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1월 12일 목요일 맑음.
싱가포르에서 첫 밤은 덥고, 시끄럽고, 불편했다. 그러나 활동할 만큼은 잔 것 같다. 밤새 개구리 우는 소리 같은 에어컨 소리에 뒤척였다. 에어컨을 끄기 위해 한 번 일어난 것 외에는 계속 좁은 침대에 있었다. 아침에 대충 씻고 호스텔에서 제공해 주는 빵을 오븐에 구워 잼과 버터를 발라 2개식 먹으니 든든하다. 따뜻한 홍차를 곁들여 아침을 해결했다. 다른 숙소를 구하러 나왔다. 우리가 원하는 숙소는 취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 밤 한국 여학생들이 알려준 것을 참고해서 찾아본다.
Why not inn은 우리 숙소에서 길 건너 오른쪽으로 200m 걸어가니 있다. 취사를 할 수 없게 되어있고 아래층 식당에서 사 먹게 되어있다.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다음 블록으로 더 걸어가니 Go’s hour라는 inn이 있는데 직선으로 4층까지 올라가는 층계에 불사용은 주인이 와 봐야 할 수 있단다. 우리는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4층에 있는 Peony Mansion에 다시 가서 취사를 할 수 있는지 물으니 다행히도 불을 사용할 수 있단다. 도미토리 형태 말고 개인 룸 2개를 빌리기로 했다. 숙박 요금은 도미토리는 두당 7 싱가포르 달러이고, 방 2개는 90 싱가포르 달러다. 아침식사 포함이다. 주인은 인도 사람 같다. 주변에 말똥말똥 눈을 굴리며 앉아있는 이들이 모두 인도 사람들로 보인다. 지저분하고 초라해 보이나 사람은 순해 보였다. 예약한 숙소는 방이 정리가 안 되어 체크인이 당장 되지 않았다. 짐을 맡기고 본격적인 싱가포르 구경을 나섰다.
250만 인구가 사는 도시국가 싱가포르, 사자의 도시, 투어리즘 시티, 가든 시티, 클린 & 그린, 더운 도시........ 처음 만나는 싱가포르의 느낌이다. 완전히 여름차림으로 밖을 나서도 그늘이 찾아지는 습기 많고 기온이 높은 날씨다. 지도를 펴들고 걸어서 YMCA 앞을 중심으로 Merlion Park를 향해 걸었다. 맨 처음 들리게 된 곳이 National Museum & art Gallery였다. 우리 숙소에서 가장 가까웠다. 1832년에 세워진 흰 벽 건물로 래플즈(Raffles)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전시품은 좀 적어보였다. 나비 콜렉션과 비취 콜렉션은 볼 만 했다. 특히 비취 콜렉션은 약을 팔아 부자가 된 호문호(胡文虎)의 집에서 옮겨온 것이란다. 싱가포르 역사 유물과 도자기가 많이 전시되어있다.
그 다음 방문한 곳이 포트 캐닝 공원(Fort Canning Park)이다. 책에는 센트럴 파크라고 나왔 있다. 산책을 하며 호수 주변을 걸어본다. 결혼식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아랍계인지 인도계인지 모르겠다. 그들 전용 식장인 것 같다.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식장에 금방 신부를 찾을 수 있었다. 나무 그늘이 많아 천천히 산책한다.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는 휴식 공간도 있다. 이 공원의 제일 높은 언덕이 Fort Canning Hill이라고 한다. 잠시 사진을 찍고 길을 따라 계속 내려오니 Armenian Church를 만나게 되었다.
이 교회는 1835년 싱가포르에 주재한 아르메니안 12가족의 기금으로 설립된 도리아 식 건축으로 만들어진 교회다. 교회 내부는 무척 오래된 설립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교회 정원은 그들의 묘지와 몇 개의 비석이 있다. 부채모양의 열대 나무가 인상적이다. 왕 옆의 시녀들이 손에 들고 있는 부채 같은 모양인데 아주 대형이다. 교회를 나와 North Bridge Rd를 건너 콜맨 스트리트(Coleman St)를 따라가니 상공회 성당인 세인트 앤드류 성당(St. Andrew's Cathedral)이 보인다. 넓은 정원과 고딕식 성당으로 잘 꾸며진 고전적인 모습이다. 그늘이 그리워 교회 정원에 있는 벤치에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성당 정문을 벗어나 길을 건너니 시티 홀(City Hall)과 Supreme Court가 있다. 처음에는 시청인줄 알았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법원이었다. 법원과 시청이 함께 붙어있어 앞에 넓게 트인 전쟁기념비를 마주하고 있다. 전쟁 기념 공원(War Memorial Park)에 우뚝 솟은 125m의 하얀 탑은 수리 중으로 하얀 천에 가려져 있다. 일본 점령 시에 죽은 인민 기념비란다. 싱가포르가 1942년 2월 15일에 함락되어 10일 사이에 3명의 화교가 살해된 사건이란다. 그래서 그들은 Japanese killed many, many people란 말을 자주 사용한단다. 한 번 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공연예술극장인 빅토리아 콘서트 홀(Victoria Theatre)을 지나 엠프레스 플레이스(Empress place) 광장에서 점심을 사 먹기로 했다. 인도식, 일식, 중식, 싱가포르 식, 좌우간 서양 양식은 아닌듯한 간이음식점이 밀집해 있다. 광장에 앉아 먹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인도식 튀김과 소스, 치킨라이스, 빙수, 빙수에는 팥이 없다. 사탕수수 주스를 시켜서 먹었다. 사탕수수를 압착기에 눌러 그 나오는 즙을 마시는 것인데 달콤하다. 어릴 때 먹던 수수대가 생각난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후에 둘러보니 이곳의 점심시간으로 건물에 근무하던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는 곳이었다.
엠프레스 플레이스 광장에서 다시 구경을 시작했다. 이곳은 1819년 1월에 토머스 스템퍼드 래플즈가 상륙하여 그 첫 상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광장이다. ‘근대 싱가포르는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장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곳이다. 이 광장에 빅토리아 메모리 홀(Victoria Memorial Hall)이 서있는데 1905년 완성 때 영국 여왕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란다. 이곳에서 미술전이 열리곤 하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중국의 명, 청, 원 문화권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비취를 이용한 섬세한 조각들과 보석세공이 너무도 신비스러웠다. 우리 조선시대의 관복, 왕복과 너무도 같은 그들의 의복을 보니 역시 옛날 우리는 중국 문명을 전해 받은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독특한 우리문화의 모습이 좀 아쉬웠다. 볼만한 전시회였다. 전시관을 나와 바닷가 쪽으로 걸으니 머라이언 파크(Merlion Park)가 나온다. 싱가포르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머라이언 이다. 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인 조금 모자란 듯 한 형상이다. 엘리자베스 길에서 앤더슨 다리를 건너가면 머라이언 동상이 있다. 공원이라기보다는 좀 좁다. 이 동상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단다. 낮과 밤의 얼굴이다. 낮에는 오가는 선박과 새파랗게 펼쳐진 하늘, 열대의 선명한 색깔의 꽃들이 배경으로 용감한 수사자의 얼굴이지만, 밤이되면 어둠속의 조명으로 창백하게 보이는 신비한 암사자의 모습을 보여준단다.
머라이언 작은 공원에서 해변으로 죽 걸어가니 배가 정박하는 클리포드 선착장(Clifford Pier)이 보인다. 여러 섬으로 떠나는 정기선들이 정박해 있고 또 바다 위를 출발한다. 클리포드 스퀘어(Clifford Square) 앞에서 야생 동물 공원인, 주롱 버드 공원(Jurong Bird Park)로 택시를 타고 간다. 택시 요금은 미터기로 10 S$가 나왔다. 택시도 정부 승인 택시를 타고, 미터기로 가는데 바가지요금은 없단다. 차 정면 유리에 표시가 있었다.
주롱 버드 공원(Jurong Bird Park) 앞에 차가 멈추고 우리는 내렸다. 무척 덥다. 열대의 원색적인 새들이 모여 있다. 이름조차 모르는 새들이 참 많다. 이름을 알고 있는 새가 구관조, 앵무새, 잉꼬 정도다. 펭귄 수족관도 있다. 펭귄을 실제로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싱가포르 남서부에 있는 주롱지역은 공업지대인데 이런 복잡한 곳을 한참 벗어나니 공원이 있었다. 20헥타르 언덕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류 동물원으로 350종 7000마리의 갖가지 새가 있었다. 걸어 다니며 구경하자니 다리가 아프다. 22M 높이에 2헥타르 넓이를 그물로 둘러싼 새 그물이 가관이다.
새장 안에는 인공 폭포와 작은 시냇물, 호수가 꾸며져 있어 볼 만 하다. 한 건물 안에는 야생조류만 모아놓은 어두운 곳도 있었다. 입구 가까이에는 무대와 관중석이 있다. 새를 갖고 보여주는 각종 쇼가 공연된다. 새를 날리고, 몰고, 춤추게 하고, 자전거를 태우고, 말도 시키고 재미있었다. 머리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욕을 하는데 이제부터는 그 말을 사용하면 안 되겠다. 새도 머리가 참 좋았다. 관중이 많은데 거의 80%는 한국사람 같다. 대단한 관광객이다. 400 여 명 중에 한국인이 거의 다 차지하고 있으니 꼭 한국에 온 기분이다. 관람을 마치고 출구 쪽으로 향하니 소낙비가 내린다.
스콜이라는 일시에 내리는 비란다. 10여분을 줄기차게 내리는 소낙비다. 덥고 축축한 기분이 더욱 진해진다. 온도는 약간 낮아진 것 같다. 버스로 분 라이(Boon Lay)에 도착했다. 대형 버스 정류장인데 전철도 멈추는 종착역 인 것 같다. 두당 40S$를 내고 이곳에서 하차하여 우리의 목적지인 오차드 거리(Orchard Rd)로 향하는 173번을 탔다. 차비는 두당 130센트다. 지도를 보고 한참을 가도 위치를 모르겠다. 대충 방향 밖에 모르겠다. 헤매다가 우리의 목적지를 지나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았다. 오차드 거리에 있는 쇼핑 센타가 즐비한 곳을 지나 우리의 목적지에 정확히 내렸다. 힘들다.
숙소를 찾아온 것이다. 불을 빌려 찌개(육개장)도 끓이고 전기밥솥을 빌려 밥도 했다. 주인전용을 사용했다고 나중에 한 소리 들었다. 공동식당에 사람들이 없어 한 상 차려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주방에 있는 식기들을 이용하고 우리가 가지고 간 코펠을 이용해서 준비한 식사는 너무 맛있었다. 우리의 고유음식이라 냄새가 주위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지는 않을 까 걱정도 되었다. 다 먹은 후에 설거지를 하다가 바닥에 물을 많이 흘려 관리인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양쪽 방 사이에 있는 세면대에서 서로 번갈아가며 샤워를 했다. 세면대는 별로 깨끗지도 않았고 물도 풍성히 나오지 않았다. 내일 사용할 반찬과 쌀을 사러 오차드 거리에 있는 싱가포르 프라자로 걸어간다. 대형 슈퍼다. 1층은 전자상가인데 우리나라의 삼성, 대우, 금성 제품도 보인다. 그러나 주류가 일본 제품이다. 제품도 다양하고 가격도 많이 다르다. 삼성, 금성은 가격도 국내보다는 20%정도가 더 싸 보인다. 손님들이 차 많다. 지하에는 대형 슈퍼마켓이 있다. 쌀과 과일 휴지 등을 샀다. 특히 과일은 무게를 달아서 판다. 과일은 신선하지도 못하고 색깔이 선명하지도 않고, 크기도 작은데 생각보다 비싼 것 같다. 피곤한 하루였다. 걸어서 여행하는 것도 힘들거니와 날씨가 더우니까 더욱 지치는 것 같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잔다. 2층 침대인데 아내는 아래 침대에서 잠을 잔다. 이것이 싱가포르에서 두 번째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