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세차고 하늘 높아 원숭이 울음소리 애닲고 맑은 물가 하얀 모래톱에 새들 날아 돌아든다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 쓸쓸하고 끊임 없이 흐르는 긴 강물 흐름 도도하다 만리 먼 곳 슬픈 가을마다 나그네된 이 몸 한평생 갖은 병 이고 홀로 누대에 오른다 어렵고 힘든 삶에 귀밑머리 다 희어지고 늙고 쇠약한 탓에 술잔 잠시 멈춰야 하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당시 중 하나입니다. 한글보급을 위해 간행한 두시언해에 수록된 글인데 그 번역이 고풍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등고는 두보가 56세때 성도에서 기주로 옮겨 가 살 무렵 중양절 (음력 9월9일)을 맞아 스산한 가을바람에 낙엽이 흩어져 떨어지는 높은 산위에 앉아 삶의 무상감을 느끼며 그 쓸쓸한 심회를 읊은 작품입니다.
무한한 자연의 흐름 속에 비춰진 인생의 무상함이 대구법과 선명한 이미지를 통하여 잘 나타나 있지요. 先景後事(먼저 경치를 노래하고 나중에 자신의 심정을 얹어 노래하는 방법)의 묘사를 통하여 주제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전반부(수련과 함련)에서는 자연적인 배경을 읊고 후반부(경련과 미련)에는 전란으로 인한 유랑생활과 병마에 시달리며 살아온 시인의 고된 삶이 드러나 있습니다.
자연은 유구한데 인생은 살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계절탓이 아니라도 서글픔을 이겨내기 힘들었나 봅니다. 하물며 번잡하면서도 고독한 세태에서 우리의 앞날은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