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ard Won NJ. / dated on February. . 2007 |
| | | 노스탤지어 (Nostalgia · 鄕 愁) ! | · 원재훈 |
은퇴 후 인생이 남쪽이면 좋을 듯해서 Florida 남쪽 West Palm Beach로 이주를 하고보니 습하고 더운 기후가 우리 식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1년 반 후에 알게 되어 결국 다시 New Jersey 북쪽 Leonia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또 다른 이유는 중일과 초등학교 5학년 짜리 아이들을 Boynton Beach 공립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뉴저지의 공립학교는 그곳의 한 아이에게 각각 $500 불씩 지불해야 하는 사립학교보다 좋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퇴교 할 때마다 큰애를 데리러 가보면 군데군데 모여 있는 아이들 중에 체격이 우람하고 큰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아빠! 저 아이들은 졸업을 못하고 자꾸 낙제를 하는 아이들이야. 저네들은 매우 난폭하며 포악해서 문제 아이들이고 저들끼리 늘 다투어 순경들이 학교에 와있어요”
뉴저지에서 중간정도의 실력이었는데 갑자기 내 아이가 우등생을 뽑혔다. 처음으로 우등생 노릇을 해보았다. 작은 애는 그런대로 크게 불평이 없었지만 교육열과 시설이 낙후된 그 일 년 반의 세월은 아이들한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맹자의 어머니 생각이 났다.
4월의 Easter를 기준으로 Snow Bind (겨울철에 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제 고향으로 떠나버리고 뒤에 남은 심정들 크게 구멍 뚫린 허전함과 그리움속에 쓸쓸해진 거리와 그림자가 써늘해진 기업들(주로 식당, 백화점)이 습기와 더위로 고문과 도전을 받는다. 지금은 두둑해진 주머니로 앞으로 6개월을 견뎌내야 한다. 많은 가게들이 주인이 바뀌거나 견디지 못하고 이 시기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낚시터에서 만난 어떤 서양인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해안선에서 유명한 식당주인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도 이 시기를 견디어 낼려면 특별한 수완과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반년 까까이 매일 축제처럼 북적이던 인파가 떠나버리고 나면 비어 있는 대지위에 공허함만이 번득일 때 잠자던 향수가 머리를 쳐들고 솟아 올라왔다.
뉴욕에 눈이 2피트나 내렸대. 시카고, 토론도는 지금 영하 20도래. 하며 “함께 있지 않는 자는 모두 적이다” 하는 서양 속담을 실감나게 만들며 희희낙낙 거리던 쭈글쭈글한 노인들의 얼굴이 이제 그리움으로 바뀌고 그들이 망각에서 사라 질려는 무렵 어느 날 정말 철새처럼 소리 없이 나타나서 북쪽 얘기를 또 들려주었다.
연일 90도가 넘는 찜통더위 속에 드라이 크리닝 머신과 김이 푹푹 쏟아지는 몇 대의 다림질 기계에서 품어내는 열기로 머리털이 삶아져서 머리를 흔들면 그냥 쏟아져 버릴 것 같은 10시간 주 엿새를 일하고 나면 일요일 하루는 선물을 받는 것처럼 감격스러웠다. 그때 어떤 인연이 맺어져서 그 세탁소에 우리 부부가 직장을 얻어 일하게 되었고 그 해의 경험으로 집 사람은 지금도 도널드 트럼프가 지어놓은 맨하탄 빌딩에서 세탁소 드롭샾에서 일하고 있다.
고된 이태리 수퍼마켓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사업과 건물채 은행으로 소유권이 바뀌는 바람에 미국까지 내려와 비싼 고생을 즐기고 있으니 아내에게는 할 말이 전혀 없다. 궁지에 몰리면 또 다른 문이 열리는 모양이다. 그것은 낚시대를 다시 잡는 것이였다. 캐나다에서 강과 호수로 다니며 익혀놓은 낚시질이였다. 렌트 보트를 타고 호수 속으로 들어가서 한 두번은 뭍을 밟지 않고 36시간씩 호수위에서 미친듯이 낚시에 혼이 빠져버린 때도 있었다. 무료하던 생활에 활기가 솟은 순간이였다. 1977년에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북쪽 고개마라는 지역 속에 있는 Rice lake로 올라가서 1400 파운드 무스(Moose)를 사냥해서 한때 토론토 교민에게 이야기 거리를 제공했던 기억도 있다. 어떤 것도 그때 그 사냥 여행처럼 재미있었던 기억은 아직 없다. 다른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자.
West Palm Beach에 한인이 듣기로는 200 여명이 산다는데 토론토에서 내려온 Mr.최 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고 가끔 사람이 그리우면 찾아 가곤 했었다. 오후 7시에 가게 문을 닫고 오면서 bait(미끼) 샆에 들러 산 새우를 두어 다스 사다가 냉장고에 넣고 저녁을 일찍 먹고 누웠다가 밤 11시에 일어나 챙겨들고 집에서 20분~30분 거리의 다리(橋)나 혹은 pier을 바꿔가면서 찾아나갔다. pier는 낚시를 하도록 지어 놓은 다리나 방채를 말한다. 지도를 보면 훌로리다 해안선에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잭슨 빌 (Jackson Ville)에 다양한 어종이 살고 있고 좋은 낙시터로 꼽히고 있고 Boynton Beach, Deerfield, Miami 등 고기들이 해안으로 많이 몰려오는 곳을 알 수 있다.
내 집에서 가까운 Boynton Beach, Lakeworth 또는 북쪽으로 30분거리의 Blue Heron 등 물때와 줏어듣는 고기떼의 소식에 따라 무당처럼 황홀경을 만끽하며 근방을 누비고 돌아다녔다.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 3시간 동안 수 없는 고기들이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며 육지 가까이로 접근한다. 모르긴 해도 먹이사슬의 법칙대로 큰 고기 떼가 작은 고기떼 를 몰고 다니는 속 사정때문일 것이다. 낚시터는 1년 12개월 24시간 어느 때나 강태공들로 만원을 이룬다. Mangrove Snaper, Shoonuk, Croaker 등의 철이 오면 전 식구들이 이동침대까지 들고 와서 교대로 잡는 것을 보고 처음엔 신기 하게 보였다. 옆으로 한 어깨만 끼어 넣고 좁은 공간을 서로 공유하려는 의지, 눈치와 재치를 최대한으로 발휘해야하고 보통 서로 참고 웃음으로 신사도를 지키지만 갑짜기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수가 있다. 여러 나라의 고기가 한꺼번에 물어재끼면 줄은 엉키지 공간은 좁지 말도 형용키 어려운 흥분의 텐숀으로 모든 사람들의 눈에 불이 켜지게 만들었다.
남 십자성은 머리위에 가물거리고 수평선 멀리 남쪽 어디엔가 번쩍이는 번개를 동반한 검은 구름이 호시탐탐 공격을 노리는 몽고군처럼 으르렁거리는 천둥과 부챗살 같은 섬광을 뿌리며 이쪽을 지켜보았다. 그 천둥소리에 맞추어서 Snaper들은 정신을 잃은 듯 낚시 밥을 공격하며 그 뒤를 쫒고 있는 Baracuda는 낚시에 걸린 놈을 퉁하는 진동을 전하며 반을 쌍둥 잘라 먹는다. 아랫도리를 잃은 반쪽 놈이 입만 뻥긋거리며 잘리운 하체를 기억하고 있는지 눈에 푸른 인광을 뿌리며 올라 왔다. 그러자니 통째로 잘 건져 내는 것도 반은 운인데 시간을 끌수록 Baracuda 에게 이로웠다. 훌로리다에서 가장 보호를 받고 있는 Shoonuk은 open 기간 21~26 inch 사이만 잡아야 한다. 그 외는 모두 방면 시키는데 너무 작거나 큰 것만 잡히지 그 적합한 사이즈는 씨즌이 close된 후였다. 또 다른 바다의 황소라는 Tarpon과 함께 반칙을 하다 적발되면 5,000 불의 과태료가 매겨진다. 일주일에 2~3번씩 나가다보니 바다와 고기 고기와 계절 등 반복되는 현상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초저녁 한밤중 새벽녘에 잡히는 고기가 달랐고 어느 시간이 지날 때 마다 새로운 고기 떼와 흥분이 나타났다. 생각 보다는 아침 4~6 사이는 큰 성과를 볼 수 없었다.
식구들이 훌로리다로 내려오기전 사전 답사의 목적으로 뉴욕에서 함께 일했던 동생같은 사람집에 2주동안 머물렀었다. 어느 날 젊은 친구하나가 한국에서 방문오신 그의 숙부와 L.A.에서 오신 어머니를 함께 초대한 Key west 방문을 요청에 의해서 따라가게 되었다. West Palm beach에서 4~5시간 남쪽으로 내려가면 태풍 앤드류가 휩쓸고 지나가서 유명해진 Home Stead를 지나면서부터 좁은 2차선으로 바뀌였다. 외부 사람들을 함부로 환영하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로를 확장하지않고 좁은 대로 보존하는 것은 외부의 교통량을 줄이고 그 지역을 보호하고 개발되지 않는 상태로 보존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태풍 앤드류 그 당시 미 공군 사령부가 있던 Home Stead에서 90% 이상의 시설이 파괴되자 지부로 갖고 있던 탬파(Tampa)로 완전히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군에 연루된 한국인들이 몇 만이 탬파에 사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Key west는 자라다만 어린아이의 꽤재재한 모습과 흡사한데 의도적인 보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헤밍웨이가 살던 집은 관광지로 여행객으로 붐볐고 큐바 하바나로 연인과 떠나기 전에 살았던 집에 타자기 글쓰던 방, 남기고간 그림, 물건들을 진열해 보여주었다. 역사가 이사람을 배려한 감각을 빼놓으면 전혀 관심이 없는 것들이였다. 그가 망중한 파이프를 물고 흰구름을 앉아 즐겼다는 의자에 나도 앉아서 담배 한 대를 얻어 피워본 추억이 새롭다. 다음날 정오쯤 예약해 놓은 “Deep Sea Fishing” 배가 떠나는 부둣가에 도착해 보니 30~40명이 탈 수 있는 배가 기다리고 있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어린아이들과 줄을 서서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1960년대 섬과 섬사이를 잇는 7mile의 철근과 시멘트로 새로운 다리를 놓고 미국이 경제 대국임을 자랑했던 7mile Bridge를 달리면서 문어발처럼 금방 덮쳐올 것 같이 넘실대는 바닷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환상을 느끼게 했다. 현 대통령 부친 죠지 부시는 이 다리로 내려와서 보트를 타고 낚시를 즐기던 현직 대통령으로 유명했다.
월남 플레이꾸에 참전 했다는 죤이라는 선장은 부인이 한구인이라면서 “안녕하세요” 거의 완전한 억양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선장만이 아는 뱃길로 4~50분 가다가 3곳을 옮겨 가며 약 1시간씩 심해 탐지기를 이용 바닷속에 형성된 구릉 혹은 계곡위로 배를 정박시켰는데 아무리 수확이 많더라도 그 시간 한도가 가까우면 자리를 옮기는 것은 다음 손님을 위한 배려인 것 같았다. 그는 일년 내내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테니까. 고기는 배에 장치된 큰 탱크에 함께 넣었다가 오른쪽 눈밑, 아가미 우측에 이렇게 소리지르면 내가 잡은 모든 고기는 그렇게 칼끝으로 표시를 한다. 배에서 내릴 때 고기를 탱크에서 꺼내들고 표시된 우측눈 밑에 아가미 우측에 소리 지르면 내가 잡은 고기가 틀림 없고 통이다 빌때까지 기다리면 다 찾아 올 수 있었다. 금빛과 복숭아 빛으로 눈부신 대낮의 햇볕을 튕겨내는 맹그로브스냄퍼 엘로 핀(Fin) 빨간 돔, 큰 솟뚜껑보다 큰 카오리, 타폰, 마히와히 문어 등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고기들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리면서 끌려왔다. 나는 내 개인용 낚시대와 도구를 챙겨갔기 때문에 더 아찔한 흥분과 즐거움으로 남들 보다 훨씬 값진 트립을 즐겼다.
낚시꾼의 천국으로 알려진 훌로리다 남단의 큰 국립공원 앞으로 Marco Islands는 10,000 개 넘는 섬들이 산재해 있으며 낚시꾼으로 삶을 정한 사람들의 마지막 들어가는 (하늘문이다)천국이다. 아프리카를 출발한 파도는 훌로리다 동쪽의 해안선에서 멈춘다. 언제나 파도가 세며 쉼이 없다. Marco Islands, Naples, Fort Myer, Tampa 등 서쪽 해안선에서 파도가 시작하므로 바람이 고요한 저녁 노을은 면경같은 바다위에 물새들이 멀리 먼지처럼 떠있고 붉은 해가 달걀노른자 처럼 후라이 판에 녹아드는 것 같은 장관은 이 세상에서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일몰이 아니다. 가장 단순하고 꾸밈이 업는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의 그림처럼 숨소리조차 거북한 고요함 오래 그 기억 간직될 것이다.
겨울철의 낚시터는 북쪽에서 추위를 피해 이동해 오는 홈레스(Homeless)들이 몰려와 있다. 한번은 썰물 때 낚시를 나갔는데 미끼를 갈아 낄 새가 없이 심한 입질을 하는 대도 단 한 마리도 낚을 수가 없어 분통을 씹으며 매우 황당해 하고 있었다. 별 빛이 흔들리는 바람과 열을 뽑아가는 온도는 더욱 마음을 조이게 만들었다. 누군가 거적대기 같은 것을 들치고 그 시간에 졸고 있는 가로등의 불빛에 콧마루만 유난히 반짝이는 앞니가 보이지 않는 얼굴이 내 등뒤로 다가왔다. 둘러 보니 수확이 없는 밤이 였는지 나홀로 외로운 고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 서너 모듬의 시체처럼 거적을 뒤집어 쓴 잠자는 모습에 정신을 차려 보니 소름이 엄습해 오면서 으스스 했다. 등 뒤의 그림자는 “그 입질이 고약한 고기가 그렇게 잡고 싶어” 갑자기 긴장하는 바람에 얼른 입이 떨어지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드니 괴춤에서 뭔지 쌈지 같은 것을 꺼내더니 한번도 내가 써 보지 못한 작은 낚시 바늘을 꺼내들고 내 얼굴 앞을 휙 그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자기 미끼 함에서 녹은 새우가 겨우 형태만 갖춘것을 들고 가서 배쪽의 꽁지에 바늘을 집어 넣어 입 근처에 멈추게 하더니 새로 바꿔 끼워주었다. 그가 “굳럭” 하는 소리를 등 뒤에 남긴채 제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벌써 나의 낚시대는 무게를 느끼며 활 모양 꾸부러 지고 있었다. 입은 적지만 몸통은 한뻠이 넘은 병어 종류의 고기였다.
그 동안 나의 낚시 실력은 전혀 상식이 없는 연구가 전무한 요행을 바라는 식이였다. 고기의 습성 미끼의 선택 낚시 바날의 크기, 썰물과 밀물때의 고기 종류 등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밤이였다. 배경음악처럼 희미한 하늘 검게 우뚝 솟은 호텔들, 꾸물대는 불빛에 깊이 잠든 호화 주택들, 그러나 이 도시가 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써비스인 거적대기에 누워 있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즐거운 듯이 벌떡 일어난 그는 그 후 1시간 넘게 내곁에 서서 낚시 강의를 열심히 해주었다. 많이 배웠다. 그는 홈레스였다. 고기를 잡아야 연명이 되었다. 고기를 못 잡으면 그냥 굶는 때도 있었다. 택사스 켄터키 등 주로 중 남부에 살며 겨울이면 이곳 팜 비치 쪽으로 내려왔다. 매우 선량하다. 그 날 저녁은 실력으로 잡기 힘든 큰 바라꾸다를 잡아서 요기 했다면서 옆에서 딩굴고 있는 큰 뼈다귀를 가리켰다. 한 주가 지난 후에 다시 찾아갔을 때는 그는 이미 새로운 장소로 이동한 후였다. 그가 보여준 행동 말투 혹은 눈동자에서 이곳 저곳 끝없이 배회하는 세상의 다른 부류의 동반자를 구분 할 수 있는 혜안을 갖게 해 주었다. 북쪽의 툰드라를 이동하는 사슴떼, 아프리카 사바나를 이동하는 지브라 윌라비, 사슴떼, 남과 북으로 이동하는 조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유전자는 인류에게도 크게 감염되어 있나보다. 내 자신도 조건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이니까. 계절 따라 이동하는 저 영혼들 속에 자유의 의자만 살아서 생명을 태우는 사람들이다. 그 외의 이유는 오직 변명에 불과하다. 받침대도 없이 홀로 떠있는 지구. 오로지 자유만이 우주의 관심이고 목적이다. 그리rh 중력이란 쇠사슬로 묶어 생명을 회수해 간다. 우주는 엄청나게 무서운 정부이다.
1998년 10월 3째주 수요일 New Jersey Newark 공항에서 Texas의 Fort Worth로 가는 비행기에 토론토서 부터 앞게된 친구와 함께 올랐다. Los Cabos Mexico 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위해서다. 집사람은 아이들 수발 때문에 갈 수 없어서 대신 친구를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의 비행기 표와 일체 비용은 회사에서 이미 지불이 되였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Los Cabos (The Capes)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3시간가량 사막으로 이어진 대륙을 지나면서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지역이 생각보다 훨씬 좁다는 의구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캐나다는 몬트리얼을 출발 록키에 닿을때까지 국경을 따라 듬성듬성 도시를 이루지만 거의 비어있다. 마니토바, 리자이너, 알버타 등 넓은 대륙의 벌판에서 전세계의 70%의 밀의 생산지 이지만 사막이나 다름없다. 겨울이면 강한 바람 때문에 밀밭의 Top-Soil이 날려 사막처럼 모래 이동의 현상도 일어난다. 공룡이 멸종할 때 산소가 공기중에 17%밖에 안되였다니 현재의 22%의 기준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문명을 뒷바라지하기 위하여 이 시간에도 나무는 수업이 베어져야 한다.
높이 솟은 서쪽 산에 햇볕이 걸려 멈짓거리는 시간에 Los Cabos의 낙후된 공항에 내려 호텔에서 보내준 미니 벤을 타고 20 여층의 본 건물이외에 산 기슭으로 이어지는 3층 건물들이 철도에서 이탈한 긴 기차간 같은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미리 정해진 방으로 가보니 잭 니콜라우스의 이름으로 보내진 봉투와 일정을 짠 시간표, 니콜라우즈 이름이 찍힌 공 두더슨(dz), 모자, 수건 등 골프 투어에 필요한 물건들이 침대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다음과 같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Howard Won, 당신은 잭 니클라우스의 골프채 제작회사에서 지난 4개월간 실시한 전국 판매콘테스트에서 종합 9등을 하였기로 그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초청하오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3박 4일 동안 모든 비용을 일체 저의 회사에서 책임질 터이니 마음껏 노시고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원하옵니다.” 잭 니콜라우스의 서명.
칼로웨이의 위세가 크게 떨칠 때 아이언마다 다른 킥포인트가 있는 샤프트를 개발해서 같은 값으로 팔아달라고 우리 세일스 팀을 데리고 맨하탄에서 유명하고 비싼 음식점으로 초대하며 간청을 하던 총 책임자 Bill Henwood가 대장으로 와 있었다. 지난 4개월 니클라우스의 이름을 수 없이 뇌이며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을 설득시켜가며 남다른 열정으로 판매를 하다보니 전국 3000여명 중에서 9등은 내 자신을 입증시켰다는 차원에서 보람있게 느껴졌다. 자신의 출중한 직업의식이라기보다 맨하탄이란 특수한 지역조건이 가능하게 해주었다고 생각된다.
New York Golf Center는 맨하탄 35가에서 7번과 8번가 사이에 위치하며 길건너는 유명한 Macey백화점이 있어 뉴욕에서 제일 바쁜 거리이다. 전 세계에서 특히 성탄절기에는 각 유럽뿐만 아니라 남미 등에서 비행기 값이 떨어지고 남을 만큼 물건 값이 싸기 때문이라면서 끝없는 손님으로 만원을 이루었다. 특히 뉴욕에서는 1층과 2층이 15,000 square feet의 넓은 공간에 오직 골프 용품만 취급했으니 외국에서는 이렇게 큰 샾을 구경하기 어렵다. 매일 맨하탄으로 일하러 들어오는 인구가 5백만이고 국제공항에서 내려 이곳에 숙박을 정하면 직경 20여 마일, 폭이 3마일의 섬을 나가기도 힘들지만 값과 종류가 이곳보다 좋은 곳이 없기 때문에 경기가 훨씬 좋았던 '94~97년사이는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했다. 그러면서 나대로 느낀점이 있었다. 문화와 언어에 따라 걷는 모습. 말하는 모습, 풍기는 인상, 서있는 모습들이 차이가 났다.
지금도 내 기억속에는 유치원생처럼 유순하며 명랑하고 남을 의심하지 않는 두 민족이 있다. 독일인과 일본인 이였다. 다른 점은 일본인은 결정을 자기가 한다. 다 듣고 여유있게 분석하고 생각한 후에 선택을 하는 모습들이 존경심까지 들게 했다. 끝까지 겸손하며 최대의 써비스를 받고 나갔다. 독일인은 즉흥적이며 쉽게 감동하고 천진난만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매우 좋아했다. 감동하면 눈물까지 보여주며 감사해했다. 불란서 사람은 덜 어수룩하다. 여름엔 몹시 땀냄새가 났다. 말을 할 때는 매우 가까이에서 소곤소곤 작은소리로 하기 때문에 여름철엔 냄새를 참을 수 있는 수완이 절대 필요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주로 남자들이고 여자들은 골프이외에 다른 것을 즐기는 모양이다. 좀 투박하다. 세련된 점이 엷은 반면 우직스럽고 충성스럽다. 한번 알면 다른 사람에게 눈도 돌리지 않았다. 한국인들한테는 매우 특이한 질문을 받는다. 처음에는 그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한국사람들이 잘 사는 채가 어느 것입니까” 이름이 있는 채이어야만 품질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안전 때문인 것 같았다. 많은 P.G.A. 선수들이 이름 없을 때 도와주고 썼던 회사를 바꾸고 나서 사려져 버리는 일이 많다.
골프채는 매우 섬세하게 각 개인의 playerbility에 영향을 준다. 샤프트, 그립의 무게가 조금씩 다르며 어떻게 조화를 꾸며야 각 개인에게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시킬 수 있는지 각 개인의 몸무게, 힘, 근육의 발달여하, 키 등 수없이 많은 것의 영향을 받으며 각 개인의 조건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무게 콤비네이션이 맞으면 좋은채이다. 각 회사마다 이 무게의 다른 콤비네이션이 그 회사의 특허이다. 남이 잘치는 채가 나에게 맞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각 회사는 자기 제품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다고 선전하지만 한 제품이 전체 인구에 좋을 수 있는 기회란 오직 10~20%를 넘지 못한다. 그들은 계속 팔아야하고 속이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큰 원숭이가 늘 등위에서 괴롭히고 있다.
이야기가 딴 데로 빠져버려 미안하다. 우리의 일행이 콘테스트에서 10등까지 뽑는 부부 20명 각 지역담당 판매책임자 접대와 업무를 도와주러 회사에서 파견된 인원 20여명 도합 40여명 이였다. 저녁 후 40여명이 서로 인사와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다음 일요일 떠날 때까지의 자세한 일정표를 재확인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Accapulco는 바다 건너 동남 쪽으로 비행기로 몇 시간 거리에 있고 그 반대편에는 Cancun이 대서양을 끌어 앉고 있다.
1982년 2월 우리 가족은 여행사의 을 구매해서 Cancun으로 여행을 했다. 도착하는 날 모든 프로그램의 설명을 듣고 5일 동안의 일정을 예약했다. 경험으로 미루워 다음날 부터는 누구도 설명해주거나 가이드를 주지 않기 때문에 호텔에 멍청이 앉아 있다 오는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날 큰 버스로 밀림 한 가운데를 뚫어 놓은 보수가 덜 된 도로를 붉은 먼지들 일으키며 마야의 유적지를 보라갔다. 대충 둘러보고 무심히 한 곳을 지나치는데 옆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밀림이 우거진 폐허속에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의 여행객이 드물었든 시대라 참으로 신기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옆에 한 중년의 부부가 사진을 찍으면서 돌로된 층계에서 위치를 바꾸라는 지시였다. 말을 멈추고 다가가서 “두 분이 함께 스세요 제가 찍어드리지요” 그 분은 나를 몹시 흥미롭게 쳐다봤지만 내쪽에선 별 관심이 없었다. 그 후 우리의 모든 과거를 찾아내어 공톰점을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1년 반 밖에 다니지 않았던 외국어 대학의 교수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면서 남미 콜롬비아의 한 대학에서 교환 교수로 일 년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에 부인을 불러내어 함께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들렀다고 했다. 그 순간 그 분이 나를 가르키던 우덕용 선생님이시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우리는 서로 부등켜안고 껑충껑충 토인들처럼 춤을 추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이 기막힌 우연의 재회를 축하해 주었다. 그날 저녁 70년대 멕시코 국립대학에 유학을 갔다가 거기서 20세기 초반에 일본 정부에 의해 보내진 초기 이민자의 후세하고 결혼했다는 일 년 선배 장영길씨가 운영하는 칸쿤의 유일한 중국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헤어졌다. 그날 저녁 은사와 후배를 위해 마련한 술과 음식으로 우리는 몸을 가누지 못했었다. 두 분의 안부가 궁금 했고 한 없이 행복하시기를 빌었다. 어둠을 빨아드리듯 시커먼 바다. 밤을 태우는 희미한 별빛에 부서지는 파도소리. 두고운 식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아 할까.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고 왔는데 인간이 쓸쓸해 질 수 있다니 얼마나 염치없는 동물인가.
니클라우스가 설계해서 Senior P.G.A. 가 자주 열리는 골프장에서 점심때쯤 한 라운드를 끝내고 옆에 있는 또 다른 골프장으로 옮겨가며 다음날은 하루종일 골프를 쳤다. 산과 계곡을 장점으로 삼아 최대의 효과를 살린 설계가 마음에 들었고 많은 도전을 주는 골프장 들이였다. 137야드를 드리아버 혹은 3번 우드로 쳐야 올라가는 거센 바람이 모든 골퍼를 조롱하는 홀. 나무가 울창한 계곡을 넘어야 그린이 시작되는 홀등 가슴이 벅찬 설계는 모두들 흥분의 상태로 몰고 갔다. 북쪽으로 산중턱에 유명한 Bing Grosby의 별장이 보였으며 그의 쌍둥이 아들 중 장남 Nathaniel은 어느 골프채 회사의 판매 책임자였기 때문에 두어 번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일 년의 강우량이 30~40 mm 밖에 안되기 때문에 선인장과 사막에서 견딜 수 있는 몇 안되는 식물이 태양과 지열의 공격에서도 의젓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숫자가 적기 때문에 누런 산들이 치부도 가리지 못했다. 대서양보다 깊은 태평양의 검게 보이는 푸르른 파도의 깊이와 속도가 무서워서 함부로 뛰어들을 수가 없었다. 호텔에서 2~3마일을 가야 안전한 비치가 있는가 보다.
여기서 내가 일생에 두드러지게 도움을 받았던 New York Golf Center의 맨하튼 본점의 사장 이전구씨의 시를 잠깐 소개하며 지나가기로 하겠다. 나보다는 3년이 위이지만 대학은 같은 해에 서울 농대에서 시작했고 한국과 한국 정부를 위해서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 태권도의 대부 준리(이준구)씨의 동생이다. 그 분은 수많은 국회의원, 전직 대통령 등에게 태권도를 보급시켜주어 미 정계에 두루 알려져 있다. 이전구씨는 보기드문 재야시인이며 재치와 위트가 뛰어난 분이다.
다음 날은 기다리던 Deep Sea Fishing 의 날이였다. 일찍 깨워줄 것을 부탁해 놓은 덕으로 준비를 갖춘후에 안내된 바닷가로 가보니 섬이 4개로 정해져 있었다. 한 그룹이 6~8명이였는데 배가 오는 대로 타고 군데군데 하늘이 조금씩 보이는 음산한 아침인데 비옷을 입었는 대도 바람이 불어서 추웠다. 10여 분을 내려가니까 육지에서 이쪽으로 배 한 척이 몸부림치며 접근해 왔다. 미끼를 전하러 온 배였다. 지루함을 느낄만큼 질주를 한 후 세 방향으로 섬들이 보이는 곳에서 속도를 늦추었다. 잠에서 일어나 빗질도 안한 짧은 뻣청머리를 한 선장과 눈꼽이 아즉까지 붙어있는 헬퍼가 배안을 아래 위로 분주하게 부산을 떨었다. 한참 후에 두 사람은 손을 모으고 죄송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배안에 꼭 있어야 할 추 (Weight)가 한 개도 없는 것이였다. 너무 한심해서 숨이 막혀왔다. 전혀 직업의식도 역사의식도 인간의식도 빠져버린 인간들이였다. 우리는 눈을 멀리 돌리고 전혀 동요를 보이지 않는 문명인의 의젓함을 보이려고 서로 눈동자도 마주치지 않았다.
운명이여 숙명이여. 이 먼거리를 꿈에도 불을 켜고 왔는데 돌하나 만져 볼 수 없는 바다위에 떠있지 않은가. 혹시 삐져나온 못대가리라도 있을까 아무리 살펴봐도 “Nada"였다. 컨터키. 네브라스카에서 온 젊은 부부. 텍사스 뉴욕에서 온 우리 둘 모두 6명이였다. 멀리 혹은 가깝게 보이는 섬들과 산 봉우리를 사진기에 담으며 관망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두어시간 백인들의 솜씨를 보는 척 마는 척하며 보냈다. 그들은 전혀 소식이 없는 낚시대를 붙들고 지루한 나머지 우리쪽을 돌아보며 의미있는 눈짓을 보내기도했다. 밑이 보이지 않는 이 바다속에 고기들이 득실거릴텐데 낚시줄이라고는 20파운드 짜리 줄이지만 콘드롤만 잘하면 큰 고기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과 자신감을 점검하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기적같은 magic이 일어날거라는 기대와 흥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두손을 하늘로 뻗어 포기 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한 후에 낚시대를 인계 받았다.
우선 미끼가 아직 살아있는지 확인할 겸 릴을 감아 올려서 조그만 통 속에서도 잡기 어려운 싱싱한 놈으로 갈아 끼운 다음에 맘것 풀려 나가도록 릴을 풀어 놓고 백오십 야드까지 배가 트롤링 할 때까지 기다렸다. 함께 따라온 배들이 자동차 만큼 작게 보이는 거리에서 우리와 똑 같이 트롤링 하며 파도 위에 내맡겨져있었다. 이제 풀리는 릴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버튼을 잠구면서 낚시대를 머리위로 들어 올리는 순간 무엇인지 큰 중압감을 주며 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트롤링하는 속도와 반대로 잡아당기는 속도를 합치면 배와 고기의 무게에 비례해서 실제 보다 훨씬 큰 중압감을 느끼게된다. 소리를 질러 배를 멈추게 하고 서서 땡기기에는 내몸의 무게가 너무 가벼운것 같아서 의자에 주저 앉자마자 릴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심한 태클이 들어왔다. 앞을 바라보니 날개를 힘 있게 펼치며 주둥이가 긴 Sword fish가 물위로 날아 오르더니 그 앞에 2~30m 전방에서 물속으로 사라졌다. 배와 고기 사이는 아직도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출렁거리는 파도의 무게를 계산하면 20 파운드의 줄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줄의 되풀림 텐숀을 조절해가며 혼란스럽던 몇 분이 지나간 후 이제 침착해 질 수 있었고 내 의지대로 고기가 콘트롤된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밀고 댕기는 기술 즉 그 쪽에서 반격을 해오면 이 쪽에서 양보하고 그 쪽이 피곤을 느낀다 하면 사정없이 줄을 감아 주면서 반시간 정도의 흥분으로 연속된 드라마가 펼쳐졌다.
기진 맥진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나타낸 자태는 휘황찬란하다는 말이 어울릴것 같았다. 갑옷처럼 치렁치렁한 지느러미 무늬가 있는 푸른등 흰색과 금빛이 배합된 배부분. 푸른 불빛을 품어내는 큰 눈동자. 바다의 작품치고는 입이 벌어지는 아름다운 고기였다. 순간 야구 방망이와 큰 쇠꼬챙이를 들고 두 멕시코인들이 고기에 달려드는 순간 “야 죽이지마” 나도 모르게 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무참한 방망이는 머리를 난타하고 있는 중이였다. 빈사 상태의 100여 파운드의 내 키보다 큰 장엄하게 아름다운 고기는 입에 피를 문채 좁은 배위에 길게 누워 죽음이 덮쳐 오는 것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너무가엽다. 배위는 순식간에 감탄과 경이, 흥분으로 배가 물위로 솟아 오를 것 같았다. 일생에 이고기를 잡는 것은 운이 있어야 한다는데 재미는 한 순간이였고 마지막으로 남기고간 난폭한 죽음은 섹스피어가 말한대로 바닷물을 다써도 지워지지않을 양심의 가책. 그 후 나는 낚시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고 열기도 사라졌다. 그후 나는 골프를 열심히 쳤다.
그 후 1시간이내에 경이롭게도 또 한 마리가 또 걸렸다. 내 친구에게 낚시대를 넘겨주고 그 놈은 좀 운이 좋아서도망가기를 빌었지만 워낙 노련한 손에 걸려들었으니 똑 같은 운명을 맞고 자기집 앞마당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 뒤에 선장은 용케도 어느 구석에 떨어져 있는 추 하나를 주워왔다. 이것을 이용하여 11월부터 2월까지 이곳에 산란하러 모여든 Yellow Fir Tuna를 여섯 마리나 더 잡는 실력을 과시했다. 이제는 그 배에서 내가 왕이 된 기분이였다. 모두들 나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한 마리씩 낚시에 거는대로 호명을 해서 건저올리게 했다. 처음으로 잡아보는 바다의 황소 투나. 그들은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그때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Sword fish가 두 마리씩 걸린 것은 재주도 아니고 우연도 아니였다는 것.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정당한 사연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미워했던 멕시코인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세상의 이치는 현명해야 되는 반면 무식한 이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고기들은 주로 멸치, 고등어, 꽁치, 아지 등 떼를 지어 다니는 고기에 먹이를 의존하며, 밑에서 위로 공격하기 때문에 물위에 떠있는 고기가 쉽게 목표물이 되었던거다. 추가 없었기 때문에 전혀 기대하기 불가능했던 고기까지 잡을 수 있었던거다. 한 마리는 아가미, 다른 것은 긴 주둥이에 낚시가 감겨서 끌려왔다. 실패하기 위한 성공보다 성공하기 위한 실패. 바로 그것이 축복이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큰 고기 중 하나 투나 2마리만 살을 떠 달라고 했다. 저울의 눈금이 하나는 95파운드, 다른것은 107파운드를 가르켰다.
다른 세 척의 배는 하루종일 미끼가 살아 움직이는 것만 보고 왔단다. “역시 뉴욕 내기들은 달라” 하는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뿌듯했다. 갑자기 영웅이되었다. 물론 변소까지 쫒아다니며 소란을 피울 때 나도 황홀해졌다. 생선을 모두 호텔 주방에 주었기 때문에 식당의 써비스도 정중했다.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일이. “NOSTALGIA"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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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2월 일 원재훈 / John Field 『 Nocturnes No.1 』 | by Daejin Kim - Piano
골프 人生1. 치는 법을 배움
골프를 치려거든 치는 법을 배우시게
팔과 어깨 목에서 힘을 쭈욱 뽑으시고
백스윙은 천천히 공에서 눈을 떼지 말고
고개를 들지 말고 외아들에 정성 쏟듯
하얀 공에 정성들여 다운스윙도 천천히
스슬쩍 찰싹하고 내려치는 느낌이다.
2. 예의를 지킴
골프를 즐기려면 예법부터 배우시게.
이 세상에 신사놀이 이만한 것 또 있을까?
말조심, 서는 자리, 앞서가고, 뒤서는 것
내 파트너 잘 칠 때엔 칭찬일랑 잊지 말고
내 파트너 실수할 땐 그 실수가 내 것인 듯
내 친구만 이웃인가 건넛동네도 이웃일세
호떡집에 불 안 났네 말소리는 조용조용
실례가 많아지면 친구들이 멀어지네
나를 슬프게 하는 것 중 이것 또한 으뜸이라
잘못된 모든 일은 그 모두가 내 탓이며
라이벌은 누구인가 바로 “나”자신일세.
3. 실패를 극복
골프를 치다보면 청개구리 공이란 놈
곰배팔이 팽이친 듯 좌측으로 우측으로
오줌 맞은 두꺼비가 웅덩이로 뛰어들 듯
돌팔매에 놀란 토끼 숲 속으로 도망가듯
골프인생 우리인생 실수투성이 아니런가?
관운장도 실수하여 조조에게 잡혔듯이
이것들이 그 모두가 병가상사 아니겠소
낙담일랑 하지 말고 초연함을 잃지 말게
이번 실수 교훈삼아 새 성공 기대하소.
4. 과욕은 금물
헨디를 줄이려면 서두르지 마시게나
열여덟 개 기회 있고 일흔 두 번 기회 있네
조금 더 내 보낼까 팔과 목에 힘을 주니
공이란 놈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누나
상쾌하게 날아가는 공을 한번 바라볼까
머리를 번쩍 드니 쌩크 볼이 나는구나
한 번 실수 두 번 실수 누구라고 아니하나
전(前) 홀에서 잃은 것을 지금 당장 찾으려고
욕심을 내어서는 공이 알고 도망가네
항우장사 실패하여 유방에게 잡혔듯이
동탁이나 실패하여 여포에게 죽었듯이
과욕으로 인한 실패, 실수 아닌 업보라네.
5. 운영의 묘
골프를 잘 치려면 나온 거리 남은 거리
수학문제 풀어가듯 계산부터 하신 후에
풀길이가 길었는가? 장애물은 어디 있나
그런 위에 파락이는 핀을 슬쩍 노려본 후
분수에 맞는 채를 꺼내 깊은 호흡 한번 쉬고
마음부터 비운 후에 투~욱 하고 내려치면
공이란 놈 날아가서 그린 위에 꽂힌다네.
6. 정직함
골프를 즐기려면 이 세상에 무엇보다
‘정직’보다 중요한 것 그 어디에 있을쏘냐
풀 섶에 숨은 공을 발로 차서 꺼내 놀까?
아무도 안보니까 공을 한 개 놓고 칠까?
모든 유혹 떨쳐버려 있는 그대로 올려보세
자기 것을 계산하고 내가 나를 감독하고
백에라도 단 한 번쯤 자기 양심 속일 때에
공이란 놈 먼저 알고 숲 속으로 도망가네.
7. 운
골프를 잘 치려면 운도 또한 기다리세
모사(某事)는 재인(才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후에
과욕은 극복하고 마음만 차분하면
팔과 다리 허리 머리 오장육부 조화 이뤄
기적 같은 동작들이 이따금씩 나타나서
날아가는 새도 잡고 홀인원은 못할쏘냐.
8. 건강
이렇게 하여 열여덟 홀 한 바퀴 돌고 나면
몸에서는 싱그러운 풀 냄새가 향기롭고
푸른 하늘 닮은 마음 한량없이 상쾌하네
엔돌핀은 축적되고 백혈구도 많아지고
혈액순환 순조로워 혈압고 뚝 떨어져
허리뼈가 시큰 시큰 이따끔식 아픈 증세
목욕 한 번 하고난 후 씻은 듯이 없어졌네.
9. 가정
하루 종일 나 혼자서 좋은 시간 가진 동안
사랑하는 우리 아내 골프과부 만들었네
당신도 골프 배워 우리 함께 겅강하여
검은 머리 파뿌리 되어 한 백 년을 살아보세
미안한 맘 금치 못해 혼잣말로 중얼 중얼
운전일랑 조심하고 고속으로 가지마소
천사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우리 새끼
저녁밥상 차려놓고 아빠 오기 기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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