절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은 토굴에 가서 살면
용상방에 제 이름 그렇게 여나 무개 다 써 붙혀 놔.
공양주도 저고 채공도 저고 부목도 저고 원두도 저고...
재미있잖아요.
그리고 또 혼자 정진해도 죽비 딱딱 쳐서 입선하고
죽비 딱딱 쳐서 방선하고 그렇게 삽니다.
큰 절에서 잔뼈가 굵어 놓으면 그거 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그걸 하면 하는 거 같거든, 사는 거 같다고요.
좋은 풍속이거든 그게.
작은 절에서도 우리 그런 전통 지켜가는 게 좋습니다.
여기 위상위용(爲象爲龍)이라, 코끼리도 되고 용도 된다 그랬습니다.
아주 큰 스님이다, 이 말이죠.
그런데 사(師)가 계궐서(繼厥緖),
그 끄트머리를 이었는데 그 파(派)는 실로 임제(臨濟)의 정종(正宗)이다,
결국 그 소리 하려고 했습니다.
16. 古有太古(고유태고)하니 爲龍爲象(위용위상)이라.
入中國得臨濟之宗(입중국득임제지종)하야 至于祥師(應祥)(지우상사(응상))하야
繼其傳(계기전)하니 祥師之門(상사지문)에 彦師(雙彦)出焉(언사(상언)출언)하니라.
---春坡碑(顯宗12年辛亥·서기1671立)---金石總覽下 944
古有太古하니, 옛날에 태고 보우 스님이 계셨으니
爲龍爲象이라, 용도 되고 코끼리도 되더라.
入中國得臨濟之宗하야, 중국에 들어가서 임제의 종풍을 얻어 가지고서
至于祥師(應祥)하야 繼其傳하니, 응상스님에게 이르러서 그 전(傳)을 이었으니,
祥師之門에 彦師(雙彦)出焉하니라., 응상스님의 문하에
쌍언스님이 나왔다, 이랬습니다.
이게 춘파스님 비석에 있는 건데
이 역시 훌륭한 태고 보우 스님께서 중국에 들어가서
임제의 종풍을 얻어 와 가지고 그 물을 우리에게까지 이렇게 튀어가게 했다.
그 종풍을 그 혈맥을 우리에게 전했다.
17. 先師(楓潭)之師(선사(풍담)지사)는 爲鞭羊(위편양)이요
鞭羊之師(편양지사)는 爲淸虛(위청허)니
淸虛(청허)는 卽接臨濟嫡統者也(즉접임제적통자야) 니라.
---楓潭碑(普賢寺 肅宗7年辛酉·서기1681立)---金石總覽 963
先師(楓潭)之師는 爲鞭羊이요, 선사, 풍담스님입니다.
선사지사는, 풍담스님의 스승은 편양스님입니다.
편양 언기스님이다 이 말이죠.
鞭羊之師는 爲淸虛니, 편양의 스승은 청허스님이 되는데
淸虛는 卽接臨濟嫡統者也니라.,
청허스님은 곧 임제의 적통을 계승한 사람이다, 접해온 사람이다, 그랬습니다.
이것도 풍담스님 비석에 있는데
여기 내용은 결국은 뭔고 하면 임제스님의 법맥을 계승했음으로 해서
비로소 한국 불교가 이렇게 존재하게 된 것이고 나도 존재하게 된 것이고
앞으로 내려가는 후손들도 모두 임제의 혈맥을 이어 받아서
이렇게 한국 불교가 유지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 해도 해도 너무하지요.
이런 내용들도 역사적인 것입니다마는
우리가 임제록을 공부하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좋은 자료로서 여러분에게 제공을 했고
이걸 여러분이 인연이 닿는 대로 널리 전하고...
아, 그렇게 중요한 거면 법화경보다 임제록을 먼저 할 걸 그랬다, 이런 생각이 들지요.
허허허.
이제 꾸준히 오셔서 공부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스님들 잘 아시겠지마는
스님들이 열반하시면 뭐라고 하죠.
누구 영가여, 강령이여 그러죠.
不忘本誓(불망본사)하고 速還裟婆(속환사바)하셔서
臨濟門中(임제문중)에서 永作人天之眼目(영작인천지안목)하여지이다
이렇게 축원합니다.
아무리 못난 중이 죽어도 그 중에게는 극락가라 소리 안합니다.
신도들은 극락 좋아하니까 신도들 너희는 극락가고
스님들은 알짜배기 임제문중에 다시 태어나가지고
永作人天之眼目(영작인천지안목), 세상의 안목이 되어라, 세상의 스승이 되어라,
이게 우리가 할 일이다 이거여.
극락가는 거 급한 일이 아니여.
다시 이 사바세계 돌아와서 임제스님의 안목을 다시 터득해서
모든 사람들의 스승 노릇을 하고 안목이 되어 달라.
그래서 모든 사람을 계도하고 이끌어 가고 세상을 좀 교화하는 그런 사람이 돼라.
그런데 임제 스님의 종지, 종통을 가지고 그렇게 해라.
이런 축원을 한다니까 우리가.
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스님들 그 돌아가셨을 때
천도재 축원할 때 가만히 들어 보세요.
‘불망본서 속환사바 임제문중 영작인천지안목’
이렇게 꼭 축원을 하지 않습니까.
이런 정도로 우리는 살아서도 임제요 죽어서도 임제여.
임제스님이 우리한테는 그 정도로 돼 있다니까.
살아서도 임제요 죽어서도 임제여.
그 자료에서 보았듯이 그저 비석마다 역사 서적마다
전부 그저 임제 종풍을 계승을 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비석을 세운다.
임제 스님 후손이 아니면 비석 세울 가치도 없다, 이렇게 되는 거요.
저는 처음 1971년도에 정통파 서옹스님한테 봉암사에서 임제록을 한 철 배웠습니다.
그 때 이런 인쇄 기술이 없어가지고 끌판 있잖아요, 등서판.
우리가 그걸 긁어가지고 그 검은 먹물 묻어가면서 그 골탄 같은 잉크거든요.
그걸 이렇게 밀어가지고 한 장 한 장 해서
두껍게 책을 매 가지고 임제록을 공부했습니다.
나는 그게 몇 년도인지 몰라서 늘 궁금했는데
서옹스님 역사를 보니까 거기에 다 나와 있더라구요.
서옹스님이 봉암사에서 임제록 강의를 했다는 그런 역사가 있어.
그래서 나도 1971년 인줄 알았네.
그전에부터 나는 임제록을 좋아해가지고
일본서 나온 안파문고라고 있어요.
조그마한 포켓용 문고가 있는데 서점이 가서 그 책만 있으면
열권이고 스무 권이고 다 사버려.
그래가지고 도반들 나눠주기도 하고 몇 권씩 걸망에 넣어 다니기도 하고
아주 야들야들하게 떨어질 정도로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임제록하고 상당히 인연이 깊습니다.
그만치 뭐 일부러 공을 들여서라기보다는 그렇게 좋아했었어요.
그래 수좌하고 다닐 때도
걸망에 서장, 선요, 임제록, 이 세 가지가 늘 있었습니다.
서장은 간화선을 하는데 이론적으로 잘 설명이 돼 있고
말뚝 신심을 내게 하는 데는 선요 이상 가는 게 없어.
그건 아주 그대로 읽고 앉아서 하면은 틀림없이 그거는 상기에 올라.
상기 오를 정도로 사람을 아주 몰아 부치는 데는 아주 선요 같은 게 없죠.
기백이 나게 하는 좋은 가르침이죠.
그런데 인간에 대한 본질, 인간의 본성에 대한 눈을 열어 주는 데는
임제록 같은 게 없습니다.
그러한 것을 우리가 이제 공부하게 됩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정말 내가 죽을 고비를 넘겨서 또 이러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정말 어떤 의미에서는 할일을 마저 하고 가라고 하는
그런 뜻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참 다행이다 싶고
또 근래 지장스님 인연으로 서울 경전 연구회에서도 임제록을 강의를 했고
근래는 중앙신도회 불교인재개발원에서 또 마침 임제록을 강의하게 됩니다.
사실 늦은 감이 있죠.
우리 한국 불교의 교재는
육조단경보다도 임제록이 더 우선적으로 교재로 채택이 돼야 됩니다.
그 다음에 육조단경도 교재로 채택이 돼야 되구요.
물론 뜻있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육조단경, 임제록을 공부합니다만
임제록은 거의 공부 안 했죠.
내가 근래에 좀 떠들고 있고
그전에는 서옹스님이 책도 번역하시고 조금 떠들고 있고,
떠든다는 게 미안하지만 어쨌든 주장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곤 근래에 내가 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입장이죠.
사실 그 임제록이 양도 크게 많지 않구요, 보십시오.
얼마 안 되잖아요.
임제스님은 한마디로 어떤 분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임제 이전에 임제 없고
임제 이후에 임제 없다’ 이렇게 정리해요.
임제 이전에 임제 없고 임제 이후에 임제 없다.
아 들어보니 그렇게 말할 만하잖아요.
그러면 그 말 속에는 석가 달마도 다 임제의 아류야.
임제 이전에 임제 없다는 소리야.
그건 석가 달마도 임제 앞에선 빛을 잃는 게 되는 거요.
이 선의 기백이라고 하는 것은
선사들의 그 기백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대단하거든요.
그래서 특히 임제스님의 법문은 청천벽력이야.
맑은 하늘에서 그냥 벽력이 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소나기가
한 1000미리 10000 미리로 쏟아 붓는 그런 법문이에요,
구름 한 점 없는 데서 청천벽력이 그냥 사정없이 치는 거요.
내가 그러지. 진도 7만 돼도 건물이 다 무너지는데
진도 한 1000도 쯤 되는 그런 박력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박력있는 법문을 하신 분이 임제스님이다 그래요.
옛날 서산 스님도 청천백일에 벼락이 치는 소식이다 그랬어요.
그래서 한 마디로 요약하면은 임제 이전에 임제 없고
임제 이후에도 임제 없다 이렇게 정리를 합니다.
그 한 마디만 들어도 오늘 공부한 값은 됩니다.
그래서 나는 이게 교재가 돼야 한다 하는 그런 뜻에서
글자 한 자 한 자도 놓치지 않고 가능하면 여러분이 여기서 공부해서
바로바로 오늘 저녁에라도 아니면 내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일러주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하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재를 필요하다 하는 사람은 한권 더 달라 해서 가져가서
복사를 해서 얼마든지 복사해서 많이 찍어서 교재로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임제스님의 보통 생애라든지 또 역사적 배경
또 뭐 학술적으로 논하는 사상 또 임제록의 성립 과정, 편찬, 서지학적인 어떤 역사성,
그런 건 학자들이 논하는 것이고 여기서는 전부 생략하겠습니다.
아주 진부하거든요.
나는 그런 거 읽을 때 마다 정말 고행하는 마음으로 읽습니다.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참고로 읽기는 읽습니다마는 그렇게 그거 며칠 설명하고
임제록의 성립 배경은 어떻고 역사적 배경은 어떻고
그 사상은 어떻게 어떻게 해서 형성됐고 이런 거 하다보면
김 다 빠져 버리고 임제록 별로 맛이 안 납니다.
그래서 이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편찬서를 썼는데 그건 스님들이 읽으시길 바라고.
그 다음에 9쪽 한번 넘겨주십시오.
이게 이제 임제록을 편찬하면서 쓴 서문입니다.
이 서문은 불교의 명문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문입니다.
불교의 명문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문인데
옛날에 선방에 가서 방부를 들일 때
이 서문을 외우는 거야. 선방에 가 가지고 임제록 서문만,
黃檗山頭(황벽산두)에 曾遭痛棒(증조통방)하고
大愚肋下(대우늑하)에 方解築拳(방해축권)이로다. 하고
큰 소리로 이 서문을 걸망을 내려놓고 외우면 물어볼 것도 없이 그 사람은 방부 오케이야.
누구 상좌고 어디서 왔고 이런 거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받아줬어.
이 임제록 서문이 그런 서문이에요.
그런 풍토도 참 좋은 건데.
입방 원서 써가지고 언제 중 됐고 비구계는 언제 받았고
누구 상좌고 본사는 어디고 말이야.
그거 뭐 하자는 거요.
참선하는데, 일구수잖아 소위.
임제록 서문 처억~ 외우면 무조건 환영.
그렇게 했다는 역사가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풍속이에요.
선방에 있는 사람 이 소리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나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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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햇살 좋은 봄날입니다..
늘 청안하소서..나무아미타불 ()
어제 그제는 참좋은 봄날이었읍니다. 서산 개심사의 왕 벛꽃은 아직이고요. 오늘아침 출근해서 보게됩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잘 모르지만 공부를 더 해야 겠네요. ㅎ ㅎ ㅎ
감사합니다.
고려산에 진달래꽃이 만개했습니다
봄향기 가득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함께하여 행복합니다 광혜의하루님
큰공부하소서..나무아미타불 ()
무비스님의 임제록 함께 함에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_()_
무렴님 아름다운세상입니다
함께하여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좋은계절 임제록을 만날수 있어 행복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처님 향기가득합니다.반야월님
큰공부이루소서..나무아미타불 ()
감사드립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다검님
부처님 광영함께하소서...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임제록을 만날수 있게해주시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나무지장보살 마하살_()_
黃檗山頭 曾遭痛棒 大愚肋下 方解築拳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_()_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감사, 또 감사합니다() 저도 걸망 걸고 서문 한번 외워보겠습니다()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I return to Buddha, Law, and Seung Sambo.
I pray with utmost heart that the holy and holy Buddha's robe and mercy light will shine on it. Thank you.
Holy Father.
Avalokitesvara Bodhisattv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