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공덕론 제1권
[경의 한 무더기]
그때 아난이 설하였네, “한량없이 많은 경을 누가 잘 갖추어 한 덩어리로 만들 수 있을까? 내 이제 마땅히 세 가지로 나누어 열 경(經)을 세우고 한 게(偈)로 만들리라.
계경(契經)이 그 1분이고 율(律)이 2분이며 또 아비담경(阿毘曇經)이 3분이라. 과거의 세 부처님도 모두 셋으로 나누어 계경과 율과 법(法)을 3장(藏)이라 하셨다.
계경을 이제 네 가지로 나누리니 첫째는 증일아함(增一阿含), 둘째는 중아함(中阿含)이며 셋째는 장아함(長阿含)인데 영락(瓔珞)이 많고 맨 뒤의 잡아함(雜阿含)이 넷째가 되느니라.” |
그때 아난이 경을 말한 것은 무량이니, 누가 능히 그것을 구비해 한 무더기를 이루겠는가?
[경이 무량이란 12부경이 광대하고 몹시 많은 것이다. 적시에 말하며, 차서(次緖)를 논하지 않고, 혹은 한 가지를 말한다.]
곧 열 가지를 말한다. 혹은 열 가지를 말하고 두 가지를 논한다.
혹은 세 가지를 말하고 열한 가지를 논한다.
상하(上下) 그리고 다음은 없고, 한 무더기가 될 수 없다.
혹은 어떤 설자(說者)는
“여래는 법을 말하고, 혹은 교계(敎誡)를 말하며, 혹은 단결(斷結)을 말하며, 혹은 천인 가운데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다시 한 무더기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아난은
‘1은 곧 1로부터 나오며, 2는 2로부터, 3ㆍ4ㆍ5ㆍ6 내지 10은 각각 그와 동일한 일로 하여금 서로 집착하게 한다’라고 생각한다.
혹은 어느 설자는
“이치는 그렇지 않다. 생각건대 부처님의 말씀은 다음에 비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경법의 3 부류]
아난이 다시
‘경법은 넓고 크니, 마땅히 나누어 세 무더기로 하리라’라고 생각한다.
아난이 홀로 이 생각을 일으키자,
수다회천(首陀會天)은 비밀스럽게 아난에게 일러 말하기를
“올바로 마땅히 셋으로 나누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곧 천이 이른 바와 같이 분별하여 셋으로 나누었는데,
첫째는 계경(契經)이요, 둘째는 비니(毘尼)요, 셋째는 아비담(阿毘曇)이다.
[계경]
계경이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으로, 혹은 제천(諸天)ㆍ제왕(帝王) 혹은 외도ㆍ이학(異學)을 위해 각각에 따라 분별하여 각기 개해(開解)를 얻게 한 것이다.
계(契)란 실[線]의 뜻으로, 이치를 연속하여 행법을 성취시키는 것과 같기 때문에 계라 한다.
[비니]
비니란 금률(禁律)이다.
2부 승가를 위해 악을 막고, 비리를 단속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혹은 250, 혹은 500가지 일로 법을 이끌어 삿됨을 막는 것으로,
마치 왕이 비밀리에 감춰둔 것으로 외관(外官)이 담당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내장(內藏)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 계율장도 이와 같이 사미ㆍ청신사(淸信士)ㆍ청신녀(淸信女)가 듣고 볼 수 없는 까닭에 율장이라 한다.
[아비담]
아비담이란 대법(大法)이다.
대라고 말하는 까닭은 4제(諦)의 큰 지혜는 모든 법의 우두머리로서 모든 사견과 무명의 큰 어리석음을 끊는 까닭에 대법이라 한다.
또한 무비법(無比法)이라고도 하는데, 8지(智)ㆍ10혜(慧)ㆍ무루(無漏)의 정견은 삼계의 장애를 초월하고, 그와 동등한 것이 없는 까닭에 무비법이라고 한다.
가전연자(迦旃延子)는 여러 경을 찬집하여 그 요긴한 지혜를 엮어 부처님의 인가(印可)를 드러낸 까닭에 대법장이라고 한 것이다.
아난이 또 생각하기를,
‘이 3장(藏)의 뜻은 3탈(脫)과 상응한다.
무엇이 계경인가?
묘한 지혜의 이치와 공(空)은 합치한다.
비니는 악을 제어하는 것으로 현묘한 것은 무상(無相)과 같다.
대법은 올바로 적(迹)을 보는 까닭에 무원(無願)과 같다.
따라서 3장과 3탈은 명적현회(冥迹玄會)라 한다’라고 했다.
[개경: 증일, 중, 장, 잡]
아난이 또 생각하기를,
‘계경의 대본의(大本義)는 4단으로 나뉘어 있다.
왜냐하면 문의(文義)가 혼잡하여 마땅히 사리(事理)로써 대소에 따르게 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증일(增一)이요, 둘째는 중(中), 셋째는 장(長), 넷째는 잡(雜)이라 부른다.
1로써 근본을 삼고 이어서 10에 이르며, 1ㆍ2ㆍ3이 각각에 따라 증가하는 까닭에 증일이라 한다.
중(中)이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중간에 딱 알맞은 까닭에 중이라 한다.
장(長)이란 구원(久遠)의 일을 말하며, 겁이 다하도록 끊이지 않으며, 본말 근원의 일로 7불을 거쳐 성왕 7보(寶)가 있는 까닭에 장이라 한다.
잡(雜)이란 모든 경이 결(結)을 끊지만, 암송하기 어렵고 기억하기 어려워 복잡하고 잡다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잊게 하는 까닭에 잡이라 한다’라고 했다.
아난이 3장을 찬(撰)하여 마치고, 10경을 기록해 1게로 삼았다.
왜 그런가?
장래 외우고 학습하는 자를 위해 그 잊어버릴 것을 걱정한 까닭이다.
이름을 보고 근본을 기억해 사유하여 스스로 깨닫게 하고자 한 까닭에 10경으로서 1게를 삼은 것이다.
소위 잡장(雜藏)이란 한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다.
혹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혹은 제자의 말이며, 혹은 제천의 찬송이며, 혹은 숙연(宿緣)으로 3아승기의 보살이 생기는 바를 말한 것이며,
문의(文義)도 일정하지 않으며, 3장보다 많은 까닭에 잡장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아사세왕(阿闍世王)이 불보살의 행사를 물었다.
여래께서 자세히 그를 위해 법을 말씀하셨다.
왕이 부처님께 물었다.
“무엇을 법으로 삼습니까?”
이에 답하였다.
“법은 곧 보살장입니다.”
모든 방등(方等)의 정경(正經)은 모두 이 보살장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일찍이 부처님께서 계셨을 때 이미 대사장(大士藏)이라 불렀다.
아난이 찬한 바는 곧 지금의 이 4장이다. 합하여 그것을 말하면 5장이 된다.
[법의 수]
존자 아난은 이렇게 생각하였네 ‘여래의 법신(法身)은 무너지지 않고 세상에 항상 있어 끊어지지 않으며 하늘과 사람들은 법을 듣고 도과(道果)를 이루리라.
혹은 한 가지 법이 있는데 그 법은 뜻이 깊고 갖기도 어렵고 외우기도 어려우며 기억할 수도 없네. 나는 이제 마땅히 한 가지 법의 진리를 모아 하나하나 서로 따르게 하여 차례를 잃지 않게 하리라.
또는 두 번째 법이 있어 두 번째로 나아가고 세 번째 법이 있어 세 번째로 나아가 구슬을 꿰듯 하며 네 번째 법 있어 네 번째로 나가고 다섯 번째도 그러하며 다섯 번째 법 다음엔 여섯, 여섯 번째는 다음 일곱으로 이어가리라.
여덟 번째 법의 뜻을 자세히 설하고 그 다음엔 아홉 번째 열 번째 법, 그리고 열에서 열 하나로 이어가리라. 이렇게 하면 법보를 끝끝내 잊지 않고 또한 항상 세상에 있어 언제나 존재하리라.’ |
“혹은 1법(法)이 있어 뜻 또한 깊고 수지하기 어렵고, 암송하기 어려우며, 가히 기억할 수 없다.”
1법이란 곧 공법(空法)이다. 무형(無形)과 무상(無像)으로 가히 호지할 수 없다.
고요하여 소리와 음향이 없으며, 무심ㆍ무념ㆍ박연(泊然)ㆍ무상(無想)하고 최고의 제일공(第一空)이다.
그 뜻에 둘이 없고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까닭에 수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말로 가히 대답할 수 없는 까닭에 암송하기 어렵다고 한다.
뜻으로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까닭에 기억하기 어렵다고 한다.
소위 깊은 뜻은 이와 같다.
또 1법이란 갖가지 수의 근본이다.
1은 수의 시작이며, 10은 수의 끝이다. 10에서 끝나며, 또 1로부터 일어난다.
바로 천만에 이르는 것도 항상 1에서 시작한다.
이와 같이 모든 1은 가히 다함이 없다.
모든 경 가운데에 혹은 1의(義)ㆍ1법(法)ㆍ1행(行)ㆍ1사(事)가 서로 따라 그 차례를 잃지 않는다. 그 까닭에 하나하나가 서로 따라 그 차례를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2법, 즉 둘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혹은 선악을 말하며, 혹은 지관(止觀)을 말하며, 혹은 명색(名色)을 말한다.
지(止)란 허(虛)이며, 관(觀)이란 실(實)이다.
지란 삼매의 정(定)이며, 마음이 고요하고 욕심이 적어[泊然] 상(想)을 멸하며,
무명의 도리를 없애는 까닭에 허라 말한다.
관을 실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것으로써 분별하여 행이 있으며,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식별이 명료하여 뜻이 어지럽지 않은 까닭에 실이라 한다.
3법은 셋으로 이루어진다.
셋이란 보시와 공덕, 사유이다.
이 세 가지 행은 세속의 생천법(生天法)이며, 3탈문(脫門)의 행은 열반법에 이른다.
모든 유(有)에는 3법(法)ㆍ3행(行)ㆍ3복(福)ㆍ3분법신(分法身)ㆍ3상(相)이 서로 따르며, 비유하면 이어진 구슬과 같다.
4법은 4를 이루며, 5법도 그와 같다.
5법 다음에 6, 6법 다음에 7, 8법의 의미는 광대하다.
9 다음에 제10법이 이르며, 10으로부터 11에 이른다.
이와 같이 모든 수는 모두 2ㆍ3과 동일하게 사류(事類)가 서로 따른다.
[아난과 미륵]
대중들 가운데서 이 법을 모아 그 즉시로 아난이 자리에 오르자 미륵은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말하였네. “모든 법이 이치에 합해 꼭 들어맞는다.” |
“아난이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리는 사자좌(師子座)이다.
경에서 사자좌에 비유한 것은 사자가 짐승 가운데 왕이며, 항상 높은 곳에 머물며, 낮은 곳에 머물지 않는 까닭에 높은 자리에 비유한 것이다.
또 그 두려움 없음[無畏]을 취한다.
아난이 한량없이 널리 들어 성문(聲聞) 가운데에 홀로 두려움 없이 걷는 까닭에 무외좌(無畏座)라고 말한다.
[아난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이와 같다.]
“미륵이 선(善)이라 일컬으며, 쾌재(快哉)를 말한다.”
[미륵이 그와 같이 한 까닭은 아난이 보살법에 합치해 삼장의 대소를 구별하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놋쇠와 금은 서로 통하기 때문에 은근하게 부(部)를 나누기를 권청(勸請)하는 것이다.
옛적에 대천성왕(大天聖王)이 네 개의 범당(梵堂)을 가지고 있었는데 끊임없이 서로 이어져 8만 4천의 왕이 모두 범당을 갖게 되었다.
오직 대천(大天) 한 사람만이 대사(大士)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소절(小節)로서 이것으로써 그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