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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족보의 유래
우리민족의 족보 유래는 본래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고려 중엽이후 즉 1047년부터 1082년 고려 제11대 문종조(文宗朝)에
이르러 성씨가 없는 사람은 과거응시를 못하도록 제도화(制度化)함에
따라 성씨가 많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역대 문헌에 의하면 역대 왕실에는 세보(世譜)가 있었으며,
사대부(士大夫)의 가문(家門)에는 가승(家乘)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씨는 사용하여도 족보에는 기술하지 않다가 족보를 체계화한 것은
성종(成宗)초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연혁)>
현재 전해지고 있는 족보중에는 서기1423년
조선 세종5년계묘(癸卯)년에 발간된 문화유씨 영락보(榮樂譜)인데,
구월산(九月山) 대승공(大丞公) 묘하 재실(齋室)에 보관중이나
서문(序文)만 전하고 실물(實物)은 없습니다.
그 후 1476년 成宗7년 丙申년 발간된 안동권씨의 성화보(成化譜)인데
이 성화보는 태종조 집현전 대제학이였던 권제(權 )와 세종조 영의정이였던
소한당(所閑堂) 권람(權擥)부자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이 족보의 서문은 세종조의 거유(巨儒) 서거정(徐居正)이 썼으며
(서거정은 여말선초의 석학(碩學)이며 太祖朝의 大提學이였던 양촌 권근의 外孫임)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奎章閣)에 희귀고본(稀貴古本)으로
진장(珍藏)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 1562년 명종17년 임술년(壬戌年)에 발간된
문화류씨(文化柳氏) 가정보(嘉靖譜)에는 자손은 처손 외손을 포함
4대조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현존하고 있다.
그 후 1792년 정조16년 임자(壬子年)에는 씨족령(氏族令)을 공포하여
각 씨족별로 족보발행에 착수하였으나 약70년간은 보책을 출간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조선 왕조의 세보(世譜)>
조선 왕조의 세보는 왕조별로 각각 분류하여 기록 보존되어 왔으며
김관의(金寬懿)가 지은 王代實錄과 1897년 광무원년 정유년에 기록된
임경숙(任景肅)의 조선왕실록인 선원록(璿源錄)등의 世譜를 모체라 하여
이 자료 기록 내용에는 왕실의 친족인 종실(宗室), 종자(宗子), 종녀(宗女)를
기입하고 각 파별 세보는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의 선원록은 숙종년대에 보간(補刊)하여 왕이 즉위할 때마다 보간하여
오던 것을 1897년 과우원년 정유년에 17권을 改刊한 것이 오늘날 조선왕조의
대표적 족보입니다.
족보의 형태는 대체적으로 조선조에 들오와 상신록(相臣錄), 공신록(功臣錄),
장신록(將臣錄)등이 정리됨에 따라 각 씨족의 시조나 부자 관계를 어느 부분이나마
계통(系統)을 알게된 것을 기초로 하여 편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