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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졸업60주년 기념문집 원문보기 글쓴이: 이정승
< 말레이시아 逍遙遊 落穗 >
‘多人種, 多宗敎 사회에서의 문제점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나라
말레이시아 (Malaysia)
厚堂 高 光 昌
◈ 말레이시아(Malaysia) 基本 情報
海外旅行을 가려면 떠나기 전에 그 나라의 歷史와 文化, 地理的 特色 등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事前 知識의 바탕 위에서 보아야 좀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Malaysia)는 Malay(말레이족)와 -sia(땅)의 합성어로 ‘말레이사람들이 사는 땅’이란 뜻이다. 즉 人種을 말할 때는 ‘말레이‘라 하고 나라를 지칭할 때는 ’말레이시아‘라고 말하면 된다. 말레이시아‘하면 우리는 흔히 말레이반도에 있는 ’말레이시아‘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西 말레이시아‘(말레이반도)와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650km 떨어져 있는 ’東 말레이시아‘(보르네오 섬의 서북쪽) 두 地域으로 나누어져 있다. 국토면적은 우리 남한의 3배이고 人口는 3,200만 명 정도인데 말레이(64%), 중국인(22%), 인도인(7%)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東 말레이시아에도 70餘 種의 소수민족(2%)이 살고 있는 등 多樣한 人種 분포를 보이고 있는데 人種간 社會的 地位와 經濟力의 차이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國敎는 이슬람교이지만 이슬람교(61% 수니파), 불교(20%), 기독교(6%), 힌두교(1.3%)로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고 종교의 자유는 법으로 보장되어 있어 종교적 갈등은 거의 없다.
‘말레이시아’ 역사를 보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일본 등 160여 년 동안 植民地이었다가 1957년 8월 31일 英國으로부터 독립했다.
公用語는 말레이어이지만 영어가 함께 쓰이고 있고, 貨幣 정식 명칭은 ‘말레이시아 링깃’(Ringgit Malaysia)인데 약칭으로 보통 ‘링깃’이라고 하고 表記는 ‘RM’이라고 쓰며 RM1은 100센트이고 센트는 ₡로 표기한다. 우리나라와의 환율은 RM1=280원 정도이다.
우리나라와는 30일 동안 無visa協定이 맺어져 있고 時差는 우리보다 1시간 늦게 간다.
政治體制는 立憲君主制로 국가원수는 國王이고 정부수반은 首相이다. 지방자치제가 잘 발달되어 있어 國家權力이 中央과 州에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州정부는 州王(우리나라 시·도지사에 해당)을 중심으로 地域별로 特色 있게 운영되고 있다. 國王은 9개 州의 州王이 5년마다 교대로 돌아가면서 맡고, 국회는 上·下院의 兩院制로 운영되고 있다.
※‘말레이’優待政策 - ’말레이‘가 土着民이고 人口數도 많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移住民인 中國인에 비해서 취약하므로 ’말레이‘를 優待하는 사실상 人種差別政策을 통해서 사회적 경제적 전반에 걸쳐 實質的으로 平等을 도모하고자 하는 政策.
<우리나라와의 관계>
o 1960년 외교 관계 수립
o 國家元首 상호 방문 : 우리나라 대통령과 말레이시아 국왕(또는 수상)이 상호 방문
o 交易 : 우리나라는 말레이시아가 13번째 交易國,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가 8번째 交易國. 교역량 190억여 원, 수출입액 각 90억 원 정도로 兩國 모두 赤字와 黑字가 없음
o 僑民: 말레이시아에 사는 韓國인 2만 명 정도, 한국에 사는 말레이시아인 1만4천 명 정도
※ 최신 報道에 의하면 2021년 8월 15일 우리나라 國慶日인 光復節에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慶祝使節團을 보내 祝賀해 주면서 대한민국은 8월 15일, 말레이시아는 8월 31일 强大國의 束縛에서 벗어났으니 8월에 慶祝日을 가진 두 나라가 友誼를 더욱 다져 가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한다.
◈ 國際汽車를 타고 國境을 넘다.
일반적으로 陸路를 이용하여 國境을 넘을 경우에는 출국하는 나라에서 타고 왔던 車에서 내려 出國신고서를 제출한 다음 所持品을 챙겨 들고 걸어서 國境을 넘고 그곳에서 入國신고서를 제출한 다음 입국하는 나라의 교통기관을 이용하여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태국과 말레이시아 두 나라는 여행객의 편의를 위해서 출국지에서 타고 왔던 열차를 갈아타지 않고 그대로 타고 갈 수 있도록 하는 일명 ‘國際 列車’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태국 남부도시 ‘핫아이’(hat yai)에서 기차를 타고 가다가 國境驛인 ‘빠당 베사르’역(Padang Besar)에서 내려 태국측 출입국사무소에 出國신고서 제출하고,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말레이시아측 출입국사무소에 入國신고서 제출하고 ‘버터워스’행 기차표를 산 후 왔던 차에 다시 올라 말레이시아의 서북부 도시 ‘버터워스'(Burtter Worth)로 향했다.
’빠당 베사르 역‘은 우리나라 休戰線에 지어 놓은 판문점처럼 이 역의 한쪽은 태국 빠당베사르 역이고 다른쪽은 말레이시아 빠당베사르 역이다. 두 나라 國境을 넘나드는 이 기차는 태국 ‘핫아이’와 말레이시아 ’버터워스‘ 사이를 매일 2회 往復 운행하는데 그 중 한 차례는 2等 寢臺車가 북쪽으로는 태국 ’방콕‘까지, 남쪽으로는 ’쿠알라룸프르‘ 까지 다닌다고 한다.
※ 이 國際 列車를 타려면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여행사에 연락해서 미리 豫約을 해 두어야 한다. 이 차를 타지 못하면 걸어서 國境을 넘어 올 수밖에 ---
※ 國境을 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①가고자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와 無visa 期間이 얼마인가 확인해야 하고, ②가고자 하는 나라와의 時差를 확인하고 시계를 맞추어야 하며, ③가고자 하는 나라의 貨幣를 알고 일부 換錢하기 등이다.
◈ 말레이시아속의 작은 中國 - 페낭(Penang, 피낭 Pinang)
‘빠당 베사르’에서 출발한 기차는 2시간 여 달려 ‘버터 워스'(Burtter Worth)’역에 도착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니 논밭은 整理 된 듯 보이고, 住宅도 改良 사업이 된 주택 단지 모습이 車窓을 스쳐 지나간다. 가끔 히잡을 쓴 채 일하는 무슬림 여자 등이 보여,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農村 風景을 조금은 알아 볼 수 있었다.
‘버터 워스’는 말레이반도 육지 쪽에 있는데 바로 앞에 ‘페낭’(Penang)섬과 합쳐서 ‘페낭’州에 속한다. ‘버터 워스'기차역에 내려서 말레이시아 旅行용 地圖를 사고 말레이시아 貨幣로 換錢한 후 5분쯤 걸어가니 페낭 섬으로 가는 페리 선착장이 나오고 거기서 페리를 타고 10분쯤 가면 페낭 섬의 州都인 ‘조지타운’(Georgetown)에 도착한다.
‘조지타운‘은 1786년 英國이 ’말라카 해협‘을 장악하기 위해 戰略的으로 만든 港口도시로서 페낭州의 州都이고 수도(首都)인 ‘쿠알라룸푸르’ 다음으로 큰 도시이며 버스, 철도, 페리, 항공 등 교통이 편리하다. 특히 기차역이 있는 ‘버터 워스’와의 사이에는 매 10분 간격으로 24시간 페리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 地域實情을 잘 모르니까 무조건 택시를 탔는데 技士가 中國인 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학교에서 ‘말레이시아’語와 英語를 배우고 또 중국 華僑學校에서 中國語를 배웠다고 한다. 우리는 技士가 가지고 있는 시내 觀光案內圖를 보면서 이곳에서의 日程을 상호 협의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흔히들 泰國이 外國관광객들에게 ‘旅行者의 天國’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와 보니 태국보다는 이곳의 觀光인프라가 훨씬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조지타운’ 舊市街地에는 이스람교, 불교, 힌두교, 기독교 등 4대 종교 寺院이 隣接해 있고 市街地에 차이나 타운, 리틀 인디아(Little India), 해안가에는 유럽인을 위한 조지타운 등 人種별 集團村이 조성되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인터넷 카페는 舊市街地에 몰려있는데 한글 사용이 가능했다. 아마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차이나타운은 물론 다른 거리에서도 中國風의 빨간 裝飾을 달아놓은 곳이 많고 가게들 看板에 中國語가 倂記되어 있는 걸 보고 내가 中國에 와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라고 기사에게 이야기했더니 웃으면서 이곳은 中國人이 많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의 中國인 파워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페낭 인구 분포는 中國계 53%, 말레이계 31%, 印度계 9%, 유럽계 7%인데 인도계와 유럽계는 조지타운 港口를 造成할 당시 공사를 맡아 일했던 사람들 後孫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4대 宗敎(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기독교) 祝祭日이 모두 公休日인데 축제일에는 오픈 하우스(Open House)라고 해서 해당 宗敎 信者는 물론 타 종교 信者와 이웃 주민까지 함께 어울려 祝祭를 즐긴다고 하니 이 宗敎 祝祭가 주민들 상호 간의 親睦과 結束力을 돈독히 해 주는 役割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舊시가지를 벗어나면 최근에 조성된 新시가지가 나오는데 특히 ‘꼼따’(KomTar)는 65층의 원통형 고층건물(옥수수 모양)로 조지타운 어디에서나 눈에 잘 띄는 곳으로 버스터미널, 쇼핑센터, 호텔 등 여러 건물이 함께 붙어있어 편리하였다. 한국 식당도 이곳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식당을 ‘카페(cafe)’ 또는 ‘레스토랑’이라고 하는데 더운 날씨 때문에 낮에는 문을 닫고 있다가 선선한 아침, 저녁에만 운영하는 곳이 많다. 말레이, 중국, 인도 등 人種별로 음식점이 별도로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대표적 아침 식사로 ‘로티 바카르’(Roti Bakar ‘구운 납작한 빵’)을 즐겨 먹는데, 반숙 계란과 커피가 곁들여 나왔다.
요즘 젊은 여행객이 많아 宿所나 食堂이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곳은 生活 物價가 저렴하여 간편식 한 끼 음식값은 우리 돈 3,000원 정도인데 반하여 맥주는 1병에 6,000원 정도로 좀 비싼 편이었다. 이슬람교의 律法은 무슬림들만 술 마시는 것이 禁止 되어있다지만 일반 국민들도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게 하려고 술에 稅金을 많이 매긴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 것 같다. 이곳에서 소고기 요리를 주문하면 물소고기 요리가 나오는데 고기가 좀 질긴 편이니 이점 참고로 해야 한다.
’페낭 博物館‘은 건물의 外觀이 아름답고 말레이, 중국, 인도 등 각 民族별 文化와 風習을 再現해 놓은 展示室이 볼만했고, ’켁록시‘(Kek lok si)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볼만한 中國 寺刹로 1萬 개의 부처가 있는 만불탑(萬佛塔)인데 20年에 걸쳐 完工되었다고 한다.
‘페낭 힐(Penang Hill)은 해발 830m의 산으로 山 頂上까지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었고 페낭의 夜景이 무척 아름다웠다.
택시로 30여 분 걸리는 ‘뜰룩바항’과 ‘바투페링기’海邊을 갔다. 이곳은 1년 전인 2004년 12월 말 인도네시아 스마트라 섬 부근에서 발생했던 9.3 규모의 해저 지진 해일(海底 地震 海溢)의 被害 地域으로 海溢이 휩쓸고 간 처참한 痕迹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颱風, 海溢 등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우리나라는 참 福 받은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는 미터기가 없으므로 탑승하기 전 흥정을 해야 하며, 거스름돈을 내어 주지 않으니 이 점도 참고해야 한다.
우리는 페낭에 있는 동안 줄곧 중국인 技士와 함께 다녔는데 오가는 길에 대화해 보면서 택시기사가 참 중요한 사람이란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리 같은 외국인에게는 가이드(guide) 役割을 해 주고, 말레이시아의 측면에서는 弘報 大使였다. 페낭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우리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 해 주었다. 가이드(guide)를 별도로 採用할 필요가 없으니 經費 절감도 되었다. 서울 올림픽과 2002 월드컵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서 엄지 척을 해 보였다. 國威宣揚을 위해서는 운동만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우리 광주에 있는 택시기사들도 外國인이나 外地인이 왔을 때 無等山의 世界地質公園, 國立公園, 瑞石臺, 立石臺 등에 대해서는 물론 人權都市로서의 1929년 光州學生獨立運動, 1980년 5·18 光州民主化運動 등에 대해서 가이드(guide)를 잘 해 줄 것으로 믿고 싶었다.
◈ 高原 休養地 - 카메론 하이랜드(Cameron Highland)
‘西 말레이시아’(말레이 반도)는 땅이 고구마 모양처럼 생겼는데 반도를 둘러싼 바닷가에는 도시와 농촌 마을이 조성되었으나 반도 중앙부분은 대부분 高山 高原의 정글 山岳地帶이다.
1,885년 영국 植民地 政府 조사원 ‘윌리엄 카메론’이 地圖를 만들기 위해 정글을 探險하던 중 거대한 高原 地帶의 盆地를 발견하였다. 그래서 이 지역을 ‘카메론 하이랜드’(Cameron Highland)라고 부른다고 한다.
‘카메론 하이랜드’는 해발 1,500m의 山岳地帶에 위치해 있는 熱帶 雨林지역으로 연평균 10~20°C의 신선한 기온 때문에 영국식민지 시대부터 休養地로 인기가 많았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수세기 전에는 이곳 原住民인 ‘오랑 아슬리’족의 삶의 터전이었다고 하며, 또 예로부터 이곳에 몰래 숨어들어와 살고 있었던 中國인들에 의해서 1910년경 茶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일년 내내 10~20°C의 쾌적한 氣候의 영향으로 茶의 香과 맛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多量의 미네랄 成分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英國 정부에서 1920년경 대규모의 茶 農場을 조성하여 生産을 적극 권장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곳은 1500~2000m의 산에 둘러싸인 盆地인데 생각보다 굉장히 넓었다. 이 盆地 안에 마을이 3개가 있는데 ‘타나 라타’와 ‘브린 창’은 旅行객을 위한 마을이고 ‘링렛’은 農業에 종사하는 現地인들의 마을이었다.
중심마을 ‘타나 라타’의 ‘베사르’거리에는 銀行, 郵遞局, 病院, 旅行社, 버스터미널, 인터넷카페 등 旅行者를 위한 각종 便宜 施設이 잘 갖추어져 있고 駐車시설까지도 되어 있었다.
‘타나 라타’의 4㎞쯤 북쪽에 있는 ‘브린 창’ 마을에는 유럽이나 中國에서 온 團體 旅行客들을 위한 중·소 호텔과 食堂, 점포들이 줄지어 있고 부근에는 佛敎 寺刹인 삼포 寺院이 있고 골프 코스도 있었다.
‘브린 창’마을에서 ‘이포’로 가는 길 방향으로 3㎞쯤 가면 茶 농장, 딸기 농장, 나비 정원, 장미센터, 벌꿀 농장, 야채 농장 등이 있어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들 마을과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걸어서 다니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므로 자전거, 버스,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였다.
오늘도 버스는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이곳에서 ‘이포(Ipoh)’와 ‘타파(Tapha)’라는 도시까지 수시로 버스가 오간다고 한다.
宿泊시설은 중·소형 호텔 외에 게스트하우스가 여러 곳 있는데 이곳 게스트하우스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최고급이라고 했다. 모든 게스트하우스가 淸潔상태도 깔끔하고 自然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配慮해 놓았으며 食水는 물론 주요 볼거리와 트레킹코스가 나와 있는 地圖를 無料로 提供해 주고 있었다. 이곳에 오려면 1~2일 전까지 豫約을 하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宿泊시설 때문이라는 걸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食堂은 카페, 레스토랑 등의 이름으로 여러 군데 있고 메뉴는 스팀보트, 볶은밥, 국수류 등이 있었는데 맛도 그런대로 괜찮고 가격도 저렴했다. 印度 관광객을 위해 ‘인도식당’을 따로 운영하고 있었다.
人間 關係에서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워지려면 寢食을 같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1500m 高原지대에 와서 寢食을 같이 하고 있으니 우리 友情이 더욱 돈독해질 수밖에 ---
말레이시아 최대 茶 農場인 '보티 農場(Boh Tea Estate')의 茶밭을 둘러보는데 그 규모의 크기와 아름다움에 놀라 WOW! 하는 탄성이 먼저 나왔다. 골짜기마다 펼쳐지는 끝없는 초록의 향연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온통 초록으로 물들여질 것 같고, 숨만 쉬어도 모든 시름이 다 잊혀질 것 같았다.
自然은 신비롭고 또 많은 것을 그저 내어 주는 것 같다. 차밭 고랑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으니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연의 민낯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드론을 타고 차밭 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으로 왜 많은 觀光客이 찾아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차밭을 본 것만으로도 여기에 온 보람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茶 加工 過程 견학하기, 차 맛보기 등이 이어졌는데 茶 향과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난데다가 가격까지 저렴하니 旅行객들이 選好하는 것 같았다. 茶맛을 잘 모르는 나는 다른 茶에 비해서 떫은맛은 덜하면서 약간 좀 부드러운 정도라고 느꼈는데, 일행 중 茶에 대해서 전문지식이 풍부한 친구가 차를 마셔본 후 맛과 향이 좋다고 엄지척하는 바람에 우리 일행도 양손에 차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이곳에는 딸기 농장이 3개 있는데 觀光客으로 붐볐다. 이곳 말레이시아는 赤道에 인접해 있는 熱帶 地域이기 때문에 연평균 기온이 30°C가 넘어, 딸기나 채소 등은 栽培할 수 없는데 이곳 盆地 기온은 10~20°C로 서늘하여 딸기 채소 등 야채 栽培가 가능하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딸기나 채소도 구입하고 休養도 할 겸 家族 단위로 이곳에 온다고 한다. 이곳 盆地가 우리나라의 高冷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딸기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도 않았지만 막상 입에 넣어보니 果汁도 적고 糖度도 약해 더 먹을 수가 없었다. 해외 여행가서 사과나 배 등 과일을 먹어보면 우리나라 과일 맛이 최고였다 ‘身土不二’라는 말은 萬古의 眞理였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은 딸기를 넣어 아이스크림, 와플, 케이크 등을 만들어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身土不二’니까 이곳 사람들에게는 맛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
‘타나 라타’에서는 週末 시장, ‘브란 창’에서는 週末 夜市場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이곳 盆地에서만 볼 수 있는 좋은 볼거리였다.
‘타나 라타’와 ‘브란 창’ 一帶에는 트레킹코스가 15개 정도 있고, 종류도 일반 트레킹코스, 가파른 트레킹코스, 정글 트레킹코스 등 多樣한데 보통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단다. 트레킹코스를 가다보면 原住民인 ‘오랑 아슬리’족의 傳統的인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곳을 가보지 못했다. 가장 스릴이 넘치는 것은 역시 정글트레킹인데 우리 몸뚱아리 年式으로는 위험하니 旅行社에서 진행하는 투어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정글트레킹은 포기하고 일반 트레킹코스만 몇 군데 다녀왔다.
우리 祖上님들은 겨울의 추위를 擬人化해 ‘冬將軍’이라하고, 여름의 더위는 중국 古代 불(火)의 神인 ‘炎帝’라고 불렀다. 겨울에는 상대가 임금의 臣下인 將軍이니까 부딪혀 이겨내라는 뜻으로 ‘克寒’이라고 하고, 여름은 상대가 임금(帝)이라 싸워 이겨낼 수 없으니 부딪힐 것이 아니라 피하라는 뜻에서 ‘避暑’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추위보다 더위가 견디기 힘들었음을 말해준다. 우리 조상님들의 知慧가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명이 있다’는 말이 있다. 무더위가 몰려오면 이곳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 솟아날 구멍이 바로 ‘카메론 하이랜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盆地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避暑地로서 이 나라의 보배 중의 보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3泊을 한 후 그곳 旅行社에 부탁을 해서 ‘쿠알라룸푸르’(KL)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KL까지의 道路는 鋪裝이 잘 된 4차선 高速道路인데 중앙에 樹木이 심어진 分離帶가 있었고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 ‘카메론 하이랜드’는 休養地이고 茶 구입하는 곳이고, 트레킹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 이스람 文化를 接할 수 있는 都市-‘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약칭 KL)
말레이반도 서쪽 中央 부분에 있는 行政 首都로 넓이는 서울의 40% 정도이고, 인구는 약 170만 명으로 아담한 도시다. 이 도시는 두 江 사이에 있는데 도시 이름은 ‘흙탕물이 含有 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시 외곽에는 유럽형 住宅團地가 있고 工團도 군데군데 보였다.
‘차이나타운’과 ‘부킷 빈탕’ 등 주요 볼거리가 시내 반경 2㎞ 내에 모두 있어 걸어서 쇼핑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시내 교통은 시내버스 외에 지하철 2개 路線이 있었다.
<‘페트로나스 트읜 타워’(Petronas Twin Tower)>
우리는 KL에 도착한 후 맨 먼저 ‘페트로나스 트읜 타워’를 찾아갔다. 우리에게는 쌍둥이 빌딩이라고 널리 알려진 곳으로 이곳 國營 석유회사인 ‘페트로나스’에서 공사를 추진했는데 東쪽 빌딩은 日本 기업, 西쪽 빌딩은 韓國 기업이 맡아 1998년 공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페트로나스’ 회사는 말레이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하는 회사인데 채굴된 原油를 가공할 기술이 부족한 관계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기술에 많이 의존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빌딩공사를 우리나라와 일본에 맡겼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 것 같았다. 이 빌딩은 높이 452m에 88층이며 41층에 두 빌딩을 잇는 스카이브리지, 86층에는 전망대, 아래 6개 층에는 쇼핑몰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 빌딩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KL)을 방문했다는 확실한 증명사진이라고 말하고 함께 웃기도 했다.
<백화점 出入門에 우리나라 1만원 권 紙幣가?>
‘페탈링’ 거리‘에서 쇼핑을 하려고 百貨店에 갔는데 백화점 出入口 유리문에 우리나라 紙幣 1만원권이 붙어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무슨 일인가 싶어 백화점에 들어가 알아보니 이 백화점에서는 우리 한국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니까 韓國 觀光客의 不便을 덜어주기 위한 방법인데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우리나라 商品이 많이 있는데 가격은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했다. 몇 가지 紀念品을 사가지고 나왔다.
<이슬람 文化에 대한 공부>
이 나라는 國敎가 이슬람교일뿐만 아니라 무슬림이 국민의 61%가 넘는 보기 드문 이슬람敎國이다. 특히 이곳 쿠알라룸푸르(KL)에는 이슬람교 예배당과 이슬람 박물관, 무슬림의 건축양식 등이 많아 손쉽게 이슬람(회교)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 기회에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공부해 보기로 했다.
오전에는 이슬람교도들의 정신적 故鄕이라 불리는 73m의 높다란 쬬족탑이 있는 國立 모스크를 갔다. 또 이슬람 문화에 대한 각종 展示物이 있는 이슬람 藝術博物館을 구경하고 점심은 할랄 음식을 먹은 후 이슬람교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알아보았다.
o 이슬람(Islam)교-610년 아라비아에서 ‘마호메트’가 창시, 세계 3대 宗敎 중 하나 (回敎)
o 모스크(Mosque)-이슬람교 예배당(回敎 寺院)
o 이슬람 문화-모스크 방문 시 노출이 심한 복장은 입지 않는다. 머리는 신성한 곳이므로 남의 머리를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 예배시간에는 모스크 출입을 금지한다. 물건을 주고받거나 식사할 때는 오른손을 사용한다(왼손은 부정 탄 손). 술, 담배 금지, 돼지고기 안 먹기
o 무슬림(Muslim)-이슬람교(回敎) 신자
o 히잡(Hijab)-‘아랍어’로 ‘가리다’의 뜻, 무슬림 女性들이 외출할 때 머리, 목을 가리는 베일
o 터번(tuban)-무슬림 男性들의 머리에 두르는 수건
o 할랄(Halal)음식-‘아랍어’로 ‘허용된 것’의 뜻, ‘알라’이름으로 屠畜된 무슬림이 먹는 음식을 가리킴. 돼지고기는 邪惡한 神들에게 바치는 祭物이라고 생각하고 먹지 않음
o 라마단(Ramadan)-이슬람 달력으로 마지막 달(보통 7월)이 斷食月이다. 한 달 동안 日出에서 日沒까지 禁食하는 시기, 라마단이 끝나면 다음 달 1일과 2일은 祝祭일이다.
o 술탄(Sultan)-이슬람교국 君主
<人種暴動>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이야기)
이곳 ‘쿠알라룸푸르’는 傳統的으로 말레이와 무슬림이 많이 사는 地域인데 도중에 移住해온 中國인들이 富를 蓄積한 후 이 地域 社會 主導權마저 쥐고 쥐락펴락하는 것에 대해서 평소 不滿이 많았었는데 69년 5월 9일에 실시된 州 議員選擧에서 中國계가 많이 당선되고 그들이 祝賀 퍼레이드를 벌리면서 말레이를 조롱하자 이에 激憤한 말레이와 작은 몸싸움이 있었는데 이 일이 널리 알려지자 5월 13일 말레이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차이나타운을 습격하여 中國인들을 때리고 器物을 파괴하는 暴動을 일으켰는데 이로 인해서 147명이 死亡하고 800여 명이 負傷을 입는 초유의 流血事態가 발생하였고 中國인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 이 暴動의 波濤가 全國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이곳 말레이들은 중국인집을 찾아가 ‘中國인 돌아가라!’(Go home chines)를 외쳐대니 중국인들은 5일 동안 외출도 못하고 숨어 살아야 했다. 중앙정부에서 이 지역에 戒嚴令을 내려 事態를 수습하기는 하였지만 이 폭동을 계기로 그동안 傲慢했던 중국인의 態度가 크게 바뀌고 말레이를 優待하는 여러 가지 政策이 마련되는 契機가 되었다. 人種 간에 일어난 暴動이라 ‘5·13人種暴動’이라 일컫는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모두 檀君 할아버지의 후예로서 單一 民族이기 때문에 多民族 社會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없다. 얼마나 多幸이고 고마운지 모른다. 늘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人種들 特性에 대해서 알아보면
1) 말레이-土着民인데 慾心이 없고 햇볕 아래에서 땀 흘려 일하기를 싫어하는 등 勤勞 意慾이 좀 부족한 편이다. 이슬람교를 믿는데 信仰心이 두텁다. 요즘은 말레이 優待政策의 혜택을 받아 대학생들의 國立大學 입학률이 높고 公務員에 많이 진출해 있다.
2) 中國인-19세기 말 英國이 말레이시아를 植民地統治를 하면서 말레이시아 産業발전을 위해서(주석 鑛山 개발 등) 移民을 받아들일 때 대거 들어온 사람들로서 勤勉性과 뛰어난 장사 手腕을 이용하여 短 期間에 富를 蓄積하여 사회적 指導層으로 급 浮上되었다. 식당, 가게 등 商業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 종교는 佛敎지만 道敎, 儒敎,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있다.
3) 印度인-페낭 조지타운 건설 당시 건설 기술자로 일부가 들어오기는 하였지만 대부분은 南 印度의 카스트(Caste)制度에서 下層 階級에 속하는 사람들이 삶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이곳으로 移民 온 사람들이다. 建築勞動과 生産業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고 宗敎는 힌두교인데 信仰心은 그리 두텁지 못하다.
<말레이 優待政策 (보미푸트라(Bomiputera) >
말레이시아에 사는 人種을 크게 분류하면 말레이, 中國人, 印度人 등 인데 특히 말레이와 中國人 간의 갈등이 심했다. 정부에서는 중국인들이 社會的, 經濟的인 면에서 일방적으로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진단하고 그 處方策으로 社會的 經濟的으로 强者인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弱者인 말레이를 돕는 강력한 말레이 優待政策을 내놓게 된다.
말레이 優待정책은 政府調達物品 入札시 30%의 지분을 말레이에게 주고, 就業 확대를 위해서 採用 考査 시 말레이에게 加算點을 부여해 주며, 國立大學入學定員의 70%를 말레이에게 우선 配定(前에는 入學定員의 70~80%를 중국인이 차지했음)하고, 住宅 分讓 시 10%를 割引해 주는 등 人種差別政策이다. 國家에서는 이렇게 말레이를 優待함으로서 人種 間 갈등을 解消함은 물론 國家 社會의 實質的 均等과 安定을 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추진한 정책이다. ‘보미푸트라’政策이라고 고도 하는데 보미푸트라(Bomiputera)는 말레이시아 語로 ‘땅의 자손’ 즉 ‘토착민’ 이란 뜻인데 일반적으로는 ‘社會的 經濟的 弱者’를 일컫는다.
◈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熱帶 雨林-타만 네가라(Taman Negara)
130萬 年 된 熱帶 雨林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울창한 密林 속에 수많은 동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으로 정부에서 國立公園으로 지정하여 철저하게 保護하기 때문에 여행자가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은 극히 限定되어있단다. 그런 말을 들으니 好奇心이 더욱 發動했다.
KL에서 1일 투어에 들어갔다. 그곳에 가려면 ‘제란톳’에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게 餘裕롭지만 우린 旅行 日程상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몸에 좀 무리가 될지 모르지만 --
교통은 KL(쿠아라룸푸르)의 韓人 업소인 ‘푸두호텔’에서 4인승 짚차를 타고 8¦00에 출발하여 ‘제란톳’으로 가고 거기에서 다시 쿠알라템벨링 선착장으로 간 후 ‘타한강’에서 보트를 탔다.
‘제란톳’가는 길도 험하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거기서 다시 ‘쿠알라템펠링’가는 길은 말할 수 없이 험했다. 도중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동물의 왕국’을 보고픈 생각에 꾹 참았다. 어렵사리 ‘쿠알라템펠링’에 도착한 후 제트보트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 ‘쿠알라타한’으로 갔다. 타한강은 물이 맑은 데다가 강폭이 좁고 물살이 세어서 거슬러 올라가는데 기분은 매우 상쾌했다. ‘쿠알라타한’은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인데 그곳에 작은 호텔, 警察署, 食堂, 商店 등이 있었다.
이곳 觀光 포인트인 공중다리를 갔다. 觀覽客이 다니는 길 양옆은 맹수로부터의 攻擊울 방지하기 위하여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높이가 50m가 넘는 나무들 사이에 그물과 밧줄을 이용해 다리를 놓은 것이다. 일종의 출렁다리였다. 그물이 地上에서 30~40m 높이에 있어서 매우 스릴이 있었으나 너무 많이 흔들려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척 무서웠다. 우리나라에 있는 출렁다리는 安全을 위해서 튼튼한 鐵塔으로 支柱를 세워서 만들었는데 이곳은 나무에 그냥 매달아 놓았으니 말 그대로 출렁출렁한 출렁다리였다. 옛말에 ‘旅行은 가슴이 뛸 때 하고 다리가 흔들릴 때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
다리 길이가 400m인데 一方通行이기 때문에 포기하려면 일찍 포기해야 한다고 가이드가 일러준다. 사람들의 몸무게를 고려하여 5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출발시켰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도 없고 해서 다리 양쪽에 있는 줄을 꽉 붙잡고 조심조심 가재걸음으로 겨우 건너왔는데 등과 손에 땀이 흠뻑 배었다. 다리를 건너오는 도중 마음의 여유가 없어 주변에 사는 동물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출렁다리에서 내린 후 주위에 있는 熱帶 雨林의 빽빽한 숲은 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이런 風景은 ‘아마존 강’ 附近에서나 볼 수 있다고 한다.
숨어서 동물들을 觀察하는 ‘은닉(隱匿)觀察所’에 갔다. 숲속 한가운데 높은 望樓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 잠시 동안 앉아서 밖을 觀察하는데 동물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조용히 앉아있으니 멀리서 들리는 여러 가지 動物들의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힘이 약한 動物들은 자기의 위치가 드러날까 봐 잘 울지 않는다고 한다.
1일 투어인 관계로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돌아와야 했다. 우리는 ‘동물의 왕국’에서 보는 것처럼 큰 動物을 멀리서나마 볼 줄 알았는데 보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動物의 王國을 보는 것은 우리들 希望이고 꿈이었다. 꿈이 크면 失望도 거기에 比例하는 법이니 熱帶 雨林을 본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가 그 험한 길을 차에 시달리면서 오갔는데 무척 아쉽다고 했더니 가이드가 말하기를 ‘지금 여기는 雨期인 관계로 비가 많이 오는데 거기까지 갔다가도 ’타한‘강을 거슬러 오르지 못해 되돌아오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데 오늘은 날씨가 도와주었으니 고마워해야 한다’고---
무탈하게 다녀왔으니 感謝하고 또 感謝할 따름이다.
宿所에 도착하여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덩렁 누우니 내 몸이 나에게 말한다.
‘야! 네 나이가 몇인데 蠻勇을 부리니? 네가 지금도 출렁다리 탈 軍番인줄 알고 있니?’
이 말에 내가 뭐라 答해야 할까? 할 말이 없네.
이제 내일은 이곳에서의 11泊 12日 동안의 旅行을 마무리하고 泰國 방콕으로 떠나야 한다.
그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보았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움만 남는다.
이곳 KL에서 방콕까지 汽車로 20여 時間 걸린다고 하니 차 속에서 자면서 疲勞를 푸는 수밖에 다른 方法이 없다. 다행히 기차가 寢臺車라고 하니까---
◈ 未解決 課題
<東 말레이시아 여행>
東 말레이시아는 보르네오 섬 西北쪽에 위치해 있는데 面積은 말레이시아 전체의 60%인데 반하여 人口는 20%에 불과하다. 그곳 산기슭에는 35여 種의 少數民族이 모여 살고 있다고 하고 UNESCO에서 自然保護지역, 動植物 保護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많을 정도로 自然環境이 잘 보존된 自然의 寶庫라고 한다.
겨울 休暇철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추위도 피할 겸 休養을 위해서 이곳 東 말레이시아를 즐겨 찾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仁川 空港에서 1주당 5~6편, 釜山공항과 務安 공항에서도 각 1~2편 정도 이곳 ‘코타키나발루’ 空港까지 直航路를 운영하고 있는데 비행시간은 5시간 정도이고, 우리나라 旅行客 數가 보통 1년 동안 40萬 명이 넘었다고 하니 한 번쯤 旅行해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 글을 마치면서
코로나19 때문에 계속 집에 눌러 있다 보니 마음대로 걸어 다닐 때가 좋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하다. 自由는 자유로울 때는 못 느낀다. 幸福할 때 행복을 못 느끼듯이 ---
지난번에 미얀마 旅行 다녀온 落穗를 몇 자 적어보았는데 미얀마 다음 발길이 간 곳이 말레이시아인지라 내친김에 말레이시아 다녀온 旅行記도 써보려고 하니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가 눈을 뜨면 自然스럽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려면 거기에 關心을 갖고 잘 살펴 알아보아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多人種, 多宗敎인 이 나라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고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고 있는가? 였다.
그런데 10여 일의 짧은 기간 동안 우리가 보고 싶은 것들을 볼 時間的 餘裕도 없지만 中國風이 물씬 풍기는 ‘페낭’(페닝)과 이스람교(回敎)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쿠알라룸푸르’ 그리고 盆地인 ‘카메론하이랜드’ 만을 다녀와서 말레이시아를 다녀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은 地方分權이 잘 되어 州마다 특색 있게 운영되고 있으니 어느 특정한 州를 보고 말레이시아 전체를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와 ‘페낭’ 두 都市가 말레이와 중국의 文化를 대표할 수 있는 곳, 다시 말해서 두 都市가 ‘말레이시아’라는 나라를 縮約해 놓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 ‘가이드나 택시기사들 입을 통해 우리가 보고 싶은 것에 대해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말레이시아의 特徵은
첫째는 말레이 半島에 있는 西 말레이시아와 동쪽 바다 건너 보르네오섬에 있는 東 말레이시아로 구분되어 있다. 半島와 섬 地域을 모두 領土로 保有하고 있는 唯一한 國家라는 점이다.
둘째, 이슬람교를 國敎로 하면서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무슬림인 보기 드문 이슬람敎國이다. 이슬람文化가 國民生活 全般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지만 宗敎의 自由는 법으로 보장하여 종교적 갈등은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보미뿌뜨라’라는 人種 差別政策이다. 모든 人種을 다 똑같이 優待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말레이만을 優待하는 차별정책을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말레이반도에서 대대로 살아온 ‘말레이’가 일하는 能力면에서 中國인과 印度인을 따라갈 수 없게 되자 人口數도 많고 土着民인 ‘말레이’를 優待하는 政策을 펴서 社會的 경제적으로 實質的 平等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는 宗敎의 祝祭일을 ‘오픈하우스((Open House)라는 이름으로 地域祝祭로 발전시켜 상호 親睦과 結束力을 다지면서 宗敎的 갈등을 解消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1500m 고원지대에 ‘카메론하이랜드’라는 盆地가 있는데 이곳이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좋은 避暑地, 休養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보고 배운 점은 幸福은 100% 滿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적당한 선에서 自足을 느끼면 그게 바로 ‘眞正한 幸福’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말레이시아인을 優待하는 人種差別政策 때문에 中國인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 不滿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쉬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곳으로 올수 있도록 移民을 받아주고 일자리까지 마련해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滿足하고 感謝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이곳 말레이시아인들은 人種, 宗敎, 文化的 갈등 없이 서로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은 宗敎的 信念을 떠나 여기가 生前에 갈 수 있는 天國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런지?
나는 이번 旅行을 통해서 ‘말레이시아’를 바로 알게 되었고 다시 한 번 나라의 고마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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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졸업60주년 기념문집 원문보기 글쓴이: 이정승