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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예술대학교 일본 다테야마 배낭여행 둘째날 이야기 (제1편) 사람이 한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행복한 날도 있기마련 이다. 어제 생면부지의 땅 마쓰모토에 도착해 하룻밤을 지냈는데 비몽사몽 잠을 설첮다. 일본은 확실히 서울보다 해가 일찍 뜨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은 똑 같다. 북한은 표준시간을 광복70주년을 맞아 일본보다 30분 늦추웠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동경135도는 일제의 잔재라면서 동경127.5선으로 교체를 한 것 이다. 한국도 이문제를 검토중이였는데 북한에게 선수를 뺏겨 스타일이 구겨져 버렸다. 어떻든 새벽05시였는데 창문이 훤하게 밝아 식사시간 6시30분에 걱정이 없었다. 마쓰모토의 둘째날도 하늘은 구름 한점없고 쾌청해 내가 복을 받은 것 같다. 화장대위에 배치된 녹차를 뜨거운물에 적셔 향을 음미해 본다. 마쓰모토역 출발 여행이란 약간의 스릴이 있어야 긴장도 되고 흥분도 된다. 깃발부대라고 하는 여행일정은 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저 꽁무니만 따라야 한다. 툭히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그저 가이드 입만 쳐다봐야 된다. 그런데 천만다행인 건 소시적에 독학으로 배워둔 일본어 덕에 몇번의 여행이 재미있었다. 이번에도 옛기억을 되살려 입을 터보려고 했는데 19년의 세월은 너무 길었다. 길을 묻고 물건을 사는데 더듬거려도 의사 소통은 되니 일본이 무섭지는 않다. 지도 한장을 들고 동경시내를 하루종일 돌아다녔던 그때가 생각난다. 2016년5월18일 아침06시30분 "마쓰모토 New Hotel" 구내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끝냈다. 그래도 된장국이 있어 밥을 든든하게 먹고 영양섭취를 위해 토마토 쥬스를 두 컵이나 마셨다. 문제는 화장실에서 10여분을 끙끙 댔는데도 순산을 못해 배속이 더부륵했다. 외국에 나가면 먹기도 잘하고 잠도 잘자고 똥도 잘 쌌는데 세월 탓인지 이번은 문제가 있다. 둘째날인 오늘은 여정이 빡빡하고 이용하는 교통수단도 복잡하다. 약간 피곤해 보이는 오환욱 대원님이 걱정되어 표정을 살폈더니 웃기만 한다. 이 양반은 7살때 북한 황해도에서 남한으로 피난을 온 분이다. 지칭 심청이가 빠져 죽었다는 임당수를 혜엄쳐 살아왔다고 큰소리를 치신다. 오늘도 별 탈없이 북알프스를 무사히 통과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마쓰모토 기차역 매표소 전경인데 자동으로 표를 끊는다. 지정석과 자유석 열차표를 자동으로 인출해내는 발권기인데 기계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 손가락 두마디 정도 크기의 직사경 기차표는 옛날 중절모에 꼽고 다니던 우리네 차표를 연상케 한다. 오전07시30분에 출발하는 "시나노오오마치" 행 열차표를 끊어놓고 잠시 기다려본다. 그런데 이번에도 특급열차가 배정되어 이동시간을 조금 벌게 되었다.
열차내부의 전경인데 젊은 승객들이 대부분이고 노인들은 없었다. 한국의 열차는 노인들 천국인데 일본은 이상하게 열차에서 노인들을 잘 볼 수 없었다. 역을 지날때 마다 학생들이 승차를 많이 했고 나는 사진찍기를 위해 입구쪽에 서있었다. 내 옆에서 작은 책 한권을 꺼내 읽고있는 여학생이 있어 살펴 보았다. 교복 상의위에 미색 쉐타를 걸첮고 가름한 얼굴에 눈매가 초롱해 보여 호감이 갖다. 스마트폰 대신 단행본 작은 책을 열심히 읽고있는 여학생.. 일본의 자화상이였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내가 미안해 호주머니에 밀어넣고 창밖을 본다.
어제 공항에서 나고야역까지 이동할때 보았던 농촌풍경의 재현이다. 담장밖 작은 논에 모내기한 벼들이 보일듯 말듯 가득한 물속에서 뿌리 내리기에 바쁘다. 철길쪽으로는 작은 창문이 전부인 하얀집이 앙증맞고 그래 정감이 간다. 저 집의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구름띠가 북알프스 연봉쪽에 병풍을 친다. 제법 넓은 평원이 펼쳐지고 있는데 건물들이 낮아 시야가 멀리까지 터져 시원하다. 일본 내륙의 중원에 이런 곡창지대가 있으니 옛날 에도시대때 에도 눈독을 들일만 했겠다. 임진왜란때 곡창지대였던 전라도땅을 그렇게 노렸던 "풍신수길" 이가 생각난다.
잠시 기차역에 정차해 있는 동안 철길가 주택건물이 눈길을 끈다. 전통적인 일본집인데 내 고향에도 저런 건물들이 몇채 있었다. 태백산맥에 나오는 금성여관이다. 멀리서 보면 하얀색 벽면의 칠이 조화를 이룬다. 먼지 하나 없는 기와 집웅도 그렇다. 마치 니스를 발라놓은 것 처럼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것 같다. 봄철이면 그 지긋지긋한 황사로 숨을 못쉬는 서울의 하늘에 비교가 된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일본땅 .. 구두를 1주일동안 신어도 반질반질 하다. 몇번을 생각해도 맑은 공기 하나는 복받은 나라가 일본이다. "미나미토요시하" 일본 전통가옥들이 밀집된 작은 역에 기차가 정차를 했다. 책을 읽던 여학생도 이 역에서 내렸는데 기차역 명칭이 " 미나미토요시하" 라고 적혀있다. 일본어 "미나미" 는 우리말로 남쪽(南)이란 뜻인데 지명 해석이 잘 안된다. 우리나라 기차역은 보편적으로 주택들과 떨어져 있는데 일본은 그냥 담장을 끼고 간다. 기착지인 " 시나노오오마치역"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짧은 시간 일본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기차를 타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일본 북알프스 먼산쪽을 가리고 있던 구름띠가 사라진 전경에 감탄사 연발이다. 만년설을 머리에 잔뜩 이고있는 일본 북알프스의 장관이 차창밖으로 펼쳐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뻗어내린 백두대간과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남한쪽에는 해발2,000m의 고산이 없다. 일본은 북알프스, 중앙알프스, 남알프스 라는 거대한 산맥이 등뼈를 이룬다. 그중 북알프스 에만 해발3.000m의 고봉들이 23개나 솟구쳐 있다. 오늘 난 저 북알프스 해발2,400m에서 잠을자게 된다. 信濃大町驛
오전08시25분 다테야마의 관문인 "시나노오오마치" 역에 도착했다. 역이름을 한문으로 표기해 놓아 어슴프래 해석이 된다. 믿을신(信), 짙을농(濃)자를 썼다. 대정(大町)은 큰 밭두렁을 뜻하는데 전체적인 문맥의 뜻은 연결이 잘 안된다. 이 마을은 일본의 "와사비" 를 생산하는 본고장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한국사람이 고추장을 좋아하듯 일본사람도 와사비 없이는 못산다고 한다. 북알프스의 거대한 산맥이 집웅을 이룬 마을의 기운이 맵다. " 형님, 버스표 끊을테니 대원들 확인좀 해주세요 ! " " 하이, 와카리마시타~!! " 일본에 왔으니 일본말 좀 해봐도 될 것 같아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쫄바지를 입은 아가씨가 뒤를 쳐다보며 시선을 던진다. 내 발음이 좀 이상했나 ? 이곳 여중생들의 짧은 치마 교복은 옛날부터 유명하다. 한국에서 수입(?) 해간 짧은 치마 교복의 원조다.
잠시후 "오기사와" 역까지 데려다 줄 리무진 버스가 도착했다. 일본 북알프스 알펜루트 전용 버스인데 한국의 관광전세버스와 크게 다를게 없다. 이젠 한국도 자동차 만드는 기술이 선진국 수준이여서 "약코" 죽지 않는다. 자꾸 토막 일본어가 튀어 나올라고 해서 나도 웃긴다.
두두두 둥~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버스속에 앉아있는 내 가슴속 소리다. 1996년6월에 올랐던 오난지야(3.015m)를 20년만에 다시 찾게되니 심장이 벌렁거린다. 강산이 두번도 변해버린 세월인데 그래도 다리심이 살아있어 그 곳을 간다. 조상님에게 감사해야할지... 내 님에게 감사해야 할지... 또 다시 오난지야마 정상에 오른다면 나무조각 정상 표지판에 입을 맞출 것 이다. 이번에는 꼭 정상석 한개를 배낭에 챙겨올 작심을 하고 있다. 노짱이 선물해준 아리가다케(3,180m) 정상석과 짝을 맺어줄 생각이다.
유황냄새 폴폴나는 온천장을 지나쳐 간다. 大町溫泉
이곳 마을 이름이 대정(大町) 인 것 같다. 큰 밭두덕이 있는 마을 .. 그래서인지 평지가 넓어 보인다. 이런곳에서 하루종일 온천욕이나 즐겼으면 살판나겠다. 오기사와, 환승장 오오마치역을 출발한지 20여분만에 오기사와 환승역에 도착했다. 내 고도계로 1,500m 지점까지는 하늘을 덮은 밀림지대 속으로 꼬불꼬불 도로가 이어젖다. 마치 지리산 성삼재를 오르는 산악도로 같은 곳인데 정비가 잘되어 있었다. 이제 해발3,000m의 북알프스 산맥을 관통해가는 교통수단이 펼쳐질 것 이다. 다테야마 알펜루트의 꽃.. 구로배댐이 전 산 자락에 있다. 환승장 입구 오기사와 환승장은 생각했던 것 보다 규모가 크고 다양했다.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 관계로 내국인은 물론 해외여행객들로 항시 붐비는 곳 이다. 이 곳에서 북알프스 산맥을 관통해 무로도 정류장까지 다양하게 이동한다. 지하터널 버스와 급경사를 오르는 터널전동차, 그리고 케이불카 까지 정신이 없다. 한장의 티켓으로 전 과정의 교통편을 이용하는 비용이 1인당 5,860엔 이다. 한국돈으로 계산해보면 60.000원 가까운 거금이 된다. KOREAN 오지사와 환승장 넓은 공터에서 제작해간 프랑카드를 펼첮다. 이정도는 폼을 잡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예행연습을 겸해 대원들을 정열시켰다. 어제 나고야역과 마쓰모토역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법을 교육시킨 덕이다. 노익장들이 꿈에도 생각 못해본 배낭여행에 폼까지 잡자니 어색해 할 만도 하다. " 청량예술대학교 파이팅 !! " 목소리들이 작아 두번째 성공했다. 일본에 와서 절대 기죽지 말자!! 우리들은 위대한 "KOREAN" 이기때문이다. 타이완에서 왔다는 관광객들이 부럼다는 눈치 였다. 일본 북알프스 다테야마 알펜루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첫번째는 구로베댐의 승강장까지 지하통로를 따라 운행하고있는 전기 버스를 타게 된다. 우리가 버스를 타기까지 3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혹시 주변에 한국 관광객이 없나 싶어 살펴보았지만 한국말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행사를 따라온 중국 관광객들이 유독 많아 환승장은 장터같았다.
다테야마 알펜루트의 단면도 이 다테야마의 단면도에서 보듯 최고봉은 오난지야마(3.015m)이다. 제일 꼭대기 하얀색으로 칼끝처럼 뽀쪽한 저곳이 만년설로 뒤덮인 다테야마의 왕(王)이다. 해발2450m의 무로도역까지 5가지 교통편을 이용해 알펜루트 상품을 만들었다. 이 알펜루트를 통과하는 교통비만 1인당 83.000원이 든다. 이 많은 관광객들이 먹고 자고 기념품사는 값까지 합친다면 떼돈을 벌고있다. 자연을 이용한 관광상품은 원재료가 적게들어 순이익이 많다. 그저 부럽다는 생각이 들고 얄밉기까지 한다. 간텐드터널 트롤리버스 참고자료에 보면 오오마치 온천마을에서 노선버스로 이곳에 도착했다. 지금 버스를 타고있는 오기사와역은 해발1433m 지점으로 16분 정도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겉모양은 버스와 같은데 천장에 전동차 처럼 전기줄에 매달려 운행을 한다. 터널속이라 매연을 없애기위해 전기버스로 설계된 것 같다.
트롤리버스 내부 모습인데 정원하고는 상관없이 승차시키는 것 같았다. 버스안이 꽉차면 출입문을 자동으로 닫게 된다. 그리고 윙~ 소리가 나면서 미끄러져 간다. 처음에는 일반 버스로 생각했는데 두 칸이 연결된체 운행을 하고있었다. 터널 천정에 매달린 전기줄에서 동력을 얻는 전동차였다. 시속 30km 정도로 달리는 터널속의 버스 ...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트롤버스가 구로베댐 승강장에 도착했는데 너무 복잡했다. 혹시나 우리팀 대원들을 놓칠가봐 가이드(노짱)님과 내가 앞뒤로 늙은 학생들 찾기 바쁘다. 그래도 유일하게 우리팀들만 큰 배낭을 어개에 메고있어 금방 식별이 가능했다. 터널 속인데도 공기가 탁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트롤버스가 운행되는 터널속은 경사도가없는 평지 수준 이였다. 그런데 승강장을 빠져 나오자 급경사 계단길이 끝도없이 올려다보여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 정도면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는데 걷기를 강요한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아에 다테야8마 알펜루트 여행을 꿈꿔서는 안될 것 같다. 그동안 서울둘레길 종주로 걷기를 훈련시킨 보람이있어 전원 통과했다. 계단의 간격을 짧고 낮게 설치한 배려는 칭찬할만 하다. 구로베댐 전망대와 댐 위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도착한 장면이다. 이곳에 오환욱 대원님은 전망대를 포기하고 보도터널을 통해 구로베댐으로 내려보냈다. 구로베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는 급경사 계단길이 연이어 젖다.
: 구로베댐(: 黒部ダム) 구로베댐 최상단의 전망대에 올라서자 장관이 펼쳐진다. 다테야마 알펜루트의 꽃 ..구로베댐을 실물로 내려다 보니 감동 그자체였다. 댐위에 개미처럼 꼬무락 거리는 관광객들의 모습도 재미있다. 이 구로베댐은 일본에서 가장 큰 댐으로 도야마현의 구로베강 상류에 위치해있다. 1963년 간사이 전력이 발전을 위해 높이 186m의 댐을 건설했다. 이 댐을 건설할때 171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댐 입구쪽에 있었는데 공사중이였다.
구로배댐 전망대에는 2명의 대원이 올라서지를 못했다. 갈림길에서 오환욱대원을 부축해 친구인 김정수 대원이 같이 댐쪽으로 이동을 했다. 총인원 12명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지못해 아쉬웠다. 이 단체사진은 전망대에서 기념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아가씨가 찍어줬다. 자청해서 구로배댐 간판까지 진열해가며 친절을 배풀었다. 그런다음 자신의 카메라로 단체사진을 찍은 뒤 금방 사진을 현상해 진열해 놓는다. 견물생심.. 결국 한장에 1.300엔을 주고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금 1.300엔 지불 단체사진 찍어준 값으로 내가 대표해 한 장을 구매해 주었다. 그런데 실물 사진을 보더니 대원들이 전부 한장씩 주문을 하자 아가씨가 활짝 웃는다. 사진이 뽑아지자 재촉을 하는데도 얼굴을 맞대고 정신들이 없다. 남산 팔각정의 영감 사진사보다는 얍실얍실한 일본 사진사 아가씨가 짱이다. 금방 사진 한판 찍어주고 11.000 앤을 벌었으니 상술도 만점이다. 래도 밉지않은 구로베댐의 사진사 아가씨.. 사요나라 ~ 歷史를 論 한다. 내 산행역사에 길이 남을 이 장면은 전쩍으로 노짱의 공(功)이다. 내게 산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 순간도 없었고 함깨한 노짱은 그냥 고향 후배로 남았을 것 이다. 사진을 올려놓고 보니 노짱께서 한 말에 공감이간다. 배경보다 모델이 더 멋지단다. 아무래도 산을 통해 얻어낸 내공이 사진속에 녹아 내린 것 아닌가 생각된다. 김해김씨 삼현파 족보를 다시 만들때 이 장면을 한 페지 끼워넣을 생각이다. 김해김씨 삼현파 조상중에 김일손(金馹孫)아란 분이 계신다. 조선조 성종때 춘추관의 사관으로 왕실의 사초를 기록하는 책임을 맞고 있었다, 학식이 높고 문장력이 뛰여나 당대에 그를 따를자가 없었다. 사초(史草)는 춘추관에서 왕실의 역사를 기록하는 문서이다. 조선조때는 왕도 이 사초를 열람할 수 없도록 제도화해 역사의 진실이 전해지도록했다. 성종때 김일손은 훈구파였던 유자광, 이극돈의 비행을 앞장서서 비판한게 원한을 사게 되었다. 1498년 성종실록을 편찬할때 스승 김종직은 세조의 왕위탄찰을 기록하게 된다. "조의제문" 인데 김일손은 이 기록을 그대로 사초에 올렸다. 이극돈은 연산군에게 이 사실을 밀고하게 되고 금지된 춘추관의 사초를 읽게 된다. 스승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했고 김일손은 삼족을 멸하는 화를 입었다.
연산군때 무오사화의 장본인이였던 김일손은 경북 청도가 고향이다. 결국 그의 자손들은 난를 피해 전라도 지방으로 도망을 쳐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왔다. 그로부터 280년 뒤 조선 정조대왕때(1777년) 김일손은 복권이 된다. 그리고 절효(국일),탁영(깅일손),삼족당(대유)의 3대를 삼현(三賢)이라 칭하게 된다. 한 가문에 4대에 걸쳐 세사람의 현인(賢人)이 나타났다는 것을 뜻한다.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 내 옆에 서있는 노짱의 각씨 갑오연화님이 삼현파 이다. 김일손은 산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가쓴 속두류록( 續頭流錄)이 있다. 그때 당시 지리산 천왕봉(1915m)을 등정한 산행기록 이다. 구로배댐 전망대에서 댐 위로 내려서는 철계단도 장난 아니다. 오금이 저리는 철계단을 내려서면 또 전망대가 있다. 그런데 이 전망대는 댐위의 허공에다 만들어 놓아 스릴 만점이다. 마치 중국 황산의 귀곡잔도 위에 서있는 기분이 든다. 바닥을 투명 유리로 만들었다면 곡소리 날번 했다. 오늘 단체사진 찍느라 얼굴 닳아지게 생겼다. 구로베댐의 하단부까지 가깝게 내려다 볼 수있어 실감이 난다. 가이드 말에 의 하면 10월경 수문4개를 열어 물을 빼는데 물보라가 이곳 전망대까지 날린다고 했다. 거대한 수문은 원통형으로 상단에 2개 하단부에2개로 굳게 닫혀있었다. 만년설이 녹기시작하는 6월에서 10월까지 4개의 수문을 열어 방류를 한단다. 수력발전을 위한 필요량의 물만 발전통로를 통해 흘려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감이 않잡힌다. 구로베댐의 전체적 모양이 한국의 소양강댐이나 평화의댐과는 크게 달랐다. 우선 물을 가두고있는 댐의 각도가 거의 90도에 가까워 위압적이다.
구로베댐 전망대를 내려오자 댐 상판 입구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있다. 기다리고 있던 오사장과 양파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잠시였지만 이산가족 상봉이였다. 다테야마 알펜루트는 교통수단을 통해 움직이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다. 평소때 지하철 계단이나 동네 뒷산을 꾸준히 운동해왔다면 오케다. 여행도 건강했을때 이야기다. 천만금이 있어도 못움직이면 시체나 다름없다. 그런면에서 청량예술대학교 대원들은 복받은 사람들이다. 청량예술대학교 여전사들을 역사적인 장소에 소집해 보았다. 구로베댐 정 중앙에 이정표가 매달려있다. 높이186m,댐길이492m,고도1.454m란 표지판이다. 일본인들의 토목공사는 그 실력을 인정해줘야 한다. 이 댐의 역사는 56년이다. 어느 한 곳 금간데도 없고 댐위의 포장도로에 흠집 한 군데도 없다. 한국에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작은 다리들이 아직도 건제하게 남아있다. 결코 일본인들을 칭찬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정해줘야 할 건 사양치 말아야 할 것 같다. 댐을 건너게 되면 벌어지게 될 각종의 교통수단이 또 기대가 된다. 아카자와다케(2,678m) 현재 건너가고 있는 구로배댐의 해발이1,454m로 기록되어있었다. 마주보고있는 저 "아카자와다케" 정상이 여기서 1.224m 나 된다니 그 위용에 압도될 수 밖에 없다. 다테야마와 아카자와다케의 혐곡을 통체로 막아 이 거대한 구로베댐을 건설한 것 이다. 일본 영화의 촬영장소로 잘 알려진 이곳 구로베댐을 천천히 걷너가 본다. 내 생애에 또 찾게될지... 만약 찾게된다면 단풍이 고운 가을이고 싶다. 나이든 아내를 부축하고 걷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자아발견을 해본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5월의 하늘이 축북을 내려주고 있다. 댐과 연결된 암벽에 터널을 뚫어만든 구로베역사로 들어섯다. 식당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제법 넓게 배치대어있어 동굴속이라는 느낌이 들지않았다. 탑승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기념품 매장에 들려 열쇠고리등을 살펴 보았다. 배낭과 모자에 붙이는 立山 뱃지가 한개에 420엔이였다. 기념으로 두개를 사서 고생하는 총무님모자에 한 달아주었다.
파이팅 ~ !! 청량예술대학교 대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쥐고 파이팅 해본다. 계속되는 행군에 피로한 기색들도 보여 힘을 내보자고 했는데 반응들이 시큰둥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하고 늙어서 고생은 팔자를 탓해야 된다. 동키호테 같은 총장을 잘못 만나 배낭여행에 홀렸으니 누굴 탓할 것 도 없다. 이것도 팔자거니 생각하고 열심히 꽁무니만 따라가면 된다. 그래도 손호연 대원님은 총장님 때문에 너무 행복하단다.
승강장은 계단식으로 경사면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대략 한번에 150명 정도가 승차하는 것 으로 짐작되었는데 좌석보다 입석이 더 많았다. 급경사 상단부 터널속에서 굉음소리와 함께 케이불카식 전동차가 접근해왔다. 탑승객들은 반대편 승강장으로 하차를 했는데 그쪽도 만원이였다. 심심하니 다시 한번 교통비만 계산을 해본다. 150명/ 8,290엔=1,2435,000엔 이다. 일본 자자손손 다테야마가 돈을 벌어주고 일자리도 보장해 줄 것 이다. 전동케이불카
계단식으로 설계된 전동케이불카 모습이 참 재미있게 생겼다. 넓은 문이 세군데서 열린 관계로 탑승에 불편함이 없도록 섥ㅖ되어 있었다. 앞 뒷쪽에 운전석이 있고 운행때마다 운전사의 위치가 바뀐다. 모두들 이런 케이붊카는 난생 처음이란다. 경사진 전동케이불카 실내 모습을 담아 보았다. 김정수 대원님께서 신가한 듯 총장과 눈을 맞춘다. 오늘 김삼례 대원은 자꾸 서방님을 놓치고 있다. 제일 뒷쪽 운전석에 자리를 잡아 터널을 정확이 볼 수 있었다. 운전석의 구조는 서울 지하철 운전석과 비슷하게 보였고 수동핸들도 있는 것 같았다. 선로위에 레일이 깔려있고 천정에는 전원을 공급해주는 전선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 은 바퀴가 톱니에 물려 가는게 아니고 매달려 간다. 이 많은 무게의 사람이 탔는데 어떻게 급경사 터널을 올라가는지 의문이였다. 나는 융푸우라 정상까지 운행하던 톱니바퀴 기차를 연상했는데 말이다. 고도가 높아지는 관계로 귓속이 멍해왔다.
구로베 다이라(1828m) 한국의 지리산 제석봉 높이와 비슷한 케이불카 승강장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승강장 터널속에서 전망대가 있는 옥외로 나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대원12명 전원을 전망대로 인도해 만년설을 만져보기로 했다. 마지막 로프웨어를 승차할 시간적 여유가 20분 정도 있었다. 오줌싸고 자지볼 시간이 없다더니 우리가 그짝 났다. 다테야마 해발1,828m 케이불카 전망대에 전원 올라섰다. 등뒤로 만년설을 뒤집어 쓴 立山(다테야마)의 장엄함이 청량인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이 순간만은 세상에 부러울 년놈이 하나도 없다는 표정들이다. 무정한 가이드님께서 이제 마지막 케이불카를 타야한다고 등짝을 밀어낸다. 고소증을 느끼는지 오환욱 대원은 온몸에 힘이 빠진다고 했다. 아무래도 "비아그라" 한알을 먹여야 될 것 같다. 전망대에서 단체사진 한장찍고 멋빠지게 승강장으로 내려왔다. 참말로 바쁘다 바뻐 ... 이제는 진짜 로프에 매달려가는 케이불카를 타고 만년설위를 통과하게 된다. 케이불카 승강장도 순서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세번째 팀으로 합류를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얼굴들이 한국인과 비슷한 타이완쪽 여행객들 뿐이다. 모두 간편한 차림인 것 으로보아 여행사를 통한 알펜루트 단체 관광팀들이였다. 배낭으로 중무장한 청량예술대학교 대원들이 단연 돋보인다.
이 케이불카는 우리들이 흔히 봐왔던 남산케이불카와 비슷했다. 로프에 매달려 가기때문에 중량이 과다하면 위험한 관계로 정원은 약30명 정도로 보였다. 해발2316m의 "다이칸보" 승강장까지 허공에 떠가는 케이불카는 스릴만점 일 것 같다. 우리팀 전체가 한꺼번에 탈수 있도록 줄서기를 가늠해 기다렸다.
케이불카 출발 ~ 내 평생에 이렇게 높은 공중의 케이불카를 타보기는 처음이다. 해발 3.000 m 의 까마득했던 고봉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구로베댐은 천길이나 깊다. 이 짜릿한 "오르가즘" 을 섹스에 비할 바가 아니였다. 진짜 붕알이 딱 올라붙고 귓속에서는 매미우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제임스본드가 출연했던 007영화 속의 설원 스키 추격장면을 보는 것 같다. 방금 출발했던 구로베댐에서는 반팔을 입기도 했는데 지금 이곳은 만년설로 뒤덮이 설국이였다. 일본 북알프스 .. 지금 내가 그 품속에서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雪國(설국)... 일본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가 쓴 장편소설의 제목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내가 이 책을 탐독한 건 오래전 이야기다. 주요무대는 니가타현의" 에치고유자와" 온천장이 배경인데 설원의 묘사가 아름답다. 게이사인 고마코(駒子)와 아름다운 소녀 요코(葉子)의 미묘한 심리가 복잡한 소설이다. 눈의 나라 일본의 풍경을 잘 묘사한 소설 .. 설국(雪國)을 떠올리게 한다.
잠시 헛생각을 했는데 덜커덩 소리를 내며 케이불카 승강장에 도착한다. 기다리고 있던 하행 관광객들이 케이불카에 승차를 시작했다. 우리와는 반대방향인 도야마역을 통해 무로도 평원을 오른뒤 구로베댐으로 역행한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들 평생에 잊지못할 추억을 담고 갈 것 이다. 여기가 일본이라는 쉽지않은 나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아침 07시30분 마쓰모토역을 출발해 여기까지 5시간동안 넋이 나갔다. 배낭여행의 진수를 다시 한 번 실감케 되는 순간이다. 다이칸보(2,333m)
천상의 전망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설상 데라스 " 해석하면 눈위의 발코니, 죽 전망대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전망대의 높이가 안내책자의 2.316m 보다 17m가 높게 표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또 계단을 따라 전망대까지 더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된다. 앓으니 죽자 ~!! 마지막 힘을내여 숨차게 계단을 올라선다. 또 다른 설국을 만나기 위해서 였다. 萬年雪에 입맞춤 청량예술대학교 미녀 원정대원들 만년설에 키스를 해본다. 전망대 테라스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보관해 관광객들에게 선물로 만지게 한다. 이 눈은 녹다 얼다를 반복해서 그런지 얼음 덩어리처럼 굳어있었다. 검지 손가락을 꾹 찔러보았더니 별 저항없이 속살의 감촉을 느끼게 해준다. 일본 여행을 다섯번이나 와봤다는 마포댁도 이런 구경은 처음이란다.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된 공주님들 일본에서 살자고 버티면 큰일낫다. 12시40분, 5월의 태양은 그림자를 발밑에 만들어 주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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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실적 묘사를 훌륭하게 수고 몽땅하셨는데, 몇자 수정,주석한다면, 南豊科(미나미토요시나), 信濃大町驛(짙을 농),만년설에 일만萬자로, 구로베 댐 관광방수는 매년 6월26~10월15일까지 합니다. 구로베 댐은 우리나라 한국전력격인 關西電力(關電 칸텐)의 소유관리하는 시설물이다.
일본에서는 알펜루트에서 우리가 탓던 탈것중에 우리나라에 없는 경사도를 오르는 전동카는 케블카, 우리나라에서 케블카라고 부르는 것은 로프웨이라고 호칭합니다.
(케블카는 스위스와 기술제휴를 하여 일본이 만들었음 양국 국기를 표시)
ㅎㅎ 오타 지적 감사 합니다.
지적하신 세곳의 오타는 수정했습니다.
구로베 댐의 한쪽면을 지지하는 히다(飛彈0산맥의 아카자와(赤沢)다케는 2013년 갑오연화와 15박 16일 켐박 종주시아카자와다케 정상부분에서 마니라는 태풍을 만나 23시간 텐트속에서 갖혀
있었던 곳으로 조난직전의 처지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곳이다.(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일본 경찰청 소속 헬기 2대가 우리를 찾는 소동이 있었음)
구로베댐을 가깝게 내려다 보고 있었던 아키자와다케(2.678m) 정상을 올랐다니 놀랍슴다.
북알프스의 주능선과 히다산맥은 별개란 이야기인데.. 구로베댐에서 아카자와 다케 정상만 등정할 수 있는 등산로가 있는지요?
근육질의 헐크 처럼 생긴 아카자와가 눈에 선함다. 아직까지도 회복되지 않은 대원이 있어 머리 아품니다. ㅎㅎㅎ
어느분이 휴유증을 회복하지 못하셨는지? 어느 정도인지? 염려가 됩니다. 단적으로 구로베 댐에서 아카자와다케를 오르는 직등로는 없습니다. 아카자와다케의 주봉은 훨씬 멀리뒷편에 있고, 보이는 부분은 전반부 일부분으로 주봉은 주능선 종주를 할때 거쳐갑니다.
총칭 히다산맥은 여러개의 작은 산맥군으로 형성되어 있고, 우선 구로베협곡의 양쪽 능선 중, 다테야마쪽 즉, 츠르기-오난지 야마-구로베고로우다케 로 이어지는 능선(立山連峰)과 구로베 협곡 다른 한쪽은 도야마만 바닷가에서 시작하여 마츠모토로 이어지는 북알프스의 주능선(後立山連峰)으로 제일 큰 능선입니다. 그 능선상에 아카자와 다케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ㅎㅎ 노짱님의 룸메이트 임다.
다시는 일본 안간다고 머리를 흔들어 댐다.
우선 소주 안주가 없담다.
북알프스 주능선은 다테야마 무로도(2,450m)와 다르게 바닥에서 부터 *빠지게 치고 올라야 합니다.약 하루정도를 걸어야 능선 정상부에 도착할수 있으며, 그때부터 170~180km 하늘길을 걷게 됩니다. 즉, 천상의 길을 걷는 게지요. 저도 아직 일부 걸어보지 못한 구간이 있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제 감이 조금 옵니까?
구로배댐 가는 길을 나하고 반대로 올라 가셨군요...
나는 구로배댐을 관광 하고 시나노오마치에서 열차를타고 동경으로 갔었는데...ㅎㅎㅎ
시나노오오마치? 구로베행 버스를 탔던 시골역을 말함니까?
와사배의 고장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곳에서 동경까지 연결되는 차편은 기차?
동경까지는 얼마나 걸렸는지요? 지금 눈에 삼삼합니다.
信濃大町 을 시나노오오마치 라고 합니다. 마쓰모토 아래 시오미 (鹽尻)라는 역에서 동경 과 나고야로 갈라집니다. 거리와 소요시간은 비슷하고,
열차와 버스가 있습니다. 댓글을 다신 필명 기계쟁이라는 분은 형님과 같은 연배시며, 광주 분입니다. 산악인이고 배낭여행가이면서 3년전인가 광주 서중 일고 동기 동창 3분과
다테야마 츠르기다케를 등반하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