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을에 쉰둥이 셋
나이 오십에 난 쉰둥이 셋이 한마을에 살고 학교도 같이 다녀 초등학교도 동기동창이다.
반세기 전에는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오십이 좀 넘은 때라 쉰둥이는 찾아보기 힘든 시절에 한 동네에서 쉰둥이 셋이 탄생하였다는 것은 대단한 이야깃거리다.
동네에 환갑이 지난 노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오십대 후반 노인들은 허리가 꾸부정하여 지금 팔십이 넘은 노인네보다도 더 늙어 보였다.
환갑잔치는 동네의 경사였고 환갑날에는 인근의 사람이 다 모여 하루 종일 잔치가 이루어 졌다. 환갑을 넘기는 사람이 그만큼 적었기 때문에 환갑잔치를 성대히 치러 주는 것이다.
지금은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의료시설이 잘되어 환갑 노인네는 노인으로 취급도 하지 않고 나이 칠십이 되어도 경노당의 뒷방치기가 되는 현실이지만 반세기 전의 우리의 모습은 이렇게 단명하였다.
우리 집은 판교 '아랫뫼루'니다.
뒷동산 아래 동쪽에 우리 집이 있고 우리 집에 붙어서 서쪽으로 현웅이네 집이고 밑으로 진휘네 집이 있다. 삼각형으로 세집이 울타리가 붙어서 있는데 이 세집에서 세 명의 쉰둥이가 나왔고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다.
쉰둥이 중 얌전한 여자아희 진휘가 생일이 제일 빠르고 허풍쟁이 현웅이가 다음이고 산신령에게 빌어서 났다는 내가 생일이 제일 늦다.
정월에 조상과 동네에 세배를 다 드리고 세 아낙네가 친정을 가는 길이다.
우리 어머니 친정은 수원 '배나무골'이고 진휘 어머니는 안양, 현웅이 어머니는 남태령이다.
친정을 가려면 뫼루니에서 청계산의 동쪽 하오고개를 넘어야 하고 하오고개를 넘어서는 학현을 지나서 세 아낙네는 서로 친정을 향하여 헤어지게 되어 있다.
판교에서 안양을 가는 길은 하오고개를 꼭 넘어야 갈 수 있는 길이다.
진휘 어머니와 현웅이 어머니는 일찍 집에서 출발을 하였고 우리 어머니는 늦게 출발하여 멀찌감치 간 두 아낙을 쫓아가는 형국이다.
동네에서 하오고개(하고개,학고개)까지는 먼 거리다.
진휘 어머니는 갓 태어난 진휘를 업고 가는 중이고 현웅이 어머니는 만삭이 된 배를 붙들고 가는 중인데 우리어머니만 홀몸으로 발걸음을 잽싸게 움직이니 천천히 가는 두 아낙네를 따라잡을 수가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친정에 빨리 가봐야 된다고 앞서서 가니 뒤에 처진 두 아낙네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앞에 가는 저 여편네 돌부리에 채어라’, ‘청계산의 호랑이가 와서 잡아가라’ 하며 두 아낙네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웃뫼루니 사기막골까지 왔을 때는 절정에 달하였다.
사기막골은 지금 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연구원)으로 바뀌고 저수지도 생겼지만 당시엔 저수지 계곡으로 하오고개를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진휘 어머니는 조용하면서도 언변이 좋았다. 육전소설을 읽고 동네 말방에서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던 실력이라 다양한 언변이 나왔다.
“신령님 신령님 청계산 산신령님, 저 앞에 가는 여편네 지금 당장 태기가 있어 배를 남산만 하게하고 우리보다 더 늦게 가게 하시옵소서” 하고 산신령까지 동원 하였다.
사기막골을 지나 고개 밑의 대장간을 지나 하오고개를 넘어 학현까지 가며 세 아낙네는 수다를 떨며 시집살이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집 한 채 없는 하오고개 밑에 대장간이 있는 것이 어릴 때는 매우 이상하게 보였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천주교 박해 후에 천주교인(천작 쟁이)이 숨어살던 곳이 사기막골이다.
젊은 프랑스 신부가 처음 정착한곳이 사기막골이고 청계산에 숨어 살다가 새남터에서 처형당해 교황청에서 성인으로 추앙된 신부다.
너더리(널다리, 판교) 아랫뫼루니 웃뫼루니 사기막골에 사는 천주교인들이 일요일만 되면 이 하오고갯길로 판교에서 학현까지 가서 학현에 있는 성당에서 예배를 보고 집에 오는 것이다.
예배 보러 갔다가 오면 하루 종일이 걸린다. 먼 거리를 열성분자인 교인들은 일요일이면 마다않고 성당을 가는데 한길에 가는 것이 놀러 갔다 오는 사람들 같이 여유 있게 보였다.
계곡의 느티나무 옆에 홀로 있는 대장간은 천주교인들이 호미나 낫을 주문하고 찾아가는 것이 주로 이날 이루어지고 있다. 대장간 주인도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두 아낙네의 수다가 효험이 있었던지 바로 태기가 있어 그해 동지섣달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래서 세 쉰둥이 중에서는 나의 생일이 제일 늦게 된 것이다.
아낙네들은 산신령에게 빌은 효험이 있어 태기가 있는 것이라고 재미있어하며 동네의 말거리가 되었다.
아버지 친구분이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아버지를 찾으실 때 나보고
“할아버지 계시냐? 하고 물으시지
“아버지 계시냐? 하고 물으시던 분은 없었다.
우리 부모는 천팔백년대 분들이시고 나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나는 한 세대를 뛰어넘어 살기 때문에 나이 엇비슷한 조카들로부터 작은 아버지라고 불리며 어렸을 때는 막내 삼촌이라고 불리면서 살았다.
같은 나이에 족보상으로 한 계급이 높아 대접받는 것도 쑥스러운 일이다.
이런 일이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일이다.
세 명의 쉰둥이 중에서 현웅이는 죽고 진휘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나는 세끼 밥 잘 먹고 있다.
임오생 말띠, 나이 칠십의 나는 옛날의 환갑 쟁이 보다 더 팔팔한데 80이 되면 비슷하게 되겠지.
지금은 100세까지 산다는데 나이만 먹고 하는 일 없으면 무엇 하나.
살만큼 살았을 때 갈 사람은 가야 되고 병 없이 가면 행복이지 무엇을 더 바라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