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미상 / 유인劉因
衆人昏睡我獨坐 (중인혼수아독좌) 모두 깊이 잠든 밤 나 홀로 깨어
細看乾坤靜裏春 (세간건곤정이춘) 천지를 살펴보니 고요한 가운데 어느덧 봄
儻使一時俱閉目 (당사일시구폐목) 만약 한 순간에 모두가 눈을 감는다면
知更數鼓是何人 (지경수고시하인) 시간을 알고 북 쳐줄 이 누가 있겠는가?
※ 마음과 영혼을 지닌 인간에게 어찌 문장이 없을 수 있겠는가! (유협,『문심조룡文心彫龍』).
원말명초의 학자 유인(劉因, 1249~1293)은 정주학程朱學을 깊이 연구한 성리학자이자 시인이다. 그는 잠시 관직에 나가기도 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며 은거했다. 도학적 깊이와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이 시는 이본異本이 많아 사실상 제목을 특정하기 어렵다. 칠언절구로서 해마다 입춘절이 되면 생각나는 것이 시 이전에 하나의 좌우-명銘으로 서벽書壁에 걸맞고, 시와 시인의 궁극적인 질문을 환기해서이다. 시간적 배경으로서 밤은 시인과 도학자에게 자신을 대면하기 좋은 시간이다. 그랬을 때‘독좌’는 더 이상의 외로움이 아니라 정신적 자유이며, 무엇보다 생의 우선순위를 바라보는 실존의 장소로 거듭난다. 시인은 누구인가? 모두가 곤히 잠든 밤 홀로 깨어있는 사람, 고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생명의 시간을 알고 북을 치며 천지를 살피는, 즉 관천문 찰지리觀天文 察地理하는 지인이다. 야좌정관夜坐靜觀의 경지가 느껴지는 이 시에서 결구의 '지경수고知更數鼓'는 다른 필사본의 경우 '지경수고持敬誰考'라 하여, 깨어있는 마음으로서 경敬을 유지하며 살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시간을 안다는 것, 경敬과 주의注意에서 우리는 세상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는 한 시인의 정신 자세와 자기 성찰을 느낄 수 있다. '독좌-독아'의 주제와 모티프는 굴원이나 퇴계, 사가 서거정과 다산 정약용 등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방이 방이기 위해선 벽이 필요한 법. 그것은 (야기 세이이치에 의하면) 하나의 경계로서‘즉卽’의 세계다. 이다[is]와 아니다[is not]를 동시에 의미하는, 시는 A卽非A. (김상환)
첫댓글 獨坐라 ㅡ 시는 홀로 우주에 깨어ㅡ獨樂 하는 한 물건이군요ㅡ 오늘도 우리는 허공에 지구를 타고 가는 한 물건이군요 ㅡ 김상환 시인님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