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엔터테인먼트 대표 양현석, 'K팝 3.0'을 말하다]
해외에서 사랑받는 음악들, 어느 나라 노래인지 안 따져
중요한 건 국적이 아니라 콘텐츠…
유통사가 쥐락펴락하는 음원價, 이 구조 바뀌어야 좋은 음악 나와
나만의 리더십은 '방치'… 지드래곤, 나보다 뛰어난 친구죠
작년까지 K팝은 '수출용 문화상품' 성격이 짙었다. 주로 대형 연예기획사에서 만들어 낸 댄스그룹들이었고,
이들은 한계효용이 체감되면 새로운 상품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싸이의 성공은 이런 K팝의 한계를 뛰어넘은 'K팝 2.0 시대'를 열었다. 한국 대중음악은 올해를 'K팝 3.0 시대'의 원년으로
삼고 뛰고 있다. "영국 최고의 수출 상품은 비틀스"라는 말이 있듯이 수십년이 흘러도 '세계인의 문화'로 남는 음악을 영·미권에
진출시키려는 것이다. 마침 '싸이 효과'로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져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좋은 음악의 정답은 대중이 안다. 차별화되고 반전 있는 음악. 'K팝'이 아닌 '좋은 음악'으로 승부해야 성공할 수 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데뷔해 한국 대중음악의 거물로 우뚝 선 양현석(44) YG엔터테인먼트 대표.
그는 지난 28일 서울 합정동 YG 사옥에서 만나 'K팝 3.0'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지금 한국 대중음악은 세계로 뻗어가느냐,
사그라지느냐 하는 길목에 있다"며 "경쟁력 있는 음악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것은 물론 음악 콘텐츠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양현석이 자신의 사무실에 우뚝 선 3.2m 높이 로봇 태권V 모형 앞에 섰다. 2년 전 사옥을 완공할 때 함께 들였다고 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뻔하지 않은, 도전하고 반전이 있는 캐릭터에 푹 빠졌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취향”이라고 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2013년 무렵부터 'K팝의 위세가 꺾였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가장 큰 해외시장인 일본에서 차질을 빚은 게 컸다. 방송사에서 가수들을 우르르 데려가 합동 공연을 숱하게 열면서
공연의 질을 떨어뜨린 것도 문제였다. 눈앞의 이익만 봐선 안 된다. 국내에서도 올해 데뷔한 신인 수백개 팀 모두 실패했다.
차별화가 안 돼서다. 올해 가장 눈에 띈 신예가 크레용팝이다. 왜 사랑받았을까? 한국 시장에 지금껏 없던 친구들이다.
정답은 대중이 알고 있다. 남 따라 하지 않고 차별화된 게 좋은 음악이다."
―YG만의 해외 전략은 무엇인가?
"최근 빌보드 뉴스에서 작년 미국서 가장 많이 팔린 K팝 톱10 안에 우리(YG) 노래가 7곡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 철학은 간단하다. K팝으로 묶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실제로 난 YG의 음악을 K팝으로 분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국에선 어떤 음악이 사랑받는다 해도 어느 나라 것인지는 관심이 없다. 내년에는 미국과 중국 음악 시장에 대해
여러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작년 싸이의 '젠틀맨' 성과를 평가하자면?
"전 세계 유튜브 순위 5위인데도 '실패'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싸이가 '다음 앨범은 하던 대로
즐기듯 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정답이다. '젠틀맨'이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끝없이 치고 오르다 조금 떨어졌는데,
그게 자극이 되지 않을까."
―2014년 대중음악계를 위한 제언을 한다면?
"바뀌어야 할 게 너무 많다. 요즘은 음원 유통 체계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정말 창피한 것이 전 세계가 다 쓰는 아이튠스가
우리나라에 못 들어오는 것이다. 쓰레기봉투보다 싼 우리나라 음원 가격 때문이다. 정성 들여 농사지은 배추를 원하는
가격에 팔지 못하고 도매상 마음대로 가격을 부르니까 파묻어야 하나 싶은 거다. 유통사들이 터무니없이 가져간다.
갑을 관계가 아닌 파트너십으로 고민해야 한다."
―2013년엔 소속 가수인 싸이·악동뮤지션·지드래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내부적으로는 불만이 많았다. 특히 대표 가수인 싸이·빅뱅·투애니원의 정식 앨범을 못 낸 게 아쉽고 팬들에게도 미안하다.
벼를 거뒀는데 출하 못 한 느낌. 그래서 '쌀을 만들까 떡을 만들까' 생각한다."
―CEO로서의 리더십이 있다면?
"'방치'다. 가르치려 들지 않고 힌트만 준다. 꼼꼼히 가르친다고 스승만 한 제자가 나오지는 못한다. 지드래곤은 나보다
훨씬 뛰어난 점이 많다. 난 그저 인생 경험이 많은 선배로서 사회생활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 정도를 지적해준다.
나는 가수보다는 가수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데 소질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 98년에 솔로 데뷔 앨범을 냈지만
아쉬움을 달래보는 차원이었다."
―'방치'란 본인의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가?
"물론이다. 서울 인사동 작은 집에서 3형제 중 둘째로 살았다. 전파상을 하시던 부모님이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실
때까지 방치됐다. 그 시간 동안 밥과 반찬도 해먹고 설거지하고, 연탄 갈면서 필요한 건 스스로 해결하려는 능력이 생겼다.
그 덕에 무단가출한 적도 한 번 없다. 사고 치는 '날라리'였지만 문제아는 아니었다. 그런 경험 속에 '방치하되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키자'는 신념을 갖게 됐다."
☞양현석
가수 박남정의 댄서로 활동하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로 데뷔했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한 뒤
YG엔터테인먼트의 전신 '양군기획'을 설립하고 제작자로 나섰다. YG엔터테인먼트는 2000년대 이후 휘성·거미·빅마마
등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정상급 기획사의 입지를 굳혔다. 뒤늦게 영입한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월드스타에
등극하면서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K팝 프로듀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