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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블록은 유독 정교했다. 얼핏 봐서는 동네 문구점이나 백화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희소해보이기도 했다. 아마 인터넷 특수 제작에 의뢰했을지도 모르나 한동안 섬세하게 고른 것임에 분명했다. 선물포장지로 곱게 단장된 블록은 사뿐사뿐 내리는 첫눈처럼 소담해 보였다. 자칫하면 타인의 어두운 손길이 닿아 오염되길 거부하는 듯한 소박한 모습이었다.
서희는 멍하니 탁자 위에 놓인 블록을 내려다보았다. 블록은 포장을 뜯지 않고 모든 조각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제자리에 박혀 비밀을 품은 채 함구하고 있을 때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그것도 보통 플라스틱 재질이 아닌 산뜻한 색깔의 나뭇결이 한눈에 안겨왔을 때 한결 선명해보였다.
어릴 적, 서희는 서랍에 비밀통로가 있다고 착각한 적 있었다. 새해를 맞으며 이모한테서 받았던 블록 조각 몇 개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두 눈을 몇 백 번 씻고 찾아보아도 흔적조차 보이질 않아 한참동안 속상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다. 어디 블록뿐이었을까, 진달래가 곱다란히 새겨진 편지지, 책장을 집어줬던 집게, 적삼의 세 번째 단추…… 게다가 지우개 모자를 쓴 연필 따위는 아무리 사고 또 사도 발이 달린 모양인지 어딘가로 도망쳐버리기 일쑤였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면 분명 비밀통로는 이미 이런 물건들로 가득 차 산더미를 이루지 않았을까나. 밤늦도록 사라진 물건들을 걱정하던 꼬마주인은 살금살금 노곤히 잠든 아버지를 피해 조심스럽게 책장을 뒤져보거나, 옷장을 들춰보거나, 책장 밑을 기웃거렸다. 머릿속 영사막을 되돌려 기억을 더듬으면서 거슬러 올라가보았다. 늘 거닐던 길바닥 하수도 구멍에 흘렸나, 교실 바닥 틈새로 떨어뜨렸나……
이젠 블록을 갉아먹는 마술사가 존재한들 눈 깜빡 할 서희가 아니지만 블록은 한창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어쩌면 경의감, 경건함 비슷한 위엄이 비쳐졌다.
블록을 면밀히 관찰해보면 뱀처럼 긴 원주체가 있는가하면 아치형 다리처럼 멋진 조각도 있었으며 삼각자모양의 형태며 장방형 침대와 비슷한 사각조각도 보였다. 이것을 다 조립하려면 며칠이 걸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조립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보면 오히려 시간이 더욱 단축될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이라면 그녀 역시 너무 빠른 시간동안 갑자기 실업자로 전락되었다. 열 시간의 고달픈 노동의 대가가 결국 무작정 실업이었다. 그녀가 아침 일찍 식당에 나가 테이블을 정리하고 창문을 닦고 냉장고를 청소하며 자동 커피기를 작동하노라면 열두 시간 노동도 눈 깜박할 사이 지나갔다. 날마다 그렇게 열두 시간을 맴돌며 사는 사람이 돌연 텅 빈 하루를 보내야한다면 어느 만큼 상실감이 들까.
마침 그녀가 딸애의 레고 선물을 받은 날 해고 되었다. 실업의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데서 본 것 같은데 사장은 오늘 그녀의 그런 고정 관념을 깨뜨리려고 작정한 듯 아주 야비하게 비인간적으로 그만 나오라고 했다. 갑자기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예상치 못했던 충격이 가해져 그녀는 당혹스러웠다.
잘은 모르지만 처음 그녀가 레고로 저금통을 만들었던 것은 아마 딸애만큼의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다. 어지러운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의 생일날, 가난한 한 가장의 시른 어깨를 녹여주기 위해 정히 만든 집모양의 저금통이었다. 앞으로 쓰러 내린 머리를 올려 핀을 삐뚤게 꼽고는 책상머리 위에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한 조각 한 조각 쌓아올린 저금통을 서희는 결국 드리지 못했다.
서희는 블록을 보기 위해 침대가 스탠드를 켰다. 외곽 속으로 노란색 지붕모양의 조각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서희는 블록으로 완성된 세계를 환상해보았다. 하얀 눈을 소복이 뒤덮은 성보는 빛 뿌리는 보석을 박아놓은 듯한 밤하늘의 별 그림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고 가운데로 넘실거리는 황금벌판이 펼쳐졌다. 그녀의 눈앞으로 아기자기한 인형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겨주는 디즈니의 한 장면이 환각처럼 안겨오고 있었고 다정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고 있었다.
이맘때 쯤 실업이 아니면 한창 테이블 하나하나씩 거두고 바닥을 닦으며 식당에서 매미 맴돌듯 지쳐있을 때였다.
테이블의 각종 남은 찌꺼기를 버리고, 그릇들을 분리하여 주방으로 옮기고, 어지러운 바닥을 닦고 나면 어느새 해는 지고 숨 돌릴 틈이라도 있을 것 같으면 쓰레기 버리러 가고 큰 물통에 물을 받아 놓고 그래도 짬 있으면 물수건을 차곡차곡 개거나 신발장 끌신을 정리하곤 했다.
가끔 술에 취해 치근덕거리는 손님들이 눈꼴사나워 몇 번이고 그만두려다가도 아이의 학원비가 언뜻 스치면 할 수 없지머, 하며 푸념을 하면서 단념하고 말았다. 서희 고충은 학력이었다. 번듯한 대학이라도 나왔으면 이 회사 저 단위 이력서를 넣으며 취직 선택의 폭을 넓혀보련만 그렇지 못한 그녀에게 차려진 것은 노력을 주체로 하는 고달픈 노동이었다.
그녀는 언젠간 이 더러운 꼴 안 보려면 그만 둬야지, 또는 다 일반 사람들인데 어찌 저렇게 바닥일 수 있어? 라는 불만을 삭히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사회에서 학벌 좋고 배경 있는 사람들은 직업 계층부터가 달랐다. 그 부류 사람들은 대략 어쩐지 자유롭게 선택하고 용이하게 결정하는 것 같았다. 시름시름 고민걱정거리 같은 건 거뜬히 해결하는 듯싶고 고만고만한 하층들의 고충 같은 걸 드물게 겪는 편이었다.
서희의 어릴 적 꿈은 정성껏 재배한 꽃들을 가득 채운 아담한 꽃가게를 꾸리는 것이었다. 꽃대가 오르고 꽃봉오리의 꽃잎이 한 장 두 장 피어오르는 향이 코끝에 닿으면 왠지 세상 다 가진 듯한 기분이겠지…… 그녀는 식탁보를 주걱주걱 씻는 순간에도 그런 상념에 빠져있었다. 매양 식탁보가 한 송이의 꽃인 것처럼…… 손끝으로 번 돈을 종자돈으로 모아보려 해도 한 달 생활비며 아이 다음 달 학원비로 줄줄이 빠져나갔다. 하긴, 아무리 억척스럽게 일해도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쌈짓돈을 마련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런 직장마저도 잃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그녀였다. 토끼 같은 딸애 외에는……
그녀의 일상은 어두운 그늘 밑, 돋보이게 해줄 그 무엇 하나조차 없이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딸애는 엄마가 일찍 집으로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하는 애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곤 했다. 처음에는 식당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구석진 자리에서 딸애가 숙제를 마치면 함께 퇴근했다. 하지만 야박한 아줌마 성화에 못 이겨 그것도 며칠 못가고 빈집에 아이를 둘 수밖에 없었다. 고작 아홉 살밖에 되지 않는 딸애 눈빛이 너무 애틋하고 간절해 그녀도 흠칫 놀랐다. 아이들의 삶의 방식과 삶의 형태는 언제나 어른들에 의해 선택되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의 시름을 말끔히 가셔줄 수 있는 것은 딸애의 상장이었다. 가장 눈에 잘 안겨오는 책상 위에 비스듬히 세워 놓인 딸애의 상장은 그 밖의 경계에 삶의 의미를 채울 풍경이었다. 그윽이 한참 바라보노라니 자정 한시가 넘었다.
질펀한 술자리 흔적이 잔뜩 배긴 테이블을 치우고 보리차 한잔 마시며 멍하니 먼 창밖 맞은 켠 꽃방을 바라보고 있기를 수차례, 지루한 일상에 무의식의 위안 같은 순간이었다. 소담한 편지는 메마른 가슴을 생기 돌게 하고 감성 지수를 한 뺨씩 올려주는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정지된 시간이 정지된 생각과 함께 아예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잘리게 되자 카운터를 지키던 여자마저 힐끔힐끔거리며 그녀를 바이러스 취급했다. 늘 자질구레한 일들을 부탁하던 얼굴 빤빤한 다른 종업원은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못한 채 더 이상 말 섞기조차 귀찮다는 듯 등을 돌렸다.
“개뿔두 가진 게 없는 주제에…… 자존심이 밥 먹여줘? 손님한테 그게 무슨 태도야?”
사장은 그녀의 모든 상황에 비춰봤을 때 이만한 식당에서 참고 일하는 게 최선이라는 눈빛으로 고마워 할 줄 알아야한다는 듯 교묘하게 그녀를 능멸하면서도 끝까지 비열한 태도를 취하였다. 서희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여 멍하니 서있었다. 거듭 질척거리는 손님을 깍듯이 대하지 못하였다는 것, 능글맞게 손님이 잡은 손을 살며시 빼자 손님이 상을 엎어버렸다는 것, 그리하여 식당은 그로 하여 그 손님을 놓쳤다는 것, 이런 일련의 이유들로 그녀는 고개도 들지 못하게 되었고 죄인취급을 당하게 되었다. 푹 숙인 시야로 식당주인의 뾰족한 힐이 보였다. 어쩐지 아찔하고 섬뜩했으며 징그럽기까지 하였다.
“저도 고의적인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죄송합니다.”
“단골손님 빼앗기면 손해가 얼만 줄 알어? 정말 재수없으니라구……”
식당주인의 휘두르는 팔목에 고무줄이 끼워있는 것이 보였다. 휴지를 종류별로 묶어놓기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까만색 고무줄이 사라져버린 뒤 한동안 잊었었는데…… 아예 버려진 줄 알았더니 이 상황에 어쩜 저 피둥피둥 살이 찐 팔에 있다니……
“나 같은 주인 만난 건 운 좋은 줄 알어. 다른 데라면 언녕 경찰서에 처넣었을 거야. 그날 날려버린 밥상 값이 얼만 줄 알어. 그래갖고 어디 가서 뭘 해먹겠어. 참 나 원, 당장 때려치워!”
주인아줌마는 바퀴벌레 취급하듯이 찌그러진 표정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쾅하고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꽥꽥거리며 그녀한테 손가락질 하다가 빠진 모양인지 바닥에 고무줄이 볼품없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능히 휴지를 묶을 수 있을 텐데……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난데없이 불나방이 들어와 전등에 매달려 파닥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저녁손님 맞이할 준비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 공간에서 정지되어 있는 것은 오직 그녀 하나였다. 기타 사람들은 시끄러운 일에 말려들기 싫다는 표정으로 눈치껏 각자 일에 전념하고 있는 척 했다. 잔혹한 순간, 서희는 가까스로 움츠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가 그녀를 엄습했다. 지구 반대편의 생물체처럼 홀로 뉘엿뉘엿 외롭게 그곳을 빠져 나왔다. 왠지 자신이 사라진 그 공간에서 여전히 그 사람들이 수군대며 뒤에서 손가락질 할 것만 같았다. 혀를 끌끌 차면서 속 시원하다는 둥, 이제 겨우 독감바이러스 같은 존재가 사라졌다는 둥 환호하면서 말이다.
밤 9시, 아이 방으로 들어간 서희는 쪼그려 앉아 블록을 쌓고 있는 아이를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주방에서 미리 쌀을 씻고 세탁기에 옷가지를 돌리고 건조대에서 거둬들인 빨래들을 차곡차곡 개키면서도 주의력은 아이의 주변을 맴맴 돌고 있었다. 약간의 애정과 약간의 근심, 그리고 초조함이 두루 섞여 있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골똘히 일정한 형체를 이루며 쌓아올리는 딸애는 엄마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자기만의 세계에 퐁당 빠져버렸다. 그 시선은 언제나 환한 등불처럼 온전히 아이를 비춰주는 희망 같은 것이었다.
5년 전 한국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애 아빠, 그래도 처음 2년은 꼬박꼬박 생활비를 부쳐오고 안부전화도 해왔으나 그 뒤론 감감 무소식이었다. 산더미 같은 시름을 안고 자다가도 악몽에 시달려 흠칫 놀라 남편한테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행방이 묘연했다. 딸애의 몸에는 시종 아빠의 유전자가 존재하는데 같은 하늘 아래 아빠의 흔적은 가뭇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어디선가 생소한 존재로 숨 쉬고 있는 남편은 이젠 남의 편으로 된 것일까…… 추첨으로 한국에 갔던 사촌언니로부터 난데없이 전화가 왔다.
-지아 애비가 글쎄 바람났지 뭐야, 처음에는 그저 소문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방을 드나들면서 마담과 눈이 맞아 거기에 둥지를 털었다고 하더라이까…… 정작 확인해보니 기가 막히더라…… 어쩜 좋니, 지아 불쌍해서 어쩌니……
두 눈을 지긋하게 감은 서희는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당장 어떻게 수습할 수도 없었고 지독하게 입술을 깨물고 잔인한 잔상을 마주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검은 허공에서 대강 어떤 그림이 부유하고 있었고, 지금의 처지로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잔인한 실상일 뿐이었다.
생활비가 거덜나고 있었으나 꽤나 오랫동안 아주 여유로운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볼 통통한 딸애에게 양갈래로 양태를 땋아주고 한손엔 딸애 손을 붙잡고 다른 한손에는 과자며, 요구르트며 감자칩을 들고 공원으로 놀러갔다. 산가에 위치한 공원은 공기가 맑았다. 몇몇 생기발랄한 조무래기들이 풍선을 들고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그리고 커플들도 손을 잡고 여유작작 산보하고 있었다. 곁에서 청년들이 텐트를 치고 맥주를 들이키며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누군가가 야, 오늘 제대로 놀아보자, 라고 소리쳤고 분위기는 익을 대로 익고 있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화장실을 찾고 있는 듯 했다. 나무와 나무사이에 간이식 침대를 설치하고 그네를 타듯 누워 잠이 든 아이가 보였고 그 아래로 토색 털이 보시시한 강아지가 꼬리를 젓고 있었다.
모녀에게 남겨진 진실이라고는 한동안, 아니 앞으로 쭉 둘이서만 지내야 하는 그것밖에 없었다. 한번 정도는 마음 단단히 먹고 애 둘쳐업고 남편한테로 가 무작정 따지려고 했지만 눈앞에서 생생히 마주해야 될 진상에 그녀를 더욱 파멸로 이끌 것 같아 단념하고 말았다. 오히려 죽은 인간 취급하고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 자명한 셈이었다.
지고지순 여직 남편에게 의지하면서 현처양모로 살다가 갑자기 배신감에 젖어든 서희, 무엇보다 그녀 딸애가 가장 큰 상처를 받을 것이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앞으로 딸애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서희는 분노를 삭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땅이 꺼지는 듯한 절망감에 젖어들었다.
책상 앞에서 쪼그려 앉아있던 딸애는 졸리는 듯 눈을 비볐다. 밤 열시를 넘고 있었다.
귀가로 사발 나르는 소리, 왁자지껄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 타박타박 음식 나르는 발걸음소리 따위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감은 눈을 떠보면 고요한 세상이었다. 톡톡 탁탁 블록을 쌓는 소리가 정적을 깰 뿐이었다.
서희는 터실터실한 손으로 딸애 머리를 쓰다듬으며 블록을 들여다보았다. 블록 옆에는 딸애가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은 그림이 유표하게 안겨왔다. 딱딱하고 마른 공기 속으로 애틋한 여운이 천천히 감돌고 있었다. 푹 꺼지는 듯한 한숨이 이어지고 서희는 서둘러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가 한창 방영되고 있었으며 흔한 이야깃거리가 무심한 표정의 아나운서 입으로 퍼져 나오고 있었다.
-세계 경제의 고용 훈풍 속 유독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악화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경제 주축이 돼야 할 20, 30대 실업률은 더욱 심각한 상황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이고 학력의 미스매치를 해소할 방안이 십분 필요한 시점입니다.
서희는 암울한 표정으로 리모컨을 돌렸다. 몇 개 채널을 무의식적으로 돌리자 한 채널에서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여주인공이 내연녀의 머리채를 잡고 치를 떨고 있었다. 악에 바친 격양된 목소리가 그녀 귀를 찢어놓고 있었다.
“이 파렴치한 년아. 너 따위가 어디라고 감히 꼬리쳐…… 어디 화장터 보내줄까…… 오늘 내 손에 죽자.”
어느새 서희는 화면에 빠져들어 주인공으로 빙의되고 있었다. 꼭 내연녀를 잡아채고 싶어 하는 것처럼 두 손을 꽉 움켜지고 바라보았다.
“그이 이제 당신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이젠 내 남자라고요.”
뿌지직, 내연녀의 윗옷이 직통으로 뻗친 여주인공의 손에 의해 찢겨져나갔다.
치열한 몸싸움이 점점 더 격렬해지자 서희는 음성을 낮추었다.
‘진짜 눈앞에 닥치면 저런 기분일까? 마구 뜯어놓고 싶을까……’
서희는 티비를 끄고 누웠다. 밤 12시를 넘긴 자정이었으나 정신이 말짱하기만 하였다. 보통 아침이었으면 식당에서 빡빡 바닥을 밀고, 어깨가 뻐근해져지도록 유리창문을 닦으면서 시작했을 것이나 현재 뺨을 갈기는 티비 화면을 떠올리고 있는 서희는 폭풍 속 바다에서 포유하고 있는 노 잃은 쪽배마냥 막막하고 캄캄해났다.
달빛 속에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는 딸애의 성보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틈틈이 구멍 난 창문 틈으로 가을바람이 들어와 딸애는 잠결에 소스라치며 바싹 그녀 품으로 들어왔다. 서희는 이불을 더욱 꽁꽁 여며주었다. 검푸른 창공에 너무도 비슷한 별들이 많아 한참을 헤맨 끝에 북두칠성을 찾을 수 있었다. 저 별자리 따라 가면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하면서 되뇌는 서희의 시선은 자꾸만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빠…… 아빠…… 언제 와……”
뜬금없는 아이 잠꼬대에 서희의 고통은 더욱 심연 속으로 깊어져갔다. 천진한 아이는 마냥 환상적이었고, 취약한 그녀는 마냥 현실적이었다. 딸애는 예쁜 드레스를 입은 공주를 꿈꾸는 아이라면 서희는 지출과 소비를 고민하는 고달픈 어른이었다. 딸애가 오색찬란한 맑은 표정이라면 서희는 깊은 수심에 잠긴 어두운 표정이었다.
“어쩌면 좋니……”
서희는 결혼할 때 어렵사리 가춘 유일한 기물인 24케이 금반지를 서랍에서 꺼냈다. 평소 잃어버릴까봐 아까워 끼지조차 못한 채 소중히 간직해둔 가장 소중한 반지였다. 서희는 반지나 목걸이 같은 것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보았다. 어쩐지 넌지시 바라 본 반지는 낀 흔적 하나 없이 원모양을 유지한 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듯했다. 한없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한동안은 쪼들리는 생활을 해야 했다. 슈퍼에 가면 제일 먼저 할인되는 물건을 택해야 했고 섣부른 구매는 가급적 피해야 했다. 생리대거나 생필품을 살 때에도 지갑의 잔고를 고려해야 했다. 치솟는 물가로 인해 얄팍한 백 원 한 장으로 딸애가 좋아하는 과자 몇 봉지 사면 곧 바닥이 났다. 게다가 이미 다음 달 딸애 학비가 혀를 날름거니면서 입을 벌려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한 이 빈곤의 테두리를 벗어날 방법이 달리 없어보였다. 또 식당일과 비슷한 체력노동을 요하는 일자리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반듯한 직장 같은 건 그녀가 꿈꿔볼 수조차 없는 영역이다. 그런 생각은 그녀 같은 부류들이 상상해내기에는 좀 엄청난 거리가 있었다. 이력서 한 통 작성해본 적 없는 그녀…… 잔혹한 현실은 그녀에게 한계만 남겨주었다. 이젠 몇 년째 백 원 짜리 한 장도 집안으로 들여온 적 없었던 남편에 대해서 선택의 여지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녀는 딸애 볼에 묻은 과자부스러기를 휴지로 닦아주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지아야, 엄마랑 단둘이서 쭉 살까?”
서희는 갑자기 뜬금없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딸애는 블록 쌓기에 심취하다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빠의 갈색 눈을 닮아서인지 눈망울이 그윽하고 깊어보였다.
“왜? 아빠 안 와? 나 너무 보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약속만큼 소중한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빠의 부재에 대해 아이 눈 맞춤으로 이야기하기란 어쩐지 어려운 숙제였다.
“엄마, 아빠 안 와? 응? 응? 이제 올 때 백설공주 사오기로 약속했단 말야……” 서희는 흐릿한 동공으로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딸애의 추궁에 다시 한 번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퀴즈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하긴 어제와 오늘의 온도가 너무 달라 가끔 불가능과 가능의 차이를 현실에서 얼마나 가늠할 수 있을지 싶었다.
“올 거야……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면서 기다려보자…… 착하지, 보배 딸……”
그러자 딸애는 신나서 초록색 울타리를 쌓기 위해 초록색 블록들을 찾았다 .
새벽 5시였다. 그러니까 서희는 세 시간동안 눈을 붙인 셈이었다. 새벽 두시까지 오지 않는 잠을 청하려고 무던히도 자세를 바꾸어보았다. 수면제의 부작용 탓인지 머리가 지끈지끈 무거워났고 속이 메슥거려났다. 며칠 전만 해도 긴장과 초조로 가득한 전투 속에서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부랴부랴 딸애 아침을 준비하고 학교로 보낸 뒤 퉁퉁 부은 다리를 끌고 제일 처음으로 식당 문을 열어야 했다. 주방에서 산더미 그릇들을 씻어야 했기에 장화를 신은 발에 땀이 차오르고 물집이 도져 진물이 난 자리는 따끔따끔 아려왔다. 팔이며 등 근육이 뭉쳐 움직일 때마다 저릿저릿 아파 오기도 했었다. 아무리 사람이지만 엄마의 이름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방에서, 로비에서 손님이며 주인이며 부르는 소리에 숨 가쁜 가슴이 마구 뛰기도 했고, 행여나 시비 거는 손님을 만나면 삐질삐질 진땀을 흘려야했다. 하얗게 군데군데 껍질이 벗겨진 발을 질질 끌고 돌아오는 귀갓길에서 서희는 가끔 허공에 왜,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거야 하고 외쳐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에 불러보는 외침은 무중력 공기처럼 행방이 묘연했다. 검푸른 바다 속에 눈물 몇 방울 섞인다 한들 결국 바다로 흐를 것이고, 그런 것처럼 희망과 불행 사이 간격을 지워버린다면 어느 한쪽이 아예 사라져버릴까……
딸애의 블록은 이젠 제법 울타리도, 차곡차곡 기와집도 만들어 윤곽을 이루고 있었다. 새로운 터전을 완성을 하기 위해 강아지모형도 필요했는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꼼지락 거리며 만들고 있었다. 금요일 밤은 주말의 특혜를 이용해 아예 얼굴을 씻고 양치를 하는 것마저 잊고 한창 환상의 집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주말 이틀 동안 두툼한 숙제를 뚝딱 해치우느라 피곤할 텐데, 졸음이 밀려올 법도 하지만 기어이…… 쌓고 싶은 소망을 켜켜이 쌓아올리며……
“울 꿀돼지? 안잘 거얌?”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면서 딸애를 가슴에 품었다. “엄마. 좀 있다 자도 돼? 나 지금 한창 우리 강아지 만들고 있단 말야.”
“우리 강아지, 같이 자면 안 돼? 엄마가 도와줄까?”
“괜찮아.”
딸애는 씩씩하게 말했다. 그러니 약간 뾰로통해진 서희가 머릿수건을 세탁기에 넣으면서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 잘 시간이야, 우리 귀염둥이, 같이 잘까요?”
“엄마, 나 요것만 하고, 좀만 기달려.”
서희는 냉장고에서 캔 맥주 한 병을 꺼냈다. 홀짝이며 서서히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한 캔, 두 캔 점점 양이 증가되면서 허구한 날 술주정을 하는 아버지와 그 그늘 밑에서 모진 고생을 겪은 어머니 모습이 주마등마냥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사라진 남편의 가증스런 얼굴이 떠올랐다. 구역질이 났다.
“좀 빨리 빨리 하고 자자, 그저 애비 닮아서 질질 늘구고……”
애초에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도 서희의 목소리에 퉁명스러움이 묻어나자 딸애는 의아스럽게 그녀를 뒤돌아보았다. 모든 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공동 부양의 책임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양육의 막중한 의무가 온전히 그녀의 것으로 되었고 그 무게가 취기를 따라 방출되고 있었다.
무고한 아이 얼굴을 마주하자 회의감이 괴어올랐으나 삽시에 잔뜩 번져버린 화를 주체할 길 없었다. “아빠한테 가서 살으렴……”
서희는 불쑥 튕겨나온 생각을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지아는 블록 쌓는 동작을 잠깐 멈추고 눈물이 그렁해져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아빠 온다면서……… 왜 우리 같이 안살아? 엄마, 우리 그냥 다 같이 살면 안 돼? 내 짝궁 지혜처럼 말이야. 그 앤 엄마와 아빠랑 다 함께 오손도손 살고 있단 말이야. 우리도 그러면 안돼?”
“아빠가 우릴 버렸어……”
“아닐 거야, 아빠가 얼마나 나를 고와하는데…… 엄만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쟁이…… 네 아빠 항상 그런 식이었지, 우리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거짓말만 남기고 혼자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지…… 이제 우리 착한 딸 얼굴이나 기억할라나. 에휴, 이젠 지치고 넌덜머리 난다…… 다 집어쳐……’
서희는 블록 조각들을 손으로 움켜쥐더니 고조에 달한 정서를 추스리지 못하고 창밖으로 집어 던졌다. 딸애는 처음에는 얼어붙은 듯 지켜보다가 이내 울면서 애원했다.
“엄마, 그러지마, 흑흑, 무서워……”
서희는 바닥에 흩어져 버린 블록 조각들을 들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바깥으로 쏟아 버렸다. 부들부들 팔이 떨렸다. 조각들은 흰 눈가루처럼 공중에서 흩어져 낮은 지붕 아래, 길 위로 흩어졌다. 절규에 가까운 딸애의 울음소리는 여운을 남기며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퍼져갔다. 실패한 인생인 듯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했다. 앞길은 저 밤하늘처럼 까마득하였다. 도저히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이질 않았다.
십년 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그녀 곁에 다가온 지아 아빠가 유일한 버팀목으로 되어주었다……
부모가 모두 떠나고 새로운 가족을 무을 수밖에 없었던 서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고 보통사람들처럼 지아를 낳는 것뿐이었다. 툭 털면 먼지였던 그들에게 반듯한 결혼사진조차 한 장 남기지 못했고 이제까지 누구 손 빈 적 없이 열심히 살아왔건만 언제나 그녀를 기다리는 건 빈곤뿐이었다.
진짜 성공한 생, 그리고 행복은 그녀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 걸까……
아름다운 성보가 절반 완성된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있었다. 성보는 전체적으로 은색 울타리에 둘러 싸여 안정되 보였으나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비바람이 쏟아진 허름한 공간이거나 사람들이 살지 않는 우주 공간처럼 우중충한 느낌이었다. 허나 그것은 하나하나 정성껏 쌓아올린 성보였다. 그것은 딸애가 꿈꾸는 따듯하고 견고한 성보였다.
서희가 던져버린 나머지 블록 조각들은 머리핀이나 바늘처럼 지상 어느 좁은 귀퉁이나 웅덩이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흩어진 그것들을 모아 줍는다 해도 이젠 산산이 부서지고 원 형태를 잃어 더 이상 복구가 불가능했다. 최초의 블록 조각들은 바싹 부서졌다. 서희는 절반 완성된 성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옆으로 울다 잠이 든 딸애 손에 남겨진 블록 조각이 유표하게 안겨왔다. 창밖으로 희붐히 새벽이 다가왔다. 누군가 스르륵 옷 입는 소리조차 들릴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정적 앞에 서희는 옴짝달싹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귀를 막고 있는 것처럼 터무니없이 조용한 나머지 갑자기 눈앞의 광경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은 터무니없이 후회스러운 순간이었다.
이젠 떠나버린 남편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남편이 근본을 얼만큼 깨닫고 얼만큼 망각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화로 풀 수 있을 시간과 양심과 믿음이 소멸되어버린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의미가 없었다. 어쩌면 언젠가 딸애가 그리워 이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진다 해도 그 길은 잃어버린 블록 조각들과 함께 어느 모퉁이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절반쯤 완성된 성보는 분명히 견고한 삶의 터전이다. 모든 것을 그렇게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가장 현명하다. 두 눈을 감은 채로 휘휘 사물의 정체를 알아 맞추는 놀이처럼, 우리는 언제나 삶의 조각 속으로 들어와 있다.
서희는 무표정의 얼굴을 거두었다. 새벽 세시면 각자 꿈을 꾸며 곤한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다. 아침이 되면 또 사람들은 불완전한 컵으로 칫솔질 할 거고 전날의 무게가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홀로 출근길에 오를 것이며 한국추첨에 관한 새로운 정책이 담긴 뉴스를 듣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무시를 던지겠지. 이미 현실은 깨진 거울처럼 조각 나 있으니까. 모든 파편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침대 깊숙한 밑바닥이거나 서랍 아래 처박힌 머리핀이나 블록 조각을 찾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 아닌가. 우리는 그냥 확신 가는 것들만 적당히 믿으면 된다. 가장 쉬운 일은 키높이 구두를 신은 채로 어디론가 숨어버린 진실 조각을 적당히 짓밟고 사라져버리는 일이다.
서희는 멍한 표정으로 블록 윗부분이 비틀어진 성보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보니 조각조각 나뉜 성보의 윤곽은 깨진 거울의 파편처럼 심하게 균형을 잃고 있었다. 어쩌면 완성한다고 해도 이것은 블록은 아이가 환상하는 성보가 아니라 깨진 조각들뿐일지도 모른다. 이제 블록을 쌓아올리는 일은 하나의 온전한 집을 만들 수 없는 가상일뿐이다.
환상의 성보로 가는 길은 이제 사라져버렸으므로 그녀는 서둘러 벼룩시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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