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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론(辯正論) 제1권
1. 삼교치도편(三敎治道篇) ①[1]
[상상공자, 불교와 도교는 정치에 있어서 긴급한 것이 아니다]
어떤 상상공자(上庠公子)가 우학통인(右學通人)에게 물었다.
“듣자 하니 기상(氣象)의 변통(變通)은 음(陰)과 양(陽)을 벗어나지 않고, 진흙을 이기고 파도가 덮는 것은 천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합니다.
찾아보건대 5운(運)이 나타나기 전에는 본래 사람과 물건이 없었는데,
[역(易)의 위서(緯書)인 『구명결(鉤命決)』에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전에 태역(太易)이 있었고 태초(太初)가 있었으며 태시(太始)가 있었고 태소(太素)가 있었으며 태극(太極)이 있었으니, 5운(運)이다.
기상(氣象)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를 태역이라 하고, 원기(元氣)가 처음 싹트는 것을 태초라 하며, 기운과 형체의 시초를 태시라 하고, 형체가 변하되 그 바탕이 남아 있는 것을 태소라 하며, 바탕과 형체가 이미 갖춰진 것을 태극이라 한다.
이 다섯 가지 기운이 전변(轉變)하기에 5운이라고 이른다. 그 기운과 형체와 바탕이 갖추어져서 서로 떠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으로서 다 태역이나 차례로 이름이 다섯 가지가 있는 것이다. 그 때는 비고 비어서 사람과 물건이 있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던 것이 3재(才)가 세워지자 이에 존비의 질서가 정해졌고,
[『건착도(乾鑿度)』에
‘태극과 태소와 태일(太一)은 명칭은 다르나 그 이치는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역위(易緯)』의 통괘(通卦)에는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았으니, 말하자면 기운이 맑고 가벼운 것은 올라가서 하늘이 되었고, 탁하고 무거운 것은 내려와서 땅이 되었으며, 사람이 거기에 참예하였으니 3재(才)라 이른다’ 하였고,
『역』의 서괘(序卦)에
‘하늘과 땅과 만물이 있은 뒤에 임금과 신하를 세웠고 아버지와 아들을 정하였으며, 어른과 아이, 남편과 아내의 예의와 존비와 위와 아래의 구별을 정하였다’고 했다.]
자연의 교화(敎化)가 일어나자 무위(無爲)의 풍화(風化)가 널리 미쳤습니다.
[『하도괄지상(河圖括地象)』에
‘하늘과 땅이 처음 세워질 때 천황씨(天皇氏)가 있어 담박(澹泊)하고 자연스럽게 태극과 더불어 도를 같이하였으며 몸에 아홉 개의 날개를 차고 목덕(木德)으로 임금이 되었는데 베풀어 하는 것이 없고 자연으로 교화하였다’ 하였으며,
『개산도(開山圖)』에서는
‘지황씨(地皇氏)가 웅이 용문(熊耳龍門)의 산에서 일어나서 화덕(火德)으로 임금 노릇을 하였다’ 한다.
『명력서(命歷序)』에는
‘인황씨(人皇氏)는 여섯 날개를 멍에로 하고 구름 수레를 탔으며 곡구(谷口)에서 나와 9주(州)를 나누어 천하(天下)의 어른이 되었다. 형과 아우가 아홉 사람이므로 산과 하천과 땅의 형세를 의지하여 아홉 구역으로 나누어 각기 한 주씩을 맡아 다스렸다’ 한다.
『제계보(帝系譜)』에는
‘천황씨는 각기 1만 8천 년이고, 지황씨는 무릇 1백50세(世) 동안 천하를 다스렸으니, 합하여 5만 4천 년이다.
다음은 다섯 용씨(龍氏)로서 황백(皇伯)과 황중(皇仲)과 황숙(皇叔)과 황계(皇季)와 황소(皇少)이다. 형과 아우 다섯 사람이 모두 용을 타고 오르내리며 무릇 1백80세(世) 동안 천하를 다스렸으니, 합하여 9백27만 3천6백 년이다. 곧 영(靈)과 위(威)와 앙(仰) 등의 다섯 신(神)이 그것이다.
다음은 신농씨(神農氏)가 여섯 용(龍)을 타고 사해(四海)를 제도하여 추위와 더위를 고르게 하여 인민들에게 펴고 바람과 비를 통하며 무릇 10세(世)로서 각기 9백 년을 다스렸으며, 다음에는 4성(姓)이 있었고,
다음에는 세(世)를 마치지 못한 이가 있었으며, 다음에는 72성(姓)이 있었고,
다음에는 3성(姓)이 있어서 혹은 나는 염소를 타고 나는 사슴을 타며 비로소 백성들에게 혈거(穴居)와 새와 짐승의 고기를 먹고 가죽과 털 옷 입는 것을 가르쳤다.
다음에 유소씨(有巢氏)가 있었으니, 용과 기린을 타고 봉황과 범을 탔으며 나무를 얽어매어 집을 지어 백성들에게 그곳에 살면서 새와 짐승의 해를 피하게 가르쳤으며,
다음에 수인씨(燧人氏)는 백성들에게 찬수(鑽燧)를 가르쳐 불을 내서 날 것을 익혀 먹어서 노린내 나는 날고기를 먹는 폐단을 피하게 하였으며, 쇠로 칼을 만들어 백성들을 크게 기쁘게 하였다. 이는 모두 6기(紀)로써 93대에 1천2백89세(世)로서 합하여 1천10만 1천8백40년이다. 하늘에서 아래를 교화하였으니, 총 3황(皇)이라고 칭한다’ 한다.]
다음에는 뱀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성인이 있었고
[『육예론(六藝論)』에
‘태호씨(太昊氏)와 포희씨(庖犧氏)는 성이 풍(風)이다.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였으며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
수인씨가 죽고 복희씨가 나왔으니, 그의 세대에 59성씨가 있었다. 복희 황제가 처음으로 제도(制度)를 차례하고 법도를 지었으며, 다 목덕(木德)으로써 임금 노릇을 하였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예도를 지었으며 용의 도표(圖表)를 얻었기에 용으로써 관(官)을 기록하니 용사(龍師)라고 하였다. 임금의 지위에 있기를 합하여 1만 1천12년 동안이었다.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는 성씨가 강(姜)이다.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하였으며 불의 상서로움이 있었기에 화덕(火德)으로 왕 노릇을 하였다. 7세(世) 동안 있었으니, 합하여 5백 년이다’ 하였다,]
구슬 저울과 해[日]의 뿔의 임금은
[『육예론』에
‘황제 헌원씨(軒轅氏)는 성씨가 공손씨(公孫氏)이다. 25개월 만에 탄생하였고 구슬 저울과 해의 뿔의 상호가 있었다. 토덕(土德)으로 천하의 임금 노릇을 하였으며, 인월(寅月)로 세수(歲首)를 삼았고 아들 스물다섯 명을 낳았으며, 열두 가지 성이 있었다.
무릇 13세(世) 동안 있었으니, 합하여 1천72년을 다스렸다. 꿈에 황제의 기록을 얻었으며, 천로(天老)와 더불어 하수(河水)를 순시하여 받았고, 하도(河圖)의 글을 얻었다. 말 먹이는 어린아이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광성(廣成)의 장인(丈人)을 공동산(崆峒山)에서 임명하였다’고 하였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 ‘3황(皇)의 세대는 합하여 2만 2백97년이다’ 하였다.]
처음으로 8괘(卦)를 그렸고 8순(純)을 중하게 여겼고
[『하도괄지상』에
‘복희씨(宓羲氏)가 우러러 하늘의 상(象)을 관찰하고 땅의 법을 구부려 살펴 처음으로 8괘(卦)를 그려서 신명의 덕에 통하였으며, 신농씨가 8괘를 거듭하여 64괘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운관(雲官)을 베풀고 조기(鳥紀)를 베풀었으며,
[『육예론』에
‘헌원씨가 임금일 때에 경운(景雲)의 상서로움이 있었기에 구름을 써서 관(官)을 기록하였고, 소호씨(少昊氏)가 임금일 때에 봉황의 상서로움이 있었기에 새로써 관을 이름하였다’고 하였다.]
사냥하고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서 풍속을 제도하고 쟁기와 보습을 만들어서 백성들을 도왔습니다.
[『육예론』에
‘복희씨가 그물과 올가미를 만들어서 사냥하고 고기잡이를 하게 했으며 희생(犧牲)한 재물로 부엌을 채웠다. 그러기에 포희씨(庖犧氏)라고도 한다.
신농씨는 나무를 잘라 보습을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를 만들어서 비로소 천하에 가르쳐서 오곡(五穀)을 심게 하셨다. 그러기에 신농씨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저자를 세우고
[신농씨가 세운 것이다.]
기물을 만들어내고 소를 길들이고 말을 타며 궁실을 짓고 의상(衣裳)을 드리우며 절굿공이와 절구를 만들고 배와 노를 두며 새의 발자국을 모방하여 문자를 만들고 교화하고자 예와 음악을 제정하였습니다.
[모두 황제(黃帝) 때 일이다.
『육예론』에
‘황제를 보좌하는 관리에 일곱 명이 있었으니, 창힐(蒼頡)은 글자를 만들었고, 대요(大撓)는 갑자(甲子)를 만들었으며, 예수(隸首)는 산수(算數)를 만들었고, 용성(容成)은 책력을 만들었으며, 기백(岐伯)은 의술을 만들었고, 귀신구(鬼申區)는 점후(占候)를 만들었으며, 해중(奚仲)은 수레와 음률을 만들었으며 선단(墠壇)의 예(禮)를 일으켰다.]
착함을 보익(補翼)하고 성(聖)을 전하는 임금과 어질고 성(盛)하고 성스럽고 밝은 후(后)에 미쳐서는 8원(元)과 8개(凱)의 직책을 두었고,
[순(舜) 임금의 섭정(攝政)으로 고양씨(高陽氏)와 고신씨(高辛氏) 등 재능 있는 자 각 여덟 명을 기용하여 사목(司牧)의 소임을 맡게 하였다.]
희화(羲和)와 희중(羲仲)의 관리에게 명하였으며
[희씨와 화씨는 요(堯) 임금을 위하여 해와 달과 사시(四時)를 맡은 관리이다.]
백곡(百穀)을 심어 농사를 부지런히 하고
[후직(后稷)은 백곡을 파종(播種)하여 심었다.]
5교를 펴서 법도로 삼아 윤공(允恭)하고 극양(克讓)하니, 여러 공적[庶績]이 다 밝아져서 온 나라가 화합하고 백성들이 공평하고 밝게 잘 다스려졌습니다.
그래서 4흉(凶)을 4예(裔)에 귀양 보내고 3묘(苗)를 3위(危)에 귀양 보냈으며,
[4흉이라 함은 혼돈(渾沌)과 도올(檮杌)과 궁기(窮奇)와 도철(饕餮)이니, 요(堯) 임금이 이들을 나라의 4외(外)로 귀양 보냈다. 유묘씨(有苗氏)가 배반함에 순(舜) 임금이 이를 3위(危)의 산으로 귀양 보냈다. 음률을 조절하여 8풍(風)을 드러냈으며 선기(璇璣)를 살펴서 7정(政)을 가지런히 하였습니다.]
하(夏)나라 우(禹) 임금은 9하(河)를 소통시켰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물을 다스려서 9주(州)의 이름난 산과 큰 하천을 평정하고 홍범(洪範)의 9주(疇)를 하수의 신에게서 받았으며 지리(地理)를 통부(洞府)에서 얻었다. 또 9주에서 구리를 바치니 9정(鼎)을 부어 만들었으며 8가(家)로써 인(隣)을 삼고 3린(隣)으로 명(明)을 삼았으며 3명으로써 리(里)를 삼았다.]
네 가지 탈 것을 타고
[육지를 다닐 적에는 수레를 타고, 물을 다닐 적에는 배를 타고, 진흙을 다닐 적에는 진흙썰매를 타고, 산을 다닐 적에는 가마를 탔다.]
담당했던 지역에 조공을 바치게 하고 산을 소통시키고 하천을 정하였습니다.
은(殷)나라 임금은 죄인을 치고 백성을 위로하였으며,
[누런 물고기와 검은 새가 단(壇)에 모여서 화하여 검은 옥(玉)이 되었기에 이에 걸(桀)을 쳤고, 빛깔은 검고 흰 것을 숭상하였으며, 9정(鼎)을 박(亳)으로 옮기고 1백 호(戶)로써 리(里)를 삼았다.]
사나운 것을 평정하고 어지러운 것을 고요하게 하며 그물을 풀어주고 손톱과 발톱을 깎으며 물에 빠진 것을 건지고 불타는 것을 구하였습니다.
혁혁(赫赫)하게 융성한 주(周)나라에 이르러서는 많은 선비와 관저(關雎)와 인지(麟趾)의 덕과
[계력(季歷)의 비(妃) 태임(太妊)은 꿈에 장인(長人)이 자기에게 관계함을 당하고서 문왕(文王)을 낳았으며, 문왕의 비 태사(太姒)는 무왕(武王)인 발(發)을 낳았다.
주나라는 자(子)의 달로써 세수(歲首)를 삼았으며 색(色)은 붉은 것을 숭상하였다. 5가(家)로써 인(隣)을 삼았으니, 기내(畿內)에 비려(比閭)와 족당(族黨)과 주향(州鄕)이 있었다.
주공(周公)은 섭정(攝政)을 하였고 죄인은 잡히게 되었다. 가을에 우레와 바람의 재변이 생겨서 곡식을 쓰러뜨리고 나무를 뽑으니 금등(金縢)의 글을 열어서 드디어 주공을 맞아들여 낙수(洛水)에 궁궐을 짓고 국토를 측량하고 나라를 정하였으며, 예(禮)를 짓고 음악을 만들었다. 풍(酆)에서 죽어 필(畢)에 장사지냈다. 관저는 왕후(王后)의 덕을 칭양한 것이다. 인지(麟趾)는 어진 사람들을 일으키는 것이다.]
주남(周南)과 소남(邵南)의 풍화로
[주공과 소공의 풍화를 말함이니, 북으로부터 남으로 온 것이다.]
오행(五行)과 6정(正)의 예의를 벌렸고
[오행은 목(木)ㆍ금(金)ㆍ수(水)ㆍ화(火)ㆍ토(土)이다.
6정이라 함은 오는 일을 미리 살피고, 착한 이를 등용하고 어진 이를 천거하며, 공손하고 부지런하여 타락하지 아니하고, 법률을 밝게 살피며, 녹봉을 사양하고 상사(賞賜)를 사양하며, 임금이 실정(失政)을 하면 충간하는 것이다.]
9전(田)과 4정(井)의 법을 폈으며,
[3등(等)이 9전이 되고, 3옥(屋)이 4정이 된다. 5복(服)과 9석(錫)의 예를 펴고5등(等)의 의복을 차례 짓고 9석의 예를 제정한 것이다.]
혁거(革車)의 법도를 넓히고
[열 개가 성(城)이 되고 성에서는 혁거 한 승(乘)을 낸다.]
세상의 해범(楷範)이 되고 물건의 전모(典謨)를 짓는 것이 아득하니, 상고ㆍ중고ㆍ하고 시대를 넘어왔고 그 오래되기가 1백 개의 왕조를 거쳤습니다.
성스러운 덕이 깊었고 신기한 교화가 흡족했습니다. 용의 뜰과 봉의 구멍에는 기운이 깊이 쌓이기를 기다렸고 해의 구역과 기린의 물가에는 관색(款塞)을 점쳤고, 샘과 이슬은 그 진기한 맛을 바쳤고 풀과 나무는 그 아름다운 모양을 변화시켰으며 제비의 턱과 물고기의 몸에는 깃달린 무리를 빛나게 드리웠고, 이리의 발자취와 소의 꼬리는 털 있는 무리들을 빛냅니다.
오직 덕이 하늘을 움직이니 아름다운 징험이 모였고 원수(元首)가 밝음의 아름다움을 늘렸고 고굉(股肱)이 좋은 노래를 폅니다.
주나라는 오랜 세월을 점쳤고, 은나라는 여러 대(代) 동안 빛나고 빛납니다.
그의 도(道)란, 사람들은 이를 받아서 이롭게 세우고 만물은 이를 의지하여 생(生)이 있으며 나라는 이를 힘 입어서 다름이 없고 임금과 신하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다스림을 이루는 것입니다.
덕으로 천하를 가르쳐서 교화가 중국과 변국(邊國)에 미쳤습니다. 도덕은 5천(天)에 통하고 은혜는 백성들에게 더하니 공을 세우고 일을 세움이 크고 오래라, 때의 의리가 갖추어졌고 세상의 씀이 풍족합니다.
이씨 노자의 신선되는 방법은 뜻이 우화(羽化)하는 데 있고, 석가의 경전은 스스로 열반을 기약한다.
도교에서는 체를 태청(太淸)의 가운데에 두고, 불교에서는 정신을 상락(常樂)의 경계에 노닐게 하며,
도교에서는 형체를 단련하여 죽지 아니함을 귀하게 여기고, 불교에서는 고요하게 비춤을 무생(無生)에서 구하며,
도교에서는 대붕과 뱁새의 우언(寓言)을 구성하고, 불교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없는 말을 폅니다.
그러니 어찌 추연(鄒衍)이 하늘을 말을 한들 마침내 묘망(眇茫)한 데로 돌아갈 것이고 우구(虞丘)가 꿈을 말하는 것이 한갓 화려한 말에 기댄 것과 다르겠는가?
이제 대당국(大唐國)이 다스림을 극진히 하여 성스러운 임금이 옷을 늘어뜨리고 팔장끼고 있음에 이르러서 어진 이를 높이고 나이 많은 이를 높이며 덕을 귀하게 여기고 인(仁)을 귀하게 여기어서 바름으로 돌아오는 교화가 이미 넓고, 순박한 데로 돌아오는 바람이 널리 부채질하니, 이치는 마땅히 번거로움을 버리고 간략한 데로 나아가며 거짓됨을 버리고 참으로 돌아와야 하겠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불교와 도교의 두 흐름은 정치에 있어서 긴급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아룀을 듣고자 하시니 청하건대 시험하여 논하겠습니다. 의심나는 것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감히 깨닫지 못한 것을 펴겠습니다.
부자(夫子)께서는 옛 것을 많이 아시고 학(學)의 근원을 깊이 연구하시어 가부(可否)를 헌체(獻替)하셨으니, 그 요점을 자세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학통인, 유교와 도교, 불교의 비교]
이에 우학통인이 얼굴빛을 거두고 준엄(峻嚴)하게 앉아서 한참 만에 말했다.
“내가 들은 것과는 다릅니다.
논(論)에
‘하늘의 모양을 관찰하면 해와 달과 5성(星)의 차도(次度)의 분을 보며,
땅의 모양을 관찰하면 1백 냇물과 4독(瀆)의 돌아가는 곳을 알며,
옛날과 지금의 사적을 보고서 위로는 태극(太極) 혼원(混元)의 앞을 나타내고 문득 장래의 싹트지 아니한 일을 보아서 추호(秋毫)도 의심하지 아니함을 지혜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대가 이미 알고서 일부러 묻기에 내가 또한 스승의 도를 이어 받아서 간략히 말하겠습니다.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6서(書)의 가르침을 상고하여 보건대 충과 효가 그의 시초를 이루었고,
이씨 노자의 두 편(篇)의 시초는 도덕이 그의 머리를 이루었으며,
구담(瞿曇)의 3장(藏)의 글은 자비(慈悲)가 그의 근본이 되니,
세 성인의 사적은 비록 다르지만 이치는 다르지 아니합니다.
모두 더할나위없이 선하고 훌륭하기에 숭배하고 흠모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여러 미묘한 것을 말하여서 마음을 비우게 하고 착한 방편을 열어서 끌어당기고 인도합니다.
나는 전에 일찍이 원유(遠遊) 선생을 뵈옵고 그의 통방(通方)의 논리를 들었습니다. 그의 논리는 3교(敎)를 모두 펴고 겸하여 9류(流)를 폈습니다. 선생은 동굴에 은둔하였기에 그의 성씨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얼굴과 거동은 한가하고 아담하며 나아가고 물러섬이 볼 만하고 말과 웃음이 따스하고 커서 움직이고 그침이 법도가 있습니다. 비록 말하는 데 좋고 나쁨을 따짐이 있지만 뜻에는 칭찬과 나무람이 없습니다. 소나무와 창출과 백출을 먹어서 그의 나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연기와 노을에 살면서 잠자니, 뉘라서 그의 세대를 알겠습니까?
3고(古)에 이르러서는 근본과 지말이 환하여 거울 가운데를 보듯 하고 온갖 지파와 본파를 밝게 알아 손바닥을 보듯 합니다.
주공과 공자의 빛나는 법전을 궁구(窮究)하고 불교와 도교의 큰 법규를 연구하였습니다.
그의 회포를 살펴보니, 소유(逍遊)하면서 사물과 같이하는 데 있고, 그의 숭상하는 것을 보니, 평등하여 성품이 공한 데 있습니다.
선생께서 연묵(燕默)한 끝에 나를 돌아보면서
‘세상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 자가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이 많아서 그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 그른 것을 그르다 하며, 그 그른 것을 그르다 하지 아니하고 그 그르지 아니한 것을 그르다 한다. 이는 그가 그르다고 여긴 것을 옳다고 여기고 그가 옳다고 여긴 것을 그르다고 여기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유교(儒敎)를 논하기를,
뜻은 집에 있어서는 어른과 어린이의 순서를 다스리고, 위에 있어서는 교만하지 아니하고 아래가 되어서는 어지럽히지 아니하며, 신하와 아들이 되어서는 그 충성과 효도를 다하고 종과 첩이 되어서는 그 즐거운 마음을 다하며,
크게는 하늘에 짝하고 황제에게 충성하고 어버이를 높이고 조상을 기려서 하늘과 땅으로 하여금 밝게 살피게 하고 귀신으로 하여금 신령함을 본받게 하여서 재해(災害)가 일어나지 않게 하고 재화와 어지러움을 짓지 않게 하며,
작게는 이로운 데 나가고 때[時]를 타서 몸을 삼가고 쓰임새를 절도있게 하며 정사[政]를 규문(閨門)의 안에 베풀고 은혜를 종과 노예의 아래에까지 베풀어서 그의 일을 다 받들고 각각 마땅함을 얻게 합니다.
도교에 있어서는 만물이 생기는 것과 지극한 공이 이루어지는 것은 반드시 무형(無形)에서 생하고 무명(無名)에서 말미암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형과 무명은 만물의 근본이어서 도를 펴면 처음이 되고 어머니가 되며, 교(敎)를 말하면 요(徼)가 되고 묘(妙)가 됩니다.
이 때문에 원시(元始)가 금대(金臺)에서 공묵(拱默)하고 태상(太上)이 자전(紫殿)에서 옷을 드리우며 2진(眞)을 보내서 세속을 지도하고 5로(老)를 명하여 그림을 치며 어둠을 밟으면서 밝고, 하나를 안으면서 정숙합니다. 대라(大羅)에 적백(寂魄)하고 태청(太淸)에 언앙(偃仰)합니다.
그러한 뒤에 무위(無爲)의 교화를 베풀고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행하며, 황정(黃庭)과 자부(紫府)의 글을 펴고 금판(金版)과 은승(銀繩)의 기록을 줍니다.
현상(玄霜)과 강설(絳雪)의 묘함과 옥액(玉液)과 운영(雲英)의 기이함과 9운(雲)과 명경(明鏡)의 꽃과 8련(練)과 신단(神丹)의 채색은 회춘하여 늙음을 물리치기에 충분하며 우가(羽駕)로 장생(長生)하기에 충분합니다. 낭원(閬苑)에 거닐어서 돌아옴을 잊고 함지(咸池)에 목욕하여 돌아가지 아니합니다.
옷을 창합(閶闔)에 잠깐 벗어놓고 혹은 학(鶴)을 봉래에서 탑니다. 고야(姑射)의 언덕에서 참선을 하고 공동(崆峒)의 위에서 생각합니다. 하늘과 땅과 더불어 오래 살고 음과 양과 더불어 어둡고 밝고 합니다.
부처의 가르침은 위대합니다. 화장세계(華藏世界)를 통합해서 9중(重) 원개(圓蓋)의 밖으로 내보내고 운대(雲臺)를 조작(照灼)해서 8유(維)의 방질(方質) 밖까지 삼킵니다. 색(色)이 아니면서 묘한 색이어서 혼원(混元)의 앞에 빛을 흘렸고 몸을 나누면서 몸을 변화하여서 그림자를 태허(太虛)의 처음에 벌립니다. 그러기에 방박(磅薄)하여 음과 양을 지으며 노추(鑪錘)하여 하늘과 땅을 이룹니다.
큰 모양의 모양은 네 가지의 모양을 머금어 기르고 강재(剛材)의 재목은 다섯 가지의 재목을 운반하여 통합니다. 옥형(玉衡)이 전전히 아득하고 아득하여 그 기회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합벽(合璧)에 매달린 것이 망망하니, 뉘라서 그의 변화를 자세히 알겠습니까?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아니하여 오직 작으면서 빛납니다. 여러 성현들의 마음[靈府]을 통솔하였고 여러 중생들의 경사스런 모임[嘉會]에 나갑니다. 이에 화택(火宅)을 나와서 3거(車)를 거느리며 애하(愛河)에 들어가서 여덟 개의 노를 젓습니다.
아주 드문 일을 나타내는 것이 어찌 암라수원(菴羅樹園)뿐이겠습니까? 부사의(不思議)를 설하심이 다만 마가타국(摩伽陀國)만이 아닙니다. 가지가지의 방편과 하나하나의 자비로써 생사의 좁은 경계를 깨뜨리고 열반의 저 언덕으로 건네주십니다.
여의주가 빛나게 치솟고 지혜의 횃불이 모이고 빛나서 온갖 냇물을 받아들여 동쪽 바다가 땅에 있는 것을 파고 온갖 사상을 망라한 것이 북극성이 하늘에 있는 것보다 더합니다.
그러니 어찌 높고 낮음을 서로 기울여서 유가(儒家)니 묵가(墨家)니 하고 서로 다투겠으며, 진실로 진제(眞諦)에 미루고 현원(玄源)에 돌아와야 하겠습니까?
현원(玄源)이라 함은 경계와 지혜를 다 잊음이요, 진제라 함은 방편과 진실을 함께 없애는 것이어서 크게 구경(究竟)의 뜻을 펴고 널리 신통의 힘을 운전하는 것이니, 그의 선교 구화(善巧謳和:선교방편)의 극치를 찾고 도균(陶鈞)과 부하(負荷)의 공을 찾으면 조화로 방소를 지을 수가 없고 날로 씀에 의의(擬議)할 수가 없어서 족히 4대(大)를 총괄하고 3경(景)을 초연(超然)할 것이니, 그대는 큰 띠에 써서 스스로 거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공자, 자비와 도덕은 세상을 건지는 긴급함이 되지 못한다]
공자(公子)가 말했다.
“선생의 말을 들으니 아름답기는 아름답소만 의심스럽고 또한 의심스럽습니다.
무릇 사직(社稷)을 바로 잡는 데는 충성을 품는 것보다 더함이 없고,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는 효도로 받드는 것보다 더함이 없고,
하늘과 땅을 경영하는 데는 글을 닦는 것보다 더함이 없으며,
재앙과 난리를 안정시키는 데는 무(武)를 익히는 것보다 더함이 없고,
위와 아래를 편히 하는 데는 예(禮)를 키우는 것보다 더함이 없으며,
풍속을 바꾸는 데는 음악을 익히는 것보다 더함이 없으니,
이는 진실로 황왕(皇王)의 요훈(要訓)이요 도를 다스리는 큰 방법입니다.
그러니 비록 마갈타국의 자비의 말씀이나 여향(厲鄕)의 도덕의 이론으로는 세상을 건지는 긴급함이 되지 못하여 마치 나무와 기러기의 말과 같으니, 이는 내가 복종할 수 없는 것이니, 또한 당신도 같이 버려야 하겠습니다.”
[통인, 충효와 도덕과 자비]
통인이 말했다.
“말은 어눌하고 행동은 민첩한 것을 군자는 칭찬합니다. 그러니 자기의 보고 들음이 적은 것으로써 경전과 비교하여 말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노후(魯侯)의 경계를 듣지 않았습니까?
말이 많음이 없고 일을 많이 함이 없어야 하니, 말을 많이 하면 해로움이 많고 일을 많이 하면 근심이 많다 하였습니다.
만일 어버이를 섬기고 임금에게 순절(殉節)하는 데는 충성과 효도가 처음이 되지만, 해를 멀리하고 몸을 온전히 가지는 데는 도덕이 먼저 있어야 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여 괴로움을 구하는 데는 자비로써 근원을 삼아야 합니다.
효도로 받들고 충성을 품으면 집과 나라를 온전히 할 것이요,
도를 행하고 덕을 세우면 몸과 이름을 드날릴 것이요,
사랑을 일으키고 자비를 움직이면 중생들을 건질 것입니다.
중생들을 건지면 은혜가 6취(趣)에 고르게 되고,
몸과 이름을 드날리면 영화가 한 가문을 입히는 데 끝나고,
집과 나라를 온전히 하면 공은 구합(九合)하는 일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니 충성과 효도는 세속을 가르치는 가르침이 되고
도덕은 몸을 지니는 방법이 되고
자비는 중생을 건지는 행이 되는 것이니,
마치 하늘에 3광(光)이 있고 솥에 발이 셋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각기 그의 덕을 일으키고 아울러 그의 공을 나타내서 준수하여 받들면 아름다운 복을 이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