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사주분석
이영돈 피디가 유영철 사주를 공개했으나 입수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시의 문제는 오류가 많은데 이영돈씨가 이것까지 염두에 두고 정확한 사주를 입수했는지 의문이다. 따라서 아래 유영철 사주는 정확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동호인들은 사주의 진위보다는 형충파해합 보는 법에 중점을 두고 읽으면 되겠다.
乾 유영철 양력 1970.5.22 21:00 乙未년 46세
95 85 75 65 55 45 35 25 15 05 時 日 月 年
辛 庚 己 戊 丁 丙 乙 甲 癸 壬 癸 壬 辛 庚
卯 寅 丑 子 亥 戌 酉 申 未 午 卯 寅 巳 戌
34세 癸未년 3월 출소 후 13일만에 살인 시작
35세 甲申년 7월 검거
36세 乙酉년 사형판결
총11명 살해, 본인 26명 살해 주장.
명조분석
이 명조에서 첫 번째 문제점은 火가 왕하다는 것이다. 왕한 火재성은 강력한 폭군이 되어 金인수를 극하고 있다. 이것의 대표성은 불안정이다.
두 번째, 이 명조의 중요한 看點은 寅巳刑이다. 이것에 대해서 언급한 역술가는 10대 역술인에 들어갔다. 그러나 인사형의 일반적 이론을 언급하고 1차 관문은 통과했으나 그 운용하는 법은 몰라서 2차 관문에서는 제주 고씨 문제를 풀지 못하고 낙방했다.
위 명조 寅巳刑은 寅巳가 서로 손상된다.『삼명통회』의 형충파해합 이론을 적용한 것이다. 따라서 부부궁이 좋지 못하고 다른 여자들까지 죽이는 징후가 인사형에 나타나 있다.
이 명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金水陰氣이다. 따라서 음기를 여자로 볼 수 있고, 천간에 있으므로 사회에 있는 여자들이다. 또 金인수는 부모와 직업, 안정적인 가정이다. 그런데 巳는 辛인수를 극하고, 인술화국은 연간시간 庚인수를 극하므로 천간 金인수가 모두 극을 받는다. 이것은 사회적 안정을 잃는 것이고, 여러 명의 여자를 죽인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왕화가 천간 용신 金을 제하므로 사회의 안전망을 무시한다는 의미도 나타나 있다.
성격은 식신을 대표적인 성격으로 보는 것이 원칙이다. 寅식신이 형으로 파괴되므로 정상적 성격은 무너졌다. 또 寅식신은 처궁인데 처궁도 무너지고 직업도 무너진다.
대운분석
왕화가 金인수를 극하는 것이 이 명조의 문제점인데, 대운마저 남방으로 시작되므로 초년부터 사회 안전에 관심이 없다. 따라서 자신의 안위도 없는 것이다. 巳는 부모궁과 조년을 뜻하는데, 刑이 되어서 7세 丙辰년의 丙이 나타나 부모가 이별하고, 16세 乙丑년에 축술형으로 丑이 戌火의 극을 받아 부친 사별한다.
刑으로 깨어진 巳를 구하는 것은 未운이다. 寅未는 암합(甲己合)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22세 辛未년에 결혼하고 시지 戌자식궁과 같은 오행 未토가 들어오므로 생자도 가능하다.
甲申乙酉대운은 파괴된 金인수가 나타나므로 길한 듯하지만 이것은 申酉가 정상적으로 작용할 때의 일이다. 이 명조는 申운이 寅申충에 의해 깨어지고, 酉운이 戌의 해로 극을 받으므로 서방 금은 작동하지 못하고 흉운이 된다. 특히 申인수운은 원국의 庚인수가 무너지는 시점(庚=申)을 뜻하므로 이때에 사회 안전을 뒤 흔드는 범죄를 저질렀다.
2003년 34세, 癸未년은 申운의 未년이므로 未운의 未년과 다르다. 未운의 未년은 寅을 합으로 구하므로 혼인 길사에 속하고 미술형이 未를 깨지 못한다. 그러나 申운은 金인수가 무너지는 흉운이고, 未년 미술형은 木이 未土를 극하므로 토생금은 불가하다. (『삼명통회』참고 바람) 申인수를 살리지 못하고, 木은 土를 극하고 火를 번성시키는 흉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이 한 해에 여러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35세 甲申년은 대운 申이 巳에 의해 무너지는 시점이다. 대흉운이고 천간 庚이 무너지는 시점이다. 동시에 자신의 안전도 무너진다.
乙酉대운은 戌 관고가 酉인수운을 극하므로 관에서 나를 잡아가는 상이고 감옥에 있는 운이다. 丙戌대운은 火局이 金을 극하는 시점이 되므로 비로소 생명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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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의 형이 있고 여동생이 있다. 부친은 월남점 참전용사이고 귀국 후 술, 도박, 여자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폭력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7세 (丙辰) 부모님 이혼, 새어머니의 밑에서 힘겹게 유년기 보냄. 초등학교 진학 후 친어머니의 보살핌으로 부유하지는 않았으나 그런 대로 지내게 되는데 애정결핍으로 말썽은 잦았으나 큰 사고 없이 지나갔다.
16세 乙丑년 부친 사망. 고등학교 입학 좌절, 사진기사, 중장비기사, 선원, 음식점 종업원 전전. 1988년 (19세 戊辰) 6월 소년원에 들어가기 시작한 이래 이후 주로 절도와 사기, 공무원 사칭으로 11번이나 형사처벌을 받고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22세 辛未년 결혼, 아들 출산. 1994년 (25세) 7월 제주도에서 전처 황씨와 찍은 사진을 보면 전처는 아담한 몸매에 단아한 미인이었다. 26세 乙亥년 이후 폭력성 나타남. 31세 庚辰년 절도혐의로 교도소 감. 33세 壬午년 이혼.
연쇄살인의 직접적인 계기는 감옥에 있을 때 아내의 일방적인 이혼심판 청구와 이를 받아들인 법원의 이혼 결정이었다. 그로 인해 가난과 잘못된 사회 탓으로 돌리는 반사회적 사고가 커졌다. 따라서 그가 사회를 향한 보복범죄는 상위 클래스 사람들이었고, 금품을 노리지 않았으며, 성적인 행위가 없어서 수사 초기에 큰 혼란을 주기도 했다.
2003년 (34세 癸未) 9월 11일 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13일 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씨(72세)와 부인 이씨(67세)를 살해했으며, 그해 10월에는 9일에 종로구 구기동에서 강씨(82세) 등 일가족 3명을, 16일에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씨(60세)를 살해했다. 2003년 11월 18일 화요일에는 종로구 혜화동에서 김씨(87세) 등 2명을 살해했고,
2004년( (35세 甲申) 4월에 노점상 안씨(44세)를 살해하고 시신을 월미도에 버렸다. 이에 앞서 2004년 3월부터 그해 7월까지는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총 여성 11명을 살해하여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총 21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한편 유영철은 2004년 7월 18일 체포되었는데 현장검증에서 26명을 살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35세 2004년 1월 절도 혐의로 잡혔으나 곧 석방. 2004년 7월 15일 체포, 36세 2005년 사형선고. 2015년 2월 (46세) 현재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교운 4세 8월 25일)
청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