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한 부분인 전통건축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건축적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일뿐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식과 시대의 신념, 종교와 학문 그리고 예술에 대한 지적 통찰력까지 고양시키는 것으로, 그 건축적 이상들은 오늘날에는 물 론 다음 시대에도 여전히 삶의 효용과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 유로 한국미의 보편적 원형을 탐구하려는 그간의 노력에 덧붙여 통도사 대웅전에서 시 작하여 종묘의 정전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가장 탁월한 건축가들이 지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24채의 한국의 옛집들을 통해 한국미의 완형(完形)과 그 정신세계에 대해 조심스럽고 간절한 심정으로 연재를 시작하는 용기를 내어본다.
건축은 서구적 용어
근세 100여년간 서구적 삶의 방식과 그 문화의 동질화를 추구해 온 오늘의 우리는 믿기 어려울만큼 서구적 관념으로 많은 것을 인식하고 있다. 현대건축에서 즐겨쓰는 개념인 건축(Architecture), 공간(Space), 시간(Time) 그리고 조경(Landscape) 등의 언어는 서양적 개념의 분화된 의미이나, 전통건축에서 집이란 물질과 공간, 시간 그리고 건축과 조경 등의 개념이 합일된 동의어의 개념으로 쓰였다. 집 우(宇)와 집 주(宙)의 집은 우주이고 천지(天地)이며, 스스로 성주괴멸(成住壞滅)하는 자연이었다. 그리하 여 집을 짓는다는 것은 창덕궁 주합루(宙合樓)의 당호에서 보듯 건물만을 짓는 것이 아닌 천리적(天理的) 생명성을 이룩한 공(空)의 형식으로 천지(天地)를 조영한 우주와 합(合)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통건축의 흉내를 낸 기와건물들 까지도 서구인들이 추구했던 개념의 건물을 맹목적으로 짓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후반 처음 유럽을 여행하면서 그들이 이룩한 건축적 장대함,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 인간을 압도하는 고딕 성당의 내부공간 등 그 경이로운 감동에 얼마나 놀랐던가. 그리고 생각하기를 왜 우리에겐 작고 평범하고 똑같은 집들밖에 없는가? 중국과 일본의 궁성과 탑들만 보아도 장중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나라가 작고 검소하여 집들이 작았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리적 풍토와 사회환경적 여건과 정신사적 관점의 이해 모두가 필요하게 된다. 사실 건물의 개념에서 벗어나 서구에서 200여년 전에나 인식했던 공간이라는 개념은 물질로 이룩된 비어있는 사이의 관계였다.
“그릇의 효용은 비어있음에 있다”는 노자의 말처럼 건축적 공간이란 비어있음의 구성과 처리였다. 그리하여 장대한 비어있음은 필연적으로 장대한 완성의 형태를 지향하는 건축을 추구하게 되었다.
건축은 우주와 합하는 일
이와 대조적인 동양의 건축은 그릇의 빈 공간과 같은 고정된 모습의 크기와 형상으로 존재하는 건축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함경》에서 보듯 이것과 저것은 관계 속에서 생과 멸을 되풀이한다는 순환적 물질과 공간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물체와 비어있음의 대대적 (對待的) 개념이 아닌, 비어있는 물질의 체계로 생명의 기운인 기(氣)가 차있는 태극의 허(虛)를 추구하였다. 그것은 비어있음으로 충만한 비어있음을 이룬 관계적 실체로서, 항상 여여(如如)한 구족의 상태로 인간과 자연의 원리와 같은 이(理)와 기(氣)의 충일한 상태를 조영하려 하였다. 건축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경지를 이룬 인문세계(人文世界)를 보태어 자연을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그것은 건축이 자연이고 자연이 건축으로 치환되는 자연을 완성하는 경지로 근대의 어떤 예술도 이룩하지 못했던 예술적 성취이다.
또한 큰 것으로는 큰 것을 이룩할 수 없었기에 작은 집에서 큰 것을 향한 회소향대(回小向大)의 조형정신으로 가장 장대한 것을 이룩하기 위해서 그렇게도 작고 범범(凡凡)하였다. 이러한 집은 외형적으로는 작지만 내형적으로는 우주만큼 넓고 깊게 체득되는 건축이었으며, 호화롭기는 물체에 원래 간직되어 있는 깨끗한 마음을 드러나게 하는 장식으로서, 자연이 이룩한 경지의 화(華)를 추구하였다.
그러한 예는 신라 무열왕릉 비의 이수에 조각된 여섯 용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는데 용들은 서로 몸이 붙어 꼼짝도 하지 못하면서 일제히 머리를 땅으로 수그린 채 삼매에 빠진 듯한 정지된 모습으로 여의주를 받들어 합장하고 있다. 그것은 일체의 미망에서 해방된 관념 이전의 상태를 구현하고 있는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조차 그 순간 무아(無我)의 경지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숨막힐 듯 정지한 용의 내부에는 꼬리와 발들이 힘차게 엮여져 강온한 생명성과 역동성을 이룩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靜)인 동시에 동(動)이 되는 공시성(共時性)의 경지로 중국과 일본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봉덕사 신종의 공양천인은 휘돌아 앉은 정지의 모습으로 근육질까지 표현된 듯한 사실적 조영으로 인간의 몸이 아닌 천인의 모습을 구현한 사실적 추상의 세계이며, 그 소리는 사람을 깨닫게 하는 원음(圓音)의 경지이다. 이러한 조형수준을 갖고 있던 시기의 신라왕들의 능은 아무런 기교가 없는 잡초만 우거진 평범한 언덕이다. 왕의 무덤이지만 아무것도 이룩한 것이 없고 조영한 것도 없이 호석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신라의 왕릉은 가까이 가면 주변의 산과 연이어져 관념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산처럼 크게 보인다. 피라밋처럼 가장 웅대하고 완성된 형태를 경쟁하듯 지은 것이 아닌 크고 작은 것이 별반 구분이 없는 인간이 만든 또 다른 자연이다. 그러나 봉분에는 잡초들만 춤을 출뿐 마치 조선의 백자와 같이 아무것도 없음으로 오히려 지극히 아름답다.
밝은 침묵의 세계
여기에 우리의 미를 특징지을 수 있는 미의식의 원형이 있다. 그것은 “조용한 위대‘와 같은 일상적 의미를 넘어선 본적(本寂)의 진여로서 미의 궁극적 이상을 실현하였다. 단순한 고전적 균제미나 소박한 정제미, 조화에 이른 자연감, 혹은 중용이나 기(氣)의 생명감 등 기존에 설명된 아름다움만으로 한국의 조영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의 미는 자연만큼 아름답고 우주의 신비만큼 현묘한 무공(無空)으로, 사람으로서 하늘의 조화를 부리는 신성(神性)의 경지를 추구했다. 그것은 서양의 유위(有爲)적 조형으로는 이룩할 수 없었던 세계이며, 무위(無爲)의 조형만으로도 이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어있는 우주적 질서를 유위인 동시에 무위로서, 유위도 극복하고 무위조차도 초월하고자 하였다. 동양의 건축 중 특히 우리의 전통건축은 평상심과 신성의 세계를 공시적으로 이룩한 세계이며 이것은 형이상학적 도의 신성을 실현한 형이하학으로 산시산(山是山) 수시수(水是水)의 중국선을 극복한, 산은 산으로 나아가고 물은 물로서 나아간, 자연 그 이상의 맑은 아침 햇살(朝鮮) 같은 빛의 현현으로 이룩한 밝은 침묵, 침묵을 강요하는 바 없이 침묵하는 명묵(明默)의 건축이었다.
김개천 건축가, 실내디자이너, 불교철학자. 한국전통 건축공간의 조형철학에 관한 연구들을 수행해오고 있다. 〈담양정토사〉, 〈동국대법당 대각전〉 등 다수의 사찰건축 작품들이 있다. 이도건축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