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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1월 28일). 가족과 이웃이 더불어 화목하고 즐거운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설 명절을 맞으며 나라의 고유 명절인 "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며 몇자 적어봅니다(이하 존칭 생략)
*제 글은 퍼가기나 인용을 하셔도 좋습니다, 필요하면 가져 가시되 자료 출처는 밝히고 사용하여 주시길...
1. 설에 대한 기록
설의 기원과 유래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설에 대한 기원은 3세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은정월(殷正月)에 올린다는 제천의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서 "은정월(殷正月)"이란 은나라 역법으로 정월(1월)이었던 음력 12월을 말하며, 제천의례는 정월 초일이나 보름날에 드렸을 것이다.
구체적 기록은 7세기 중국 <수서>와 <구당서>에서 신라 관련 기록을 보면 "매년 정월 원단이 되면 서로 하례하며, 왕이 연회를 베풀고 군중과 관원들에게 나누어준다"라고 되어 있다(每正月元旦相賀 王設宴會 班賚羣官 其日拜日月神, -수서(隋書)- 권81 -열전(列傳)-46).
이날 일월신에게 제례한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하늘신에 대한 제천의식을 기록자가 같은 하늘에 있는 일월신 제례로 오해하여 기록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초기 종교는 하늘신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제천의식이 성행하였고, 특히 이를 주도한 왕실에서 다신교인 일월신 제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7세기 경에는 이방종교에 불과했던 불교가 신라까지 들어왔으므로 제천의식도 민간에서 다소 변질되여 형상이 있는 물체를 숭배하는 일월신 제례가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고등 종교인 불교의 도입마저 강하게 거부하여 왔던 신라가 왕실에서 다신교를 받아드리고, 일월신 제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설날 풍습은 차례, 세배, 떡국, 윷놀이 등이 있다. 차례(茶禮)는 원래 우리말 다례(다도)를 말하며, 오늘날 세배와 비슷한 것이다. 차례는 살아있는 윗사람(왕, 부모, 어른, 스승)에게 차를 우려 예의를 갖추어 대접하면서 교훈과 덕담을 듣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차례는 명절날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올리는 제사를 말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다'를 '차(茶)'라 하는 것도 선비들이 한자를 좋아해서 빌려 온 왜래문화의 하나다.
조상제사는 한가위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12세기 고려시대)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조상제사 역시 우리의 고유문화는 아니고, 고려말 또는 이조 초기 사대부들이 중국에서 유교와 함께 갖고 들어온 것이다.
<기록상으로 세배는 고려시대부터이다. 설날제사는 고종 33년 병신년(1896년)에 경상도 성주 땅의 수촌리(樹村里)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이를 '원조절사(元朝節祀)'라고 하였고, 그 당시 일제의 만행에 대하여 후손들이 조상들에게 단합을 다짐하는 일종의 명세(의식)이었다고 함. -老石 呂九淵(1865∼1938)의 문집, 『老石集二』卷33-에서 향토 문인(수필가) 김도현의 칼럼이 인용한 것을 필자가 발췌, 재인용>.
2. 설의 어원은 섣달에서
설의 어원은 아직 모르고 있다. 보통 해가 바뀐 첫날이므로 ①섧다(낯설다) ①삼가하다(조심하다) ③선다(시작하다) 라는 말에서 찾고 있는데 필자는 이 세가지 중에 ③선다(시작한다)에서 왔다고 본다. 그 이유는 “섧다”와 “삼가다”는 말은 명절의 뜻이 너무 미약하고, 어색하다. 그러나 “선다”는 말은 새해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말과 의미가 자연스럽게 서로 부합하고, 국가적 명절 이름으로도 걸맞기 때문이다.
(“낯설다”는 구어상 설:의 발음이 길어서, “삼가하다”는 새해 첫째 날에 대한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여 추정한 것으로 봄)
설날은 한 해의 첫날인 초하루를 뜻하며, 새해를 시작하고 한달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아침에 시장이 열리거나 가게가 문을 열면 "장이 선다"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뜻으로 설날은 해가 바뀌어 첫날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를 대변하는 말로 달의 명칭 "섣달"이 있는데 섣달에서 설날의 뜻을 찾아낼 수가 있다.
섣달은 우리가 마지막 달로 알고 있지만, 옛 역법에서는 한 해의 첫째 달을 의미했고, 1년 중 새달이 시작된다는 뜻을 가진 말이었다. 첫째 달이므로 "서는 달"이라고 "섣달(선달)"이라 하였다. 그러나 뒤에 역법이 바뀌어 다음 달이 첫달이 되면서 섣달은 1년 중 마지막 달이 되고 말았다. 그 예로 은 나라 역법에서 12월 섣달은 새해 정월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정월과 구분하기 위해 "은정월(殷正月)"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1월 1일은 섣달 설날(선달 선날)이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는 한달 중 15일을 보름날이라고 하고, 말일을 그믐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1일에 해당하는 말은 "초(初)하룻날"이라고 하면서 한자를 빌려 쓰고 있지 우리말이 없다. 그것은 매달 1일을 설날이라 해야 하지만, 1월 1일이 큰 명절이기 때문에 명절날 1일과 보통달 1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보통달 1일은 설날이라 하지 않고, 한자를 빌려 "초하루"라고 다르게 불러 온 것이다.
같은 연유로 달의 모양을 따라 부르는 이름에도 초승달은 우리말이 없다. 이를 감안하여 우리말로 고쳐보면 매달 1일은 설날, 15일은 보름날, 29일 혹은 30일은 그믐날이 된다. 초승달도 선달 또는 설달로 고쳐보면 달은 모양에 따라 설달(첫 달), 보름달(중간 달), 그믐달(마지막 달)이라 되어 우리말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지금 설날은 발음이 설:날이라고 길게 발음을 하는데 설날을 짧게 부르면 된발음이 되어 소리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민간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선날"이 "설날"이 되고 다시 "설:날"로 발음이 변한 것이다(일종의 연음화 현상). 그러므로 설날의 어원을 시작의 뜻으로 보고, 유사 개념들을 찾아보면 3가지 의미를 가진다.
설날 : 시작하는 날(starting day)
설날 : 멈추는 날(stopping day, stay day) 일을 멈추고 쉬고 즐기는 날
설날 : 서는 날(standing day,establish day) 새것을 일으켜 세우는 날
서다 : (장이) 서다(start), 일어서다(stand). 멈춰서다(stop) 아이를 서다(생명을 잉태하다), 불을 서다(어둠을 밝히다)
서다 : 정초(正初), 연두(年頭), 연시(年始), 세시(歳時), 세수(歳首), 원단(元旦) 등.
3. 설과 성경달력의 새해
성경의 절기 곧 성경달력은 달(月)을 기준한 음력이다(출 12:2, 시편 104:19). 성경달력은 우리의 음력과 같이 달과 날은 달(月)에 맞추고, 계절은 태양(日)에 맞추고 있다. 곧 성경음력은 우리가 사용하는 태음태양력이다. 달을 기준하여 만든 음력을 쓰되 태양력에 맞추어 윤달을 둔다. 농경시대에 첫열매로 보릿단이 있어야 하는 초실절과 수확물을 저장하고 난 후 맞는 수장절을 제대로 지키려면 음력과 양력을 조정하는 윤달 제도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옛 정서도 해보다 달이며, 양력보다 음력을 사용해 왔다. 축제를 보아도 달불놀이 같은 달맞이 행사는 오래된 전통이지만, 해맞이는 최근에 생겨났고, 서양(로마의 태양신)에서 왔다. 일본은 형상이 있는 해를 숭상하고, 음력을 쓰지 않는다. 중국은 음력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정신계는 상징적 형상인 용을 숭상한다.
그러나 한국은 옛부터 음력을 쓰면서도 정신계는 형상이 없는 하늘(신)만을 보며 살아 왔다(개천사상과 제천의식). 상징물도 하늘을 나는 새(삼족오, 봉황)를 선호한다. 우리의 고유 종교는 하늘신만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제천의식이었고, 점차 약화되기는 했지만 이것이 국가적 행사로 개국 후 3천년이 넘도록 계속되었으며, 지금도 변질이 되긴 했으나 강화도 마니산에서 올리는 참성단 제례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고 있으며, 제천의식을 구체적 형상을 숭배하는 토템사상이나 저급한 샤머니즘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배달민족"이나 "홍익인간"의 뜻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성경에서 정월 초하루가 처음 언급되는 곳은 창세기 8장 13절이다.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성경에서 새해 시작의 첫 기록은 노아가 601살 되던 해 첫날이다. 이날은 노아가 방주의 뚜껑을 제쳐 열은 날이며, 지면에 물이 겉히고 땅이 드러난 날이다. 이날이 바로 성경적으로 새해 첫날이며 설날에 해당한다. 601살 된 노아 할아버지가 방주 뚜겅(덮게)을 제쳐 열은 그날은 우리의 옛 정서대로면 섣달 설날인 셈이다. 이날은 노아가 601살 되던 첫날이라고 했으므로 혹시 노아가 태어난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방주의 뚜겅을 열었으니 노아가 처음으로 하늘을 (수직으로) 쳐다볼 수 있었고, 땅의 지면도 사방으로 넓게 볼 수 있었던 날이다. 새해 첫날은 땅에서 무섭고 지루하던 물의 공포(홍수 심판)가 완전히 물러간 날이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새해 첫날, 곧 설날이 노아 가족들에게는 새해를 맞는 기대감도 컸지만, 무엇보다 하늘이 열리고(開天),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을 본 감동의 날이었을 것이다.
이로부터 57일 후에 노아와 가족들이 들짐승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와 땅에 발을 디뎠다. 1년 넘게 홍수를 피해 방주에만 살다가(선상생활) 땅에 발을 디뎌 정상생활로 돌아왔다. 노아는 물이 걷힌 설날 바로 나오지 않고(방주 안에서 설을 쇠고?), 물이 걷히고 두 달 정도 기다려서 나왔다(성경 달력 2월 27일, 양력 4월 말경). 노아 가족들은 땅이 마르고 식물이 자라나서 사람과 짐승들에게 자활 식생이 가능한 시기를 택하여 비로소 땅에 발을 디뎠다는 뜻이다.
노아 가족의 첫 직업은 포도 농사이었고, 그 후 세 아들을 따라 각자 세계 열방으로 나뉘었다(창 10:32). 이 때 중앙아시아(7개 ~스탄 지역)를 거쳐 천산산맥을 넘어 시베리아와 극동까지 가장 멀리 이주하여 개천사상으로 나라를 세운 민족이 우리 한국인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끝인 극동으로 이주하여 중국 대륙의 변방(땅 끝) 해변지역에 먼저 정착한 민족이 동이족이다. 동이족은 노아의 홍수와 방주 생활을 기록으로 남긴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한자 "船(方舟와 여덟 식구)"과 "沿(물에 뜬 여떫 식구)"이다.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첫 설날과 관련된 사연들이며, 성경이 말하는 한국 역사와 문화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지만, 여기서의 언급은 이 정도로 그친다.
(성경과 한국 역사는 필자의 책 -성경과 한국문화의 뿌리-를 참고 할 것)
4. 설날과 계절(설날이 왜 한겨울에?)
설날은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다. 계절의 시작은 만물이 약동하는 봄이다. 따라서 지금의 설은 한 해의 시작과 계절의 시작이 맞지 않아서 생활 절기로는 어색함이 있다.
그런데 한 해의 시작은 원래 봄이었다. 곧 처음 설날은 춘분이 들어 있는 달, 첫째 날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지금은 엄동설한에 설 명절이 있을까? 지금도 성경에는 봄에 첫달을 시작하고 있다. 성경달력은 춘분이 들어있는 봄에 새해를 시작하며, 봄 절기에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부활절을 지킨다. 수확을 마친 가을에는 가을 절기로 나팔절, 속량절, 초막절(수장절) 등이 있다.
이 가을 절기, 특히 초막절은 윤달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한가위와 날짜마저 같다.
지금도 음력을 사용하는 동남아는 봄에 설날이 있으며, 음력을 쓰는 아랍과 이스라엘 등 중동지방도 이와 비슷하다. 설날은 원래 지금 양력으로 춘분이 들어있는 3월 경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다만, 중동에서 모하메드 혁명으로 변질된 이슬람 달력은 순수 음력만을 고수하며, 윤달을 두지 않는다. 이슬람 명절 라마단은 계절과 관계 없다. 그래서 라마단이 여름에도 오고 겨울에도 온다. 그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명절이 계절과는 너무 맞지 않아서 생활에 큰 불편을 주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엔 어색한 명절이 되고 만다. 이슬람 종교는 명절을 비롯하여 여성 할례, 이자 금지법 등을 보면 계율이 사람의 생활을 자유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불편을 주고 있다.
아무튼 설날이 지금처럼 겨울이 된 것은 로마시대에 황제들의 농간과 태양신을 믿는 종교적 영향력이 맞물려 빚어놓은 결과이다.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원래 달력 1월에 로마가 섬기는 신들 이름을 먼저 넣기 위해 두달을 추가하여(당겨서) 신들의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새해가 두 달 빠른 겨울부터 시작된다. 1월은 “January (Janus 신의)+ary(달)", 2월은 "February(깨끗하게 하는 제사(Februa, 2월 15일)의)+ary(달)"가 그 예이다. 원래의 정월과 2월을 우상에 불과한 태양신의 이름 야누스와 청결신의 이름 페브룸이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새해 출발(행진)을 뜻하는 1월 달 "March"가 3월 달로 밀려나고 말았다.
둘째, 황제들이 자기 이름을 달의 이름으로 집어넣어 사용하게 했다. 그래서 시저의 탄생월인 7월과 아우구스투스의 탄생월인 8월에 그들의 이름을 끼워 넣어서 달 표기가 7월 8월은 원래보다 두달 뒤로 밀려나 버렸다. 그래서 9월과 10월을 원래 7월인 “September”와 8월인 “October”라고 틀린 용어를 쓰고 있다. 여기에 황제가 탄생한 달은 큰 달이어야 한다는 욕심으로 7월과 8월을 31일이 되도록 무리하게 날짜까지 조정하였다. 하여 지금 달력은 1년 중 큰 달(31일)은 7회나 되고, 그 대신 2월은 28일로 줄어들어 기형적인 달력이 된 것이다.
셋째, 음력 달력도 중국 음력은 다시 한 달 당겨진다. 생활달력보다 천문학적 태양력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생활상의 하루는 아침이 시작이지만, 천문학적 하루는 어두운 0시에 시작한다(성경의 하루는 달이 뜨는 저녁부터 시작). 이와 같이 생활상의 새해는 따뜻한 봄 철이 맞지만, 중국 음력은 천문학적 봄, 곧 황도를 중심으로 한 태양 운동을 감안하여 겨울 철로 잡았기 때문이다. 새해를 춘분으로 하지 않고 입춘을 기점으로 정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중국 음력과 같기 때문에 봄이 오기 한 달 전, 곧 추운 겨울에 설 명절을 맞아야 한다.
5. 설날은 본래대로 돌아가야
이 달로 새해의 시작, 곧 달의 시작이 되게 하라(출 12:2).
시작을 의미하는 설날은 원래 봄이 맞다. 만물이 싹을 내는 봄이 시작이기 때문이다. 명절은 추울 때보다 따뜻할 때가 낫다. 따라서 1년 중 새해 설날은 성경달력이 제시한 봄이 가장 적합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새해와 달의 시작은 봄을 맞는 3월을 말한다. 로마가 만든 양력도 원래는 3월이 새해이었다.
원래는 식물들이 생장을 시작하고, 동물들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펴는 새봄에 새해를 시작하는 것이 순리다. 그것이 계절에 맞으며 자연친화적이며 인간의 생활 환경과도 부합한다.
성경의 설날 기록은 성막 준공일(출 40:2), 학사 에스라 귀환일(에 7:9), 히스기야의 성전청결(대하 29:17) 등이 있다.
창조질서나 자연질서가 보여주는 시작은 봄이지만, 사람은 그 질서와 엇박자를 내며 한 겨울을 시작 시점으로 잡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같이 꽁꽁 얼어붙은 혹한기에 설을 쇠는 것은 무언가 어색하다. 그래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설날도 바꾸고 달력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잘못된 문화가 습관화되어 있고 몸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에...
따뜻한 봄을 두고 꽁꽁 얼어붙는 엄동설한에 설 명절을 쇠고...
영어달력을 보며 "7(월)"을 써놓고 "9(월)"라고 읽어야 하고..
큰 달(31일)은 일곱번이나 두면서 2월은 28일로 쭈그려 놓고..
이렇게 우리는 잘못된 것도 몸에 배면 어색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사람은 그릇된 역사를 새롭게 바꾸기도 하고, 바른 역사를 왜곡·퇴화시키기도 한다.
사람은 찾아낸 진실과 실체도 정서가 다르면 보지 않으며, 관심이 없으면 그대로 둔다.
(종교와 정치도 정서가 만든 이념의 굴레가 실체를 못보게 한다)
우리는 왕과 신들이 왜곡·퇴화시킨 설날(새해)과 기형적인 달력을 지금 바꾸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역사의 실체만은 바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2017년 설을 맞는 우리가 생각을 좀 해 볼 사안이라고 본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설 잘 쇠시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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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종교와 정치도 정서가 만든 이념의 굴레가 실체를 못보게 한다" 매우 동감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프레임"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구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세대나 대구밖에 있는 저희 세대들이나 읽는 것들, 보이는 것들이 달라 이념 성향의 차이가 있는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설이라는 명절을 통해 그러한 서로의 이념들을 이해하는 자리가 없는것이 아쉽습니다.
그렇구나!
요즈음 내가 대구에서 태어나고 ㅅㅅㅇ가이고
기독교인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숙모와 함께 청라언덕 90계단을 오르고, 언덕 위 의료박물관을 돌아보며 새힘을 얻었다.
대구에서 3·1 만세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은 계고와 신명고 학생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이었으며
의료 불모지 대구에 제일 먼저 병원을 지어 공헌한 기관도 동산기독병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구 정서도 늘 시대에 후지기만 한 것은 아니고 이처럼 선각자들도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캄보 아들과 조카들과 설날 대화에서도 대구와 다르게 미래를 기대할 수 있으니..
그래도 대구는 우리들 고향이니 아끼면서, 새로 살려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작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차례의 본질인 "살아있는 윗어른과의 대화"( 저는 제사도 중요하겠지만 살아있는 우리 가족들의 행복을 더 중요시해야 하는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 를 찾을 수 있고, 행 할 수 있다면 조금은 다른 각자의 이념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우 조카 귀한 의견 올려주어 고맙구나.
"제사보다 살아있는 가족 더 중시해야"라는 의견도 절대 공감하고...
윗 글은 조상제사나 명절 차례를 평가하려고 쓴 것은 아니고,
설과 관련된 제사(제천의례와 조상제사)의 기원이나 역사적 실체를
찾아보고 생각도 해보며 설을 쇠자는 뜻으로 써 본 글이다.
그 정도로만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대환 알겠습니다^^
현실의 현상에 대해 이해하는 데이 있어 말씀해주신 기원이나 역사적인 본질이 그러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에서 발견되고 있는 여러 의문점들이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글의 본질과 다른 의도로 해석이 되었나 봅니다. 이것또한 제가 보고싶은것만 보는 함정에 빠진것은 아닌지 되돌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