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 이옥봉李玉峯 (미상 ~ 1592)
근래안부문여하近來安否問如何오
월도사창첩한다月到紗窓妾恨多라
약사몽혼행유적若使夢魂行有跡이면
문전석로반성사門前石路半成沙라
꿈속의 넋
요사이 안부를 묻사오니 어떠하신지요?
달빛 내려앉은 창가에 첩의 한 더욱 사무칩니다.
만일 꿈속의 넋에게 오간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문 앞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것입니다.
紗窓: 얇고 성기게 짠 비단으로 바른 창문으로 여인이 기거하는 방을 일컫는다.
使: ‘부릴 사’자로 여기서 사역동사使役動詞의 기능을 행하여 ‘~로 하여금’의 의미로 쓰였다.
夢魂: 꿈을 꾸고 있는 동안의 영혼으로 꿈속의 넋으로 해석했다.
半成沙: 몽혼夢魂이 하도 들락날락하였기에 돌길이 닳아 반半은 모래로 변했다는 뜻이다.
서녀庶女로 태어난 이옥봉李玉峰은 황진이黃眞伊, 허난설헌許蘭雪軒 등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류시인이다. 그러나 첩이 될 수밖에 없는 신분으로 시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조원趙媛의 소실小室이 되었다. 하지만 약속을 파기하고 다시 시를 썼고, 소실이란 신분 제약에도 불구하고 시들은 상당히 높이 평가받으며 이름을 떨쳤다. 활발한 시작활동을 펼치던 중 이옥봉은 조원 집안의 산지기가 억울하게 파주坡州의 옥에 갇히게 되자, 그 억울함을 밝히는 시를 지어 파주목사에게 보내 산지기가 풀려나도록 하였다. 이 사건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게 되는데, 시를 짓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긴 이옥봉은 조원에게 쫓겨나 버림받게 된다. 7언절구七言絶句의 이 시에는 그녀의 임에 대한 한恨과 그리움이 절절切切하다. 어떻게 보면 사랑의 포로가 되어 밤마다 꿈길을 헤매며 사위어간 그녀의 삶이 심히 애처롭게 다가오는 애절哀切한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