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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미증유인연경 상권
[반야 지혜의 네 가지 이름의 뜻에 대한 질문]
그때에 바사닉왕이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기를 반야 지혜에 네 가지 이름이 있다 하시니, 그 뜻이 무엇이옵니까?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셔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해 주시옵소서.”
[여우 이야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듣고자 하는 이는 마음을 붙이고 자세히 들으시오. 내가 지금부터 말하겠소.
생각하건대 과거 무수겁에 비마대국(毘摩大國)의 사타산(徒陀山)에 여우[野干]가 한 마리 살고 있었소. 사자가 뒤를 따라 잡아먹으려 하니,
여우는 겁이 나서 달아나다가 어떤 우물 안에 떨어졌는데, 나오지 못한 채 사흘이 지났소.
죽게 되었음을 마음속으로 깨닫고 게송으로 노래하였소.”
애달프구나, 오늘날 괴로움에 쫓기어
우물 속에 떨어져 죽게 되었네.
일체 만물 모두가 무상하거늘
사자에게 안 먹힌 것이 한이 되는구나.
슬프구나, 어찌할까, 죄 많은 몸이
목숨을 탐내다가 이룬 공도 없이 죽네.
공도 없이 죽는 것도 서럽지만은
더러운 몸뚱이로 남의 식수(食水)마저 버렸네.
나무(南無) 참회(懺悔) 시방불이시여
이내 마음 맑음을 굽어보소서.
전생에 지은 바 3업의 죄를
이 몸으로 갚아서 다하여지이다.
모든 죄가 다하면 3업이 맑으니
그 마음 고요하여 진실을 찾네.
이로부터 세세(世世)에 밝은 스승을 만나서
법에 맞게 수행하여 부처를 이루리라.
그때 제석(帝釋)이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가만히 머리를 숙여 옛 부처님을 생각하는데,
자기는 외로이 길잡이[導師]를 못 만나서
다섯 가지 욕망에 탐닉하여 스스로 빠지고
애욕의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니
생각할수록 마음에 사무쳐서 눈물을 흘렸네.
즉시 모든 하늘 8만 4천이
우물로 날아 내려 예배하려니
여우가 우물 밑에 빠져 있어서
두 손으로 더듬거려도 나오지 못하네.
제석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성인께서 나타나시는 것이 여러 가지니
지금 내가 보기에는 여우이지만
반드시 보살이지 범기(凡器)가 아니로다.
지금 내가 물어서 의심을 없애면
모든 하늘 따라서 법을 얻으리라.
천제(天帝)가 말하였다.
성교(聖敎)를 못 들은 지도 아득한 시간
언제나 스승 없는 어둠 속에 있었다네.
어진 이[仁者]께서 조금 전에 외운 비범(非凡)한 말씀
모든 하늘을 위하여 말씀하소서.
이때 여우가 위를 보고 대답하였지.
그대는 천제건만 교양이 없어
시의(時宜)도 모르고 심히 교만해
법사는 아래 있고 자기는 위에 서서
아무런 공경하는 마음도 없이 법문을 묻는가?
법의 물이 맑고 깨끗해야 사람을 건지니
어떻게 아만(我慢)을 품고 얻으려 하는가?
천제는 이 말 듣고 부끄러워했건만
모시던 모든 하늘이 놀라고 비웃으며
천왕께서 내리신 뜻이 무참하게도
저렇게 무안[慚愧]을 당하니 놀랍습니다.
제석이 하늘에게 이르는 말이
행여나 이것으로 놀라지 말라.
이는 내가 어리석어 어긴 탓이니
반드시 이로 인해 법을 들으리라.
즉시 하늘의 보배로운 옷이
드리워져 여우를 끌어 올리고
합장[叉手]하며 잘못된 점을 사죄드리며
예배[叩頭]하고 용서를 구하는 말이
모든 하늘 진실로 님의 말과 같아
다섯 가지 욕망에 얽매어서 거칠어진 것은
모두가 좋은 길잡이를 만나지 못한 탓이니
고락(苦樂)과 상(常)ㆍ무상(無常)을 말해 주소서.
모든 하늘 그를 위해 감로(甘露)의 밥을 베푸니
여우는 밥을 얻고 활기를 얻었네.
뜻밖의 재앙에서 이런 복을 만난 것이니
마음속 기쁜 모습이 어쩔 줄을 몰랐네.
“그때에 여우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소.
‘축생의 갈래에서도 추하고 헐벗고 곤궁하고 액난(厄難)스러운 것으로 여우보다 더할 게 없거늘 지혜의 힘으로 이렇게 되었구나.’
다시 생각하였소.
‘형벌을 받고 남은 이 몸, 본래부터 사랑스러운 곳이 없거늘 경사스럽다고 칭찬하며 또 크게 즐거워하니 모두 교화[通化]하는 때문이리라.
이 어리석은 하늘들은 모두가 제석(帝釋)이 먼저부터 가지고 있는 반야(般若)의 조그마한 공덕을 힘입어 함께 와서 법을 듣고자 하여 기이하다고 찬탄하니, 어쩌면 이렇게도 다행스러울까? 이제 교화하여 나의 공덕을 이루리라.’
다시 생각하였소.
‘오늘의 은혜는 모두가 나의 선사(先師) 화상(和尙)께서 자비심으로 가르쳐 주신 지혜와 방편의 공덕에 의한 것이다.
나무(南無) 반야시여, 나무 반야시여, 비록 올바른 실천을 잃고 나쁜 갈래에 태어났지만 지난 세상[宿命]을 알고, 그 업의 인연[業緣]을 아는 반야의 힘은 능히 모든 하늘이 내려오셔서 건져 주고 공양하게 하였으며, 또다시 교화하여 저의 작은 마음을 펴게 하였나이다.’
그때 제석이 모든 하늘에게 말하였소.
‘스승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반드시 설법을 하실 터이니, 우리들이 이제 와서 너무나 큰 이익을 얻게 되었다.
이제 모두가 머리를 땅에 대고 정성을 기울여 설법을 청하여라.’
모두가 기뻐하며 각각 공경을 다하여 오른 어깨를 벗고 여우를 돌며, 다시 꿇어앉아서 합장하고 이구동성(異口同聲) 게송으로 노래하였소.”
어질고 거룩하시어라
여우 화상이시여
바라옵건대 설법하시어
하늘 사람을 열어 주소서.
하늘 사람은 어두워서
다섯 가지 욕심에 얽매이고
항상 복이 다할까 두려워하며
무상(無常)에 쫓기옵니다.
죽어서 나쁜 길에 떨어지면
건져 줄 사람을 만날 수 없으리니
영원한 겁으로부터
수만억 년 동안이었습니다.
이제 한 번 만났사오니
참으로 도움이 되는 복밭[福田]이시여
자비심을 드리우시어
법언(法言)을 말씀하소서.
하늘 사람이 복을 얻고
중생도 그러하리니
원컨대 화상님에게로
영원히 따르오리다.
불도(佛道)를 이룰 때까지
항상 인연이 되옵소서.
밝은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
서원(誓願)을 세우나이다.
“그때 여우가 모든 하늘 사람이 간절히 부탁하면서 법문을 듣고자 하는 것을 보고 더욱 기뻐하며 천제에게 말하였소.
‘내가 지난날의 일을 생각하니 그때 세상 사람들은 법을 듣고자 하면 먼저 높은 자리를 펴 엄숙하게 꾸미고 맑고 깨끗하게 한 뒤에 바야흐로 법사(法師)를 모셔서 자리에 올라 설법케 하였으니,
무슨 까닭인가?
불경과 불법은 소중하여 공경하면 복을 얻기 때문이니라.
가벼이 여기는 마음으로 자기의 복을 줄게 하는 것은 옳지 않느니라.’
천제와 하늘 사람들이 듣고 모두 옳다 하여 하늘의 보배 옷을 벗어서 높은 자리를 쌓아 올리니 잠깐 동안에 장엄하게 꾸며서 맑고 깨끗한 것이 제일이었소.
[설법의 두 가지 인연]
여우가 자리에 올라 천제에게 말하였소.
‘내가 지금 설법을 하는 것은 바로 두 가지 큰 인연이 있기 때문이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설법이니 하늘 사람을 깨우쳐 주는 것이 복이 한량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먹을 것을 보시한 은혜를 보답하려 함이니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소.’
천제가 여쭈었소.
‘우물의 액난을 면하시어 몸과 목숨을 보전하신 공덕이 마땅히 크겠거늘
존자(尊者)께서는 어찌하여 설법으로 은혜를 갚는다 하시면서 이것은 언급치 않으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일체 천하의 것이 살기를 좋아하고 편안함을 구하면서 죽고자 하는 것이 없으니 이 까닭에 생명을 보전한 공덕이 어찌 크지 않겠나이까?’
여우는 대답하였소.
‘죽고 사는 데 마땅함은 사람마다 다르니 어떤 사람은 살기를 탐내고, 어떤 사람은 죽기를 즐기느니라.
어떤 사람이 살기를 탐내는가?
그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어리석고 어두워서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모르고 부처를 어기거나 법을 멀리하며,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살생ㆍ도둑질[偸盜]ㆍ음행ㆍ거짓말[妄語]로 악한 짓만 좇으니
이러한 사람은 살기를 탐내고 죽기를 두려워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죽기를 좋아하는가?
밝은 스승을 만나서 삼보를 섬기고 악을 고쳐 선을 닦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師長]을 공손하게 섬기며, 처자와 노비 권속에게 화순하며, 사람에게 공경하고 겸손하면 이런 사람은 살기를 싫어하고 죽기를 좋아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착한 사람이 죽으면 복은 마땅히 하늘에 태어나서 5욕락(欲樂)을 받을 것이고, 악한 사람이 죽으면 마땅히 지옥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기 때문이니라.
착한 사람이 죽는 것은 죄수가 감옥을 벗어나는 것과 같고 악한 사람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죄수가 감옥에 드는 것과 같으니라.’
천제가 물었소.
‘님의 말씀이 생명을 보전한 것은 공덕이 없다 하시니 진실로 그러할진대
그 밖의 두 번째 공덕, 밥을 베풀고 법을 베풀면 어떠한 공덕이 있나이까?
바라옵건대 말씀해 주셔서 어둠을 열어 주옵소서.’
여우가 대답하였소.
‘음식을 보시하면 하루의 목숨을 건지고, 진기한 보물을 보시하면 한 평생의 복을 건지거니와,
나고 죽는 것이 커지고 늘어나는 것은 인연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니라.
설법하고 교화하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니, 능히 중생들을 세간의 길[世間道]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출세간의 길[出世間道]은 무릇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아라한이요,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이며,
셋째는 불법(佛法)이니라.
이 3승(乘)의 사람은 모두 법을 듣고 말씀과 같이 수행한 데서 나왔느니라.
어떤 중생이 세 가지 나쁜 길[三惡道]을 면하거나 인천(人天)의 즐거움을 받는 것은 모두 법을 들은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으로써 보시한 공덕이 한량이 없다 하시느니라.’
[여우를 구제한 것은 공덕이 없다]
천제가 여쭈었소.
‘스승의 지금 몸은 업보[報]의 몸입니까? 아니면 응화(應化)의 몸입니까?’
여우가 대답하였소.
‘이는 죄업으로 받은 몸이지 응화한 몸이 아니니라.’
하늘 사람들이 듣고 깜짝 놀라 슬퍼하고 애달피 여겨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일어나 다시 절하고 여우에게 여쭈었소.
‘저희들 뜻에는 보살께서 응화로 나타나시어 중생을 제도하신다고 믿었는데, 이제 죄 받는 몸이라 하시니 그 까닭을 모르겠나이다.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그 까닭을 일러 주옵소서.’
여우가 대답하였소.
‘듣고자 하니 훌륭하구나. 내가 이제 말하리라.
생각하건대 지난 세상에 바라나국(波羅捺國)의 바두마성(波頭摩城)에 태어났을 때 나는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다.
이름은 아일다(阿逸多)요 찰제리(刹帝利)의 성받이[種姓]로서 어릴 때에는 총명하여 학문을 좋아하였다.
나이가 열두 살이 되자 밝은 스승을 따라 깊은 산에 들어가 애써 섬기고 학문을 연마하며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스승께서도 아침저녁으로 깨우치고 가르쳐 주셔서 때를 잃지 않았다. 50년이 지나 56종의 경서(經書)와 논설(論說), 의술(醫術), 주문(呪文), 길흉(吉凶)을 점치는 법과 재앙을 물리치는 법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높은 재주와 슬기로운 덕망이 날로 멀리 떨치었다.
그때 아일다는 생각하였다.
≺오늘날 내가 구제를 받는 것은 모두 스승님, 화상(和尙)께서 교화하신 은혜이니 그 공덕을 갚기가 어렵구나. 집이 가난하여 공양조차 올릴 것이 없으니 오직 몸을 팔아서 스승의 은혜를 갚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스승에게 여쭈었다.
≺제자가 지금 저의 몸을 팔아 스승님의 은혜를 갚고자 하나이다.≻
스승이 대답하였다.
≺산에 있는 도사(道士)는 걸식으로 살아가니 다섯 가지 일[五事]에 부족한 것이 없는데, 너는 무엇 때문에 귀중한 몸을 훼손해 팔아 나에게 이바지하려 하느냐?
너는 지금 지혜와 말재주[辯才]를 성취하였으니, 천하의 인민을 교화하여 법의 등불을 밝혀라.
교화하는 공덕이 어찌 나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겠느냐?
부디 다른 일은 하지 않기 바라노라.≻
그때 아일다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스승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오래지 않아서 국왕이 죽었는데 여러 신하들이 의논하여 나라 안의 모든 이름난 학자를 불러 모으고 함께 토론케 하여 이긴 사람을 왕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때 아일다도 부름을 받고 모든 학자 5백여 명과 이레 동안 힘을 겨루고 변론을 시험하여 모두 이기니, 여러 신하가 기뻐하며 바라문을 불러 아일다를 모시고 국왕의 자리를 계승하게 하였다.
그때 아일다는 이런 일을 당하자 근심과 기쁨이 함께 일어나서 불안하였다.
≺만일 내가 왕이 되면 행여 교만과 방일한 마음이 생겨 쾌락한 뜻을 탐내어 구하다가 백성에게 근심을 끼치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 괴로운 인연을 받을 것이니 두렵고, 만일 왕위에 오르지 않으면 집이 가난하고 녹(祿)이 없어서 소중한 스승의 은공을 갚을 수가 없구나.≻
여러 번 생각을 거듭한 뒤에 왕위를 받기로 결정하였으니, 스승의 은혜와 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곧 왕위를 받았다.
정위(正位)에 오른 뒤에 곧 충신을 보내어 장엄한 수레와 보배의 수레와 당기와 일산과 향화(香花)와 음악과 갖가지 음식으로 산에 가서 스승을 모셔 왔다.
도성에 돌아와서도 공양하기를 궁전을 지어 7보로 무늬를 아로새기고 여러 가지 비단을 뒤섞어 꾸몄으며, 평상과 좌구(坐具)와 이불과 요와 음식과 약품과 꽃과 과일과 동산과 숲과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들을 장엄케 하여 스승에게 공양하였다.
그리고 왕은 나라의 대신들과 부인과 채녀[采女]들과 함께 매일 스승에게로 가서 10선법(善法)을 배우니, 이렇게 하기를 백 번이 지났다.
그때 변경(邊境)에 두 개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그 두 나라의 왕은 서로서로 미워하면서 사사로이 병마를 기르고 서로 공격하고 정벌하는 일을 여러 해 반복하고 있었지만 서로를 이기지 못하였다.
그 중 한 나라의 왕은 안타라(安陀羅)요, 또 다른 나라의 왕은 마라바야(摩羅婆耶)였다. 안타라왕은 신하들을 모으고 상의하였다.
≺무슨 방법을 쓰면 저 나라를 이길 수 있을까?≻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아일다왕은 빈한한 곳에서 나왔습니다. 비록 왕위에 있지만 빈한한 뜻이 아직 남았습니다.
옛날부터 10선법을 지니어 밖의 색을 범하지 않고, 비록 궁녀들이 있지만 나이가 모두 들었습니다. 저희들의 계교로서는 나라 안을 통틀어 귀천을 가리지 않고 예쁜 계집 백 명 정도를 나이도 어리고 단정하여 마음에 들 만한 이들로 뽑아서 향기롭고 맑게 꾸미고, 충성스러운 신하를 시켜 많은 재물과 함께 채녀들을 바칩니다.
만일 받으면 은근히 그에게 강병(强兵) 백만을 청하여 함께 공격하면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그 계책을 따라 예쁜 여자와 보물을 골고루 갖추고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신하를 보내어 갖다 바치니
아일다왕은 모든 미녀와 진기한 보물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사자(使者)에게 물었다.
≺그대의 왕이 나에게 이처럼 좋은 물건을 바치는 뜻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사신은 왕에게 여쭈었다.
≺마라바야도 대왕께서 통치하시는 바이옵니다. 그 왕이 완만하고 사나워서 법도를 모르고 음란하여 도리가 없으며, 국정을 바로하지 못하니 백성은 그 폐를 입어 원수 같이 여기옵니다.
특별히 대왕에게 강병 백만을 청하여 그를 공격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받들어 올리는 정성이 바로 이것이옵니다.≻
왕은 말하였다.
≺매우 좋은 말이다.≻
곧 강한 군사 백만을 뽑아 보내도록 명령을 내리었다.
아일다왕은 손수 나라 안에서 뽑은 병정 백만과 합쳐 일시에 북을 치며 공격해 나아가니 싸움은 백일 동안 이어져 죽고 죽이면서 백성이 반으로 줄고서야 바야흐로 승리를 거두었다.
마라바야왕과 신하는 모두 형벌에 처해지고, 그의 종족 수천만 명도 모두 몰락하였다.
아일다왕은 여자들을 얻은 뒤 제대로 홀려 본래의 뜻을 잊고 음란과 오락에 빠져서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니, 관료들이 서로 작란(作亂)하여 양갓집 아들들을 강제로 종으로 삼고, 바람과 비는 때를 잃어서 굶주린 이가 길에 가득하게 되니, 이웃의 원수진 적국이 드디어 침입하여
아일다왕은 그로 인해 나라를 잃고 처형되었다.
죽은 뒤에 지옥에 들어가서 갖가지 괴로움을 받았는데, 전생의 학문과 지혜의 힘으로 전생 일[宿命]을 알아 마음으로 뉘우치고 악을 고쳐 선을 닦았으므로 잠시 지난 뒤에 지옥의 목숨을 마치고 아귀(餓鬼)의 갈래에 태어났다.
다시 전생 일을 알아 허물을 뉘우치고 10선(善)을 닦으니, 잠깐 사이에 아귀의 목숨이 마치고 축생으로 태어나서 여우의 몸이 되었다.
다시 전생 일을 알아 지난 것을 고치고 오는 것을 닦으며 10선을 받들어 지니고, 또 다른 중생으로 하여금 10선법을 행하도록 하던 중에 엊그제 사나운 사자를 만나 즉시 두려운 생각이 들어 우물 속에 떨어졌다.
죽기를 결심하고 천상에 태어나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으려 하였더니 그대가 나를 건져 준 까닭에 나의 소원은 어그러졌도다.
바야흐로 지내오는 괴로움을 어느 때나 면하겠는가?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구제한 것은 공덕이 없다 하노라.’
[여우가 옷에 들어간 세 가지 인연]
천제가 힐난하였소.
‘님이 하신 말씀과 같이 착한 사람이 죽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스승께서 우물에 계실 때 만일 옷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나오시지 못했을 것이고, 만일 나오시지 못했으면 살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이제 살아나신 까닭은 스승께서 옷에 들어가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고자 아니한 것은 아니시거늘 어찌하여 살기를 탐하지 않는다 하시나이까?’
여우가 대답하였소.
‘내가 옷에 들어간 것은 정히 세 가지의 큰 인연이 있는 까닭이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천제의 소원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니라. 대체로 누구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큰 괴로움을 받는 것이니 남에게 괴로움을 주면 태어나는 곳마다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며 향하는 곳마다 얻지 못하여 스스로 괴로움을 받게 되는 것이니, 이 때문이지 삶을 위한 것은 아니니라.
둘째로 옷에 들어간 까닭은 모든 하늘 사람들의 뜻이 법을 듣고자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선전[宣通]하여 법을 아끼지 않고자 함이니라.
만일 말하지 않으면 법을 아끼는 것이니 법을 아끼는 죄는 세세생생에 귀먹고, 눈멀고, 말 더듬고, 벙어리가 되어 모든 감관이 막힐 것이니라.
변두리에 태어나서 어리석고 지혜가 없으며, 비록 좋은 곳에 태어났지만 감정이 완악하고 어두우며 둔하여 배우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느니라.
배움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스스로 괴로움을 부르게 되니, 이러한 까닭이지 삶을 위한 것이 아니니라.
비유컨대 세상 사람이 이전 세상[前世]에서 보시하고 선을 닦으며 복덕을 지은 인연으로 금생에 사람이 되어서는 소원대로 되어 재물을 풍부하게 갖거니와
가난한 이는 구걸하지만 간탐(慳貪)하는 마음으로 아끼고, 보시하기를 싫어하니 간탐한 과보로 아귀에 태어나서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고 옷이 없어 헐벗고 있느니라.
겨울에는 추위에 얼어서 몸뚱이가 터지고, 여름에는 더위에 쫓겨 의지할 그늘이 없을 것이니라.
이렇게 괴로워하기 수천만 년 동안 아귀의 죄가 마치면 축생에 태어나서 풀을 먹고 물을 마시고는 어리석고 아는 것이 없어서 혹 진흙 위에서 먹거나 부정한 것을 드러내나니, 간탐한 죄가 이렇거니와 법을 아끼는 죄도 그러하니라.
셋째로 옷에 들어간 까닭은 정히 법화(法化)를 선전코자 함이니라. 하늘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깨닫게 하려는 까닭이니 이름이 법시(法施)로서 공덕이 무량하리니, 이를 위한 때문이지 삶을 구한 것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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