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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같이 따뜻한 봄날이다. 팔녀투강기념비(八女投江纪念碑)가 서있는 강변공원은 봄놀이를 나온 시민들로 붐빈다. 공원에는 가지가지 꽃들이 만발하여 상춘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해가 높이 뜨자 흰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인이 꽃다발을 안고 공원에 들어선다. 여인은 눈 한 번 팔지 않고 팔녀투강기념비를 지나 곧추 강변으로 걸어간다. 역시 꽃다발을 든 사람들이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른다.
강변에 이르자 여인은 꽃다발을 한 쪽에 고이 놓고 가방에서 술병을 꺼내 마개를 열고 술을 잔에 붓는다. 그리고 “여보!” 하고 속삭이듯 정답게 부르며 잔의 술을 강물에 뿌린다. 그의 부름에 화답이라도 하듯 강물이 후드득후드득 소리를 낸다.
이윽고 그 뒤에 줄느런히 서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선다. “호림이! 우리가 왔네!”, “추이꼴리! 우리가 왔소!” 하고 손나발을 해서 조선어로 한어로 걸걸하게 외친다. 외침소리와 함께 술이 쏴르르 쏴르르 강물에 뿌려진다.
잠시 후 몇 개의 꽃다발이 강물에 떠 뱅뱅 돌다가 출렁출렁 흘러간다.
최호림의 기일이면 그의 마누라와 친구와 전우들이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다.
추이꼴리(崔高丽)는 최호림의 별명이다. 역사에 유례없는 그 세월을 겪은 이곳 사람들은 “추이꼴리” 하면 그때 일을 추억하며 그의 이야기를 전설같이 하군 한다. 세월이 흘러 그 유명한 별명도 그의 이야기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친구들은 여전히 잊지 않고 그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깊은 상념에 잠기군 한다.
만인대회
1968년, 그 해 봄은 유달리 변덕스러웠다. 길녘 화원의 꽃나무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가로수들이 연록 색 새잎을 뾰족뾰족 내밀어도 꽃샘추위가 계속되더니 나중에는 꽃잎이 아닌 눈꽃이 펄펄 흩날리기도 하였다.
그날도 날씨는 찌뿌둥하였다. 진눈깨비가 희뜩희뜩거리는 가운데 난데없는 자동차 대열이 북소리 징소리를 꿍꽝칭칭거리며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시민들에게는 귀 따갑도록 들어온 소음이었다. 요즘은 대연합이요 탈권이요 하며 즘즉하기에 세상이 좀 조용해지나 싶었다. 그런데 혁명위원회까지 선 마당에 이게 또 무슨 변고인가. 그 꿍꽝거리는 요란한 소리에 놀라 뛰쳐나온 사람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황황한 눈길로 바라보는데 자동차 대열에서 확성기 소리가 울려 나왔다.
“내일 ‘추이꼴리’를 비판투쟁하는 만인대회가 열립니다. 모두들 강변광장으로 가십시오! ”
이어서 앙칼진 구호소리가 터졌다.
“반혁명분자 ‘추이꼴리’를 타도하자!”
“조선 특무 ‘추이꼴리’를 타도하자!”
“문화대혁명 만세!”
“모주석 만세!”
……
그 소리에 얼떨떨해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니 갑자기 또 누굴 타도한다우?”
“추이꼴리도 모르오. 88반란단의 우두머리 최호림 말이요.”
“아, 추이꼴리, 알지요, 아다마다. 근데 왜 그 사람을 투쟁한다우?”
“글쎄 누가 알겠소?”
한창 찧고 까불고 하는데 또 하나의 자동차 대열이 꿍꽝칭칭거리며 다가왔다. 구호소리가 울렸다.
“혁명적 좌파 최호림을 석방하라!”
“최호림에 대한 날조와 중상을 중지하라!”
“홍색의 탈권은 음모다,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해방군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두 번째 자동차 대열이 지나가자 사람들은 더욱 얼떨떨해졌다. “이건 또 뭐유?”
“아깐 홍색이구 이건 88이 아니오. 홍색이 물고 늘어지는 데다 군대가 지지하니 천하의 추이꼴리도 이번에는 못 살아날 것 같구만.”
“또 큰 구경거리 하나 생겼군.”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또 한 바탕 난리가 일어날 것 같은 위구심에 가슴을 조였다.
최호림을 비판투쟁 한다는 소식은 이렇게 삽시에 시내 구석구석까지 퍼져갔다.
최호림 비판투쟁대회는 강변광장에서 열렸다. 8녀 항일영웅투강기념비를 세우고 만든 광장이었다. 시민들이 선열들을 기리고 휴식의 한 때를 즐기는 유원지였으나 지금은 집권파를 투쟁하고 반란단끼리 세력을 다투는 살벌한 싸움터로 되어버렸다.
무대는 기념비 맞은 켠에 설치되었다. 요란한 구호소리 속에 최호림과 그의 측근들이 끌려나와 섰다. 최호림의 목에는 이름자에 붉은 글로 가위다리를 친 큼직한 철판개패가 걸려 있었고 측근들의 목에는 검은 글의 목판 개패가 걸려 있었다. 곁들여 투쟁한다는 뜻으로 페이떠우(陪斗)라 했다.
광장은 시 내외 곳곳에서 모여온 사람들로 꽉 찼다. “홍색반란단” 이란 붉은 완장을 팔에 두른 국방색 일색의 젊은이들이 앞자리를 차지했고 그 뒤는 회색, 검은색 같은 어두운 색 옷차림을 한 군중들이 줄느런히 앉았다. 회장 주위를 홍색이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그 둘레를 88이 또 둘러싸 이중의 사람 울타리가 쳐졌다.
주인공이 등장하자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금방 입을 다물었다.
무대 중간에 선 최호림은 고개를 들어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찢기고 멍이 든 퉁퉁 부은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고개 숙여!”
곁에 지키고 있던 사람이 소리쳤다. 그러나 최호림은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번쩍 쳐들었다.
“고개 못 숙여?”
곁에 지키고 있던 사람이 최호림의 머리를 힘껏 눌렀다. 그러나 눌렀던 손을 놓자 머리는 용수철이라도 박힌 듯 불끈 솟구쳐 올랐다. 목이 꺾이도록 다시 내리 눌렀다. 용수철은 역시 보란 듯이 튀어 올랐다. 회장이 술렁거렸다. 녀석이 화가 나 씩씩거리며 주먹을 쳐들었다. 이때 무대 한 쪽에 서있던 사람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마이크 앞에 다가섰다.
“홍색 반란단 전우들, 혁명군중 여러분, 지금부터 반혁명분자 88반란단의 두목 최호림을 비판투쟁하는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최호림보다 추이꼴리가 더 익숙할 지 모르겠습니다. 예, 저기 중간에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서있는 자가 바로 추이꼴리입니다. 그럼 먼저 시혁명위원회 부주임이며 홍색반란단 단장이신 고위동(高卫东)동지께서 최호림의 죄상을 공소하겠습니다.”
최호림의 옹골찬 몸집에 대조적으로 우럭지게 생긴 젊은이가 마이크를 받았다.
“혁명적 반란파, 혁명적 군중 여러분, 88반란단의 두목 최호림은 우리 혁명대오에 숨어 있는 반혁명분자입니다. 그는 위대한 수령 모주석께서 창건하시고 림부주석께서 지휘하시는 인민해방군을 악독하게 모독하고 모주석께서 직접 발동하신 문화대혁명을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미쳐 날뛸 수 있은 데는 그럴 만 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농이며 일제 앞잡이인 촌장의 자식으로 계급의 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정주의 조선 특무 혐의가 있는 자입니다……”
그의 발언은 폭탄처럼 광장의 관중들 머리 위에 터졌다. 앞쪽에서는 “최호림을 타도하자” 는 구호소리가 광장이 떠나갈 듯 울렸고 뒤쪽에서는 놀랍다는 듯 어어 하는 소리, 못 믿겠다는 듯 쉬쉬 하는 소리가 구호소리에 뒤섞여 일어났다. 그보다 회장을 에워싸고 있는 88반란단원들이 “엉터리없는 날조이다!”, “파렴치한 모함이다!”, “투쟁대회를 때려치우라!” 는 함성소리와 함께 밀물처럼 회장 안을 들이 밀었다. 홍색의 울타리에 부딪치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확성기가 울렸다.
“88반란단 전우들! 당신들은 최호림에게 속았다! 지금이라도 그를 버리고 돌아서라! 아니면 당신들도 엄벌을 받을 것이며 최호림은 더욱 비참한 끝장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들은 최호림을 쪽걸상 위에 올려 세웠다. 목에 걸린 개패가 흔들리며 최호림이 엎어질 듯 휘청거렸다. 그러나 금방 중심을 잡고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순간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최호림의 목소리가 울렸다.
“88전우들, 나는 떳떳하다! 우리는 떳떳하다! 흥분하지 말고 참으라! 그네들이 미쳐 날뛰게 내버려 두라, 미쳐 날뛸수록 간악한 음모와 추악한 몰골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예나 다름없이 쩌렁쩌렁 울리며 사람들의 가슴 속을 파고 들었다.
아우성치며 밀어 닥치던 88반란단의 성난 밀물이 그의 한 목소리에 물러갔다.
대회는 계속되었다. 고위동의 적발 발언은 약 20여분 이어졌다. 그의 발언에 이어 또 구호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사회자가 그만하라고 손을 들어 눌렀다.
“다음 피고 최호림에게 발언 기회를 주겠습니다. 최호림, 죄를 승인하는가?”
최호림은 잠깐 머뭇거렸다. 개패가 목을 끊어질 듯 조여 오고 쪽걸상에 선 다리가 넘어질 듯 후들거렸다. 그러나 금방 오뚜기처럼 오똑 자세를 바로 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우선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네요. 제멋대로 죄를 덮어씌우고 한 주먹에 때려죽일 줄 알았는데 이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은 것 같군요. 나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는 걸 보니까.”
그는 장내를 휙 둘러보았다. 문화대혁명 초기 변론의 고수로 소문났던 그때의 그 기상이 되살아난 듯하였다. 관중들은 그의 여유작작한 모습을 바라보며 하회를 기다렸다.
“방금 고위동 단장의 발언을 잘 경청하였습니다. 조리 있게 짜 맞춘 나무랄 데 없는 발언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발언은 추호의 진실도 없는 완전한 날조고 모함입니다. 홍색반란단은 겉으로는 연합하여 탈권하려는 척 해놓고는 저들이 혼자 탈권하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 음모에 저를 제물로 삼은 것입니다. 일격의 가치도 없지만 그들의 노고를 생각해서 한 마디 하려 합니다. 첫째, 제가 해방군을 반대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해방군이 착오를 지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홍색 그들입니다. 여러분, 모주석께서는 혁명적 좌파를 지지해 주라고 해방군을 보냈습니다. 대연합을 이루어 주자파로부터 권력을 탈환하고 혁명을 계속 하라고 해방군을 보냈습니다. 우리 88과 홍색은 어렵사리 대연합을 하고 탈권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해방군이 홍색의 작간에 넘어가 그들의 단독 탈권을 지지해주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모주석의 말씀을 빌면 하룻밤 사이에 산에서 내려와 복숭아를 따먹었단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게 해방군이 할 짓입니까? 홍색을 혁명적 좌파여서 지지했다면 그럼 88은 반혁명적 좌파란 말입니까? 그래서 찾아가 따졌습니다. 이건 두 파가 다시 총부리를 마주대고 싸우게 충동질하는 행위라고. 이게 그래 해방군을 반대한 겁니까? 나는 해방군을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그만큼 해방군의 위상을 훼손하는 행위를 용인하지 못합니다. 나도 일찍 해방군의 영예로운 전사였습니다. 총을 들고 전장에서 피를 흘리며 싸웠습니다. 그때 저들은 아마 강보에 싸여 어머니 젖을 뻑뻑 빨고 있었을 겁니다!”
관중석에서 와 웃음소리가 터져 올랐다.
“최호림, 닥치지 못해!”
사회자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그 소리에 최호림이 목소리를 높여 관중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저 사람들이 말을 하라 해놓고 또 하지 말라 합니다. 그만 둘까요?”
“아니요! 계속하시오!”
뒤쪽의 관중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최호림이 사회자를 돌아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다음은 단도 문제. 저는 평소에 단도 다시 말하면 장도(粧刀)를 호신부로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그날 해방군 수장을 찾아갔을 때도 무심코 그대로 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수색에 걸려들었습니다. 단도를 발견한 경위원이 단도를 가지고 수장을 찾는 의도가 뭐냐며 따지고 들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의도도 없다, 호신부로 지니고 다니는 장도일 뿐이라고 설명했지요. 그러자 경위원이 호신부인지 살인용인지는 두고 보자면서 다짜고짜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빼앗기지 않으려고 용을 쓰니 그 군인이 ‘너 죽고 싶어!’ 하며 나의 팔을 잡아 비틀며 머리를 벽에 탕 부딪쳤어요. 손을 들어 이마를 만져보니 아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국민당!’ 저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 한 마디가 튀어 나왔습니다. 이게 제가 해방군 수장을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장내가 다시 바람 속의 갈대숲처럼 술렁이었다. 회장을 둘러싸고 있던 88단원들이 “모함이다!”, “음모다!”, “최 단장을 풀어주라!”고 외치며 장내로 밀려들었다.
당황해 난 사회자가 힐끔 눈짓했다. 그러자 곁에 지키고 있던 녀석이 최호림이 디디고 서있던 걸상을 냅다 걷어찼다. 최호림이 걸상에서 떨어지며 나동그라졌다. 잠시 후 그가 기어 일어나 비석처럼 버티고 섰다. 입 안에 괸 피를 탁 뱉어 냈다. 그리고 외쳤다.
“이자들이 하는 짓이 국민당이 했던 짓과 무엇이 다릅니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순간 악! 하는 비명소리가 울렸다. 구두발이 최호림의 무릎을 걷어찬 것이었다. 최호림은 무릎을 꺾으며 쓰러졌다.
“저런! 저런! 사람 죽인다! 사람 잡는다!”
잠시 후 최호림이 끙- 한 쪽 다리에 힘을 실으며 다시 일어섰다. 벌겋게 피발이 선 눈으로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이때 구두발길이 다시 날아 들었다. 탁! 난데 없는 몽둥이가 그의 어깨를 쳤다. 그는 폭싹 꼬꾸라지며 널부러졌다.
뒷좌석의 사람들이 일어나 앞으로 밀어닥쳤다. 회장을 둘러싸고 있던 88단원들이 가세하여 밀려들었다. 사람들이 밀리며 엎어지고 밟혔다. 울음소리, 비명소리, 아우성소리가 연방 터져 올랐다. 장내는 폭풍을 만난 바다처럼 설레며 삽시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땅! 땅! 총소리가 울렸다. 아수라장이 된 회장이 그대로 멈추며 정지화면처럼 고착되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조용하십시오. 계급적 원수의 연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놈이 발악하면 할수록 그의 정체가 더 드러날 뿐입니다.”
그의 말을 두던하여 앞쪽에서 구호소리가 터졌다.
“최호림은 죄를 승인하라!”
“자백하면 관대하게 처리하고 반항하면 엄하게 처벌한다!”
“최호림을 타도하자!”
“문화대혁명을 끝까지 진행하자!”
우뢰가 한바탕 지나간 듯 회장은 가까스로 안정을 찾았다.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그럼 다음 순서로 혁명위원회 주임께서 몇 가지 결정을 선포하겠습니다.”
혁명위원회 주임이 마이크를 받았다.
“시혁명위원회를 대표하여 다음과 같은 결정을 선포한다.
최호림은 해방군의 지좌(支左, 좌파 지지)를 반대하고 좌파를 지지한 군대를 국민당이라고 악독하게 모독하고 군관회 수장을 살해하려 하였다. 최호림은 조선 영사관 인원과 내통하며 정보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최호림은 조선전쟁 때 한 차례 전투에서 아군이 전멸된 상황에서 혼자 살아남은 적이 있다. 그 내막은 밝히고 있는 중이었다. 최호림의 아버지는 부농이며 왜놈의 앞잡이 촌장이었다. 다시 말하면 최호림은 계급적 원한을 품고 혁명파 내부에 기어들어 반란을 일으킨 계급이색분자였다.
이상 죄상에 근거하여 본 위원회는 최호림의 당적을 취소하며 그의 당 내외 일체 직무를 철소하기로 결정한다. 동시에 군관회에 넘겨 형사 책임을 추궁한다.”
그의 말이 끝나자 대기하고 있던 군인 두 명이 무대에 올라가 쓰러져 있는 최호림에게 수갑을 채웠다. 최호림은 들것에 들려 어디론가 실려 갔다.
무대 앞쪽에서 또 다시 구호소리가 울렸다.
고요하던 관중들은 그제야 하나 둘 일어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표정은 각각이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추이꼴리”란 이름은 “지독하다”, ”대단하다” 는 형용사와 더불어 입소문으로 온 시내에 퍼져나갔다.
이튿날 신문에 《반혁명분자 최호림 비판투쟁 만인대회 진행》이란 제목의 기사가 1면 톱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1월 폭풍의 또 한 차례 승리》라는 사설을 곁들였다. 신문보도는 추이꼴리에 대한 입소문을 한 층 더 부풀렸다. 추이꼴리는 일약 인기인물로 떠올라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구치소에서
최호림은 어느 건물 지하실에 갇혔다. 해방 전 일제의 경찰서 건물이었다.
뙤창 하나 없는 음습한 콘크리트 협실, 그 속에 네댓 명 “정치범”들이 갇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3반분자”요, “특무”요, “변절자”요 하는 죄명을 쓰고 끌려 온 사람들이었다. 감옥이란 걸 영화에서나 보아온 그들은 지옥의 문턱에 들어선 듯 절망에 빠져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하긴 무법천지인 그 세월에 언제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밥이 목에 안 넘어가도 먹어두시오. 먹어야 살아서 나갈 게 아니요.”
최호림이 시뻘건 수수밥을 소금물에 배추 잎 몇 잎 띄운 국에 말아 한 입 떠 넣고 어귀어귀 씹었다. 워낙 부접이 좋은 그는 며칠 사이 벌써 그들과 무난한 “옥우(獄友)”로 되어 있었다. 그의 권유에도 옥우들은 몇 술 뜨다 말든가 아예 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말 안 먹을 라우? 그럼 내가 다 먹겠소. 뒷말 없기요.”
제 밥그릇을 어느새 뚝딱 해치운 그가 옥우의 밥그릇까지 당겨다가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번듯이 드러누웠다. 전우들이 그리웠다. 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홍색과의 마지막 일전을 계획하고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탈권에서 배제당한 마당에 더욱이 해방군의 지지를 잃은 처지에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면 뿔뿔이 헤어져 갔을까? 헤어져도 몇몇 지우들은 나를 빼내기 위해 방법을 대고 아래위로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는 수천 명을 거느리는 반란단의 단장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수천 명을 거느린다는 것은 군대로 말하면 사장 급이란 말이 된다. 탈권에 성공하여 혁명위원회에 들어간다면 적어도 부시장 급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천방야담 같은 얘기다. 황당하긴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뻐근하기는커녕 두려워 가슴이 조였다. 그는 결코 그런 지위를 위해 반란을 한 건 아니었다.
조선전쟁이 끝나 전업한 그는 이 시정부의 기요과 과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였고 실적도 올렸다. 그러나 앉은 석동이 아닌 앉은 열동으로 제자리걸음을 하였다. 남들이 사다리를 타듯 한 급 한 급 승진하는 것이 부러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워낙 곧은 성격이고 모가 나있는 데다 고집이 세고 엇서기를 잘해 상급의 눈에 미운 털로 박혀 있던 그였다. 그런 와중에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무서운 홍류에 휩쓸려 들어갔다. 그저 모주석의 호소라고 무조건 따랐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언변이 좋은 그는 모주석의 최신지시는 물론 《인민일보》사설까지 얼음에 표주박 밀 듯 줄줄 외울 수 있었고 그것을 밑천으로 열변을 토하여 변론에서 번번이 이기고 그렇게 쓴 대자보가 이름이 나 일약 반란단의 요직에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202공장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이 그를 반란단의 우두머리 자리로 떠밀었다.
202공장은 경무기와 탄알을 만드는 군수품 공장이었다. 역시 88 거점의 하나였다. 그 거점의 지휘자가 그였다. 그날 홍색이 습격해온다는 정보를 접한 그는 만단의 준비를 했다. 습격의 목표가 무기창고일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결사대를 조직해 직접 거느리고 길목과 요소를 지켰다. 자정 무렵, 홍색이 두 조로 나뉘어 쳐들어왔다. 주요 골목에서 조우전이 벌어졌다. 살금살금 기어드는 홍색을 발견한 88매복조가 먼저 돌팔매를 날리자 홍색이 일제히 사격을 들이댔다. 돌팔매로 당해낼 수 없게 되자 88은 공포를 쏘기 시작했다. 실탄을 쏘지 말라는 최호림의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 총질을 해대던 양측은 마침내 맞붙어 치고 박으며 육박전을 벌였다. 이때 홍색의 다른 한 습격조가 외딴 골목으로 돌입해왔다. 워낙 상대의 병력이 많은 데다 총까지 쏘아대기에 88잠복조는 대응하지 않고 물러서 대피하였다. 홍색은 이것을 기화로 무기창고 대문으로 돌진하였다. 그들이 창고 대문을 짓부시려 할 때 난데없이 최호림이 몽둥이 패를 이끌고 나타나 “적”들을 포위하였다. 근거리라 총도 무용지물이었다. 손을 드는 자는 손을 들고 반항하는 자는 몽둥이찜질을 당한 끝에 모조리 포로되었다. 그렇게 되자 주요 골목에서 격투하던 홍색도 헛총질을 해대며 뿔뿔이 도망갔다.
전투는 88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양측 모두 부상자가 적지 않았다. 88의 한 사람은 병원에 호송되었으나 희생되었다.
그 후 88이 희생된 전우의 영구를 앞세우고 시위를 벌였다.
이로써 약세였던 88은 홍색과 비견하는 조직으로 승격했고 최호림은 단장으로 추대되었다. 물론 88내부에서 고추처럼 맵고 소가죽처럼 질기다고 불리던 “추이꼴리” 란 별명이 이 일을 계기로 온 시내에 퍼진 것도 사실이다.
수천 명을 거느리는 단장, 최호림은 그렇게 세상에 자기 존재를 과시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그는 혁명적좌파 그것도 그 조직의 지휘자란 영예를 소중히 여기며 그 영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런 자기를 만들어 준 전우들을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죄명을 씻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일주일이 흘러갔다. 답답할 지경으로 심문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둔 일주일이었다. 그러던 하루, 호출이 내려졌다.
군관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큼직한 책상을 사이 두고 마주 앉았다.
“이제부터 심문을 시작하겠다.” 시작부터 “해라” 말투였다.
“네 죄가 뭔지 아는가?”
“모르오. 죄가 없는데 어떻게 안단 말이요?”
“죄가 없다? 그런데 왜 여기 잡혀왔는가?”
“당신들이 잡아왔지 내가 걸어왔소?”
“우리 군대를 국민당이라 모욕했다며? 왜? 무엇 때문에? 네 놈의 뼛속에 든 게 뭐야?”
심문관은 어성을 높였다.
“국민당의 짓을 했으니까.”
최호림은 여전히 천연덕스럽게 응대했다.
“이 놈이 아직도 입은 살아가지고. 엎어놓고 짓밟아 영원히 되살아나지 못하게 해도(打倒在地,再踏上一只脚,永世不得翻身) 시원찮을 놈. 우리 군대를 모독하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는가? 네 죄는 묻지 않아도 뻔해! 결판이 났단 말이야! 이 반동파, 특무, 부농의 개자식!”
심문관은 제 풀에 분이 상투 끝까지 치솟은 모양이었다. 속에서 소죽 끓듯 끓던 최호림의 분노도 솟구쳐 올랐다.
“이보시오, 이게 우리 군대의 심문이요? 아니, 이건 국민당반동파의 심문이요! 이 어른이 전장에서 피 흘려 싸울 때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떼쓰던 응석받이가 뭐 말끝마다 우리 군대? 인간의 예의조차 모르는 쓰레기가!”
“뭐야, 이 새끼, 혼이 덜 났구나!”
심문관이 눈에 쌍불을 켜며 주먹을 쳐들었다.
“허허!”
최호림이 하도 같잖아 웃다가 벌떡 일어서며 정색했다.
“차렷! 모주석께서 교도하시기를 해방군은 상대가 욕을 해도 되받아 욕을 하지 않으며 때려도 되받아 손찌검을 하지 않는다(骂不还嘴,打不还手). 모주석의 말씀도 거역할 셈이요?”
그 말에 심문관은 정신이 들었는지 쳐들었던 손을 홱 내렸다. 그리고 표독스럽게 최호림을 쏘아보았다. 최호림이 같잖다는 듯 마주 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경고하는데 나를 심문하려거든 그 모자의 오각별과 옷깃의 약장을, 아니 군복을 벗으시오! 당신은 자격이 없소! 그 전에는 당신을 상대도 하지 않을 테니 그리 아시오!”
첫 심문은 이렇게 끝났다.
다음 날, 그 다음 날, 그 그 다음 날도 불려갔지만 최호림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심문관은 속이 바짝바짝 탈 뿐이었다. “망할 놈의 추이꼴리!”
이때 또 한 사람이 최호림이 들어있는 감방에 들어왔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깡마른 사내였다. 그는 하루 종일 입을 다물고 있었고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물론 밥도 입에 대지 않았다. 최호림이 그의 입을 열어보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모두가 잠이 든 밤이면 그는 벽을 마주하고 앉아서 눈물을 떨어트렸다. 그의 입에서는 “어머니, 죄송합니다.” 하는 신음소리와 같은 말이 흘러 나왔다.
이튿날도 그맘때가 되자 그 사람은 그런 행동을 되풀이했다.
최호림은 익숙해진 간수에게 살그머니 물었다. 간수는 무슨 간첩이라더라고 하며 눈을 껌뻑거렸다.
닷새 째 되던 날 군복 차림의 두 사람이 감방에 나타나 그를 데리고 나갔다.
두어 시간 지나 그는 기진맥진하여 휘청거리며 돌아왔다. 그는 실신한 듯 콘크리트 바닥 한 쪽에 쓰러졌다. 그렇게 죽은 듯 누워있었다. 한참 지나 벌떡 일어나더니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머리를 콘크리트 벽에 부딪쳤다. 쾅쾅 소리가 났다. 최호림이 뛰어가 벽에서 그를 떼어냈다.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 사람은 4층의 의무실로 호송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의무실까지 가지 못하고 4층으로 올라가자 갑자기 부축하는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열려져 있는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한다.
그 사람이 사라진 날 밤 최호림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혁명을 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보니 어머니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한 지가 2년인가 3년인가. 지금 어머니는 무얼 하고 계실까? 혹 아버지 일로 고생하고 있지나 않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가 어릴 때 그의 집은 셈평이 좋은 편이었다. 땅도 있고 여관도 하여 별로 그리운 것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그는 현성에 있는 중학교를 다닐 수도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일본 놈들이 주민들을 유격대와 단절시키기 위해 만든 집단촌에서 촌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보를 막는다, 학교를 세운다 좋은 일을 많이 하여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었다. 한편 일본인들에게도 이 마을은 안심할 수 있다 할 정도로 신임을 받았었다.
그러던 1941년 겨울,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일본 경찰이 느닷없이 집에 나타났다. 촌장의 신변에 일이 생겼다며 어머니를 데리고 갔다. 몇몇 남정들이 따라갔다. 그들은 일경을 따라 마을에서 10여리 떨어진 산 속으로 들어갔다. 산등성이를 넘어서 골짜기에 들어섰다. 그때 커다란 소나무 밑에 시꺼먼 것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었다. 모로 누워 있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어머니가 엎어질 듯 꿇어앉아 만져보니 남편은 이미 시체로 굳어있었다. 경찰은 유격대가 촌장을 유인하여 죽였다고 했다. 신고를 받고 달려왔을 때 유격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고 하면서 거듭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경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유격대가 촌장을 해칠 리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그는 착하디착한 촌장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촌장이 암암리에 유격대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일을 거들고 있던 터였다.
해방 후 그 의문사는 그때 목격했던 유격대원에 의하여 해명되었다.
그때 최촌장은 유격대에 수집한 정보를 전하러 갔던 것이다. 그런데 일경 두 놈이 그의 뒤를 밟을 줄이야. 그가 정보를 금방 전하고 돌아설 때 뒤따라 온 놈들이 최촌장을 쐈던 것이다. 그 유격대원은 달려가다가 총소리를 듣고 돌아섰으나 이미 늦었다. 최촌장은 어서 도망가라고 손을 젓다가 쓰러졌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유격대의 소재가 탄로 날 수 있어 그 유격대원은 눈물을 삼키며 그 곳을 떠나갔다……
해방되자 최호림은 조선의용군에 들어갔고 후에 4야(四野)에 편입되어 해방전쟁에 참가했으며 조선전쟁이 발발하자 지원군으로 압록강을 건너갔다.
혹 그 의문사가 다시 도마에 오른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나의 가정 역사가 왜 투쟁대회에까지 올랐을까?
어머니의 사정을 아내는 알고 있을까? 아니, 그도 모를 것이다. 그도 감시를 받고 있을 것이다. 남편의 문제를 적발하고 계선을 가르라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있을 것이다. 면회도 할 수 없어 남편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형편에 도울 래야 도울 수도 없으니 얼마나 애타고 답답할까? 게다가 아내는 홀몸이 아니었다. 뱃속의 아기는 잘 크고 있을까? 만인 투쟁대회의 충격에도 녀석은 끄떡 없었겠지? 아빠, 힘내세요, 하고 엄마 배를 톡톡 차며. 십 수 년을 애타게 기다리던 끝에 기적 같이 들어선 아기였다. 여보, 너무 걱정 마오. 꼭 돌아갈 테니까……
며칠 전까지도 꼭 그렇게 되리라고 그는 믿었었다. 그런데 그 깡마른 사내가 그렇게 사라진 후 그는 그만 자신감을 잃었다. 칼자루는 그자들에게 쥐어져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끌어내 죽일 수 있었다. 증거도 필요 없었다. 너도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무법천지인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국가 지도자들이, 간부들이, 선량한 사람들이 변명도 못해보고 원혼으로 사라졌던가? 생각할수록 불안만 더해갔다.
그가 묵비권을 행사한 후 며칠 검찰관은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게 더욱 그를 불안하게 했다. 전에는 다리의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 지금은 이름 못할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죽는 게 겁나서가 아니었다. 누명을 쓴 채 개죽음을 당할까봐 겁이 났다.
비몽사몽간에 그의 단도가 그 앞에 나타났다. 금빛으로 번쩍거렸다. 단도를 잡으려는 순간 단도는 그 단도를 그에게 주었던 정할아버지로 변했다.
“두려워 마라. 그 단도가 너를 지켜줄 게다.”
“할아버지, 죄송하게도 단도를 잃어버렸는데요.”
“아니다. 단도는 너의 가슴 속에 있네라.”
할아버지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다. 단도는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살아있었다. 그것을 확인하면서 그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갔다.
미결수
그러던 어느 날 최호림은 호출을 받았다. 이곳을 떠난다고 했다. 이게 끝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심장이 금방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다리가 굳어져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 그는 끄응 막대기에 힘을 실으며 발을 내디뎌 철창문을 걸어 나갔다. 군인들에게 끌려 밖으로 나가 차에 올랐다.
차는 시내를 벗어나 교외의 흙길을 들추며 달렸다. 황천길이란 낱말이 떠올랐다. 그는 픽 쓴웃음을 지었다. 소풍이라도 나온 듯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 최호림이 끌려간 곳은 사형장이 아니라 미결수 감옥이었다. 조건이 구치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좋았다. 마루침대에 담요가 있고 화장실도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도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어 좋았다. 마치 지옥에서 천당으로 온 것 같았다. 그는 그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마주하고 서서 기지개를 켰다. 살 것 같았다. 살 날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송 된 이튿날 그는 호출을 받고 심문실에 들어섰다. 책상을 사이 두고 마주 앉은 사람은 40대 군인이었다.
“최호림 동지, 동무의 사건 검찰을 맡은 장호연입니다.”
“동지!”, 얼마 만에 들어보는 말인가. 순간 코끝이 찡해나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 호칭이 그렇게 소중하고 따뜻한 줄 몰랐다.
“우리는 나이도 비슷한 것 같네요. 나도 총을 메고 강을 건넜던 사람입니다. 이만하면 군복을 벗지 않아도 나와 대화를 할 수 있겠지요?”
최호림은 엄숙하나 서글서글한 장호연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럼 본문에 들어갑시다. 동무가 해방군전사를 국민당이라고 한 것은 모욕적인 언사이긴 하지만 홧김에 던진 말로 치고 더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단도를 지니고 군대표 수장을 만나러 간 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최동무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달리 보면 엄중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단도는 그만두고 과도를 숨기고 들어가 상대를 죽인 사례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 당시 최동무는 군대표에 대한 불만으로 무척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동기 부여가 가능하단 말입니다. 우선 이 문제부터 시작합시다. 며칠 시간을 줄 테니 곰곰이 생각해서 사실 경과와 설명 그리고 증거를 상세하게 서면으로 제출해 주십시오.”
질서정연하고 사리분명한 말에 최호림은 수긍이 갔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최호림은 장호연이란 군관을 다시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감방에 돌아온 그는 한참 넋을 놓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만난 장호연은 구치소의 그 심문관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누가 봐도 상식적인 문제를 물고 놓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우호적이나 그 웃음 속에 칼이 들어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여하튼 상대가 선의를 보였으니 이 기회를 잘 이용하여 진실을 밝히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기억을 더듬으며 진정서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중국인민지원군 xx사 사일정(謝一亭) 사장의 통역 겸 통신원으로 있을 때였다.
한 번은 사장의 지시로 기밀문건을 조선인민군 부대에 전달하러 가게 되었다. 산길을 따라 10여 리 가다 보면 20여 호 되는 산간마을을 만나게 되었다. 이 마을에 정씨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가족들을 놈들의 폭격에 잃고 혼자 외롭게 사는 할아버지였다. 전번에도 이 할아버지의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인민군의 통제구역 내에 있어서 무난히 통과하던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분위기가 달랐다. 호송을 맡은 두 전사가 조심조심 길을 더듬어 가고 있는데 뜻밖에 튀어나온 적병과 맞닥뜨렸다. 두 전사는 나에게 눈짓을 보내고 기민하게 반대 방향으로 내뛰면서 적병을 유인하였다. 나는 숲 속을 헤치고 달렸다. 이때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나는 흠칫 멈추어 섰다. 전우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지체할 수 없었다. 숲은 끝나고 숨을 곳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뒷자락에 있는 정할아버지네 집으로 달려갔다. 마침 정할아버지가 집에 있었다. 정할아버지는 나를 보자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어제 이 구역에 국군이 쳐들어 왔네. 모두들 피난 갔네.”
“근데 할아버지는?”
“나도 막 떠나려던 참이었네. 그런데 총소리가 나기에……”
정할아버지는 밖을 얼핏 내다보더니 급히 말을 이었다. “젊은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어서 숨게.”
잠시 후 밖에서 다급한 군화소리가 들려왔다. 정할아버지는 지게를 찾아 지고 낫을 들고 방문을 나섰다.
군화소리가 집 앞에서 멈추었다.
“어이, 영감! 낯선 사람 지나가는 거 못 봤어?”
“못 봤는뎁쇼. 어, 아까 저쪽으로 발자국 같은 소리가 나긴 난 거 같은데…… 아마 한참 됐지.”
군화소리가 멀어져 갔다.
할아버지는 지게짝지로 삽작문을 탁탁 하고 세 번 쳤다.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군화소리가 다시 가까워지더니 멎었다.
“빌어먹을 영감, 우릴 감히 속여? 어디다 숨겼지?”
“속이다니요, 어느 안전이라구. 못 믿겠으면 뒤져 보슈.”
놈들은 집 안팎을 마구 뒤집어댔다. 그러나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시 길가로 나간 놈들은 화가 치밀어 소리 질렀다.
“우리를 속이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어? 늙다리 빨갱이 같으니라구, 이게 네 놈의 끝장이다!”
이어 땅땅 총소리가 울렸다. 군화소리가 멀어져갔다.
얼마쯤 지나 나는 뒤뜰 움 속에서 기어 나왔다. 정할아버지가 버린 움에 나를 숨기고 나뭇가지며 북데기 같은 것을 되는 대로 덮어 음페해 주었던 것이다.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 할아버지를 방안으로 안아 들여왔다. 할아버지는 손을 허리춤에 가져갔다. 내가 눈치를 채고 허리춤을 헤치니 단도 한 자루가 나왔다. 할아버지가 피에 젖은 입을 열었다.
“젊은이, 이 칼을 받게. 우리 집의 대대로 물려온 가보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게. 자네의 호신부가 되어줄 거네.”
할아버지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고개를 꺾었다.
단도, 금으로 칼자루와 칼집에 용트림을 새긴 보도였다. 썩 후에 문물감정사에게 감정을 의뢰했더니 임진왜란시대 임금이 충신이나 공신에게 하사한 장도였다고 하였다.
최호림이 한창 써내려 갈 때 “최호림 면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면회라니? 명칭조차 낯설었다. 바깥세상과는 인연을 끊고 살아온 한 달이었다. 면회실에 들어가 보니 짐작하던 대로 아내가 와있었다. 아내는 그를 보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둘 다 서로 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둘은 한참 그렇게 마주볼 뿐 말이 없었다.
“여보!”
한참 지나 둘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당신을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요. 흑흑……”
“울지 마오. 이렇게 당신 앞에 꿋꿋이 서있지 않소!”
“고마워요, 살아 주어서.”
“그새 어떻게 지냈소? 고생이 많았겠지?”
“……”
“그래 어머니 소식은 있소?”
“저도 갇혀 사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아무 것도 몰라요.”
“그랬겠지. 아참 우리 아기는 잘 크고 있겠지?”
그 말에 아내는 흠칫하다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마오. 우리 아기가 들으면 울보 엄만 줄 알겠소. 허허허……”
“이제 더는 안 울게요. 눈물이 마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아내는 남편의 눈을 피하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지금 있는 곳은 살 만 하오. 검찰에서도 해명하려 애쓰는 것 같구. 진정서를 쓰고 있소. 당신이 해줄 일 생길 거요.”
호림은 한껏 밝은 표정을 지었다.
“제발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몸조심하오. 우리 아기를 위해서라도……”
“당신도요……”
면회시간이 끝났다. 아내는 돌아서서 안쪽 문으로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싸쥐었다.
최호림은 진정서를 써내려갔다. 할아버지한테서 단도를 넘겨받은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 할아버지 같은 백성을 위해 단도와 같은 전사가 되겠다고. 그리고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할아버지를 산기슭에 묻고 길을 떠났다.
한 번은 연락을 갔다 오다가 무명고지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나와 동행이던 두 전사, 우리는 여기서 길이 끊어지고 말았다. 고지에서 적아간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하루에 한 번 꼴로 주인이 바뀌던 고지였다. 고지를 지키던 아군은 미친 듯이 기어 올라 오는 적군의 공격에 무너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전투에 뛰어들었다.
포연이 자욱한 고지에 땅거미가 내렸다. 드디어 고지를 지키던 아군과 기어 올라온 적군 사이에 육박전이 벌어졌다. 적을 향하여 불을 토하던 나의 총이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다. 탄알이 떨어진 것이다. 내가 멈칫하는 순간, 검정황소 같은 놈이 시꺼멓게 나를 향해 덮쳐왔다. 나는 어째볼 새도 없이 그 놈에게 깔렸다. 놈은 다짜고짜 시꺼먼 손으로 내 목을 조였다. 독수리에게 덮치운 병아리가 따로 없었다. 숨이 막혀왔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목줄이 끊어질 듯 아파왔다. 이제 죽는구나 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손이 허리춤으로 갔다. 체격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보니 포개진 몸과 몸 사이에 공간이 생겼던 것이다. 손에 단도가 잡혔다.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단도를 세워 놈의 가슴을 찔렀다. 내가 움직이자 놈은 더욱 힘을 주어 나를 눌렀다. 그럴수록 칼은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혀 들어갔다. 그것을 어슴푸레 느끼면서 나는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나는 정신이 들었다. 내가 왜 바위에 깔렸지? 하는데 흑인 병사에게 깔려 목이 졸리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그 바위덩이를 떠밀어 버리고 기어 일어났다. 어스름한 별빛에 온 고지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시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기어 일어나 발밤발밤고지를 내려왔다……
단도, 그 단도는 나의 생명을 구해준 호신부였다.
그때로부터 나는 그 단도를 호신부로, 할아버지의 넋으로 가슴에 지니고 다녔다. 잠자리에 들 때를 빼고는 하루도 빼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최호림은 진정서를 써서 바쳤다. 단도에 대해, 아버지에 대해, 해방군에 대한 태도에 대해 해명하고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리고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청원서를 써서 아내를 통하여 성군구, 성혁명위원회, 중앙해당부문에 보냈다.
그의 진정서를 보고난 장호연이 답변했다. 단도 건은, 증인으로 밝힌 사일정성장이 아직 수감 중이어서 시간이 필요하고 부친 건은 당지 두 파의 의견이 달라 조사하고 있는 중인데 증인인 그 유격대원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최호림은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분명 누가 중간에서 작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라면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증명할 필요도 없는 문제를, 이미 결론이 난 문제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질질 끌 수 없지 않는가? 하지만 그로서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다만 희망을 안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석방
1968년이 저물고 음력설이 다가올 무렵 최호림은 무죄 선고를 받고 석방되었다.
일전에 성군구에서 조사조가 내려 왔었다. 조사조 조장이 그를 만나서야 그는 성군구에서 조사조를 파견한 줄 알았다. 조사조 조장은 나이 지긋한 분이었다. 배동한 군인이 그를 성군구 정치부 왕부주임이라고 소개했다. 최호림은 가슴이 철렁하였다. 이렇게 높은 간부가 조사조를 거느리고 내려오다니, 또 무슨 변고가 생긴 게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공연한 걱정이었다.
며칠 지나 그는 소회의실로 불려갔다.
조사조 성원들과 군분구의 해당 인원, 그리고 장호연 등 관계자들이 원탁에 둘러앉았다.
왕부주임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우리는 사령원의 지시에 의하여 최호림 동무의 청원서를 자세히 검토하고 필요한 조사를 했습니다. 지금 조사연구 결과를 선포하겠습니다. 첫째, 반군문제. 해방군을 국민당이라고 모독했다는 것은 해당인원의 그릇된 처사를 지적하다가 홧김에 나온 말로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로써 우리 군대를 모독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단도를 휴대하고 군선대(军宣队) 수장을 만나러 간 것이 수장을 해치려는 음모였다는 것은 추측으로 사실을 대체한 중상이다. 조사에 의하면 문제의 단도는 확실히 항미원조 때부터 최호림이 호신용으로 항상 휴대하던 장도였다고 여러 증인이 증언했다. 공격용으로 휴대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군대에 대한 그의 기타 언론도 문제로 되지 않는다.
둘째, 조선전쟁 때 변절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완전한 날조다. 그의 옛 상사의 증언에 의하면 최호림 동무는 우수한 전사로 손색이 없었다. 이른 바 조선특무건도 사실무근이다. 조선영사관 인원을 만난 적은 있지만 그는 조선전쟁 때 인민군 측 통신원으로 최호림과 가까운 사이였다. 단순한 친구 사이의 만남이었다.
셋째, 가정역사문제. 최호림의 부친이 일제의 주구였다는 것은 증인을 찾지 못했지만 해방 후 내린 결론을 인정하는 것으로 지방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이상 조사 결과에 의하여 최호림을 즉각 석방할 것을 시혁명위원회에 건의한다.”
잠자코 듣고 있던 최호림은 너무 뜻밖이어서 얼떨떨하기만 했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최호림동지, 이상 조사보고에 의견이 없습니까?”
회의 진행자가 물었다.
최호림은 한참이나 멍해 있다가 금방 정신이 든 듯 벌떡 일어섰다.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이마가 책상에 닿도록 꾸벅 경례하였다.
헤어질 때 왕부주임은 최호림의 손을 잡아 주었다.
“최동무, 그간 고생 많았소. 사일정 성장께서 문안을 전해 달라 하셨소.”
최호림은 잡은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눈물방울이 잡은 두 손에 떨어졌다.
석방되던 날, 장호연이 차압품을 돌려주었다. 군공장이며 전선에서 정리해 두었던 번역자료집, 사진첩, 도서들이며 군복 등이었다. 장호연은 다른 것은 다 있는데 단도만은 방법을 다해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였다며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최호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호림이 그를 짚차로 집에까지 호송해 주었다.
“최동무, 석방을 축하합니다.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준 데 대해 이해를 바랍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그는 감개무량한 눈길로 최호림을 쳐다보며 최호림의 손을 굳게 잡았다.
최호림은 마침내 집 문턱을 넘어섰다. 집은 알뜰히 정돈되어 있었다. 서재를 겸하던 거실은 책장이 텅 비었을 뿐 달라진 것이 없었고 오랜만에 들어서는 침실은 돌아올 따뜻한 집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였다. 그래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내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왔다. 핼쑥해진 아내의 얼굴이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아내가 상을 놓고 일어설 무렵, 아내의 몸을 눈빗질하던 최호림이 느닷없이 물었다.
“여보, 당신의 배?”
“배라니요?”
아내가 흠칫했다.
“배가 왜 훌쭉해졌소?”
아내는 대답 대신 돌아서며 훌쩍거렸다. 최호림은 일어서서 다가가 아내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미안해요, 여보.”
“괜찮으니 울지 마오. 앉아서 천천히 말해보오.”
아내는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잡혀가던 그날 한 떼의 사람들이 들이닥쳐 집을 발칵 뒤집어 놓았어요. 넋을 놓고 한 쪽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저는 그 사람들이 당신의 군공장들이 들어있는 함에 손을 대는 것을 보고 화닥닥 달려들었어요. 함을 안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바락바락 악을 썼어요. 그러다가 함을 빼앗던 사람의 발길에 차여 넘어 갔어요. 그 사람들이 차압품들을 챙겨 돌아간 후 배에 심한 통증이 왔어요. 다리 쪽이 뜨끈뜨근하기에 만져보니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이웃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유산이라고 했어요. 안 돼요, 안 돼요! 하며 아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최호림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악문 입술이 터질 지경으로 이에 힘이 들어갔다.
“개새끼들!”
아내도 더는 울지 않았다.
“미안해요, 미안해서 어쩌죠?”
“미안한 건 당신이 아니라 나요. 아기는 다시 가지면 되니까 너무 속 끓이지 마오.”
그는 아내의 어깨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래서 첫 면회를 왔을 때 아기 말이 나오자 그렇게 슬피 울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아프면서도 아기가 없어졌다는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은 아내였다.
“저는 아기를 다시는 가질 수 없게 되었어요. 유산을 한 후에 하혈이 멎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입원했어요. 양쪽 수란관을 다 적출했어요.”
최호림은 눈을 감았다. 온 몸의 기운이 쫙 빠지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아기가 무슨 대수요.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렇소? 이젠 잊기요. 지나간 나쁜 일은 다 잊기요. 그런 걸 다 기억하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거요!”
이튿날 최호림은 아내의 권유를 못 이겨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었군요. 좀 일찍 왔으면 다리를 구할 수 있었는데. 이젠 수술도 할 수 없게 되었네요. 아쉽습니다.”
최호림은 바라지도 않았던 일이라 덤덤했지만 아내의 실망은 컸다. 아내의 강권에 못 이겨 최호림은 상점에 가서 짚고 다니던 막대기를 버리고 새 지팡이를 샀다. 석방 기념이라 할까.
어머니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아버지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 사이 어떤 고생을 하였을지 상상하기도 겁이 났다. 마음이 안정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한 번 찾아가 뵈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며칠 후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동생이 형님이 석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그것도 어머니가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가지고 찾아왔다. 반 년 전, 목에 “왜놈 주구 여편네”란 개패를 걸고 투쟁을 맞고 조리를 돌리우고 하기가 일과처럼 계속되던 어느 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어머니를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거듭 말하며 어머니는 투쟁을 맞고 조리를 돌리우고 와서도 항상 형님 걱정을 했다고 동생은 덧붙였다. 형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눈물만 샘솟듯 솟으며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마음의 응어리
최호림은 몸 져 누웠다. 딱히 아픈 데도 없었다. 열도 나지 않았다. 그저 맥을 잃고 온몸이 착 가라앉아 누워 있었다. 곡기도 끊고 잠만 잤다. 무슨 악몽을 꾸는지 가끔 소름이 끼치게 헛소리를 쳤다. 그의 곁을 지키는 아내는 어쩔 줄 몰랐다. 이대로 정신 줄 놓고 잘못되지나 않나 겁이 더럭 났다. 그러던 그가 닷새 만에 깨어났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한다는 소리가 “여보, 밥!”이었다. 그 소리에 아내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가는 줄 알았잖아요!”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정성들여 쑤었다가 버린 죽이 몇 사발인지 몰랐다.
“죽다니, 내가 추이꼴린 걸 잊었소? 그렇게 쉽게 갈 거면 나지도 않았소.”
남편의 설레발에 아내는 할쭉 눈을 흘겼다. 총명하고 끼가 많아 촉망을 받았지만 또한 너무 튀고 불거져 미움을 사기도 하는 남편이었다. 그래서 반평생 살얼음을 걸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엉뚱하게 고비를 넘기며 설레발을 치는 남편이었다. 그들 부부간의 정은 그렇게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기며 깊어져 왔다.
“어, 진수성찬 잘 먹었소!”
아침도 점심도 아닌 밥상을 물리는 남편을 일별하고 밥상을 내려다보던 아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밥 한 공기를 비우지 못했던 것이다.
“좀 더 잡숫지 그래요?”
“살 날이 소털 같은데 한 끼에 다 먹겠소? 두고두고 아껴 먹으리다.” 남편은 새우 먹고 용트림 하듯 꺼억 트림을 거하게 하고 나서 한참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기어 일어났다.
“바람 좀 쐬고 오리다.”
“같이 갈까요?”
“뭐 내가 어린앤가?”
“조심해요.”
“걱정 마쇼.”
그는 지팡이를 짚고 집 문을 나섰다. 골목을 빠져 나오면 서안가 큰 거리였다. 길 가던 사람들이 괴물을 본 듯 서둘러 피했다. 길가에 서있던 사람들이 그를 보고 수근덕거렸다.
“저게 추이꼴리 아니요?”
“그러게, 어떻게 살아나왔지?”
그는 그러려니 개의치 않고 뚜벅뚜벅 세발 걸음을 계속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뒤에서 난데없이 돌멩이가 날아왔다. 그리고 “추이꼴리! 추이꼴리! 반혁명 추이꼴리!” 하는 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돌아보니 몇몇 조무래기들이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녀석들을 향해 황소 눈을 하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계속 걸었다. 이때 뒤통수가 느닷없이 따끔해났다. 손을 머리로 가져갔다. 끈끈한 것이 만져졌다. 그는 돌아서서 눈을 부라리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의 민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본 녀석들은 우와 하고 달아났다. 숱한 사람들이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표정도 없었다.
그는 우박이 쏟아지는 허허벌판에 혼자 서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보고 “왜 벌써 돌아와요? 힘들었어요?” 하던 아내는 “저 피!” 하며 다가왔다.
“새우 싸움에 고래가 다친 격이지.”
남편은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은 듯 허허 하고 웃었다.
밝은 웃음을 짓기엔 환경이 너무 삭막했다. 친구들도 동료들도 그를 찾지 않았다. 이웃들도 건성으로 인사를 건넬 뿐 그의 집 문턱을 넘어서지 않았다. 그의 집은 역시 허허벌판에 홀로 서있는 오두막이었다.
그는 다시는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바깥소식을 접했고 방에서 운동하며 신체를 단련하였다. 아내는 그의 몸을 추세우느라 음식 조리에 갖은 정성을 쏟아 부었다.
그러던 하루 원 단위에서 그를 찾아왔다.
“오래간만입니다, 최과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부하로 있던 젊은이 둘이 인사했다.
“안녕하다마다. 모두들 그렇게 보살펴 주는데 안녕하지 않을 턱이 있겠소? 그런데 어떻게? 문안차로 온 건 아닐 테구.”
“예, 당 조직이 회복되었습니다. 3시에 첫 지부활동이 있기에 모시러 왔습니다. 차가 밖에서 기다립니다.”
“어, 그래요? 고맙소. 하지만 나는 당원이 아니니까 참가할 자격이 없구만.” “당원이 아니라니요?”
“만인 대회에서 출당시키지 않았소?”
“하지만 지금은 석방되지 않았습니까?”
“죄명은 벗었지만 처분은 아직 시정되지 않은 줄로 아는데.”
“이미 시정되었다던데요.”
“단위에서 시정했다 해도 만인대회에서 선포하였으니 같은 규모의 대회에서 시정해야 인정되는 게 아니겠소. 이게 당의 정책이요. 그렇게 요란하게 북 치고 장구 치고 해놓고 이젠 수염을 쓱 쓰다듬겠다 그건 도리가 아니지.”
그들은 설득하다 못해 빈손으로 돌아갔다.
“추이꼴리는 역시 추이꼴리군!”
돌아가는 길에 그 중 한 자가 욕인지 칭찬인지 한 마디 했다.
그들에게서 최호림의 말을 전갈 받은 단위의 책임자는 책상을 땅 쳤다.
“뭐 만인대회? 그 사람 몇 달 갇혀있더니 돌았나보군. 안 오겠다면 내버려 둬. 제 아무리 추이꼴리라도 얼마나 버티겠다구.”
그러나 그 책임자는 잘못 짚었다. 최호림은 며칠 지나지 않아 민인대회의 잘못된 결정을 시정하는 만인대회를 열어달라는 청원서를 정식으로 시혁명위원회에 제출했다. 급해난 시혁명위원회에서는 인원을 파견하여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며 얼리고 닥쳤다. 그러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시혁명위원회 비서장으로 발탁된 장호연이 찾아왔다. 시에 할 일이 산적했는데 조용히 해결하자고 사정했다. 그러나 역시 이도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문화대혁명의 오류를 시정하는 일보다 더 급하고 큰 일이 어디 있느냐며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장호연은 할 말을 잃고 돌아갔다.
최호림은 기다렸다. 시에서 만인대회를 열기로 한다는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강에 던진 돌이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찾아와 긁어서 부스럼 만들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게 좋지 않느냐고 권유했다. 아내도 이젠 할 만큼 했으니 악몽에서 헤어 나와 우리 삶을 살자고 빌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드디어 전에처럼 청원서가 날아갔다. 성으로, 중앙으로 지어는 등소평 앞으로 날아갔다. 지금에 와서, 어머니를 잃고 아이를 잃고 대가 끊기고 불구자로 된 지금에 와서 명예를 회복해주는 것은 그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하다면 가슴에 맺힌 원을 풀기 위해? 아니면 알량한 자신의 존엄을 위해? 그것은 그 자신도 몰랐다.
이번에도 하늘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비판할 때 규모의 대회를 열어 잘못된 결정을 시정해 주어야 한다는 정책을 집행하라.”
각급 해당 부문의 회시가 연이어 시혁명위원회로 날아왔다. 지나간 일이라고 수염을 쓰다듬고 앉아 있던 시혁명위원회는 단 가마의 개미가 되었다. 되니 안 되니 떠들어 대던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정책을 집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된 결정을 시정하는 대회(平反大会)는 시혁명위원회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강당을 본회장으로 하고 여러 개 분회장을 설치하여 대략 만 명을 채우는 것으로 최호림과 타협을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최호림은 누명을 씻고 직무와 당적을 회복하였다. 그 소식이 신문, 방송을 통하여 세상에 공포되었다. 반응은 미적지근하였다. 사람들은 그 일에 벌써 관심이 없었다. 대신 구치소에서 “당신들은 나를 심문할 자격이 없다. 심문하려거든 군복부터 벗어라.” 고 한 최호림의 당당한 태도와 만인대회에서 뒤집어 쓴 누명을 벗기 위해, 그리고 만인대회를 열어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을 요구하여 중앙에까지 청원한 사실을 특종으로 엮은 보도는 다시 한 번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그를 전설적 인물로 떠올렸다.
최호림의 반군, 반혁명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만인대회를 열어 명예를 회복시켜주면 모든 응어리가 풀리고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더욱 답답해졌고 허전해지기까지 하였다. 허수아비가 떠올랐다. 속이 텅 비어버린 자신이 허허벌판에 세워 놓은, 비바람에 색이 날고 너덜너덜 찢겨진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반란파 전우들이 한 번 모임을 가지고 코가 비뚤어지도록 퍼마시며 시원히 속풀이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뭐 청승맞게.”
서리 맞은 가지처럼 시들해 있는 그를 보고 아내도 한 마디 하였다.
“여보, 이제 그만하고 우리만의 삶을 삽시다. 할 만큼 했잖아요.”
“그래야겠지.”
그 역시 시들하게 대답했다.
몇 달 후,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적수였던 홍색의 우두머리, 탈권한 후 시혁명위원회 부주임으로 결합된 고위동이 면직 당하고 “때리고 부수고 빼앗은 (打砸抢)” 죄로 체포되었다는 것이었다. 믿음직한 전언에 의하면 적어도 20년 징역형이 가능하다고 했다. 사형을 받지 않으면 다행이란 말도 있었다. 적수가 응징을 받고 죄 값을 치르는 것보다 더 통쾌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최호림은 기쁘지 않았다.
듣자니 88의 전임 단장도 잡혀 들어갔다 했다. 최호림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그것도 혁명간부를 죽음에로 몰아넣고 죄 값을 치르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따져보면 그들도 피해자들이었다. 내가 투쟁을 받고 피해를 입어 억울하다면 그들은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 몇 해 우리는 뭘 했는가? 우리가 목숨을 바쳐 한 게 과연 혁명이었던가? 우롱당한 느낌이 가슴을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우상이 무너지고 신념이 무너지고 존엄이 무너졌다. 그의 정신을 지탱해주던 기둥이 와르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 모든 것을 잃은 삶도 삶이란 말인가?
어느 날 저녁, 최호림은 술에 곤죽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몇 번이나 자빠졌는지 옷이 흙투성이가 되고 가랑이가 꿰어져 있었다.
“여보?!”
마누라가 마주 나오며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눈을 부릅뜨며 홱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온돌방으로 이어진 마루에 올라서려고 한 발을 올려 디뎠다. 순간 힘없는 다리가 휘청하며 중심을 잃고 허궁 나가 번져졌다.
“여보!”
마누라가 기겁하며 달려갔다. 그는 여전히 손사래를 치며 악을 쓰고 일어섰다. 순간 구석에 세워져 있는 도끼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도끼를 주어들고 마루로 다가가 휘둘렀다. 탕! 탕! 마루가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마루가 박살이 나고 그가 기진맥진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탕! 탕! 하는 소리에 놀란 이웃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하여 돌아갔다.
이튿날 늦게 일어난 그는 박살난 마루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서 소리쳤다.
“여보, 마루가 왜 이 모양이요? 누가 이런 짓을 했소? 누가?”
“글쎄요.”
마누라는 씁쓸하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들쑹날쑹 망가진 마루를 바라보던 그는 깨진 널조각을 주섬주섬 줍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차라리 잘 됐다. 집안을 몽땅 뜯어 고치기요!” 하고 소리쳤다. 온돌방을 침대 방으로 고치고 내부를 완전히 새로 장식하는 것이었다. 다리가 부실한 그에게 걸맞는 환경이 필요했다면 찢어진 마음은 일탈을 필요로 했다. 그는 지체 없이 그 일에 달라붙었다.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목수일이 애호였던 그에게 이 일은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최호림은 구들을 뜯었다. 다리가 부실한 그는 쪼그리고 앉을 수 없어 퍼더버리고 앉아 일했다. 한 자세로만 하고 있으면 다리가 저리기에 자세를 자꾸 바꿔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움직일 때면 앉은걸음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 구들장을 뜯을 때마다 검은 먼지가 풀썩풀썩 일어났다. 얼마 안 되어 방 안은 뽀얀 먼지로 꽉 찼다. 남들이 한 시간에 끝낼 일을 그는 한나절 했다.
점심 때 식사 차로 학교에서 돌아온 마누라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굴뚝귀신이 따로 없었다. 얼굴도 몸도 온통 검은데 눈만 흰자위가 유별나게 빛나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쳐다보노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점심은 남편의 주문대로 상추쌈이었다. 상은 정지바닥에 놓았다. 수육에 싱싱한 상추와 고수나물이 상에 오르고 달걀에 풋고추를 썰어 넣어 끓인 쌈장을 곁들였다. 그는 입 주위와 손만 대충 씻고 쪽걸상에 앉았다. 상추에 밥 한 숟가락 푹 떠서 놓고 그 위에 수육과 고수 나물을 몇 가지 놓고 쌈장을 얹어 입에 쑤셔 넣었다. 쌈 덩이가 너무 커서 입이 공처럼 불어나고 그것을 우물우물 씹어 넘기노라니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동그랗게 불거졌다. 조그맣게 싼 쌈을 입에 넣던 마누라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드득거렸다. 그 바람에 남편의 입에 멈추고 있던 쌈 덩이가 그대로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둘은 마주 보며 배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일에 심신을 맡기다보니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어 차츰 입맛도 돌아오고 밤잠도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잘 수 있었다.
한 달 남짓 지나갔다. 두 칸짜리 집이 번듯하게 새 집으로 탈바꿈했다. 침실은 신방처럼 아늑하게, 거실은 구색 맞고 품위 있게 꾸며졌다. 구경 온 이웃들이 보고 입을 딱 벌리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구를 다 만들자 이웃들의 주문이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목수일이 계속되었다. 창고는 목수 칸으로 이용되었다. 귓등에 연필을 끼우고 먼지를 뽀얗게 쓰고 톱질을 한다, 대패질을 한다 분주히 돌아치는 그를 “신바람이 났다” 는 말을 내놓고는 달리 형용할 수 없었다.
이때쯤 이 도시에는 목수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직장일은 얼렁뚱땅해 넘기고 집에 돌아와서는 목수 일에 매달렸다. 목수 일에 어섯눈이 트인 사람은 물론이고 햇내기도 나름대로 스승을 모신다 하며 야단법석이었다. 이 바람의 선코를 잡은 최호림은 단연 반란파 아닌 목수 추이꼴리로 다시 사람들의 말밥에 올랐다. 그가 출판사의 주문에 못 이겨 펴낸 《가구제작 도해》는 저작학습에 진저리 난 사람들에게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목수 일을 하면서부터 그는 잠을 잘 수 있었고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따라서 체력이 회복되어 갔다. 마음의 응어리도 톱질하고 대패질을 하는 와중에 차츰 잘려 나가고 깎여나가는 듯 했다.
그 후 목수바람에 이어 춤바람이 이 도시를 휩쓸었다. 단위의 예당, 식당들이 주말에 무도장으로 변신했고 공원 같은 공터가 야외 무도장으로 거듭났고 나중에는 무도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방색, 검은색, 회색 등 우중충한 차림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밝고 화사한 옷차림을 하고 자못 흥분된 표정으로 무도장을 드나들었다. 오랫동안 얼어 있던 마음을 푸는 해방의 의식이었으며 서로 경계하고 닫혔던 마음을 여는 소통의 장이기도 했다.
최호림이 이 춤바람을 외면할 리 없었다. 목수일이 뜸해져 한창 싱숭생숭하던 차였다. 해방전쟁시기 군대 문공단 단원으로 있었던 그였다. 곤란한 시기 사교무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였다. 그는 짬짬이 마누라와 함께 스텝을 맞추면서 지난날의 감각을 건져냈다. 그리고 정장차림으로 마누라와 함께 무도장으로 갔다. 그들은 블루스를 추기도 하고 왈쯔를 추며 무도장이 좁을 세라 빙빙 돌기도 했다. 목수 일을 하면서부터 다리도 많이 좋아졌다. 여전히 지팡이를 짚었지만 무도장에 들어서 파트너의 손만 잡으면 아픈 다리를 잊게 되는 것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무도곡을 따라 표주박처럼 미끄러져 나가노라면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신선이라도 된 듯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차는 한 쌍의 제비를 연상시키는 그들 부부의 춤사위는 뭇 춤꾼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들의 탱고는 무도장의 백미로 춤꾼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차츰 그의 집도 춤꾼 친구들이 찾는 단골집으로 되었다. 그들은 찾아와서 춤을 배우고 익히고 즐겼다. 최호림은 그들을 무람없이 대해주었고 사교무 스텝 안내도를 선물하기도 했다. 발자국을 도장으로 파 인주로 찍어 만든 사교무 스텝 안내도는 춤꾼들이 가지지 못해 안달아 하는 선호물이 되었다. 고추처럼 맵고 소가죽처럼 질기다던 추이꼴리가 이제는 온돌처럼 따뜻하고 담요처럼 부드러운 동네 아저씨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주며 그의 일거일동에 신경을 쓰는 마누라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았다. 목수 일을 열심히 하는 그도, 춤을 신나게 추는 그도 한낱 허상, 텅 빈 가슴을 채우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허깨비 같은 허상으로 비쳐지는 느낌을 그녀는 물리칠 수 없었다.
이러구려 긴긴 겨울이 지나갔다. 무지막지한 파괴와 희생 끝에 개혁개방의 봄을 맞아왔다.(뒤에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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