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월 11일, 토요일. 맑음 그리고 비.(인도네시아)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새벽은 조용하고 한가하고 깨끗하다. 새벽 3시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여행에서 좀처럼 겪어보지 못한 배탈이다. 오전 6시에 기상해 보니 냉장고 속의 음료들과 진열대의 세련되지 못하게 포장된 과자종류가 눈에 들어온다. 소파, 커튼도 고급이다. 수영장 물도 맑다. 호텔 뒤에는 고급주택가다. 천정에는 화살표가 하나 붙어있다.
끼블랏(KIBLAT)이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있는 Masjid al-Haram 사원이 있는 Kaaba 건물을 말한다. 이슬람교에서 기도의 방향 이라는 뜻이다. 아침식사로 성원이가 유진이, 상희, 찬주, 찬우를 데리고 식사하러 내려갔다. 아내와 양 선생은 돈을 더 지불하고 식사를 했다. 우리는 방과 육포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호텔 로비로 모두 짐을 들고 내려가 차를 기다렸다. 시간은 8시 40분이다. 한국 시간은 10시 40분이다.
호텔 로비에 세계 주용 도시의 사각을 알려주는 시계들이 있다. 오전 9시가 되니 차가 도착한다. 9명이 타기에는 약간 좁은 차다. 성원이와 기사가 앞에 타고 중간에는 우리가족이 뒤에는 찬주 가정이 탄다. 무릎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좁다. 짐은 뒤 공간에 잘 우겨 넣어 문을 닫았다. 차는 서서히 매단을 빠져나간다. 거리에는 봉고차가 많다. 영업용 버스도 봉고고, 짐을 실고 다니는 것도 봉고 크기의 차들이다. 시장 앞을 지나간다. 노점상들이 재미있고 혼잡하다.
우리 재래시장과 비슷하다. 우리를 태우고 가는 기사는 인도계다. 통통하고 짧은 머리에 키 작은, 피부색이 약간 검다. 순진해 보이는 30대 후반으로 보인다. 남성 적이라기보다는 여성적인 분위기다. 결혼을 해서 딸과 아들이 있단다. 20여분을 달려가니 고속도로가 나온다. 15km 구간의 짧은 고속도로다. 도심을 벗어났다. 거리는 한가하고 간간히 집들이 보인다. 양 옆 평야지대는 논농사가 한창이다. 과일나무, 열대 과일들이 종종 보인다.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달려가는데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진다. 도로 중앙선에 서서 헌금을 걷는 회교도들의 모습이 간간히 나타난다.
잠자리채를 들고서 서너 명의 신도들이 서서 기부를 요구한다. 조그만 마을에 들어서니 흰색 수건을 쓴 젊은 아가씨들의 무리가 보인다. 팜유 기름을 얻기 위해 심어놓은 야자수 숲이 길게 뻗어있다. 한참을 가다가 고무나무 숲이 있어 차를 멈췄다. 빽빽한 고무나무 숲이다. 각 나무마다 흠집을 내고 홈을 파서 고무 진액이 흘러내리게 했다. 끝에는 조그만 깡통이 매달려있다. 하얗게 굳어 모아지는 고무 진액을 뜯어보니 제법 질기다. 냄새도 식초 냄새 비슷하게 난다. 사진도 찍고 고무나무 열매도 주웠다. 한참을 가다가 또 코코아나무가 잔뜩 심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신기하게 코코아 열매는 나무 기둥에 오이 같은 열매가 열린다. 하나 따서 깨보니 호박 같다. 이렇게 열대지방의 식물들을 체험하며 차는 계속 달린다. 우리가 달리는 곳은 남으로 가는 도로다. 점점 험해지고 차량 통행도 적다. 매단에서 남쪽으로 68km 지역에 있는 Brastagi를 지난다. 브라스타기는 해발 1400m의 카로 고원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원래 매단 등지에서 살고 있던 유럽 사람들의 피서지였던 곳이다. 연기를 토해내는 화산을 볼 수 있다. 브라스타기를 한참 지나서 점심대 쯤에 우리는 토바호(Toba Lake)에 도착했다. 매단의 약 170km 남쪽에 위치한 호수다. 한가운데에 사모시르라는 섬이 더 있다.
깊이는 450m나 되며 표고 900m의 고원에 자리 잡은 칼데라 호수(화산으로 생긴 호수)이다. 험난한 길과 산악지역을 지나서 처음 우리 눈에 나타난 토바 호는 너무 멋지고 엄청 크다. 우리가 한없이 작아 보인다. 새파랗게 보이는 호수 색깔과 경사 급하게 물을 가두고 있는 길게 뻗은 산들, 산 중턱까지 물이 찬 것 같다. 무겁고 웅장한 경관이 꼭 바다 같다. 점심때가 되어서 식당을 찾았다. 기사가 중국식, 인도네시아 식을 고르란다. 인도네시아 식당을 선택해서 찾아간다. 개인별로 밥을 주고 닭요리, 소고기, 야채, 생선 튀김 등이 한상 펼쳐졌다.
음료수는 이곳 특산품이라는 만델링, 커피와 환타, 콜라를 주문했다. 만델링 커피는 아라빅 스타일 커피다. 진한 커피 가루가 가라앉으면 마시는 이곳 명품이란다. 전통 커피로 이곳의 만델링 커피와 시피로 커피가 있다. 지역만 다를 뿐 비슷하다. 맛이 구수한 숭늉 냄새가 나서 먹을 만 했다. 호수 주변의 집들은 깨끗하고 제법 부자로 보인다. 맑은 호수와 깨끗한 하늘, 멋진 숲이 어우러져 멋진 고원 휴양지다. 점심을 먹은 후에 호수를 따라 차를 몰아가니 회교 국가에서 보기 드문 교회들이 종종 보이기 시작한다. 큰 교회는 없었지만 마을에 비해 교회 수가 많았다. 크기는 시골 교회 정도로 작다. 이곳에서부터 넓게 분포된 호수 주변에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근면하고 유능한 종족인 바탁족(Batak)이 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프로테스탄트로서 토바호는 그들에게 성스러운 호수인 것이다. 교회들이 보이니 반갑고 기쁘다.(1800년대 독일의 노멘슨 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고 부흥하게 된다. 여기에 바탁 족의 라자 폰타스 왕의 도움이 컸다. 400만 성도의 인도네시아 복음의 씨앗이 된 것이다.) 또한 도로변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물소의 뿔처럼 뾰족한 지붕을 가진 특이한 전통가옥들이 보인다. 이 지붕의 가옥을 미낭카바우 하우스라고 한다. 서 수마트라 일대에 사는 미낭카바우족 특유의 가옥이다. 그들은 이 지붕으로 권력을 과시한다고 한다.
결혼식 등에서 여성이 머리에 쓰는 모자에도 이와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체 아니 이곳의 주요 차들은 모두 일제 차들이다. 낡은 차들도 잘 달린다. 물이 넘친 도로변에서는 고기잡이 하는 모습이 보인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토바 호수가 멋지게 보이는 곳에서 차를 세워 잠시 휴식을 취한다. 호수변의 경사지는 계단식 논이 엄청나게 층계를 이루고 있다. 절벽과 경사지 잔디밭에는 잔디 썰매를 타고 싶을 정도로 푹신해 보인다. 마당에는 큰 어미닭이 새끼 병아리를 데리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차를 타고 달려 시폴롱(Siborong borong)이라는 지역에 섰다. 차가 멈춘 곳은 평범한 농촌 판자 집 앞이다. 이곳이 온천이란다.
판자 집은 식당 겸 목욕탕을 운영했다. 식당을 가로질러 집 뒤로 가니 유황 냄새가 난다. 한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온천이 눈앞에 넓게 펼쳐진다. 한얀 석회 색의 땅이 층계를 이루고 뜨거운 물이 곳곳에서 솟아올라 여러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흐르는 곳을 유심히 보니 언덕 아래 집 벽으로 긴 대나무로 만든 수로를 따라 여러 곳으로 흘러들어간다. 이곳 안에서 이 물로 목욕을 하고 있다. 터키의 어떤 곳과 같다. 주로 이곳 주민들이 이 목욕탕을 이용한다. 완전히 노천이다. 이렇게 퐁퐁 솟는 물 구경은 정말 처음이다. 동네 꼬마들이 모여들어 우리를 신기한 듯 따라다니며 뭐라고 말을 한다.
동굴 속에 들어가니 기둥 모양이 벽 따라 있고 역시 뜨거운 물이 샘솟듯 솟아나며 밖으로 흐른다. 동네 청년들은 언덕 위에서 기타치고 노래를 부른다. 구경을 마치고 목욕탕 앞으로 왔다. 화장실 같은 문이 나란히 번호를 갖고 있다. 개인 목욕실이다. 밖에는 막 목욕을 마친 사람들이 서너 명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우리도 식당에서 음료수와 커피를 사서 마셨다. 주인 할아버지와 얘기를 했다. 예수를 믿는다며 복 받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너무 반갑다. 꼭 교회 장로님을 만난 것 같았다. 초록색 피부가 거친 이상한 과일이 맛있는 주스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름을 종이에 쓰시는데 시르삭(Sirsak, 구아나바나, 가시 여지)이다. 우리도 한 잔 시켜서 마시는데 우유 빛 주스가 환상적인 맛이다. 도로는 갈수록 좁아지고 험해졌다. 비포장도로도 나오고, 산이 무너진 곳도 있다.
무너진 흙들을 걷어내는 공사를 하는 곳도 만난다. 거친 경사에 꾸불꾸불한 산길을 간다. 앞에 가는 대형 버스를 보니 매단에서 자카르타까지 가는 버스다.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대형 버스는 연결되어있단다. 그런데 시간이 엄청 걸린다. 쉬지 않으면 거의 60여 시간을 달려야한단다. 도로 작은 마을 앞에는 유난히 두리안을 파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 지역이 두리안이 많단다. 두리안 나무는 크고 높다. 두리안 나무를 찾아 열매를 보니 신기하다. 재미있다. 비가 내린다. 날이 어두워진다. 도로가 엉망이다. 좁고 속력을 내지 못해 차가 빗길에 옆으로 밀린다. 가로등이 없는 깜깜한 밤, 자동차 라이트 불빛만 보인다.
어렵게 산길을 넘어간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Sipirok이라는 제법 큰 마을이다. 기사가 토바호에서 하루 자고 가자는 것을 우겨서 두 번째 자는 시피록 까지 강행군을 해서 온 것이다. 길 하나에 모여 있는 마을이다. 식당에 들어가 늦은 밤이지만 식사를 했다. 인도네시아 식인데 짜고 맛이 없다. 콩과 함께 볶은 멸치가 우리 입에 맞다. 밤 9시가 넘었다. 과일을 살까 해서 마을을 다녀도 너무 늦어서 모두 닫혔다. 시꺼먼 산길을 20여분 더 달려 산속 숙소로 들어섰다. 제법 차가 많다. 방갈로 두 개를 빌려 짐을 풀었다. 숙박비는 하나에 150,000루피(약 20,00원)다. 깜깜한 밤이라 주변을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 멋진 집이다. 미낭카바우 하우스 전통가옥이다. 대충 씻고 나눠서 잠을 잤다. 종일 차를 타고 이동한 피곤한 하루다. 생각한 것 보다 험난하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