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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론 상권
2. 전하에게 『파사론』을 올리는 서장(1)
삼가 법림이 아룁니다.
아득한 삼원(三元:天ㆍ地ㆍ人)과 오운(五運:금ㆍ목ㆍ수ㆍ화ㆍ토)의 시초에서 천황(天皇)과 인제(人帝)가 생겨났는데, 갑골[龜圖]과 상형[鳥篆]의 문자나, 금판(金版)과 단사(丹笥)의 전적이나, 육형(六衡)과 구광(九光)의 도수(度數)나, 백가(百家) 만 권의 책이 모두 인륜과 신의(信義)의 풍습으로 이끌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적을 논하자면, 주공(周公)과 공자의 가르침이 그 요체를 다했다 하나 생사의 근원을 헤아리지 못하였고, 이치를 폈다고 하나 유무(有無)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어찌 오분법신(五分法身)과 삼명종지(三明種智)에 견주겠습니까?
상락(常樂)이 담연(湛然)한 터에, 무엇이 변하였고 무엇이 바뀌었겠습니까?
아득한 진여(眞如)는 생(生)도 아니고 멸(滅)도 아닙니다. 그러나 능도(能道)는 만유(萬有)를 도우고 백령(百靈)에 자비를 입히는지라, 해탈의 피안(彼岸)에 이르는 나루를 가리키고, 구경무위(究竟無爲)의 창고를 열어 젖혀 군생(群生)을 견해(見海)의 바깥으로 끌어내고, 모든 자식들을 불타는 집에서 구합니다.
그 교화가 총하(葱河:濍領과 河水)에 막힌 지 이미 천여 년이 지났는데, 가르침이 한(漢)나라 땅에 전해진 지 6백여 년에 감탑(龕塔)이 서로 마주하며 신인(神人)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도안(道安) 스님이 진(秦)나라 황제의 가마를 탔었고 승회(僧會) 스님은 오(吳)나라 임금의 수레에 올랐기 때문에, 고좌(高座)의 법사가 팔정도(八正道)를 널리 펴고 부도(浮圖)의 화상(和尙)이 오승(五乘)을 가려 설하며 구주(九州)를 교화하여 복덕을 3세(世)에 가득 채울 수 있었으니, 만물을 이롭게 함이 이를 두고 말함일 것입니다.
수(隋)나라의 운이 다하여 북융(北戎)의 군마(軍馬)가 교외에 출현하자, 재앙이 일어나고 사방이 흉흉해져서 해독이 백성에게 흘렀기에, 마침내 지혜의 등불이 사그라지고 정법(正法)의 단비도 그쳤습니다.
우리 대당국(大唐國)에 이르러서야, 위로는 하늘의 마음에 응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따랐으며, 하늘을 도와 삼상(三象)을 기리고 땅을 꿰매어 오악(五嶽)을 편안케 하자, 생민(生民)이 다시 태어나는 은총을 입었고 석문(釋門)도 중흥의 혜택을 받았는데, 바야흐로 오제(五帝)에서 육제(六帝)로 되었고 삼황(三皇)에서 더하여 사황(四皇)을 받들어 순박한 기풍으로 돌이키고 무위(無爲)의 덕화(德化)를 펴 왔습니다.
부혁이 상소를 올려 비방한 일이 비록 관에서 시행되지 않았다 하나, 혁이 공공연하게 이를 원근에 유포하였기에 사람들의 술자리마다 우스갯소리로 회자(膾炙)되는지라, 참으로 청풍(淸風)에 누를 끼치고 양속(良俗)을 더럽히면서, 중생의 사견이나 기르고 나라의 복전(福田)마저 훼손시키니, 이는 도리로도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전하가 삼보에 귀의해서 10선(善)을 오래 쌓아 창생(蒼生)의 바람[望]을 이루어 주고, 대보(大寶:王位)의 기도(期圖)를 되새기며 도(道)로 나아가 지극하게 다스린다면, 덕이 부후(副后:太子의 異名)에 빛날 것입니다.
우레소리의 메아리가 사방에 울리니 고루하게 칩거(蟄居)하던 것이 모두 열리고, 빛을 발하되 더욱 밝혀서 어두운 갈림길이 아울러 밝아졌습니다. 그 빛나고 진실함은 무어라 부르기조차 어렵습니다.
참으로 한(漢) 나라 영광의 치세(治世)가 거듭되고 주(周) 나라의 상서가 해마다 늘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복덕(福德)의 문에 뜻을 두시고 마음을 승경(勝境)으로 돌리시되, 진량(津梁:열반으로 가는 다리)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잘 보호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아야 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사견의 깃대를 꺾고 정법의 횃불을 밝혀서 상법(像法)의 교화에 귀의하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분통하고 답답한 뜻을 감당치 못해 삼가 『파사론』 두 권을 올립니다.
위엄만 더렵혔는지라, 엎드려 두려운 호흡만 헐떡일 뿐입니다. 삼가 아룁니다.
무덕(武德) 5년 정월 27일 제법사(齊法寺) 사문 석법림 근계(謹啓) 대사령(大史令) 조산대부(朝散大夫) 신(臣) 부혁이 상서(上書)를 올려 사찰과 불탑을 줄이고 승니(僧尼)를 폐지하는 열한 가지 조목을 거론하였는데,
신 부혁이 이같이 말했습니다.
“신이 듣자 하니, 복희(伏犧)ㆍ신농(神農)ㆍ헌원(軒轅)ㆍ전욱(顓頊)의 치적이 이노(李老)의 풍화(風化)에 마주하고,
[반론: 『시경(詩經)』에서는 위에서 풍속을 고치면 밑에서는 그 풍속에 수그린다고 말했다. 이를 비판하자면, 노자는 주나라의 일개 도서관 관리로 지금의 ‘비서관’에 해당한다. 본래 천자가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떤 풍화(風化)가 있어 복희와 신농 같은 상대(上代) 제왕(帝王)의 다스림과 마주한다는 것인가?]
우(虞)ㆍ하(夏)ㆍ탕(湯)ㆍ희(姬)의 정치는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에 부합되어 있으니,
[반론: 주공과 공자는 조정의 신하였다. 위로는 우ㆍ하의 가르침을 찬술하고 아래로 덕이 엷은 백성을 교화하는 것은 인왕(人王)이 아니고서야 스스로 교주(敎主)라 지칭할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우ㆍ하의 네 임금의 교화가 도리어 주공과 공자에 부합한다 하는가?]
비록 성인에게는 앞서고 뒤처짐이 있으나 도덕에는 차별이 없기에, 임금은 연혁(沿革)이 있어도 치술(治術)은 같다고 하겠습니다.
듣자 하니, 여든 살의 노부(老夫)는 땅을 치며 노래 부르고, 열다섯 살의 소년은 배를 두드리며 즐거워하는데, 경작을 하면 밭두둑을 서로 사양하였고 길에 떨어진 것도 줍지 않았으며, 효자가 집안을 이어가고 충신이 나라에 가득해서, 나라의 임금이 환난을 입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원수를 갚는다고 합니다.
[반론: 나라에 충신이 있다면 어찌 극난이 있을 리 있는가? 언제나 육경(六卿)의 사도(司徒)는 반역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야 하리라.]
부모가 병환이라도 나면 종신토록 곁에서 시중들 터인데, 어찌 증삼(曾參)과 민자(閔子)의 벗이 아니겠습니까?
상(庠)과 서(序)가 숲을 이루고 묵적(墨翟)과 경공(耿恭)이 짝을 이뤄 서로 보좌하니.
[반론: 39대에 증삼 한 사람뿐이고, 한나라 고조 이전에는 유독 민자 한 사람인데 이를 빌미해서 ‘숲을 이뤘다’는 것은 근거 없는 말이고, ‘보좌하였다’고 상주한 것도 헛된 것이니 잘못이 너무 심했다.]
도를 지켜 덕을 머금어 욕심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었는데,
[반론: 실제로 주우(州吁)와 숙단(叔段)은 도를 지키기 못했고, 하 나라의 걸 임금과 은나라의 주임금은 욕심내어 구하는 것만 일삼았다.]
총영(寵榮)이나 치욕(恥辱)에 놀라기도 하고 조정(朝廷)의 반위(班位)에도 참례하였습니다
[반론: 반숭(潘崇)과 예(羿)는 모두 살해되었는데, 이를 ‘놀랐다’고 이르는 것은 수긍할 수 없다. 계씨(季氏)와 양화(陽貨)도 조정의 반열에 들었었다.]
형산(荊山)의 정상(鼎上)에서 용을 타고 승천하자, 후씨(緱氏)가 단(壇) 아래 있다가 학을 타고 따라갔고, 요지(瑤池)의 왕모(王母)가 사신을 보내 내조(來朝)하여 예를 다하였으며, 벽해(碧海) 무이(無夷:河神의 이름)의 신(神)이 두루 다니면서 오제(五帝)를 배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이노와 공자의 가르침을 함께 받들은데다,
[반론: 황제가 용을 타고 승천한 것은 대체로 삼황(三皇)의 시대이다. 요지의 왕모는 주나라 목왕(穆王)의 시대인데, 이를 계산하면 이노(李老)가 나오기 전이고 공자는 있지도 않았는데 노자의 가르침에 거슬리면서 공자의 책을 익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오랑캐[胡]에는 부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론: 그대가 이미 부처님이 없다고 말했는데, 대체 어디에 도가 있다 하겠는가.]
한나라 명제(明帝)가 밤중에 잠자다 금인(金人)이 들어오는 꿈을 꾸자, 부의(傅毅)가 상소를 올려 오랑캐[胡]의 신(神)이라 하였습니다.
[반론: 만약 주나라 때에 이미 불법이 전래되지 않았다면. 부의가 어떻게 부처님인 것을 알았겠는가? 불상이 전래된 지 오래인지라 부씨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선조가 이미 부처님이라 말하였는데 그대는 없다고 하니, 이는 오역중죄(五逆重罪)의 재앙을 스스로 영겁토록 심은 것이다.]
후한(後漢)에 이르기까지 중원(中原)에는 이를 믿는 이가 없었는데,
[반론: 거짓말이 너무 심하구나.]
위(魏)나라와 진(晉)나라의 오랑캐 가운데 믿는 자가 약간 있었으나,
[반론: 예(禮)ㆍ악(樂)ㆍ의관(衣冠)은 진조(晉朝)에서 처음 정비된 것인데, 그대가 오랑캐라 욕하는 것은 도대체 중하(中夏)의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착융(窄融)은 불가(佛家)의 재(齋)를 핑계삼아 반역을 일으켜 마침내 강동(江東)을 점거했으며, 여광(呂光)은 거짓으로 오랑캐를 정벌한다면서 임금에게 반역하여 서쪽 땅에서 대치하였습니다.
[반론: 당시 사람들이 착융을 시기하여 결탁하였다고 말한 것뿐이다. 여광은 정벌에서 돌아와 보니 부견(符堅)의 진(秦)나라가 이미 망했는지라 하우(河右)에 머물면서 양주(凉州)의 패권을 잡은 것뿐인데. 이 또한 승려의 반란을 연유해서 서쪽 땅을 점거한 것이 아니다.]
이로부터 요망한 오랑캐가 점점 성행하여 중화(中華)를 잡스럽게 하였으니,
[잠언(箴言): 자비가 충만해서 말겁(末劫)에도 출현하는 것이니, 오탁악세(五濁惡世)라도 득도(得度)의 인연 있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진신(搢紳)의 문벌에서도 민둥머리의 삿된 계율이나 받고, 선비의 학문 가운데에서도 요망한 오랑캐의 방자한 말이나 즐겨 논합니다.
[잠언:‘진신’이란 인욕(忍辱)의 도를 따르는 이들이고, ‘선비’란 금구(金口)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이들이다.]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유는 한 번 듣더라도 근본을 잃게 되고, 그 비린내는 푸줏간과 같은지라 한 번 지나치더라도 향기를 잃습니다.
[반론: 그대야말로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면서 비린내를 풍기는지라, 이를 듣는 이는 그대가 이미 근본을 잃은 줄 알 터인데 한 번 그대 곁을 지나치면, 어찌 향기를 잃지 않겠는가? 누워서 하늘에다 침 뱉으면 욕보는 것은 자신이라 했으니 이 같은 말은 믿어도 된다.]
아울러 가람(伽藍)을 설치하되 장대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닌데,
[잠언: 하늘에 태어나는 업을 짓고자 함이고, 해탈하는 인(因)을 심고자 함이다.]
공인(工人)을 부려 진흙 오랑캐 상을 홀로 앉혀 놓고,
[잠언: 신체를 움직여 수인(手印)을 표하는 성상(聖像)을 다투어 이룩하는 것은 성인을 존중하고자 함이다.]
화하(華夏)에 큰 종을 울려 많은 스님들을 불러 모아 거짓되게 대중이라 합니다.
[잠언: 백 번이나 달궈낸 신종(神鐘)을 울리는 것은 삼천의 성중(聖衆)을 소집하고자 함이다.]
순박한 백성의 이목을 어지럽혀 사사로이 재물을 구하니,
[잠언: 신심의 이목에 감응하는 것이다. 그대는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재물만을 말하는구나.]
여인네가 짠 능라비단으로 음사(婬祀)의 당번(幢幡)이나 만들고 금과 은을 세공하여 사리탑을 새기거나,
[잠언: 여인네가 능라비단을 짜는 것은 연명(延命)의 당번을 짓고자 함이고, 금은을 세공하는 것은 쇄신(碎身)의 탑(塔)을 이룩하고자 함이다.]
찹쌀ㆍ기장ㆍ국수ㆍ멥쌀로 승니(僧尼)의 대회나 열면서 향ㆍ기름ㆍ양초로 오랑캐신의 법당을 밝히느라.
[잠언: 찹쌀ㆍ기장ㆍ국수ㆍ멥쌀로 복전(福田)의 회상(會上)에 다투어 차려 내는 것이며, 향 ㆍ기름 ㆍ양초는 자비의 집을 비추고자 함이다.]
민간의 재물을 착취하고 국가의 저축을 바닥내는데도 조정의 대신들조차 일찍이 한 번이라도 뉘우친 적이 없으니,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반론: 조정의 대신이 옛날을 상고하여 속된 것을 버리고 진리에 귀의하여 석문(釋門)을 존경하는 것과 사견을 내는 것은 완연히 다르다.]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천문(天門)의 개합(開闔)을 정하시고 보위(寶位)를 일신하시어 만물의 둔(屯)과 부(否)를 형통하신바, 검려(黔黎)를 다시 보살피시되 이노(李老)의 ‘무위의 풍화’를 펴신다면, 인민이 스스로 교화될 것이고, 공구(孔丘)의 애경(愛敬)하는 예(禮)를 받든다면 천하가 효성스러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의 경전에서 가르치는 것은 죄와 복을 망령되이 말하여,
[잠언: 원래 가르침을 펴는 연유는 사람들에게 죄악의 문을 드러내어 선을 행하는 길을 열어주려는 것이다.]
마침내 군민(軍民)이 부역을 멀리하고 삭발하여 숨어 버리니, 양친조차 섬기지 않고 열 가지 악을 행하는 지라,
[잠언: 양친의 은혜를 버리고 십선(十善)의 인풍(仁風)을 닦는 것은 작게 어기는 것을 참아내어 대순(大順)을 이루려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간사함이 날로 심해질 것입니다.
신이 서계(書契)를 열람해 보니, 포희(庖犧)에서 한나라 고조에 이르기까지 29대 4백여 임금이 있었습니다.
듣자 하니, 단지 상제(上帝)를 교사(郊祀)하는 것만으로
[반론: 남쪽 교외에 둥근 언덕을 쌓고 상제께 제사하려면 희생을 죽이는 허물을 면하지 못하는데, 어찌 부처님의 계율이 불살생(不殺生)을 우선하는 것과 같겠는가? 시비를 따져 보면 알 수 있으리라.]
관직이 다스려지고 민간이 보살펴졌다 하였으나, 사원과 동상을 사직에 건립하여 방토(邦土)를 안녕케 한다는 것은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바라건대 오랑캐 부처의 그릇된 가르침을 천축으로 물리치십시오.
[잠언: 인연에 감응하여 불사(佛事)를 일으키는지라, 제도를 마치면 다시 왕래하지 않는다. 중생에 응하여 세상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니, 모두 때에 따르는 것이다.]
모든 사문(沙門)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영을 내리시어 부과된 세금을 벗어난 무리들에게 즐겁게 세금을 바치게 하시고, 부역을 회피하는 무리들에게 기쁘게 부역을 하도록 하십시오. 머리 깎고 출가하는 것을 금하여 늙은이나 어린 것이나 국가에 예를 다하게 하면,
[반론: 예전에 엄자릉(嚴子陵)이 천자에 절하지 않았고 조원숙(趙元叔)이 사공(司空)에게 장읍(長揖)했어도 전적마다 이를 아름답게 여긴다. 하물며 사문은 출세간의 복전인데다 석씨(釋氏)는 세상 밖物外의 높은 선비인데 절을 시켜 그 처지를 어긋나게 하는 것은 도리에도 어긋난다.]
충신이 늘어나 종묘(宗廟)를 밤새 지킬 것이니, 대당(大唐)의 강토에 조화(造化)의 군주[主]가 되시면, 마침내 백성이 편안해져서 ‘희황(犧皇)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반론: 조화(造化)의 시대에는 인민에게 조세를 물리지 않았기에 소위 ‘희황의 국민’이 배를 두드리며 편안히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상(上)께서 성명(聖明)이 있으신데, 어떻게 최호(崔晧)나 강빈(姜斌)의 말 같은 것을 믿겠는가?]
신(臣) 혁이 황공하옵게도
[반론: 임금을 섬기는데도 충성을 다하되 말에 신의가 있어야 한다. 듣자 하니 사실이 아닌 것을 주청하는 죄는 나라를 무고한 것으로 끝내 칼날 끝에 엎드려야 한다는데, 어찌 황공하다는 말로 끝나겠는가?]
삼가 나라와 백성을 이익케 하는 일을 상주하오니, 열한 가지 조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반론: 그대가 주청한 대로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해치는 일은 참으로 불가한 것이다.]
무덕 4년 6월 20일 조산대부 행태사령(行太史令) 신 부혁 상주(上奏)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