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들면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어 살던 세상을 잊는 산, 속리산을 오른다. 법주사까지 드는 길목이 고색찬연하다. 어디서나 보기 드문 몇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우선 눈에 든다. 평균흉고직경이 60센치미터는 넘으니 200년이 넘는 경륜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동물이 더 진화가 되었느냐, 식물이 더 진화가 되었느냐 따질 겨를이 없다. 뵌 적도 없는 법주사를 찾으셨을 7대 거리 조상과의 면대를 나무는 기억하고 있으랴.
다람쥐가 물어다 정해준 한 자리에서의 답답한 삶이라지만 거기 지나는 바람과 풍상을 즐기며 때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오는 새와 짐승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기부리로 스미는 지하수를 당겨 하늘가 잎새로 끌어 올려 해와 탄소와 동화 녹색성장의 즐거움을 인간은 모르겠지. 몸무게가 무거울수록 속을 비워가며 천년을 사는 슬기를 사람들이 어찌 아리. 머틀머틀한 짚신바닥의 신발 깔창역을 맡았던 신갈나무며, 멀리서 날아오는 화수분과의 뜨거운 연애와 들판의 흉년엔 굴밤을 달아 떨구어주는 나무다.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 상수리나무며 인간의 배곺음을 해결하던 나무중의 나무 참나무가 아닌가.
고려 때까지의 주식이 굴밤이었으니 이 밤을 꿀밤이라 했으리. 오르는 길목마다 막걸리와 도토리묵 안주를 파는 휴게소를 몇 군데를 지나면서 막걸리 한 잔과 묵 한 저름을 들고 가자고 말을 해도 회원들은 막무가내다. 배낭의 무게에 위의 부담까지 지고 취기에 땀을 흘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비선대 휴게소까지는 참고 가리라. 갈림길에서 문장대 방향으로 올라 비선대를 거쳐 내리면 5시간 후에는 이 갈림길로 돌아온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10시 40분에 법주사 입구 일주문에서의 출발이다.
미탄 부회장의 복분자 두 단지는 매회 산행마다 원액 맛을 보일 것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목을 축이는 정성이 퍼졌다. 오는 중에 괴산군 구역에서 빗방울도 떨고 떠나온 평창엔 비가 내린다는 전화도 왔으나 기상발표가 믿을만하여 오전에 흐리고 오후 갠다는 예보를 믿어야한다. 감나무는 잎을 떨고 주렁주렁 붉은 감을 달고 있다. 누구를 향한 유혹인가. 감나무에겐 인간과 까치에게 보내는 보시가 무슨 뜻인가. 사과나무는 아직 잎을 달고 꿀맛 사과를 익히기 위래 몸부림을 치며 첫서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수관의 물길이 막힐 때까지 사과나무 잎은 제 직분을 다한다. 지구가 깨지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인간의 심정을 저 나무는 알고 있음이다.
속리산 주차장에서는 10분 거리 일주문까지 관광버스 진입을 허용하였다. 멀리서 달려온 객에게는 10분은 중요한 시간이다. 법주사 진입로 주위는 소나무도 노령목이다. 장대함이란 이런 모습이랴. 곧게 자란 모습이 지상의 모습이라면 지중을 알리는 것임을 안다. 땅이 깊고 후하지 않으면 바로 설 수가 없고 땅이 얕고 바위가 숨은 땅엔 나무도 구부러져 무거운 눈의 무게에 버틸 수 있는 형상으로 구불구불 변하여야만 생을 유지하는 것을 나무는 안다. 마사의 량이 풍부하여 지중의 공극으로 드는 공기의 순환과 배수의 흐름이 좋은 땅이어야 이렇게 장대한 소나무로 수백 년을 버티는 것이다.
숲은 인간의 탄성을 먹고 사는가. 이 길로 드는 사람들의 감성을 먹어야 사는 나무에게 하염없이 감탄을 보낸다. 고령 참나무들이 바지를 입은 듯 지단부에서 2미터 정도씩 고밀도 망사를 둘렀다. 2004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서 발견되어 확산하고 있는 참나무시드름병의 예방을 위하여 병균을 옮기는 매개충 광릉긴나무좀의 참나무 출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은 1980년 대에 피해가 급증하였다. 피해에 미치는 환경적 유인으로는 기온이 높고 강우량이 적은 해에 피해가 많은 반면, 기온이 낮고 강우량이 많은 해에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보고되어 온난화의 기후와 연관된 병이다. 솔잎혹파리의 재난으로 아랫도리에 수없이 수간주사의 흔적을 남긴 소나무들의 아픔이 엇 그제 같은데 참나무의 위기가 몰려들고 있다. 구제 방법이 없어 죽은 나무를 토막토막 잘라 비닐을 씌우고 훈증의 가스를 뿜어야 병균 매개 벌레가 죽는 것이다.
법주사는 여러 번 여행 온 적이 있어 큰 솥이며 금불상과 고찰이 기억난다. 하산을 하면 법주사와 정이품송에 들려야한다. 문장대 오르는 길은 평탄하여 유유자적 끼리끼리 보폭을 맞추어 무에 그리 할 말들이 많은 지 웃고 깡충 뛰기도 즐거운 입산길이다. 일주문에서 1시간여 걸어서야 산길로 오르는 길이다. 등산길은 잘 다듬고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여유롭도록 노폭을 유지하였다. 유명한 산에 대한 예의가 서려 있어 금시 삐뚤어진 돌계단을 고친 흔적이 자연의 여유와 인간의 정성이 한데 어울린 모습이다. 산죽은 곳곳마다 비옥한 영역을 차지하고 등산로 주변 나무들은 명패를 달고 있다. 다른 등산로 보다는 이정표가 단조롭다.
속리산국립공원은 속세를 산으로 끌어들여 공생을 하고 있다. 곳곳마다 휴게소에서 쉬어가라고 객을 유혹하는 막걸리며 도토리묵과 어묵을 장만하고 컬컬한 목을 유혹한다. 술이야 여유를 두고 속을 터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 산길 정해진 코스에서 한가한 시간을 즐길 수 없다. 어쨌거나 속세를 떠난다는 산이 산 속 깊숙이 속세의 상행위를 끌어 들였을까. 산으로 돈을 벌어야하는 필연이 법주사인가, 국립공원인가, 충청도와 경상북도인가, 허기야 속인의 노정을 위안하는 휴식처를 마다할 사항은 아니다.
속리산은 매정한 듯 인간의 목마름을 보시하는 샘이 없다. 계곡과 높낮이가 있음에 새맑은 샘이야 없을 리 없겠지만 꽁꽁 틀어막고 메고 간 수통에 허공이 채워져도 대책이 없다. 휴게소마다 넘치는 물소리가 무엇엔가 굶주린 달을 쳐다보고 우는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산의 샘을 가두는 것은 산을 덮는 것이다. 공유의 샘을 상업의 샘이거나 개인의 전유로 하기는 자연의 거역이 아닌가. 오르는 산길은 길고 지루해 차츰 쉬기를 자주한다. 숨을 몰아쉬며 갑자기 1초경영과 한발자국의 연관이 떠올라 글을 지어본다.
제목 : 한 발자국의 경영 / 현공 엄 기 종
인생엔 덤이 없다 누구에게나 1초 단위의 공정한 길고 짧음
오르고 내리는 등산길 한 발자국도 가감 없이 걸어야만 도달한다.
경영은 1초의 연속이다 한 발자국부터 떠난 등정길 걸음의 연속 없이 돌아올 수 없는 길
문장대 오르는 가파른 산행 쇠잔한 육체는 쉬엄쉬엄 가쁜 호흡에 가슴을 떤다
벼랑길 위에 선 경망함과 정상을 밟는 위대함이여 발자국 하나, 시작과 끝의 명료함이여.
드디어 문장대, 작은 한문문장대와 큰 한글문장대 돌비석이 기념사진객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섰다. 문장대는 비석 뒤로 웅장하게 솟았다. 가파른 철난간을 오르니 장관이다. 문장대 위에 솥 모양의 물이 고인 곳이 있어 인간의 탄성과 가는 해와 구름과 바람을 끌어드려 겨우 받아 놓은 빗물을 기화시키고 있다. 액체로서 아래로만 흘러가야하는 삶을 가두어 하늘로 증기로 날려 구름으로 보내는 문장대가 운장대로도 불리는 사유이랴.
애초의 지구는 용암이었고, 용암이 닳고 삭아 흙이 되어 위로부터는 빗물에 깎여 아래로 흘러가 대머리 암벽을 노출시키고 저리로 벗은 나신이 부끄러워 바위에 외솔 나무를 심고 있었다. 벗어야 멋이라는 것을 여기서 느끼다니, 오르는 선남선녀들을 벗기려드는 관념이 물씬 이는 문장대 위로 구름도 해도 바람도 함께 오른 회원들의 벌어진 입도 아름다웠다. 이 천국을 언제 또 오리. 동영상이며 사진촬영에 우영씨도 나도 점심 식사를 펴는 회원의 기다림에도 내리질 못하고 안절부절 펼쳐진 문장대 절경을 흘김 거리고 섰다. 문장대 아래 펼쳐진 점심은 종합음식문화의 전시장이다. 김밥, 찹쌀밥, 컵라면, 바리바리 싼 반찬, 매실주, 빼갈주, 복분자주, 훈제민물고기, 조림, 된장, 고추장, 목메는 점심엔 김치 한 저름이 목구멍의 윤활유요 별미인 것을.
발목이 시원찮아 산행을 포기했나 싶었는데 문득 문장대에서 내려오는 마누라가 나타났다. 위험한 여자다. 혼자 쳐졌다가 천천히 문장대에 올라 경상도로 넘어가는 길목으로 접어들었다가 우리를 만났으니 다행이다. 충청도 반대편인 경상도로 내려갔으면 그 혼란이 어땠으리. 오카리나 회원 몇몇이 오카리나를 불었다. 문장대에 왜 왔냐고 물으면 오카리나를 불려고 왔다고 벼르며 왔으나 보면대도 없이 날리는 바람에 발아래 악보를 펼치고 노래 몇 곡을 불었다. 아침 새벽 덜 깬 새들의 첫 가락 같았을까. 1000고지 명산에서의 새소리 오카리나를 인생 최초로 불었다는 것이 큰 의미이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비선대로 가는 길목으로 나섰다. 바윗길 옆으로 휘돌며 돌아보면 거대한 문장대가 손을 흔들고 앞으로는 비선대가 오라 손짓 하고 더 멀리에는 천황봉이 웃고 섰다. 가던 숲길 옆 능선으로 나서면 비스듬이 누운 넓은 너래 반석 위로 시원한 바람이 강약을 즐기고 있다. 앞 선 자들은 이 절경을 알리가 없지. 이 순간은 잊지 못하리라. 바위 아래 천길 낭은 보이질 않고 동서남북 갈래갈래 흘러가는 산등의 절경이 이다지도 아름다우랴. 바람머리 휘날리는 회원들의 판타지를 열심히 찍었다. 시 한수를 읊는다.
제목 : 신선대 가는 길목 / 현공 엄 기 종
문장대의 바람은 시를 읊는다 구름은 꼭대기 작은 못에 빗물을 보내고 오르는 인걸은 탄식만 쏟고 간다
저기 비선대, 더 멀리 천황봉, 돌아보면 문장대 언제 또 오리 눈에 사려도 아프지 않은 비선대 가는 숲길 가려진 아름다운 반석이여
비스듬이 누운 너래에서 춤추고 싶어라 바람이 춤춘다, 여인의 머리칼을 치올리고 낙엽 한 잎 조용히 앉혔다 날려 보낸다.
하늘을 바쳐 든 반석이 기우뚱 기운 것은 여인의 버선발 간지럼에 배꼽 빠져 웃다가 밤마다 찾는 달 하소연에 눈물 흘렸음인가
죄 진자도 천국, 저 광활한 산 아래를 보라 갈래진 풍상의 석상 사이로 외솔이 경륜을 가리고 나신을 가린 절경이 파고드는 곳 언제 또 오리.
머물러 밤을 셀 수 없는 신선의 터를 물려주고 비선대로 향했다. 잠시 후 휴게소에서 칡차, 당귀차, 막걸리를 마셨다. 점심 때 나눈 매실주에 곁들여진 진한 맛은 알알한 들뜸으로 선녀가 날던 터로 금새 날아갈듯 걸음마다 흥겹다. 오르며 무겁던 천근만근은 깃털처럼 가벼이 정상의 능선을 탐미하며 걷는다. 오름의 결정체, 세상이 다 내 것, 관조의 흡족함과 비경마다 튀는 탄성, 신선이 되는가 싶다. 날자! 선녀의 비파 타는 손길가로 따르며 날자. 비선대에 올라 천황봉을 향하여 손을 흔든다. 천황봉을 돌아보고 오고 싶어도 차편의 시간에 맞추어야하는 약속을 어쩌리. 천황봉으로 가는 아쉬운 갈래길을 뒤로 하고 법주사로 내리는 하산 길을 들었다. 급경사마다 철난간의 정성이 내리는 발길을 상쾌하게 옮겨준다. 한참을 내리고야 드디어 물소리를 듣는다. 계곡물은 숨었다 나타나곤 하며 숨바꼭질이다.
산으로 오르던 갈래길 조금 못 미쳐 고이는 물받이 통을 발견 하였다. 얼굴을 닦으니 소금이 흠뻑 묻어나 여러 차례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 상쾌함을 잠시하고, 열심히 찍었던 카메라가 어디로 갔는지 없다. 중요 광경을 찍은 카메라를 잊고 내려오는 길은 허망하고 지루하다. 법주사로 들어가고 싶어도 지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산행 6시간이 경과한 오후 5시 40분에 주차장으로 바로 내려서 준비한 막걸리와 파전을 즐기고, 6시에 출발하는 귀로의 차안에서 귀중품을 잃은 분은 손을 들라 한다. 현옥씨가 바위에 두고 내리는 것을 고맙게도 들고 온 것이다.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갔다는 농담이 냉큼 들리고 안도의 숨은 귀로의 관광차 춤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평창부회장의 보시 된장찌개 저녁을 들고 제천서 평창까지의 관광차시공은 표현을 다 못할 종합예술이 벌어졌다. 속리산에서 따르던 둥근 달이 평창까지 쫓아왔다. 1막1장은 끝나고 2막2장의 산행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밤 샤워를 마친 회원들의 잠은 아무도 깨우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