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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담팔건도론 제1권
여덟 가지 건도(犍度)1)를 게송으로 말한다.
잡(雜)ㆍ결사(結使)ㆍ지(智)ㆍ행(行)이며,
4대(大)ㆍ근(根)ㆍ정(定)ㆍ견(見)이다.
1. 잡건도(雜犍度)
[여기에서는] 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과
지(智)와 인(人)과 애공경(愛恭敬)과
무참(無慙)ㆍ색(色)ㆍ무의(無義)와
마지막으로 사품(思品)에 대해 설명한다.
1.1. 세간제일법 발거(世間第一法跋渠)
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2)이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세간제일법이라고 부르는가?
세간제일법은 어떠한 세계에 매인[繫] 것인가? 마땅히 욕계에 매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색계에 매인 것 혹은 무색계에 매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세간제일법은 유각유관(有覺有觀)이라고 할 것인가, 무각유관(無覺有觀) 혹은 무각무관(無覺無觀)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세간제일법은 낙근(樂根)과 상응한다고 할 것인가, 희근(喜根) 혹은 호근(護根)과 상응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세간제일법은 한 찰나의 마음[一心]이라고 할 것인가, 여러 찰나에 걸친 마음[衆多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세간제일법은 물러남[退]이 있다고 할 것인가 물러남이 없다고 할 것인가?
정(頂)3)이란 무엇인가?
정타(頂墮)란 무엇인가?
난(暖)이란 무엇인가?
스무 가지 신견(身見) 중 어떠한 것이 아견(我見)이며, 아소견(我所見)은 몇 가지의 견(見)인가?
만약 무상(無常)을 유상(有常)이라고 본다면, 이것은 5견(見) 중 어떠한 견에 속하며, 어떠한 진리[諦]로 이 견을 끊을 수 있는가?
혹은 유상을 무상으로 보고
혹은 괴로움[苦]을 즐거움[樂]으로 보거나 혹은 즐거움을 괴로움으로 보며,
혹은 부정한 것을 청정한 것으로 보고 혹은 청정한 것을 부정한 것으로 보며,
혹은 무아(無我)를 유아(有我)로 보며,
혹은 무인(無因)을 유인(有因)으로 보거나 혹은 유인을 무인으로 보며,
혹은 유(有)를 무(無)로 보거나 무(無)를 유(有)로 보는 것은 5견 중 어떠한 견이며,
어떠한 진리로 이 견을 끊을 수 있는가?
이 장(章)에서의 내용을 모두 연설하겠다.
세간제일법이란 무엇인가?
[답] 모든 심(心)ㆍ심법(心法)이 순서[次第]대로 또는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越次取證]하는 것을 세간제일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4)는 주장하기를 5근(根)5)에 있어서 순서대로 또는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하는 것을 세간제일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종의[義]6)에 따르면 모든 심ㆍ심법이 순서대로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하는 것을 세간제일법이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세간제일법이라고 부르는가?
[답] 이와 같은 심ㆍ심법은 그 밖의 모든 세간의 심ㆍ심법 중 최상이며, 능히 여기에 미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한 이 같은 심ㆍ심법은 범부의 성질[凡夫事]을 버리고 성스러운 법[聖法]을 획득하며, 그릇된 성질[邪事]을 버리고 바른 법을 획득하여 이 같은 바른 법 중에서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하므로 세간제일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간제일법은 어느 세계에 매인 것인가?
욕계에 매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색계 혹은 무색계에 매인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답] 세간제일법은 색계에 매인 것이라고 말해야 하리니, 욕계에 매인 것도 아니고 무색계에 매인 것도 아니다.
어째서 세간제일법을 욕계에 매인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가?
[답] 욕계의 도로써는 개(蓋)7)나 전(纏)8)을 끊을 수 없으며 또한 욕계의 결(結)9)을 제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색계의 도로써는 개와 전을 끊을 수 있으며, 욕계의 결도 제거할 수 있다.
만약 욕계의 도로써 개와 전을 끊을 수 있고, 또한 욕계의 결을 제거할 수도 있다면 이와 같은 세간제일법은 욕계에 매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욕계의 도로써는 개와 전을 끊을 수 없고 욕계의 결을 제거할 수도 없으며, 바로 색계의 도로써 개와 전을 끊을 수 있고 욕계의 결을 제거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세간제일법은 욕계에 매인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세간제일법을 무색계에 매인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 등법(等法) 중에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함에 있어 먼저 욕계의 괴로움을 괴롭다고 생각하고 난 뒤에 색계와 무색계의 괴로움을 괴로움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성도(聖道)를 일으킨다면 먼저 욕계의 본질[事]을 분별하고 난 후에 비로소 색, 무색계의 본질을 분별한다.
만약 등법 중에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함에 있어 먼저 무색계의 괴로움을 괴롭다고 생각하고 난 뒤에 욕계와 색계의 괴로움을 괴롭다고 생각하며, 성도를 일으킴에 있어 먼저 무색계의 본질을 분별하고 난 후에 비로소 욕계와 색계의 본질을 분별한다고 할 것 같으면 세간제일법은 무색계에 매인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다만 등법 중에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할 때에는 먼저 욕계의 괴로움을 괴롭다고 생각하고 나서 색계와 무색계의 괴로움을 괴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성도를 일으킬 때에는 먼저 욕계의 본질을 분별하고 난 후에 색계와 무색계의 본질을 변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간제일법을 무색계에 매인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무색정(無色定)에 들어서는 색상(色想)을 제거하니 색상이 없이는 욕계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고법인(苦法忍)10)에 소연(所緣)이 되는 것처럼 세간제일법에도 역시 소연이 되기 때문이다.
세간제일법은 유각유관(有覺有觀)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무각유관(無覺有觀) 혹은 무각무관(無覺無觀)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답] 세간제일법은 유각유관이고 무각유관이며 무각무관이기도 하다.
무엇을 유각유관이라고 하는가?
[답] 유각유관의 삼매(三昧)에 의거하여 획득한 세간제일법이니, 이것을 유각유관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각유관이라고 하는가?
[답] 무각유관의 삼매에 의거하여 획득한 세간제일법이니, 이것을 무각유관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각무관이라고 하는가?
[답] 무각무관의 삼매에 의거하여 획득한 세간제일법이니, 이것을 무각무관이라고 한다.
세간제일법은 낙근(樂根)과 상응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희근(喜根) 혹은 호근(護根)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답] 세간제일법은 낙근과 상응하고 혹은 희근과 상응하며 혹은 호근과도 상응한다.
무엇을 낙근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인가?
[답] 제3선(第三禪)에 의거하여 획득한 세간제일법이니, 이것을 낙근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희근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인가?
[답] 제일, 제이선에 의거하여 획득한 세간제일법이니, 이것을 희근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호근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인가?
[답] 미래선(未來禪)11)에 의거하고 선중간(禪中間)12)에 의거하고 제사선에 의거하여 획득한 세간제일법이니, 이것을 호근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간제일법은 마땅히 한 찰나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여러 찰나에 걸친 마음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답] 세간제일법은 마땅히 한 찰나의 마음으로 여러 찰나에 걸친 마음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어째서 세간제일법은 한 찰나의 마음이며 여러 찰나에 걸친 마음이 아닌가?
[답] 만약 세간제일법이라면 중간에 그 밖의 세간법을 일으키지 않으며, 오로지 무루(無漏)만이 있을 뿐이다.
만약 중간에 [다른 세간법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전 찰나의 세간제일법보다] 열등한 것인가, 동등한 것인가, 뛰어난 것인가?
만약 열등한 것이라면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물러나는 도[退道]로는 등법 중에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동등한 것이라 할지라도 역시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래 이 도(道)로써는 순서를 뛰어넘어 증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뛰어난 것이라면 그 본래의 심(心)ㆍ심소념법(心所念法)은 세간제일법이 아닐 것이며, 나중의 심ㆍ심소념법이라면 이것을 바로 세간제일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간제일법은 마땅히 물러남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물러남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인가?
[답] 세간제일법은 물러남이 없다.
어떠한 이유에서 세간제일법은 물러남이 없다고 하는가?
[답] 세간제일법은 진리[諦]를 따르고 진리로 충만하고 진리를 분별[辨]하는 것이니, 비거나 결함이 없는 없는 무소유로서 약간의 마음[若干心]을 일으켜 [성도를] 사유하지 못하게 함이 없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물을 건너고 산이나 계곡 언덕 등의 험난한 곳을 지날 때 몸을 바르게 하고 몸이 아직 이르기 전에 마음을 돌리지 않으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작하는 것처럼 세간제일법 역시 그러하다.
즉 그것은 진리를 따르고 진리로 충만하고 진리를 분별하는 것이므로 비거나 결함이 없는 무소유인 것이다. 따라서 약간의 마음을 일으켜 [성도를] 사유하지 못하게 함이 없다.
마치 항가(恒迦)13)ㆍ담부나(擔扶那)14)ㆍ살뇌(薩牢)15)ㆍ이라발제(伊羅跋提)16)ㆍ마혜(摩醯)17) 등의 다섯 개의 빠르게 흐르는 큰물은 모두 대해로 흘러 나가지만, 능히 그 흐름을 끊는 것도 없고 장애가 되는 것도 없어서 대해로 흘러가고, 바다를 충만하게 하며, 바다를 분별하는 것처럼 세간제일법 역시 그렇다.
즉 진리를 따르고 진리로 충만하고 진리를 분별하는 것이므로 비거나 결함이 없는 무소유로서 약간의 마음을 일으켜 [성도를] 사유하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또한 세간제일법과 고법인 중간에는 마음을 괴롭히는 하나의 법도 없으니, 그때에 능히 제압해서 성도를 사유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세간제일법은 물러남이 없다고 말한다.
정법(頂法)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정법의 물러남이라고 하는가?
[답] 비유하자면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짧은 순간의 환희로서 불(佛)ㆍ법(法)ㆍ승(僧)을 향하는 것이다.
세존께서 16바라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여[諸摩那]18), 물방울이 떨어지는 짧은 순간 정도의 환희만으로도 불ㆍ법ㆍ승을 향한다면 이것을 정법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과 같다.
무엇을 정법의 물러남이라고 하는가?
[답] [이미] 정법을 얻었던 자가 목숨이 다하여 물러나서는 재차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은 선지식을 만나 그를 따라 법을 듣고 사유하고 내적으로 헤아려 부처[佛]의 도를 믿고 그 가르침[法]을 좋아하고 승가[僧]를 따른다.
그리고 색(色)은 무상하고, 통(痛)19)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무상하다고 믿으며, 고(苦)ㆍ습(習)ㆍ진(盡)ㆍ도(道)를 믿고 사유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때에는 선지식을 만나지 못해 법을 듣지 못하고 사유하고 헤아리지 못해 세속의 믿음에서 물러나니,
이를 정법의 물러남이라고 하는 것이다.
난법(暖法)20)이란 무엇인가?
[답] 바른 법 가운데 자비와 환희를 일으키는 것이다.
마치 이는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사(馬師)비구와 만숙(滿宿)비구, 이 두 어리석은 이는 나의 법 중에서 털끝만큼의 난법도 갖지 않았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스무 가지 신견(身見)에서는 몇가지가 아견(我見)이며, 아소견(我所見)에는 몇가지 견이 있는가?
[답] 다섯 가지는 아견이고, 열다섯 가지는 아소견이다.
무엇을 다섯 가지 아견이라고 하는가?
[답] 색아견(色我見)과 통ㆍ상ㆍ행ㆍ식의 아견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아견이다.
무엇을 열다섯 가지 아소견1)이라고 하는가?
[답] 색을 나의 것이라 보고 나 가운데도 색이 있다고 보며, 색 가운데도 내가 있다고 보고 통ㆍ상ㆍ행ㆍ식도 나의 것이라고 보며, 나 가운데도 [통ㆍ상ㆍ행]ㆍ식이 있다고 보고 [통ㆍ상ㆍ행]ㆍ식 가운데도 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니,
이것을 열다섯 가지 아소견이라고 한다.
만약 무상을 유상으로 본다면 이것은 변견(邊見)2)이니, 고제로써 끊어야 한다[苦諦所斷].
유상을 무상으로 본다면3) 이것도 그릇된 생각[邪見]이니, 진제로써 끊어야 한다[盡諦所斷].
괴로움에 즐거움이 있다고 보는 것은 악법을 최고로 삼는 것으로, 이를 견도(見盜)4)라 말하며, 고제로써 끊어야 한다.
즐거움에 괴로움이 있다고 보면5) 이것은 그릇된 견해로, 진제로써 끊어야 한다.
더러움[不淨]에 깨끗함이 있다고 보면 악법을 최고로 삼는 것으로, 이는 견도(見盜)이니 고제로써 끊어야하며,
깨끗함에 더러움이 있다고 보면 그릇된 견해로, 진제(盡諦)에 의해 끊거나 혹은 도제(道諦)에 의해 끊어야 한다.
만약 진(盡)이 더럽다고 관찰하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진제로서 끊어야 한다.
만약 도(道)가 더럽다고 관찰하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도제로써 끊어야 한다. 무아임에도 ≺나≻[我]가 있다고 보면, 이것은 신사견(身邪見)으로 고제로써 끊어야 한다.
원인이 있는데도 원인이 없다고 보면, 이것은 그릇된 견해이니, 습제로써 끊어야 한다.
원인이 없는데도 원인이 있다고 보면 무작인(無作因)으로 짓는 것이니, 이것은 계도(戒盜)이며, 고제로써 끊어야 한다.
만약 [4제 등의 진리가] 있는데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릇된 견해이니, 고제로써 끊어야 하고 혹은 습제로써 끊어야 하며 혹은 진제로써 끊어야하고 혹은 도제로써 끊어야한다.
만약 괴로움[苦]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것은 그릇된 견해이니, 고제로써 끊어야 한다.
만약 괴로움의 원인[習]과 그 소멸[盡], 소멸에 이르는 방법[道]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습ㆍ진ㆍ도로써 끊어야 한다.
만약 존재하지 않는데도 존재한다는 견해를 편다면 이것은 견(見)이 아니고 그릇된 지식[邪智]6)이다.
이상 아비담의 첫 번째인 세간제일법의 발거를 마친다.
[범본(梵本) 528수로(首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